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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경북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이다. 높이 3.46m의 거대한 석조불상으로 하나의 돌에 조각해 놓고 있다. 옷주름, 적절한 신체의 비례, 경직되지 않은 얼굴모습 등 통일신라 불상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불상과 함께 삼층석탑(보물)이 남아 있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1<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머리에는 크고 넓은 육계가 솟아 있으며 네모반듯하고 풍만한 얼굴, 반쯤 뜬 눈, 넓적한 코, 웃는 입이 표현되어 있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은 얼굴에서 통일신라 말기 불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2<불상 얼굴>

신체는 얼굴에 비에서 작은편이 짧은 목, 좁은 어깨, 짧은 팔 등 평판적인 가슴과 함께 위축된 모습을 보여준다. 옷은 허벅지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는데 둔중하고 도식적은 옷주름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3<불상 신체>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7
<정면에서 본 모습>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5
<옆에서 본 모습>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6
<뒤에서 본 모습>

주택가에 있는 절터에는 석조여래입상(보물)과 삼층석탑(보물)이 남아 있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터와 우물 등 유구와 기와, 청자접시 등이 발견되었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4<절터>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동본리 석조여래입상은 높이 3.46m의 석불로, 보물인 동본리 삼층석탑과 함께 있다. 발견 당시에는 불상의 무릎 아래가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1960년 발굴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석불은 큰 얼굴에 길게 감은 눈, 넓적하고 짧은 코, 미소를 띤 입이 적절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 인상이 자비롭고 온화하다. 광배가 있었던 흔적은 없다. 전체적으로 큼직한 머리와 몸, 경직되지 않은 얼굴과 양다리에 있는 긴 타원형의 옷주름 등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 양식을 이으면서도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도 함께 나타난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보물)

경북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발견 당시 기단이 땅에 파묻혀 있어 1층인지 2층인지 알 수 없지만 기단부에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 추녀는 반듯하면서 경쾌한 느낌을 준다. 높이 4m의 크니 않은 규모이지만 전체적인 비율이나 조각수법이 세련되었다.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함께 석조여래입상(보물)이 같이 남아 있다.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0<예천 동본리 삼층석탑(보물)>

기단부 가운데 돌은 4장으로 짜서 맞추었다.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가운데에는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다.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9<사천왕상이 새겨진 기단부>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8<남쪽 사천왕상>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1<동쪽 사천왕상>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3<북쪽 사천왕상>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10<탑신>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7<남쪽에서 본 모습>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2<동쪽>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5<서쪽>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21
<북쪽>

주택가에 있는 절터에는 석조여래입상(보물)과 삼층석탑(보물)이 남아 있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터와 우물 등 유구와 기와, 청자접시 등이 발견되었다.

예천 동본리삼층석탑(보물) 20221130_06<절터>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 보물
동본리 삼층석탑은 예천읍을 중심으로 남북을 흐르는 한천의 둑 안쪽 주택가에 있다. 탑의 높이는 4m이며 기단의 폭은 1.6m이다. 기단의 네 면에 새겨진 사천왕은 조각 기법이 정형화되지 않아 독특하며, 탑의 몸돌이 줄어드는 비율과 지붕돌의 크기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아름답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 수가 줄어드는 점이나 탑의 각 부분 아래에 있는 굄돌이 간략하다는 점에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탑으로 보인다. 석탑의 뒤에는 보물인 동본리 석조여래입상이 함께 남아 있어 예전에는 이곳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탑 주변에 공동주택 부지를 조성하기 전 절터 등을 확인하고 실시한 2002년 발굴조사 결과, 문이 있던 자리 1곳과 건물이 있던 터 2곳, 고려 시대 우물 등의 유구와 기와, 청자접시 등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사찰의 이름 등 자세한 내력은 확인되지 않는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예천 야옹정(보물)

경북 예천군 용문면 제곡리에 있는 야옹정(野翁亭, 보물)이다. 조선중기 명종 때(1566년) 때 권심언이 아버지 야용 권의(1475~1558년)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 건물이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건물로 오른쪽 1칸을 돌출시켰다. 대청 앞에는 비교적 넓은 툇마루를 달아내고 큰 기둥으로 받쳐 전체적으로 누마루를 구성하고 있다. 건물 왼쪽에는 약간의 퇴간을 두고 있으며 지붕을 큰 기둥으로 받치고 있다. 세부적인 건축수법에서 조선전기 건축양식이 많이 남아 있으며 단청을 했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예천 야옹정(보물) 20221130_01<예천 야옹정(보물)>

건물 앞쪽에는 반칸 정도의 툇마루를 두고 있는데 6개의 목재기둥으로 받치고 있어 난간을 둘러 건물 전체가 누마루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예천 야옹정(보물) 20221130_07<건물 앞면 툇간>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3포 초익공을 사용하고 있는데 조선전기 이전에 많이 사용되었던 주심포 양식과 비슷하다. 막새기와를 사용하고 있으며 단청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예천 야옹정(보물) 20221130_04<지붕을 받치는 공포와 기와>

예천 야옹정(보물) 20221130_08<지붕을 받치는 기둥과 서까래>

창호는 가운데 작은 기둥인 설주가 세워진 형태로 조선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천 야옹정(보물) 20221130_03<오른쪽 옆면>

예천_야옹정 (2)
<창호>

예천 야옹정(보물) 20221130_06<왼쪽 옆면>

예천_야옹정<대청마루 내부>

예천_야옹정 (1)<천장>

건물 주위에 담장을 둘렀으며 오른쪽에 출입문을 두었다.

예천 야옹정(보물) 20221130_10<예천 야옹정>

예천 야옹정(보물) 20221130_02<예천 야옹정>

예천 야옹정(보물) 20221130_05<예천 야옹정>

예천 야옹정, 보물
이 건물은 조선 중종 때 학자로 의흥현감을 역임한 야용 권의(1475~1558년)의 학덕을 받들기 위해 그의 아들 권심언이 명종 21년(1566)에 세운 정자이다. 정면 4칸, 옆면 3칸의 건물로 왼쪽에 6칸 대청 마루가 있고, 오른쪽에는 온돌방이 놓였으며, 오른쪽 앞면 1칸에 돌출한 마루가 마련되어 있다. 대청 앞면으로 폭이 넓은 툇마루를 설치하고 난간을 돌려 건물 전면을 누각식으로 꾸몄다. 대청 앞 기둥 위 공포의 장식 수법은 조선초기에 볼 수 있는 것이고, 대들보 위의 주조재인 화반이나 대공도 고식으로 꾸며져 있다. 건물 뒷면은 일부 개조되었으나 조선 중기 이전 건축양식의 세부를 간직한 점에서 중요시되는 건물이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있는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이다. 초간 권문해의 할아버지 권오상이 1589년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지는 고택이다. 조선중기에 지어진 집으로 현존하는 고택 중 건립연대가 상당히 빠른 편이다.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대지를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사랑채 대청마루에 올라서면 넓은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누각처럼 지은 사랑채가 앞쪽으로 돌출해 있으며 뒷편에 ‘ㅁ’자형 안채가 있다. 안채 앞에는 예천권씨 집안에서 전해내려오는 <권문해 초간일기>(보물), <대동운부군옥목판 및 고본>(보물) 등을 보관하는 서고인 백승각(百乘閣)이 있으며 뒷편에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별당 앞에는 행랑채 겸 대문채가 있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조선중기 이전 고위직을 지낸 양반가 고택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22<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

초간종택 별당(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큰 건물이다. 앞면 오른쪽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청마루 앞면에는 문짝이 없이 개방되어 있으며 옆면과 뒷편에는 판문을 달았으며 집주위에 난간을 둘렀다. 이는 일반적인 고택 사랑채와는 달리 서원 강당 등에서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01<초간종택 별당(보물)>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16<넓은 대청마루>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06<온돌방>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17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난간>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13<지붕을 받치는 공포와 서까래>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10<뒷편>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02<정면에서 본 모습>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15<사랑채 대청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사랑채는 독립된 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왼쪽에 날개채가 있어 안채와 연결되어 있다. 안채에서 손님을 접대하기 편하도록 동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04<온돌방과 안채와 연결된 날개채>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 보물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은 풍수지리상 명당 자리로 유명한 죽림지 대수마을에 있다. 조선 중기 문인 초간 권문해(1534~1591년)의 할아버지 권오상이 지었다고 전하며,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 안채의 오른쪽 앞에 있는 별당 형식의 사랑채이다. 평지 위에 막돌로 높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집을 세우고 난간을 돌린 다락집 모양이다. 실제로는 안채와 연결되어 있으나 지붕이 팔작지붕이기 때문에 정면에서 보면 독립된 건물처럼 보인다.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오른쪽 3칸은 대청이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이다. 대청 앞면은 문짝 없이 개방하고 옆면과 뒷면은 판벽을 쳤다. 외관은 네모 기둥에 주두만을 얹어 대들보를 받친 간소하고 소박한 모습이나 별당 내부 천장은 상당히 공을 들여 정교하게 꾸몄다. 일반 주택 건축으로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기법으로 건물 안쪽을 장식하여 꾸민 조선시대 별당 건축물이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안채는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데 앞면 5칸, 옆면 5칸 규모이다. 축대를 2층으로 쌓아 상당히 웅장해 보인다. 안채에서 문을 열면 사랑채처럼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05<안채>

안채_전경
<안채 전경>

사랑채 뒷편에는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집안 사당이다.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09<사당 출입문>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11<사당>

안채 앞마당에는 예천권씨 초간공파 집안에서 내려오는 문적들을 보관하는 건물인 백승각(百乘閣)이 있다. <권문해 초간일기>(보물), <대동운부군옥목판 및 고본>(보물), <해동잡록> 등 주요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03<백승각>

예천권씨 종가문적
예천권씨 종가문적은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죽소 권별(1589~1671)이 쓴 <죽소부군일기> 1책과 인물사전식 설화집 <해동잡록> 14책으로 이루어진 총 2종 15책의 문적이다. <죽소부군일기>는 조선 인조 3년(1625) 정월부터 인조 4년(1626) 12월까지 2년 동안 726일의 일상사를 기록한 친필 일기이다. 이 일기를 쓴 권별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의 아들이다. <해동잡록>은 벼슬을 한 인물을 왕조별.성씨별로 분류하고, 그들의 학문과 일화를 기록한 문헌설화집으로, <대동운부군옥>에 기록된 인물사를 보완.정리하여 총 14권 14책으로 엮은 것이다. 조선 현종 11년(1670)에 완성된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사전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현재 예천권씨 종가문적은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에 있는 백승각에 <대동운부군옥 목판 밒 고본>(보물), <권문해 초간일기>(보물) 등을 비롯한 여러 문적과 함께 보관되어 있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08<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

초간일기<권문해 초간일기(보물)>

권문해 초간일기, 보물
<권문해 초간일기>는 초간 권문해가 쓴 친필 일기이다. 총 3책으로 조선 선조 13년(1560)부터 24년(1591)까지 일상생활과 국가 중대사 등 저자가 겪은 다양한 일을 <선조일록>, <초간일기>, <신묘일기> 순으로 기록하였다. <선조일록>은 저자가 공주 목사와 삼사의 관직에 있을 때인 조선 선조 13년(1560)부터 17년(1584)까지의 일기로 관직에서 겪은 일을 117장에 상세히 기록하였고, <초간일기>는 선조 13년부터 23년(1590)까지 일들을 90장에 기록하였다. <신묘일기>는 승지로 있을 때인 선조 24년(1591) 7월부터 10월까지 국정에 관한 일을 34장 1책에 기록하였다. <권문해 초간일기>는 저자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비교적 상세히 담고 있어 당시 사대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관직 생활을 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사항도 기록되어 있어, 당시 관청의 기능과 관리들의 생활 및 정치.국방.사회.교육.문화.지리 등 전반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임진왜란 전에 쓰인 관료의 자필 일기로, 사라진 임진왜란 이전의 부족한 사료를 보완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대동운부군옥초고본<대동운부군옥 초고본(보물)>

대동운부군옥책판
<대동운부군옥목판(보물)>

대동운부군옥목판 및 고본, 보물
<대동운부군옥>은 조선 선조 22년(1589)에 초간 권문해가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중국 송나라 음시부(陰詩夫)가 편찬한 <운부군옥>의 체제를 본떠 단분부터 조선 선조까지 역사.지리.문학.철학.예술.풍속.인물 등에 대한 내용이 20권 20책으로 정리되어 있다. 목판은 양면이며 667판으로 된 초판본이고 고본은 3종 27책이다. 순조 21년(1812)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헌종 2년(1836)에 완성하였으며, 목판의 크기는 가로 57.4cm, 세로 24cm, 두께 2cm이다. 고본은 체재와 형식 등이 다소 다른 미완의 책으로, 비록 빠진 부분이 있지만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하는데 바탕이 되는 자료인 점과 4백여 년간 전해진 고본이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임진왜란 이전 개인이 엮은 저서로서는 양적.질적으로 매우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또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임진왜란 이전 사회의 여러 분야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고택은 낮은 뒷동산을 배경으로 약간 경사진 대지 위에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는 비교적 넓은 농토들이 펼쳐져 있고 멀리 용문면 소재지이자 양반들이 모여 살았던 큰 마을인 금당실마을이 보인다. 멀지 않은 곳에 초간 권문해가 낙향하여 정자인 초간정(명승)이 있다. 고택 입구에는 입향조인 권오상이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지는 울릉도 향나무를 볼 수 있다.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20<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21<종택 앞 향나무>

예천 죽림리 향나무
죽림라 향나무는 예천 권씨 초간공파 종택 및 예천 권씨 초간종택 별당(보물) 입구 앞쪽 연못가에 있는 노거수(老巨樹)로, 일명 울향(鬱香)나무라고 불린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6m, 줄기 둘레가 2.5m 정도이고, 수령은 300여 년으로 추정한다. 전설에 따르면 죽림리 대수마을의 예천권씨 입향조인 권오상이 무오사화 때 전라남도 해남으로 귀향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울릉도 향나무를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지금의 죽림리 향나무는 권오상이 처음에 심었던 울릉도 향나무의 후손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대수마을의 역사와 함께 한 이 나무는 오늘날까지 예천 권씨 후손들과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과 별당(보물) 20221130_19<작은 연못>

초간정 원림(草澗亭 園林, 명승)은 권문해가 처음 세운 정자와 주변 숲을 말한다. 용문산(770m)에서 발원하여 용문면 일대를 흐르는 금곡천이 암반 지역을 굽이쳐 흐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큰 암반 위에 세워진 정자와 정 아래에 형성된 좁은 계곡이 주변의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만들고 있다.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20221130_19<초간정 원림(명승)>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은 초간 권문해의 할아버지 권오상이 지은 가옥으로, 숲이 우거진 낮은 뒷동산을 배경 삼아 다소 경사진 대지에 동남향으로 위치한다. 안채는 ‘ㅁ’자형을 정면 5칸, 측면 5칸이고, 지붕는 팔작지붕집이다. 2단의 기단위에 세워져 있어 건물 전체가 매우 높고 웅장하다. 안채의 오른쪽 앞면에는 사랑채인 별당(보물)이 나와있고, 왼쪽에는 대동운부군옥목판 및 고본(보물), 권문해 초간일기(보물) 외 여러 서적을 보관한 백승각이 있다. 별당 앞쪽에 행랑채 겸 대문채가 있었으나 철거되었다. 안채와 사랑채인 별당은 두 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연결하였다. 이는 조선 전기 손님 접대를 중요시하는 살림집의 특징이자 누각형 접객 건물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드문 사례이다. 안채 오른쪽 뒤편 사당은 출입문에 붙였다 떼었다 하는 중간 설주가 있다. 이러한 설주 양식이 나타나는 곳은 이 종택이 유일하다. 조선 전기의 건물로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당대 건축 구조와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경북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 보광명전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이다. 불상에서 조성내력을 기록한 글과 시주자 목록이 발견되어 1515년에 새로 고쳐 조성되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조성을 주도한 이는 승려가 아닌 상화원(上畵員) 이영문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가슴과 옷주름, 무릎과 발 드으이 표현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볼록한 양감이 강조된 모습이다. 16세기 작품 중에서 조성내력이 정확하게 남아 있으며 화원이 주도하여 조성한 불상답게 전체적인 조형미가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불인 비로자나불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보물) 20221130_01<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예천_용문사_목조아미타여래좌상
<정면에서 본 모습>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보물) 20221130_03<용문사 보광명전>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보물) 20221130_02<내부에 모셔진 불상>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보물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6세기 전반에 이영문이 만든 불상으로, 용문사 보광명전의 주불인 비로자나불 오른쪽에 있다. 높이 90cm, 무릎 너비 58cm 크기의 불상은 몸에 비해 머리가 크지만 무릎쪽이 넓어 안정적인 인상을 준다. 얼굴은 눈꼬리가 길며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 듯한 양감이 느껴진다. 이중의 대의, 자연스러운 옷 주름, 나발의 굵기와 줄어든 단의 개수, 중앙에 있는 큼직한 계주 등에서 조선 전기인 15세기에서 16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불상의 특징이 나타난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두 장의 기록에 1515년 4월 9일에 불상을 고쳐 만들었다는 것과 이를 주도한 화원 및 목수 철장, 수백 명에 이르는 시주자들의 이름이 남아 있다. 승려가 아닌 화원이 만든 불상으로, 제작 시기 등에 대한 글이 함께 남아 있는 불상이 극히 적은 조선 전기의 상황과 작품 자체가 가진 우수한 조형성 때문에 불교 조각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예천 용문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 용문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