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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조사당(국보), 고려 이전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는 전각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 경내에 있는 조사당(국보)이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 초상을 모시는 건물로 무량수전 뒷편 언덕 숲길을 따라서 조금 걸어가면 볼 수 있다. 조사당 앞에는 의상대사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 전해지는 어사화가 있고, 동쪽에는 사명대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취현암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사천왕상 등이 그려진 고려시대 벽화(국보)가 있다.

조사당은 고려 말 (1377년)에 세워졌으며, 여러차례 수리를 거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3칸, 옆면1칸의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을 하고 있는 작은 건물이다. 앞면 가운데에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양쪽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 고려말에 지어졌지만 삼국시대 이래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불전 건축 양식이 많이 남아 있어 건축의 역사에서 중요한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부석사 조사당(국보).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 초상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전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3칸 규모로 주심포 공포를 비롯하여 앞면이 벽으로 되어 있는 등 고려시대 이전 건축 양식이 잘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사당 현판. 세로 쓰기를 하고 장식 등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고려시대 목조 건축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주심포 양식의 공포.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데, 벽면 가운데 작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고려시대와 이전 건축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양쪽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작은 광창을 두고 있다. 무량수전과 마찬가지로 배흘림기둥을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국보19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11-20151009조사당 내부 벽면에 있던 벽화(국보 19호). 사천왕상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벽화는 일제강점기에 떼어내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조사당 앞에 심어진 어사화.

조사당 선비화
선비화의 학명는 골담초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하여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고 잎이 피었다고 한다. 1300년 이상 조사당 처마 밑에서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서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주고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를 보고 시를 짓기도 하였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부석사는 통일신라 화엄십찰을 대표하는 사찰로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부석사에는 주불전인 무량수전(국보18호)과 조사당(국보19호) 등 대표적인 불교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건물들은 경사진 언덕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경주 불국사와 함께 한국적인 사찰 건축의 모범이 되었던 곳이다. 예산 수덕사, 안동 봉정사 등 많은 사찰들이 부석사와 비슷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사당 옆에 있는 작은 암자. 사명대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2009년 모습.

부석사 조사당, 국보 19호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의 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고려 우왕 3년(1377)에 세웠고, 조선 성종21년(1490)과 선조 6년(1573)에 다시 고쳤다. 고려 신종 4년인 1201년 단청을 하였다는 기록도 확인된 바 있어 조사당이 세워진 연원은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무량수전과 같이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물인 공포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설치한 주심포양식이다. 출입문 좌우 안쪽 벽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제석천과 범천 그리고 사천왕상이 있었는데, 1916년 건물을 수리하면서 떼어 내어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지금은 부석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원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고분벽화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채색 벽화이다. 현재 조사당 내부에 있는 벽화는 새로 그린 것이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있는 당간지주(보물)이다. 부석사를 오르는 은행나무길이 끝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다. 깃발을 다는 장대를 지탱해 주는 높이 428 m의 돌기둥이 1 m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기둥사에느는 연꽃장식이 있는 당간을 받치는 받침돌이 있다. 외형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간결하면서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외형이나 조각수법 등을 고려해 볼 때 통일신라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는 통일신라 화엄십찰을 대표하는 사찰로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부석사에는 주불전인 무량수전(국보)과 조사당(국보) 등 대표적인 불교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건물들은 경사진 언덕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경주 불국사와 함께 한국적인 사찰 건축의 모범이 되었던 곳이다. 예산 수덕사, 안동 봉정사 등 많은 사찰들이 부석사와 비슷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OLYMPUS DIGITAL CAMERA2개의 당간지주 사이에 있는 당간을 받쳤던 받침돌.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 오르는 길에서 보이는 당간지주

SANYO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2009년 가을.

부석사 당간지주, 보물 255호
절에 법회나 기도 등의 행사가 있을 때 절의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깃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기둥의 높이는 428 cm이며, 마주보는 안쪽 측면과 바깥쪽 측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앞면과 뒷면에는 3줄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다. 당간지주 윗부분 안쪽에는 깃대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모양의 홈이 파여 있다. 기둥 사이에 놓인 정사각형의 받침돌 위에는 연꽃을 조각하고 중앙에는 직경 30 cm의 구멍을 뚫어 당간의 밑면을 받칠 수 있게 하였다. 대체로 가늘고 길면서도 안정감을 주며, 꾸밈을 두지 않아 소박한 느낌을 주는 지주이다. 간격하고 단아한 각 부분의 조각기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9세기 전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부석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보물), 가야산 고갯길 입구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

경북 성주군 수류면 백운리 법수사(法手寺)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이다. 높이 6 m로 비교적 큰 규모로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을 새겼으며, 위층 기단과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일반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에 비해 1층 기단이 높게 만들었다. 해인사 부근 월광사지 삼층석탑과 비슷한 양식이다. 전체적으로 약간 불안정하게 보이며 전체적인 조형미는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법수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때(802년)에 창건된 사찰로 성주에서 해인사로 넘어가는 서성재 고갯길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500 m 정도의 가야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산지 사찰로 전망이 좋은 곳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각들이 있는 큰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었다. 주위에 형성된 마을 규모로 당시 사찰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큰 금당터가 남아 있는데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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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보물). 높이 6 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삼층석탑이 가야산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아래층 기단에는 각 면에 안상이 3개씩 새겨져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아래층 기단을 높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져놓고 있다. 지붕돌은 얇게 만들어졌으며 모서리를 치켜올려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앞에 놓여진 석물. 연꽃모양을 조각해 놓은 것으로 석등받침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설명이 없다. 석탑과 너무 가까이 있어 원래 위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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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삼층석탑.

OLYMPUS DIGITAL CAMERA절터는 가야산 중턱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석탑이 있는 주불전 영역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빼어나다. 사찰을 조성할 때 해가 떠는 동쪽을 향해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영주 부석사, 구례 화엄사, 합천 영암사지 등에서 볼 수 있는 공간배치로 화엄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옆쪽에 남아 있는 큰 규모의 금당터.

OLYMPUS DIGITAL CAMERA금당터에 모아 놓은 절터에 남아 있던 석재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입구에서 본 모습. 경남 합천군과 경북 성주군을 경계짓는 가야산 줄기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편에서 본 모습. 주위에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법수사의 옛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법수사지삼층석탑, 보물 1656호, 경북 성주군 수류면 백운리
이 탑은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창건된 사찰인 법수사에 조성된 높이 6 m의 3층석탑이다. 대가람으로 전해지는 법수사(法手寺)는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고 석탑과 금당터의 거대한 석축,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 경순왕의 제자인 김황(나주김씨의 비조)이 승려가 되어 법명을 범공이라 하고 법수사에 머물면서 해인사에 드나들며 산승으로 일생을 마쳤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또한 9개의 금당과 8개의 종각에 1,000여 칸이 넘는 건물이 있었다고 하였으니 대가람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석탑은 이중의 기단과 3층의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륜부는 파손되었다. 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3구씩의 안상을 조각하였고, 위층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옥개석은 밑면의 받침이 5단이며, 네 귀퉁이가 위로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작고 네모진 받침 위로 엎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있다. 이 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에 비해 아래층 기단이 높은 것이 특징으로, 이러한 양식상의 변화를 볼 때 신라 말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성주군성, 2017년)

<출처>

  1.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합천 월광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경남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월광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보물)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높이 5.5 m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 특별한 장식은 없다. 2기의 탑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약간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어 조성연대가 다를 것으로 추청되고 있다. 몸돌에 비해 아래층 기단이 약간 크다는 느낌을 주지만 전체적인 조형미나 세부 조각수법은 양호한 편이다.

석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월광사지는 해인사에서 흘러 내려온 가야천과 그 지류과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2기의 석탑 외에 절터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절터로 볼 때 사찰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조선시대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가야 태자가 창건했다는 기록 외에는 사찰 내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해인사를 중심으로 가야산에 세워졌던 여러 사찰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합천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으로 2기의 석탑이 나란히 서 있는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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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사지 동삼층석탑. 높이 5.5 m 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기단부를 약간 크게 만들었으나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나 조각수법 등은 양호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의 덮개돌을 8개의 부재로 구성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이며, 아랫층 덮개돌의 경사가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얇고 모서리를 살짝 들어올려 경쾌한 느낌을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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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뒷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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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5.5 m의 월광사지 서삼층석탑. 도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기단부의 형태가 동탑과 다른 양식을 사용하고 있어 다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층 기단 윗부분의 경사가 거의 없는 편이며, 몸돌 가운데 2개의 기둥을 새겨놓은 것이 특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탑 탑신부. 동탑과 마찬가지로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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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뒷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2기의 삼층석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절터. 석탑 외 절터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나 건물터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뒷편에 새로 세워진 작은 사찰.

합천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보물129호, 경남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이 석탑은 월광사지의 동.서로 배치되어 있는 쌍탑으로, 서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최근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중기단에 삼층 몸돌을 갖춘 전형적인 신라 탑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탑의 높이는 5.5 m이다. 이 두 탑은 전체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만든 방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어 같은 연대에 세워진 것이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월광사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월광태자)이 창건하였다고 해서 월광사라고 한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석등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영암사지(사적) 절터에 남아 있는 쌍사자석등(보물)이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석등으로 금당터 앞 석축 위에 세워져 있다. 석등은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2마리의 사자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받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 2마리의 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마주선 모습인데 갈기와 꼬리, 근유 등을 사실적을 표현하고 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고 4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놓고 있다.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와 비슷한 형태이며, 통일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영암사지는 합천군 황매산 남쪽 자락에 있는 통일신라 절터이다. 창건연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으나 고려 때 적연선사가 입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망이 아주 좋은 황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축대를 쌓아 인공적으로 절터를 조성했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절터에는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삼층석탑(보물 480호)와 거북받침돌(보물 489호) 2기가 남아 있으며, 금동여래입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물과 건축부재 등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두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석등으로 생동감있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등을 8각을 기본 평면으로 하고 있다. 아래 받침돌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받침돌에는 기둥형태 대신 2마리의 사자를 조각해 놓았다. 사자의 갈퀴, 꼬리, 몸통의 근육 등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을 밝히는 화사석, 쌍사자에 비해 조각 수법이나 조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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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석등.

OLYMPUS DIGITAL CAMERA금당 앞에 별도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석등이 올려져 있다. 석축 옆에는 석등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계단이 있다. 석등 아래에 삼층석탑이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황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영암사지. 영주 부석사처럼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건물터를 조성했다. 절터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보물 353호,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영암사터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1933년경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 사자를 배치한 가운데 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기본 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받침돌에는 연꽃이 조각되었고 그 위로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서 있다. 사자의 뒷발은 아래받침돌을 딛고 있으며, 앞발은 들어서 윗받침돌을 받들었다.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퀴와 꼬리, 근육 등이 사실적이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을 8각으로 얇고 평평하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조각이 솟아 있다. 각 부분의 양식이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에 비해 다소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제 5호)과 견줄 수 있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