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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경북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이다. 영주시 도심 서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서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긴 마애삼존상과 작은 여래좌상이다. 삼존상는 큼직한 체구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보살이 새겨져 있다. 본존상은 큼직한 코, 다문입, 둥글고 살찐 얼굴 등에서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보살상은 둥글고 원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남성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데, 오른쪽 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보병을 들고 있다. 삼국시대 삼존불상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사실적이며 생동감이 넘치는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옆에 있는 여래좌상도 크기는 작지만 생동감이 넘치며 조각수법도 양호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영주 도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서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애여래삼존상(보물). 삼국시대 삼존불상 양식을 따르면서도 사실적이며 생동감이 넘치는 통일신라 불상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마애삼존여래좌상. 입체감있게 표현한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2003년 새로 발견된 마애여래좌상.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새겨진 바위. 아래쪽에는 삼한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암각화가 있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곳으로 보인다.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보물 221호, 경북 영주시 가흥동
이 불상은 커다란 자연 화강암벽을 쪼아서 가운데 넓은 면에는 앉아 있는 형상의 본존을, 좌우에는 서 있는 형상의 협시보살을 조각하였다. 가운데 본존상은 상당히 큰 체구로 백발의 머리 위에 큼직한 상투 모양이 표현되어 있다. 얼굴을 팽팽한 뺨, 큼직하고 듬직한 코, 꽉 다문 입 등으로 장중하면서도 활력이 넘친다. 왼쪽 보살상은 가슴이 넓고, 왼팔은 어깨 위로 걸치고 오른팔을 배에 댄 표현 등에서 남성적인 느낌이 든다. 오른쪽 보살상은 비슷한 수법으로 표현되었지만, 보관에 보병이 묘산된 점이나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점은 다르다. 만들어진 시기는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2003년에 새로이 발견된 여래좌상은 목에 삼도가 뚜렷하며 전체적으로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팔부중상,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장

국립중앙박물관 1층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팔부중상이다. 석탑 기단부를 장식했던 것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장을 모습을 돋을새김으로 표현하고 있다. 팔부중은 팔부신장(八部神將) 또는 천룡팔부(天龍八部)라고도 부른다. 대승불교 경전에 주로 나타나며 탑마다 표현된 모습이 다르고 배치와 형태도 일정하지 않다. 원래 인도의 다양한 토착신들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불국토를 수호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 중 천.용.야차는 인도에서 보편적으로 숭상되었던 신이며, 건달바.아수라.긴나라,구반다 등은 토착신으로 인도 신화에 등장한다.

OLYMPUS DIGITAL CAMERA팔부중상 중 천(天)과 야차(夜叉), 천은 천계에 사는 여러 신을 말한다. 천계는 27천으로 구분되며, 그 으뜸은 도리천이다. 27천에는 각각의 천(天)이 존재하는데, 최고의 천(天)은 도리천의 주인인 제석천이다. 야차(夜叉)는 인도신화에 나오는 존재로 추악하고 무섭게 생긴 사나운 귀신으로서 사람을 괴롭히거나 해치고 다닌다. 불교에서는 북방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팔부중상 중 아수라(阿修羅), 건달바(乾達婆), 아수라는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신의 혼혈인 반신으로 천신인 인드라에 대적하는 악한 무리로 나타난다. 건달바는 음식을 먹지 않고 향을 즐기며 음악을 연주하는 신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가루라(迦樓羅)와 용(龍). 가루다는 인간의 몸체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발톱 등을 갖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며 금시조(金翅鳥)라고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달바와 아수라.

팔부중, 통일신라, 출토지 미상
석탑 기단부에는 부처님의 법(法)을 수호하는 여덟 명의 신들인 팔부중상(八部衆像)이 새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탑마다 그 새겨진 모습이 경전에 기록된 것과 다르고, 배치와 형태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 팔부중상은 배열이 일정치 않고 조각 양식 또한 서로 달라 비슷한 시기에 다른 탑에 조각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천(天), 야차(夜叉), 아수라(阿修羅), 건달바(乾達婆), 가루라(迦樓羅), 용(龍)으로 보이며, 또 다른 석탑의 부재로 보이는 돌에 새겨진 것은 건달바와 아수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출처>

  1. 중앙박물관
  2. 위키백과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중앙박물관 인도.동남아실] 히말라야 지역의 불교조각

인도아대륙 북부 히말라야 산맥 주변 지역에서는 불교미술 후기 양식을 꽃피웠다. 불교가 크게 융성했던 간다라지역 북부에 위치한 카슈미르 지역에서는 간다라미술의 영향을 받아 금속제 불상을 많이 만들었으며 히말라야지역 불상 양식에 기반이 되었다. 네팔과 티베트에서는 카슈미르와 동인도, 중국 등 영향을 받고 지역의 전통과 융합되어 새로운 특색을 보여주는 불상들이 만들어졌다. 금속제 불상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지역불교의 성격이 반영되어 밀교적인 성격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히말라야 지역의 불교조각
히말라야 산맥 주변에 위치한 카슈미르, 라다크, 네팔, 티베트, 부탄지역에서는 인도아대륙에서 시작된 불교미술의 후기 양식이 꽃을 피웠다. 이 지역에서는 금속제 불상이 다수 제작되었는데 대부분 밀교계에 속한다. 페샤와르 분지 북쪽에 위치한 카슈미르 지역은 기원 전후부터 5세기까지 간다라의 영향 속에서 불교미술이 발전했다. 간다라의 불교미술이 쇠한 이후에는 굽타 미술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카슈미르의 금속제 불상은 히말라야 지역 불상 양식의 기반이 되었다. 네팔과 티베트에서는 카슈미르, 동인도 팔라 왕조와 중국 등에서 유입된 도상과 양식이 이 지역의 전통과 융합되어 새로운 지역 특색으로 자리 잡은 후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13세기에는 네팔의 장인이 티베트에서 탕카와 조각상을 제작하는 등 두 지역은 불교미술의 발전에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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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보살, 카슈미르, 9세기. 황동으로 만든 보살상으로 인도 전통의 힌두교 조각상과 비슷한 양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긴장감과 우아함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황동연화수보살상이다. 왼손에는 기다란 연꽃 줄기를 잡고 있고 오른손에는 염주를 들고 있다. 은 상감으로 표현한 눈과 백호(白毫), 화염문의 표현에서 카슈미르 불상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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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 스와트, 7~8세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관음보살상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반신은 긴 도티(dhoti)를 두르고, 왼쪽 어깨에는 영양의 가죽을 걸치고 있다. 눈과 백호는 은으로, 입술은 동으로 상감하여 표현했는데, 이러한 특징은 이후 카슈미르 불상에서도 발견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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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 서티베트, 14세기, 지혜의 칼을 들고 있는 문수보살상으로 밀교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밀교에서 문수보살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지혜의 보살로 인식되며, 다양한 존재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난다. 그 중 하나가 이 작품에 형상화된 아라빠짜나(Arapachana)이다. 이 명칭의 5음절은 불교의 5가지 기본 가르침에 해당하는 용어에서 따온 것이다. 이 보살은 오른손에 지혜의 칼을 들고 무지의 장막을 잘라내어 절대적인 진리를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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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15세기, 티베트.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표현의 불상으로 동아시아 불상과 비슷해 보인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한 모습으로, 편단우견으로 얇게 표현된 법의는 신체에 밀착되어 불신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법의의 끝단은 구슬띠로 장식하였고, 왼쪽 어깨에 잡히는 주름을 형식화하여 표현하였다. 15세기 티베트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예로, 균형잡힌 모습과 절제된 표현이 돋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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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싯다 비루파, 티베트, 16세기, 티베트에서 성행했던 밀교의 특징을 보여주는 불상이다. 나한상과 비슷한 성격으로 보인다.

마하싯다(Mahasiddha)는 특별한 재능이나 위력을 지닌 위대한 종교적 스승을 가리키는 말로, 이 상은 84명의 마하싯다를 열거하는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비루파(Virupa)는 9세기 인도에서 살았던 인물로 84 마하싯다 중 신통력이 가장 뛰어났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세부묘사가 상세한 조각상은 일반적으로 비루파에 대한 예배와 명상용으로 제작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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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 네팔, 14세기,

네팔의 금동상은 동의 함량이 높아 청동부분이 어두운 붉은 빛을 띠며, 표면에 금을 두껍게 입힌 것이 특징이다. 후대의 예에서는 이 작품처럼 준보석을 상감하여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 불상의 특징인 넓은 얼굴과 매부리코를 지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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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 서티베트, 13세기, 보관을 쓰고 있으며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장식한 보살상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불상의 형태이다.

비로자나불은 우주에 편재하는 법신(法身)을 상징하는 부처이다. 밀교에서는 아촉불, 아미타불과 함께 가장 중요한 부처로 인식되었으며, 보관을 쓰고 여러가지 색의 옷과 영락으로 장식한 보살상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상은 같은 유형의 예 중에서 비교적 크기가 크며, 얼굴 표면에 금 장식의 일부가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출처>

  1. 중앙박물관
  2. 위키백과
  3. 두산백과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

충남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절터에 있는 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5.5 m의 이 불상은 약단지를 들고 있어 약사여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투박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옷주름이나 얼굴의 표현 등에서 세련된 조각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 석조불상에 비해 조형미나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남아 있는 절터는 아산 외암마을 입구 맞은편 낮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절터에 남아 있는 사적비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창건한 용담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고려초 광종 때 중창하였다고 한다. 절터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고려시대 교통요지에 세워졌던 여러 사찰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

, 고려초에 조성된 불상으로 투박하지만 약간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 얼굴은 크고 둥글게 표현하고 있는데 귀가 어깨선까지 닿을 정도로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한손에 약병을 들고 다른손으로 받치고 있는 약사여래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남아 있는 절터. 고려시대에 중창한 용담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보물 536호, 고려시대, 충남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약사불은 질병과 무지의 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으로, 이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5.5 m의 입상이다. 불상의 얼굴은 둥근 형으로 볼 살이 두툼하게 처리되었고, 눈은 가늘게 뜨고 있고 코는 오똑하며 입은 전체적으로 작은 편이다. 귀가 어깨선까지 닿고 목에는 뚜렷하게 삼도가 표시되어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감싸 발목까지 내려오고, 왼쪽과 오른쪽의 대칭이 잘 어우러진 타원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약단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왼손으로 받치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증명한다. 불상 옆에는 용담사 사적비가 있는데, 내용은 용담사라는 절을 신라 애장왕 때에 원효가 처음 지었고, 고려 광종 때 혜명조사가 다시 건립하였다는 것이다. 불상은 조각한 수법과 양식으로 보아 고려초기 10세기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아산시청, 2010년)

<출처>

  1. 아산시청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중앙박물관 불교조각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불상

1. 삼국시대 불상, 2. 반가사유상, 3. 통일신라 불상, 4. 고려, 조선시대, 5, 석조불상, 철조불상

고구려 소수림왕(372년)때 불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전해진 이래로 국가와 민간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다. 불교에서는 원래 스투파라 불리는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이 신앙의 중심이었으며, 서방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불교에서는 부처와 보살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이 점자 신앙의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통일신라 이후 선종이 자리잡으면서 탑은 형식적인 면을 보이게 되는 반면에 불상을 모신 금당이 사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삼국시대에는 불상들이 많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황룡사 장륙전같은 금당에 모셔졌던 거대 불상들은 지금은 많이 남아 있지 않는 반면에 개인들이 소장했던 작은 금동불상들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그중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반가사유상국보(78호, 83호)이 삼국시대 금동불상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삼국시대 금동불상들은 크기는 작지만 그 만든 수법의 섬세함이나 뛰어난 조형미 등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아고 있으며, 대부분 국립박물관이나 민간이 운영하는 대형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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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칠년」이 새겨진 부처, 「延嘉七年」銘金銅佛立像, 국보 119호, 경남 의령발견, 삼국시대 고구려 539년. 뒷면에 ‘연가 칠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조성경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은 불상이다. 실제로 발견된 곳은 경남 의령이지만, 평양에 있던 동사에서 만들어 전국에 유포한 천불상 중의 하나이다.

광배 뒷면에 제작연대와 제작지 등이 기록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539년 고구려 낙랑(樂浪, 평양)에 위치한 동사(東寺)에서 승려 40인이 참여하여 제작.유포하려던 천 점의 불상 가운데 스물 아홉번째 불상이다. 이 불상은 경남 의령에서 발견되어 불상의 출토지와 제작지가 다른 대표적인 사례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고구려불상

고구려가 북한과 만주지역에 존재했던 국가였던 관계로 현재 우리나라에는 많은 불상이 남아 있지 않지만, 중앙박물관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2점의 금동불상을 볼 수 있다. 경남 의령에서 발견된 금동불상은 뒷면에 제작 내력을 적어 놓고 있어 고구려 불상임을 말해주고 있다. 고구려는 불교를 처음으로 도입한 국가로 남북조시대 북위, 동위 불상 양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고구려 특유의 불상양식이 만들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372)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중국의 전진(前秦)으로부터 경전과 함께 불상이 전해졌다. 이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기원후 4세기에는 고구려에 불상이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불상은 대부분 6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고구려 불상은 대체로 중국 6세기의 북위(北魏)와 동위(東魏) 불상 양식을 기반으로 하였다. 여기에 단순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고구려인들의 미감이 반영되었다. 고구려 불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예는 <「연가 칠년」이 새겨진 부처>로, 고구려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연대와 조성 배경을 알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보살,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보물 333호, 삼국시대 6세기. 머리에 특히한 형태의 관(冠)을 쓰고 있는 보살상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옷 때문에 신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삼국시대 보살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살, 소조보살입상(塑造菩薩立像), 평양 원오리 절터 출토, 삼국시대 고구려 6세기. 평양근처 절터에서 발견된 흙으로 빚어서 만든 소조불상이다.  서역의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천불상 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 원오리 절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흙으로 구워 만든 수백 점의 불.보살상 가운데 하나이다. 틀을 사용하여 뒷면이 평평한 불상을 동일한 형태로 대량 생산하였다. 다불(多佛) 신앙에 기초하여 건축물을 꾸미는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표면에는 흰색이나 붉은색을 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부처,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 강원 횡성 발견, 삼국시대 7세기 전반. 경기도 양평에서 발견된 불상한 비슷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균형 있는 신체 비례와 입체감이 조화를 이룬 불상이다. 지그시 감은 눈과 잔잔한 미소, 층층이 흘러내리는 옷주름과 내의를 묶은 매듭이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불상의 등에는 주조하고 난 뒤 안쪽의 흙을 파낸 구멍이 있는데, 흙을 모두 긁어 낸 후에는 구멍을 막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금동불 제작 기술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불상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보살,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강원 영월 발견, 삼국시대 7세기 전반

왼쪽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오른쪽으로 하체를 기울여 몸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보살상이다. 긴 신체와 목걸이 형태는 중국 수나라 보살상의 영향을 보여준다. 두 팔에 걸쳤던 천의는 남아 있지 않지만 왼팔의 구멍고 대좌에 남은 끝자락의 구멍으로 미루어 따로 주조하여 결합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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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 관음보살입상, 삼국시대 7세기

백제 불상

중국 북조를 통해서 불교를 수용한 고구려, 신라와는 달리 백제는 남조의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다. 백제는 고구려의 압박을 받아서 수도를 한성에서 공주, 부여로 천도를 해서 그런지 불교가 국교와 비슷한 수준으로 크게 융성한 국가였다. 백제 마지막 수도 부여에는 정림사지를 비롯하여 많은 절터가 있으며, 군수리사지에서 알 수 있듯이 왕궁과 사찰이 같이 있을 정도로 불교국가에 가까웠다. 일본에 불교를 전해주었으며 불교 조각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백제가 불교를 수용한 시기는 침류왕(枕流王) 원년(384)으로, 중국 남부에 세워진 왕조 중 하나인 동진(東晉)에서 온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서 였다. 현재 남아 있는 백제 불상은 대부분 6~7세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주로 금동이나 돌로 만든 소형의 불.보살상과 삼존불상이 많다. 이 밖에도 비교적 큰 석불과 마애불도 전한다. 삼국시대 당시의 대외 관계와 불상의 특징을 고려할 때, 백제 불상은 고구려의 영향과 함께 중국 남조 여러 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해줌으로써 일본의 불교 조각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일본에서 보주(寶珠,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는 구슬로, 여의주라고도 함)를 든 보살상의 유행과 백제관음이라고 알려진 일본 호류사(法隆寺)의 보살상은 이러한 백제와 일본의 긴밀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관음보살, 금동관음보살입상(金銅觀音菩薩立像), 국보 127호, 서울 삼양동 발견, 삼국시대 7세기 전반. 우리나라에서 관음신앙이 정립된 시기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관음상으로 보관을 쓰고 있고, 정병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을 모습을 아주 세밀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서유기에 많이 등장하며 삼장법사 일행을 도와주던 관음보살을 모습이 보이는 듯한 불상이다.

중앙에 부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보관을 쓰고,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7세기 전반부터 보관에 부처의 모습이 나타나고 정병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상이 제작되어 이 시기에는 본격적인 관음신앙이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부처, 납석제불좌상(蠟石製佛坐像), 보물 329호, 충남 부여 군수리 절터 출토, 삼국시대 백제 6세기, 부여 궁남지 부근에 위치한 군수리사지에서 출토된 불상이다.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불상으로 도교적인 이미지를 보이고 있다.

1936년 부여 군수리 절터의 목탑 자리에서 보살상, 광배파편, 각종 옥, 토기편과 함께 발굴된 백제 불상이다. 탑을 세우거나 사리기를 넣을 때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둥글고 넓적한 얼굴에는 백제 특유의 잔잔한 미소가 돋보이며 대좌 위로 흘러내린 옷주름선도 자연스럽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부처, 금동불좌상(金銅佛坐像), 서울 뚝섬 발견, 삼국시대 5세기. 현존하는 불상 중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불교가 처음 전래되었때 중국의 영향을 받은 불상을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불상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불상이다. 두 어깨를 덮은 옷 모양과 앞으로 모은 두 손, 대좌 양옆의 사자 표현 등은 4~5세기 중국에서 유행하던 초기 불상의 형태와 비슷하다.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의 불상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부처,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 충남 서산 보원사터 발견, 삼국시대 6세기 중엽, 백제를 대표하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84호) 부근에 있던 화엄십찰 중의 하나인 보원사 절터에서 출토된 금동불상이다.

SANYO DIGITAL CAMERA금동광배, 부여 부소산, 7세기전반, 화려하게 잘 만들어진 광배로 연꽃무늬와 식물의 넝쿨처럼 생긴 장식이 들어가 있다.

부처나 보살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는 머리에서 나오는 빛과 모에서 나오는 빛으로 이루어진다. 이 광배는 원형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두광임을 알 수 있다. 두개의 금동판을 중앙과 가장자리에 작은 쇠못을 박아 결합하였다. 뒷면에는 ‘하다의 장법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광배를 만든 사람과 관련된 것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신라 불상

신라는 불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였지만, 황룡사를 비롯하여 많은 사찰을 건립하는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 크게 융성하였다. 황룡사 장륙전에는 신라 3대 보물 중 하나인 거대 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신라의 금동불상은 불교를 고구려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까닭에 신라 고유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특히 돌을 깍아서 만든 석불과 마애불을 많이 만들었다.

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늦은 6세기 전반에 불교를 공인했다. 이에 따라 현존하는 대부분의 신라 불상은 6세기 후반과 7세기에 만들어진 비교적 늦은 시기의 것들이다. 여기에는 금동이나 돌로 만든 부처, 보살, 반가사유상이 포함되어 있다. 신라 불상은 중국 북위(北魏)와 동위(東魏) 불상의 영향을 보이는 예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상은 중국 북제(北齊), 북주(北周)의 입체감 있는 불상의 영향이 직.간접으로 보이거나, 신라만의 묵직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특징으로 한다. 7세기에는 특히 화강암을 깍아 만든 비교적 큰 석불과 마애불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는 훗날 석굴암으로 대표되는 통일신라 석불 조성의 밑바탕이 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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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 국보 186호, 경기 양평 발견, 삼국시대 7세기 전반. 1970년대에 발견된 이 불상은 단순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문화재청 설명에 따르면 수나라 영향을 받은 불상으로 신라에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구려불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양평 한강변에서 발견된 불상으로 정면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입체감을 확인할 수 있는 금동불이다. 이 불상은 중국의 북제, 북주에서 수대로 이어지는 연속된 옷주름 형태와 원기둥과 같은 인체 표현을 보여준다. 자신감에 찬 이러한 입체감 표현은 주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삼국시대 금동불의 수준을 한층 끌어 올렸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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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 삼국시대 7세기 전반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와 신체 비례가 특징인 불상으로 오른쪽 어깨는 드러내고 왼쪽 어깨와 오른쪽 허리에 옷을 걸친 모습(偏袒右肩)이다. 허리는 약간 꺾은 자세이며,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둥근 물건을 들고 있다. 이러한 이국적인 옷과 자세의 불상은 삼국시대 신라 지역에서 특히 유행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부처,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 삼국시대 7세기 전반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