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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

전남 나주시 교동에 있는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이다. 대상전은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 중심 건물로 문묘라고도 부른다. 나주향교는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로 성균관 문묘처럼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성균관 문묘와 비슷한 규모이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서울 문묘, 강릉향교, 장수향교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향교 대성전(보물 394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묘 건축물로 서울 성균관 문묘에 버금가는 큰 규모의 대성전이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5칸, 옆면 5칸 규모이다. 팔작지붕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양식이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나주 나주향교 대성전 보물394호 01-20190828
건물 내부. 바닥에 전돌대신 마루가 깔려 있으며,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SANYO DIGITAL CAMERA대성전 앞 월대.

나주향교 대성전, 보물 394호
대서어전은 향교의 중심건물로 공자를 중심으로 한 27위의 위패를 모신공간이다.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대성전 중에 으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교건축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성전 벽흙은 공자의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과 임진왜란 이후 성균관을 다시 지을 때 나주향교 대성전을 참조하여 지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대성전은 조선시대 나주향교가 건립되면서 처음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670년 소두산 목사에 의해 대성전 중수가 이루어졌고 고종 6년(1869)에 대성전을 비롯하여 대대적인 보수를 거쳤으며, 순조 33년 ~ 헌종 3년(1833 ~1837), 고종 32년(1906), 2008년에 대성전 도리이상 해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나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나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김제 금산사 당간지주(보물 28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보물 28호)이다. 높이 3.5 m의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기단은 단층이며, 기단 위 당간을 세우는 받침에는 기둥과 둥근 형태의 무늬를 새겨 놓고 있다. 지주의 안쪽에는 조각이 없는 반면 바깥쪽에는 세로띠를 돋을새김으로 장식해 놓고 있으며,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3곳 뚫었는데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한다. 기단부와 당간받침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장식은 거의 없지만 전체적으로 조각수법과 조형미가 뛰어나다. 통일신라 전성기 8세기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당간지주(보물 28호). 통일신라 전성기 때 조성된 것으로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나다.

SANYO DIGITAL CAMERA당간지주 기단과 받침. 기단은 1층이며 받침에는 기둥고 둥근 꽃무늬를 새겨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세로로 기둥모양을 돋을새김해 놓았다. 다른 당간지주에 비해 조각수법이 양호한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당간지주, 보물 28호
당간지주는 사찰을 상징하는 깃발이나 괘불을 세울 때 버팀목으로 사용하는 석조물이다. 이 지주는 높이가 3.5 m이며 양 지주가 남북으로 상대하여 있다. 기단석과 간대를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당간지주이다. 양 지주의 각면에 장식된 조각기법이 현저하게 두드러지며 한국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석력대, 석종, 석탑,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유물들인데 이 당간지누는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인 8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출처>

  1.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김제 금산사 대장전(보물 827호), 미륵전 앞 목탑으로 세워졌던 건물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불전인 대장전(보물 827호)이다. 원래 미륵전 앞에 세워져 있던 목탑으로 불경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때(1635)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하였으며, 1922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불경을 보관하는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석가모니와 제자를 모시늘 불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목탑 건물로는 그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지붕에 목탑이었을 때 사용하였던 부재가 올려져 있으며, 단층으로 변형되었지만 옛 목탑의 건축양식이 일부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대장전(보물 827호). 원래 미륵전 앞에 있던 목탑으로 불경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정유재란 때 목탑이 소실된 후 단층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대장전 현판. ‘대장전’이란 불전 이름에서 불경을 보관하던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김제 금산사 대장전 보물827호 01-20190821
대장전 내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내부에 기둥이 있는 등 목탑 건축 양식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대장전에 모셔진 불상. 석가보니와 제자들을 모시고 있는데 일반적인 불전과는 다른 형태이다.

김제 금산사 대장전 보물827호 02-20190821

건물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옛 목탑의 건축부재.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경내 미륵전과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있는 대장전, 원래 목탑처럼 미륵전 바로 앞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대장전, 보물 827호
대장전은 미륵전을 장엄하는 정중 목조탑으로 미륵전과 함께 일찍이 건립되었다. 정유재란에 소실된 후 1635년 조서너 인조 13년에 재건되었으며 1922년 미륵전 앞에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현재 지붕위에 남아 있는 복발과 보수 등은 조선 인조 이전의 목탑 잔영이며 법당안에는 석가모니불과 상수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봉안하고 있다. 건물은 비교적 단조롭고 소규모이지만 정중 목탑의 변형물로 주목되며 석가모니불의 후불광배의 조각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출처>

  1. 안내문, 김제 금산사,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정읍 피향정(보물 289호),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정자 건축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옛 태인현 읍치에 남아 있는 피향정(披香亭, 보물 289호)이다. 태인현 관아에서 공식행사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남원 광한루와 함께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정자 건축물이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중기 숙종 때(1716)에 새로 지은 것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큰 규모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나 가운데에는 우물천장으로 꾸며놓고 있다. 천장 아래에는 이곳을 찾았던 인사들이 남겨놓은 글이 적혀 있는 현판들이 많이 남아 있다. 건물 앞.뒤로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앞쪽 연못만 남아 있다. 조선중기 목조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읍 피향정(보물 289호). 태인현 읍치에 남아 있는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정자건축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옆면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정자를 받치는 기둥. 커다른 화강암 석재를 가공하여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앞면에서 본 모습. ‘호남제일정’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자 내부.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사방이 개방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장은 대부분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 부분만 우물천장으로 장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장 아래 걸려 있는 ‘피향정’이라 적힌 현판

SANYO DIGITAL CAMERA천장 아래에는 이곳을 찾은 인사들이 남겨놓은 글이 적힌 현판들이 많이 걸려 있다. 통일신라 때 유학자 최치원의 발자취를 찾아 이곳을 방문했던 인사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연못 풍경. 농업용 저수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연못으로 보인다. 원래는 앞.뒤에 연못이 있었는데 지금은 앞쪽 연못만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피향정이 있는 옛 태인현 읍치.

정읍 피향정(披香亭), 보물 289호,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
피향정은 호남 제일의 정자이다. 원래 이 정자는 앞뒤로 상.하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승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하연지만 남아 있다. 신라시대에 최치원 선생이 태산군수로 재임중에 이곳 연지가를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정자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의 정자는 조선시대 중기의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집이다. 4면이 모두 개방되어 있고 주위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다. 공포는 간결한 초익공 건물로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합각 밑에는 작은 우물천장이 특이하게 설치되어 있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보물 313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월남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진각국사비(보물 313호)이다. 고려중기에 활동한 진각국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은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린 형태로 머릿돌은 없다. 거북받침돌은 구슬을 물고 있는 용의 얼굴에 네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사실적이며 생동감 있는 표현이 돋보이다. 비문은 고려중기 문장가 이규보가 지은 것이라 전하는데 비몸에 새겨진 글씨는 마모되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나 고려초에 비해 비석제작 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나, 조각수법이나 세부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은 고려중기에 활동한 승려로 보조국사 지눌의 제자이다. 보조국사가 입적하자 송광사 2대 국사로 불교개혁을 이끌었다. 그의 사호 고려 고종은 진각국사라는 시호와 원소지탑이라는 부도이름을 내렸다. 이규모가 지은 비문은 『동국이상국집』 등에 그 글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보물 313호). 송광사 2대 진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고려중기 문장기 이규보가 비문을 지었다.

SANYO DIGITAL CAMERA거북받침돌. 조각수법이 사실적이며 힘친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여의주를 물고 있는 얼굴.

SANYO DIGITAL CAMERA땅을 짚고 일어서려는 듯한 힘이 넘치는 표현이 돋보이는 발.

SANYO DIGITAL CAMERA뒷면에서 본 거북받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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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몸(앞면). 글자가 마모되어 거의 알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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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몸 뒷면에는 약간의 글씨가 남아 있으나 거의 알아보기 힘들다.

월남사지 진국국사비, 보물 313호,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비는 어떤 일의 자취를 후세에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놓은 것이다. 이 비석은 월남사를 창건한 진각국사(1178~1234)를 추모하기 위하여 고려 고종 37년(1250)에 세워진 것이다. 비문은 이규보(1168~1241)가 지었고, 글씨는 서예가로 이름난 탁연이 왕명을 받아 썼다. 진국국사의 속세의 성은 최씨이고 법명은 혜심으로 화순 사람이다. 보조국사 지눌의 문하에서 선학을 닦았고, 송광사 16국사 중 제2조인 고승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몸돌을 올린 형태이다. 거북은 입에 구슬을 물었는데, 그 모습이 강렬하고 사실적이다.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어우러져 한층 돋보인다. 현재 비의 전면은 떨어져 나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으나, 후면은 상당한 부분이 남아 있어 많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안내문, 강진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강진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