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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화진포 이기붕 별장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에 있는 이기붕 별장이다. 화진포호수와 바다의 경계를 만드는 모래톱에 형성된 울창한 소나무 숲에 자리잡고 있다. 일제강점기 외국인 선교사들이 별장으로 지은 건물로 주변에 있는 별장 건물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 간부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한국전쟁 이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의 부인이 개인별장으로 사용했었다고 한다. 한동한 폐쇄되어 사용하지 않다가 1999년 이후 다시 수리하여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은 화진포 호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지어졌다. 건물은 단층으로 방과 거실의 구분이 거의 없으며, 외벽은 계곡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몽돌로 마감하고 있다. 내부는 침실, 책상과 응접실이 놓여져 있는 집무실로 구성되어 있다. 별장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달리 소박하면서도 편한 느낌을 주는 별장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진포호수와 동해바다가 경계를 이루는 모래톱이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한 이기붕 별장.

OLYMPUS DIGITAL CAMERA강원도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로 외벽을 마감하고 있다. 크지 않은 단층건물로 소박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호수 방향으로 출입문과 창문을 두고 있어서 호수의 경관을 즐기기 좋게 만들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앞면에 비해 폭을 상당히 좁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뒤쪽에서 본 모습. 바닷바람을 피하기 위해 창문을 작게 만들었으며, 출입문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을 열면 손님을 맞는 접견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넓은 거실은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침실

OLYMPUS DIGITAL CAMERA화진포호수 출구까지 형성된 모래톱을 따라 도로가 이어진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 뒷편에서 보이는 화진포해수욕장. 멀리 화진포호수 출구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 뒷편 언덕에는 한국전쟁 이전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별장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승만 별장에서 보이는 모습.

이기붕 부통령별장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로써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휴양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휴전이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의 부인 박마리아 여사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하다가 폐쇄되었으나 1999년 7월 역사안보전시관으로 개수하여 관람객에게 전시하고 있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1년)

<출처>

  1. 고성군청

고성 화진포 김일성 별장, 북한 김일성 가족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에 있는 ‘화진포의 성’이다. 화진포 해안에서 조망이 제일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해방후 북한정부가 귀빈휴양소로 운영하면서 김일성 가족이 묵었다고 해서 김일성 별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독일 건축가 베베가 예배당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다. 옥상 전망대에 올라서면 동해바다, 화진포 해안과 호수와 멀리 백두대간의 높은 봉우리들이 빼어난 경치를 만들어 낸다.

건물은 계곡에서 볼 수 있는 몽돌로 외벽을 마감한 2층 건물로 기념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건물 1층에는 통일관련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2층에 북한이 휴양소로 운영하던 시절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외벽에서 주는 느낌이 유럽의 성채처럼 보여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웠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고성 화진포 해안 언덕에 있는 ‘화진포의 성’. 중세 유럽의 망루같은 외형에다 자연석을 쌓아서 성채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이 세워져 있는 언덕. 높지는 않지만 주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 아래에서 본 모습. 울창한 소나무숲이 별장을 둘러싸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장 입구. 2층 건물로 1층은 전시실로, 2층은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집무실로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거실.

OLYMPUS DIGITAL CAMERA망루처럼 주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넓은 거실.

OLYMPUS DIGITAL CAMERA거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화진포 해안.

OLYMPUS DIGITAL CAMERA한쪽편으로는 이승만 별장과 금강산에서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 봉우리들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옥상 전망대.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이승만 별장에서 보이는 모습.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
일본 강정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켰으며, 독일 건축가인 H.Weber가 1938년 건립하여 예배당으로 이용하였으며, 해안 절벽 위 송림속에 우아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워졌으며, 1948년 이후에는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고, 당시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묵고간 적이 있어 지금까지 “김일성 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 “화진포의 성은” 당초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1938년 독일 망명 건축가 베베가 건축하였으며, 한국전쟁 중 훼손된 건물을 2005년 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안내문, 고성군청, 2011년)

<출처>

  1. 고성군청

서울 부암동 석파정(石坡亭) 별당, 구한말 중국의 영향을 받아 벽돌로 지은 별당건물

흥선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 건물 중 세검정 삼거리로 옮겨지 중국풍의 별당 건물이다. 건물은 가운데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는 ‘ㄱ’자형 건물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정면의 툇마루에 설치된 난간을 설치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앞면 4칸 규모의 작은 건물로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외벽은 구운벽돌로 쌓았으며, 벽 중앙에 원형과 반원형의 창을 내었다. 이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중국풍 건축의 특징이다.

석파정은 원래 김흥근이라는 사람이 소유했던 별장을 고종 즉위 후 흥선대원군이 강제로 빼았다시피하였던 곳으로 한양도성의 북소문인 창의문 밖 바위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북악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구한말 대표적인 정자건축물이다. 석파정에는 전망좋은 언덕에 별채가 따로 있는데, 국왕을 위해 비워두고 흥선대원군 자신은 이 별당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석파정 별당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 집은 원래 서예가 손재형이 1958년에 지은 집으로 지금은 석파랑이라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세검정 삼거리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석파정 별당 전경. 원래 부암동 석파정에 속해 있던 건물을 1958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앞면 4칸에 ‘ㄱ’자형을 하고 있는 크지 않은 규모의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예가 손재형이 이 곳으로 옮기면서 나름 운치있는 장소에 별당을 세워놓고 있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별당건물에서 내려다 보는 세검정 일대의 경치가 아름다웠을 것 같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대청마루 2칸을 두고 양쪽에 온돌을 배치하였다. 흥선대원군은 난초를 그릴때 대청마루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퇴마루에는 구한말 저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난간을 설치하여 화려하게 꾸몄으며, 건물 양쪽 벽면은 벽돌을 이용해서 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흥선대원군이 손님을 접견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던 건너방은 앞면으로  돌출시켰고 방을 넓게 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측면은 구운벽돌을 쌓아서 만들었으며, 우리나라 전통한옥에서는 볼 수 없는 중국풍의 건축양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중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둥근 형태의 창문.

OLYMPUS DIGITAL CAMERA별당 한편에 쌓아 놓은 옛날 기와조각들

OLYMPUS DIGITAL CAMERA석파랑 별당에서 내려다 본 세검정 주변 경치. 지금은 상명대학교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지만, 이곳은 옛날 산수화에도 많이 등장하는 서울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던 명소였다.

OLYMPUS DIGITAL CAMERA19세기에 유숙이라는 사람이 세검정일대 풍경을 그린 산수화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파정 별당에서 내려다 본 서예가 손재형이 지은 집 정원. 이 저택 바깥쪽으로는 지금은 도로가 있지만 원래는 개천이 흘렀을 던 것 같다. 이 집은 1958년에 지은 한옥이지만 전통한옥과 일제강점기 개량한옥의 특징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지금은 석파랑이라는 식당으로 운영하는 이집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세검정 계곡 방향에 위치한 사랑채는  ’-'자형 건물로 가운데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건물은 외관상 한옥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부엌이나 화장실 등을 실내에 두고 있는 일제강점기 개량한옥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정원에 심어진 대나무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와는 별도로 가족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누마루를 두고 있다. 구한말 대저택 안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마당과 별당으로은 오르는 길. 자연지형을 잘 활용하여 정원을 운치있게 꾸며놓았다.

석파정 별당, 19세기중엽 건립, 1958년 이전
이 집은 19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으로 창의문 밖에 있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인 석파정 별당이다. 1958년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이곳에 자신의 집을 지으면서 이 별당을 뒤뜰에 옮겨 지었다. 이 집은 중앙에 대청이 있고 양 옆에 방이 있는 ‘ㄱ’자형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흥선대원군이 앞쪽으로 돌출된 큰 방을 사용하였고, 난초를 그릴 때에만 대청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손님을 접대할 때는 건넌방을 사용하였다. 지붕이 끝나는 측면에는 붉은 벽돌로 벽을 세웠고, 벽 중앙에 원형과 반원형의 창을 내었다. 이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중국풍 건축의 특징이다. 정면의 툇마루에 설치된 난간은 상류사회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 집은 규모는 작지만, 훌륭한 기술을 지닌 장인들이 고급 자재를 사용하여 지은 조선 후기 상류사회의 대표적인 별장 건축물이다. <출처:서울시청>

서울 부암동 석파정(石坡亭), 흥선대원군이 인왕산 계곡에 세웠던 별장

인왕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흥선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石坡亭)이다. 정자로 지어진 별장 건물이지만 사랑채, 안채, 별채, 정자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살림집이다. 건물은 구한말 한옥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중국 건축의 영향을 받아 벽돌을 여러곳에 사용하고 있다. 특히 홍지문부근으로 옮겨진 중국풍의 별채와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정자는 기존 한옥과는 달리 벽돌, 금속 등의 건축자재를 이용하여 중국풍으로 지어졌다. 인왕산 계곡에 터를 잡고 있어 숲이 울창하고 경치가 아름다우면서도 경복궁과 서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 석파정 사랑채 마루에 앉으면 인왕산과 북악산을 연결하는 한양도성과 한양의 진산인 북악산 봉우리, 인왕산 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석파정은 인왕산 계곡 숲을 정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석파정의 내력을 말해주는 바위에 새겨진 각자들이 남아 있다.

구한말 세도정치를 이끌었던 안동김씨 일원으로 철종때 영의정까지 올랐던 김흥근이 세운 별장으로 흥선대원군은 집권한 뒤 반강제적으로 헌납받아 자신의 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고종도 이 곳에 가끔 머물렀기때문에 행궁의 역할도 했던 건물이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서 가장 가까운 경치좋은 숲과 계곡이 많았던 부암동에 자리잡은 이 별장은 주변에 인왕산, 북악산 등 바위산이 많아 흥선대원군은 ‘삼계동(三溪洞) 정자’라 불리웠던 것을 ‘석파(石坡)’라 이름집고 자신의 호도 ‘석파’로 바꾸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흥선대원군의 후손들이 소유하다가 한국전쟁 후 고아원.병원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사설미술관인 서울미술관 후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얼마전까지 미술관 건축때문에 일반에 공개되지 않다가 최근에 완공되어 미술관을 통해 석파정을 둘러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울 종로구 부암동 인왕산 계곡에 위치한 구한말 흥선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 세도가였던 김흥근의 별장을 강제로 헌납받아 별장으로 사용하였으며, 고종도 방문하여 쉬었던 행궁 역할도 했던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흥선대원군 후손들이 소유해 왔으며 한국전쟁 이후 어린이집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서울미술관 후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파정 전경. 석파정은 경치좋은 인왕산 계곡에 세운 별장이지만 사랑채, 안채, 별채 등 7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 중 벽돌로 지은 중국풍 별채는 세검정 삼거리로 옮겨져 있으며, 현재의 위치에는 안채, 사랑채, 별채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파정이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인왕산 동쪽 계곡이 흘러내리는 곳으로 숲이 우거지고 주변경관이 수려하다. 석파정은 계곡 한쪽편에 터를 잡고 건물을 지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울미술관에서 본 석파정. 최근에 크게 수리한 석파정은 서울미술관을 경유해서 들어갈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는 앞년 5칸에 누마루를 두고 있는 건물이다. 구한말에 많이 볼 수 있는 사랑채 건물 형식으로  누마루에 벽돌을 이용하여 문양을 만들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이곳에 난을 그리는 등 예술활동을 하였던 유서깊은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마당에 있는 석파정과 오랜 역사를 함께 한 노송

OLYMPUS DIGITAL CAMERA앞쪽 툇마루에 걸터 앉아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툇마루에서 보이는 북악산과 한양도성. 북악산에서 자하문(창의문)을 거쳐 인왕산으로 연결되는 성벽이 보이는 위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 인왕산 봉우리

OLYMPUS DIGITAL CAMERA석파정은 경치좋은 곳에 세운 별장이지만, 일반 살림집처럼 안채를 제대로 두고 있다. 폐쇄적인 ‘ㅁ’자형 건물로 골목방향으로 창문이 있는 도심형 한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국왕의 행차에 동행한 왕비와 수행인원들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는 지금도 개방되어 있지 않으며, 석파정을 소유하고 있는 서울미술관에서 실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채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본 안채.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에서 뒷편 언덕에 세워진 별채로 들어가는 작은 협문. 벽돌로 장식한 중국풍 건축 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뒷편 언덕 전망이 좋은 곳에 세워진 별채.  고종이 석파정에 머물때 일행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6칸에 넓은 대청마루, 온돌방, 누마루를 두고 있는 건물이다. 양반들이 경치좋은 곳에 세웠던 정자와 비슷한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별채 앞에 있는 작은 곳간채

OLYMPUS DIGITAL CAMERA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벽돌로 지은 중국풍 별채 건물. 지금은 세검정 부근으로 옮겨져 있다.

삼계동 각자(三溪洞 刻字)
석파정이라는 이름은 흥선대원군이 석파정을 소유하면서 별서에 붙인 이름으로, 김홍근이 별서를 지어 이를 경영할 당시에는 삼계동정사, 삼계정, 삼계동 산정 등으로 불리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현재 석파정 사랑채 서측 후면 암반에 새겨져 남아 있는 삼계동이라는 각자와 소치 허련이 집필한 ‘소치실록’과 양의영의 ‘유북한기’ 등 일부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흥선대원군이 이곳을 소유한 후 별서의 앞산이 모두 바위이므로 자신의 호를 석파로 바꾸고 또 정자의 이름도 석파정 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출처: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 석파정의 내력을 말해주는 ‘삼계동’이라 적힌 각자가 남아 있는 바위. 석파정은 구한말 안동김씨 세도가였던 김흥근이 별장을 지었을 때는 ‘삼계정’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소수운련암 각자 (巢水雲簾岩刻字)
김흥근이 석파정을 조영하기 이전에 석파정의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석파정 초입 사랑채 맞은편에 커다란 암반이 있고, 거기에 “소수운련암 한수옹서증 우인정이시 신축세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김홍근 이전에 석파정에 대해 추정하게 한다.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으로, 한수옹(권상하, 1641~1721)이 벗 정이(조정만, 1656~1739)에게 신축(1721)년에 글을 써주다”라는 뜻의 이 글귀는 매우 운치있는 시적 표현으로 자연을 대하고 노래하는 조선시대 선비의 심성을 느끼게 해준다. 조선 숙종 때 문신인 조정만의 별서조정에 관한 기록은 따로 전해지지 않으므로 더이상 고증된 자료는 없지만, 이 암각을 통해 석파정 현재의 위치에 18세기 초 또는 그 이전부터 별서가 조성되어 경영되고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출처: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석파정 입구 바위에 글자를 새긴 ‘소서운련암 각자’.  이 글자는 김흥근이 별장을 조성하기 이전부터 사대부들의 별장 등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한다.

중국풍 정자
중국풍 정자라 불리는 이 정자는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과 중국(당시 청나라)의 건축양식이 적절히 조합되어 있다. 석파정을 조영한 김홍근이 청나라 장인을 직접 불러와 조영했다는 설이 있지만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알 수는 없다. 정자에 남아 있는 청나라풍의 문살문양과 평석교의 형태 등을 통해 건축 당시 이국 취향의 정자가 주었던 독특한 아름다움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바닥을 나무로 마감하는 한국의 전통정자와는 달리 화강암으로 바닥을 마감한 점은 건축학적으로 매우 특이하다 하겠다. <출처: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 석파정 안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풍 정자.  김흥근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중국의 영향을 받아 화강암 석재로 쌓은 기단 위에 금속재를 이용하여 지었다. 비슷한 형태의 정자를 중국 북경에서 많이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정자 아래로 흐르는 인왕산 계곡

OLYMPUS DIGITAL CAMERA중국풍 정자 안쪽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큰 바위.

OLYMPUS DIGITAL CAMERA인왕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울

서울 석파정(石坡亭),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은 조선 철종과 고종때의 중신 김흥근(1796~1870)이 조영해 별서로 사용한 근대유적으로, 인왕산 북동쪽의 바위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김흥근이 언제 석파정(당시 삼계동 정사로 통칭)을 조영하였는지에 관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부 문헌을 통해 그 시기를 대략 1837~1858년 사이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후일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집권 뒤 이를 인수하여 별서로 사용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고종이 즉위하고 대원군의 섭정이 시작된 1863년을 전후하여 흥선대원군이 석파정을 소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원군이 사랑채에서 난을 치는 등 예술적 활동을 했던 장소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의 행전이나 행궁, 즉 임시거처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채 7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던 석파정은 오늘날 안채, 사랑채, 별채와 같은 살림채와 중국풍의 정자 등 4개동이 남아 있다. 높은 자리에 위치한 별채의 구성과 별채로 진입하는 협문, 과거에 있었던 꽃담 등은 왕이 묵던 곳으로서 손색없게 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별서들 중 석파정과 같이 안채 이외에 별채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더불어 현재 남아 있는 중국풍 정자와 종로구 홍지동으로 이전되어 남아 있는 중국식 별당 역시 석파정의 독특한 특질을 잘 드러내는데, 김홍근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보았던 모습을 이곳에 재현듯하다. 석파정은 수려한 건축뿐 아니라 빼어난 산수와 계곡으로 이뤄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사랑채 서쪽 뜰에 위치한 노송은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60호로서, 유구한 세월동안 석파정과 운명을 함께 해 왔다. 흥선대원군의 사후에도 석파정은 대략 50년간 그의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어 오다가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골롬바 어린이집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민간에 이양되어 운영되어 왔다. <출처:서울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