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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승곡리 추원당, 검간 조정을 모신 재사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마을에 있는 추원당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여 임진란기록 (보물 1003호)를 남긴 검간 조정을 모시는 재사이다. 건물은 조정의 불천위를 모신 재사인 묘우, 강당, 전사청, 고직사 등이 있다. 원래는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재사였는데 1952년 강당건물을 옮기면서 서원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강당에는 “장천서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어 장천서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승곡리 마을 바깥쪽에 있는 추원당. 외삼문, 강당, 내삼문, 재사가 일렬로 배치된 서원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장천서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강당. 앞면 5칸으로 2층 누각과 비슷한 고상식 형태를 하고 있다. 다른 곳에 있던 것을 1952년 옮겨와 서원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검간 조정의 불천위를 모신 재사.

OLYMPUS DIGITAL CAMERA제사 준비를 하는 부속 건물.

상주 승곡리 추원당,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추원당은 1759년(영조 35)에 목조와가로 최초 건립되었으며 배치는 묘우, 강당, 내외삼문, 전사청, 고식사 등 전형적인 재사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 선조.인조 때의 학자인 정구.김성일의 제자였던 검간 조정 선생의 불천위를 모신 재사이다. 조정 선생은 임란시 창의하여 의병활동을 주도하였고 특히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임진란 기록”은 보물 100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임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보존되고 있다. 강당은 비록 1952년에 이건된 건물이지만 인근에 있는 양진당과 같은 고상식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OLYMPUS DIGITAL CAMERA 남행록, 보물 1003호, 1592년 8월 25일부터 9월 23일까지 28일간의 일기로써 검간 조정이 당시 거창에 주재한 순찰사 김성일에게 토적 등에 관한 것들을 논의하면서 기록한 일기입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검간 조정의 임난일기, 보물 1003호, 상.하 두권으로 구성된 것으로 임진년의 기사가 포함되어 있어 임진일기로도 불립니다. 상권에는 1592년 4월 14일부터 6월 6일까지 52일간의 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권은 1592년 6월 7일에서 12월 27일까지 190일간의 일기입니다. 모두 242일간의 기록으로, 6월 7일에서 6월 16일까지  10일간의 기록은 누락되었습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검간 조정(1555 ~ 1635년)
본관은 풍양, 자는 안중, 호는 검간이다. 정구와 김성일의 문인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은척 황령사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으며, 1596년에는 왜군과의 강화를 배격하는 소를 올렸다. 정유재란 때는 두 아들을 창녕의 화왕산성으로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후 1599년 참봉이 되고, 1603년 사마시에 합격했다. 1609년 좌랑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호조좌랑, 서헌부감찰, 청도군수, 형조정랑, 춘추관련수관, 사섬사정, 봉상시정을 거쳐 정묘호란 때 강도(강화도)로 호종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경술과 문장에 뛰어났다. 1642년(인조 20)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의성 속수서원과 상주 장천서원에 봉향되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해남 단군전

전남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 있는 단군전이다. 단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일제강점기 구월산 삼상사에 있던 영정을 이종철이라는 사람이 고향으로 옮겨와 전각을 세우고 모셨다고 한다. 해방 이후 1957년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단군전은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규모의 사당이다.

SANYO DIGITAL CAMERA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서린공원 내에 있는 당군전. 황해도 구월산 삼상사에 있던 단군 영정을 옮겨와 모시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단군전 사당.

SANYO DIGITAL CAMERA단군전 앞 단군상.

SANYO DIGITAL CAMERA단군전 앞에 있는 3.1운동 기념비.

SANYO DIGITAL CAMERA단군전이 있는 해남 서린공원.

SANYO DIGITAL CAMERA서린공원에 있는 울창한 고목들. 팽나무를 비롯한 수령 200~300년 된 고목들이 있다.

<출처>

  1. 위키백과, 2019년

해남 추원당과 어초은사당, 마을 입향조를 모신 재실과 사당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마을에 있는 추원당과 어초은사당이다. 추원당은 윤선도가 집안사람들과 함께 조상을 모시기 위해 세운 재실로 현재의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새로 지은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규모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지붕 모퉁이에는 활주를 세웠다. 건물 앞과 옆에는 1칸 규모의 높은 지붕을 하고 있는 차양을 두고 있다. 행랑채는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방을 두고 있다. 제사를 비롯한 집안행사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어초은사당은 윤선도의 4대조로 해남 연동리마을 입향조인 윤효정을 모신 사당이라 한다.

SANYO DIGITAL CAMERA해남 추원당. 녹우당(사적 167호) 뒷편에 있는 마을 재실로 조선후기 윤선도가 조상을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웠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추원당 행랑채. 가운데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3칸씩 행랑채를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솟을대문.

SANYO DIGITAL CAMERA재실건물은 앞면 3칸규모의 전통한옥 형태를 하고 있는 큰 건물로 앞쪽과 왼쪽에 높은 지붕을 하고 있는 차양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앞 비를 피하기 위해 세운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차양. 구한말 이후 건물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시설이다.

SANYO DIGITAL CAMERA차양 안쪽에 있는 재실.

SANYO DIGITAL CAMERA재실 뒷편.

추원당(追遠堂)은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고산선생의 고조부(4대조) 윤효정(1476~1543)의 제각으로 1935년에 새로 지었다. 시향은 음력 11월 15일 어초은 사당에서 지내고, 이곳 추원당에서는 제관과 참배하는 후손들이 숙식을 하며, 문중회의를 한다. 추원이란 먼 조상이나 부모를 추모하여 정중히 공경을 다함을 뜻한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뒷편에 있는 입향조를 모신 사당.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사당 건물로는 큰 규모이다.

SANYO DIGITAL CAMERA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사당 출입문.

어초은사당
어초은은 덕음산 아래 백련동에 처음 터를 잡고 해남윤씨가를 중흥시킨 인물로 사당 뒤 묘와 함께 녹우당 공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삼개옥문 적선지가”라 불릴 정도로 적선으로 가문을 더욱 빛내었다. 매년 음력 11월 15일 시제사를 지낸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해남 녹우당 일원(사적 167호). 마을 종택인 녹우당을 중심으로 고산사당, 어초은사당, 추원당이 남아 있다. 입구에는 큰 은행나무가, 뒷편에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2451호)가 있다. 앞쪽에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와 종가전적(보물 482호) 등을 소장하고 있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출처>

  1.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사적 114호), 정유재란 말 조.명연합군 수군이 주둔했던 곳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에 있는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114호)이다. 이곳은 정유재란이 끝나갈 무렵 충무공이 이끌었던 조선수군과 진린의 명나라 수군이 진을 치고 머물렀던 곳으로 사실상 조.명연합군의 해군본부였다. 현재는 충무공을 모시는 사당인 충무사와 그가 죽은 후 잠시 묻혔던 가묘터가 남아 있다. 묘당도는 고금도 끝에 있는 작은 섬이었으나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고금도의 일부분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임진왜란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진린이 세웠던 관왕묘가 있었다. 정유재란 말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자 진린은 그의 유해를 이곳에 모시시고 장례를 치렀다. 이후 17세기부터 관왕묘에 이순신장군과 진린장군을 같이 모시고 제사를 올려왔다. 일제강점기에 사당이 없어지고 제사가 중단되었다가 해방 이후 다시 사당을 세우고 충무공에 대한 제사를 올리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사적 114호). 고금도 동쪽끝에 있는 작은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지금은 고금도의 일부부으로 바뀌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유적지로 들어가는 길.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무공 가묘 유허, 이순신 장군은 노량에서 전사후 관음포에 올려졌고 남해 충렬사에 잠시 묻혔다가 이곳을 거쳐 충남 아산으로 옮겨졌다. 조.명연합군 수군 본영이 있었던 것으로 명나라 수군을 이끌었던 진린이 주도하여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장군 가묘 유허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해을 임시로 안장하였던 터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 고금도에서 수군본영을 설치하여, 수군을 훈련하고 전선을 건조.수리하는 등 군비를 재정비하여 왜적의 침입을 물리쳤다. 장군이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본영이었던 이곳에 80여일간 안장한 후 이듬해에 충남 아산으로 옮겼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가묘 유허 아래에 있는 재실로 보이는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앞 바다. 앞쪽에 작은 섬들이 막고 있어 파도가 거의 없어 파도를 피하기 좋은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북쪽 바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으로 보이는 바다. 사방이 섬으로 둘러 싸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

OLYMPUS DIGITAL CAMERA충무사 외삼문.

OLYMPUS DIGITAL CAMERA충무공을 모신 사당인 충무사. 원래 관우를 모신 관왕묘가 있었으며, 그 앞쪽에 충무공과 진린을 모신 동.서무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없어지고 지금은 해방 이후 다시 세운 충무공만을 모신 사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무사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에 딸린 건물.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관왕묘비. 이곳에 관우를 모신 관왕묘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비석은 숙종 39년(1713)에 세운 것으로, 관왕묘의 창건 이후의 내용을 기록한 비로, 명나라 수장이 충무공의 전사를 애석히 여겨 여기서 경혈하고 귀국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253 cm, 폭 93 cm, 두께 20 cm이다. 비각은 정.측면 1칸의 팔작집으로 원형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묘당도 충무사 사당 아래 해안. 울창한 상록수가 숲을 이루고 있다.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사적 114호,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
묘당도 일원은 본래 진린 장군이 건립한 ‘관왕묘’였으며, 관우 장군을 사당에 모시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던 곳이다. 진린 장군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이곳 (월송대)에 장군의 유해를 안장하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1666년, 동무에 진린 장군을 모셨으며, 1683년에 서무에 이순신 장군을 모셨다. 1791년 정조가 관왕묘에 ‘타보묘’라는 사액을 내렸으며, 1792년 동무에 명나라 부총관 등자룡 장군을 함께 모셨다. 일제강점시기(1940년대 초)에 유물이 훼손되고 제사가 중단되었으며, 사당이 황폐화 되었다. 1947년 11월 19일 사당에 이신신 장군만을 모시고 다시 제향하기 시작했다. 1953년 사당을 증건하고, 사당 명칭을 ‘충무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당 내에는 숙종 39년 건립한 관왕묘비가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후 명나라 진린 장군이 혈서로 애도문을 쓰고 명나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 1402호),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을 모신 사당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에 있는 문성공묘(보물 1402호)이다. 고려시대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을 주향으로 안축, 안보, 주세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앞쪽 제사 준비를 하는 퇴간을 두고 있다. 건물 주위로 담장을 둘렀으며, 앞과 옆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데 후대 서원의 사당과는 달리 작은 협문을 사용하고 있다. 최초 서원에 세워진 사당으로 ‘사(祠’자를 쓰고 있는 다른 사당과는 달리 ‘묘(廟)’자를 사용하고 있어 격이 높음을 짐작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 1402호). 건물은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앞에는 ‘문성공묘’라 적힌 현판이 달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출입문. 삼문형식을 하고 있는 후대 서원의 삼문과는 달리 작은 협문을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학서묘의 공간배치에 따라 서쪽에 배치되어 있다. 향교나 후대 서원과는 달리 마당 한쪽에 담장으로 둘러진 작은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