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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칠갑산 장곡사(長谷寺), 통일신라 선종계열 사찰

충안 청양군 대치면 개곡리 칠갑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장곡사(長谷寺)이다. 칠갑산 중턱 경사진 지형에 터를 잡고 전각들을 지었는데 상.하 대웅전이 있는 이원식(二院式)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 58호)와 고려초에 조성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74호)이 상 대웅전(보물 162호)에, 고려말 충목왕 때(1346년) 조성된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337호)가 모셔져 있다.

장곡사는 통일신라 때 (850년)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 804~880)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체징은 통일신라 말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지산문(迦智山門) 개창조로 여겨지는 승려이다. 당나라에서 유학한 후 신라로 돌아와 왕실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전남 장흥 가지산 보림사(寶林寺)에 머물렀으며 후원자들이 거대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117호)를 조성하였다. 장곡사에도 비슷한 시기에 철조약사여래좌상을 조성했던 점 등으로 볼 때 가지산문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1-20210414<칠갑산 장곡사>

들어가는 길

장곡사는 충남 서해안 홍성, 예산, 아산 등 지역과 금강유역 공주, 부여를 연결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양군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10 km 정도 떨어진 칠갑산 서쪽편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 지어진 곳으로 보이는 일주문을 지나 약  800 m 산책로를 걸어 들어가면 된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2-20210414<장곡사 일주문>

청양 칠갑산 장곡사 03-20210414<장곡사 입구에서 본 전경>

장곡사는 천왕문이나 금강문 등 출입문을 두고 있지 않으며 2층 누각인 운학루를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운학루를 지나면 하 대웅전 영역에 들어선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4-20210414<장곡사 운학루>

하 대웅전 영역

2개의 원(院)으로 구성된 장곡사 중 아랫쪽에 위치한 하 대웅전 영역이다. 고려말 충목왕 때(1346년)  조성된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337호)를 모신 하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정전과 요사채 등이 배치되어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5-20210414<장곡사 하 대웅전 영역>

하 대웅전(보물 181호)은 조선 중기에 지어졌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6-20210414<장곡사 하 대웅전(보물 181호)>

장곡사 하대웅전에 고려말에 조성된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337호)을 모시고 있다. 불상 바닥에서 발원문이 발견되어 고려말 충목왕 때(1346년)에 조성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발원문에는 승려 백운을 비롯하여 천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어 많은 신도들의 불상 조성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8-20210414<하 대웅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 <천여명의 이름이 적힌 백운의 발원문, 고려 1346년, 청양 장곡사>

청양 칠갑산 장곡사 10-20210414<지정전>

청양 칠갑산 장곡사 11-20210414<지장전 내부>

하 대웅전 영역에는 요사채로 설선당(說禪堂)과 심검당을 두고 있으며 지장전 아래에 봉향각이 있다.  설선당은 승려들이 수행하면서 거처하는 건물로 하대웅전과 함께 조선중기에 지어졌다. 설선당 본채에 해당하는 건물은 주심포 양식이 남아 있는 공포와 세부적인 건축수법 등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으나 익랑은 승려들의 생활공간을 위해 후대에 민간 가옥 형식으로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30-20210414<요사채인 설선당>

청양 칠갑산 장곡사 29-20210414<최근에 다시 지은 심검당>

청양 칠갑산 장곡사 07-20210414<설선당 맞은편 봉향각>

상 대웅전 영역

윗쪽에 위치한 상 대웅전 영역은 장곡사의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 58호)를 비롯하여 철조비로자불좌상(보물 174호),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신 상 대웅전(보물 162호)를 중심으로  응진전,  요사채인 염화실을 두고 있으며 동쪽편 언덕에 금당과 삼성각을 배치하고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28-20210414<상 대웅전 영역으로 오르는 길>

청양 칠갑산 장곡사 27-20210414<아래에서 보이는 상 대웅전 영역>

청양 칠갑산 장곡사 12-20210414<상 대웅전 오르는 길에 볼 수 있는 석탑 부재를 비롯한 석조 유물들>

청양 칠갑산 장곡사 14-20210414<상 대웅전 영역>

상 대웅전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공포인데 주심포 양식도 일부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지만 내부 바닥에 전돌이 깔려 있고 주심포 공포양식이 일부 보이는 등 옛 건축 양식이 많이 남아 있는 건물이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22-20210414<상 대웅전(보물 162호)>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 58호)은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철조불상으로 사각형 돌로 만든 거대한 대좌 위에 올려져 있다. 불상은 높이 91 cm로 크지 않은 편으로 양감이 풍부하지 않고 부피감도 줄어든 9세기 후반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초에 많이 조성되었던 철조불상을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24-20210414<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58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74호)은 고려시대에 조성한 높이 61 cm의 철조불상이다.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지권인(智拳印) 수인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여래를 표현하고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25-20210414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제174호)>

청양 칠갑산 장곡사 23-20210414<응진전>

청양 칠갑산 장곡사 26-20210414<응진전 뒷편 아담한 요사채>

청양 칠갑산 장곡사 20-20210414<상 대웅전 서쪽편에 위치한 요사채인 염화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21-20210414<상 대웅전 영역에서 내려다 보이는 하 대웅전 영역>

청양 칠갑산 장곡사 13-20210414<동쪽편 언덕에 위치한 금당>

상 대웅전 동쪽편 언덕에는 삼성각이 있으며 그 뒷편으로 칠갑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15-20210414<삼성각>

청양 칠갑산 장곡사 16-20210414<삼성각 내부>

청양 칠갑산 장곡사 18-20210414<칠갑산 정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청양 칠갑산 장곡사 17-20210414<삼성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 대웅전 영역>

청양 칠갑산 장곡사 19-20210414<삼성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하 대웅전 영역>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성왕 12년)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동안 변천되면서 지금은 대웅전이 상.하 두곳으로 나누어 있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사찰이다. 도립공원 칠갑산 서쪽에 위치한 장곡사는 국보 2점, 보물 4점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지방문화재 1점을 비롯한 많은 비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특히, 보물 162호로 지정된 장곡사 상 대웅전의 바닥은 마루가 아닌 무늬가 있는 벽돌을 펴놓은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하 대웅전은 맞배지붕의 소규모 건축인데도 다포(多包)집 계통의 공포를 받쳐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또한 상.하 대웅전 내부의 약사여래는 일념으로 기도하면 난치병이 낫는 가피력(加被力)을 지닌 영험 있는 부처님으로 유명하여 전국에서 많은 신도들과 관광객이 찾아와 기도를 하고 있다.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출처>

  1.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청송 주왕산 주왕암(周王庵)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왕산계곡에 있는 주왕암(周王庵)이다. 대전사(大典寺)에 딸린 작은 암자로 대전사와 비슷한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에서 반란에 실패하고 이곳으로 피신왔던 주왕(周王)이 숨었다는 전설이 있는 주왕굴이 가까운 곳에 있다. 전각으로는 2층 문루인 가학루(駕鶴樓), 요사채, 나한전이 있다. 나한전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6나한 및 후불탱화가 있다.

청송 주왕산 주왕암 06-20210225<주왕암 가학루>

청송 주왕산 주왕암 01-20210224<요사채>

청송 주왕산 주왕암 02-20210225<나한전>

주왕암(周王庵)
이 암자는 대전사와 함께 창건되었다 하며 주왕의 혼을 위안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문간채인 가학루는 중층 누각으로 되어 있고 기와는 이끼가 그윽하여 오랜 풍상을 보여준다. 또한 16나한을 모신 나한전이 있다. 주왕암 옆에는 주왕의 최후 전설이 전해져 오는 주왕굴로 들어가는 협곡의 좁은 길이 있다. (안내문, 주왕산 대전사, 2020년)

주왕암에 좁은 계곡을 따라 200 m 정도 들어가면 협곡사이에 있는 작은 동굴인 주왕굴(周王窟)을 볼 수 있다. 깊이 2 m 정도의 좁은 동굴로 지금은 석굴사원처럼 사용되고 있다.

청송 주왕산 주왕암 03-20210225<주왕굴로 들어가는 협곡>

청송 주왕산 주왕암 11-20210225
<협곡사이로 만든 탐방로>

청송 주왕산 주왕암 04-20210225<주왕굴 입구>

청송 주왕산 주왕암 05-20210225<주왕굴 내부>

주왕굴(周王窟)
주왕굴은 협곡 사이 암벽에 위치한 자연동굴입니다. 당나라 때 스스로 주왕이라고 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한 주도라는 사람이 주왕산으로 숨어 들어온 뒤, 이곳에 은거하였다고 합니다. 신라왕은 주왕을 토벌하기 위해 마장군을 보냈고 주왕은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 발각되어 마장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안내문, 주왕산 대전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송  대전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5. 위키백과, 2021년

청송 주왕산 대전사(大典寺), 주왕산을 대표하는 사찰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에 있는 대전사(大典寺)이다. 사찰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대전사라는 이름은 고려말 나옹화상이 붙였다고 한다. 사찰 내력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 않지만 조선중기 보광사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청송군은 세종의 비 소헌왕후 조상 무덤이 있어 보광사와 함께 원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송의 고을 규모가 크지 않아 구한말 이후 쇠락하였으나 근래에 들어 경치가 빼어난 주왕산(명승11호)의 명성과 함께 크게 번창하고 있다.

청송 주왕산 대전사 01-20201205<주왕산 대전사>

대전사는 경치가 빼어난 주왕산 계곡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사찰 가람배치는 큰 바위봉우리를 배경으로 주불전인 보광전(보물1570호)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양쪽에 관음전과 명부전이 있고 약간 뒷쪽에 작은 규모의 산신각이 있다.

청송 주왕산 대전사16-20201205<주불전인 보광전(보물 1570호)>

청송 주왕산 대전사 10-20201205<보광전 내부, 석조여래삼존상>

보광전 앞에는 복원해 놓은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있다. 기단에 신장상을 새겨놓고 있다.

청송 주왕산 대전사 15-20201205
<보광전 앞 삼층석탑>

청송 주왕산 대전사 06-20201205<관음전>

청송 주왕산 대전사 12-20201205<명부전>

청송 주왕산 대전사 04-20201205<산신각>

청송 주왕산 대전사 03-20201205<응진전>

대전사는 사찰내 수행하는 승려는 많지 않아 보이지만 유명 관광지에 위치하고 있어 손님들을 위해 여러동의 요사채를 두고 있다. 종무소 건물인 탐진당을 비롯하여 수월당, 이 있으며 회연당, 심검당 등이 있다. 사찰 뒷편에는 4기의 승탑을 볼 수 있다.

청송 주왕산 대전사 05-20201205<대전사 마당>

청송 주왕산 대전사 13-20201205<탐진당>

청송 주왕산 대전사17-20201205<봉향각>

청송 주왕산 대전사 14-20201205<수월당>

청송 주왕산 대전사 02-20201205<요사채>

청송 주왕산 대전사 07-20201205<사찰 뒷편에 있는 승탑>

주왕산 계곡에는 주왕산 전설과 관련된 작은 암자인 주왕암(周王庵)이 있다. 주왕암에는 옛날 당나라를 피해 이곳에 왔던 동진의 주왕(周王)이 숨었던 작은 굴이 있다.

청송 주왕산 대전사 08-20210224<주왕암>

<출처>

  1. 안내문, 청송  대전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5. 위키백과, 2021년

청송 보광사(普光寺), 청송심씨 시조와 관련된 사찰

경복 청송군 청송읍 덕리에 있는 보광사(普光寺)이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었던 청송읍에서 남쪽으로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광사의 창건 경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무덤이 사찰 뒷편에 있어 무덤을 지키는 원찰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 규모는 크지 않으며 앞면 3칸 규모의 작은 불전인 극락전(보물 1840호)를 주불전으로 두고 있다. 사찰 내 전각은 많지 않으며 누각인 만세루는 상당히 큰 편이다. 만세루는 청송심씨 재실 건물로 사찰과 재실이 같은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청송 보광사 01-20201204<청송 보광사 전경>

주불전인 극락전(보물 1840호)는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임진왜란 직후인 1615년에 지어진 건물로 당시 중건된 불전들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전에는 석조아미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다.

청송 보광사 08-20201204<수리중인 극락전>

청송 보광사 02-20201204<보광사 극락전(보물 1840호)>

청송 보광사 05-20201204<산신각>

보광사는 요사채로 보본당(報本堂), 추모재(追慕齋)를 두고 있다. 그중 추모재는 청송심씨가 재실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던 건물이다. 최근 바깥쪽에 큰 규모로 2동의 요사채를 새로 지었다.

청송 보광사 07-20201204<추모재>

청송 보광사 06-20201204<아래쪽에 새로 지은 요사채>

청송 보광사 03-20201204<보본당(報本堂)>

청송 보광사 11-20201204<보본당 윗쪽 새로 지은 큰 규모의 요사채>

만세루(萬歲樓)는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제사를 위해 지어진 재실 건물이다. 조선초 세종이 왕비를 위해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무덤 앞에 세우게 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을 1856년에 후손들의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5칸의 2층 누각으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상당히 크게 지었다.

청송 보광사 04-20201204<청송 만세루>

청송 만세루(萬歲樓)
청송 만세루는 조선 세종이 부사 하담에게 명하여 건립한 청송 심씨 시조인 심홍부의묘재각이다. 건립연대는 정확히 전해오는 기록이 없으나, 월막리에 위치한 찬경루와 같이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1856년 후손들이 중수하였고, 1958년 재차 중수되었다. 이 누각은 보광산에 위치한 심홍부의 묘소에 제를 지낼 때 비가 오면 이용되었다고 한다. 만세루의 건축구조는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운 주심포계 누각으로, 상부 가구는 5량가이며, 루의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사방으로 헌함을 돌렸다. 현재 보광사 사찰 경내에 위치하여 극락전(보물 1840호)과 마주하고 있다. (안내문, 청송 보광사, 2010년)

보광사 앞을 지나 300 m 정도 걸어서 언덕을 오르면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충렬왕 때 문신이다. 4대돈 심덕부가 고려말 왜구토벌에 큰 공을 세웠으며 그의 아들 심온이 세종의 장인이다. 청송심씨는 세종의 비 소현왕후를 비롯하여 왕비와 영의정 등 많은 고위관료를 많이 배출면서 조선시대 크게 번창했던 집안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홍부의 무덤은 풍수지리적으로 중요한 명당으로 볼 수 있다.

청송 보광사 10-20201204<심홍부 무덤>

청송 보광사 21-20201204<무덤 앞으로 보이는 풍경, 멀리 주왕산이 보인다.>

<출처>

  1. 안내문, 청송 보광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柏孜克里千佛洞), 투루판을 대표하는 석굴사원

중국 투루판시에 있는 베제클리크 석굴(柏孜克里千佛洞, Bezeklik Caves)이다. 실크로드 북로에서 투루판 분지로 들어가는 입구인 화염산 무토우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베제클리크는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라는 뜻으로 현재 77개의 석굴 사원이 남아 있으며 많은 석굴 벽화가 있었다. 불교가 전파된 경로에 남아 있는 석굴 유적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베제클리크 석굴은 초기 이슬람인들의 파괴가 있었고, 20세기초 독일인들이 수차례에 주요 벽화들을 도굴해 베를린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내부 석굴을 들어가 보면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벽화를 떼어내 간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베제클리크 석굴사원>

SANYO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석굴사원은 수도자들이 더위와 비를 피하여 명상을 하기 위해 바위로 된 벼랑에 동굴을 파서 만들었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소카왕때 처음 생겼으며,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도 전해졌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 석굴, 중앙아시아의 키질, 투루판 베제클릭, 둔황석굴, 중국의 윈강 석굴 등이 규모도 크고 잘 알려진 석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석 석재로 인공적으로 조성은 석굴암이 대표적이다.

SANYO DIGITAL CAMERA<남쪽편 36 ~ 39호 석굴>

둔황 막고굴과 마찬가지로 바위산을 뚫어 석굴 사원들을 조성해 놓았다. 석굴은 둥근 아치형 천장과 직사각형의 평면을 하고 있으며 천정과 벽면은 불화로 장식하고 있다. 석들은 대부분 도굴되어 벽화를 볼 수 있는 석굴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남아 있는 벽화만으로도 당시의 석굴사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내부관람이 가능한 39호 석굴>

석굴은 바위를 파서 조성했는데 여러 석굴들이 마치 아파트처럼 배치되어 있으며 앞에는 베란다 역할을 하는 난간이 있는 통로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석굴을 오가는 통로와 석굴 앞 테라스>

SANYO DIGITAL CAMERA<31호굴>

SANYO DIGITAL CAMERA<내부 관람이 가능이 27호굴>

SANYO DIGITAL CAMERA<복원이 진행중인 석굴>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석굴과 돔형 지붕>

SANYO DIGITAL CAMERA<석굴사원 아래>

SANYO DIGITAL CAMERA<복원 작업이 진행중인 부분>

화염산 무토우 계곡은 북쪽 산악지역에서 분지로 강물이 흘러내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동쪽편 토유크석굴이 있는 계곡이 출입로였는데 고창국이 고창고성에 자리잡으면서 실크로드 북로에서 고창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번성했다. 석굴은 고창고성에서 1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토우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황량한 풍경을 보여주는 화염산>

SANYO DIGITAL CAMERA<베제클리크 석굴 유적지 입구>

SANYO DIGITAL CAMERA<입구에서 내려다 보이는 베제클리크 석굴>

SANYO DIGITAL CAMERA<북쪽으로 이어지는 계곡>

SANYO DIGITAL CAMERA<계곡 옆 수목들>

SANYO DIGITAL CAMERA<계곡 주변 울창한 숲>

SANYO DIGITAL CAMERA<베제클리크 석굴 뒷편 화염산>

20세기 초 일본인이 수집하여 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중앙아시아 유물인 오타니 걸렉션 중에는 이곳에서 수집한 벽화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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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변단편(法華經變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23굴, 9세기>

제23굴 전실에 그려진 <법화경변> 단편이다. 벽화의 윗부분에는 여러 색의 구름으로 이루어진 둥근 구획 안에 보살의 성중(聖衆)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연꽃대좌 위에는 정면을 향해 가부좌(跏趺坐)를 한 보살이 있고, 그 주위로 보관과 목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를 한 보살이 있다. 벽화의 아랫부분에는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된 인물들이 말, 낙타 등을 이끌고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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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도 단편(千佛圖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18굴, 6~7세기>

제18굴 회랑에 그려진 천불도 단편이다. “천불”이란 무수히 많은 부처를 가리킨다. 부처는 불법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수많은 부처를 그린 천불도는 불법이 우주에 편재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체로 열과 행에 따라 동일한 형식의 부처가 반복되는 구성이다. 천불도 단편에서 부처는 가는 흰색선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구획 안에 배치되어 있으며, 통견의 법의를 입고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있다. 이목구비가 큰 얼굴, 명암법, 어두운 배경색은 모두 베제클리크 초기 벽화의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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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 단편(惡鬼像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10~12세기>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중당(中堂)의 네 모퉁이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안쪽 좌측 벽에 그려진 사천왕 앞에 앉아 있는 악귀를 그린 것이다. 악귀는 겁에 질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앞으로 모아 화살 2개를 쥐고 있다. 오른쪽에는 사천왕의 오른쪽 발과 코끼리 머리장식을 한 오른쪽 다리 일부가 보인다. 악귀의 과장된 표정과 근육, 화려한 채색 등이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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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단편(惡鬼像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 15굴, 10~12세기>

 눈이 세개인 악귀가 표현된 벽화 단편이다. 제15굴 중당에는 각 모퉁이에 사천왕이 그려져 있는데, 이 악귀는 입구 좌측에 그려진 사천왕 옆에 그려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녹색 피부의 악귀는 타원형의 얼굴에 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위로 올려 긴 화살통을 들고 있다. 악귀의 색채 구성과 표현방식이 제15굴 중당에 그려진 화두금강(火頭金剛) 단편과 유사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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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帳幕壁畵斷片),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5굴, 10~12세기>

위구르어와 한자로 쓴 명문이 있는 벽화 단편이다. 공양자의 이름과 발원 시기를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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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가 있는 벽화 단편,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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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Vidya-raja),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분노에 찬 모습을 한 채로 화염에 둘러싸여 있는 명왕의 하반신에 해당하는 벽화이다. 베제클릭 제 20동굴의 중당 벽화에서 확인되는 유사한 도상에 의거하여 볼 때, 이 상은 6개의 팔을 지니고 각각 칼, 도끼, 법륜 등을 든채 오른쪽을 향해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베제클릭 석굴사원에서 그 형식이 완성되고 널리 그려진 대표적인 벽화로 ‘서원화’가 있다.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현재의 시점에서 볼 떄 과거불)로 부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이야기가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한국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8장면으로 그린 팔상도와 비슷한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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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단편(誓願畵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33굴, 10~12세기, 복제품,석가모니가 전생에 상인이었을 때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제33굴 오른쪽 벽 안쪽에서 2번째로 배치된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서원화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 즉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과거불을 만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이 벽화에는 두 명의 인물이 나란히 앉아 공양물이 담긴 화려한 쟁반을 들고 있고, 왼쪽 끝에는 공양의 대상이 되는 과거불의 광배, 발, 옷자락 등의 일부가 보인다. 인물의 얼굴과 복장에 각기 다른 개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차림새로 보아 당시 실크로드에서 상인으로 활약한 소그드인과 위구르인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SANYO DIGITAL CAMERA<33호 석굴>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4.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