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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국보)

경북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에 있는 대정전(大藏殿)과 윤장대(輪藏臺, 국보)이다. 대장전은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곳인데 이곳은 불경을을 보관하는 윤장대를 보관하고 있다. 고려 명종 때(1173년) 조응대선사가 처음 조성했으며 그후 여러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에 크게 수리한 것으로 발원자와 건립시기, 건립목적이 기록으로 정확하게 남아 있는 유적이다. 내부에는 조선후기에 조성한 목조아미타여래삼존불상(보물)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이 모셔져 있다.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10<예천 용문사 대장전(국보)>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를 하고 있어 조선중기 이후 건물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19<대장전>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12<지붕을 받치는 공포>

불단 위 천장은 우물천장을 하고 있는데 테두리를 꽃무늬 모양을 조각하고 안쪽에 단층으로 장식했다. 불상이 있는 신성한 공간인 닫집을 구현하고 있다.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11<내부 천장>

내부 불단에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이 모셔져 있으며, 후불벽으로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이 있다.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18<바깥에서 보이는 불전 내부>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08<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과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내부에는 회전식 경장(經藏)인 윤장대가 불단 앞 좌우에 있다. 윤장대는 불경을 보관하는 일종의 책장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윤장대를 돌리면 불경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고 여겼다. 고려중기 이후 원나라를 통해 전해진 티벳불교에 볼 수 있는 마니차(摩尼車)와 같은 형태이다. 오른쪽에 있는 윤장대는 여덟면을 빗살면으로 꾸몄는데 내부에 경전이 모셔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왼쪽은 8면에 각기 다른 꽃살문으로 장식하고 있다.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05<오른쪽 윤장대>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07<빗살무늬 문살 사이로 보이는 경전>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06<오른쪽 윤장대 장식>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03<왼쪽 윤장대>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04<꽃무늬 문살 안으로 보이는 경전>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02<왼쪽 윤장대 장식>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22
<오른쪽 윤장대>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21
<왼쪽 윤장대>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01<정면에서 본 모습>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14<옆에서 본 모습>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15<뒤에서 본 모습>

예천 용문사 대정전 20221130_09<아래쪽에서 본 모습>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에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조응대선사가 만들었으며, 고대 건축물로는 매우 드물게 건립자, 건립시기, 건리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대장전은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처음 지어진 이후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그 규모와 구조는 유지하고 있다.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며, 불단 위에는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이, 후불벽에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이 놓여 있다. 윤장대는 대장전 불단 앞 좌우에 각 1좌씩 있으며, 높이 4.2m, 둘레 3.5m 규모의 화려하고 독특한 팔각정자 모양 불교 공예품이다.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책장의 일종이면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원형 또는 다각형 나무장의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손잡이를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들었으며, 문을 열어 경전을 넣고 보관할 수 있다.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치를 때 쓰였으며,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고 여겼다. 대장전 마루 밑에 기초를 놓고 윤장대를 올렸으며, 지붕 끝은 대장전 천장과 연결하였다. 불단을 마주하고 섰을 때 왼쪽에 있는 윤장대는 여덟 면을 서로 다른 종류의 꽃살문으로 꾸몄고, 오른쪽에 있는 윤장대는 여덟 면을 모두 같은 빗살문으로 정교하게 꾸몄다.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는 당시의 불교 경장 건축의 원형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천 특징이 기록과 함께 잘 남아 있으며 동아시아 불교문화의 한 사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국내 유일이라는 희소성과 상징성이 큰 문화유산이다. (안내문, 예천 용문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 용문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봉화 청량사 유리보전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청량사 주불전인 유리보전(琉璃寶殿)이다. 약사여래삼존상을 모시고 있어 약사전이라고도 한다. 조선후기 건축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공포는 다포계인데 주심포계와 절충한 조선후기 건물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 대들보 밑에 사이기둥을 세워 후불벽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건물을 세웠는데 불전 앞 마당은 좁은 편이다.

봉화 청량사 유리보전 20221029-001<봉화 청량사 유리보전>

봉화 청량사 유리보전 20221029-004<청량사 내부, 건칠약사여래좌상(보물)>

봉화 청량사 유리보전 20221029-003<옆에서  본 모습>

봉화 청량사 유리보전 20221029-002<아래에서 본 모습>

봉화 청량사 유리보전 20221029-005<봉화 청량산 청량사>

청량사 유리보전
청량산에 위치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 의상대사가 지은 절이다. 청량산에는 연대사라는 절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26개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불교의 요람을 형성했던 곳이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법당으로 약사전이라고도 한다. 늘 바람이 세찬 산골짝기의 한쪽에 나즈막하게 지어졌는데, 법당 앞이 절벽이라 마당이 좁은 편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건물의 대들보 밑에 사이 기둥을 세워 후불벽을 설치한 것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특징으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봉화 청량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봉화 청량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에 있는 불영사 응진전(보물)이다. 1984년 해체.수리 과정에서 따르면 임닌왜란 전후로 여러차례 수리가 있었음이 밝졌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불영사가 불에 타 버렸을 때 홀로 남은 불전으로 당시는 영산전이었다고 한다. 이후 어느 시기에 석가모니와 제자들을 모신 응진전으로 바뀌었으며 영산전의 기능은 주불전인 대웅전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에 조성된 영산회상도는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01-20220711<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정면 가운데 1카능 4짝 여닫이문을, 양쪽에는 작은 창을 달아 놓았다. 조선전기 이전의 건축 양식과 조선중기 이후 건축 양식이 섞여 있는 조선중기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02-20220711<지붕을 받치는 공포>

협문 대신 벽면과 작은 창을 두는 것은 조선전기 이전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03-20220711<벽면과 창문>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05-20220711<옆에서 본 모습>

울진 불영사 응진전(보물)04-20220711<옆면 공포>

울진 불영사 응진전, 보물
응진전은 석가모니부처와 그의 제자를 모신 전각이다. 이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고 아담한 다포계홑처마 맞배기와집이다. 기단은 자연설을 허튼층 쌓기 하였으며, 건물의 앞면에는 어칸에 출입을 위한 사분합문을 두었으며, 좌.우 협칸에 벽을 두고 벽 위쪽에 작은 광창을 달았다. 좌.우 하인방과 기둥에는 툇마루를 두었던 흔적이 있다. 공포의 구성은 내.외 2출목이다. 일반적으로 맞배지붕 건물은 주심포계이며, 공포도 앞.뒷편에만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건물은 건물 4면에 모두 공포를 배치하였다. 응진전은 1984년 해체.보수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1578년(선조 11), 1629년(인조 7), 166년(현종 7), 1716년(숙종 42)과 1843년(현종 9) 등 어러 차례 보수되었음이 밝혀졌다. 상량문에 영산전으로 적혀 있어서 어느 시기에 석가모니의 제자들도 함꼐 봉안되면서 응진전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전기의 수법이 일부 남아 있으나, 전체적으로 조선중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에 있는 불영사의 주불전인 대웅보전(보물)이다.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여러차례 불전이 소실되면서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영조  때 중건된 것이다. 건물 내부에 원래 칠했던 단청이 잘 남아 있는데 그린 기법의 수준이 매우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물 기단 밑에는 돌거북을 놓아 건물을 받들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여러차례 화재로 소실된 점을 고려하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건물내부에는 영산회상도(보물)와 신중탱화 등 수준높은 불화들이 모셔져 있다.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01-20220711<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건물의 앞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다포계 양식인데 공포의 조각솜씨가 뛰어나다.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02-20220711<대웅보전 건물>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05-20220711<지붕을 받치는 공포>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07-20220711<대웅보전 현판>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06-20220711<기둥을 받치는 주춧돌, 거북모양과 비슷하다>

기단은 여러가지 형태로 다듬을 돌로 허튼층 쌓기를 하고 있다. 계단 양쪽에 돌거북을 볼 수 있다.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04-20220711<건물을 받치는 기단>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03-20220711<돌거북>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08-20220711<내부에 모셔진 불상과 영산회상도(보물)>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10-20220711<신중탱화>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09-20220711<내부 우물천장>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11-20220711<건물 내부 공포>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 보물
대웅보전은 불영사의 중심법당으로 석가모니부처를 모신 전각이다. 이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기와집이다. 기단은 다듬은 돌을 허튼층 쌓기하였으나 가구식 기단과 유사하며, 건물의 앞면에는 어칸에 4분합문을, 좌.우 협칸에 이분합문을 달았고 우측면 앞쪽 협칸에는 한 짝 세살문을 두었으며, 배면 어칸에는 이분합문을 설치하였다. 공포의 구성은 내4출목, 외3출목이다. 대웅보전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02년(선조 35) 중건하였으나 1720년(숙종 46)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1725년(영조 1)에 중건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특히 기단 밑 좌.우에 돌거북(石龜)을 놓아 건물을 받들게 한 것은 특이한 구상으로, 이는 불영사의 자리가 화기를 많이 품고 있는 곳(火山)이어서 수신(水神)인 거북으로 불기운을 눌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다포계의 구조가 건실하고 각 부재의 조각도 깔끔하며, 특히 단청은 금단청 계열로 격조 높은 수법을 보이고 있다.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울진 불영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경주 불국사 대웅전(보물)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 대웅전 영역 주불전인 대웅전(보물)이다. 삼층석탑과 다보탑이 있는 중심영역에서 금당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후기 영조 때(1765년) 중건된 것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5칸 규모이다. 지붕을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는 등 조선후기 건축양식이 잘 반양되어 있다. 불국사 금당에 사용되었던 기단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대웅전영역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과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국사 대웅전(보물>

대웅전 양쪽에 용머리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시가고 있다. 정면 어칸에는 3구의 공간포가 배치되었으며 협칸과 퇴칸에는 1구의 공간포가 배치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현판과 어간 공포>

OLYMPUS DIGITAL CAMERA<협간 다포계 공포>

대웅전 정면은 사분합꽃살문이며, 협칸과 퇴간은 쌍분합교살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정면 어간 출입문>

내부는 천정을 높게 하고 있으며 우물천장을 하고 있다. 비로전과 극락전에는 통일신라 때 조성된 금동불상을 모시고 있는데 반해 대웅전에는 유서깊은 불상은 모시고 있지 않다. 다보탑과 삼층석탑이 중심이 되는 대웅전 영역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물_제1744호_경주_불국사_대웅전(2011년_국보,보물_지정보고서)<대웅전 내부>

기단은 통일신라 때 금당을 세웠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당시 불전 건물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기단은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짜맞춘 통일신라 가구식 기단이다. 기단의 사면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양쪽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통일신라 때 금당이 세워졌던 기단부>

OLYMPUS DIGITAL CAMERA<회랑>

OLYMPUS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 대웅(大雄)은 석가모니불의 덕이 큰 것을 표현하는 덕호(德號). 681년에 창건되었다. 여러 차례의 중수 중건을 거쳐 1765년, 창건 당시의 기단 위에 중건되었다. 조선후기 불전건축의 대표작이다. (안내문, 경주 불국사,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