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불교조각

여수 흥국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보물 1566호)

전남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 무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 1566호)이다. 조선중기 인조 때 조각상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으로 지장보살 삼존상과 시왕.권속들을 표현한 21점의 불상들과 발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장보살상은 동그란 얼굴에 살이 적당히 올랐으며, 신체에 표현된 옷주름은 신체의 굴곡과 양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시왕와 권속상의 각각의 특징과 역할을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17세기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발원문을 통해 조성주체와 연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또는 지장전은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공간으로 오늘날 대부분 사찰에서는 이 불전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연대가 오래된 곳은 많지 않다. 이 불상은 조성 연대가 비교적 오래된 편이며 임진왜란 당시 승병으로 참전하면서 많은 희생자가 있었던 흥국사의 호국사찰로서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 1566호). 지장보살을 표현한 불상 중 그 연대가 비교적 오래되었으며 조각수법 또한 뛰어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무사전. 지장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임진왜란 때 희생된 승병과 신도 등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흥국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 일괄 및 복장유물, 보물 1566호
흥국사 무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삼존상을 비롯한 시왕.권속일괄은 1648년(인조26년) 수조각승 인균을 비롯한 12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이다. 지장보살상은 동그란 얼굴에 살이 적당히 올랐으며, 부푼 눈두덩 사이로 짧게 치켜 올린 눈이 인상적이다. 단정한 신체에 표현된 옷주름은 강직한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을 잘 조화시켜 신체의 굴곡과 양감을 잘 살려내었다. 시왕과 권속상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개성적인 특징과 역할을 다양한 표현력과 연출력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다. 이 조각들은 17세기 불상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장보살삼존을 비롯한 권속들이 모두 존속하고, 조성주체와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발원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내문, 여수 흥국사, 2012년)

  1. 안내문,여수 흥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여수 흥국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1550호)

전남 여수시 중흥등 흥국사에 있는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1550호)이다. 사찰 주불전인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상으로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보살로 두고 있다. 17세기에 조성된 목조불상으로 조각수법이 뛰어나고 양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조선후기 불상 중 드물게 보살상을 협시로 두고 있으며, 조각수법이나 양식 등에서도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불상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흥국사 대웅전에 모셔진 석가여래삼존상(보물 1550호), 조선후기 불상 중 드물게 협시보살을 두고 있다.

흥국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보물 1550호
흥국사 대웅전 주존불인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제화갈라보살입상, 미륵보살입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좌우 보살상의 보관 뒷면에 새겨진 글을 통해 1628~1644년(숭정 연간)에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전라도 지역 불상의 양식적 특징과 개성을 보여주고 있는 목불로서, 조각 수법도 매우 뛰어나서 몸체의 양감 표현과 옷자락의 자연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과 발의 표정 또한 잘 살아 있고, 특히 제화갈라보살입상과 미륵보살입상의 옷주름의 표현은 몸체의 귢여과 변화를 절묘하게 조화시키고 있으며, 장신구의 자연스러운 곡선 표현도 유려하다. 17세기 전반의 불상으로 이와 같은 크기의 보살상을 동반한 삼존불이 드물다는 점과 도상과 양식 면에서 대표적인 불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안내문, 여수 흥국사, 2012년)

  1. 안내문,여수 흥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국보 201호), 통일신라 초기를 대표하는 불상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절터에 남아 있는 마애여래좌상(국보 201호)이다. 이 불상은 자연암벽을 파서 석굴사원 형태의 공간을 만들고, 높이 4.3 m의 거대한 불상을 조각해 놓았다. 얼굴은 크고 널직하여 양감이 풍부하며, 체구는 당당한 편으로 남성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불상 뒷편에는 광배가 조각되어 있는데 작은 부처가 곳곳에 조각되어 있다. 얼굴을 형태나 신체의 표현 등을 고려해 볼 때 주변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등과 비슷한 통일신라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크고 웅장하며 양식적으로 통일신라초기 경북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불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국보 201호). 높이 4.3 m의 거대불상이다. 일반적인 석조불상처럼 보이지만, 바위에 새긴 마애불상으로 입체감이 돋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얼굴 뒷편 머리광배에는 연꽃무늬를 정교하게 새겨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몸체 뒷편 광배에 새겨진 작은 불상.

OLYMPUS DIGITAL CAMERA또다른 작은 불상.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마애여래좌상. 바위에 돋을새김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보호각에 모셔진 불상. 불상이 있는 이곳은 봉화읍에서 십여리 정도 떨어져 있으며, 부석사와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 500여 명의 승려들이 수행했다는 ‘한절’이라는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가을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국보 201호
경상북도 봉화군 북지리에는 신라시대의 ‘한절’이라는 대사찰이 있었고, 부근에 27개의 사찰이 있어 500여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마애불은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 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다.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며 전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 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까지 덮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장중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불상 뒤편의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불상을 만든 시기는 얼굴이나 신체에 표현된 부드러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영주 가흥동 마애삼존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제221호)과 함께 이 시기 영주·봉화 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보물 680호)

경북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보물 680호)이다. 이 불상은 바위에 4면에 불상을 새겼던 것으로 지금은 삼존불상만 형체를 알아볼 수 있으며, 나머지 면은 닳아서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얼굴의 형태나 옷주름의 표현, 광배 등에서 불교가 전래되었던 삼국시대에 많이 조성되었던 바위에 새긴 삼존불상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 입체감있으며, 표현이 부드러운 편이다. 불상의 규모가 크지는 않으며, 조각수법이나 양식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인근 영주 가흥동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보물 221호)와 비슷한 형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보물 680호). 바위의 4면에 불상을 새긴 사방불상으로 지금은 앞면의 삼존상만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 사방불상 중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본존불과 협시보살상 얼굴. 뒷면에 불꽃무늬 형태의 광배를 새겨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
가운데 높이 149 cm의 본존불. 결과부좌를 하고 있는 여래를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양쪽 옆에는 보관을 쓰고 있는 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반대편에서 본 모습. 단순하면서도 입체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옆면.

OLYMPUS DIGITAL CAMERA
옆면 불상은 그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 옆면.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은 길 옆 논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 지금은 보호각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 보물 680호, 경북 영주시 이산면 한성로
이 불상은 삼국시대 말기 또는 통일신라 시대 초기에 돌에 새긴 불상이다. 바위 네 면에 형상을 도드라지게 새긴 이 석불은 일부 닳았지만 한 면의 삼존불상만은 뚜렷하다. 결가부좌한 본존불이 가운데 앉아 있고, 양 옆에 본존을 모시는 보살이 서 있다. 본존불은 민머리에 얼굴이 가름하며 어깨가 딱 벌어져 있다. 양 어꺠를 덮은 옷은 앞가슴이 U자형으로 터졌으며 여기에 속옷을 맨 띠 매듭이 표현되었다. 양 옆에서 본존을 모시는 보살 역시 불꽃 무늬가 새겨진 두광을 지니고, 머리에 관을 썼는데 체구에 비해 얼굴이 크고 어깨가 좁으며 옷자락이 묵직한 점 등이 본존불의 양식과 비슷하다. 이러한 특징은 다른 세 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고 있어 이 불상은 7세기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사방 불상으로 높이 평가된다. 본존 불상의 높이는 149 cm이고, 본존을 모시는 양 옆 보살상의 높이는 좌우 각각 108 cm와 112 cm이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221호)

경북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221호)이다. 영주시 도심 서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서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긴 마애삼존상과 작은 여래좌상이다. 삼존상는 큼직한 체구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보살이 새겨져 있다. 본존상은 큼직한 코, 다문입, 둥글고 살찐 얼굴 등에서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은 둥글고 원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남성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데, 오른쪽 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보병을 들고 있다. 삼국시대 삼존불상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사실적이며 생동감이 넘치는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옆에 있는 여래좌상도 크기는 작지만 생동감이 넘치며 조각수법도 양호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221호). 영주 도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서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애여래삼존상(보물 221호). 삼국시대 삼존불상 양식을 따르면서도 사실적이며 생동감이 넘치는 통일신라 불상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마애삼존여래좌상. 입체감있게 표현한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2003년 새로 발견된 마애여래좌상.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새겨진 바위. 아래쪽에는 삼한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암각화가 있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곳으로 보인다.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보물 221호, 경북 영주시 가흥동
이 불상은 커다란 자연 화강암벽을 쪼아서 가운데 넓은 면에는 앉아 있는 형상의 본존을, 좌우에는 서 있는 형상의 협시보살을 조각하였다. 가운데 본존상은 상당히 큰 체구로 백발의 머리 위에 큼직한 상투 모양이 표현되어 있다. 얼굴을 팽팽한 뺨, 큼직하고 듬직한 코, 꽉 다문 입 등으로 장중하면서도 활력이 넘친다. 왼쪽 보살상은 가슴이 넓고, 왼팔은 어깨 위로 걸치고 오른팔을 배에 댄 표현 등에서 남성적인 느낌이 든다. 오른쪽 보살상은 비슷한 수법으로 표현되었지만, 보관에 보병이 묘산된 점이나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점은 다르다. 만들어진 시기는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2003년에 새로이 발견된 여래좌상은 목에 삼도가 뚜렷하며 전체적으로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