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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충남 당진시 정미면 안국사지 절터에 있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이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보살이 배치된 삼존석불이다. 본존물은 머리에 커다란 사각형 갓을 쓰로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이 신체에 비해 큰 편이며 몸체는 조형미가 없는 편이며 신체만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다. 옆에 있는 보살상도 본존불과 비슷한 형태이다. 고려시대 지방호족들을 중심으로 조성했던 거대 석조불상들과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1<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커다란 돌에 신체를 얇게 조각하여 새겨 놓고 있는데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기둥처럼 보인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1
<갓을 쓰고 있는 형태의 본존불>

오른쪽 협시보살은 인동당초문이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2
<오른쪽 협시보살>

왼쪽 협시보살은 얼굴이 남아 있지 않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3
<왼쪽 협시보살>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6
<오른쪽 아래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4<옆에서 본 모습>

안국사는 안국산에 위치한 절터이다. 2003년 출토된 기와에서 요나라 연호가 적혀 있어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삼층석탑(보물), 맹향암각 등이 남아 있다. 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사찰에 내력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은 없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5<당진 안국사지>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및 석탑, 보물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조성시기는 2003년 발굴조사시 출토된 태평(요나라 성종 연호) 명문기와로 보아 고려 현종 12~21년(1021~1030년)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과 몸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머리에 네모난 갓 모양의 보개를 쓰고 있다. 두 팔과 두 손이 신체에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도 본존불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 하단의 석탑은 원래 5층일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1층에 1매의 몸돌만 남아 있고 그위에 4매의 지붕틀이 겹쳐져 있으며 받침부의 구조는 매우 간략하다. 1층 몸톨의 네 모서리에 기둥 형태가 표현되어 있고 3면에는 여래좌상, 1면에는 문고리형이 조각되어 있어 4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기본 형식에서 벗어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불상과 석탑은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나타난 양식으로 혼란기 백성들이 마을 공동으로 세운 것으로 거칠고 섬세하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구원사상을 넘어 힘든 현실세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 지역공동체의 모습이 엿보인다.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4. 홈페이지, 당진시청, 2023년

서산 철조여래좌상, 가장 오래된 철조 불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철조여래좌상이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절터에서 출토된 불상으로 보원사에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석굴암 본존불과 형태나 양식적으로 거의 유사한 불상이다. 8세기 중엽에 조성된 불상으로 현재 출토된 철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말~고려초에 조성된 철조불상의 양식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처. 철조불좌상, 통일신라 8세기,서산 운산면)>

 

보원사는 화엄십찰 중 하나로 충남 서해안 일대에서 상당히 유서깊고 큰 사찰이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폐사되었다.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마애여래삼존상(국보)에서 보원사 절터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 북조와 백제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자 불교문화 전파 경로에 있던 유서깊은 큰 사찰이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폐사되었다. 절터에는 석조(보물), 당간지주(보물), 오층석탑(보물), 법인국사탑(보물) 등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15<서산 보원사지(사적)>

쇠로 만든 이 부처는 1918년 충남 서산시 운산면에서 옮겨온 것이다. 두 손이 모두 없어졌지만 오른 손목의 위치로 보아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항마촉지인의 손갖춤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머리에 생동감 넘치는 얼굴, 당당한 어깨와 풍만한 가슴, 그리고 결가부좌한 다리의 넘치는 양감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과 매우 비슷하다. 형식화된 9세기 철불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으로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우리나라 철불 가운데 가장 앞선 시기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부처의 머리 위에 설치된 집모형은 ‘닫집’,'천개’ 또는 보개’라고도 하는데 이 것은 부석사 무량수전 내부의 닫집을 복원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2.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합천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국보)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국보)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으로 통일신라 9세기에 조성되었다. 원래 봉안된 전각은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팔만대장경이 봉안된 법보전의 주불로 봉안되는데 지금은 대비로전으로 옮겨졌다,.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크기와 형태 등의 거의 유사하다. 복장 유물의 조성시기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이다. 이는 불상이 여러 차례 개금 중수가 이루어지면서 그 이력을 기록하여 봉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복장유물중 후령통은 원래 형태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제작기법은 불신은 하나의 원통형 나무로 처리하고 머리와 팔은 따로 만들어 붙였다. 나발 등은 흙 등으로 별도로 만들어 촘촘하게 붙였다. 해인사 창건 당시 유물로 당시 해인사의 화엄사상을 대변하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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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국보)>

비로전에 불상들이 모셔져 있는데 왼쪽이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좌상이고, 오른쪽이 법보전 비로자나불좌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비로전>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 내부>

<출처>

  1.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조불상

충남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이다. 고려전기 석조불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높이 18m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고려 광종 때 (968년경) 왕실의 후원을 받아 승려 조각장 혜명이 제작하였다.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아 세련되고 정밀한 조각수법을 자랑하는 통일신라 때와는 달리 투박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토속적인 불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얼굴이 몸통에 비해 크고, 전체적인 균형미가 떨어지지만, 위압적이면서도 토속적이고 자비로움보다는 강하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 고려초기 미륵불의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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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

머리에는 높은 관을 쓰고 그 위에 보개를 올려 놓고 있으며, 네 모퉁이에는 쇠방울을 달았다. 비정상적으로 크게 묘사된 얼굴에는 눈.코.입이 크고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귀는 거의 어깨까지 닿을 정도로 길게 표현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얼굴부분>

천의(天衣)는 몇가닥의 옷주름이 얕게 조각되어 있고, 두손은 몸에 비해 크게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몸체 부분>

‘은진미륵’으로 불렸던 이 불상은 관촉사 경내 안쪽편 언덕 아래에 세워져 있다. 몸통에 비해 머리부분이 상당히 크고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석불입상이다. 관촉사는 황산벌 넓은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언덕에 석축을 쌓아서 절터를 조성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세워진 관촉사 경내>

OLYMPUS DIGITAL CAMERA<불상 얼굴 부근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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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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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석등, 불상이 일렬로 배치된 모습>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 논산시 관촉동
높이가 18m에 이르는 국내 최대 석불로서, 보통 ‘은진미륵’이라 불리고 있다. 미륵불은 56억 7천만년이 지난 뒤에 그 때까지도 못다 구제된 중생들을 위해 나타난다는 미래불로 대개 산이나 들 등 바깥에 세워진 경우가 많다. 자연암반 위에 허리부분을 경계로 하여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이 보살상은 몸통에 비해 특별히 얼굴이 강조되어 전체적인 균형미는 약간 떨어지지만 불상 전체에서 느껴지는 강한 원초적인 힘은 고려시대 초기에 이 지방에서 많이 유행하는 불교예술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 얼굴과 손에 집중된 표현양식은 마치 토속적인 신상을 보는 듯 위압적이며, 자비로운 보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강한 메시지와 신비감을 담고 있는 모습이다. 관촉사 사적비에 의하면 고려 광종 19년(968)에 공사를 시작하여 목종 9년(1006)에 완성하였으며, 혜명대사가 대형 석불을 만들어 세울 수 없어 걱정할 때 사제촌에 나타난 동자들이 강가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아 기뻐하며 돌아와 불상을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거석불의 대표적인 예로 인근에 있는 부여 임천의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들 수 있는데, 이 두 불상은 고려시대에 충남지역에서 크게 유행하던 불상의 양식으로 새로운 지방적 미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관촉사 불상의 건립은 이후 충남 각 지역에서 거불상의 조성에 큰 계기가 된 듯 하다. (안내문, 논산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논산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에 있는 마애삼존불입상(국보)이다. 불교가 전래되던 초기(6세기 말 7세기초)에 조성된 마애불상이다. 한반도와 중국 산동지방간 해상교역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태안반도 백화산 중턱에 있던 삼국시대 석굴사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가 중국 남.북조와 교류하던 6세기경 중국 북제의 석굴사원 불상의 영향을 받은 불상으로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에 선행하는 양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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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국보, 삼국시대 백제,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사각형의 감실안에 보살상이 가운데 있고, 양쪽에 여래상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는 삼존불상이다. 오른쪽에는 약사여래, 왼쪽에는 석가여래, 가운데에 작은 크기의 관음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 아래쪽에는 백제시대 연화대좌가 확인되어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존불 입상>

서산 용현리마애불상과는 달리 불상의 얼굴은 상당부분 훼손되어 확인이 잘 되고 있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풍부한 양감을 입체감이 돋보이며, 조각수법도 뛰어나다.

OLYMPUS DIGITAL CAMERA<얼굴 부분>

연좌대좌는 삼국시대에 조성되어 한반도에서는 이른 시기에 만들어 졌다. 역사성에서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화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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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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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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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

백화산 중턱에 있는 높이 394cm, 폭 545cm의 감실모양의 암벽에 새겨진 백제시대 마애삼존불이다. 중앙에 본존불을 배치하고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삼존불과는 달리 중앙에는 보살, 좌에는 석가여래, 우에는 약사여래불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였다. 또한 좌우의 여래상은 큰 반면에 중앙의 관세음보살은 작아 1보살.2여래라고 하는 파격적인 배치와 함께 특이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통견의 불의가 두껍고 힘차게 처리되었으며, 앞자락이나 두팔에 걸쳐 내린 옷자락도 묵직하게 표현되는 등 부처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양식상으로 중국 북제 불상양식의 계통을 따르고 있어 제작연대는 6세기로 추정된다. 지리적으로 당시 삼국시대 중국과의 교역에서 다리역할을 했던 태안반도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새로운 석굴사원 양식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내문, 태안군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태안군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