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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대흥선사(大興善寺), 당나라 밀종(密宗)의 중심 사찰

중국 시안에 있는 남아 있는 유서깊은 사찰인 대흥선사(大興善寺, Daxingshan Temple)이다. 대흥선사는 서진(西晉) 때(266년) 준선사(遵善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당나라 때 인도 승려 선무외(善無畏, Su­bhakara­simha, 637~735), 금강지(金剛智, Vajrabodhi, 671–741), 불공(不空, Amoghavajra, 705~774)이 인도에서 밀교들 들여와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많은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당나라 불교 6대 종파 중 밀종(密宗)의 총본산으로 여겨지며 많은 불경이 번역되어 대자은사, 천복사와 함께 당나라 장안의 삼대역경장(三大譯經場)으로 불렸다. 당나라 말 회창폐불(會昌廢佛) 때 원래의 대흥선사는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그 이후의 내력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의 사찰은 명나라 때 중건된 것을 최근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유적지 박물관처럼 운영되고 있는 대자은사나 천복사와는 달리 사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대흥선사>

밀교(密敎)는 불교의 삼보인 불(佛), 법(法), 승(僧) 중 부처의 가르침인 법(法)을 상징하는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를 본존으로 하는 종파이다. 인도 힌두교의 영향를 많이 받은 종파로 인도에서 유래했으며 중국에서는 밀종(密宗), 한국과 일본에서는 진언종(眞言宗)이라 하며 티베트불교도 이에 해당한다. 당나라 때 많은 밀교경전이 이곳에서 번역되었으며 신라 승려 혜통(惠通)은 선무외에게 밀교를 배운 후 귀국하여 진언종을 일으켰으며, 일본 승려 구카이(空海)는 인근 청룡사에서 혜과로부터 밀교를 배운후 일본 진언종을 일으켰다.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慧超, 704~787년)는 당나라 장안에 금강지에서 밀교를 배웠으며 불경번역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입구에 있는 밀교의 대표적인 상징인 금강저(金剛杵)>

오늘날 대흥선사는 명나라 때 중건된 사찰을 기준으로 현대에 복원한 것이다. 가람배치는 산문, 천왕전, 대웅보전, 지장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사찰 뒷편에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불경을 번역했던 옛 역경원 건물 형태를 계승하고 있다. 사찰 경내에는 오랜 세월동안 대흥선사를 중수하면서 세웠던 중수비 등이 많이 남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천복사의 가람배치와 거의 비슷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대흥선사 출입문인 산문>

산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천왕전이 있고, 양쪽에  경내로 출입하는 출입문을 두고 있다. 출입문으로 천왕문을 사용하는 한국 사찰의 가람배치와는 약간 다른 부분이다. 천왕전 앞 마당 양쪽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 건물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흥선사 천왕전>

OLYMPUS DIGITAL CAMERA<천왕전 내부에 모셔진 불상>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

OLYMPUS DIGITAL CAMERA<천왕전 앞 마당 오른편에 있는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요사채>

천왕전을 지나면 정면에 주불전인 대웅보전이 중심영역으로 들어선다. 마당 양쪽에는 구고지장전(救苦地藏殿), 평안지장전(平安地藏殿)이 있으며 다음으로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 요사채들이 배치되어 있다. 전통적인 사찰 가람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을 중시하는 오늘날 대흥선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보전은 오방불(五方佛)을 모시고 있으며 뒷면의 관음보살, 선재동자, 용녀가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은 궁궐 정전과 비슷한 규모의 건물로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이 있는 중심 영역>

OLYMPUS DIGITAL CAMERA<구고지장전(救苦地藏殿)>

OLYMPUS DIGITAL CAMERA<구고지장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평안지장전(平安地藏殿)>

OLYMPUS DIGITAL CAMERA<평안지장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종루>

OLYMPUS DIGITAL CAMERA<고루>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에 모셔진 오방불>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뒷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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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과 선재동자, 용녀>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옆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기와불사를 하고 있는 모습>

주불전인 대웅보전 뒷편은 노천지장전(露天地藏殿)을 중심으로 관음전, 문수전, 보현전이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밀교의 대표적인 신앙대상인 대흑천(大黑天), 애염명왕(愛染明王),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마리지천(摩利支天)을 모신 불전이 자리잡고 있다. 대흥선사를 방문한 신도들이 기도를 올리는 공간으로 현대 불교에서 대흥선사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대흥선사를 중수하면서 세웠던 비석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을 올리는 향로를 중심으로 불전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밀교를 대표하는 신앙대상을 모신 불전>

OLYMPUS DIGITAL CAMERA<어부와 상인의 신으로 숭상받는 대흑천>

OLYMPUS DIGITAL CAMERA<밀교의 신앙 대상인 명왕 중 서쪽을 상징하는 위덕명왕(大威德明王)>

OLYMPUS DIGITAL CAMERA<애염명왕(愛染明王)>

OLYMPUS DIGITAL CAMERA<노천지장전>

OLYMPUS DIGITAL CAMERA<지장전 앞 향로>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OLYMPUS DIGITAL CAMERA<보현전>

OLYMPUS DIGITAL CAMERA<문수전>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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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세워진 중수비>

OLYMPUS DIGITAL CAMERA<중수비 머릿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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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광지삼장국사비>

관음전 뒷편으로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밀교 경전을 번역했던 옛 역경원(譯經院)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사찰 뒷편에는 전탑형식의 사리탑이 있다. 마당에는 노송이 10그루 이상 있으며 명나라 떄 심어진 등나무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수행공간 중심 건물인 법당>

OLYMPUS DIGITAL CAMERA<법당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 있는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법당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법당 뒷편 역경원을 연상시키는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 소원을 적어 걸어놓은 곳>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작은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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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탑, 1992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출처>

  1. 안내문, 시안 대흥선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천복사(荐福寺), 당나라 장안 화엄종 중심 사찰

중국 시안(西安)시 옛 장안성 서남쪽에 있는 천복사(薦福寺, Jianfu Temple)이다. 당나라 장안에 있던 6대 종파 중 화엄종 근본도량으로 불교가 번성했던 당대(唐代에 높은 명성과 광범위한 인기를 누렸다. 당나라 황실을 후원을 받았던 중요 사찰로 중요한 불교 의식들이 거행되었으며 국내외에서 많은 승려들이 불교연구를 위해 모여 들었다. 번경원에서는 많은 불교경전들이 이곳에서 번역되었으며 당나라 장안에서 불경을 번역했던 사찰 중 3번째로 손꼽혔던 중하한 사찰이었다. 당나라 말기에 천복사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소안탑은 그자리를 지켰으며 명,청대에 탑을 중심으로 사찰로서의 모습을 다시 갖추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천복사 전경>

천복사는 당고종 사후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측천무후가 수양제 저택이 있었던 터에 헌복사(献福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웠다. 706년 불경을 번역하는 번경원(翻經院)이 설치되었으며 소안탑이 건립되었다. 712년 화엄종 3조인 승려 법장이 천복사에서 입적하면서 화엄종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당현종 때는 중국에 밀교를 전한 승려 금강지(金剛智)가 머물며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당무종의 회창폐불(845년) 때 대자은사, 서명사, 대장엄사화 함께 폐사를 면한 중요한 사찰이었다. 사찰 내 곳곳에 천복사를 중건하면서 그 내력을 기록했던 유서깊은 비석들이 남아 있다. 지금은 비림박물관에 소장.전시 중인 당나라 명필 안진경(顏眞卿, 709 ~ 785년)의 대표작이자 후대 서예의 교본처럼 사용되었던 작품인 다보탑감응비(多寶塔感應碑)가 대표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를 상징하는 소안탑(小雁塔, The small wild goose Pogoda)>

화엄종 근본도량으로 당나라 때 크게 번창했던 천복사는 송나라 이후 파괴되었으며 명나라 이후  소안탑을 중심으로 전각들이 중건되었다. 가람배치는 앞쪽으로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한 불전들이, 뒷편에 옛 번경원(飜經院)을 계승한 장경루(藏經樓) 등이 배치되어 있다. 원래 천복사에 비해 작은 규모이지만 사찰의 모습이 제대로 남아 있다. 소안탑 앞 종루의 새벽종소리는 안탑신종(雁塔晨鐘)이라 하여 관중팔경 중 하나로 손꼽혔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루와 종루 사이 마당에 남아 있는 수령 1,000년이 넘은 고목들>

천복사 신앙공간은 소안탑 앞쪽에 배치되어 있는 산문(山門), 천왕전(天王殿), 자씨각(慈氏各), 대웅보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자씨각 앞에는 종루와 고루가, 대웅보전 앞에는 동소정(東小亭), 서소정(西小亭)이, 마당 양쪽에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다.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주요 전각들은 대부분 청나라 떄 중건한 것으로 벽돌과 목조건축 양식이 혼재된 전형적인 청나라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앞 마당>

명나라 때 지어진 남산문(南山門)은 명.청대 이후 천복사의 정문이었다. 벽돌과 목재로 지어졌으며 성문처럼 아치형 출입문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명.청대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앞쪽에는 1514년에 적은 “칙사천복사(敕賜薦福寺)”라는 현판이 , 북쪽에는 명대에 적은 “최성법문(最胜法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천복사(敕賜薦福寺)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남산문>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남산문에서 자씨각으로 이어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작은 요사채>

산문을 지나 조금 걸으면 한국의 사찰 출입문에 해당하는 천왕전 건물터가 있고 문루인 자씨각(慈氏閣)을 중심으로 고루(鼓樓)와 종루(鐘樓)가 있는 공간이 있다. 자씨각은 명나라 때(1449년) 지어진 벽돌로 지은 문루로 2층에서 천복사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목조건축물이 한국 사찰의 문루와 비교되는 건축물이다. 자씨각 앞 마당에는 천복사의 오래 내력을 보여주는 수령 1,300년이 넘은 고목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왕전터와 천복사 중수비>

OLYMPUS DIGITAL CAMERA<문루에 해당하는 자씨각>

OLYMPUS DIGITAL CAMERA<수령 1,300년이 넘은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자씨각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앞 마당에서 본 자씨각>

자씨각 마당 양쪽에는 청나라 때 벽돌로 지은 종루와 고루가 있다. 종루에는 금나라 때(1192년) 때 만든 높이 3.35 m의 철종이 있었다. 소안탑과 함께 새벽에 울리는 종소리를 안탑신종(雁塔晨鐘)이라 하여 관중팔경 중 하나로 손꼽이는 명승이었다. 지금은 복제품이 종루 앞에 세워져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종루 옆에는 명나라 때(1494년)에 만든 작은 종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루>

OLYMPUS DIGITAL CAMERA<종루>

OLYMPUS DIGITAL CAMERA<종루 옆 마당에 있는 금나라 철종(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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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 옆에 걸려 있는 작은 종>

천복사 주불전은 대웅보전으로 앞면 5칸 규모의 단층건물로 청나라 때 지어졌다. 대웅보전 앞 마당에는 천복사를 중건하면시 세웠던 중수비와 옛 가람배치를 새겨놓은 비석이 있으며 마당 양쪽에는 청나라 지은 정자건물이 양쪽에 세워져 있다. 화엄종 중심사찰이었던 오래 내력과 중요성에 비해 현재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대웅보전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앞 마당에 세워진 비석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의 옛 가람배치를 새겨놓은 비석>

OLYMPUS DIGITAL CAMERA<동소정>

OLYMPUS DIGITAL CAMERA<동소정 뒷편 불전>

OLYMPUS DIGITAL CAMERA<서소정>

OLYMPUS DIGITAL CAMERA<서조정 뒷편 불전>

현재 천복사는 사찰로 운영되고 있지 않으며, 천복사 절터 유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일반 사찰과는 달리 대웅보전 내부에는 소안탑과 천복사의 역사를 보여주는 주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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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상,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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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상 머리,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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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황삼년조상탑,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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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인, 당>

OLYMPUS DIGITAL CAMERA<선각 보살그림 탁본,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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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면관음상 머리, 당>

OLYMPUS DIGITAL CAMERA<손을 새긴 벽돌, 당, 소안탑 부재>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 건축부재, 당>

OLYMPUS DIGITAL CAMERA<불상 좌대>

OLYMPUS DIGITAL CAMERA소안탑 북문에 있던 당대 선각그림

OLYMPUS DIGITAL CAMERA<불상 좌대,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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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각, 명, 천복사 출토>

대웅보전 뒷편에는 이곳에 당나라 장안에서 3번째로 큰 규모의 번경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전각인 장경루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주위로 승려들이 머물면서 수행했던 승방의 모습이 남아 있다. 장경루를 배경으로 소안탑의 웅장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뒷편 장경루>

OLYMPUS DIGITAL CAMERA<장경루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장경루 옆 작은 승방>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장경루>

소안탑(小雁塔)은 당나라 때 (707년) 처음 세워졌으며 천복사탑(薦福寺塔)이라 불렸는데 천복사가 화엄종 중심 사찰이었기 때문에 화엄탑(華嚴塔)으로도 불렸다. 명.청대 대자은사 대안탑과 비교되어 소안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벽돌로 쌓은 15층 전탑(塼塔)이었는데 여러차례 지진으로 손상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1965년 옛방식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나라 전탑(塼塔)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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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복사 소안탑>

OLYMPUS DIGITAL CAMERA<소안탑 앞에 세워진 중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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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모습>

소안탑 뒷편에는 후문에 해당하는 문루인 백의각(白衣閣)이 있으며, 시안 도심으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문이 있다. 현재 천복사는 정문인 남산문을 사용하지 않기때문에 서쪽 박물관이나 북쪽 출입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안탑 뒷편 백의각>

OLYMPUS DIGITAL CAMERA<백의각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백의각 뒷편에 세워진 중수비>

<출처>

  1. 안내문, 시안 천복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대자은사(大慈恩寺), 당나라 장안을 대표하는 사찰

중국 시안시에 있는 사찰인 대자은사(大慈恩寺)이다. 당고종이 어머니 문덕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되었다. 당고종 때(622년)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 등을 보관하기 위해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을 세웠으며, 이곳에서 신라 승려 원측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과 함께 많은 불경들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현장의 제자 규기(窺基)가 법통을 이어받으면서 법상종(法相宗) 중심 사찰이 되었다.

불교가 크게 번창했던 당나라 때 수도 장안에 있던 많은 사찰 중에서도 으뜸이 되었던 사찰로 대명궁에서 남쪽을 7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64.7 m에 이르는 거대한 대안탑과 함께 수도 장안의 랜드마크가 되었으며 당시 장안사람의 신앙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 통일신라 경주 황룡사, 일본 헤이안시대 쿄토 도지(東寺)와 비슷한 위상과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대자은사은 명나라 때 재건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사찰이라기 보다는 유적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대자은사>

대자은사는 크고 작은 자원(子院) 10개를 비롯하여 건물이 1,797칸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으나, 북송 때에는 대안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전각들은 파괴되었다. 이후 명나라 때 대안탑을 7층으로 수리하면서 현재와 비슷한 형태로 재건되었다. 현재의 가람배치는 대안탑을 중심으로 앞쪽으는 대웅보전을 비롯한 불전들이, 뒷편에는 현장법사를 기념하는 현장삼장원(玄奘三藏院)이 배치되어 있고 사찰 남북으로 큰 광장이, 동.서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입구에 세워진 현장법사 동상>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광장>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광장에서 본 대자은사>

대안탑 앞쪽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일반적인 사찰의 가람배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규모는 크지 않으며 고찰의 모습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정문을 들어서면 양쪽에 고루(鼓樓)와 종루(鐘樓)가, 마당 양쪽에서는 요사채에 해당하는 객당(客堂)과 운수당(雲水堂)을 볼 수 있다. 대안탑 앞에는 주불전은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보전이 있으며 서쪽에 선각당(先覺堂), 시현당(示現堂), 관음전(觀音殿)이, 동쪽에 가람전(伽藍殿), 감로당(甘露堂), 재신전(財神殿)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정문>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불전이 있는 영역>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마당 입구에 세워져 있는 종루와 고루>

OLYMPUS DIGITAL CAMERA<명.청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고루>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 운수당>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객당>

주불전인 대웅보전은 벽돌로 지은 명.청대 건물 양식을 하고 있는데,목조 기둥이나 출입문, 지붕 등에서 전통 목조건축 양식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대웅보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대웅보전 서쪽에는 하나의 건물에 선각당, 시현당, 관음전이 있다. 선각당(先覺堂)은 조사당(祖師堂)에 해당하는 불전으로 대자은자 역대 주지들을 모셨다. 시현당(示現堂)은 팔상전(八相殿)에 해당하는 곳으로 석가모니 일생에서 중요한 8장면을 그린 그림을 보신 곳이다. 관음전을 포함하여 전통 사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불전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서쪽 불전들>

OLYMPUS DIGITAL CAMERA<선각당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시현당 내부 팔상도>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내부>

대웅보전 동쪽에는 하나의 건물에 가람전(伽藍殿), 감로당(甘露堂), 재신전(財神殿)이 배치되어 있다. 가람전은 가람을 수호하는 토지신 성격의 보살을 보시고 있는 곳이다. 감로당은 부처님 말씀이자 신들의 음료인 감로수(甘露水)가 있는 사후세계 복을 비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사찰에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공간이다. 재신전은 중국에서 재신(財神)으로 숭상받는 삼국지 영웅 관우를 모신 곳으로 전(殿)으로 된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동쪽 불전들>

OLYMPUS DIGITAL CAMERA<가람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감로당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재신전 내부>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은  당고종 때(652년) 현장법사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비롯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5층으로 지어졌으나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무너진것을 수리하면서 10층으로 증축하였으며, 명나라 때 지진으로 손상된 것을 수리하면서 현재와 같이 7층으로 바뀌었다. 1959년에 현재의 모습을 수리되었다.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으며 7층에서 시안시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입구에서 본 대안탑>

OLYMPUS DIGITAL CAMERA<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대안탑 1층>

OLYMPUS DIGITAL CAMERA<내안탑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대안탑>

패엽경(Pattra-leaf scriptures) 은 고대 인도에서 종이대신 나뭇잎에 글씨를 적은 불경이다. 현장법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인도에서는 종이가 없었기 때문에 종이에 불경을 적었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패엽경이라 부른다. 중국 국보급 문화재로 이곳에는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패엽경(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7층에서내려다 보이는 북측 광장>

OLYMPUS DIGITAL CAMERA<동측 정원>

대안탑 뒷편에는 현장법사가 제자들과 함께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번역했던 번경원(飜經院) 등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그를 기리는 기념관 성격의 공간으로 현장삼장원(玄奘三藏院)이라 부른다. 대편각당(大遍觉堂)을 중심으로 서쪽 광명당(光名堂), 동쪽 반야당(般若堂)의 3원(院)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현장법사를 기념하는 벽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안탑 뒷편 현장삼장원>

OLYMPUS DIGITAL CAMERA<대편각당>

OLYMPUS DIGITAL CAMERA<대편각당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대편각당에서 본 대안탑>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반야당>

OLYMPUS DIGITAL CAMERA<반야당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반야당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광명당>

OLYMPUS DIGITAL CAMERA<광명당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서쪽 정원>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정원에 있는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정원>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북쪽 대로에서 본 대안탑>

<출처>

  1. 안내문, 시안 대자은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청도 운문사 북대암, 북쪽 봉우리 아래 작은 암자.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북대암(北臺庵)이다. 운문사 북쪽 600 m 정도 떨어진 봉우리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운문사 일대 5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신승이 수도했던 곳에서 200 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처음을 창건된 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운문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암자로 원래는 불전과 수행공간을 겸한 작은 전각만 있었으나 지금은 산신각, 칠성각과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5사찰 중 북쪽 소보갑사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1-20200106청도 운문사 북대암. 운문사를 내려다 보는 북쪽 봉우리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운문사 5사찰을 창건했다는 신승이 수행했던 곳 부근이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15-20200106북대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운문사. 이 사찰을 대표하는 장면이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8-20200106운문사 북쪽 봉우리 아래에 북대암이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9-20200106북대암은 운문사에서 600 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자동차로 암자 아래까지 올라올 수 있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10-20200106북대암 옆 운문사를 창건했다는 신승이 수행했던 계곡이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7-20200106아래에서 본 북대암. 불전 아래에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다. 이곳에 머무는 승려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11-20200106안개 낀 운문사 일대.

청도 운문사 북대암 03-20200106운문사 주불전.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어 극락전이라 할 수 있는 불전이다. 원래 불전과 요사를 겸했던 암자건물이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4-20200106북대암 뒷편 북대라 불릴 수 있는 바위봉우리와 그 아래에 있는 독성각과 산신각.

청도 운문사 북대암 13-20200106그 옆에 있는 칠성각.

청도 운문사 북대암 06-20200106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요사채.

청도 운문사 북대암 05-20200106요사채 위 장독대

청도 운문사 북대암 02-20200106그 뒷편으로 운문사를 창건한 신승이 수행했던 계곡이 있다.

호거산 북대암(北臺庵)
북대암은 운문산성(일명 지룡산성) 바로 아래에 세워져 있으며 운문산에서 최초로 세워진 암자이다. 북대는 운문사에서 보면 북쪽에 위치하고, 제비집처럼 높은 곳에 지어져 있어서 “북대”라 이름 지어졌다. 북대암에서 동쪽으로 약 200 m 옆 계곡을 건너 돌로 축대를 쌓은 곳이 있다. 이곳은 옛날 보양국사가 터를 잡은 곳이며 오작갑이 지어져 있다. 신승이라고만 전해져 온 창건자는 삼년만에 오작갑을 짓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옆으로 30보 앞뒤로 10여보 정도의 채마밭에서 운문사를 내려다 보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특히 오후 4시 정도의 햇빛을 받을 때는 정말 멋진 선경이 펼쳐진다. 또 한번 뒤돌아보면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에 있는 시 한 수가 생각이 난다. “높은산 험한 바위는 지혜있는 사람이 거처할 곳이요. 푸른솔 깊은 계곡은 수행하는 자가깃들 곳이니라” 북대암은 법당을 비롯한 산신각, 칠성각, 요사 및 신도들의 숙소인 동굴형 요사, 총 다섯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제일 위쪽에 축대를 쌓아 산신과 독성을 모시고, 그 옆에 칠성각, 아래에는 법당이 있다. 법당에는 주불로 아미타부처님, 협시보살이신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70년대까지는 한 채의 집에 인법당과 스님들의 방도 있었으나 지금은 전체를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옆에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가 있다. 앞마당은 시멘트 바닥인데 아래에는 방으로 꾸며져 신도들의 숙소로 사용된다. 북대암은 원래 운문사를 창건하기 전에 세워졌다고 하나 지금은 운문사에 소속된 “산내암자”이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청도 운문사 내원암, 동쪽 계곡에 세워진 암자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내원암(內院庵)이다. 운문사 동쪽 1 km 정도 떨어진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시대 원응국사가 창건했으며, 조선 숙종 때(1694년), 순조 때(1831년) 다시 중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일제강점기에 옛 암자터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전각으로는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북대암이나 사리암과는 달리 아늑한 계곡 속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5사찰 중 동쪽 비슬갑사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3-20200106청도 운문사 내원암. 운문사 동쪽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1-20200106내원암 주불전인 무량수전. 내원암은 일제강점기에 다시 지어진 암자로 주불전을 중심으로 불전과 요사채가 배치된 전형적인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7-20200106대웅전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

청도 운문사 내원암 05-20200106대웅전 앞 마당 동쪽편에 있는 전각

청도 운문사 내원암 10-20200106맞은편에 있는 요사채

청도 운문사 내원암 06-20200106뒷편에 있는 요사채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8-20200106무량수전 뒷편 높은 곳에 위치한 삼성각.

청도 운문사 내원암 09-20200106삼성각 앞에서 내려다 본 모습.

청도 운문사 내원암 02-20200106내원암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청도 운문사 내원암 04-20200106내원암 옆으로 흐르는 계곡.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