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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사택지적비(보물),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비석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 중인 사택지적비(보물)이다. 백제 의자왕 때의 귀족 사택지적이 남긴 비석으로 부여 부소산성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화강암 한면 한면을 다듬어 네모모양의 칸을 만들고 그 안에 글씨를 새겼다. 비석의 오른쪽에 봉황(혹은 삼족오)이 새겨져 있다. 현재 전하는 백제의 유일한 비석이다.

비문은 사택지적이 늙어가는 것을 탄식하며 금당과 탑을 세운 동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글의 양식은 두자로 이루어진 단어를 따로 나누어 운을 맞춘 중국 육조시대의 사륙병려체이다. 사택지적은 ‘일본서기’에 의자왕 때 일본에 사신으로 간 대좌평 ‘지적’과 같은 사람으로 추정된다. 미륵사 사리봉안기에 의하면 무왕의 왕비도 사택씨였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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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사택지적비(보물)>

, 현존하는 유일한 삼국시대 백제의 비석이다. 백제말 유력한 귀족이 남긴 비석으로 당시의 세련된 문화를 보여준다.

갑인년 정월 9일 내지성에 사는 사택지적은
몸이 나날이 늙어감을 한탄하여
금속을 다듬어 금당을 세우고
옥을 다듬어 탑을 쌓았다
높다란 금당의 자비로운 모양은
신성한 구름을 보내는듯하고
우뚝한 탑의 자비로운 모습은
성스럽고 밝은 정기를 지니고 비상하는 듯하다.
(중앙박물관, 2011년)

백제 대좌평 사택지적은 누구?
일본의 고대 역사를 기록한 <일본서기>에는 642년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 ‘대좌평 지적’이 등장한다. 그는 사택지적비에 등장하는 ‘내지성’에 사는 사택지적’과 같은 인물로 여겨진다. 대좌평은 백제의 최고위 관직이었고 사택 가문은 백제의 유력한 귀족이었다. 지적은 최고 귀족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654년, 절과 탑을 짓고 사택지적비를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비석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씨체와 유려한 비문은 이들이 매우 세련되고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하였음을 보여준다. (부여박물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비석에 새겨진 글자. 네모모양으로 칸을 나누고 그 안에 글자를 새겼다. 남조의 영향을 받은 글씨체와 글의 양식을 보여준다.

부여 부소산성에서 발견된 비석으로 백제 의자왕 14년(654)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글자는 화강암의 한 면을 다듬고 네모모양으로 나누어진 칸에 새겨져 있다. 현재 4행만 남아 있는데, 각 행에는 세로로 14자씩 있다. 비문은 중국 육조시대의 사륙병려체로 그 내용은 사택지적이 금당을 세우고 탑을 쌓은 동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비문 양식 및 글씨체 등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중앙박물관, 2011년)

<출처>

  1. 문화재청
  2. 부여박물관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두산백과
  5. 중앙박물관

 

[부여박물관] 사비기 백제 때 사용되었던 석조

국립부여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석조들이다. 주로 사비기 백제 때 만들어져 사용되었던 석조들로 현존하는 석조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유물들이다. 당시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관북리 유적(사적 428호)을 비롯하여 부여 동남리, 현북리, 용정리 등에서 출토되었다. 그 형태는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석조와 비슷한 형태의 것들도 있으며, 석연지로 추정되는 둥근 형태의 석조들도 있다.

석조(石槽)는 물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 큰 돌을 넓게 파고 물을 받아 사용하도록 만든 일종의 돌그릇으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이 사용되었다. 카톨릭 성당이나 이슬람 사원을 출입하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수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불교와 함께 사찰을 구성하는 요소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석조는 단단한 화강석을 파서 만든 큰 구조물로 그 재료의 견고성 등으로 인해서 삼국시대 이후 만들어진 많은 석조들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불국사 석조는 지금도 물을 담아두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6~7세기, 사비기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발견된 석조이다. 배모양을 하고 있는 이 석조들은 사찰에서 전해오는 석조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불교의 전래와 함께 사용되기 시작한 석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 6~7세기, 부여 관북리, 높이가 낮고 배모양을 하고 있는 또다른 석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 6~7세기, 부여 관북리, 높이가 낮고 특이한 형태의 석조이다. 한쪽편에 석조로 물이 유입되는 연결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비기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유적(사적 428호). 다수의 석조들이 발견되었는데, 궁궐에서 연꽃을 키웠다는 전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석조 (보물 194호). 사비기 백제 왕궁터인 관북리유적지에서 있었던 것으로 연꽃을 키웠던 석련지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 6~7세기, 부여 동남리, 정사각형 평면을 하고 있는 석조로 높이가 낮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 6~7세기, 부여 현북리, 높이가 낮고 크기도 작은 석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둥석조, 6~7세기, 부여 용정리, 둥근 원형 평면을 하고 있는 석조이다.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석조(보물 194호)로 연꽃을 키우는 석련지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출처>

  1. 문화재청
  2. 부여박물관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두산백과

 

 

부여 석조(보물), 백제 왕궁에서 연꽃을 심었던 곳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석조(보물 194호)이다. 이 석조는 사비기 백제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부여현 관아 동헌 앞에 놓여 있었다. 사찰 입구에 놓여 있던 손을 씻고 샘물을 받아 먹던 석조와는 형태나 용도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工형 받침 위에 둥근 꽃봉오리가 형태를 하고 있는데 장식은 없지만 풍만하면서 깔끔한 곡선미를 보여 주고 있다. 궁궐 내 연꽃을 기르던 석련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처를 모시는 사찰처럼 성역화된 당시 궁궐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던 유물로 생각된다.

석조(石槽)는 물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 큰 돌을 넓게 파고 물을 받아 사용하도록 만든 일종의 돌그릇으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이 사용되었다. 카톨릭 성당이나 이슬람 사원을 출입하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수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불교와 함께 사찰을 구성하는 요소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석조는 단단한 화강석을 파서 만든 큰 구조물로 그 재료의 견고성 등으로 인해서 삼국시대 이후 만들어진 많은 석조들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불국사 석조는 지금도 물을 담아두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석조(보물). 사비기 백제 왕궁터인 관북리유적지에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이다. ‘工’ 자 형태의 받침돌 위에 물을 담아두는 석조를 올려 놓고 있다. 샘물을 담아두는 사찰 석조와는 달리 연꽃을 키우던 석련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국립부여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부여 석조.

OLYMPUS DIGITAL CAMERA이 석조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사적).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부여 동헌 마당에 놓여 있었다.

부여 석조, 보물 194호, 부여 관북리 추정 왕궁터
이 석조는 왕궁에서 연꽃을 심어 그 꽃을 즐겼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것으로, 工자형 받침 위에 둥근 꽃봉오리 형태의 석조가 올려져 있다. 본래 이 석조가 있었던 장소는 백제의 왕궁터로 전해지고 있어 당시 왕궁에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형태가 풍만하면서도 깔끔한 곡선으로 처리되어, 백제인의 간결하고 소박한 미적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조의 표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세로줄을 새기고 그 사이에 글을 새겨 넣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보인다. 글은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했다는 내용으로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국보 9호)의 1층 탑몸돌에 새긴 것과 같은 것이다. (부여박물관, 2012년)

<출처>

  1. 문화재청
  2. 부여박물관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4. 두산백과

부여 백제문화단지, 능산리사지 사찰을 재현한 능사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능사(陵寺)이다. 능사는 능산리 절터(사적 434호)에 있던 사찰을 건물터를 기준으로 원래의 사찰과 거의 1:1로 재현해 놓고 있다. 건물의 형태는 원래 것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지는 알 수 없지만, 기존에 출토된 탑이나 남아 있는 석탑, 일본 사찰에 남아 있는 백제의 건축양식을 참조하여 재현하고 있다. 사찰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목탑과 금당이 일렬로 배치된 1탑1금당식 백제 사찰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체험공간이 되고 있다. 옆에 있는 관북리 유적 건물터 등을 참조하여 옛모습을 상상하여 재현한 백제왕궁과는 달리 능사는 원래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능산리사지(사적 434호)는 능산리고분군과 백제 수도 사비성을 둘러싸고 있던 부여나성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발굴.조사를 통해 절터가 확인되었다. 절터는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축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전형적이니 백제의 1탑1금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절터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287호)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함(국보288호)를 비롯하여 중국으로 부터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류, 문서에 해당하는 많은 목간들, 건축자재인 수막새와 암막새, 벼루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능산리사지(사적 434호) 절터를 기준으로 재현해 놓은 능사. 삼국시대 백제 사찰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SANYO DIGITAL CAMERA부여 능산리사지(사적 434호). 백제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는 사찰로 능산리고분군과 부여 나성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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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산리사지 건물배치도. 이곳에 재현해 놓은 능사는 이 사찰 건물터와 거의 1:1로 복원해 놓고 있다.

능사(陵寺)
능사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백제 왕실의 사찰로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발굴된 유적의 원형과 같이 1:1로 이곳에 재현하여 건물 사이의 간경, 기둥과 기둥사이의 간격 등을 동일하게 하였다. 능사의 재현을 위하여 부여읍 동남리에서 출토된 금동탑편의 하앙양식과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 익산미륵사지 석탑 등을 참고하였다. 능사의 가람배치는 백제시대 대표적 배치로 중문-탑-금당-강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능사는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사찰입구에서 5층목탑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능사 앞에 재현해 놓은 연못. 백제 절터에 주로 볼 수 있는 연못의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 앞에서 본 능사. 목탑의 웅장함이 돋보인다. 궁궐처럼 출입문 양쪽에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통문이라는 현판을 걸어 놓고 있는 능사 중문.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사찰의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금강역사가 출입문 양쪽에 세워져 있다. 이후의 사찰들과는 달리 금강역사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개방된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중문 양쪽 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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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사 오층목탑.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나 목탑터의 규모 등을 고려해 볼 때 오층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앞.뒤에 출입문을 두고 있다. 건물의 지붕을 바치는 공포, 주심포 계열의 방식으로 주심포 하앙식방식이라고 하며, 일본 호류사의 양식을 참조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중문에서 본 목탑 1층. 중문을 들어서면 5층목탑이 보이는데, 앞면 3칸으로 멀리서는 보는 목탑의 웅장함보다는 건물이 작다는 느낌을 준다. 삼국시대에는 오늘날 불교와는 달리 신앙의 중심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목탑이 중심이었는데, 이 곳 능사도 목탑이 사찰의 중심이라는 느낌을 준다. 목탑은 사람이 들어가서 활동하는 건물이라기 보다는 사리를 모시는 탑의 성격이 강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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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는 용무늬를 그려놓은 굵은 기둥인 심주를 볼 수 있다. 심주의 초석인 심초석 아래에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한 사리함을 묻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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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탑 심초석 부근에서 출토된 석조사리감(국보 288호). 이 사리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공양구로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을 위해 능사를 창건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567년 백제 창왕 대 세운 목탑을 재현한 곳이다. 능사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백제 왕실의 사찰로, 부여 동남리에서 출토된 금동탑편과 일본 호류지 오층 목탑에 보이는 하앙식 구조로 재현하였다. 화강석 가구식 이중기단에 5층 건물과 상륜부로 이루진 이 목탑의 높이는 건물 29 m, 상륜부 9 m, 전체 38 m에 이른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을 모시는 금당. 앞면 5칸, 옆면 3칸의 건물로 일본에 남아 있는 백제 건축양식을 참조하여 만든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금당 내부. 서산마애삼존불상처럼 동시대에 유행했던 삼존불상을 재현해 놓고 있다. 목재로 조각한 목조불상으로 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보살입상이 세워져 있다. 불단 앞에는 공양구로서 백제금동대향로가 놓여져 있다.

여래좌상(Seated Buddha)은 통통한 얼굴에 긴장이 풀린 자연스러운 자세, 대좌 밑으로 부드럽게 늘어진 옷주름, 선정인의 손 모습은 부여 군수리 절터 출토 납석조여래좌상에서 보이는 백제불상의 특징이다. 보살입상(좌)은 미소진 부드러운 얼굴표정, 세 갈래로 갈라진 머리장식, 밑이 뾰족한 넓적한 목걸이, 어깨에 고정한 둥근 장식과 무릎부분에서 교차된 천의 그리고 시무외인.여원인의 손모습이 특징이다. 6세기에 유행한 백제 보살상의 보편적인 특징으로 군수리 절터 출토 금동보살입상에서 볼 수 있다. 보살입상(우)은 가슴 앞에서 두 손을 아래, 위로 하여 둥근 보주를 마주잡은 보살상으로 서산마애삼존불에서도 볼 수 있다. 삼국 중에서는 백제에서만 보이는 특징이며 중국의 남조, 일본 비조시대에서도 제작되어 당시 문화의 유입경로를 유추할 수 있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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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 향로는 구성은 용모양을 하고 있는 받침, 연꽃잎을 형상화한 몸통과 신선이 사는 박산을 표현한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실 의례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금동대향로. 금동대향로는 능산리 절터 서쪽의 한 구덩에서 발견되었다. 향로는 용모양의 하단과 몸체, 뚜껑 등 3부분이 주물로 제작되었다. 국보 287호로 높이 64cm, 무게 11.8kg이나 되는 대형 향로이다. 중국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았지만 창의성과 조형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받침, 몸통, 뚜껑 등 3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연꽃무늬와 신선 등을 새겨 넣어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백제인의 이상적 세계를 반영한 걸작이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금당 뒷편에 위치한 강당처럼 보이는 건물. 앞면 8칸의 상당히 큰 건물로 자효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일반사찰의 강당과는 달리 성왕을 위한 사당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에 있는 부용각이라는 건물.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다른 부속건물에 비해서 건물의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일반사찰의 강당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 편에 있는 건물. 공방 건물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공방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공방 옆쪽에 있는 창고처럼 생긴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공방 뒷편에도 창고처럼 생긴 건물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능사.

<출처>

  1. 백제문화단지
  2. 국립부여박물관
  3. 문화재청

부여 백제문화단지, 백제 왕궁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사비기 백제 왕궁이다. 재현해 놓은 백제왕궁은 정전에 해당하는 중궁과 동궁,서궁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배치 등은 부소산성 아래 관북리 유적(사적 428호)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건물터와 후대 궁궐 건물 배치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건축물의 양식은 백제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 나라의 동대사 금당 건물의 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여 관북리유적(사적428호)은 백제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과정을 통해 대형 전각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연못, 우물터, 기와로 만든 배수관 등이 확인되었다. 연못터에서는 백제시대의 기와 및 토기편, 목간, 짚신, 금동제귀걸이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한 백제의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진흙을 다져 포장한 도로와 왕실에 필요한 철기, 금속제품을 만들던 공방과 창고 등의 건물터도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백제 왕궁. 정전에 해당하는 중궁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문(文)에 관한 집무를 보던 동궁이, 서쪽에 군사와 관련된 집무를 보던 서궁이 배치되어 있다. 당시 절터나 후대 궁궐에서 볼 수 있는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백제문화단지에 재현해 놓은 옛 사비성의 정문이다. 삼국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치미가 눈에 띄는 앞면 5칸의 2층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정문을 들어서면 정전에 해당하는 중궁 출입문이 보인다. 출입문은 앞면 5칸의 2층 건물이며, 양쪽에 회랑건물로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동궁 출입문과 회랑.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 서궁 출입문과 회랑

OLYMPUS DIGITAL CAMERA왕궁 정전에 해당하는 천정전. 앞면 7칸의 2층 건물이다. 조선시대 궁궐과는 달리 가운데 3칸은 판문으로, 양쪽에 창살이 있는 창문이 있다. 봉정사 극락전과 일본 나라 동대사 금당에서 볼 수 있는 건축양식이다. 지붕에는 치마로 장식하여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다.

사비궁 중궁(Central Palace), 백제 사비시기의 중궁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정전인 천정전은 국가의 큰 정사를 하늘에 고하여 결정했다는 천정대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 곳 중궁의 정전은 왕의 즉위 의레, 신년 행사 등 각종 국가 의식이 거행되고,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왕궁 내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고려시대 이후에 볼수 있는 주심포, 다포계, 익공계와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데, 주심포 계열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일본 나라 동대사 금당 건축양식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정전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 일본 나라의 동대사 금당이 비슷한 형태의 출입문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나무 창살이 있는 창문.

OLYMPUS DIGITAL CAMERA백제 건축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려진 일본 나라 동대사 금당. 삼국시대 금당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회랑으로 둘러져 있는 정전 앞 마당. 경복궁 정전 영역과 비슷하며 삼국시대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공간배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회랑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군사와 관련된 업무를 보는 편전에 해당하는 공간인 서궁 앞쪽에 인덕전, 뒷편에 무덕전이 자리잡고 있다.

 

정전이 있는 중궁 서쪽편에는 무반에 관련된 업무를 보던 서궁이 자리잡고 있다. 서궁(West Palace)은 정전과 외전으로 구성되었다. 정전인 무덕전은 서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무관에 관한 집무공간으로서 무는 서쪽을 의미한다. 외전인 인덕전으로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영물인 기린의 덕을 의미한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서궁 외전에 해당하는 인덕전, 앞면 5칸의 단층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인덕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는 일정적인 업무공간인 무덕전이 자리잡고 있다. 앞면 7칸의 큰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궁은 독립된 공간으로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에는 문반과 관련된 업무를 보는 공간인 동궁이 자리잡고 있다. 왕궁에서 일상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동궁(East Palace)은 정전과 외전으로 구성되었다. 정전인 문사전은 동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주로 문관에 관한 집무공간으로서 문사전의 문은 동쪽을 의미한다. 외전은 연영전으로 신하들의 집무공간이며 천하의 인재를 맞이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백제문화단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동궁 외전에 해당하는 연영전.

OLYMPUS DIGITAL CAMERA연영전 내부. 신하들과 일상적인 회의를 하는 공간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문사전은 동궁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로 왕이 평소 집무를 보는 공간이다. 동중, 중궁과 마찬가지로 앞면 7칸의 단층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내부에는 닫집이 있은 어좌가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궁 회랑.

OLYMPUS DIGITAL CAMERA동궁 뒷편 회랑. 생활공간과 연결되는 출입문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왕궁 뒷편 언덕에 세워진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관북리 유적(사적 428호) 대형건물터. 왕궁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이다.

<출처>

  1. 문화재청
  2. 부여박물관
  3. 백제문화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