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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및 삼문(보물 211호),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에 있는 상덕사 및 삼문(보물 211호)이다. 상덕사(尙德祠)는 퇴계 이황과 제자 조목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으로 도산서원 제일 뒷편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호계서원에서는 도산의 학풍을 이어받은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이 퇴계 제자로 같이 위패를 모셨으나, 당시 지역민들 사이에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 사이에 그 위상의 높고 낮음을 다투다가 같이 빠지면서 제자로서는 조목만 남게 되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쪽에 제사 준비를 하는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사당 삼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사당을 지을 때 같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상덕사 경내에는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고 담장너머로만 그 모습을 살짝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중기 선조 때 처음 세워졌다.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앞 마당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삼문. 사당을 세울때 같이 지어진 것으로 경사진 언덕에 있어 앞면 기둥을 높게 하였다. 양쪽에는 원래 흙담장이 있었는데, 1970년대 수리하는 과정에서 돌담장으로 바뀌었다.

SANYO DIGITAL CAMERA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

도산서원 상덕사, 보물 211호,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을 모시는 사당으로, 이를 둘러싼 담장도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에는 흙담장이었으나, 도산서원 정비사업 때 현재의 돌담장으로 바꾸었다. 상덕사는 조선 선조 7년 (1574)에 건립되었으며 이황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곳이다. 도산서원의 제일 뒤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문을 두었다. 기단은 화강암으로 만든 돌로 4단을 쌓은 후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의 맞배집이다. 건물의 구조는 전교당과 비슷하며 네모기둥에 공포를 두지 않는 간략한 굴도리집이며 부연이 없는 홑처마로 꾸며 매우 검소하게 지은 건물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달성 묘골마을 육신사, 사육신을 모신 사당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사당인 육신사이다. 사육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팽년 후손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인 묘골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 낙빈서원에 있던 하빈사에서 모셨는데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사당이 없어졌다가 1970년대 ‘충효위인 유적화사업’의 일환으로 이곳에 건립되었다. 충무공을 모신 아산 현충사와 비슷한 성격으로 문화재로서 큰 의미가 없으나, 역사적인 인물을 모신 사당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달성군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 후손은 사육신 가운데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가문으로 사육신이 복권되면서 조선후기에는 관직에도 많이 진출했다. 양반들이 모여살았던 전통마을로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이 있었던 곳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종가 건물이었던 태고정(보물 554호)를 비롯하여 여러동의 고택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묘골마을 육신사. 사육신을 모신 사당으로 1970년대에 세워진 사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육신사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 안쪽에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을 출입하는 내삼문

OLYMPUS DIGITAL CAMERA사육신을 모신 사당인 숭정사.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사육신과 박팽년의 아버지 박중림을 모시고 있어 숭정사라 부른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출입문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묘골마을

OLYMPUS DIGITAL CAMERA육신사 옆에 있는 묘골마을 종갓집에 해당하는 태고정(보물 554호).

OLYMPUS DIGITAL CAMERA태고정 아래에 있는 재실 건물인 숭절당. 제사를 위한 제구들을 보관하는 전사청과 제사준비를 위한 사람들이 머무는 용도로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숭절당은 앞면 6칸 규모의 ‘-’형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숭절당 마당 오른쪽에 있는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왼쪽에 있는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묘골마을. 사육신 중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 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묘골마을 인근에 있는 낙빈서원. 사육신은 원래 이곳에서 모셨는데 구한말 서원철폐령후 없어졌다가 1970년대에 이곳으로 옮겼다.

육신사, 대구광역사 달성군 하빈면 묘리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으로 일컫는 박팽년.성삼문.이개.유성원.하위지.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처음 사당을 지을 때는 충정공 박팽년 선생만을 그 후손들이 모셔 제사지냈으나,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제삿날 사육신이 함께 사당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뒤부터 나머지 분들의 음식도 장만하여 함께 제사지냈다고 한다. 그 뒤 하빈사를 지어 이들에게 제사지내다가, 1691년(숙종 17) 낙빈서원을 지어 이들을 봉안하고 제사지냈다. 1866년(고종 3) 서원철폐령으로 낙빈서원이 철폐되자 제사를 지내지 않다가 유림들에 의해 그 자리에 사당을 세워 다시 사육신을 봉안해 왔다. 그 뒤 1974~1975년 사이에 ‘충효위인 유적화사업’에 의해 지금의 육신사를 건립하였다.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울진 평해황씨 시조단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평해황씨시조단이다. 관동팔경 중 한곳인 울진 월송정 소나무숲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평해황씨 시조인 황락의 제단비가 세워져 있으며, 주위에는 재실로 보여는 건물이 여러동 있다. 역사적인 사실이나 오래된 유적지는 아니고 평해황씨 문중에서 시조를 모시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황씨의 시조는 후한의 학사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평해지역으로 흘러들어 신라에 귀화한 황락이라는 인물이다. 실제 문헌 등으로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황씨의 시조로 여겨지고 있다. 제단비는 조선후기 숙종대에 조성되었으며, 시조단으로 문중에서 신성시 여겨지고 있어 출입을 할 수 없다. 실제 평해황씨 시조는 고려 때 금오위대장군을 역임한 황온인이라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울진 평해황씨 시조단. 조선후기 숙종 때 황씨 시조 황락를 기리는 제단이 세워진 곳이다. 문중 시조를 모시는 곳으로 성역화되어 공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이곳은 관동팔경 중 한곳인 월송정을 들어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이 울창한 송림을 자랑하고 있다. 앞쪽에 평해중학교 등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 수군만호가 주둔했던 월송진 관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시조단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연못과 울창한 소나무숲 등으로 깨끗하게 정원이 꾸며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재실로 보이는 건물.

SANYO DIGITAL CAMERA관리인이 머무는 건물.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2. 위키백과, 2017년

아산 이충무공 유허(사적155호), 현충사가 있는 이순신 장군 유적지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현충사라 불리는 이충무공 유허(사적 155호)이다. 이충무공 유적지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곳으로 젊은 시절 살았던 집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이충무공을 모신 사당인 현충사, 이충무공이 결혼한 이후 살았던 고택, 활을 쏘고 무예를 단련하던 활터, 셋째 아들 이면 공의 무덤 등이 있다. 이충무공의 무덤은 이곳에서 9 km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어라산에 위치하고 있다. 기념관에는 난중일기(국보 76호)를 비롯하여 이충무공과 관련된 많은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현충사는 숙종 때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자 서원의 이름으로 숙종이 직접 이름을 지어 내렸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32년 사당이 중건되었으며, 1967년 국가적인 차원에서 성역화 사업을 진행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영정이 모셔진 사당 앞에 서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운 편이다. 이충무공 유적지로서 성역화된 이후 꾸준히 가꾸어 왔기 때문에 수목이 우거지고 조경이 아주 잘 꾸며져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한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아산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7년 이곳을 성역화하면서 새로 지은 곳이다. 원래 있던 구본전은 아래쪽으로 옮겼다.

SANYO DIGITAL CAMERA현충사 정문. 현충사는 이충무공이 젊은 시절 살았던 곳으로 후손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 왔으며, 숙종 때 현충사라는 서원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SANYO DIGITAL CAMERA현충사 충무문을 지나서 사당인 본전으로 들어가는 길. 1967년 이후 이곳을 성역화하면서 정원을 꽤 아름답게 꾸며놓고 있다. 아주 넓는 길이 충무공 영정을 모신 현충사까지 뚫려 있다. ㅎ

SANYO DIGITAL CAMERA큰길 옆 옛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던 정려(旌閭).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를 표창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앞에 그 훈공을 액자에 새겨놓고 길이 사표로 삼는 것이다. 이곳에는 이충무공 집안에서 받은 5개의 정려가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이곳에 걸려 있는 정려 중 충숙공 이홍무의 정려이다.

  1. 충무공 이순신
  2. 강민공 이완: 완은 충무공의 조카로서 임진란 때에 충무공의 막하에서 종군하여 공을 세웠고 임진란이 끝난 다음해에 무과에 급제하고 충청병사 의주부윤을 지낸 후 정묘호란 때 청군에게 패하게 되자 몸을 불속에 던져 자결하였다. 조정에서는 공의 충성을 높이 치하하여 병조판서의 벼슬을 내리고 강민공의 시호를 내렸다.
  3. 충숙공 이홍무: 충무공의 사대손으로 이인좌의 난 때 그의 조카인 충청병사 봉상과 함께 싸우다 옥중에 갇혀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장렬한 죽음을 택하였다. 조정에서는 공의 충성을 높이 치하하여 이조판서의 벼슬과 함께 충숙공의 시호를 내렸다.
  4. 충민공 이봉상: 충무공의 5대손으로 27세 때 무과에 급제한 후 충청도 병마절도사, 포도대장, 한성부 우윤, 형조참판을 역임하였고 이인좌의 난 때 난군의 급습을 받아 돌아가셨다. 조정에서는 공의 충성을 높이 치하하여 좌찬성을 추증하고 충민공의 시호를 내렸다.
  5.  이제빈: 충무공의 8대손으로 어머니 임종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어머니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노력하였으며, 돌아가신 후에는 묘소에서 3년동안 시묘살이를 하는 등 효성이 지극한 분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안내문, 아산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정려 뒷편에 있는 느티나무. 수령 300여 년 된 것으로 정자나무 역할을 했던 나무이다.

느티나무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300여 년이 된 것으로 추정되며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정자목으로 사용되던 나무이다. 나무높이 20 m, 나무둘레 480 cm, 수관폭 20 m로 넓은 그늘으르 제공하고 연못 옆에 위치하여 현충사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아산시에서 시보호목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자생수종으로 수명이 길고 수형이 단정하며 수관폭이 넓어 마을의 정자목으로 많이 심어지고 목재는 결이 아름답고 견고하여 좋은 건축, 가구재로 사용된다. (안내문, 아산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충무공 영정을 모신 현충사 본전으로 오르는 길. 중간에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이충무공 영정을 모신 현충사 출입문인 충의문.

SANYO DIGITAL CAMERA충의문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SANYO DIGITAL CAMERA이충무공 영정을 모신 사당인 현충사. 1970년대 지어진 앞면 5칸의 사당건물로 목조건축물을 모방한 콘크리이트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현충사 내부. 이충무공 영정이 모셔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현충사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본전
이 본전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1932년 민족성금으로 중건된 구본전을 유물관 옆으로 이전하고 1967년 성역화 사업으로 새로이 건립한 것입니다. 묘소는 이곳에서 9 km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어라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아산시청, 2017년)

SANYO DIGITAL CAMERA현충사 아래 서쪽편에 위치한 구본전. 일제강점기에 중건된 사당 건물로 현충사를 성역화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구본전은 1704년 이충무공의 공덕을 길이 받들고저 아산 지방 선비들이 조정에 상소하여 숙종 32년(1707)에 서원 형식의 사당을 세웠다. 그 후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현충사가 없어지게 되었으나 1932년 6월 5일 이충무공유적보존회와 동아일보사가 주축이 되어 민족성금으로 이 건물을 다시 세우게 되었으며, 1966년 4월 현충사 성역화 계획에 의해 본전이 새로 세워짐에 따라 1968년 9월 9일 지금의 위치에 원형대로 이전된 것이다. (안내문, 아산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구본전의 주련은 위당 정인보가 현충사를 중건할 때 쓴 글이다.

  • 一誓海山綱常於百代(일서해산입강상어백대): 바다와 산에 맹세하므로 강상을 후세에 이르도록 세웠으며
  • 再造乾坤無伐矜於當時(재조건곤무벌긍어당시): 천지를 구해냈으니 내세워 자랑함이 없었네

SANYO DIGITAL CAMERA왼쪽편 주련

  • 成人取義精忠光於檀聖(성인취의정충광어단성): 인을 이루고 취하니 지극한 충성은 단군이래 빛나고
  • 補天欲日功德蓋於槿邦(보천욕일공덕개어근방): 크고 밝은 공덕은 온 나라를 덮었네. (안내문, 아산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이충무공 고택. 이 집은 이순신이 결혼 후 살았던 집으로 종택에 해당하는 집이다. 건물은 ‘ㄷ’자형 안채와 사랑채를 겸한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뒷편 언덕에는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종손들이 살아왔던 안채만 원래 있던 것이고 문간채는 새로 지은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고택 옆 활터에 있는 수령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

SANYO DIGITAL CAMERA이충무공이 활을 쏘고 무예를 단련하던 활터. 과녁 너머 능선은 말을 달리던 곳이다.

활터
이 활터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활을 쏘시던 장소로 남쪽에 있는 과녁과의 거리는 145 m입니다. 그리고 활터를 둘러싼 방화산의 능선은 말을 달리던 곳으로 일명 치마장이라 부릅니다. 은행나무는 수령이 500여 년에 이르며 충청남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아산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활터 뒷편으로는 이충무공 가족들이 묻혀 있는 무덤들이 있는데 그 중 이충무공 셋째 아들인 이면 공의 무덤이 잘 알려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활터 뒷편에 있는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이면 공 무덤으로 오르는 계단.

이면 공 묘소
이곳은 충무공의 셋째 아들인 이면 공을 모신 묘소이다. 면은 1577년 아산에서 출생하고 어려서부터 인물이 누구보다 뛰어나고 지혜와 용맹을 갖추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 하므로 충무공이 그지없이 사랑하던 아들이었다. 면은 임진란이 일어났을 때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집에 있다가 마을 안에서 분탕질을 하고 있는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니 그때 나이 21세 였다. 충무공은 아들의 슬픈 소식을 듣던 그날의 일기에 이같이 적으셨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옳은 이친대,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남달리 영특하므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는 것이냐?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안내문, 아산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이면 공 무덤.

아산 이충무공 유허, 사적 155호,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이곳 백암리 방화산 기슭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사시던 곳이다. 충무공이 순국하신지 108년이 지난 숙종 32년(1706) 이곳에 충무공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세웠으며, 1707년 숙종께서 친히 현충사라 사액하였다. 그 뒤 200여년간 공을 추모하는 향불이 끊이지 않았으나 한동안 일제의 탄압으로 사당은 퇴락하였었다. 이에 동아일보사가 주관하여 온 겨레의 정성으로 1932년에 사당을 중건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매년 4월 28일에 온 국민의 뜻으로 다시 탄신제전을 올려 공을 추모하여 왔다. 1966년에는 일생을 충의에 살고 나라를 구하신 높은 덕과 충성을 기려 이곳을 성역화하고 현충사를 중건하였다. 종합적인 조경공사는 1974년까지 꾀해졌다. (안내문, 아산시청, 2009년)

<출처>

  1. 아산시청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화순 학포선생부조묘, 조선중기 문신 양팽손을 모신 사당

전남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 마을에 있는 학포선생부조묘이다. 조선중기 문신인 학포 양팽손(1488~1545년)을 모신 사당이다. 조선중기 인조 때 처음 세워졌으며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없어졌다가 해방 이후 복원하였다. 건물은 일반적인 서원과 비슷한 강당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학포문집”과 “정암문집”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당이 있는 월곡리마을은 그의 후손의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전형적인 집성촌인 것으로 보인다. 사당앞에 19세기에 지어진 2동의 고택이 남아 있다.

학포 양팽손(1488~1545년)은 조선 중종 때 활동했던 문신으로 사간원 등에서 관직을 역임했으며 기묘사화로 관직이 삭탈된 후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시서화에 능했는데 개인문집인 학포문집이 전하며 회회에도 뛰어나 안견의 산수화풍을 계승했다. 화순군 능주에 있는 죽수서원에 조광조와 함께 배행되었으며, 능주 지역에는 그와 관련된 유적들이 여러곳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순군 월곡리마을에 있는 학포선생부조묘. 사당과 강당을 두고 있는 서원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출입문. 솟을삼문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건물인 경장각. 마을 인근에 있던 건물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앞면 4칸 규모의 큰 건물이다.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용도의 건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뒤편에 위치한 사당.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앞에는 양팽손의 후손들로 보이는 지주계층 적택인 양참사댁과 학재고택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능주면소재지 부근에 위치한 죽수서원. 조광조와 양팽손을 모시고 있다.

학포선생부조묘, 전남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
학포선생부조묘는 학포 양팽손을 모시는 사당으로 현재는 신실구역과 강당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전학후묘의 사당배치를 하고 있으며 신실구역에만 보호담장을 둘렀다. 학포선생은 조선 중종 때 정계에 진출하여 사간원 정언 등 벼슬을 하다 용담현령을 마지막으로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는 기묘사화로 관직이 삭탈된 후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선생은 특히 선비로써 갖추어야 할 시서화에 능했는데 개인문집인 학포문집이 전하며 10점의 남종화를 남겨 남종화의 태두로도 알려져 있다. 신실 구역의 건물은 인조 9년경 (1631)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하여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인 1947년에 복원하였고 1990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수하였다. 강학구역인 경장각은 신실 정면 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1892년에 인근 월곡리에 있었던 건물을 1961년 현재의 위치로 이축했고 1992년에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 “학포문집”과 “정암문집”을 만들었는데 판각은 한국전쟁 떄 소실되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이 부조묘에서는 음력 8월 18일에 후손들이 모여 학포선생의 학덕을 기리며 제사를 모시고 있다. (안내문, 화순군청, 2017년)

<출처>

  1. 화순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