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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산재, 경주 6부 촌장을 모신 사당

경북 경주시 탑동에 있는 양산재(楊山齋)이다. 신라를 건국한 경주 5부촌장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경주 6촌은 북천 북쪽 알천양산촌(경주 이씨), 남천 북쪽 돌산고허촌(경주 최씨), 월성 동쪽 취산진지촌(경주 정씨), 모량천 유역 무산대수촌(경주 손씨), 북천 북쪽 백률사 부근 금산가리촌(경주 배씨), 보문사 부근 명활산고야촌(경주 설씨)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 주요 성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6촌은 유리왕9년(32)에 6부로 개편되면서 이들 6촌에 성씨를 내렸다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성씨를 사용한 시기는 그 이후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OLYMPUS DIGITAL CAMERA<6부 촌장을 모신 양산재 사당>

6부의 이름을 바꾸고 성씨를 내리다 ( 32년 (음) )
9년(32) 봄에 6부(六部)의 이름을 바꾸고, 성씨(姓氏)를 사여하였다. 양산부(楊山部)는 양부(梁部)라고 하고 성(姓)은 이(李)로 하였으며, 고허부(高墟部)는 사량부(沙梁部)라고 하고 성은 최(崔)로하였다. 대수부(大樹部)는 점량부(漸梁部)라고 하고 성은 손(孫)으로 하였으며, 간진부(干珍部)는 본피부(本彼部)라고 하고 성은 정(鄭)으로 하였다. 가리부(加利部)는 한기부(漢祇部)라고 하고 성은 배(裵)로 하였으며, 명활부(明活部)는 습비부(習比部)라고 하고 성을 설(薛)로 하였다.  (삼국사기 권 1 신라본기 1 유리 이사금,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박혁거세 탄생설화가 있는 경주 나정(蘿井, 사적)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70년대에 건립된 곳으로 유적지라기 보다는 신라의 건국을 설명해 주는 장소이자 여섯 성씨의 조상을 함께 모신 공간이다. 양산재는 6부촌장을 모신 사당과 앞쪽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건물, 양산재를 관리하는 살림집으로 구성되어 있데 서원의 공간배치와 비슷하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산재>

OLYMPUS DIGITAL CAMERA<외삼문>

OLYMPUS DIGITAL CAMERA<재사를 준비하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관리인 거처로 보이는 한옥>

OLYMPUS DIGITAL CAMERA<양산재에서 보이는 박혁거세 탄생설화가 있는 경주 나정(사적)>

양산재(楊山齋), 경북 경주시 탑동
양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이 재각건물(齋閣建物)은 6부 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6부촌장은 신라가 건국되기 전 진한 땅에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취산진지촌(特山珍支村),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명활산고야촌 (明活山高耶村)의 여섯 촌을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는데, 서기전 57년에 알천 언덕에 모여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를 여섯 촌장이 추대하여 신라의 첫 임금이 되게 하니 이 해가 바로 신라의 건국년(建國年)이 되었다. 그후 신라 제3대 유리왕이 6부촌장들의 신라건국 공로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6부의 이름을 고치고 각기 성을 내리게 되니 바로 양산촌은 이씨(李氏), 고허촌은 최씨(崔氏), 대수촌은 손씨(孫氏), 진지촌은 정씨(鄭氏), 가리촌은 배씨(裵氏), 고야 촌은 설씨(薛氏)이다. 이로써 신라에 여섯 성씨(姓氏)가 탄생되었고 각기 시조 성씨가 되었다. 이 사당은 1970년 이들 6촌장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경주 숭혜전과 계림세묘

경북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 입구에 있는 숭혜전이다. 경주 김씨 중 처음으로 왕이된 13대 미추왕과 삼국통일을 이룬 30대 문무무왕과 마지막 경순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원래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었으나 구한말 고종 때 사당을 크게 짓고 미추왕과 문무왕의 위패도 같이 모시게 되었다. 맞은편에는 시조인 김알지(金閼智)를 모시는 사당인 계림세묘(桂林世廟)가 있다. 이곳은 경주김씨를 비롯하여 김알지의 후손이라 일컫는 많은 성씨들이 함께 조상을 모시는 공간이다. 조선후기에 시조를 모시는 공간인 박혁거세를 모시는 경주오릉 숭덕전과 수로왕릉의 예를 따라 구한말에 기능을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탈해왕을 모신 숭신전도 세워졌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숭혜전>

OLYMPUS DIGITAL CAMERA<숭혜전 신문>

OLYMPUS DIGITAL CAMERA<위패를 모신 숭혜전>

OLYMPUS DIGITAL CAMERA<제기고>

숭혜전 신문 앞 마당에는 서원 동.서재와 비슷한 형태의 건물이 양쪽에 세워져 있다.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로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육재>

OLYMPUS DIGITAL CAMERA<경모재>

OLYMPUS DIGITAL CAMERA<영육재 뒷편 부속건물>

미추왕은 김알지의 6대손으로 조문왕의 사위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에 백제와의 약간의 충돌은 있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던 시기이다. 미추왕의 뒤를 이어 석씨인 유례왕이 왕위를 계승했으며, 이런 형태의 왕위계승은 내물왕대까지 이어졌다. 내물왕 이후 신라가 멸망하기까지 대부분 기간 왕위를 계승했다. 경순왕의 후손인 경주 김씨를 비롯하여, 안동김씨, 광산김씨 등 600여개의 성씨가 후손들이다. 숭혜전 뒷편 대릉원에 미추왕릉이 있는데 다른 고분과는 달리 삼문과 담장을 두고 이다.

SANYO DIGITAL CAMERA<경주 미추왕릉>

숭혜전 앞 마당에는 경순왕 신도비가 세워졌으며 남쪽에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를 모시는 계림세묘(桂林世廟)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숭혜전 앞 광장>

OLYMPUS DIGITAL CAMERA<경순왕 신도비>

OLYMPUS DIGITAL CAMERA<계림세묘로 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계림세묘 삼문>

OLYMPUS DIGITAL CAMERA<계림세묘>

SANYO DIGITAL CAMERA<경주 계림(사적)>

숭혜전(崇惠殿), 경북 경주시 황남동 216
숭혜전 건물내에는 신라 최초의 김씨 임금인 13대 미추왕(味鄒王)과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30대 문무대왕, 그리고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위패를 모셨다. 원래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처음 월성(月城)에 사당을 지어 영정(影)을 모시고 제향했으나,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인조 5년(1627) 동천동에 새로 사당을 지어 동천묘(東界)라 하고 경순왕의 위패를 모셨다. 경종 3년(1723) 경순왕전으로 고치고 정조 18년(1794)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황남전(皇南殿)이라 고쳤다. 그 후 고종 24년(1887)에 미추왕의 위패를 모시고, 이듬해 문무대왕의 위패도 같이 모시게 되었다. 이때 고종황제가 사당을 크게 짓게 하고 숭혜전이라는 편액을 내렸다. 앞면 5칸, 옆면 3칸인 맞배집으로 왼쪽에 영육재(永育齋), 오른쪽에 경모재(景慕齋)가 있다. 앞에는 경순왕 신도비와 비각이 있고, 길 건너에 계림세묘(桂林世廟)가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두산백과, 2021년

경주 양동마을 영당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있는 사당인 영당(影堂)이다. 수졸당 이의잠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1636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3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앞쪽에는 제사를 위한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전형적인 사당건물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영당 앞에는 재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있으며 뒷편에는 이의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자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영당>

OLYMPUS DIGITAL CAMERA<영당 담장과 삼문>

OLYMPUS DIGITAL CAMERA<영당 앞 재실로 보이는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재실 앞 살림집>

OLYMPUS DIGITAL CAMERA<동호정에서 보이는 영당>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상주 승곡리 추원당, 검간 조정을 모신 재사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마을에 있는 추원당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여 임진란기록 (보물 1003호)를 남긴 검간 조정을 모시는 재사이다. 건물은 조정의 불천위를 모신 재사인 묘우, 강당, 전사청, 고직사 등이 있다. 원래는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재사였는데 1952년 강당건물을 옮기면서 서원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강당에는 “장천서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어 장천서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승곡리 마을 바깥쪽에 있는 추원당. 외삼문, 강당, 내삼문, 재사가 일렬로 배치된 서원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장천서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강당. 앞면 5칸으로 2층 누각과 비슷한 고상식 형태를 하고 있다. 다른 곳에 있던 것을 1952년 옮겨와 서원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검간 조정의 불천위를 모신 재사.

OLYMPUS DIGITAL CAMERA제사 준비를 하는 부속 건물.

상주 승곡리 추원당, 경북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추원당은 1759년(영조 35)에 목조와가로 최초 건립되었으며 배치는 묘우, 강당, 내외삼문, 전사청, 고식사 등 전형적인 재사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 선조.인조 때의 학자인 정구.김성일의 제자였던 검간 조정 선생의 불천위를 모신 재사이다. 조정 선생은 임란시 창의하여 의병활동을 주도하였고 특히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임진란 기록”은 보물 100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임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보존되고 있다. 강당은 비록 1952년에 이건된 건물이지만 인근에 있는 양진당과 같은 고상식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OLYMPUS DIGITAL CAMERA 남행록, 보물 1003호, 1592년 8월 25일부터 9월 23일까지 28일간의 일기로써 검간 조정이 당시 거창에 주재한 순찰사 김성일에게 토적 등에 관한 것들을 논의하면서 기록한 일기입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검간 조정의 임난일기, 보물 1003호, 상.하 두권으로 구성된 것으로 임진년의 기사가 포함되어 있어 임진일기로도 불립니다. 상권에는 1592년 4월 14일부터 6월 6일까지 52일간의 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권은 1592년 6월 7일에서 12월 27일까지 190일간의 일기입니다. 모두 242일간의 기록으로, 6월 7일에서 6월 16일까지  10일간의 기록은 누락되었습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검간 조정(1555 ~ 1635년)
본관은 풍양, 자는 안중, 호는 검간이다. 정구와 김성일의 문인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은척 황령사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으며, 1596년에는 왜군과의 강화를 배격하는 소를 올렸다. 정유재란 때는 두 아들을 창녕의 화왕산성으로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후 1599년 참봉이 되고, 1603년 사마시에 합격했다. 1609년 좌랑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호조좌랑, 서헌부감찰, 청도군수, 형조정랑, 춘추관련수관, 사섬사정, 봉상시정을 거쳐 정묘호란 때 강도(강화도)로 호종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경술과 문장에 뛰어났다. 1642년(인조 20)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의성 속수서원과 상주 장천서원에 봉향되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해남 단군전

전남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에 있는 단군전이다. 단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일제강점기 구월산 삼상사에 있던 영정을 이종철이라는 사람이 고향으로 옮겨와 전각을 세우고 모셨다고 한다. 해방 이후 1957년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단군전은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규모의 사당이다.

SANYO DIGITAL CAMERA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서린공원 내에 있는 당군전. 황해도 구월산 삼상사에 있던 단군 영정을 옮겨와 모시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단군전 사당.

SANYO DIGITAL CAMERA단군전 앞 단군상.

SANYO DIGITAL CAMERA단군전 앞에 있는 3.1운동 기념비.

SANYO DIGITAL CAMERA단군전이 있는 해남 서린공원.

SANYO DIGITAL CAMERA서린공원에 있는 울창한 고목들. 팽나무를 비롯한 수령 200~300년 된 고목들이 있다.

<출처>

  1. 위키백과,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