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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거돈사지(사적 168호), 남한강 뱃길 부근에서 번창했던 사찰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절터인 거돈사지(居頓寺址, 사적 168호)이다. 중문, 탑, 강당, 승방, 회랑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통일신라 평지사찰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일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승방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많은 건물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이곳에는 많은 승려들이 머물렀으며, 여행자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서는 원공국사탑(보물 190호)과 탑비(보물 78호), 그리고 삼층석탑(보물 750호)이 남아 있었는데, 그 중 원공국사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와 현재는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다.

거돈사는 충주나 제천지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육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도로나 철도에서 먼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적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지도를 살펴보면 걸어서 여행을 하던 시절에는 중요 교통 요지였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남한강 뱃길의 주요 나룻터인 창말나루터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 여행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역원기능을 겸하면서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이 없어지면서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원주 거돈사지(사적 168호), 삼층석탑과 금당, 강당이 일렬로 나란히 배치된 1탑1금당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사찰이다. 통일신라 사찰 중에서는 보기 드문 가람배치이다. 금당 앞에는 회랑을 두었으며, 주변에 많은 건물터가 확인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찰 앞 중심 공간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보물 750호).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넓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삼층석탑을 올려놓고 있다. 축대가 넓은 기단과 같은 역할을 하여 안정감을 주면서 웅장하게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삼층석탑 뒷편에 있는 금당터. 금당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2층 건물로 추정되며, 지금의 금산사 미륵전과 비슷한 모습인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을 오르는 계단. 금당터는 잘다듬은 큰 화강석으로 축대를 쌓고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터 중앙에는 불상을 올려 놓았던 석재로 만든 대좌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기둥을 올려 놓았던 주춧돌.

SANYO DIGITAL CAMERA금당 뒷편에는 강당으로 보이는 큰 건물터가 있으며, 옆쪽에는 회랑으로 추정되는 긴 건물터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 뒷편 강당터로 보이는 건물터와 주위의 크고 작은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금당 옆쪽편으로는 승려들의 생활공간이자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 뒷편 건물터와 축대.

SANYO DIGITAL CAMERA절터 뒷편 언덕에는 원공국사탑(보물 190호)를 볼 수 있다. 원래 있던 승탑은 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복제품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원공국사탑(보물 190호, 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보물190호). 고려초 활동한 원공국사 지종(智宗)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에 입구에 있는 원공국사탑비(보물 78호)이다.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로 구성된 전형적인 탑비의 형태를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 머리는 험한 인상의 용의 얼굴을 하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 무늬로 거북등껍질을 표현하고 하고 있는데 그 안에 卍자와 연꽃무늬를 새겼다. 비석의 글은 당대 학자였던 최충이 글을 짓고, 김거운이 글씨를 썼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에서 출토된 석재들.

<출처>

  1. 안내문, 원주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중앙아시아의 불교조각

중국 신강 위그루 자치구에 위치한 호탄(和田)은 타림분지 남서쪽에 위치한 고대의 왕국이다. 옥(玉) 생산지였던 대월지(大月氏)가 있었던 곳으로 고대 동.서교역로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다. 한무제때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 서역문화와, 불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투루판은 한나라때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한인들이 거주한 이래로 당나라때 고창국을 비롯한 한족의 영향을 받은 지역으로 지역중심지였던 교하고성, 고창고성을 비롯하여 주변 계곡 등에 많은 불교 유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출토된 불상들은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상이 대부분이며, 그 형태는 인도와 중동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이 많다.

불교는 기원전 3세기경 아소카왕에 의해서 인도와 주변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2세기경에는 중앙아시아 박트리아를 비롯하여 실크로드 교역상에 있던 크고 작은 국가들을 통해서 중국에 전파되었다. 당시 불교가 크게 융성했던 지역으로는 대월지, 안식국이라 불린 파르티아, 강거라 불렸던 소그드, 쿠챠 등이 있다. 또한 서유기의 주인공인 현장이나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 등 많은 학승들이 실크로드를 경유해서 불교성지 순례를 다녀왔으며, 불경들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살/불법을 수호하는 신, 菩薩/天部像, 투루판, 6~7세기. 그리스 조각상에서 볼 수 있는 사실적인 표현이 특징인 간다라미술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머리 부분만 남아 있는 불상의 일부로, 보살이나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각 상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넓은 이마와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머리카락의 표현, 머리 장식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얼굴 표현에서는 이목구비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타니 탐험대가 교하고성(交河古城)과 무르툭에서 가져온 다른 불상과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불교조각
중앙아시아의 불교 조각은 미란, 호탄, 쿠차, 투루판 지역의 여러 유적에 전한다. 이 지역의 불교 조각은 소조상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양식과 도상은 간다라의 영향을 기반으로 하면서 지역적인 특징을 발전시킨 모습을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불교 조각의 대다수는 서역 남도(西域南道)의 대표적인 불교의 중심지인 호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외에도 투루판과 옛 언기국(焉耆國)에 속하는 카라샤르 지역의 예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불교전파 경로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주요 불교유적.

OLYMPUS DIGITAL CAMERA실크로드의 주요 거점도시였던 호탄과 카라사르에서 출토된 불교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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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佛像, 호탄(和田), 4~5세기.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이었던 호탄에 출토된 소조불상이다. 전형적인 간다라 불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호탄 출토의 소조상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 예이다. 얼굴의 전반적인 형태와 반쯤 감고 있는 눈의 형식적인 표현이 호탄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인 라와크 스투파에서 발견된 불상과 유사하다. 머리부분에는 물결치는 듯한 머리카락 표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무사, 武士像, 카라사르, 6~7세기. 언기국으로 알려진 중앙아시 카라사르에서 출토된 소조상이다. 틀을 이용해 대량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역 북도에 위치한 카라사르(Karashar)는 중국 문헌에 언기국(焉耆國) 또는 오이국(烏夷國)으로 기록되어있다. 이곳의 불교유적은 평지 사원과 석굴사원으로 이루어졌으며, 5~8세기로 편년되는 다양한 불상이 출토되었다. 쇼르축(Shorchuk), 식신(Shikshin)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여기 전시된 작품은 무사의 머리 부분이다. 영국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의 컬렉션에도 동일한 유형의 상이 전하고 있어, 틀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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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있는 나무 막대기, 木片, 호탄, 6세기, 공양자의 이름을 적어 불상 안쪽에 안치해 두는 주심목(主心木)이다. 앞뒤에 글씨가 있어, 공양자의 이름과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무늬 벽돌, 蓮花紋方甎, 투루판(吐谷渾) 토유크(吐浴溝), 8세기,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벽돌의 형태이다.

투루판 토유크 석굴사원에서 출토된 벽돌로, 사원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 본 활짝 핀 연꽃이 벽돌의 중앙 부분을 가득 채우며, 네 모퉁이에는 꽃봉우리가 작게 묘사되어 있다. 가장자리의 좁은 운양대에는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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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와 하포크라케스, 호탄, 2~3세기

세라피스는 이집트 프롤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4 ~ 30년) 시기에 새롭게 탄생한 신으로, 그리스의 제우스와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대좌에 앉아 있는 세라피스는 왼손에는 풍요의 뿔을 들고, 오른손은 나체의 소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른편에 서 있는 소년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데, 그는 세라피스와 종종 함께 숭배되었던 침묵의 신 하포크라케스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코끼리, 像, 쿠차(庫車) 쿰트라(庫木吐拉) 석굴사원, 8세기.

OLYMPUS DIGITAL CAMERA 코끼리, 像, 쿠차(庫車) 쿰트라(庫木吐拉) 석굴사원, 8세기.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코끼리 머리와 발을 표현한 부조이다. 간다라 지역과 서역북도의 불교 유적지에서 유사한 예가 보이며, 건축물의 기단부나 불상의 대좌 장식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호탄, 6~7세기

몇겹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연꽃 가운데에서 인물이 화생(化生)하는 순간을 묘사한 스투코로 만든 조각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세계인 정토(淨土)에서 태어날 때 연꽃에서 태어난다고 하는데, 연꽃은 청정함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불교 미술에 자주 이용되는 모티프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연꽃에서 태어나는 모습, 蓮花化生像

OLYMPUS DIGITAL CAMERA연꽃 속의 작은 불상, 蓮花中佛座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연꽃 속의 작은 불상, 蓮花中佛座像, 호탄, 6~7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6세기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6세기

스투코로 만든 광배의 테두리 부분으로, 연꽃 문양으로 장식된 띠와 불꽃무늬 일부가 남아 있다. 원래는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광배 파편, 光背破片, 호탄 부근, 6~7세기

여기 보이는 조각 파편 중에는 교각의 자세를 취한 불상, 꽃무늬, 기하학적 문양이 보인다. 호탄의 라왁 사원지에서 발견된 불상 광배의 일부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 이와 유사한 모습의 광배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고창고성 대불사 절터. 당대(唐)에 투루판에서 번성했던 국씨고창국의 도읍이었던 고창고성 중심부에 있는 절터이다. 이곳에서 현장법사가 머물면서 설법을 전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난 교하고성에 남아 있는 대불사 절터. 중앙아시아에 있었던 사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경주 함월산 기림사, 조선후기 경주지역 대표 사찰

경북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함월산(含月産, 해발584m) 자락에 자리한 기림사(祇林寺)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643년) 인도 승려 광유가 처음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전통사찰이다. 『삼국유사』에 신문왕이 파식적을 얻어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잠깐 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원효대사가 기림사를 크게 중창했다고 하나 기록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당시 기림사가 존재했던 것으로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불상에서 출토된 복장전적에 고려시대 전적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림사는 조선시대에 크게 번창하여 경주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크게 번창한 사찰답게 기림사에 남아 있는 불전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이후에 조성된 것들이다. 주불전인 대적광전(보물 833호)를 중심으로 동쪽에 약사전, 서쪽에는 응진전을 두고 있으며, 강당건물인 진남루가 대적광전 맞은 편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진남루는 기림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관아에서 운영했던 누각과 비슷한 규모와 형태의 건물로 조선후기 승병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적광전 앞 마당에는 통일신라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과 목탑터 등이 있다. 주불전인 대적광전이 있는 영역 옆쪽으로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조성한 삼천불전, 명부전, 관음전, 삼성각 등의 불전들과 요사채 등이 들어서 있다. 조선후기 경주부 관아의 후원을 받아 크게 번창한 사찰로 당시의 불교문화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림사 마당.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불전들은 낮은 기단위에 건물을 올려 놓고 있다. 평지사찰로서의 특징이 잘 남아 있다. 응진전 뒷편에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조성된 불전들과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다.

경주 기림사(祇林寺), 경북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함월산(含月山) 기림사는 천축국(인도)에서 온 광유성인이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고 불렀다. 그 후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원효대사가 사찰을 크게 확장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때에 대적광전을 건립하여 삼신여래를 봉안하였으며, 동쪽에는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서쪽에는 석조오백나한상을 모신 응진전을, 동쪽에는 삼층목탑과 정광여래사라각을, 남쪽에는 무량수전과 진남루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사리각은 없어지고, 삼층목탑은 그 터만 남아 있다. 대적광전은 보물 제833호로서 조선후기 맞배양식 건물이며, 유물전시관에 모셔져 있는 건칠보살상은 보물 415호로서 반가상 형태를 취한 보기 드문 보살상이다. 또한 웅진전 앞의 삼층석탑은 신라 말기의 석탑양식을 나타내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역시 대적광전에서 불사리와 함께 발견된 고려시대의 금은자사경들은 보룰 제959호로서 기림사의 오랜 역사와 사격(寺格)을 나타내는 성보이다. (안내문, 기림사, 2015년)

OLYMPUS DIGITAL CAMERA경주시 양북면에 위치한 기림사 입구. 기림사는 개울이 흐르는 울창한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평지사찰에 가까운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입구에 있는 승탑

OLYMPUS DIGITAL CAMERA기림사 들어가는 길. 개울 옆을 따라서 울창하면서 걷기 좋인길이 사찰 경내까지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림사 천왕문.

OLYMPUS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조선시대 관아에서 운영했던 누각처럼 생긴 큰 규모의 강당 건물인 진남루가 보인다. 진남루 내부는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병영이나 수영에서 운영했던 객사와 비슷한 규모와 형태이다. 승병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진남루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대적광전(보물833호)이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으로 인조 때 크게 중수하였다고 한다. 건물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다. 상당히 큰 규모의 불전이지만 낮은 기단에 건물을 세워 웅장하지만 위압감을 주지는 않고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내부에 모셔진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958호)과 뒷편 탱화인 비로자나삼불회도(보물1611호).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앞. 축대를 쌓아 조성한 산중사찰과는 달리 편안한 느낌을 준다. 탑이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평지사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림사 동쪽편에 있는 약사전.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크지는 않지만 단정하면서 균형감이 잘 잡혀 있다.

기림사 약사전
이 건물은 1600년대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기림사 약사전이다. 사적기에 대적광전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으며, 중건기에는 조선 효종 5년(1654)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숙종 4년(1678) 약사법당을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므로 약사전은 1600년대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얕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건립되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으로 꾸몄다. 일반적으로 측면에 출입문을 설치하는 것이 통례이지만, 여기서는 배면에 문을 둔 것이 이색적이다. 전체적으로 겉모습이 부드러우면서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건축물이다. (안내문, 기림사, 2015년)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전 앞 목탑터. 원래 약사전과 함께 하나의 독립된 영역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앞 마당 안쪽편에 있는 응진전. 앞면 5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큰 규모의 불전이다. 통일신라말에 조성된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응진전의 오랜 내력을 추정해 볼 수 이다.

기림사 응진전
이곳은 아라한(阿羅漢)을 모신 건물로,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에 지어진 것으로 전하지만, 조선후기에 다시 중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은 기둥 6개의 5칸이고 측면은 2칸으로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막돌 장대석을 한단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앞.뒷면에는 둥근 기둥을 하고 옆면에는 네모기둥을 세웠다.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단정한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18세기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조선중기의 특징을 포함하고 있다. 대체로 수평적 느낌이 강한 단아한 건물이다.  (안내문, 기림사, 2015년)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앞 삼층석탑.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기림사가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지만 경주지방의 다른 사찰에 비해 석탑의 규모가 작은 편이다. 응진전과 함께 독립된 공간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뒷편.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뒷편 축대를 쌓아 조성한 마당. 여러 불전들과 요사채가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 조성한 건물들로 전통사찰 가람배치에서 볼 수 있는 규칙성은 없고 상황에 따라서 건물들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천불전.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OLYMPUS DIGITAL CAMERA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성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범종각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문화콘텟츠닷컴, 한국콘텐츠진흥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대구 관암사, 기도처인 갓바위 아래 작은 사찰

대구광역시 동구 능성동 팔공산 갓바위가 있는 관봉(해발850m) 정상 아래에 있는 관암사이다. 관암사는 갓바위를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사찰이다. 관암사는 갓바위로 불리는 석조여래좌상이 조성된 통일신라때부터 존재했으며,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관암사는 1962년에 새로 중건되었으며, 1963년 갓바위로 불렸던 불상이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전통사찰로서의 내력이 있는 곳은 아니고 불전 또한 대부분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주불전인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약사전, 관음전, 삼성각, 요사채 등의 전각들이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배치되어 있다. 갓바위를 오르는 신도들이나 등산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찰이다.

팔공산 관암사, 대구광역시 동구 능성동
신라오악의 중심 산이자 민족의 영산인 팔공산 정기가 남으로 흘러 모인 관봉정상에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인자한 모습으로 중생들을 맞이하고 계신다. 이 부처님은 신라의 불교전성기에 조성되어 신앙과 불교 미술적가치가 매우 놓은 불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선조의 억불정책으로 말미암아 불자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당시 관암사도 폐사의 비운을 안게 되었다. 한때는 가뭄이 들면 무지한 지역백성들이 불상 앞에 기우제를 지내면서 불을 피워 부처님을 까맣게 그을리고 무속인들이 굿을 하는 등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다. 그러던 중 한국불교태고종 제14세 종정 백암대종사께서 기도중 불상을 발견하고 터만 남은 이곳이 중생들의 안식처가 되도록 하리라는 서원을 세우시고 1962년 3월 관암사를 창건하면서 갓바위까지 길을 닦고 속칭 미륵불로 불리던 부처님을 약사여래불로 명명하여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로 등재함으로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처럼 갓바위 부처님은 관암사 개산조인 백암대종사의 원력에 의해 다시 빛을 보게 되었으나 1970년 소유권분쟁에 휘말려 지금은 관리권이 선보사로 넘어가 잇는 상태다. 관암사 창건당시에는 도로가 없어 부실한 건재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건물이 노후되는 바람에 2대 주지인 혜공 화상이 2004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2010년 5월 대웅전등을 낙성함으로서 가람의 형태를 일신하게 되었다. 관암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관음전 지장전 칠성각 산신각 종각 용왕당 요사 등 12동의 전각을 보유하여 전통가람의 면모를 갖추고 팔공산의 정기를 간직한 영험 기도도량으로 사부대중이 수행정진과 중생교화에 매진하고 있다. <출처:관음사>

OLYMPUS DIGITAL CAMERA대구 팔공산의 대표적인 기도처인 갓바위 아래에 위치한 관암사. 갓바위가 있는 관봉(해발 850m) 정상을 오르는 등산로 중간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암사 아래 등산로.

OLYMPUS DIGITAL CAMERA관암사 주불전인 대웅전.

OLYMPUS DIGITAL CAMERA관암사 약사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아래쪽에 최근에 조성한 석탑이 세워져 있고 양쪽에 관음전과 지장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지정전과 요사채. 전통 사찰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음편 관음전.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아래쪽에 위치한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관암사 아래를 흐르는 개울에 갓바위가 있는 정상을 향해 기도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개울 건너편 한적한 곳에 위치한 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아래 갓바위를 찾는 신도들이 잠시 목을 축일 수  있는 작은 샘물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팔공산의 대표적인 기도처인 갓바위. 머리에 관직을 상징하는 갓모양 관을 쓰고 있어 특히 수험생 부모들에게 인기있는 장소이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영천 팔공산 은해사 거조암, 고려중기 불교개혁 운동이 시작된 유서깊은 사찰

경북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에 위치한 거조암(居祖庵)이다.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은해사(銀海寺)의 부속 암자이지만 원래는 별도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이 창건된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통일신라 때 거조사(居祖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거조암은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중 하나인 영산전(국보 14호)을 주불전으로 하고 있으며, 요사채 2동과 누각이 있는 작은 암자의 규로를 하고 있다. 많은 전각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화재 등으로 소실되고 지금의 전각들은 최근에 새로 지은 것들이다.

거조암은 고려중기 정혜결사 운동을 이끈 지눌이 머물렀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정혜결사는 지눌을 중심으로 개경 중심의 보수화된 당시 불교를 비판하고 불교 본원의 모습을 찾고자 했던 개혁운동으로 지눌은 이곳에서 처음 정혜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뒤 거조암의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없지만 주불전인 영산전의 규모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 개혁운동을 이끈 사찰답게 영산전에는 수행자를 상징하는 부처의 제자인 오백나한을 같이 모시고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천 은해사 거조암. 고려중기 불교개혁 운동이 시작된 유서깊은 사찰이지만 지금은 은해사에 딸린 작은 암자 규모로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거조암 들어오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암자 출입문 역할을 하는 2층 누각.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을 들어서면 고려말에 지어진 영산전(국보 14호)와 삼층석탑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다. 기단과 탑신의 비례의 조형미는 양호하나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산전 자리에 불전이 세워졌을때 같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거조암 주불전인 영산전(靈山殿, 국보14호). 이 건물은 현존하는 목조건축물 중 비교적 이른 시기인 고려말(1375년)에 처음 지어졌다. 자연석과 장대석으로 기단을 높게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소박하고 간결한 건물이지만 사찰 불전 중에서는 큰 규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이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양식을 하고 있는데, 고려말.조선초 주심포양식을 충실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불전들과는 달리 문살이 있는 분합문 대신 벽을 사용하고 있으며, 가운데 출입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 앞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에는 삼존불과 함께 오백나한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중기 지눌을 중심으로 한 정혜결사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으로 수행자를 중시하는 거조암의 성격이 잘 반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 뒷편 산신각. 1칸 규모의 단촐한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 왼쪽편에 위치한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요사채 건물.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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