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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사적 55호), 안향을 모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소수서원(紹修書院, 사적 55호)이다.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을 모시기 위해 풍기군수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이란 이름으로 세웠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이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직하면서 국왕으로부터 ‘소수서원’이란 현판을 하사받은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서원은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중국 당나라 때 집현전서원 등의 설치에서 유래하였다.

소수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답게 건물이 크고 그 숫자다 많은 편이다. 경사진 언덕에 계단식으로 강학공간과 제향향공간이 배치되는 후대의 서원과는 달리 죽계천변에 옛 절터에 여러 건물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있다. 강학공간을 동쪽에, 제향공간을 서쪽에 두고 있는 동학서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서원의 중심에는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걸린 강학당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유생들이 공부하는 직방재와 일신재, 학구재, 지락재와 서고, 전사청 등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서쪽편에 안향 등 을 모신 사당인 문성공묘가 배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 소수서원(사적 55호). 숙수사란 사찰이 있던 곳에 강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다른 서원에 비해 유행들이 머물렀던 기숙사 건물이 크고 많은 편이다.

소수서원 들어가는 길

소수서원은 안향이 머물렀던 숙수사란 절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동쪽으로 죽계천이 흐르고 서쪽에는 나즈막한 언덕이 있으며, 학자수라 불리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솔밭길에는 절터임을 말해주는 당간지주를 볼 수 있으며, 죽계천 너머로 옛사람들이 쉬었던 취한대란 작은 정자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입구.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서쪽 낮은 둔덕에는 학자수라 불리는 울창한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서원 들어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59호).

SANYO DIGITAL CAMERA서원 동쪽으로 흐르는 죽계천. 고려말 유학자 안축이 지은 ‘죽계별곡’의 배경이 되는 하천이다.

SANYO DIGITAL CAMERA죽계천 옆에 세워진 작은 정자인 취한대.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출입문. 후대 서원과는 달리 솟을삼문이나 문루를 사용하고 있지 않고 작은 협문을 두고 있다. 그 앞에은 제사에 올리던 제물을 잡던 성생단이 있다.

진입영역
서원 왼편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둔덕은 거북이가 알을 품은 모습처럼 보여 영귀봉이라 한다. 영귀봉 주변으로 수백년 된 적송이 장관인데, 소나무에게서 선비의 충절을 배운다는 뜻으로 학자수라 불리기도 한다. 보기에도 멋진 소나무 숲은 서원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영귀봉 위에는 작별의 정을 나누던 소혼대가 있다. 서원 정문인 지도문 앞 잔듸 제단은 성생단이다. 매년 봄, 가을에 안향 선생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할 가축의 흠결을 살피고 잡던 제단터이다. 지도문 오른쪽 경령점은 죽계수를 따라 펼쳐지는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학문을 이야기 하던 곳으로 1543년 주세붕이 세웠다. 경렴정에는 스승인 퇴계 이황의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썼다고 전해지는 초서의 대가 고산 황기로의 현판이 남아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강학공간

소수서원은 후학양성을 위해 세워진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강당 건물인 강학당(보물 1403호)를 중심으로 여러동의 건물들을 두고 있다. 유생들이 머물렀던 기숙사는 3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학문의 단계에 따라 지락재, 학구재, 일신재와 직방재가 있으며, 평상시 많은 유생들이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강학공간 한쪽편에는 도서관 격인 장서각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의 중심 건물인 강학당(보물 1403호). 앞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궁궐건물에서 볼 수 있는 겹처마를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당 내부. 명종이 친필로 ‘소수서원’이라 적은 현판이 걸려 있다. 퇴계 이황의 건의로 국왕으로 부터 현판을 하사받은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이 머무는 기숙사 중 가장 낮은 단계인 지락당. 앞면 3칸 건물로 온돌방 1칸, 마루 2칸으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두번째 단계인 학구재. 앞면 3칸짜리 건물로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 1칸씩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3번째와 4번째 단계 유생들이 머무는 일신재와 직방재이다. 앞면 6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이다.

SANYO DIGITAL CAMERA서적과 목판을 보관하던 장서각.

SANYO DIGITAL CAMERA일영대. 일영대는 해시계로 알려져 있다. 자연속 주춧돌 위에 문지도리석을 올려 놓은 것으로 숙수사의 유적이라는 설도 있다.

강학영역
서원은 크게 강학영역과 제향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강학영역은 학문을 닦고 배우던 공간이다. 앞의 제일 큰 건물이 강학당(보물 1403호)이고, 오른쪽 뒤편으로 돌아가면서 지락재와 학구재, 일신재와 직방재가 위치한다. 강학당 왼쪽으로 장서각이 있다. 건물배치는 하학상달, 즉 학문의 차례와 단계를 뜻한다. 독서를 통한 학문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지락재를 시작으로, 성현의 길을 따라 학문을 구하는 학구재,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일신재, 그리고 깨어있어 마음을 곧게 한다는 직방재, 이 직방재에 이르면 학문을 크게 이루게 되므로 비로소 명륜당이라 불리는 강학당에 들어 세상의 이치를 밝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배출된 인재가 4,000여명에 달한다. 1543년에 건립된 강학당 내부에는 명종임금이 내려준 친필 편액이 걸려있으며,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장서각은 책과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제향공간

소수서원은 고려 때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제향공간에는 사당인 문성공묘(보물 1402호)과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있다. 사당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는데 후대 서원과는 달리 그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반면에 사당을 사(祠)라 하지 않고 묘(廟)로 격을 높여 부르고 있다. 사당 뒷편에는 안향초상(국보 111호)와 주세붕초상(보물 717호)를 모시기 위한 건물인 영정각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서원 동쪽편에 위치한 사당인 문성공묘(보물 1402호). 다른 서원에 비해 건물도 소박하며 공간도 넓게 쓰고 있지 않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뒷편에 있는 전사청.

SANYO DIGITAL CAMERA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영정각. 1970년대에 세워진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정료대와 관세대. 정료대는 밤에 서원을 밝히던 조명시설로 윗부분 석재 위에 관솔을 피워 정원을 밝혔다. 관세대는 사당을 참배할 때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대야를 올려놓는 받침들이다.

제향영역
제향영역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문성공묘(보물 1402호)와 전사청, 영정각 등의 건물이 있다. 문성공묘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문성공 회헌 안양의 위패를 모신 사묘로 1542년 주세붕이 세웠다. 문성공묘를 사(祠)라 하지 않고 묘(廟)로 격을 높여 부른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매년 봄, 가을로 두 번의 제사를 지낸다. 문성공묘 뒤편에 있는 전사청은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준비하던 곳이다. 일반적으로 전당후묘라 하여 강학공간 뒤에 제향공간을 두는데 서쪽방향을 중시하는 우리 전통사상에 따라 강학공간 측면 서쪽에 제향공간을 배치한 독특한 사례이다. 서원에 영정각이 있는 것도 특이한 일로 안향초상(국보 111호)과 주세붕초상(보물 717호) 등 보물급 영정을 많이 소장하고 있어 1975년에 특별히 지어진 건물이다. 현재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서원 뒷편에 있는 사료관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 지역 출신 고려시대 유학자인 회헌 안양의 위패를 모신 사묘를 세우고, 이듬해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후에 퇴계 이황이 명종임금께 건의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받았다. 서원은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강학공간에는 강학당을 중심으로 지락재, 학구재, 일신재, 직방재 등의 건물이 있고 제향공간에는 문성공묘, 전사청, 영정각 등이 있다. 소수서원은 숙수사라는 절터에 세워졌다. 서원 안팎으로 당간지주 등 숙수사 유적이 남아 있어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안동 도산서원(사적 170호), 퇴계 이황을 모신 서원건축을 대표하는 서원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도산서원(陶山書院, 사적170호)이다. 퇴계 이황을 모시기 위해 조선중기 선조 7년(1574)에 세워진 서원으로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선조는 명필 한석봉이 쓴 편액을 하사하였으며, 광해군 때 월천 조목이 배향되었다. 퇴계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류성룡, 김성일이 있는데 이들 또한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문신이다. 처음에는 이들과 함께 인근 호계서원에 모셔졌으나 두사람의 서열을 정함에 있어서 지역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어 류성룡은 하회마을 인근의 병산 서원에, 김성일은 임천서원에 따로 모셨다.

도산서원은 영남 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으며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에 존속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한곳이다. 1970년에 성역화 사업으로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서 오늘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서원 도서관인 광명실에는 약 5000여권의 장서가 있었으며, 장판각에는 2790여판의 목판이 보관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인근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겨 보관.전시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도산서원(사적 170호). 퇴계 이황을 모신 곳으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 장소이면서도 서원 건축을 대표하는 곳으로도 의미가 큰 곳이다.

주요 건물로는 퇴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상덕사(보물 211호), 강학공간 중심건물로 강당인 전교당(보물 210호). 기숙사인 동.서재. 서적을 보관하는 광명실과 장판각, 이황이 직접 세웠으며 가르치던 도산서당과 부속 건물 등이 있다. 선현을 모시고 후진을 양성하는 서원 본래의 기능에서도 대표적인 서원이면서도, 서원 건축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곳이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고 있는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계단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서원내 어디에서든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들어가는 길.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도산서원은 학문을 수양하는 서원으로서는 입지가 상당히 좋은 곳에 있다.  민가와는 상당이 떨어져 있는 숲속에 있으면서도 낙동간 너머 넓은 벌판이 있어서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세상을 보면서 치세를 고민할 수 있는 장소이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들어가는 숲길.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SANYO DIGITAL CAMERA낙동강 너머로 꽤 넓은 벌판이 있고, 민가들이 많은 마을도 볼 수 있다. 마을과는 낙동강으로 막혀 있어서 멀리 떨어진 듯 하면서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낙동강 건너편에는 조선후기 정조 때 이곳 시행한 과거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시사단을 볼 수 있다.

시사단
강 건너편 비각은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조대왕께서 퇴계 이황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그 16년(1792)에 관원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임금의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다음날 이곳 송림에서 어제로 과거를 보았는데, 응시자는 7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 체재공이 지었다.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만이 현 위치에서 지상 10 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의 자리를 표해두고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앞 마당. 서원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는 고목들을 여럿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당에 있는 우물인 열정.

열정(冽井)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역경의 정괘 ‘정렬한천식’에서 의미를 취하였다. 우물은 마을이 떠나도 옮겨가지도 못하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다. 이처럼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퍼내어 마시듯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심신을 수양해야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고목. 퇴계 이황이 산책을 했던 길이 고목 뒷편에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고목 뒷편 퇴계 이황이 산책을 즐겼던 언덕인 천연대.

천연대
퇴계 선생께서 자연의 이치를 체득하고 심성수양을 위해 산책하시던 곳이다. 『시경』 중의 ‘하늘에는 새가 날고 물에는 물고기가 뛰어 논다’에서 인용하여 천연대라 이름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서원 출입문. 누각이나 솟을삼문이 있는 다른 서원과는 달리 작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서원의 풍경을 가리지 않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도산서당, 퇴계 이황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던 공간

정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중심영역으로 강학공간까지는 계단식으로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퇴계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던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다. 동쪽에는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도산서당이 있고 서쪽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관리소인 하고직사, 강당 역할을 했던 역락서재가 있다. 후에 도산서원으로 바뀔때 옛 건물들은 그대로 두고 뒷편에 강학공간과 사당을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정문을 들어서면 도산서원을 대표하는 장면인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진 전교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쪽편에 자리한 도산서당. 퇴계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직접 지은 건물로 앞면 3칸 규모의 소박한 건물이다. 왼쪽에 퇴계가 주로 머물렀던 작은 온돌방이 있으며, 오른편에 대청마루가 있다.

도산서당
퇴계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재’라 하였고, 마루는 ‘암서헌’이라 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대청마루.

SANYO DIGITAL CAMERA마당 한편에 있는 연못인 ‘정우당’. 퇴계선생은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우당
퇴계 선생은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 연꽃은 진흙탕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속은 비고 줄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맑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마당에 있는 작은 우물인 ‘몽천’. 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간다는 의미로 ‘역경’의 몽괘에서 의미를 취하여 몽천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동쪽편에 있는 작은 화단. ‘절우사’라고 불리우며 이 곳에 매, 대나무, 국화, 소나무 등을 심어 퇴계선생이 직접 가꾸셨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절우사에서 본 도산서당.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이다. 도산서원은 강당인 전교당 아래에 동.서재가 있지만, 이 곳 도산서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서원내에는 농운정사외에도 역락서재라는 별도의 건물이 있으며, 다른 서원에 비해서 고직사 건물또한 많은 방을 두고 있다. 아마도 전국각처에서 도산서원을 찾아온 선비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농운정사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다. 공부하던 동편 마루를 ‘시습재’라 하였고,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이라 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농운정사 옆쪽에 있는  역락서재. 퇴계가 도산서당에 머물때 제자들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서원을 찾은 손님들이 묵는 장소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락서재
퇴계 선생께서 도산서당에서 학물을 강론할 때 정사성을 비롯한 제자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출입문에서 내려다 본 모습. 건물배치와 정원이 아름답다.

강학공간

도산서원 강학공간은 서원 뒷편 높은 곳에 있는데 상덕사를 앞쪽에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멀리까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강학공간에는 강당건물인 전교당(보물 210호)를 비롯하여 동.서재, 도서관에 해당하는 많은 서적들을 보관했던 동.서광명실, 목판을 보관했던 장판각이 있다. 강학공간 건물들은 퇴계가 직접 세운 것은 아니고 그의 사후 서원으로 바뀌면서 지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출입문인 진도문.

SANYO DIGITAL CAMERA진도문 동쪽에 있는 누각 형태의 건물인 동광명실. 서적을 보관하던 도서관 건물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주위에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었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서광명실.

광명실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동.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지었다. 광명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 준다.”는 뜻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건물인 전교당(보물 210호). 앞쪽에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멀리 낙동강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온돌방 1칸과 앞면 3칸의 넓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도산서원’이라 적힌 현판은 명필 한석봉의 글씨로 선조가 내린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전교당 대청마루. 앞쪽에 문을 달고 있지 않아 바람이 시원하며 멀리 낙동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출입문 지붕을 크게 만들어 경치를 약간 가리고 있는데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동.서재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건물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동편 건물을 ‘박약재’라 하고, 서편 건물을 ‘홍의재’라 한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동재 뒷편에 있는 목판을 보관했던 장판각.

장판각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선조어필, 퇴계선생문집, 유묵, 언행록, 병서, 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을 보관해오다가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제향공간

상덕사(보물 211호)는 도산서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으로 퇴계 이황선생의 제자인 조목 선생의 위패와 같이 모셔져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출입문. 도산서원이 세워질 때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쪽에 제사 준비를 하는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옆에 있는 전사청.

고직사, 서원 관리인이 머무는 살림집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살림집인 고직사는 강학공간 옆에 있는 상고직사와 농운정사 뒷편에 있는 하고직사가 있다. 다른 서원에 비해 건물 규모도 크고 방의 숫자 또한 많은편이다. 서원이 주변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지방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묵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옆에 있는 상고직사. ‘ㅁ’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살림집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에는 제사 준비를 하는 넓은 대청마루가 있으며 양쪽으로 제기 등을 보관하는 창고가 많은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 출입문과 문간방.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에서 내려다 본 풍경.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기숙사였던 농운정사 뒷편에 있는 하고직사. 손님들이 머물렀던 공간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에서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퇴계종택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원주 거돈사지(사적 168호), 남한강 뱃길 부근에서 번창했던 사찰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절터인 거돈사지(居頓寺址, 사적 168호)이다. 중문, 탑, 강당, 승방, 회랑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통일신라 평지사찰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일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승방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많은 건물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이곳에는 많은 승려들이 머물렀으며, 여행자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서는 원공국사탑(보물 190호)과 탑비(보물 78호), 그리고 삼층석탑(보물 750호)이 남아 있었는데, 그 중 원공국사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와 현재는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다.

거돈사는 충주나 제천지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육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도로나 철도에서 먼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적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지도를 살펴보면 걸어서 여행을 하던 시절에는 중요 교통 요지였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남한강 뱃길의 주요 나룻터인 창말나루터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 여행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역원기능을 겸하면서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이 없어지면서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원주 거돈사지(사적 168호), 삼층석탑과 금당, 강당이 일렬로 나란히 배치된 1탑1금당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사찰이다. 통일신라 사찰 중에서는 보기 드문 가람배치이다. 금당 앞에는 회랑을 두었으며, 주변에 많은 건물터가 확인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찰 앞 중심 공간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보물 750호).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넓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삼층석탑을 올려놓고 있다. 축대가 넓은 기단과 같은 역할을 하여 안정감을 주면서 웅장하게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삼층석탑 뒷편에 있는 금당터. 금당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2층 건물로 추정되며, 지금의 금산사 미륵전과 비슷한 모습인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을 오르는 계단. 금당터는 잘다듬은 큰 화강석으로 축대를 쌓고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터 중앙에는 불상을 올려 놓았던 석재로 만든 대좌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기둥을 올려 놓았던 주춧돌.

SANYO DIGITAL CAMERA금당 뒷편에는 강당으로 보이는 큰 건물터가 있으며, 옆쪽에는 회랑으로 추정되는 긴 건물터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 뒷편 강당터로 보이는 건물터와 주위의 크고 작은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금당 옆쪽편으로는 승려들의 생활공간이자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 뒷편 건물터와 축대.

SANYO DIGITAL CAMERA절터 뒷편 언덕에는 원공국사탑(보물 190호)를 볼 수 있다. 원래 있던 승탑은 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복제품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원공국사탑(보물 190호, 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보물190호). 고려초 활동한 원공국사 지종(智宗)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에 입구에 있는 원공국사탑비(보물 78호)이다.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로 구성된 전형적인 탑비의 형태를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 머리는 험한 인상의 용의 얼굴을 하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 무늬로 거북등껍질을 표현하고 하고 있는데 그 안에 卍자와 연꽃무늬를 새겼다. 비석의 글은 당대 학자였던 최충이 글을 짓고, 김거운이 글씨를 썼다.

SANYO DIGITAL CAMERA절터에서 출토된 석재들.

<출처>

  1. 안내문, 원주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강원도 강원감영(사적 439호), 관찰사가 근무하던 곳

강원 원주시 일산동에 남아 있는 강원감영(사적 439호)이다. 강원도 26개 부,목, 군현을 관할하던 지방 관청인 강원감영이 있던 곳이다. 조선 태조 때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여 강원도라 하고 강원주에 감영을 설치하였다. 강원 감영의 건물들은 임진왜란때 대부분 소실되었고, 1634년 원주목사가 재건하기 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강원 감영이 없어진 1895년에는 55동에 이르는 건물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군청 등 관공서 건물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강원감영 정청 건물이었던 선화당과 살림집인 내아, 출입문인 포정루가 남아 있다.

조선전기 관찰사는 관할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근무하는 순력이 중심이어서 감영 건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조선후기에는 지방을 통치하는 상설기관으로 바뀌면서 많은 건물들이 필요하였다. 감영에 설치된 건물로는 궐패를 모신 객사가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고, 관찰사가 근무하던 선화당, 숙소인 내아를 중심으로 감영에 소속된 인사들이 근무하는 비장청 등과 호적 등 서류를 보관하던 호적고를 비롯한 창고를이 감영내에 설치되었다. 감영들은 대부분 대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상업지역이나 관공서로 바뀌어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전국적으로 전라감영 전주객사, 공주 충청감영 선화당,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 등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원주 강원감영(사적 439호), 관찰사가 근무하는 정청건물인 선화당과 숙소인 내아가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선화당 출입문으로는 문루인 포정루, 중문인 중삼문과 내삼문이 있다.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 많은 부속건물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객사는 포정루 바깥 상업지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심 상업지구 옛 객사가 있던 곳에서 볼 수 있는 옛지도를 표현하고 있는 그림. 하천이 읍성 주위를 흐르고 있으며, 강원감영에 속했던 많은 부속건물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시관에 모형으로 재현해 놓은 옛 강원감영. 동쪽에 객사가, 서쪽에 정청인 선화당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강원감영에 남아 있는 옛 건물 중 하나인 포정루이다. 조선시대 관아건물은 지역별로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관찰사가 근무하던 감영은 같은 이름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포정루. 앞면 3칸의 2층 문루 건물이다. 감영 출입문이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포정루(布政樓)
포정이란 중국 명나라의 지방관청인 포정사에서 연유한 명칭으로 강원감영 포정루는 강원도 지방을 다스리던 감영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출입문루이다. 1395년 강원감영이 원주에 설치되었을 때 감영의 건물은 소규모로 조성되었고, 1480년(성종11) 이후 원주목사와 권륜 강원감사가 관아 건물 중수 계획을 세웠으며, 1483년 후임자 김상 목사와 허달 통판이 중수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조선전기 강원감영은 원주목의 관아를 함께 사용하였고, 임진왜란 때 관아의 모든 건물이 불탄 이후 재건을 시작하면서 1665년 감사의 집무처인 선화당과 함께 포정루를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건물 외부의 구조는 방형의 긴 초석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웠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지붕은 익공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졌다. 2층 누각의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계자 난간을 사방에 둘렀다. 천장은 장식이 없는 연등천장이다. 1895년(고종 32) 강원감영이 폐지된 이후 원주진위대 본부로 사용했을 당시에는 선위루라는 편액이 달렸고,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강원감영문루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다. 1995년 이후에는 조선시대 강원감영 정문의 명친인 포정루라는 편액을 달았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포정루를 지나면 두번째 출입문인 중삼문이 있다. 건물터만 있던 것을 복원한 건물이다. 주변의 담장과 부속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중삼문. 앞면 5칸 규모로 양쪽에 작은 문간방이 있다.

중삼문
조선시대 원주역에 자리했던 강원감영에는 크게 동문.서문.남문.북문의 4대 외곽문이 있었고,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으로 출입하는 진입공간에는 포정문과 중삼문, 내삼문이 있었다. 중삼문은 진입공간의 배치상 가운데에 위치한 문으로 포정루를 지나온 사람들은 이곳 중삼문에서 재차 본인의 신원과 강원감영의 관찰사를 만나기 위해 들어서는 문이라는 의미로 관동관찰사영문이라는 고유한 명칭을 지니고 있다. 건물구조는 기록에 따르면 5칸 규모로 확인되지만 2000년 강원감영터를 발굴할 당시 정면3칸, 측면 2칸의 문지가 발굴되었고, 이에 따라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복원하였다. (안내문, 2011년, 원주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중삼문과 내삼문 사이 마당에 있는 비석들. 역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들의 선정비를 모아 놓았다.

관찰사 및 목사 선정비
감영의 중삼문과 내삼문 사이에는 총 14기의 비석이 놓여 있다. 이 비석들은 과거 조선시대 강원감영과 원주목 관아에서 관찰사와 목사로 재직하였던 관인들이 재임 당시 가원도와 원주지역을 훌륭하게 잘 다스렸던 흔적을 생생하게 남기고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다. 한편 이 선정비는 후임자로 온 관찰사와 목사에게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되기도 하였고, 그런 측면에서 선정비는 올바르게 백성을 다스리고 어루만졌던 지방관을 기리는 의미와 함께 새로 부임하는 관찰사나 목사를 경계하능 의미도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원주지역 곳곳에는 과거 강원도 관찰사와 원주목사로 재임했던 많은 지방관들의 선정비가 세워졌으나 현재 대부분 사라져 흔적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고, 원주시 개운동을 비롯하여 일부 지역에 남아 있던 선정비를 강원감영을 복원하면서 옮겨왔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강원감영 내삼문. 관찰사 집무공간인 선화당 마당을 출입하는 문이다.

내삼문
내삼문은 포정루, 중삼문과 연결되어 관찰사의 집무공간인 선화당으로 곧장 들어서는 문이다. 감영의 진입공간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고, 이곳에서 방문자는 강원감사를 만나기 전 마지막 신원확인 절차를 거치게 된다. 방문자는 내삼문의 고유한 명칭인 징청문이라는 편액에서 알 수 있듯이 문을 들어서면서 청렴결백한 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데, 이는 다만 관찰사를 만나러 온 방문객뿐만이 아니라 관찰사를 포함하여 이 문을 들어서는 모든 관인들이 상기해야할 덕목이 된다. 내삼문의 건물구조는 기록상 5칸으로 되어 있으나 2000년 발굴조사 당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지가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복원되었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내삼문을 들어서면 강원도 관찰사가 근무하는 공간인 선화당 건물이 보인다. 내삼문에서 선화당까지는 박석이 깔린 길이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원감영 선화당. 중앙관청 의정부나 육조의 정청과 비슷한 규모와 형태이다. 동헌과는 달리 내부에 온돌방이 없고 넓은 마루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선화당 앞 마당에서 보이는 포정루와 중삼문

OLYMPUS DIGITAL CAMERA선화당 옆에 있는 관찰사 숙소인 내아. 관찰사는 가족없이 단신으로 부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관할지역을 돌아보는 경우가 많기때문에 선화당에 비해 건물규모가 상당히 작다.

OLYMPUS DIGITAL CAMERA내아는 선화당 방향으로 작은 툇마루와 출입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아 출입문들은 대부분 생활공간인 뒷마당을 향하고 있다.

내아
내아는 안쪽에 자리한 동헌으로 내동헌이라고도 불린다. 관찰사의 집무공간인 선화당과 함께 내아는 안채에 해당하는 관청건물이다. 『여지도서』의 기록에는 ‘대은당’으로 『관동지』에 실린 강원감영지 기록에는 ‘내라’의 명칭으로 불렸다. 2000년 발굴조사 당시 내아 터에서 ‘숭정삼경진사월초칠일유시상량기’라는 명문과 묵서된 상량문이 발견되었고, 이에 따라 현재 복원된 건물의 축조시기가 1760년(영조36)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아는 온돌방과 창고가 함께 있는 민도리집 계통의 건물로 발굴조사 과정에서 조선시대 도자기 유물이 다량 나온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오랜 기간 동안 생활공간으로 활용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내아는 수세기 동안 전면적인 중수.보수가 이루어진 건물로 각 시기별 건축구조와 양식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대체로 17세기 후반 관찰사가 강원도 지방을 돌아다니던 순력체제가 감영에 머물면서 강원도를 다스리던 유영체제로 전환되면서 내아는 관찰사 가족들이 머물던 생활공간으로 추정된다. 강원감영복원사업 추진에 따라 20015년 6월 17일 전면 해체.보수하였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선화당.

OLYMPUS DIGITAL CAMERA선화당 뒷마당에 남아 있는 고목.

선화당과 후원
선화당은 관찰사가 일하던 곳으로 강원감영의 중심 건물입니다. 관찰사는 이곳에서 강원도 각 지역에서 올라온 행정과 농사, 세금을 거두거나 재판하는 등에 대한 첩보를 상세하게 읽어보았고, 문제가 되는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선화당 뒤편 후원에는 관찰사가 휴식을 하거나 사람들과 중요한 회의를 할 때, 손님을 맞이하여 음악을 듣거나 춤을 감상하는 연회를 열었던 관풍각과 환성정, 봉래각이라는 건물이 있었습니다. 옛 선비들이 남긴 시에는 연못에 떠 있는 누각과 정가를 오가는 조각배 두 척이 연못을 가로지른 다리 밒에 내여 있었는데, 감영의 아름다운 후원 풍경과 노를 저으며 아담한 누각과 정자를 드나드는 사람들 모습이 마치 신선이 사는 것처럼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수백년 전에 있었던 많은 건물들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무너지기도, 다시 세워지기도 하였고,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건물의 위치가 옮겨지기도 했습니다. 현재 강원감영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옛 건물은 바로 포정루와 선화당입니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강원감영에 속했던 여러 행각 중 한곳을 복원해 놓고 있다. 지금은 강원감영 사료관으로 사용하고 이다.

행각
행각은 궁궐의 중심건물인 정당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보조 건물을 말한다. 강원감영도에는 선화당 왼편으로 세 채의 건물이 확인되는데 북쪽으로 부터 차례로 행각, 보선고, 공고가 자리해 있다. 2000년 강원감영터 발굴 당시에는 행각의 건물 흔적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고, 몇개의 건물구조가 서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행각 자리와 좌측의 공방고지 일대는 옛 지도 기록에서 보이는 행각, 보선고, 공방고지의 여러 건물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던 공간으로 추정된다. 행각의 건물 복원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이루어졌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감영터 남아 있는 옛 공방고지.

공방고지
조선시대 강원감영에는 행정업무를 수행하던 이방.호방.예방.공방 및 사법기관의 역할을 하던 형방, 그리고 군사업무를 관장했던 병방의 6방이 있었다. 공방은 공장과 건축물을 신설하거나 영선의 업무 및 공용지를 운영하는 역할을 했다. 강원감영터를 발굴할 당시 확인된 공방고지는 공방에서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보관했던 창고로 추정되는데, 당시 감영은 원주목과 같은 관아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창고는 원주목과 함꼐 사용했던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건물구조는 2000년 발굴 조사결과에 따라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확인되었고, 바닥에서 온돌 고래 시설 일부가 드러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공방고에 난방시설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강원감영 중심 건물이었던 객사는 선화당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객사가 있었던 곳은 원주의 대표적인 상업지구로 바뀌었다.

강원감영, 사적 439호,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관청이다. 조선왕조는 1395년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여 강원도라 하고 강원도의 수부(首府)를 원주로 정하여 강원감영을 설치하였다. 강원감영의 건물들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나 1634년 원주목사 이배원이 재건하기 시작한 후, 여러 목사와 관찰사들이 계속 건설하였다. 강원감영은 선화당을 비롯하여 포정루.보선고.내아.비장청.호적고 등 40여 동에 달하는 웅장한 모습으로 1395년부터 1895년까지 500년 간 강원도 역사창조의 중심역할을 하였으나, 1895년 조선 8도 제도를 23부 제도로 개편함에 따라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1896년 이후 강원감영 건물은 원주 진위대 본부로 사용하였고, 1907년 진위대가 해산된 후 원주군청으로 사용되었다. 40여동의 화려한 건물로 이루어졌던 강원감영은 1895년 이후 대부분의 건물들은 없어지고 선화당을 비롯하여 포정루.내아 등 몇 동의 건물만 남게 되었다. 강원도와 원주시는 500년 강원도의 수부로서 강원도를 관할하였던 귀중한 문화유산인 강원감영을 복원하기로 하고 2000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2005년까지 선화당.포정루.중삼문.내삼문.내아.행각 등 강원감영의 일부만을 복원하였다. (안내문, 2011년, 원주시청)

<출처>

  1.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합천 가야산 해인사(사적 504호), 고려팔만대장경이 있는 법보사찰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사적 504호)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말대장경판을 비롯하여 많은 불경판을 보관하고 있어 법보사찰로 불리며 송광사, 통도사와 더불어 전국 3대 사찰로 손꼽히는 곳이다. 해인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통일신라 화엄십찰 중 한곳이었으며 실제로는 9세기에 당나라를 유학한 순응과 이정 두 승려가 창건했다고 한다. 고려를 건국할 때 큰 공을 세워 화엄사상을 크게 떨쳤다고 하며, 통일신라 말 혼란기에 희생된 승려와 주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세운 길상탑이 해인사 입구에 있다.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던 조선초 강화 선원사에 있던 고려대장경판을 해인사로 옮겨오면서 법보사찰이 되었다.

해인사는 고려팔만대장경판(국보 32호)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국보 52호)을 중심으로 사찰이 사찰이 유지되어 왔다. 조선시대 수차례에 걸친 화재로 오래된 전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판은 화재와 한국전쟁의 폭격 위험 속에서도 살아 남아 법보사찰로서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가야산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통일신라 때 문인 최치원을 비롯하여 대각국사 의천, 사명대사, 최근의 성철스님까지 유명한 고승이나 문인들이 이 곳에 머무르면서 수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해인사는 크고 작은 전각들을 새로 지어진 까닭에 봉정사나 부석사같은 고풍스러운 멋은 없지만, 팔만대장경판의 존재만으로도 유서깊은 사찰로서 의미를 갖는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고려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국보 52호).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오늘날 한국 3대 사찰 중 법보사찰로서 위상을 갖게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들어가는 길

해인사는 입구에서 많이 떨어져 있고, 들어가는 길은 수목이 우거진 숲길로 산사라는 의미가 깊게 다가오는 사찰이다.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사찰입구에는 일주문이 세워져 있고 출입문으로 천왕문격인 봉황문과 그 안쪽에 해탈문이 있다.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 공간에는 요사채와 가람을 수호하는 국사단이 자리잡고 있으며, 해탈문을 들어서면 큰 요사채와 강당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넓은 마당이 있다. 이 마당에는 의상대사사 화엄사을 요약한 게송을 도안에 써 놓은 해인도를 형상화시켜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해인사 일주문.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을 지나 첫번째 출입문인 봉황문으로 들어가는 길. 울창한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봉황문. ‘해인총림’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 공간에 있는 작은 전각인 국사단. 해인사 도량을 관장하는 산신이자 토지의 신인 국사대신을 모신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봉황문 옆에 있는 요사채인 우화당. 해인사를 찾은 신도들이 머물수 있도록 지은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두번째 출입문인 해탈문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해탈문. 옆쪽에 있는 전각과 함께 솟을대문 형식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 건물인 구광루. 근래 아주 크게 지은 건물로 현 해인사 중수 결과 중 보경당과 함께 혹평을 받는 부분이다. 강당은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설법을 듣거나 잠시 앉아서 쉬는 곳으로 사찰의 풍경을 조용히 차분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의 구광루는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보물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 규모가 사찰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너무 크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구광루 앞 마당에 구현해 놓은 해인도.

해인도(海印圖)
해인도는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 시절 화엄사상을 요약한 210자 7언 30구의 게송(偈頌, 부처의 공덕이나 교리를 담은 노래 글귀)을 만(卍)자를 발전시킨 도안에 써넣은 것이다. 도안 중십에서 ‘법성원융무이상’으로 시작하여 ‘구래부동명위불’로 끝나기까지 210자의 게송을 미로와 같이 54번 꺾어 도는 동안 그 내용을 마음에 체득하면서 따라가면 깨달음에 도달한다. 여기는 처음 출발한 그 자리다. 이는 법성이 원융한 사바세계 이대로가 부처님의 세계임을 의미한다. 화엄일승법계도, 법계도서인, 화엄법계도, 법성도 등으로도 불린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구광루 맞은편 종무소 건물인 사운당

SANYO DIGITAL CAMERA마당 동쪽에 있는 상당히 크게 지은 전각인 보경당. 강당 용도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도 옆에 있는 범종각.

SANYO DIGITAL CAMERA범종각 뒷편 요사채. ‘청화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손님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구광루 옆쪽으로 있는 승려들의 수행공간.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는 주불전이 있는 공간은 구광루 양쪽에 있는 작은 협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수행 및 예불공간

구광루 옆 협문을 지나면 주불전인 대적광전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선다. 마당에는 비로탑으로 불리는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고 양쪽에 요사채가 있다. 마당보다 높게 축대를 쌓아 조성한 공간에는 주불전인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비로전, 응진전, 명부전 같은 불전이 배치되어 있으며, 바깥쪽으로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자리잡고 있다. 해인사는 수행을 중시하는 사찰로 다른 사찰에 비해 요사채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수행공간. 마당 가운데 석탑이, 그 좌우로 요사채가, 축대를 쌓은 높은 곳에 불전이 배치된 전형적인 산지사찰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전들이 있는 공간.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상당히 높고 넓게 쌓은 후 건물을 지었다.

SANYO DIGITAL CAMERA해인사 주불전인 대적광전. 화엄경을 중시하는 사찰로 비로자나여래를 모시고 있다. 그 앞에 깃발 등을 걸었던 당간과 당간지주를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에 모셔진 비로자나여래.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옆에 있는 비로전. 대적광전과는 별도로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비로전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에 모셔진 비로자나여래. 특이하게 두분의 비로자나여래가 모셔져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전하나 확인되지는 않은 듯 하다.

대비로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비로전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생과 부처, 번뇌와 깨달음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한다. 해인사 대비로전에는 9세기에 조성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동형쌍불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 내부에서 나온 묵서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져 있다. “서원합니다. 대각간님의 비로자나부처님이시여! 오른쪽 부처님은 비(妃)님의 부처님입니다. 중화 3년(서기 883년) 계묘년 여름, 부처님을 금을 입혀 이루었습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 뒷편에 있는 독성각. 앞쪽에 산신을 모시는 국사단이 있어 이곳에는 독성각이 있다.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은거했다는 학성대 바로 옆에 있어 의미가 있는 듯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독성각 내부. 스스로 수행해서 도를 깨친 성자를 모시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독성각 옆에 있는 학사대. 오래된 전나무가 학사대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학사대(學事臺)
학사대는 신라 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875~?)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고 한다. 당시 거꾸로 꽂아 두었다고 전해지는 전나무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아래로 쳐져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학사대 아래에 있는 요사채들.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동쪽에 있는 응진전.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옆에 있는 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명부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진 뒷편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앞 마당. 비로탑이라 불리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일반적인 사찰과는 달리 대적광전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지 않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동쪽에 있는 요사채. 안쪽에 관음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서쪽에 있는 요사채인 궁현당. 양쪽 건물 모두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수행 및 예불공간
비로탑과 석등이 있는 마당 좌우로 궁현당과 관음전이 있다. 궁현당 너머에는 적묵당과 진영전이, 관음전 너머에 정수당이 있다. 이들 전각은 대부분 해인사 승가대학(강원)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다. 높은 축대 위에 솟은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왼쪽의 대비로전과 독성가, 오른쪽의 명부전과 응진전은 예불, 참회, 기도 등 주요 종교활동이 이루어지는 예불공간이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해인사의 중심 법당이며, 대비로전은 9세기에 조성된 국내 최고 목조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응진전 뒤쪽에는 한때 선원으로 사용되었던 선열당(법계당), 퇴설당이 있고, 그 위로 조사전이 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8년)

법보공간

법보공간은 고려 팔만대장경(국보 32호)를 비롯한 불경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으로 해인사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장경판전은 해인사에 가장 오래된 건물로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세조 때 크게 다시 지었으며, 성종 때 다시 중건한 건물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인사 경내 여러 전각들은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경판전은 피해를 입지 않고 오늘날까지 팔만대장경을 지켜오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적광전 뒷편 법보공간을 출입하는 작은 협문. ‘팔만대장경’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법보공간 중 앞쪽에 위치한 수다라장. 앞면 15칸의 긴 건물로 장식성을 배제하고 목판을 보관하기 위한 기능성을 중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다라장 출입문과 내부. 일년 중 춘분과 추분 부근 3시경에 출입문 기와의 곡선과 함께 연꽃무늬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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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라장 내부에 모셔진 고려팔만대장경(국보 32호).

OLYMPUS DIGITAL CAMERA법보공간 안쪽에 있는 건물인 법보전. 수다라장과 비슷한 양식의 건물이다.

가야산 해인사
해인사는 서기 802년(신라 애장왕 3)에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다. 해인사의 이름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 기초하였다고 전해진다. 해인삼매는 바다에 풍랑이 그치면 그 모든 형상이 온전히 비치듯이 법계의 실상을 본래 모습 그대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해인사는 창건 이래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어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지정한 최초의 총림(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포함한 종합수행도량)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고려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하고 있어 불법의 큰 보배가 현전하는 법보종찰로 유명하다. 유네스코는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팔만대장경의 고유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여 1995년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2007년 대장경 경판을 비롯한 해인사의 모든 경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