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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대웅전(보물)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대웅전 영역 주불전인 대웅전(보물)이다. 삼층석탑과 다보탑이 있는 중심영역에서 금당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영조 때(1765년) 중건된 것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5칸 규모이다. 지붕을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는 등 조선후기 건축양식이 잘 반양되어 있다. 불국사 금당에 사용되었던 기단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대웅전영역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과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대웅전(보물>

대웅전 양쪽에 용머리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시가고 있다. 정면 어칸에는 3구의 공간포가 배치되었으며 협칸과 퇴칸에는 1구의 공간포가 배치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현판과 어간 공포>

OLYMPUS DIGITAL CAMERA<협간 다포계 공포>

대웅전 정면은 사분합꽃살문이며, 협칸과 퇴간은 쌍분합교살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정면 어간 출입문>

내부는 천정을 높게 하고 있으며 우물천장을 하고 있다. 비로전과 극락전에는 통일신라 때 조성된 금동불상을 모시고 있는데 반해 대웅전에는 유서깊은 불상은 모시고 있지 않다. 다보탑과 삼층석탑이 중심이 되는 대웅전 영역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물_제1744호_경주_불국사_대웅전(2011년_국보,보물_지정보고서)<대웅전 내부>

기단은 통일신라 때 금당을 세웠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당시 불전 건물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기단은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짜맞춘 통일신라 가구식 기단이다. 기단의 사면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양쪽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통일신라 때 금당이 세워졌던 기단부>

OLYMPUS DIGITAL CAMERA<회랑>

OLYMPUS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 대웅(大雄)은 석가모니불의 덕이 큰 것을 표현하는 덕호(德號). 681년에 창건되었다. 여러 차례의 중수 중건을 거쳐 1765년, 창건 당시의 기단 위에 중건되었다. 조선후기 불전건축의 대표작이다.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경주 불국사 가구식 석축(보물)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가구식 석축(보물)이다. 불국사는 토함서 서쪽 경사진 지형에 석축을 쌓아 부지를 조성하고 그 위에 석탑과 불전이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자하문 동쪽에서 안양문 서쪽까지 직선으로 약 92 m 정도, 극락전 회랑 서쪽 석축을 말한다. 석축은 잘다듬은 화강석 석재를 가구처럼 짜맞추고 그 안에 자연석을 채운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일부에는 화강석 석재만으로 석축을 쌓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불국사가 화재로 불타버렸을 때 남아 있던 구조물로 신라의 수준 높은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불국사 가구식 석축(보물)>

석축은 대웅전 영역과 극락전 영역 앞쪽에 연화교.칠보교와 청운교.백운교와 조화를 잘 이루면서 건축구조물로서 높은 수준의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남쪽 석축>

극락전 서쪽 회랑 아래 석축은 2층으로 쌓은 불국사 석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잘 다듬은 화강석 석재를 짜맞추고 그 안에 중간 크기의 자역석을 촘촘히 채워 넣은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극락전 서쪽 회랑 아래 석축>

극락전 영역 남쪽 석축은 석재 기둥을 2단으로 세우고 가로방향으로 석재를 연결하고 그 안쪽에 자연석을 채워 넣은 형태이다. 연화교.칠보교에는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극락전 영역 남쪽 석축>

OLYMPUS DIGITAL CAMERA<연화교와 칠보교를 구성하고 있는 석축>

OLYMPUS DIGITAL CAMERA<석재를 짜맞추어 쌓은 안양문 아래 석축>

OLYMPUS DIGITAL CAMERA<안양문 동쪽 석축>

대웅전 영역은 극락전 영역보다 높게 석축을 쌓고 있다. 석축은 아랫단에 큰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잘다듬은 화강석 석재를 가구식으로 짜맞추어 1층 석축을 쌓았다. 2층은 석재로 기둥과 보를 연결하고 그 안헤 자연석을 채워넣었다. 1층이 앞쪽으로 돌출되어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영역 남쪽 석축>

범영루 아래에는 점차형 석재를 쌓아 돌기둥을 만들었으며 그 아래에는 홍예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영루 아래 돌기둥>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영역 남쪽 석축과 청운교.백운교>

SANYO DIGITAL CAMERA<대웅전 영역 남쪽 2층 석축>

가구식 석축, 보물, 통일신라시대 8세기
불국사 가구식 석축은 대웅전과 극락전의 남.서쪽에 축조되어 있으며, 상부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남쪽 석축의 길이는 약 92 m이다. 석축은 석주 사이에 자연석을 흩어쌓은 구조이며, 대웅전 남쪽 석축의 장대석 아랫면에 보이는 그랭이기법의 범영루를 받치는 1쌍의 수미산 모양 돌기둥은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다. 장대하고 아름다운 석축으로 손꼽히며, 8세기 통일신라의 토목.건축.석조기술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5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경주 불국사 석조(보물)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경내에 있는 석조(石槽, 보물)이다. 길이 265 cm, 폭 123 cm, 높이 56 cm로 직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면서 모서리를 둥글게 곡면처리했다. 다른 석조와는 달리 내.외면에 조각이 새겨져 있고 내부 바닥면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나며 지금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돌의 재질도 우수한 것으로 보인다.

석조(石槽)는 물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 큰 돌을 넓게 파고 물을 받아 사용하도록 만든 일종의 돌그릇으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이 사용되었다. 카톨릭 성당이나 이슬람 사원을 출입하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수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불교와 함께 사찰을 구성하는 요소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불국사 석조(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앞에서 본 모습>

경주_불국사_석조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석조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석조에 물을 담는 모습>

불국사 석조(佛國寺 石槽), 보물,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1
이것은 장방형의 돌출된 물통(長方形石槽)으로 원래 위치가 어느 곳인지 확실하지 않으며 크기는 가로 265 cm, 높이 56 cm이다. 석조의 바깥면은 도드라진 띠와 안상(眼象)으로 장식되어 있고, 입구부분은 네 모서리와 장변(長邊) 중앙에서 안쪽으로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내부바닥 중앙부에 타원형 공간을 마련하고 그 장축 양쪽 둘레에 작은 연꽃을 이중으로 새기고, 양쪽 머리에는 큰 연잎 속에 연꽃을 새긴 독특한 모습이다. 내부 장벽 중앙부에 바닥의 것과 같은 연꽃 무늬를 새기고 그 양 옆으로 다시 다른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바닥 가운데에 있는 타원형을 연꽃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5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경주 석빙고(보물)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석빙고(보물)이다. 조선후가 영조 떄(1738년)에 돌로 축조하였으며 4년 뒤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봉분형태를 하고 있는데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는 길이 19 m, 너비 6 m, 높이 5.45 m 규모이다. 지붕은 아치형태를 하고 있는데 환기구를 3곳 두고 있다. 바닥에는 경사를 두어 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전국에 있는 여러 석빙고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경주 석빙고(보물)>

SANYO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월성 바깥에서 본 모습>

석빙고 출입구에 계단을 설치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입구 이앗돌에 이곳으로 옮긴 이력이 글자로 새겨져 있다. 내부에는 홍예를 5개 설치하고 그 장대석을 걸쳐 천장을 만들었다.

SANYO DIGITAL CAMERA<석빙고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석빙고 내부>

천청에는 배기구가 3곳 설치되어 있다. 그 위에 석재가 덮혀 있는데 원래 있던 것은 아니고 수리하는 과정에서 석탑 부재를 올려 놓았다.

SANYO DIGITAL CAMERA<석빙고 배기구>

경주 석빙고(慶州 石氷庫), 보물, 경북 경주시 인왕동 449-1
이 석빙고는 조선 영조 14년(1738) 월성(月城) 안에 만든 얼음 창고이다. 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길이 19 m, 너비 6 m, 높이 5.45 m의 석실(돌방)은 직사각형 으로 만들어졌는데 약 1000여 개의 돌이 쓰였고 천장 외부는 봉토의 형상이다.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천장에는 공기 구멍 셋이 있고, 바닥은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홈을 파서 비스듬하게 만들었다. 출입구는 남쪽에 있고 계단을 통하여 출입하게 되어 있다. 석빙고 출입문 이맛돌에 “崇禎紀元後再辛酉移基改築(숭정기원후재신유추팔월이기개축)” 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영조 17년(1741)에 옮겨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옆에 있는 석비에는 “경주 부윤 조명겸이 얼음 창고를 돌로 만들었다가 3년만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적혀 있다. 현재 석빙고 서쪽으로 약 100 m 되는 곳에 옛터가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Cultural Heritage Wiki, 문화재청, 2022년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보물)이다. 1949년 경주 황오동 52호 무덤에서 출토된 귀걸이 한쌍이다. 주고리, 중간식, 마감장식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신라 귀걸이이다. 귀에 거는 부분인 주고리는 굵게 만들었으며 중간식에는 이파리 모양의 장식이 매달이 있다. 마감장식는 펜촉모양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경주식 태환이식 형태를 하고 있는데 제작기법과 조형미가 우수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01-20220215<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보물)>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03-20220215
<왼쪽편 금귀걸이>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05-20220215
<옆에서 본 모습>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06-20220215
<오른편 금귀걸이>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보물) 02-20220215<정면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황오동 고분군 52호 무덤 부근>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3.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