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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조계산 송광사(사적 506호), 고려중기 불교개혁 이후 한국 불교를 이끌어 온 승보사찰

전남 순천시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송광사(松廣寺, 사적 506호)이다.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함께 3대사찰로 여겨지며 수행을 중시하는 승보사찰로 불리우고 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길상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었는데, 고려중기 보조국사가 불교개혁 운동인 정혜결사의 중심지로 삼으면서 송광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통일신라 때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석탑이나 불상같은 조형미가 뛰어난 불교 예술품들은 많지 않은 반면,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국사전을 비롯하여 고려 이후 불교 관련 유물들을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송광사는 크고 작은 불전들이 불전이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크거나 유서깊은 내력을 가진 불전은 많지 않다. 반면에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승방이나 요사채가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송광사를 대표하는 국사전(국보 56호)도 원래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이었으며, 고려말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는 하사당(보물 263호) 또한 승려들이 수행했던 공간이다. 전성기 때 송광사에는 많은 승방들과 사찰 관련 일을 보던 사람들이 살던 건물들로 아주 큰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송광사의 많은 전각들은 1842년의 화재와 한국전쟁 등으로 많이 소실되기는 했지만, 여러차례 중창을 통해 옛규모를 찾아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는 조계산 계곡 내 비교적 평탄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가운데 대웅전을 비롯한 부처님을 모신 불전이 있으며 그 주위로 수행공간들이 고루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가람배치 모형. 남향을 하고 있지만 축대를 쌓아 공간을 조성하여 질서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사찰 가람배치와는 달리 동.서로 흘러내리는 계곡을 중심으로 전각을 배치하여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입지조건이나 가람배치 등에 있어 수행중심 공간으로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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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송광사지도. 19세기 전반에 그려진 이 지도는 <송광사사적>에 실려있는 가람배치도이다. 조선후기에는 많은 전각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뒷편 언덕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 고려중기 불교개혁 운동을 이끈 보조국사 지눌의 승탑이다. 조형미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불교역사에서 차지하는 지눌의 승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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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세 보조국사 지눌(1158 ~ 1210) 영정.

국사는 황해도 서흥 출신으로 성은 정씨고, 자호는 목우자이다. 8세 때 종휘선사에게 출가하였다. 길상사에서 정혜결사 운동을 하며 불교계의 중흥을 이끌었고, 산 이름을 조계산, 절 이름을 수선사로 고쳤다. 진영 상단에 ‘원력수행해동불일보조국사’라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해 원력수생, 즉 대승보살행에 힘썼음을 알 수 있다. 하단의 화기를 통해 1780년 16국사의 진영을 완성하여 영당에 모셨음을 알 수 있다. 국사의 탑은 송광사 관음전 뒤에 모셔져 있다.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송광사
조계산 북서쪽 자락에 자리잡은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종찰(僧寶宗刹)의 근본도량으로서, 한국불교와 역사를 함께해온 유서 깊은 고찰이다.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송광산 길상사라고 하였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9년 동안의 중창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정혜결사를 통하여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근본도량으로서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후 보조국사 지눌을 포함해 16분의 국사가 주석했던 선종사찰로, 오늘날까지도 승보종찰로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 선종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그 동안 정유재란 및 임인년(헌종 8년, 1842년)의 대화재, 6.25사변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8차례의 대규모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송광사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불교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호), 국사전(국보 56호), 금동요령(보물 179호), 하사당(보물 263호) 소조사천왕상(보물 1467호) 등을 비롯해 총 8천여점의 불교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들어가는 길

송광사는 입구에서 일주문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진 숲길을 걸어서 들어 갈 수 있다. 들어가는 길은 수목이 우거지고, 옆으로는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고즈넉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주는 길로 사찰 들어가는 길 중에서 손꼽히게 아름다운 길이다. 일주문은 사찰을 출입하는 통로인 삼청교 앞에 세워져 있으며, 사찰 앞을 흐르는 개울이 송광사와 속세와 분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개울 바깥쪽에는 세속적인 의미를 갖는 공간인 세월각과 척주당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입구 매표소. 원래부터 사찰에 있던 공간은 아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들어가는 길. 계곡을 따라 10여분을 걸어갈 수 있는 길로 울창한 숲과 계곡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계곡.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경내 입구. 멀리 첫번째 출입문인 일주문이 보이고, 주변에 당간지주, 비석 등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조계문. 일주문은 보통 매표소 부근에 위치있는데 송광사에서는 천왕문을 들어가기 직전에 위치하고 있다. 19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사찰 일주문 중에서는 꽤 오래된 편이다. 양쪽에 담장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조계문 안쪽에 있는 작은 사당 형태의 건물인 세월각과 척주당. 토속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며, 사찰영역 바깥쪽이라 할 수 있는 계곡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

세월각.척주당, 19세기초
일주문 안쪽에 죽은 자의 위패를 두고 그 영혼이 속세의 때를 벗는 관욕처(관욕: 불교에서 재를 올릴 때 영혼을 정화하는 일)로 세월각과 척주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혼백을 목욕시켰으며, 세월각은 여자 영가, 척주당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로 사용되었다.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로 작은 건물이다. 두 건물의 내부는 비어 있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삼청교와 우화각 주변

송광사에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천왕문 앞 홍예가 설치된 다리인 삼청교 주변일 것이다. 삼청교는 홍예 형태로 쌓은 돌다리로 건축수법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 아래로 흐르는 계곡과 주위 건물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삼청교를 건너면 사찰 출입문인 천왕문이 있으며 왼쪽에는 요사채인 임경당이, 오른쪽에는 강당건물인 사자루가 배치되어 있다. 두 건물 모두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손꼽히는 삼청교 주변. 사찰이라기 보다는 선비들이 경치좋은 곳에 세워 풍류를 즐겼던 정자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경내 출입문인 천왕문 앞 개울에 세워진 돌다리. 그 위에 지붕이 있는 건물을 올려 정자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돌다리 위에 세워진 건물인 우화각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삼청교 위쪽으로는 신도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강당 건물인 사자루가 있다. 강당은 대웅전 앞에 문루 형태로 세우는 것이 보통인데, 송광사에서는 천왕문 오른편에 강당을 배치하고 있다. 앞면 7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계곡 옆에 기둥 세우고 건물을 올렸다. 물 위에 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사자루. 원래는 신도들이 잠시 앉아 쉬거나 강론을 듣는 공간인데, 지금은 평상시 문이 닫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청교 아래쪽에 위치한 요사채인 임경당. 계곡으로 돌출된 누마루를 두고 있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건물이다. 선비들이 즐기던 정자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이곳을 찾은 고위 인사들의 숙소로 지어진 건물로 여겨진다.

OLYMPUS DIGITAL CAMERA경내를 출입하는 천왕문. 내부에는 소조사천왕상(보물 1467호)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상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복장유물(보물 1468호)가 발견되었다.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불전들

송광사는 고려중기 이후 수행도량으로 한국 불교를 이끌어온 사찰이다. 그러나 사찰의 명성이나 내력, 규모 등에 비해 불전의 규모는 크지 않은편이며 오래된 내력을 보여주지도 않고 있다. 대웅전 앞 작은 불전인 약사전(보물 302호), 영산전(보물 303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최근에 중창되었으며, 그 규모 또한 크지 않은 편이다. 불전들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승보전과 지장전, 앞쪽에 약사전과 영산전, 뒷편에 관음전이 배치되어 있다. 불전의 공간배치에 있어 규칙성은 거의 없는 편이며, 당시의 필요에 따라 불전들이 자연스럽게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는 문루형태의 출입문인 범종각. 일반적인 사찰의 공간배치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최근에 크게 중창한 불전으로 현대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평지보다 약간 높게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웅장함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 수행사찰로서 특징을 잘 보여주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왼쪽편에 있는 승보전. 원래 대웅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현재의 대웅전을 크게 중창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나한, 비구 등을 모시는 불전으로 승보사찰인 송광사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불전이다. 나한전과 비슷한 성격의 불전으로 볼 수 있다.

송광사 승보전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제가, 16나한을 비롯한1250몀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대웅전을 송광사 7차 중창 당시에 복원하면서 지어졌으나 송광사 8차중창때 현재의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오른쪽에 위치한 국사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마당 한쪽편에 있는 약사전(보물 302호)과 영산전(보물 303호). 공간을 분리하는 담장은 없지만 대웅전 영역과는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약사전(보물 302호).  앞면과 옆면이 각 1칸씩으로 현존하는 불전 중 가장 작은 규모이다.  건물 형태 등으로 볼 때 1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영산전(보물 303호).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와 영산대회 그림(보물 1368호)를 모시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중기 인조 때(1639년)에 지어졌으며 그후 여러차례 수리가 있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관음전. 구한말 왕실 기도처로 지어진 건물로 지금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한말 건축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는 건물이다.

송광사 관음전
관음전은 본래 성수전(聖壽殿)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되었으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 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 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또한 내외벽에는 화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국사전을 비롯한 수행공간

송광사는 수행도량이라는 사찰의 성격에 걸맞게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다. 대웅전 뒷편 언덕에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국사전(국보 56호)를 중심으로 하사당(보물 263호), 상사당, 응진당, 시자실, 설법전 등 유서깊은 요사채 건물들이 모여 있는데 이 공간은 담장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수행을 위한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웅전 서쪽으로 대지전, 중현당,도성당,응향각,응현당 등 많은 요사채 건물들이 있으며 사찰 바깥으로도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대웅전 뒷편 언덕에는 국사전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모여 수행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순천 송광사 국사전 국보56호 02-20181219송광사 국사전(국보 56호). 고려말 승방으로 지어진 건물로 지금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주심포계인데, 고려말 주심포에서 익공형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으로 보이는 설법전.

OLYMPUS DIGITAL CAMERA국사당과 함께 승보사찰로서 송광사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건물인 하사당(보물 263호)이다. 송광사의 많은 요사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건물은 앞면 3칸에 맞배지븡을 하고 있는데, 부엌 위에 환기구를 두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국사당과 함께 조선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승려들이 수행했던 공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수행공간. 하사당, 상사당, 응진당, 시자실, 설법전, 수선사 등 승려들이 수행하는 크고 작은 승방 건물들이 모여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사당 뒷편 우물.

OLYMPUS DIGITAL CAMERA지장전 뒷편 수행공간을 들어가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지장전 뒷편에 있는 요사채인 해청당.

OLYMPUS DIGITAL CAMERA영산전 앞쪽에 모여 있는 요사채들. 정혜사를 비롯하여 여러동의 요사채들이 모여 있다. 강당인 사자루와 함께 송광사를 찾은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전 앞 마당에 있는 2칸짜리 작은 요사채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승보전 뒷편에 모여 있는 요사채들. 국제선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라 한다.

SANYO DIGITAL CAMERA바깥쪽에 있는 큰 규모의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의 명소 중 한곳인 해우소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에 많은 승려들이 머물면서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인 비사리구시.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찾은 손님들을 위해 밥을 담아두는 곳이다. 약 4천명 분의 밥이 들어간다고 한다.

비사리구시
송광사 비사리구시는 1724년 남원에서 태풍에 쓰러진 싸리나무를 옮겨와 만들어 졌다고 하나 사실은 보성군 문덕면 내동리 후곡(너문골) 봉갑사 인근 마을의 느티나무(귀목)이다. 그 쓰임새는 국가 제사시에 대중을 위해 밥을 담아 두는 것으로, 쌀 7 가마(4천명 분)의 밥이 들어간다고 한다. 송광사 이외에도 비슷한 용도를 지닌 구시가 있으나 많은 사찰들에서는 종이를 만드는 일에 지통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상광사의 경우에는 여러 근거로 지통이 아니라 밥통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송광사 3대 명물로 비사리구시, 능견난사, 쌍향수가 있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송광사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대백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19년

영주 태백산 부석사, 통일신라 화엄십찰을 대표하는 사찰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에 있는 부석사(浮石寺)이다. 백두대간 태백산 끝자락 봉황산에 자리잡고 있다. 삼국이 통일되던 676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통일신라 주류였던 화엄십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부석사가 있는 풍기 지역은 깊은 산중도 아니면서 산물이 풍부하고 죽령을 오가는 주요 교통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오랫동안 사찰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는 봉황산 중턱에 거대한 돌로 석축을 쌓아서 터를 조성하였으며 그 위에 건물들을 올려 놓았다. 주불전인 무량수전과 그 앞 안양루에 올라서면 아래에서 보이는 편안한 모습은 풍경과는 달리 상당히 웅장하면서도 날아갈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무량수전(국보 18호)와 조사당(국보 19)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목조 건축물이다. 통일신라 때의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와는 달리 무량수전 동쪽편 언덕에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으며, 무량수전에 모셔진 불상도 동쪽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조사당은 무량수전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내부에는 가장 오래된 불전 벽화(국보 46호)가 있었다. 부석사는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한 수덕사, 봉정사 등 오래된 국보급 불전 건물이 있는 사찰들과 비슷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부석사. 백두대간 태백산 자락인 봉황산(818 m)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무량수전이 있는 사찰 중심 영역은 거대한 돌로 석축을 쌓아 조성했으며, 그 앞에 안양루라는 누각을 세워 놓았다. 마치 봉황이 날아오르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

들어가는 길

부석사는 봉황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지만 들어가는 길은 평판한 편이다. 일주문을 지나서 걸어가는 호젓한 길은 가을 은행나무의 노란색과 더불어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고 있다. 길 양쪽에 있는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과수원의 사과와 함께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해 준다. 봄에는 활짝핀 사과꽃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상당히 아름다운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 주차장에서 일주문이 있는 입구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 일주문. ‘태백산 부석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봉황산 자락에 있지만 태백산의 한 줄기임을 강조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부석사 들어가는 은행나무길.

SANYO DIGITAL CAMERA은행나무길 아래로 보이는 사과나무밭.

OLYMPUS DIGITAL CAMERA초겨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을 지나 부석사 오르는 길에 볼 수 있는 당간지주(보물 255호).

OLYMPUS DIGITAL CAMERA멀리 보이는 천왕문.

SANYO DIGITAL CAMERA부석사의 실질적 출입문인 천왕문. 이 곳부터 단계별로 축대를 쌓아서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왕문이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쌓은 석축.

안양루 아래 공간

부석사는 천왕문에서 시작해서 9단(혹은 10단)으로 석축을 쌓아 가람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는 사찰 가람배치에 불교 사상을 구현하기 위함이라 한다. 삼층석탑과 종무소가 있는 공간을 오르는 3단계 석축이 있고, 범종루을 오르는 3단계 석축, 안양루를 오르는 3단계 석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난 불국사 석축과는 달리 자연석을 쌓아서 만든 석축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웅장한 조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공간에는 불전을 두지 않고 승려들이 수행하는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왕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 정면에 석축을 쌓아 조성한 2번째 공간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 2번째 출입문인 회전문.

OLYMPUS DIGITAL CAMERA회전 옆 석축과 그 위에 올려진 요사채 건물.

SANYO DIGITAL CAMERA회전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 범종루는 3번째 축대를 쌓은 공간으로 오르는 출입문 역할을 한다. 범종루가 가람배치에 있어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범종루 아래 공간에 있는 2기의 삼층석탑. 인근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뒷편 종무소.

SANYO DIGITAL CAMERA범종루는 부석사에는 뛰어난 목조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주위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누각 형태의 큰 건물로 ‘봉황산부석사’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루는 입구쪽은 팔작지붕을, 반대편으로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다. 옆면 4칸으로 누각 건물 중에는 크고 웅장한 규모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범종루.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범종루 내부에는 법고(북) 등이 있으나 범종은 없다. 내부는 상당히 넓은 편이며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범종각.

SANYO DIGITAL CAMERA범종각 위쪽 축대 위에 있는 요사채인 선열당.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에 있는 응향각

OLYMPUS DIGITAL CAMERA윗쪽에 있는 장경각.

무량수전이 있는 중심영역

부석사의 중심 영역은 10번째 축대로 조성된 영역으로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이 주불전을 자리잡고 있다. 그 앞에는 석등이 놓여 있으며, 삼층석탑은 동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누각 건물인 안양루가 자리잡고 있다. 안양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백두대간 산자락이 이어지는 풍경은 손곱히는 명장면 중의 하나이다. 무량수전은 고려말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로 배흘림 기둥 등 주심포계 목조건축물을 가장 잘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량수전 뒷편에는 창건 설화가 얽혀 있는 부석바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이 있는 중심영역. 높은 축대 위에 조성된 공간을 무량수전과 안양루 외 건물은 두고 있지 않다.

SANYO DIGITAL CAMERA부석사 안양루. 주불전 영역을 출입하는 출입문이자 강당 역할을 하는 누각 건물이다. 안양루는 축대 아래에서 보면 웅장해 보이지만, 무량수전에서 보면 아담하며,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무랑수전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는 축대.

OLYMPUS DIGITAL CAMERA안양루를 지나면 보이는 장면. 부석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무량수전(국보 18호)와 석등(국보 17호)를 볼 수 있다. 부석사를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무량수전은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불전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가 상당히 큰 건물이다. 배흘림 기둥을 사용한 주심포계 건물로 상당히 간결하고 안정감 있게 보이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무량수전’이라는 현판은 중국식으로 적혀있다. 고려 공민왕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공민왕은 원나라에 자란 사람으로써 원나라 양식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주심포양식의 공포와 안정감 있게 보이는 배흘림기둥.

국보18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14-20101021
무량수전에 모셔진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OLYMPUS DIGITAL CAMERA무량수전 뒷편에 있는 부석바위.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때 설화가 전해오는 바위이다.

부석(浮石)
신라 문무왕 1년(661) 의상 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대사를 연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 의상 대사는 중국 장안에 있는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삼장에게서 10년간 화엄의 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을 때 대사가 탄 배는 이미 사리지고 없었다.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널리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선묘 신룡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다. 그리하여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렀으며 사찰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떠 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무량수정 앞에 있는 안양루.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누각건물로 축대 아래에서 보면 웅장해 보이지만, 무량수정 앞 마당에서는 아담해 보인다.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양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범종루와 주변 공간. 그 너머로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려간 작은 봉우리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석사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해가 넘어가는 일몰장면.

SANYO DIGITAL CAMERA무량수전 동쪽편에 세워진 삼층석탑(보물 249호). 통일신라 초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던 경주의 쌍탑식 석탑에 비해 규모가 작고, 불전 동쪽 언덕에 세워져 있다. 조형미는 양호한 편이고 매우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 석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무량수전.

SANYO DIGITAL CAMERA안양루와 무량수전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과 무량수전.

조사당을 비롯한 불전과 전각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 초상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불전인 조사당(국보 19호)은 무량수전 동쪽 삼층석탑을 지나 숲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조사당 바로 앞에는 의상대사 지팡이를 꽂은 곳에 핀 꼿인 어사화가 있으며, 동쪽편에는 사명대사가 수도했던 곳으로 유명한 취현암이 자리잡고 있다. 조사당을 지나면 응진전, 자인당과 함께 조그만 단하각이 자리잡고 있다. 삼성각은 무량수전 서쪽편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장전은 범종루 동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사당(국보 19호)는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말에 지어진 불전이다. 건물은 앞면3칸, 옆면1칸의 작은 건물로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조사당 내부에는 고려시대 대표적 회화작품인 조사당 벽화(복제본)가 있다.

국보19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11-20151009조사당 벽화(국보 46호)

OLYMPUS DIGITAL CAMERA조사당 옆 사명대사가 머물렀다는 작은 암자.

OLYMPUS DIGITAL CAMERA웅진전은 부처님의 제자를 모신 불전으로 보통 사찰의 경우 대웅전 옆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부석사 웅진전은 무량수전 뒷쪽편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자인당은 원래 스님들의 선방으로 사용했던 건물인데 인근 사찰터에서 옮겨온 삼존여래 좌상을 모시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자인당에 모셔진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 인근 절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비로자나불상이다.

SANYO DIGITAL CAMERA같이 모셔진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1636호). 인근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작은 불전인 단하각.

SANYO DIGITAL CAMERA무량수전 아래에 있는 삼성각.

SANYO DIGITAL CAMERA지장전.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이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이다. 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깨달은 화엄의 도리로 국론을 통일하여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하였으며, 이후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부석사로 불리우게 됨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어있지 않고 떠 있어서 ‘뜬 돌’이라 한데서 연유한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 혹은 홍교사라 불리었다. 1916년 해체 보수 시에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부석사는 무량수전 등이 크게 중창되었으나 공민왕 7년(1358) 외적의 병화를 당하였고, 그 후로 우왕 2년(1376)에 무량수전이 재건되었고, 우왕 3년(1377)에는 조사당이 재건되었다.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 1636호), 삼층석탑(보물 249호), 당간지주(보물 255호), 대석단 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로는 무량수전(국보 18호), 조사당(국보 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조사당벽화(국보 46호), 고려목판(보물 735호),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부석사 성보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소조여래좌상은 진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합천 가야산 해인사(사적 504호), 고려팔만대장경이 있는 법보사찰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사적 504호)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말대장경판을 비롯하여 많은 불경판을 보관하고 있어 법보사찰로 불리며 송광사, 통도사와 더불어 전국 3대 사찰로 손꼽히는 곳이다. 해인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통일신라 화엄십찰 중 한곳이었으며 실제로는 9세기에 당나라를 유학한 순응과 이정 두 승려가 창건했다고 한다. 고려를 건국할 때 큰 공을 세워 화엄사상을 크게 떨쳤다고 하며, 통일신라 말 혼란기에 희생된 승려와 주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세운 길상탑이 해인사 입구에 있다.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던 조선초 강화 선원사에 있던 고려대장경판을 해인사로 옮겨오면서 법보사찰이 되었다.

해인사는 고려팔만대장경판(국보 32호)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국보 52호)을 중심으로 사찰이 사찰이 유지되어 왔다. 조선시대 수차례에 걸친 화재로 오래된 전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판은 화재와 한국전쟁의 폭격 위험 속에서도 살아 남아 법보사찰로서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가야산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통일신라 때 문인 최치원을 비롯하여 대각국사 의천, 사명대사, 최근의 성철스님까지 유명한 고승이나 문인들이 이 곳에 머무르면서 수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해인사는 크고 작은 전각들을 새로 지어진 까닭에 봉정사나 부석사같은 고풍스러운 멋은 없지만, 팔만대장경판의 존재만으로도 유서깊은 사찰로서 의미를 갖는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고려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국보 52호).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오늘날 한국 3대 사찰 중 법보사찰로서 위상을 갖게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들어가는 길

해인사는 입구에서 많이 떨어져 있고, 들어가는 길은 수목이 우거진 숲길로 산사라는 의미가 깊게 다가오는 사찰이다.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사찰입구에는 일주문이 세워져 있고 출입문으로 천왕문격인 봉황문과 그 안쪽에 해탈문이 있다.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 공간에는 요사채와 가람을 수호하는 국사단이 자리잡고 있으며, 해탈문을 들어서면 큰 요사채와 강당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넓은 마당이 있다. 이 마당에는 의상대사사 화엄사을 요약한 게송을 도안에 써 놓은 해인도를 형상화시켜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해인사 일주문.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을 지나 첫번째 출입문인 봉황문으로 들어가는 길. 울창한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봉황문. ‘해인총림’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 공간에 있는 작은 전각인 국사단. 해인사 도량을 관장하는 산신이자 토지의 신인 국사대신을 모신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봉황문 옆에 있는 요사채인 우화당. 해인사를 찾은 신도들이 머물수 있도록 지은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두번째 출입문인 해탈문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해탈문. 옆쪽에 있는 전각과 함께 솟을대문 형식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 건물인 구광루. 근래 아주 크게 지은 건물로 현 해인사 중수 결과 중 보경당과 함께 혹평을 받는 부분이다. 강당은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설법을 듣거나 잠시 앉아서 쉬는 곳으로 사찰의 풍경을 조용히 차분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의 구광루는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보물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 규모가 사찰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너무 크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구광루 앞 마당에 구현해 놓은 해인도.

해인도(海印圖)
해인도는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 시절 화엄사상을 요약한 210자 7언 30구의 게송(偈頌, 부처의 공덕이나 교리를 담은 노래 글귀)을 만(卍)자를 발전시킨 도안에 써넣은 것이다. 도안 중십에서 ‘법성원융무이상’으로 시작하여 ‘구래부동명위불’로 끝나기까지 210자의 게송을 미로와 같이 54번 꺾어 도는 동안 그 내용을 마음에 체득하면서 따라가면 깨달음에 도달한다. 여기는 처음 출발한 그 자리다. 이는 법성이 원융한 사바세계 이대로가 부처님의 세계임을 의미한다. 화엄일승법계도, 법계도서인, 화엄법계도, 법성도 등으로도 불린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구광루 맞은편 종무소 건물인 사운당

SANYO DIGITAL CAMERA마당 동쪽에 있는 상당히 크게 지은 전각인 보경당. 강당 용도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도 옆에 있는 범종각.

SANYO DIGITAL CAMERA범종각 뒷편 요사채. ‘청화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손님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구광루 옆쪽으로 있는 승려들의 수행공간.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는 주불전이 있는 공간은 구광루 양쪽에 있는 작은 협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수행 및 예불공간

구광루 옆 협문을 지나면 주불전인 대적광전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선다. 마당에는 비로탑으로 불리는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고 양쪽에 요사채가 있다. 마당보다 높게 축대를 쌓아 조성한 공간에는 주불전인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비로전, 응진전, 명부전 같은 불전이 배치되어 있으며, 바깥쪽으로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자리잡고 있다. 해인사는 수행을 중시하는 사찰로 다른 사찰에 비해 요사채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수행공간. 마당 가운데 석탑이, 그 좌우로 요사채가, 축대를 쌓은 높은 곳에 불전이 배치된 전형적인 산지사찰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전들이 있는 공간.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상당히 높고 넓게 쌓은 후 건물을 지었다.

SANYO DIGITAL CAMERA해인사 주불전인 대적광전. 화엄경을 중시하는 사찰로 비로자나여래를 모시고 있다. 그 앞에 깃발 등을 걸었던 당간과 당간지주를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에 모셔진 비로자나여래.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옆에 있는 비로전. 대적광전과는 별도로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비로전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에 모셔진 비로자나여래. 특이하게 두분의 비로자나여래가 모셔져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전하나 확인되지는 않은 듯 하다.

대비로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비로전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생과 부처, 번뇌와 깨달음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한다. 해인사 대비로전에는 9세기에 조성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동형쌍불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 내부에서 나온 묵서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져 있다. “서원합니다. 대각간님의 비로자나부처님이시여! 오른쪽 부처님은 비(妃)님의 부처님입니다. 중화 3년(서기 883년) 계묘년 여름, 부처님을 금을 입혀 이루었습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 뒷편에 있는 독성각. 앞쪽에 산신을 모시는 국사단이 있어 이곳에는 독성각이 있다.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은거했다는 학성대 바로 옆에 있어 의미가 있는 듯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독성각 내부. 스스로 수행해서 도를 깨친 성자를 모시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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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각 옆에 있는 학사대. 오래된 전나무가 학사대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학사대(學事臺)
학사대는 신라 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875~?)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고 한다. 당시 거꾸로 꽂아 두었다고 전해지는 전나무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아래로 쳐져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OLYMPUS DIGITAL CAMERA학사대 아래에 있는 요사채들.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동쪽에 있는 응진전.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옆에 있는 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명부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진 뒷편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앞 마당. 비로탑이라 불리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일반적인 사찰과는 달리 대적광전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지 않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동쪽에 있는 요사채. 안쪽에 관음전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서쪽에 있는 요사채인 궁현당. 양쪽 건물 모두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수행 및 예불공간
비로탑과 석등이 있는 마당 좌우로 궁현당과 관음전이 있다. 궁현당 너머에는 적묵당과 진영전이, 관음전 너머에 정수당이 있다. 이들 전각은 대부분 해인사 승가대학(강원)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다. 높은 축대 위에 솟은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왼쪽의 대비로전과 독성가, 오른쪽의 명부전과 응진전은 예불, 참회, 기도 등 주요 종교활동이 이루어지는 예불공간이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해인사의 중심 법당이며, 대비로전은 9세기에 조성된 국내 최고 목조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응진전 뒤쪽에는 한때 선원으로 사용되었던 선열당(법계당), 퇴설당이 있고, 그 위로 조사전이 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8년)

법보공간

법보공간은 고려 팔만대장경(국보 32호)를 비롯한 불경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으로 해인사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장경판전은 해인사에 가장 오래된 건물로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세조 때 크게 다시 지었으며, 성종 때 다시 중건한 건물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인사 경내 여러 전각들은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경판전은 피해를 입지 않고 오늘날까지 팔만대장경을 지켜오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적광전 뒷편 법보공간을 출입하는 작은 협문. ‘팔만대장경’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법보공간 중 앞쪽에 위치한 수다라장. 앞면 15칸의 긴 건물로 장식성을 배제하고 목판을 보관하기 위한 기능성을 중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다라장 출입문과 내부. 일년 중 춘분과 추분 부근 3시경에 출입문 기와의 곡선과 함께 연꽃무늬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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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라장 내부에 모셔진 고려팔만대장경(국보 32호).

OLYMPUS DIGITAL CAMERA법보공간 안쪽에 있는 건물인 법보전. 수다라장과 비슷한 양식의 건물이다.

가야산 해인사
해인사는 서기 802년(신라 애장왕 3)에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다. 해인사의 이름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 기초하였다고 전해진다. 해인삼매는 바다에 풍랑이 그치면 그 모든 형상이 온전히 비치듯이 법계의 실상을 본래 모습 그대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해인사는 창건 이래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어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지정한 최초의 총림(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포함한 종합수행도량)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고려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하고 있어 불법의 큰 보배가 현전하는 법보종찰로 유명하다. 유네스코는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팔만대장경의 고유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여 1995년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2007년 대장경 경판을 비롯한 해인사의 모든 경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합천 해인사 홍제암(보물 1300호), 사명대사가 입적한 유서깊은 암자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에 있는 암자인 홍제암(弘濟庵, 보물 1300호)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큰 역할을 했던 사명대사가 머물다 입적한 곳이다. 그의 사후 광해군이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홍제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의 사후 영정을 모시기 위해 현 건물이 세워졌으며 여러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불상을 모시는 불전과 생활공간인 요사채를 겸하고 있는 인법당(因法堂) 형식을 하고 있다. 양쪽이 누마루처럼 돌출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工’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다. 가운데 불상을 모시는 불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영정을 모시는 조사전을 비롯하여 여러 기능의 방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툇마루를 통해 연결되고 있다. 여러 기능의 공간이 한 건물에 있는 독특한 형태의 암자로 건축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합천 해인사 홍제암(보물 1300호). 사명대사가 마지막으로 머물다 입적한 유서깊은 암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출입문인 보승문. 유교식 삼문 형식을 하고 있는 출입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건물은 그의 사후 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불전과 생활공간이 한 건물에 있는 특이한 형태의 암자로 ‘工’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다. 1970년대에 크게 수리하여 지금은 새로 지은 건물처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가운데는 불상을 모신은 불전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홍제암’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내부에 모셔진 불상.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은 앞면 2칸의 누마루처럼 생긴 형태로 ‘표충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영자각(影子閣)이라 하며 고승 16명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영조 때 표충사라고 불렀는데 밀양에 표충사가 있어 이후에 이곳을 폐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도 앞면 2칸의 누마루처럼 생겼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의 공간들은 툇마루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안쪽에 생활공간인 요사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홍제암.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서쪽편에 있는 큰 규모의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작은 요사채. 승려들이 머무는 공간이 상당히 많은 편으로 해인사 승려들이 머물기를 선호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동쪽 석장비와 승탑들이 있는 공간과 연결되는 작은 협문.

OLYMPUS DIGITAL CAMERA사명대사 석장비(보물 1301호). 사명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비문을 지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훼손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장비와 함께 있는 승탑과 비석들.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석장비 10-20180205홍제암 뒷편 언덕에 있는 사명대사 사리를 모신 승탑(보물 1301호)

홍제암, 보물 1300호
홍제암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가 선조대왕의 하사로 1608년에 창건하여 수도하시다가 입적하신 곳이다. 1614년(광해 6)에 혜구 스님이 양자전을 지어 서산, 사명, 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하였고, 1674년에 현종께서 홍제당(암)을 사핵하였으며 그동안 6차례 보수하였는데, 현존 건물은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예산 조치로 1979년 10월에 완전 해체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보물 1301호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가 있다. 사명대사 부도 및 탑비는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으로 1612년(광해 4)에 건립하였고, 1943년에 일본인 합천 경찰서장이 파손하였던 것을 1958년에 복원하였다. 부도는 사명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석조물로서 1610년 입적하신 해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주불전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해인사 대적광전이다. 통일신라 화엄십찰 중 한곳이자 법보사찰인 해인사의 주불전이다.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시하는 사찰로 비로자나여래을 모시고 있어 대적광전이라 부른다. 원래 있던 불전은 여러 화재로 인한 소실과 중수를 거듭하였으며, 현재 건물은 구한말 순조때 새로 지은 것을 1971년에 크게 수리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5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건물 정면에는 대적광전, 동쪽에는 금강계단, 서쪽에는 법보단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현재 건물 규모로 볼 때 구례 화엄사 각황전과 비슷한 규모와 형태의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도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며, 조선시대 이후 잘 사용하지 않는 치미를 사용하여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인사 주불전인 대적광전. 축대를 높게 쌓고 그 위에 큰 건물을 세워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다. 지붕에 치미를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쪽에는 ‘대적광전’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전 내부에 모셔진 비로자나여래.

OLYMPUS DIGITAL CAMERA옆면은 4칸 규모이며 동쪽에는 ‘금강계단’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에서 본 모습. ‘법보단’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대방광전’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고, 장경판전으로 연결되는 출입문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겨울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해인사는 화엄경 중심사찰이기 때문에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 대웅전이 없고 화엄세계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주 법당이다.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은 산스크리트어인 바이로차나(Varocana)에서 온 말로 영원한 진리를 상징한다. 빛으로 세상을 구원한다는 뜻으며 태양을 뜻하는 부처님이다. 빛으로 세상을 밝게 비추시니 전각에 빛 광(光)자가 들어간다. 그리하여 대정광전.대광명전 혹은 비로전이라 한다. 또한 우주만물을 모두 간직한 연화장 세계를 의미하여 화엄전이라고도 한다. 원래 비로전은 2층 누각이었는데 조선 1448년(성종 19) 인수대비, 인혜대비의 지원으로 학조대사가 중창하고 대적광전으로 변경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조선 1817년(순조 17)에 제월스님이 경상관찰사 김노경의 지원으로 지었다. 김노경은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이다. 1971년 주지 지관종사가 대폭 중수하였다. 본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다포식이다. 내부 중앙은 비로자나불이 수미산에서 불법을 펼치고 계시는 모습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수미단 위 본존불인 비로자나불과 좌우로 화관을 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여 비로자나 삼존불이 완성되었다. 삼존불은 경남유형문화재 제38호로 등록되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