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범종

공주 갑사 동종(보물),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범종

충남 공주시 계룡산 갑사에 남아 있는 동종(보물)이다. 높이 131 cm, 입지름 91 cm 규모의 범종이다. 꼭대기에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음통이 없으며, 종을 매다는 용뉴에는 2마리의 용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종의 어깨에는 꽃무늬를, 그 아래에는 연꽃무늬와 글자를 새겼다. 몸통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4곳 두었으며, 그 사이에는 지장보살이 표현되어 있다. 조선중기 선조 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몸통에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이래 전통적인 범종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음통이 없는 등 조선시대 범종의 특징도 같이 가지고 있다. 제작연대가 확실하며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형태나 기능에 손상이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갑사(甲寺)는 공주 계룡산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의상대사와 관련된 화엄십찰에 속하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현재의 갑사는 원래 위치에서 약간 옮겨진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 때 이곳 출신 영규대사가 의병장으로 큰 역할을 하면서 국가로부터 인정받아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내에는 삼신불괘불탱(국보), 철당간(보물), 승탑(보물), 동종(보물) 등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
공주 갑사 동종(보물). 높이 131 cm 규모의 범종으로 통일신라 이래로 유지되어 온 한국종의 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종을 매다는 용뉴에는 2마리의 용이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통일신라 범종과는 달리 음이 울려퍼지는 음통을 두지 않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종의 윗부분에는 물결모양으로 꽃무늬를 둘렀으며 그 아래 두줄의 띠에는 연꽃무늬와 범어 글자를 새겼다. 그 아래에는 9개의 연뢰가 있는 4각형의 연곽을 두었다. 한국종의 전통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요소이다.

SANYO DIGITAL CAMERA아래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4곳 있으며, 신라 범종과는 달리 그 사이에 비천상 대신 지장보살이 표현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
다른 방향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갑사 동종이 있는 종각.

SANYO DIGITAL CAMERA공주 계룡산 갑사. 통일신라 화엄십찰 중 한 곳으로 계룡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공주 갑사 동종, 보물 478호,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이 종은 1584년(선조 17)에 만든 종이다. 신라 이래의 전통적인 범종 양식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소리가 울려 나가는 용통이 없는 등 조선시대의 특징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용뉴에 새겨진 사실적인 용의 모습, 어깨부분에 붙여 놓은 9개의 유곽, 연꽃 형상의 당좌 등은 신라 이래 한국 범종의 전통적인 요소이다. 당좌 사이에는 비천상 대신 지장보살이 조각되어 있다. 종의 몸체에 만든 시기를 표시한 명문이 있어 우리나라 종의 변천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되며, “갑사사(甲士寺)”라는 표기가 있어 절의 이름이 지금과 달랐던 것도 알 수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화성 용주사 동종(국보), 신라 종 양식을 따르는 고려초기 범종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龍珠寺) 경내에 있는 동종(국보)이다.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범종이다. 신라종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동종이다. 고리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힘차게 종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종의 몸체에는 비천상과 삼존상을 두고 있는데 성덕대왕 신종과 비슷하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이라 새긴 글이 있으나, 형태나 문양 등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았다. 높이 1.44m 이며 외형에서 보이는 조형미나 겉면에 새겨진 문양의 예술성이 뛰어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화성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지키는 원찰로 사실상 정조가 창건한 사찰이다. 여주 신륵사, 서울 봉은사와 함께 왕릉을 지키는 대표적인 원찰이다. 원래 사찰이 있던 곳으로 보이지만, 사찰 건물들은 정조 때 지은 거들이다. 특히 이 곳에서 부모의 은혜를 강조한 『부모은중경』 목판이 제작,보관하고 있어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다. 수원화성에서 현릉원으로 가는 능행길에 위치하고 있어 정조가 현릉원을 행차했을 때 잠시 들렀던 곳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
<화성 용주사 동종(국보 120호)>

신라종 양식을 따르는 고려초에 만들어진 범종이다. 겉면에 통일신라 문성왕 때 조성되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는 후대에 새겨진 것으로 제작수법 등으로 볼 때 고려 초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성 용주사 동종, 국보 120호,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신라 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범종으로, 높이1.44m, 입지름 0.87m, 무게 1.5톤이다. 종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 주는 용통이 있고,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두 발로 힘차게 몸을 들어 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어깨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있는데, 아래 위 서로 어긋나게 반원을 그리고 그 안에 꽃과 구슬무늬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 이 띠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과 한 면이 붙어 있다. 4곳의 유곽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연꽃 모양의 유두가 있는데, 남아 있는 것은 1곳 뿐이다. 종의 몸체 앞뒤에는 비천상을, 좌우에는 삼존상(三尊像)을 두었고,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두었다. 비천상과 삼존상은 모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옷자락이 가볍게 날리고 있다. 종 입구 부분의 넓은 띠는 구슬무늬로 테두리를 하고 어깨띠와는 다르게 덩굴무늬를 두고 있어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종 몸체에 통일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조성된 것이라는 후대에 새긴 글이 있으나, 종의 형태와 문양이 그 시대와 일치되지 않아 학계에서는 고려 전기의 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통에 약간 금이 가고 유두가 부서진 것 외에는 보존 상태가 좋으며, 조각한 수법이 뛰어나 고려 종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SANYO DIGITAL CAMERA종을 걸어두는고리인 용뉴와 음통인 용통. 꿈틀거리는 용이 종을 들어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종의 몸체에 앞.뒤에 새겨진 삼존상.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몸체 좌.우에 새겨진 비천상.

SANYO DIGITAL CAMERA종을 때리는 부분인 당좌. 아래에는 구슬무늬로 띠를 두르고 덩굴무늬로 장식한 넓은 띠로 장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종을 보관하는  범종각. 주불전인 대웅보전 서쪽편에 있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여주 출토 동종 (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여주 출토 동종(보물)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몸통에 있는 위패모의 틀 안에 ‘청녕4년(淸寧四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청녕(靑寧)4년은 요(遙)의 연호로 1098년(고려 문종12)을 말한다. 길이 84㎝로 크지 않은편이다. 용뉴는 용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신라종과 마찬가지로 몸통의 위.아래에 띠를 두르고 있으며, 4곳에 유곽을 두고 있다. 몸통에는 흥천사종과 달리 4곳에 비천상을 새겨 놓고 있는데 그 중 2구는 보관을 쓴 보살상을 하고 있다.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01<여주 출토 동종(고려, 1058년, 보물)>

경기도 여주에서 우연히 발견된 범종으로 고려시대 종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범종이다. 흥천사종과 마찬가지로 위패형 틀 안에 조성내력을 적은 글을  새겨놓고 있다.  요(遙)의 연호인 청녕(靑寧)4년이 적혀 있다.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02<조성 내력을 적은 글>

특별히 임금님의 수명이 하늘처럼 길기를 바라오며 쇠로 종 1구를 주조하였으니, 무게는 150근이다. 청년 4년 무술년 5월 어느날 적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용통과 종을 매다는 용뉴. 용이 등을 구부리고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위쪽을 두르고 있는 띠와 유곽. 유곽 내부에 모란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06<종을 메다는 용뉴>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07<반대편에서 본 모습>

천흥사종(국보)과는 달리 불상과 비천상을 번갈아 조각하였다. 종을 치는 당좌 역시 몸체에 불보살상과 교대로 4곳에 배치하였다.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03<보관을 쓴 보살상을 하고 있는 비천상.>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08<불상>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05<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

종의 상단과 하단, 돌출된 모양의 연뢰를 둘러싼 사각형에는 가늘게 구슬모양의 띠를 돌리고, 그 안네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연뢰는 꽃으로 표현하였다.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04<종의 상단부 연뢰>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09<종의 하단 장식>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10
<정면에서 본 모습>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11
<왼쪽에서 본 모습>

여주 출토 동종(보물) 20210512_12
<오른쪽에서 본 모습>

“청년 4년”이 새겨진 종, 보물,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 발견, 1058년(고려 문종12년)
경기도 여주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종이다. “청녕’은 요 도종(재위 1055~1101년)이 사용했던 연호로, 청녕 4년은 고려 문종 12년인 1058년이다. 고려의 종은 11세기 무렵부터 위패 모양의 명문 틀이 나타나고, 종의 윗부분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꽃잎 모양의 대(帶)가 표현되며,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의 개수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종은 신라의 종에서 고려의 종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종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이 종은 당시 고려의 국왕인 문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천안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국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聖居山天興寺銘銅鍾, 국보)이다. 국내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범종 중 가장 큰 규모로 높이 1.33m이다. 꿈틀거리는 용모양이 새겨진 종의 고리인 용뉴는 살아 움직이는 듯하며, 소리울림을 도와주는 대나무 모양의 용통(甬筒)이 있다. 몸통 위쪽 띠 아래에는 4곳에 사각형의 유곽이 있는데, 돌출된 연꽃 모양의 종유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유곽 아래에는 연꽃모양의 당좌를 2개 두고 있으며, 당좌 사이에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유곽 아래 위패형 틀을 설치하고, 범종을 조성한 내력을 적은 글을 새겨 놓고 있다. 요나라 통화(統和) 28년인 1010년 성거산 천흥사에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이는 신라범종에서 볼 수 없는 고려시대 범종만의 특징이다.

천안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은 신라종의 특징을 잘 계승한 것으로 성덕대왕 신종, 상원사 동종과 더불어 한국종을 대표하는 범종이다. 그 크기나 제작 수법, 조형미 등에 있어서 수준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천흥사가 폐사되면서 남한산성을로 옮겨 시간을 알리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국보)>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범종인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국보)이다. 높이 1.33m로 국내에 현존하는 고려 범종 중 가장 크다. 신라종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고려범종 특유의 양식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흥사종이라고 불리는 이종은 천안 성거산 천흥사에 있던 범종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에서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된 종이다. 서울의 보신각 종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안 성거산 천흥사 절터.  고려시대에 천흥사라는 큰 사찰이 있었던 이곳에는 오층석탑과 당간지주만 남아 이곳 절터임을 말해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한산성 행궁 앞 종루. 조선후기에 이곳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종으로 사용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종을 매달아 주는 고리역할을 하는 용뉴. 용이 고개를 들고 있고,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신라종과는 다른 양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소리울림을 도와주는 용통(甬筒). 대나무 모양을 하고 있으며, 겉면에는 연꽃무늬로 장식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몸통 위쪽 띠와 사각형의 유곽. 연꽃과 보상화무늬로 장식하고 있으며, 유곽 안에는 9개의 연꽃 모양 유두를 새겼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 유곽.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 띠.

OLYMPUS DIGITAL CAMERA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 당좌.

OLYMPUS DIGITAL CAMERA당좌 사이에 새겨진 비천상.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 비천상.

OLYMPUS DIGITAL CAMERA유곽 아래 새겨진 위패형 틀에. 요나라 통화(統和) 28년인 1010년 성거산 천흥사에서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
2010년 전시된 모습.

천흥사 종(「天興寺」銘靑銅鐘, 고려 1010년, 국보280호)
통일신라의 동종을 계승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종이다. 정면을 응시하고 보주를 물고 있는 용과 제작연대를 새긴 위패 모양의 틀은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새로운 양식적 요소이다. 위패모양의 틀에는 요나라 통화(統和) 28년인 1010년 성거산 천흥사에서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중앙박물관
4. 문화재청

[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 불교공예, 범음구인 범종과 쇠북

범음구(梵音具)는 불교공예에서 범음(梵音)을 만들어 내는 도구이다. 범음은 부처의 말씀이자. 부처와 보살에게 바치는 모든 소리를 뜻한다. 대표적인 범은구로는 큰 종인 범종, 큰 북인 법고,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목어, 구름 모양의 판인 은판이 있으며 이들 네 가지 범음구를 불교사물(佛敎四物)이라 한다. 범종은 전생과 지옥의 중생을, 법고는 땅 위의 짐승을, 목어는 물속의 중생을, 은판은 허공을 날아다니는 모든 날짐승을 구제하기 위해 울린다고 알려져 있다. 범음구 중 금속을 이용해서 만든 것으로는 사찰에 걸려 있던 범종과 쇠북을 있다. 

범음구(梵音具)
범음은 부처의 말씀이자 부처와 보살에게 바치는 모든 소리를 뜻하며, 범음을 만들어내는 도구를 범음구라 한다. 범음구에는 종을 비롯해 큰 북인 법고(法鼓),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목어(木魚), 구름 모양의 운판(雲版)이 있는데 이를 불교사물(佛敎四物)이라 한다. 이외에도 불교의식이나 공양 때 치는 쇠북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범음구란 범음을 만들어내는 도구를 말한다. 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에서는 우리나라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유물인 범종과 쇠북이 전시되어 있다.

범종(梵鍾)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사용되었던 고동기(古銅器)의 종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여지며, 불교의 전래와 함께 서역문화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범종은 학명으로 ‘한국종’이라 불릴 정도로 독자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으며, 규모와 장식하고 있는 조각에서 보여주는 예술성 등을 볼 때 신라금관과 함께 우리나라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범종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상원사 동종으로 752년에 제작되었으며, 성덕대왕신종은 높이 364㎝로 가장 큰 규모를 하고 있다.

범종은 상원사 동종처럼 주로 오래된 사찰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지만, 흥천사 종처럼 폐사지에 있던 것을 성문의 종각에 걸어두고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범종으로 통일신라에서 만든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상원사 동종, 고려시대에 만든 흥천사종, 용주사 범종, 조선후기 유명한 승려이자 장인인 사비인구가 만든 범종 등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남한산성에 걸어두었던 흥천사 종(국보280호)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범종들이 소장.전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흥사 종(국보280호). 신라종을 계승한 고려초에 만들어진 범종이다. 위패모양의 틀을 비롯하여 고려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범종이다. 원래 천안 성거산 천흥사에 있던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 종루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천흥사 종(「天興寺」銘靑銅鐘, 고려 1010년, 국보280호)
통일신라의 동종을 계승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종이다. 정면을 응시하고 보주를 물고 있는 용과 제작연대를 새긴 위패 모양의 틀은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새로운 양식적 요소이다. 위패모양의 틀에는 요나라 통화(統和) 28년인 1010년 성거산 천흥사에서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
‘청녕4년(淸寧四年)’이 새겨진 종 (고려, 1058년, 보물1166호). 경기도 여주에서 우연히 발견된 범종으로 고려시대 종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범종이다. 종의 몸통에 있는 위패모양 안에 ‘창녕4년’이라고 적혀 있어 고려 문종(1058년)에 만들어진 종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SANYO DIGITAL CAMERA몸통 아랫부분에 위패모양의 틀안에 글씨를 새겨놓고 있다.

여주 출토 동종 (驪州 出土 銅鍾), 보물1166호,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중앙박물관)
고려시대 만들어진 종으로 1967년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에서 고철 수집 때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크기는 길이 84㎝, 입지름 55㎝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는 한마리의 용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며, 소리의 울림을 돕는 용통은 6단으로 구분되어 있다. 용통의 각 부분마다 덩굴무늬를 양각하였다. 종의 상단과 하단, 9개의 돌출된 모양의 유두를 둘러싼 사각형의 유곽에는 가늘게 연이은 구슬 모양의 띠를 돌리고, 그 내부에 모란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유곽내의 유두는 꽃으로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종 몸통에 있는 비천상은 천흥사종(국보 제280호)과는 달리 4곳에 있으며, 특히 대칭대는 곳에 보관을 쓴 2구의 보살상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 역시 종 몸통에 보살상과 교대로 4곳에 있다. 종 몸통 아랫부분에는 제작 연대와 중량을 알 수 있는 글이 새겨 있어, 고려 문종 12년(1058)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동종(靑銅鐘, 고려13세기), 용의 몸통을 하고 있는 용뉴와 음통, 유두, 비천상 등 한국종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는 범종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종(靑銅鐘, 고려13세기, 황해도 평산군 월봉리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동종(靑銅鐘, 고려 13세기, 경기도 연천군 원당리 출토)

OLYMPUS DIGITAL CAMERA동종(靑銅鐘, 고려 13세기)

쇠북은 청동으로 만든 북으로 금고(金鼓) 또는 반자(飯子)라고도 불린다. 범종이 아침저녁 예불이나 중요한 의식을 갖는데 사용하는데 비해 쇠북은 단순히 공양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을 모으는 사용된다. 소리는 범종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고음을 낸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함통6년(865년)”이 새겨진 시공사 쇠북이 있다. 쇠북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계속 만들어졌으며 조선후기 만들어진 것은 지금도 사찰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쇠북은 청동으로 만든 북으로 금구 또는 반자라고도 한다. 사찰에서 공양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드을 모을떄 사용한다. 북의 옆면이나 뒷면에는 북의 제작연대와 걸려 있던 사찰 이름,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북을 만들며, 빌었던 소망이 새겨진 것이 많다. <출처: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시공사 쇠북(통일신라, 865년). 이 쇠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는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형태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쇠북으로 옆면에 새겨진 ‘함통육세을유’라는 글귀를 통해 865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북은 쇠북의 초기 형태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원형의 테두리 외에는 어떠한 무늬도 없이 간결하다. <출처: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쇠북과 쇠북걸이 (조선, 18~19세기). 공주 갑사에 있는 쇠북과 쇠북걸이 복제품으로 쇠북의 용도와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형태이다.

쇠북은 청동으로 만든 북으로, 절에서 처마 밑이나 간단한 걸이에 걸어두고 공양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사용한다. 쇠북의 옆면이나 뒷면에는 북이 만들어진 연도와 걸려있던 사찰 이름,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북을 만들어 빌었던 소망이 새겨지기도 한다. 이 걸이는 한국의 쇠북걸이 중 가장 크고 화려한 형태로 해태 받침 위에 청룡과 황룡이 여의주를 다투고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경암사 쇠북(「瓊巖寺」銘靑銅盤子, 고려 1073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성연대와 경암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겉면에 장식이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성연대가 새겨진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경암사(瓊巖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1073년 경암사라는 사찰에 공양한 쇠북이다. 이 쇠북에는 금고외 또 다른 이름인 반자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중앙에는 연꽃무늬가 있고, 테두리에는 구름무늬가 있는 등 통일신라 쇠북에 비해 무늬가 늘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쇠북(靑銅金鼓, 고려). 고려후기에 들어가면서 표면 전체를 장식으로 메우고 있다.

앞뒷면이 모두 막히고 옆면에 구멍이 뚫린 특수한 형태의 쇠북이다. 중앙에는 연꽃무늬가 있고, 테두리에는 여의두 무늬가 둘려져 있다. 이처럼 쇠북 무늬는 고려 후기로 가면서 점차 표면 전체를 가득 메우는 경향을 띤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중앙박물관
4.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