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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사막에 핀 신앙의 꽃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유물은 투루판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20세기초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나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 한다. 이를 일본 자본가 구하라가 구입하여 조선총독부에 기증하면서 중앙박물관에 유물들이 남아 있다. 오타니 컬렉션은 전체 유물의 1/3은 한국에, 1/3은 중국뤼순에, 1/3은 일본에 남아 있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9<중앙아시아, 동서문명이 통하는 길>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아시아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중앙아시아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루크메니스탄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 지역을 ‘투푸키스타(투르크인의 나라)’ 또는 ‘서역(西域)’이라고 부른다. 중앙아시아 역사와 문화에서 유라시아를 여러 갈래의 교역로인 ‘실크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동서 교역로를 장악하려는 주변 여러 세력의 침입과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교역로는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는 중요한 통로로 작용했다. 그 결과 이곳의 문화는 고대 지중해, 인도, 서아시아, 중국 문화의 요소가 복합된 독특한 모습을 띤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 소장품은 대부분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지역은 텐산산맥 이북의 초원지대에서 전개된 유목세계와 그 남측의 타클라마칸사막을 중심으로 한 오아시스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타클라마타사막의 남단과 북단을 지나는 서역남도와 서역북도를 통해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인도, 서아시아, 중국 간의 교류가 본격화되었다. 그 길목에는 여러 오아시스 도시가 세워져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세계문화관에서 중앙아시아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 입구에는 아프로시압 벽화(복제품)를 전시하고 있다.  벽화는 사마르칸트 옛 중심시였던 아프로시압 도성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7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벽화에는 한반도인으로 추정되는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차고 있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어, 당시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사이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1<아프라시아브 벽화(Afrasiab), 서쪽 벽화>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41<서쪽벽화 앞부분>

서쪽 벽화
서벽은 입구에 들어설 때 마주 보게 되는 벽으로, 가장 중요한 벽화가 그려진 곳이다. 현존하는 벽화를 보면 여러 사신과 무사가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들이 향하고 있는 벽의 윗부분에 누가 그려져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가운데 부분에 바르후만왕, 돌궐왕, 또는 소그드의 신이 그려져 있었다고 보는 견해와, 벽의 양측에 바르후만왕과 돌궐 왕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오른쪽 끝에는 조우관을 쓴 고대 한국인이 등장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2<조우관을 쓴 인물>

벽화 속의 한국인
서벽에 그려진 벽화에는 새의 깃털로 장식된 모자인 조우관(鳥羽冠)을 쓴 인물이 등장한다. <<위서>> <고구려전>에 “머리에 절품건(折風巾)을 쓰는데, 그 모양이 고깔과 같고 두건의 모서리에 새의 깃을 꽂는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또 고구려 고분벽화,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인 사절을 그린 <양직공도>, 신라, 백제, 가야 고분의 출토품으로 볼 때 새의 깃털이나 모형을 모자에 부착하는 장식법이 고대 한반도에서 보편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40<아프라시아브 도성유적>

벽화의 시기
서벽 왼편에 그려진 한 인물의 옷자락에 남아 있는 소그드 명문은 벽화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명문에는 차가니안(Chaganian, 사마르칸트 남부의 작은 나라)과 차치(Chach, 타슈켄트 지역)의 사신이 사마르칸트에 와서 이곳의 왕인 바르후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바르후만왕은 중국 역사서에 ‘불호만(拂呼縵)’으로 언급되는 인물로, 658년 당 고종에 의해 강거도독부(康居都督府)의 도독으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아프라시아브 벽화의 연대는 7세기 중엽으로 추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아프라시아브 벽화의 발견
사마르칸트의 옛 중심지인 아프라시아브 도성지 유적에서 1965년 도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발견된 지점은 제23구역 제1호실에 해당하는 방으로, 왕이나 상류층 저택의 접견실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추정된다. 방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한 변의 길이가 11m에 달한다. 방의 윗부분이 공사 중에 파괴되어 내부 벽면을 장식했던 벽화는 현재 2m 정도의 높이까지만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석굴사원은 수도자들이 더위와 비를 피하여 명상을 하기 위해 벼랑에 동굴을 파서 만들었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소카왕때 처음 생겼으며,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도 전해졌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 석굴, 중앙아시아의 키질, 투루판 베제클릭, 둔황석굴, 중국의 윈강 석굴 등이 규모도 크고 잘 알려진 석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석 석재로 인공적으로 조성은 석굴암이 대표적이다. 특히, 둔황 석굴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 이후 4세기부터 원나라때까지 끊임없이 조성되었다. 막고굴에는 불상들과 벽화로 꾸며져 있으며, 불경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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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誓願畵),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복제품>

투루판 지역의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5굴에 그려진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종교 유적이다. 제15굴에는 열다섯 가지 주제의 서원화가 회랑 양측 벽에 그려져 있었다. 이 벽화는 석가모니가 전생에 가시왕으로 태어났을 때 당시 부처였던 크세맘카라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내용을 묘사한 제1주제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여기에서 크세맘카라 부처를 향해 공양물이 가득 담긴 쟁반을 두 손에 들고 서 있는 두 인물은 왕으로 태어난 전생의 석가모니와 왕비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석굴사원과 벽화
중앙아시아의 종교 유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집중되어 있다. 투루판 지역의 베제클리크, 토유크, 야르호, 셍김-아기즈와 쿠차 지역의 키질, 쿰트라, 키질 가하와 같은 유적이 유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앙아시아 벽화 가운데 대부분은 투루판의 석굴사원에서 가져온 것이며, 쿠차 지역의 벽화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서원화(誓願畵)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현재의 시점에서 볼  과거불)로 부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이야기가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3<비슈반타라 왕자 본생도, Visvantar Jataka, 미란 제5사원지/3세기/흙벽에 채색>

이 벽화는 미란 제5사원지 회랑 벽에 그려진 본생도의 일부분이다. 영국 탐험대를 이끈 스타인(Aurel Stein, 1862~1943년)의 보고서에 수록된 사진을 통해 본생도의 전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본생도의 주인공은 비슈반타라 왕자로, 석가모니의 여러 전생 중 하나이다. 비슈반타라 왕자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하얀 코끼리를 비롯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보시했다.(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사막에 핀 신앙의 꽃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여러 교역로를 통해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교와 같은 다양한 종교가 중앙아시아로 전해졌다. 종교 활동을 위해 세워진 많은 사원은 여러 신의 모습과 종교적 설화, 이상향, 신도 등을 표현한 그림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이슬람교가 전파되기 이전인 10세기경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는 불교가 특히 성행했다. 이곳의 여러 불교 사원에는 헬레니즘 미술과 인도, 페르시아, 중국의 다양한 요소가 섞인 불상과 벽화가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4<1. 서원화,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꽃을 들고 있는 우아한 자태의 손을 묘사한 서원화 단편이다. 단편의 왼쪽에 과거불의 광배 일부가 남아 있다. 광배 가장자리에 흰색 띠를 둘렀고, 안쪽에는 붉은 색 바탕에 흰색과 적갈색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손과 광배 사이로 상상의 꽃이 공중에 떠 있다. 벽화의 바탕색은 현재 흐린 갈색으로 보이지만, 제15굴의 다른 서원화와 마찬가지로 원래의 바탕색은 푸른색이었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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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원화, 투루판 베제클리크 제33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제33굴 우측 벽에 배치된 서원화의 일부이다. 서원화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 즉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과거불을 만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이 벽화에는 두 명의 상인이 나란히 앉아 공양물이 담긴 화려한 쟁반을 들고 있고 왼쪽에 공양의 대상이 되는 과거불의 광배, 발, 옷자락 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상인의 얼굴에 각기 다른 개성이 잘 표현되었다. 왼쪽 상인은 약간 넓은 얼굴에 코가 높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검은색이다. 이에 비해 오른쪽 상인은 매부리코에 광대뼈가 튀어 나왔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적갈색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베제클리크’은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뜻이다.  화려한 벽화가 많이 남아 있는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서역북도에 위치한 투루판 일대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군이다. 원래 80기 이상의 불교와 마니교 석굴이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50기 정도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베제클리크(伯孜克里克, Bezekllik) 석굴사원,  2010년>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투루판시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무르투크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위구르어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 석굴사원에는 83기의 석굴이 확인되며, 그중 40기에 벽화가 남아 있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6세기 국씨고창국(麴氏高昌國) 시기부터 13세기까지 만들어졋으며, 10세기 위구르 지배기에는 왕실의 종교적 성지로 번영했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에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를 소재로 한 ‘서원화’가 많이 그려졌다. 서원화는 ‘공양화供養畵’ 또는 ‘본행경변本行經變’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서원’은 바라는 바를 이루겠다는 맹세를 뜻한다.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서하어(西夏語), 위구르어 등 다양한 언어로 쓰인 불교 경전과 여러 시기에 걸쳐 그려진 벽화가 있는 중요한 불교유적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6<마혜수라천(Maheshvara), 투루판/10~12세기/흙벽에 채색>

힌두교의 신 시바가 불교에 포섭되어 등장한 신으로 다면다비(多面多臂)에 3개의 눈을 가진 점이 특징이다. 마혜수라천은 일반적으로 위로 올린 손에 해와 달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위로 올린 오른손에 해처럼 보이는 둥근 원반을 들고 있다. 나머지 손은 합장하거나 밧줄을 잡고 있다. 머리 위의 작은 인물은 바람이 가득 찬 주머니를 들고 있어 풍신(風神)을 연상시킨다. 손바닥과 얼굴은 살구색으로, 나머지는 녹색을 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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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중당(中堂)의 네 모퉁이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안쪽 좌측벽에 그려진 사천왕 앞에 앉아 있는 악귀 부분이다. 악귀는 겁에 질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 앞으로 모아 화살 2개를 쥐고 있다. 오른쪽에는 사찬왕의 오른쪽 발과 코끼리 머리 장식을 한 오른쪽 다리 일부가 보인다. 악귀의 과장된 표정과 근육, 화려한 채색 등이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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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도, 투루반 베제클리크 석굴 제18굴/6~7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8굴에서 가져온 천불도의 일부이다. 제18굴은 석굴 중앙에 큰 기둥을 배치한 중심 주굴(柱窟)이며, 천불도는 석굴의 회랑을 장식했다. 천불도에 표현된 각 부처는 가는 흰색 선으로 구획된 사각형 안에 통견(通肩)의 법의를 입고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부처의 눈은 비교적 크고 콧날이 뚜렸하다. 얼굴과 목, 손의 윤곽선에 붉은색을 더해 음영을 주고, 배경에는 짙은 색을 칠했다. 음영의 표현, 어두운 배경색, 라피스 라줄리 안료를 사용한 푸른색은 무두 쿠차 지역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0<제15굴 서원화 장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7<1. 서원화 장막, 투푸판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8<서원화 장막>

제15굴 회랑에 그려진 서원화의 가장 윗부분에는 화려한 장막이 묘사되었다. 상하로 배치된 두 단편은 장막의 상단에 짧은 회색천을 내렸고, 그 아래로 그물 문양의 붉은 천을 늘어뜨렸다. 붉은 천 위로 흰색, 초록색 구슬을 엮은 장식물이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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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구르어 명문,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10~12세기/흙벽에 채색>

베제클리크 석굴사원은 6세기부터 개착되었으며 위구르 세력이 이 지역을 지배하던 9~13세기까지 조상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현재 남아 있는 석굴의 벽화는 대체로 위구르가 이 지역을 지배하던 9세기 이후의 것이다. 위구르인들은 원래 마니교를 믿었으나, 10세기 후반부터 투루판 지역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어온 불교로 개종했다. 위구르어 명문은 대체로 공양자의 이름과 공양을 한 연월일에 관한 기록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위 단편에 서툰 글씨로 한자가 기록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 기층문화였던 한인(漢人) 문화의 영향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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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을 그린 번(菩薩幡), 둔황/10세기/비단에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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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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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아래>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10
<오른쪽 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09
<오른쪽 아래>

SANYO DIGITAL CAMERA<둔황 막고굴, 2010년>

번(幡)은 불교 건축물을 꾸미거나 의식을 진행할 때 사용하던 걸개그림이다. 둔황 지역에서는 8세기경부터 번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의 번에는 3m가 넘는 감색 비단 바탕에 정면을 향해 선 보살을 연속적으로 배치하였다. 보살은 채색 없이 노란 선으로만 그려졌다. 신체의 굴곡을 나타내는 선과 장신구, 가슴을 가로지르는 옷차림은 당 말기 보살사의 특징과 유사하다. 오른쪽의 번에는 2명의 보살이 그려져 있다. 위쪽의 보살은 가사를 걸친 채 왼쪽을 향하고 있고, 아래쪽 보살은 군의를 입고 천의를 걸친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붉은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주었다. 보살 옆에는 보살의 이름을 써 넣은 방제가 있는데, 아래 보살의 경우 “나무불휴식보살”이라는 글씨가 확인된다. 둔황 발견 자료 중에는 전문적으로 경전을 베껴쓰는 사경생(寫經生) 이외에 번을 만드는 사람(書幡人)이 언급되어 있어 당시 번의 제작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호탄(和田)은 타림분지 남서쪽에 위치한 고대의 왕국이다. 옥(玉) 생산지였던 대월지(大月氏)가 있었던 곳으로 고대 동.서교역로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한무제때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 서역문화와, 불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투루판은 한나라 때 한인들이 거주한 이래로 당나라때 고창국을 비롯한 한족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지역중심지였던 교하고성, 고창고성을 비롯하여 주변 계곡 등에 많은 불교 유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불상들은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그 형태는 인도와 중동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이 많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29<부처의 머리, 호탄/4~5세기/흙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된 호탄 출토의 소조상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큰 예이다. 얼굴의 전반적인 형태와 반쯤 감고 있는 눈의 형식적인 표현이 호탄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인 라와크(Rawak) 스투파에서 발견된 불상과 유사하다. 머리 부분에는 물결치는 듯한 머리카락이 표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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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투루판 무르투크/6~7세기/흙에 채색>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불교 조각은 헬레니즘과 로마 조각의 특징을 수용한 간다라 조각의 영향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를 보다 추상화하고 형식화한 모습으로 재창조되었다. 이 여인상의 둥근 얼굴, 눈썹, 눈, 콧날 등은 간략하고 도식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가슴 부분의 소용돌이 무늬는 갑옷을 연상시킨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0<1. 광배조각,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흙>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1
<2. 부처, 호탄/5~6세기/스투코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2
<3. 세라피스, 호탄/2~3세기/테라코타>

세라피스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에 새롭게 탄생한 신으로, 그리스의 제우스와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대좌에 앉아 있는 세라피스는 왼손에는 풍요의 뿔을 들고, 오른손은 나체의 소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른편에 서 있는 소년은 침묵의 신 하포크라테스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3<4. 코끼리, 쿠파 쿰투라 석굴사원/8세기/흙>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4<1. 연꽃 위의 부처,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5<2. 연꽃에서 태어나는 모습, 호탄/6~7세기/스투코에 채색>

몇 겹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꽃 가운데에서 인물이 화생하는 순간을 묘사한 스투코로 만든 조각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세계인 정토에서 태어날 때 연꽃에서 태어난다고 하는데, 연꽃은 청정함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불교 미술에 자주 이용되는 모티프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6<3. 명상하는 승려, 둔황/10세기/흙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7<4. 무사의 머리, 카라샤르/6~7세기/흙>

서역북도에 위치한 카라샤르는 중국 문헌에 언기국 또는 오이국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의 불교 유적은 불교사찰과 석굴사원으로 이루어졌으며, 5~8세기로 편년되는 다양한 불상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11
<5. 천부의 머리, 투루판/6~7세기/흙에 채색>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12
<5. 천부의 머리, 투루판/6~7세기/흙에 채색>

불교 조각
중앙아시아의 불교 조각은 미란, 호탄, 쿠차, 투루판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곳의 불교 조각은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양식과 도상은 간다라의 영향을 기반으로 하면서 지역적인 특징을 발전시킨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교 조각은 주로 서역 남도의 대표적인 불교 중심지인 호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외에 서역 북도의 투루판과 옛 언기국에 속하는 카라샤르 지역의 문화재도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38<회화 단편, 투루판 토유크 석굴/10~11세기/면에 채색>

화면 왼쪽에 있는 반쯤 열린 문을 향해 세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서 있다. 문의 왼쪽에도 또 다른 인물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인다. 배경은 붉은색이며 오른쪽 윗부분은 여러 개의 검은 점으로 덮여 있다. 흰 옷을 입은 세 명의 인물을 마니교도로 보는 견해도 이다. 다만 이들이 쓰고 있는 모자가 투루판 지역에서 출토된 자료에 등장하는 마니교도의 모자와 다른 모양이어서 앞으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과학적 조사를 통해 그림이 그려진 천은 면으로 밝혀졌으며, 이 그림 아래에 다른 밑그림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가운데 관음보살이 있으며, 그 주위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예배하는 보살과 인물이 여럿 그려져 있다. 관음보살이 쓰고 있는 높은 모자의 정면에는 관음보살이 모시는 부처인 아미타여래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 불교문화 20220125_13
<관음보살이 그려진 번, 투루판 토유크 석굴/9~10세기/면에 채색>

토유크 석굴사원은 고창고성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화염산 골짜기로 천산산맥의 눈이 녹아내린 물이 투루판분지로 흘러드는 계곡이다. 여기에 있는 46기의 석굴은 5세기 말과 7세기 사이에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지금은 위구르 전통 마을이 남아 있는 외진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지만, 사막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투루판지역에서 그나마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로에 위치해 있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토유크(Toyuk, 吐浴溝) 석굴사원, 2010년>

산산현에 위치한 토유크 석굴은 46기의 석굴로 이루어진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문서와 불화도 다수 발견되었다. 화면의 중앙에 앉아 있는 보살은 보관에 작은 불좌상이 있어 일찍부터 관음보살로 판ㅁ여되었다. 보살은 머리 좌우에 원형 장식을 부착하고, 검은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늘어뜨렸다. 오른손을 가슴 앞에서 들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려 지물을 받치고 있다. 중앙의 관음보살을 둘러싸고 있는 보살은 원래 3단에 각 2명씩, 모두 6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거의 동일한 크기와 구성을 지닌 그림이 베를린 아시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중앙아시아실 전시품은 대부분 20세기 초 오타니 고즈이(1876~1948년) 탐험대가 수집한 것이다. 오타니 고즈이는 1902년부터 1914년까지 모두 3차에 걸쳐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탐험대를 보냈고, 이후 탐험대 수집푸의 상당수가 오타니의 별장이었던 고베의 니라쿠소에 보관되었다. 1916년 1월, 당시 상인이었던 구하라 후사노스케가 니라쿠소와 문화재를 함께 구입했다. 구하라는 1916년 5월 조선총독부에 오타니 수집품을 기증하였고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관리했다. 이후 오타니 수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하여 중국 국립뤼순박물관, 중국국가도서관, 일본 류코쿠대학, 도쿄국립박물관, 교토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2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순천 송광사 금동요령 (보물)

송광사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요령(보물)이다. 요령은 불교 의식에서 소리를 내는 도구이다. 높이 20.6. cm, 지름 6.6 cm 크기로 몸은 4각형이고 각면이 팽창되어 둥근 형태를 하고 있다. 송광사에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그 형태와 조각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작연대 등 내력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볼 때 국내에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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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금동요령>

요령은 불가에서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법구로, 손잡이 부분이 금강저의 모양이면 금강령이라고 한다. 소리를 통해 진언의 법력을 퍼트려 중생들의 모든 업장을 소멸케 하고, 의식 때에는 영혼을 부르는데 쓰기도 한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원주 거돈사지(사적), 남한강 뱃길 부근에서 번창했던 사찰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절터인 거돈사지(居頓寺址, 사적)이다. 중문, 탑, 강당, 승방, 회랑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통일신라 평지사찰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일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승방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많은 건물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이곳에는 많은 승려들이 머물렀으며, 여행자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서는 원공국사탑(보물 190호)과 탑비(보물 78호), 그리고 삼층석탑(보물 750호)이 남아 있었는데, 그 중 원공국사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와 현재는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다.

거돈사는 충주나 제천지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육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도로나 철도에서 먼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적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지도를 살펴보면 걸어서 여행을 하던 시절에는 중요 교통 요지였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남한강 뱃길의 주요 나룻터인 창말나루터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 여행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역원기능을 겸하면서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이 없어지면서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원주 거돈사지(사적), 삼층석탑과 금당, 강당이 일렬로 나란히 배치된 1탑1금당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사찰이다. 통일신라 사찰 중에서는 보기 드문 가람배치이다. 금당 앞에는 회랑을 두었으며, 주변에 많은 건물터가 확인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찰 앞 중심 공간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보물 750호).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넓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삼층석탑을 올려놓고 있다. 축대가 넓은 기단과 같은 역할을 하여 안정감을 주면서 웅장하게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삼층석탑 뒷편에 있는 금당터. 금당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2층 건물로 추정되며, 지금의 금산사 미륵전과 비슷한 모습인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을 오르는 계단. 금당터는 잘다듬은 큰 화강석으로 축대를 쌓고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터 중앙에는 불상을 올려 놓았던 석재로 만든 대좌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기둥을 올려 놓았던 주춧돌.

SANYO DIGITAL CAMERA금당 뒷편에는 강당으로 보이는 큰 건물터가 있으며, 옆쪽에는 회랑으로 추정되는 긴 건물터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 뒷편 강당터로 보이는 건물터와 주위의 크고 작은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금당 옆쪽편으로는 승려들의 생활공간이자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 뒷편 건물터와 축대.

SANYO DIGITAL CAMERA절터 뒷편 언덕에는 원공국사탑(보물 190호)를 볼 수 있다. 원래 있던 승탑은 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복제품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원공국사탑(보물 190호, 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보물190호). 고려초 활동한 원공국사 지종(智宗)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에 입구에 있는 원공국사탑비(보물 78호)이다.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로 구성된 전형적인 탑비의 형태를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 머리는 험한 인상의 용의 얼굴을 하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 무늬로 거북등껍질을 표현하고 하고 있는데 그 안에 卍자와 연꽃무늬를 새겼다. 비석의 글은 당대 학자였던 최충이 글을 짓고, 김거운이 글씨를 썼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에서 출토된 석재들.

<출처>

  1. 안내문, 원주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중앙아시아의 불교조각

중국 신강 위그루 자치구에 위치한 호탄(和田)은 타림분지 남서쪽에 위치한 고대의 왕국이다. 옥(玉) 생산지였던 대월지(大月氏)가 있었던 곳으로 고대 동.서교역로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한무제때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 서역문화와, 불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투루판은 한나라때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한인들이 거주한 이래로 당나라때 고창국을 비롯한 한족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지역중심지였던 교하고성, 고창고성을 비롯하여 주변 계곡 등에 많은 불교 유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불상들은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그 형태는 인도와 중동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이 많다.

불교는 기원전 3세기경 아소카왕에 의해서 인도와 주변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2세기경에는 중앙아시아 박트리아를 비롯하여 실크로드 교역상에 있던 크고 작은 국가들을 통해서 중국에 전파되었다. 당시 불교가 크게 융성했던 지역으로는 대월지, 안식국이라 불린 파르티아, 강거라 불렸던 소그드, 쿠챠 등이 있다. 또한 서유기의 주인공인 현장이나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 등 많은 학승들이 실크로드를 경유해서 불교성지 순례를 다녀왔으며, 불경들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살/불법을 수호하는 신, 菩薩/天部像, 투루판, 6~7세기. 그리스 조각상에서 볼 수 있는 사실적인 표현이 특징인 간다라미술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머리 부분만 남아 있는 불상의 일부로, 보살이나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각 상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넓은 이마와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머리카락의 표현, 머리 장식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얼굴 표현에서는 이목구비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타니 탐험대가 교하고성(交河古城)과 무르툭에서 가져온 다른 불상과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조각
중앙아시아의 불교 조각은 미란, 호탄, 쿠차, 투루판 지역의 여러 유적에 전한다. 이 지역의 불교 조각은 소조상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양식과 도상은 간다라의 영향을 기반으로 하면서 지역적인 특징을 발전시킨 모습을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교 조각의 대다수는 서역 남도(西域南道)의 대표적인 불교의 중심지인 호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외에도 투루판과 옛 언기국(焉耆國)에 속하는 카라샤르 지역의 예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불교전파 경로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주요 불교유적.

OLYMPUS DIGITAL CAMERA실크로드의 주요 거점도시였던 호탄과 카라사르에서 출토된 불교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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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佛像, 호탄(和田), 4~5세기.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이었던 호탄에 출토된 소조불상이다. 전형적인 간다라 불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호탄 출토의 소조상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 예이다. 얼굴의 전반적인 형태와 반쯤 감고 있는 눈의 형식적인 표현이 호탄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인 라와크 스투파에서 발견된 불상과 유사하다. 머리부분에는 물결치는 듯한 머리카락 표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무사, 武士像, 카라사르, 6~7세기. 언기국으로 알려진 중앙아시 카라사르에서 출토된 소조상이다. 틀을 이용해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역 북도에 위치한 카라사르(Karashar)는 중국 문헌에 언기국(焉耆國) 또는 오이국(烏夷國)으로 기록되어있다. 이곳의 불교유적은 평지 사원과 석굴사원으로 이루어졌으며, 5~8세기로 편년되는 다양한 불상이 출토되었다. 쇼르축(Shorchuk), 식신(Shikshin)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여기 전시된 작품은 무사의 머리 부분이다. 영국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의 컬렉션에도 동일한 유형의 상이 전하고 있어, 틀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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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있는 나무 막대기, 木片, 호탄, 6세기, 공양자의 이름을 적어 불상 안쪽에 안치해 두는 주심목(主心木)이다. 앞뒤에 글씨가 있어, 공양자의 이름과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무늬 벽돌, 蓮花紋方甎, 투루판(吐谷渾) 토유크(吐浴溝), 8세기,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벽돌의 형태이다.

투루판 토유크 석굴사원에서 출토된 벽돌로, 사원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 본 활짝 핀 연꽃이 벽돌의 중앙 부분을 가득 채우며, 네 모퉁이에는 꽃봉우리가 작게 묘사되어 있다. 가장자리의 좁은 운양대에는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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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와 하포크라케스, 호탄, 2~3세기

세라피스는 이집트 프롤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4 ~ 30년) 시기에 새롭게 탄생한 신으로, 그리스의 제우스와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대좌에 앉아 있는 세라피스는 왼손에는 풍요의 뿔을 들고, 오른손은 나체의 소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른편에 서 있는 소년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데, 그는 세라피스와 종종 함께 숭배되었던 침묵의 신 하포크라케스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코끼리, 像, 쿠차(庫車) 쿰트라(庫木吐拉) 석굴사원, 8세기.

OLYMPUS DIGITAL CAMERA 코끼리, 像, 쿠차(庫車) 쿰트라(庫木吐拉) 석굴사원, 8세기.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코끼리 머리와 발을 표현한 부조이다. 간다라 지역과 서역북도의 불교 유적지에서 유사한 예가 보이며, 건축물의 기단부나 불상의 대좌 장식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호탄, 6~7세기

몇겹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꽃 가운데에서 인물이 화생(化生)하는 순간을 묘사한 스투코로 만든 조각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세계인 정토(淨土)에서 태어날 때 연꽃에서 태어난다고 하는데, 연꽃은 청정함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불교 미술에 자주 이용되는 모티프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OLYMPUS DIGITAL CAMERA연꽃 속의 작은 불상, 蓮花中佛座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연꽃 속의 작은 불상, 蓮花中佛座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6세기

스투코로 만든 광배의 테두리 부분으로, 연꽃 문양으로 장식된 띠와 불꽃무늬 일부가 남아 있다. 원래는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부근, 6~7세기

여기 보이는 조각 파편 중에는 교각의 자세를 취한 불상, 꽃무늬, 기하학적 문양이 보인다. 호탄의 라왁 사원지에서 발견된 불상 광배의 일부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 이와 유사한 모습의 광배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고창고성 대불사 절터. 당대(唐)에 투루판에서 번성했던 국씨고창국의 도읍이었던 고창고성 중심부에 있는 절터이다. 이곳에서 현장법사가 머물면서 설법을 전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난 교하고성에 남아 있는 대불사 절터. 중앙아시아에 있었던 사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경주 함월산 기림사, 조선후기 경주지역 대표 사찰

경북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함월산(含月産, 해발 584 m) 자락에 자리한 기림사(祇林寺)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643년) 인도 승려 광유가 처음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전통사찰이다. <삼국유사>에 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어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잠깐 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원효대사가 기림사를 크게 중창했다고 하나 기록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당시 기림사가 존재했던 것으로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불상에서 출토된 복장전적에 고려시대 전적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림사는 조선시대에 크게 번창하여 경주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렸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기림사>

왕은 놀라고 기뻐하여 오색 비단과 금과 옥으로 보답하고 사자를 시켜 대나무를 베어서 바다에서 나오자, 산과 용은 갑자기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왕이 감은사에서 유숙하고, 17일에 기림사(祗林寺) 서쪽 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 생략 ~ 왕이 행차에서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月城)의 천존고(天尊庫)에 간직하였다.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는 개며, 바람이 잦아들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이를 만파식적(萬波息笛)으로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삼국유사 권 제2 제2 기이 만파식적,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기림사는 개울이 흐르는 울창한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평지사찰이다.불전들은 낮은 기단위에 건물을 올려 놓고 있는 등 평지사찰로서의 특징이 잘 남아 있다. 응진전 뒷편에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조성된 불전들과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림사 일주문>

OLYMPUS DIGITAL CAMERA<사찰입구에 있는 승탑>

OLYMPUS DIGITAL CAMERA<기림사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기림사 천왕문>

조선시대에 크게 번창한 사찰답게 기림사에 남아 있는 불전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이후에 조성된 것들이다. 주불전인 대적광전(보물)를 중심으로 동쪽에 약사전, 서쪽에는 응진전을 두고 있으며, 강당건물인 진남루가 대적광전 맞은 편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진남루는 기림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관아에서 운영했던 누각과 비슷한 규모와 형태의 건물로 조선후기 승병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적광전 앞 마당에는 통일신라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과 목탑터 등이 있다. 주불전인 대적광전이 있는 영역 옆쪽으로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조성한 삼천불전, 명부전, 관음전, 삼성각 등의 불전들과 요사채 등이 들어서 있다. 조선후기 경주부 관아의 후원을 받아 크게 번창한 사찰로 당시의 불교문화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루>

천왕문을 들어서면 조선시대 관아에서 운영했던 누각처럼 생긴 큰 규모의 강당 건물인 진남루가 보인다. 진남루 내부는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병영이나 수영에서 운영했던 객사와 비슷한 규모와 형태이다. 승병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루 앞 마당>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으로 인조 때 크게 중수하였다고 한다. 건물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다. 상당히 큰 규모의 불전이지만 낮은 기단에 건물을 세워 웅장하지만 위압감을 주지는 않고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내부에는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과 뒷편 탱화인 비로자나삼불회도(보물)를 모시고 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대적광전(보물)>

OLYMPUS DIGITAL CAMERA<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과 뒷편 비로자나삼불회도(보물)>

대적광전은 축대를 쌓아 조성한 산중사찰과는 달리 편안한 느낌을 준다. 탑이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평지사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기단>

기림사 동쪽편에 있는 약사전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크지는 않지만 단정하면서 균형감이 잘 잡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전>

기림사 약사전
이 건물은 1600년대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림사 약사전이다. 사적기에 대적광전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으며, 중건기에는 조선 효종 5년(1654)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숙종 4년(1678) 약사법당을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므로 약사전은 1600년대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얕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건립되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으로 꾸몄다. 일반적으로 측면에 출입문을 설치하는 것이 통례이지만, 여기서는 배면에 문을 둔 것이 이색적이다. 전체적으로 겉모습이 부드러우면서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건축물이다. (안내문, 기림사, 2015년)

약사전 앞에는 목탑터가 있다. 원래 약사전과 함께 하나의 독립된 영역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전 앞 목탑터>

대적광전 앞 마당 안쪽편에 있는 응진전은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큰 규모의 불전이다. 통일신라말에 조성된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응진전의 오랜 내력을 추정해 볼 수 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기림사 응진전
이곳은 아라한(阿羅漢)을 모신 건물로,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에 지어진 것으로 전하지만, 조선후기에 다시 중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은 기둥 6개의 5칸이고 측면은 2칸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막돌 장대석을 한단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앞.뒷면에는 둥근 기둥을 하고 옆면에는 네모기둥을 세웠다.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단정한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18세기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조선중기의 특징을 포함하고 있다. 대체로 수평적 느낌이 강한 단아한 건물이다.  (안내문, 기림사, 2015년)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내부>

응진전 앞 삼층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기림사가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지만 경주지방의 다른 사찰에 비해 석탑의 규모가 작은 편이다. 응진전과 함께 독립된 공간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앞 삼층석탑>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뒷편>

응진전 뒷편 축대를 쌓아 조성한 마당에는 여러 불전들과 요사채가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 조성한 건물들로 전통사찰 가람배치에서 볼 수 있는 규칙성은 없고 상황에 따라서 건물들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뒷편 축대를 쌓아 조성한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삼천불전>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OLYMPUS DIGITAL CAMERA<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성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범종각>

경주 기림사(祇林寺), 경북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함월산(含月山) 기림사는 천축국(인도)에서 온 광유성인이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고 불렀다. 그 후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원효대사가 사찰을 크게 확장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때에 대적광전을 건립하여 삼신여래를 봉안하였으며, 동쪽에는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서쪽에는 석조오백나한상을 모신 응진전을, 동쪽에는 삼층목탑과 정광여래사라각을, 남쪽에는 무량수전과 진남루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사리각은 없어지고, 삼층목탑은 그 터만 남아 있다. 대적광전은 보물 제833호로서 조선후기 맞배양식 건물이며, 유물전시관에 모셔져 있는 건칠보살상은 보물 415호로서 반가상 형태를 취한 보기 드문 보살상이다. 또한 웅진전 앞의 삼층석탑은 신라 말기의 석탑양식을 나타내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역시 대적광전에서 불사리와 함께 발견된 고려시대의 금은자사경들은 보룰 제959호로서 기림사의 오랜 역사와 사격(寺格)을 나타내는 성보이다. (안내문, 기림사, 2015년)

<출처>

  1. 안내문, 경주 기림사, 2015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5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년
  4. 삼국유사 권 제2 제2 기이 만파식적,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