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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인도.동남아시실] 베트남의 문화

국립중앙박물관 3층 인도.동남아시아실에는 동남아시아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 크지 않은 규모로 마련되어 있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상당히 큰 국가이다. 중앙박물관에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고대문화인 동선문화를 대표하는 청동북을 전시하고 있다. 베트남의 동선문화는 기원전 4세기 이후에 형성되었던 청동기문화로 청동북을 비롯하여 화려한 청동기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베트남의 고대문화
베트남의 고대 문화 중에서 잘 알려진 것은 동선 문화이다. 이는 기원전 4세기~기원후2세기 무렵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 형성된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청동기문화이다. 그 명칭은 1924년 발견된 홍강델타 하류의 타인호아 성에 위치한 동선 유적에서 유래한 것이다. 동선문화의 주거 유적이나 무덤에서는 주로 청동기, 무기, 장신구 등의 유물이 발견되엇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청동 유물에는 중국 전국시대 이래 양 지역의 문화교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제사를 위한 의례용 용기로 알려져 있는 청동 북은 동선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그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중앙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북, 동선문화, 기원전 5세기~기원후 1세기. 베트남을 대표하는 고대유물인 청동북이다. 기형이나 무늬 등이 섬세하다. 이 지역의 뛰어난 청동기 문화를 보여준다.

동선 문화의 청동유물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의례용 청동 북이다. 베트남 이외에 인근 동남아시아 지역과 중국 남부에서도 발견되지만, 베트남에서 발견된 예는 연대가 빠르며 정교하게 장식된 것이 많다. 원형의 관과 관통모양의 울림통의 두 부분으로 나뉘며, 울림통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위판 한가운데는 태양으로 보이는 별 모양의 문양이 있고, 그 주위에는 새 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2017)

중앙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다양한 베트남 도자기류들을 전시하고 있다. 베트남 도자기는 우리나라와는 약간 다른 느낌을 주고 있으며, 특히 동물의 모습을 형상화한 도자기를 많이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중요한 도자기 생산지였던 경덕진요를 비롯하여 장강 이남의 도자기 생산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청화백자의 수준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의 도자기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시유 도자를 제작하기 시작한 곳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강했던 10세기까지는 주로 중국의 회유도기(灰釉陶器)를 모방 제작했다. 초기 독립왕조 중 하나인 리왕조부터는 독자적으로 도자기를 생산햇다. 쩐(Tran, 1225~1400년) 왕조 시기에는 도자기의 유형이 훨씬 다양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기존의 백자, 청자 이외에 녹유(綠釉)가 등장하고 철회(鐵灰), 청화(靑花), 백유갈채(白釉褐彩) 등의 장식 기법이 활용되었다. 당시 베트남 도자기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 대량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수출 도자 중 다수를 차지하는 청화백자는 16세기에 중국의 양식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수준이 절정에 이르렀다. 또한 16~17세기에는 화려한 첩화문(貼花紋)으로 장식된 대형 꽃병과 향로가 다수 제작되었다. 사원 봉헌용으로 만들어진 도자기는 제작연대와 봉헌자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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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병, 레왕조, 15세기, 베트남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국 경덕진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청화백자이다.

베트남은 11세기경부터 중국 도자문화의 영향으로 이를 모방한 도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14~15세기에는 원대 청화백자를 본뜬 도자기가 유행하였다. 이 청화백자 병은 5부분으로 구획하고, 표면 전체에 걸쳐 초화무늬, 새무늬, 사슴무늬, 모란당초무늬 등을 청화안료로 그려 넣는 등 중국 원대 청화백자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출처: 중앙박물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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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무늬 항아리, 리왕조 시기, 11~12세기, 표면에 표현된 코끼리무늬로 인해 동남아시아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다. 몸체에 크게 표현된 코끼리는 단순화되었지만 긴코, 엄니, 귀와 같은 특징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그 주변에는 꽃 등의 식물문양이 자유분방하게 배치되어 있다.

면은 백색 유약을 바른 후 문양을 새기고 그 위에 다시 갈색유약을 칠했다. 이러한 백유갈채의 도자기는 베트남의 특징적인 유형으로, 12~15세기에 크게 유행했다. (출처: 중앙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녹유완, 리왕조시기, 13~14세기. 중국 요주요의 계통의 녹유완이다. 안쪽에 팔보, 국화, 모란무늬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흑유주자, 리왕조, 12~14세기.  구부러진 짧은 주구와 작은 손잡이가 달린 주자는 쩐 왕조 시기의 대표적인 기형이다. 앵무새 머리나 동물머리 모양의 형태에서 단순화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 주자, 레왕조,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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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 팔각병, 레왕조, 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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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 모란무늬 팔각호, 레왕조, 15세기. 백자를 만들었던 조선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이다.

우리나라에서 백자가 전성기를 이루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만든 것으로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우리나라나 중국 것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청화백자 새무늬병(15세기 후반), 옥호춘이라 불리는 기형으로 14~15세기 베트남에서 크게 유행했다. 4개의 문양대로 표면을 장식하고 있는데, 중앙부분에는 회화적으로 표현된 새가 배치되어 있다. 굽 안바닥은 산화철을 얇게 칠해 초콜릿색을 띤다. (출처: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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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 새무늬병, 레왕조, 15세기

옥호춘이라  불리는 기형으로 14~15세기 베트남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4개의 문양대로 표현을 장식하고 있는데, 중앙 부분에는 회화적으로 표현된 새가 배치되어 있다. 굽 안바닥은 산화철을 얇게 칠해 초콜릿색을 띤다. (중앙박물관, 2010년)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 쌍조형 호, 레왕조, 15세기. 두마리의 원앙이 표현된 재미있는 모양의 도자기이다.

두마리의 원앙이 하나의 항아리에 표현된 기형이다. 항아리의 한쪽에는 입체적으로 표현된 2마리의 새머리가 있고, 그 반대쪽은 꼬리가 표현되어 있다. 항아리의 몸통에는 새의 날개와 깃털을 그려 넣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청화백자 상형 그릇, 코끼리.소.거북이, 레왕조, 15세기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중앙박물관특별전, 베트남 고대문명전] 남비엣국, 동선문화의 전승

1. 청동북, 동선문화 상징2. 홍강 유역 청동기문화3. 동더우, 고문문화4.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 5. 동선문화 사람들6. 사후인문화7. 남비엣국, 동선문화의 전승

남비엣(Nam Viet, 南越)은 기원전 203~111년에 중국 남부 지방에서 베트남 북부 지방에 존재했던 왕국이다. 남비엣은 진나라 멸망후 중국 남부 남해군(南海郡) 수장이 계림군(桂林郡) 등 인근 지역을 통합하면서 건국된 중국 지방 왕조이다. 남비엣국은 기원전 179년 어울락(Au Lac, 甌雒, 기원전 257~179년)을 멸망시키면서 베트남 북부지역을 장악하였다. 이 시기에 베트남에는 중국의 제도와 문물, 생산기술 등이 전해졌다. 남비엣국은 한나라 무제에 의해 기원전 111년에 멸망되었으며, 한나라 군현이 설치되었다. 이는 고조선이 위만세력과 한무제에 멸망했던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후 응오(Ngo)왕조가 세워진 983년까지 북부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남북조시대같은 혼란기에도 중국 남조나 지방세력의 영향권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꼴로아 성과 남비엣국(南越)
꼴로아 성은 삼중 토성(土城)으로 이루어진 어울락 국의 수도로, 현존하는 베트남 최대 규모의 성곽이다. 기원전 179년 어울락 국이 멸망하고, 이 지역에 군현(郡縣)이 설치되어 남비엤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설화와 같은 ‘영광금조신노(靈光金爪神弩)’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적과 사랑에 빠진 어울락 국의 공주가 나라를 지키는 신의 무기인 쇠뇌를 없애버리자 남비엣의 군사를 막지 못하고 멸망하였다는 내용이다. 남비엣이 기원전 111년 중국 한 무제에 의해 무너지자 베트남에도 한의 군현이 설치되어 중국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화살촉(콜로아 성, 하노이,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에 청동으로 화살촉을 만드는 지역은 많지 않은데 동선문화 지역에서는 구리가 풍부해서 청동기로 화살촉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꼴로아 성에서 출토된 청동 화살촉이다. 꼴로아 성 내의 공방에서 대량 출토되었으며, 쇠뇌와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삼각형의 촉신과 화살대에 꽂히는 자루가 하나로 주조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2.쇠뇌(꼴로아 성, 하노이, 동선문화 BC 500~0년,청동)>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에서도 발굴되고 있는 형태이다.

전설로 전하는 신이 내린 무기 ‘영광금조신노’ 쇠뇌이다. 꼴로아 성에서 출토되었으며, 방아쇠 부분에 해당한다. 당시 청동 화살촉을 자동으로 발사하는 매우 뛰어난 신무기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동선 문화의 전승
베트남은 중국 한 군현이 설치된 기원전 111년부터 응오(Ngo)왕조를 세우고 독립한 938년까지 천년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중국은 베트남 문화를 중국화하기 위한 정책과 가혹한 수탈로 베트남 사람들의 많은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베트남 사람들은 식민지 기간 동안에도 전통 문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계승한다. 동선의 전통 문화와 중국적 양식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청동기가 제작되고, 전통 문양이 도기 제작에 이용되기도 한다. 독립 후 다이비엣(Dai Viet)시대에는 동선의 청동 북도 새로운 형식으로 전승되어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동선 문화의 전통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응오(Ngo, 吳):938~964년 왕조
*다이비엣(Dai Viet, 大越):1010~1125년

OLYMPUS DIGITAL CAMERA<1. 합(1~2세기,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 잔(1~2세기,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3. 단추(1~3세기,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쟁반(1~3세기, 청동). 동선문화 청동북과 비슷한 무늬를 하고 있다.>

다리가 세 개가 달려 있는 청동 쟁반이다. 쟁반의 윗면에 청동 북 고면(鼓面)의 문양이 변형되어 반영되었다. 원형 문양대에 용과 새의 그림이 음각으로 그려져 있고 톱니문이 표현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쟁반(2~3세기, 토제). 비교적 이른 시기에 도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원형의 도제(陶製) 쟁반이다. 동선 청동 북의 고면과 같은 원형의 문양대가 구획되었고, 그 안에 물고기 3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음각선으로 새겨져 있다. 중국의 제도솥이 전래되어 성립된 베트남의 도기 생산 기술과 동선 문화의 전통이 결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대야(1~3세기, 청동)>

. 청동북과 비슷한 형태의 무늬를 하고 있다. 중국 청동제기의 영향을 받았지만, 베트남적인 문양 등이 잘 남아 있다.

중국식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는 청동 유물이다. 바깥은 동선의 청동 북과 같이 태양문이 있고, 안쪽에는 중국식 문양인 물고기 한 쌍이 그려져 있다. 동선 문화와 중국 양식이 결합된 새로운 전승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대야(1~3세기, 청동)>

동선의 청동 북 모양이지만 북이 아닌 다른 기능을 가진 그릇이다. 태양문과 그 주위에 돌려 있는 문양대의 형식이 동선 북의 고면과 똑같다. 동선의 전통과 새로운 양식이 결합된 모습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중앙박물관특별전, 베트남 고대문명전] 사후인문화, 철기시대 베트남 중.남부

1. 청동북, 동선문화 상징2. 홍강 유역 청동기문화3. 동더우, 고문문화4.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 5. 동선문화 사람들6. 사후인문화7. 남비엣국, 동선문화의 전승

사후인(Sa Huynh, 기원전 500 ~ 기원후 100년)문화는베트남 중부 꽝빈(Quang Binh)성에서부터 남부 메콩강 델타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번성했던 철기시대 문화이다. 사후인문화 사람들은 해을을 따라 농사짓기에 좋은 평양지대에 살았다. 중국과 교류가 많았던 북부 동선문화와는 달리 사후인문화는 인도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후인 문화 사람들은 북부 동선문화와는 달리 철기를 많이 만들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도끼, 칼, 창 등의 철기와 연옥 등으로 만든 동물머리 장식 귀걸이를 비롯한 장신구 등 이 있다. 또한 장례풍습으로는 화장을 하여 독무덤에 넣어 뚜껑을 덮여 매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독무덤 주위에는 그릇을 깨뜨려 놓기도 하고, 생활 용기를 함께 매장하였다. 토기를 사용한 독무덤은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사후인 문화, 해양 교역망을 형성하다.
사후인(Sa Huynh)문화는 기원전 500~기원후 100년경 베트남 중부의 해안과 도서 지역에서 번성했던 청동기~철기시대의 문화이다. 베트남 중부의 꽝빈(Quang Binh)성에서부터 남쪽으로 꽝나이(Quang Nai)성까지 해안을 따라 넓게 분포한다. 사람들은 농경에 유리한 평야지대에 주로 거주했으며, 사후인 문화는 해안에 위치한 지리적인 특징으로 동남아시아와 인도 등의 영향을 받았다. 사후인 문화는 독특한 장례법이 특징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해서 독무덤에 넣어 뚜껑을 덮고 세워서 매장한다. 밀집된 공동묘지 대부분은 해안 사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으로 사용된 항아리는 지역에 따른 형태의 차이가 있다. 독무덤 주위에 제기와 같은 그릇들을 일부러 깨뜨리는 풍습도 확인되었다. 부장품으로 사용된 금속유물은 청동기보다 철기가 많았다. 이러한 특징은 같은 시기 북부의 문화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후인 사람들은 2세기 말 참파(Cham pa)국을 세운 참족의 선조이다. 참파국은 동남아시아의 강국이었던 캄보디아의 앙코르 왕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 지역은 15세기경 베트남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사후인문화를 대표하는 토기들>

토기제작기술이 비교적 뛰어나고 수준이 높은 편이다. 도기로 발전하는 전단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후인 장신구
사후인의 대표적인 장신구는 연옥과 마노, 유리로 만들어진 동물머리 장식 귀걸이와 꼭지 장식 귀걸이이다. 사후인의 귀걸이는 이 지역뿐만 아니라 남부의 동나이 지여과 멀리 홍콩, 타이, 타이완, 캄보디아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도 출토되었다. 이것은 당시 연안 항로를 이용하여 사후인 사람들이 구축한 교역망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편 원석이 나지 않는 사후인 지역에서 유리, 홍옥, 마노, 감람석, 석류석으로 된 보석 장신구를 대량 제작했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 수입한 원석을 가공하여 장식품을 만든 후 재수출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꼭지장식 귀걸이(사후인문화 BC 500~0년, 돌.유리)>

OLYMPUS DIGITAL CAMERA<2.귀걸이(바이꼬이,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돌.수정)>

OLYMPUS DIGITAL CAMERA<3.목걸이(사후인문화 BC 500~0년, 유리.마노)>

OLYMPUS DIGITAL CAMERA<4.동물머리모양 귀걸이(사후인문화 BC 500~0년, 유리.연옥)>

OLYMPUS DIGITAL CAMERA<5.팔찌(사후인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사후인 문화 귀걸이 분포도.>

베트남 중부와 남부지방의 청동기.철기시대 문화인 사후인 문화를 대표하는 장신구들이 출토된 지역들이다. 해안을 따라서 넓은 지역에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후인 문화 사람들의 매장방식인 독무덤.>

토기로 만든 독에 시신을 묻는 방식으로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독무덤(왼쪽, 사후인문화, 동꾸응, 빈딘성), 독무덤(오른쪽, 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P6252780-horz-2015_10_07<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OLYMPUS DIGITAL CAMERA<토기(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 이 토기들은 3호 독무덤과 함께 묻혀 있었던 부장용 토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독무덤(전북 익산 석천리 유적, 청동기시대, 토제)>

한국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중의 하나로서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던 독(甕)을 사용하여 죽은 사람의 시신이나 뼈를 묻는 무덤양식이다. 토기의 크기나 형태로 볼 때 유아 전용 무덤이거나 성인의 시체가 썩은 후 뼈만 남은 유골을 안치하기 위한 무덤으로 보인다. 익산 석천리 무덤에서 발견된 독널은 골아가리무늬가 새겨진 토기를 사용하고 있고, 돌로 뚜껑을 덮었으며 세워서 수직으로 안치하였다. 베트남 사후인 문화의 독무덤과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무덤으로서 세워져 안치하는 방식이 비교가 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OLYMPUS DIGITAL CAMERA<독무덤(사후인문화, 출토지미상).>

OLYMPUS DIGITAL CAMERA<토기(사후인문화, 바이코이, 하틴성)>

독무덤과 함께 묻혀 있었던 부장용 토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OLYMPUS DIGITAL CAMERA <독무덤(사후인문화, 바이꼬이, 하틴성)>

, 왼쪽 독무덤 안에는 작은 항아리가 들어있었다. 이 항아리는 화장용 뼈단지이다.

바이꼬이 유적의 특징
바이꼬이(Bai Coi)유적은 베트남 중북부의 대표적인 청동기~철기시대의 유적이다. 동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된 하틴(Ha Tinh)성의 해안 사구에 위치하며, 그동안은 동선 문화권의 남단에 포함된 지역으로 분류되어 왔다.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과 베트남 국립역사박물관이 공동으로 발굴조사 한 결과 이 유적은 사후인 문화에 속하지만 동선문화의 특징도 가지고 있는 문화 접점으로서의 요소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바이꼬이 유적은 사후인의 귀걸이가 출토된 독무덤(甕棺墓)과 동선 팔찌를 채워 시신을 매장한 움무덤(土壙墓)이 혼재한 상태로 조사되었다. 또한 무덤안에서 출토된 청동 유물을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표면에 붙어 있는 직물 조각을 발견하였다. 분석 결과 마직물로 확인 되었으며, 이를 통해 2000년 전 사후인 사람들이 직조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도끼 (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팔찌 (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3.직물(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마)>

OLYMPUS DIGITAL CAMERA<4.어망추(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5.삽날과 창(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문화 BC 500~0년, 철)>

사후인 사람들의 토기제작
사후인 사람들은 일찍부터 토기를 사용하여 무덤을 만들었다. 독무덤 주위에는 그릇을 깨뜨려 놓기도 하고, 생활 용기를 함께 매장하였다. 이처럼 사후인 지역에서 토기제작 기술이 발달한 원인은 토기를 좋아하는 문화적 풍토에서 시작되었다. 독무덤에 사용되는 대형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형을 만들고 굽는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독무덤에 사용된 토기를 통해 사후인 사람들이 좋은 점토를 선택할 줄 알았으며, 회전판을 이용하여 정교한 토기들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토기의 표면은 파상문이나 음각선을 이용하여 기하학적 문양과 점열문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한편 표면에 흑색칠을 하여 매끈하게 마연하는 등 장식에 많은 정성을 들여 제작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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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솥(바일로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사후인 문화의 토제 찜솥이다. 외형은 목이 긴 항아리처럼 생겼으나 토기 안쪽에 몸체와 목의 경계에 전이 달려 있다. 그 위에 성긴 발을 깔고 수증기로 음식을 쪄서 조리하는 용기이다. 생활용뿐만 아니라 부장용으로도 출토된다.

OLYMPUS DIGITAL CAMERA<1.뚜껑이 있는 단지(바일로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2.단지(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3.솥(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1.항아리(바이꼬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2.굽다리단지(바일로이, 하틴성, 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3.뚜껑이 있는 단지(티우도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4.새모양 토기(사후인 문화 BC 500~0년, 토제)>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중앙박물관특별전, 베트남 고대문명전] 청동기 제작기술의 발달, 동더우.고문문화

1. 청동북, 동선문화 상징2. 홍강 유역 청동기문화3. 동더우, 고문문화4.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 5. 동선문화 사람들6. 사후인문화7. 남비엣국, 동선문화의 전승

동더우(Dong Dau, 기원전 1,500~1,000년)문화는 베트남 최초의 선사문화인 풍응우옌(Phung Nguyen, 기원전 2,000~1,500년)을 잇는 선사문화로 본격적인 청동기시대로 발전했던 시기이다. 동더우문화는 베트남 북부 홍강유역의 빈푸.하노이 등 여러 지역에 분포하면 풍응우옌 문화의 분포지역과 비슷하다. 이 시기에는 거푸집을 이용한 청동기 제작기술을 보여주여 주고 있으며, 청동도끼, 청동제 창, 솥 모양의 청동기 등이 나타나고 있다. 석기로는 간돌도끼를 비롯한 생활용품과 팔찌같은 장신구 등이, 토제품으로 가락바퀴와 동물상 등이 출토되고 있다.

고문(Go Mun, 1000~500년)문화 시기에는 매우 발달된 청동기 제작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에는 도끼, 보습, 화살촉 등 다양한 청동기들이 만들어졌다. 석기를 주로 사용하고 청동기는 지배층의 권위를 보여주는 의식용이나 위세품 역할을 했던 한반도나 중국과는 달리 베트남에서는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청동기 도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구리가 풍부하게 생산되었기때문에 청동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 제작기술의 발달, 동더우.고문문화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동더우(Dong Dau) 문화부터이다. 동더우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 도끼들을 통해 이 시기에 이르러 청동 주물기술이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 제작 기술은 고문(Go Mun)사람들에 의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청동기 제작이 다양해지면서 그동안 석기로 만들어졌던 여러 도구들이 청동기로 대체되어 석기의 수량은 점차 줄게 되었다. 팔찌와 귀걸이 등 석재 장신구들은 여전히 석기로 제작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동더우, 고문문화 유물>

베트남 청동기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원전 1500~500년 사이의 동더우.고문문화 유물들이다. 동더우와 고문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문화와 관련된 유물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동더우문화 BC 1500~1000,토제)>

한반도의 무늬없는 토기처럼 밑이 둥글고 무늬가 많지 않다.

동더우 문화의 토기 항아리이다. 밑이 둥글고 목이 길다. 동체에 두드림 무늬를 시문한 후 목 부분은 매끈하게 물손질로 정면하였다. 이러한 기형은 풍응우옌 문화에서부터 유행해 온 토기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단지(동더우, 빈푹성, 동더우문화 BC 1500~1000,토제).>

동더우 문화의 토기단지이다. 입이 넓고, 높이가 낮아 솥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이 섞인 점토를 사용하였고, 표면에 두드림 무늬를 시문하였다.<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황소상(동더우, 빈푹성, 동더우문화 BC 1500~1000,토제)>

OLYMPUS DIGITAL CAMERA<2.칼(동더우, 빈푹성, 동더우문화 BC 1500~1000,토제)>

OLYMPUS DIGITAL CAMERA<3.도끼(동더우, 빈푹성, 동더우문화 BC 1500~1000, 돌), 4.끌(동더우, 빈푹성, 동더우문화 BC 1500~1000,돌)>

 청동기가 많이 사용된 지역이기는 하지만 돌로 만든 도구도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

OLYMPUS DIGITAL CAMERA<5.어망추(비엣찌, 푸토성.티우두옹, 타인호아성, 동더우문화 BC 1500~1000,토제)>

OLYMPUS DIGITAL CAMERA<6.팔찌(밍탄, 빈푹성, 동더우문화 BC 1500~1000,돌)>

돌로 만든 장신구로 한반도에서 보기 힘든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7,귀걸이(동더우, 빈푹성, 동더우문화 BC 1500~1000,돌)>

OLYMPUS DIGITAL CAMERA<1.낚시바늘(고문, 푸토성, 고문문화 BC 1000~500,청동).>

청동기가 실생활에 많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철기시대 이전까지는 동물뼈 등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2.화살촉(고문, 푸토성, 고문문화 BC 1000~500,청동), 5.청동슬래그(동더우, 빈푹성, 고문문화 BC 1500~1000,청동)>

청동 슬래그는 광물을 제련할 때 금속을 제거하고 남은 찌꺼기이다. 청동제품은 아니지만 청동 제련과 관련된 중요한 실물 자료이다. 동더우 문화에서 본격적인 청동생산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3.끌(고문, 푸토성, 고문문화 BC 1000~500,청동), 4.도끼(고문, 푸토성, 고문문화 BC 1000~500,청동)>

OLYMPUS DIGITAL CAMERA<6.도가니(고문문화 BC 1000~500,토제)>

도가니는 쇠붙이를 녹일 때 사용하는 오목한 그릇이다. 고온에서 가열되기 때문에 토제나 돌로 두껍게 만들어진다. 청동의 도가니로 사용된 이 도가니는 그릇의 안쪽에 청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청동기 제작과 관련된 도구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7.거푸집(동선문화 BC 500~0년, 고문문화 BC 1000~500년, 돌)>

고문시기에는 많은 거푸짐이 출토되어 이때부터 활발하게 청동기 생산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문의 거푸집과 동선의 거푸집은 날부분이 투겁보다 넓은 형태의 발 모양 청동 도끼이 조형들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8.토기편(동더우, 빈푹성, 고문문화 BC 1000~500년)>

동더우 유적은 청동기 문화층이 풍응우엔부터 동선까지 모두 확인되는 장기 취락 유적이다. 이 유적의 고문 문화층에서 확인된 토기편이다. 구면부가 크게 외빈하고, 원형 접열문 등의 인화 무늬 장식이 된 전형적인 고문 토기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중앙박물관특별전, 베트남 고대문명전]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과 농업의 발달

1. 청동북, 동선문화 상징2. 홍강 유역 청동기문화3. 동더우, 고문문화4.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 5. 동선문화 사람들6. 사후인문화7. 남비엣국, 동선문화의 전승

베트남의 고대 문화 중에서 잘 알려진 동선(Dong Son) 문화는 기원전 500~0년 사이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 형성된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청동기문화이다. 명칭은 1924년 발견된 홍강델타 하류의 타인호아 성에 위치한 동선 유적에서 유래한 것이다. 동선문화의 주거 유적이나 무덤에서는 주로 청동기, 무기, 장신구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에 해당하지만 의례에 사용한 제기를 비롯하여 청동기 제작기술이 매우 발달되었으며 제사를 위한 의례용 용기로 알려져 있는 청동 북은 동선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동선문화 시기의 청동기는 상당히 세련되고 발달된 모습을 보이는데 동선문화 사람들이 만들었던 청동기들은 타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중국 남부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동선문화 사람은 의례용 제기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청동제 도구들을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석기와 철기를 많이 사용하고 청동기는 의례용으로 제작했던 한반도와는 달리 베트남에서 구리가 풍부하게 생산되었던 보인다.

베트남 최초의 국가는 반랑국(Van Lang,文郞)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기원 3000년 경에 국가를 세웠다는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다. 실제 반랑국은 동선문화와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7세기에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랑국은 뛰어난 청동 주조기술을 바탕으로 홍강 유역의 비옥한 농토에 기반한 쌀 경작 중심의 경제였다. 반랑국은 기원전 3세기에는 툭판(Thuc Phan)에 의해 멸망하고 어울락(Au Lac)국이 세워졌다. 어울락국은 기원전 111년에 전한의 무제의 의해 멸망하고 이후 1000년간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받는다.

국가의 성립
비옥한 평야지대인 홍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당시 부족들 사이에 많은 전쟁이 있었다. 동선 사람들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청동기로 창, 화살, 검 등의 공격용 무기와 가슴보호구와 같은 방어용 무기를 만들었다. 이 홍강 유역에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반랑(Van Lang)국이 세워진다. 당시 반랑국은 15개의 부족으로 구성된 부족연맹체 사회로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처럼 흥브엉(Hung Vuong)의 건국신화가 전해지고있다. 하지만 반랑국은 당시 홍강 삼각주 일대에서 백월족(百越族)의 세력을 규합한 툭판(Thuc Phan)에 의해 기원전 257년 멸망하고, 툭판은 어울락(Au Lac)국을 세웠다. <출처:중앙박물관>

* 반랑국(Van Lang, 文郞): BC 690~BC 257년, 홍브엉(Hung Vuong, 雄王):반랑국의 시조
* 어울락국(Au Lac, 甌雒):BCE 257~179년, 툭판(Thuc Phan, 蜀泮):어울락 국의 왕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기 동선문화시기 국가의 성립을 보여주는 각종 무기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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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의 청동검을 우리나라의 비파형동검이나 한국형동검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칼의 몸통과 손잡이를 함께 주조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청동 검과 제작 방식이 다르다. 칼날의 형태가 독특하며, 날의 양면과 손잡이 부분에 다양한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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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손잡이가 투조로 장식된 칼이다. 날의 형태가 버들잎 모양이며, 중앙에 문양이 있다. 이 칼도 손잡이를 함께 주조한 일체형으로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꺽창(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유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표면에 세밀하게 장식을 하고 있다.

꺽창은 전투에서 마차나 말을 탄 적을 끌어내리기 위해 고안된 무기이다. 동선 시기에 실제 사용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표면에 동물이 새겨져 있고 투조(透彫)로 장식되어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2.창(동선, 타안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창(동선, 타안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창의 길이가 비교적 짧은 편이고, 거푸집에 용액을 부어 만드는 주조(鑄造)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자루가 끼워지는 공부의 끝이 ‘-’자형인 것과 제비꼬리처럼 갈라진 연미형(燕尾形)으로 구분된다.

OLYMPUS DIGITAL CAMERA<3.화살촉(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투겁이 달려 있는 청동 화살촉이다. 촉의 머리는 삼각형으로 꼬리처럼 미늘이 달려 있다. 투겁에는 화살대에 고정시키기 위한 고정용 구멍이 뚫려있다. 동선 시기 제작된 장거리 공격용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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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사람모양 손잡이 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사람모양의 장식이 있는 손칼로 발달된 청동기 제작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동선문화의 대표적인 장식 손칼이다. 사람 모양 손잡이가 부착된 형태로, 당시 동선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남자상은 윗옷을 입지 않고, 바지인 ‘코(Kho)’를 입었다. 여자상은 치마와 저고리인 ‘엠(Yem)’을 입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5.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 문화의 청동 손칼이다. 구멍을 뚫어 장식하는 투조기법으로 장식된 것과 장식없이 실용성이 강조된 두가지 형식이 있다. 날과 손잡이가 연결된 일체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6.가슴걸이(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청동판으로 제작된 사각형 가슴걸이는 전투에서 가슴부분을 보호해 주는 방어용 무기이다. 형태에 따라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으로 구분되며, 가장자리에 끈을 연결하여 고정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베트남 동선문화를 대표하는 청동기 형태인 발모양 도끼이다. 동선시기에 가장 유행한 청동도끼는 발모양 도끼이다. 발모양 도끼는 버선모양의 날과 투겁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날의 형태에 따라 삼각형, 사각형, 곡선형 등이 있다. 날의 겉면에는 사람, 사슴, 악어 등의 동물 그림을 새겨 넣었다.

OLYMPUS DIGITAL CAMERA<1.도끼(동선,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발모양도끼에 새겨진 장식>

OLYMPUS DIGITAL CAMERA<1.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3.끌(타우두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4.집게(푸쑤엔, 하노이시,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5.못(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6.가래(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홍강 평야와 농경
홍강 유역에는 1,500㎢에 달하는 너른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동선 사람들은 농경에 필요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비옥한 홍 강 삼각주로 이주하며 저습지 개발을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홍수와 바닷물이 농지로 유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제방을 쌓았으며, 수로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고, 배수시설도 설치하였다. 동선 사람들은 소로 논을 갈았으며, 볍씨 뿌리는 시기를 조절하고 관개(灌漑)도 하였다. 또한 겨울에 파종하여 봄에 수확하는 겨울벼가 보급되면서 2모작도 가능해졌다. 벼농사가 발달함에 따라 홍강 삼각주 주변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기원후 2년 시행된 군현의 인구조사에서 홍강과 마강 유역의 호수는 128,174戶.912,250인으로 조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동선문화 사람들의 농경생활을 보여주는 농기구와 토기들>

OLYMPUS DIGITAL CAMERA<쟁깃날(티우도용,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 사람들이 실생활에서도 많이 청동기를 많이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로 한반도에서는 철로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청동기시대에도 청동기는 의례용 기기로 사용되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지역에서는 구리가 상당히 많이 생산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쟁깃날(티우도용,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농경사회의 동선 사람들은 청동으로 다양한 농기구를 만들었다. 둥근 대형 쟁깃날은 소가 끄는 용도이고, 소형의 마름모꼴과 원형의 쟁깃날은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이다. 청동쟁기와 황소.물소를 이용한 우경이 보급되면서 농업생산성이 증가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소형 낫(고문, 푸토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석기로 만든 한반도의 반달모양 돌칼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도구이다. 한반도에서는 철기시대 초기까지 석기를 사용했던데 반해 청동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조개 모양으로 생긴 소형 낫은 우리나라의 반월형 돌칼과 같이 칼 등을 한 손에 움켜쥐고 이상을 자르는 수확용이다. 손에 움켜쥐기 쉽도록 단면에 곡률이 있으며, 톱니와 같은 날이 형성되었다. 끈을 묶을 수 있는 구멍도 뚫려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낫(고문, 푸토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에서 처음 나타난 형식이다. 자루와 연결되는 공부(鞏部)가 함께 주조되어 자루를 끼워 넣은 방식이다. 날 중앙에 돌출된 등날을 만들어 날의 강도를 높였다. 동선 시기 청동 낫 사용은 보편화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동선토기, 두옹코(Duong Co)토기
동선토기는 그릇을 빚을 때 사용하는 점토가 매우 엄선되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입자가 고운 흙을 사용하여 기벽이 단단하고, 물이 잘 투과되지 않았다. 그릇의 입은 넓게 벌어지고, 둥근 동체로 이어지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토기표면의 색조는 붉은 색을 내거나 회색을 띠며, 새끼줄무늬와 바둑판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당시 두옹(Duon)천 주변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홍강 유역의 동선 토기를 대표하였지만, 이후 중국 제도(製陶)기술이 베트남에 유입되고 도기(陶器)의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동선토기의 제작 전통은 도자기로 전화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새모양토기(해남 군곡리 BC 100년, 토제), 2.새모양토기(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3.항아리(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4.단지(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5.사발(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6.항아리(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