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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달항아리(국보), 2007-2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자 달항아리’(국보)이다. 조선후기 왕실의 도자기를 공급하던 관요인 사옹원 분원 백자제작소에서 만든 것이다. 높이 43.9 cm, 몸통지름 44cm 대형 백자 항아리로 유약과 태토의 상태가 우수하고, 입지름과 바닥지름이 비례가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약간 비틀어지고 변형된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조형미에 생동감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백자 달항아리(백자대호, 국보)>

SANYO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출처>

  1.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백자 철화운용문 항아리(보물), 용과 구름을 생동감있게 표현한 작품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자 철화운용문 항아리(보물)이다.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큰 백자 항아리로 철화기법으로 만든 백자 중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 겉면에 구름과 용이 그려져 있으며, 그 형태로 볼 때 국왕의 어주(御酒)를 담아두던 용준(龍樽)인 것으로 보인다. 철화안료로 구름속을 날고 있는 용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비슷한 형태의 항아리 조각이 경기도 광주시 일대 분원 가마터에서 발견되고 있어 이 항아리도 그곳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철화(鐵畵)란 산화철 등을 주 안료로 하여 점토와 유약 등을 혼합하여 붓으로 도자기표면에 문양을 그리는 기법을 말한다. 고려청자부터 분청사기, 조선백자까지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철화백자는 붓을 사용하여 문양을 그리기때문에 회화적인 특징이 잘 나타난다.

OLYMPUS DIGITAL CAMERA<백자 철화운용문 항아리(보물).>

용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볼 때 궁궐에서 국왕의 술을 담아두는 용준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철화안료를 사용하여 용을 단순하면서도 생동감있게 그려 놓고 있다.

백자 철화운용문 항아리, 보물, 조선 17세기
백자 철화운룡문 항아리(白磁 鐵畵雲龍文 立壺)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백자 항아리로 높이 45.8㎝, 아가리 지름 15.8㎝, 밑지름 15.7㎝이다. 아가리 부분은 짧고 약간 안쪽으로 기울어져 세웠으며, 몸체는 어깨 부분에서부터 팽배해졌다가 서서히 좁아지며, 아랫부분에서 다시 벌어지는 형태를 하고 있다. 유약의 색깔은 회백색을 띠고 있으며 광택이 은은하다. 아가리 부분과 어깨 부분에는 덩굴무늬와 연꽃무늬가 있고, 굽 위에는 이중으로 삼각형무늬가 있는데, 이것은 번개무늬의 변형으로 보인다. 몸체의 전면에는 구름과 여의주를 집어삼키려는 듯한 용의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용의 부릅뜬 눈과 입, 뿔과 수염, 갈퀴와 비늘이 휘날리는 구름과 함께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굽은 안바닥을 오목하게 파내었으며, 굽 다리에는 가는 모래 받침을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회백색의 유약과 특이한 그릇모양, 산화철 안료를 이용해서 그린 철회 기법의 무늬, 오목한 굽의 표현은 경기도 광주군 일대의 17세기 가마터인 상림리·선동리·정지리에서 발견되고 있어, 이 항아리도 이 곳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항아리 표면에 그려진 구름과 용의 모습을 보아, 당시 궁중에서 사용하던 그릇 중 하나인 듯하다. 철회 기법을 사용한 초기 작품으로 중요한 예이며, 17세기 전반 경의 대표적인 철회 백자 항아리이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구름 사이로 용이 날고 있는 모습이 표현된 부분.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필치로 구름과 용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대쪽 면.

20160120_163920-20160120분원이 있었던 경기도 광주 선동리 가마터에서 비슷한 형태의 백자 조각이 출토되어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
1. 이화여대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자 청화송죽인물문 항아리(보물), 사대부 취향이 잘 반영된 백자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자 청화송죽인물문 항아리(보물)이다. 높이 47cm의 큰 항아리로 목이 짤고 어깨가 올라간 모습을 하고 있다. 겉면에는 청화로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동자를 거느린 선비의 모습을 그려넣고 있다. 그림의 화풍으로 볼 때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사대부들이 선호했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청화(靑華)는 코발트(Co)를 비롯하여 철, 망간, 동, 니켈 등 여러 금속화합물로 된 안료이다. 조선시대 청화안료는 주로 중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으며, 고가의 안료였기때문에 관요에서 주로 사용했으며, 도화서 화원이 주로 그렸기때문에 청화백자에 그린 그림의 솜씨는 대체로 뛰어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백자 청화송죽인물문 항아리(보물)>

조선중기인 16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선비가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놓고 있다. 중국풍의 그림으로 지배층인 사대부들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백자 청화송죽인물문 항아리, 보물, 조선 16세기
백자 청화송죽인물문 항아리(白磁 靑畵松竹人物文 立壺)는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높이 47㎝, 아가리 지름 15.4㎝, 밑지름 16.7㎝의 청화백자 항아리로, 목은 짧고 어깨가 올라가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그릇 모양을 하고 있다. 밑 부분은 좁게 내려가다가 굽에서 나팔모양으로 퍼졌는데, 이러한 모양은 짧게 수직으로 내려가는 굽을 가진 초기 청화백자에서 흔히 보이는 형태이다. 목 윗부분에는 가로줄 하나를 그린 다음 그 밑에 구름을 그려 넣었고, 굽 부분에도 가로로 한 줄을 그렸다. 그릇의 몸통 전면에는 소나무 한 그루와 대나무 몇 그루를 그렸다. 소나무 밑에는 책상에 팔을 괴고 있는 인물을, 대나무 밑에는 거문고를 든 동자를 거느린 한 선비가 거닐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구도나, 인물의 배치 및 묘사가 16세기 후반의 화풍과 매우 유사하여, 이 항아리의 제작시기는 대체로 16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릇을 구우면서 굽이 두꺼워 터진 곳이 있고, 아가리 부분과 굽 부분에 약간 수리를 한 흔적이 있으나, 보기 드문 조선 전기의 걸작이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으로 대나무 아래 선비가 동자를 거느리고 걷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나무와 소나가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은 값비싼 청화안료를 사용하여 그렸기때문에 여백이 많은 편이며, 16세기 화풍이 잘드러나 있다. 도화서 화원이 그림을 그리고 관요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1. 이화여대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국보), 18세기 회화 화풍을 보여주는 걸작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국보)이다. 조선후기인 18세기에 만들어진 걸작으로 큰 백자항아리 겉면에 넓은 이파리들고 포도넝쿨을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철사안료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농담과 강약이 뛰어나며 표현이 사실적인 18세기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화풍이다. 도자기의 형태는 궁궐에서 사용하는 용무늬기 그려진 용준(龍樽)으로 보이며 포도넝쿨이 그려진 것이 특이하다. 조선후기에는 도화서 화원을 관요에 파견하여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게 했는데, 이 작품에 표현에 그림의 수준이 아주 뛰어난 것으로 볼 때 도화서 화원이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철화(鐵畵)란 산화철 등을 주 안료로 하여 점토와 유약 등을 혼합하여 붓으로 도자기표면에 문양을 그리는 기법을 말한다. 고려청자부터 분청사기, 조선백자까지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철화백자는 붓을 사용하여 문양을 그리기때문에 회화적인 특징이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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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국보)>

철화안료를 이용하여 붓으로 도자기 겉면에 포도넝쿨을 그려놓고 있다. 18세기 회화의 화풍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국보 107호, 조선 18세기
백자항아리 면 전체를 화폭 삼아 넓은 이파리들과 그 사이로 뻗어 내린 포도넝쿨이 그려진 대형의 항아리이다. 붓놀림이 자유자재하고 철사(鐵砂) 안료에 농담을 주면서 문양을 그려 마치 한 폭의 묵포도도(墨葡萄圖)를 연상케 한다. 포도그림의 구도와 세부표현 등에서는 심정주(1678~1750)나 권경, 혹은 이인문 같은 18세기 화가들의 화풍에 비견되기도 한다. 발색의 조절이 어려운 철사 안료로 자연스럽게 농담을 표현한 점에서도 뛰어난 솜씨가 보인다. 대형의 항아리에 용무늬 그려진 용준(龍樽)은 왕실 의례용으로 사용되었는데, 유사한 크기와 형태로 포도무늬를 그린 예는 이 항아리가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다. 회화적이고 문기 넘치는 문양 표현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온 수작이다. <출처: 이화여대박물관>

20160129_112135-20160129넝쿨과 포도송이를 섬세하면서도 힘있게 사실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20160129_112152-20160129포도 넝쿨.

20160129_112143-20160129아가리 부분에 표현된 포도송이와 포도이파리.

20160129_112104-20160129
포도넝쿨이 표현되 부분에서 본 항아리

20160129_112114-20160129
넓은 여백 사이로 보이는 포도넝쿨

20160129_112126-20160129
다른 방향에서 본 모습

20160129_112300-20160129이화여대박물관에서 전시중인 모습.

<출처>
1. 이화여대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자 상감모란버들 갈대무늬 매병(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고려시대(12~13세기)에 만든 백자인 “백자 상감모란버들 갈대무늬 매병(白磁象嵌牡丹柳蘆文梅甁, 보물)”이다. 고려시대에 만든 백자 중 문화재로 지정된 흔치 않은 문화재이다. 두툼한 아가리를 하고 있으며, 팽배한 어깨부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급격 줄어든다. 몸체는 참외모양으로 6등분하였다. 각면에는 마름모 모양의 선을 상감기법으로 처리하고 그안에 청자 태토로 메우고 붉은색 자토와 흰색백토로 모란, 갈대, 버드나무 등을 상감하였다. 몸체의 기형은 중국 북송의 영향을 받았으며 볼륨감있는 고려 청자 매병과 북송 매병 양식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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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상감모란버들 갈대무늬 매병(보물345호).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백자 중 문화재로 지정된 흔치 않은 유물이다. 중국 북송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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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편, 연꽃잎 모양 안에 산수화와 비슷한 그림이 표현되어 있다. 중국풍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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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편.

 백자 상감모란버들 갈대무늬 매병, 보물345호,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이 백자 매병은 동체를 여섯 면으로 나누고 각각의 중심에 모란.갈대.버드나무가 들어간 능화창을 상감기법으로 시문하였다. 능화창과 어깨 및 굽 주변에 돌아간 연꽃잎 안을 청자 흙으로 체워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매병을 굽는 과정에서 동체 일부가 틀어졌으나, 전체적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중앙박물관
4.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