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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산 호압사,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운 사찰

서울 금천구 시흥2동 관악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사찰인 호압사(虎壓寺)이다.  조선 초 태종 때 (1407년)에 창건되었다.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서 호랑이가 한성을 향해 달려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창건 이후 호압사에 대한 기록 거의 없어 그 내력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으며 1841년 상궁 남씨와 유씨의 후원으로 중창되었고 한다. 구한말 궁궐 여인들의 후원을 받아 새롭게 중건되었던 수도권 사찰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찰 내에는 조선전기에 조성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모신 약사전과 삼성각, 요사채 등을 두고 있다. 호암산(해발 393 m)으로 불리는 봉우리 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찰 앞을 막고 있는 산이 없어 금천구와 구로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4-20191203 관악산 중턱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호압사. 경사진 지형에 석축을 쌓고 건물을 올렸는데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1-20191203호압사 경내. 약사여래를 모신 약산전과 요사채 등을 두고 있는 작은 암자 규모의 사찰이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5-20191203주불전인 약사전. 조선전기에 조성된 석조약사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8-20191203뒷편에 있는 삼성각

서울 관악산 호압사 06-20191203마당에는 수령 5백년이 넘는 고목이 있어 사찰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7-20191203사찰 뒷편으로 보이는 호암산.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하여 그 기세를 누르기 위해 이곳을 절을 세웠다고 한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2-20191203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멀리 구로구.금천구, 광명시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관악산 호압사 03-20191203아래쪽에 본 호압사

호압사, 서울 금천구 시흥2동
호압사가 창건된 데에는 두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먼저 <신층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천의 동쪽에 있는 산의 우측면 형상이 범이 걸아가는 것과 같고, 위태한 바위가 있는 까닭에 그 바위를 범바위라 부른다. 풍수가들이 이를 보고 바위 북쪽에다 절을 세워 호갑이라 하였다’라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1394년(태조 3)을 전후해 조선의 도읍을 서울로 정하고 궁궐을 짓는 과정에서 밤마다 괴물이 나타나 궁궐을 무너뜨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에 무학대사의 조언을 받아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현재의 터에 사찰을 짓고 한양의 지세를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이렇듯 호압사는 조선 초 한양을 수도로 정함에 관려된 일로 창건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후 호압사는 1841년(헌종 7)에 이르러 중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지만 같은 해 의민스님이 쓴 <경기좌도 시흥삼성산호압사법당현판문>에 상궁 남씨와 유씨의 도움을 받아 법당을 고쳐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안내문, 서울 호압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서울 호압사, 2019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칠곡 가산 송림사, 중국풍 전탑이 세워져 있는 고찰

경북 칠곡군 동면면 구덕리 가산(902 m) 아래에 있는 고찰인 송림사(松林寺)이다. 삼국시대 544년(진흥왕 5)에 승려 명관이 중국 진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이후 1092년 대각국사가 크제 중창한 것으로 볼 때 천태종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며 1858년에 크게 중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주에서 상주, 안동을 거쳐 한강유역으로 연결되는 중요 교통로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벽돌로 쌓은 전탑이 세워져 있는 많지 않은 사찰 중 하나이다.

경내 전각으로는 목조석가여래 삼존좌상(보물 1605호)를 모시고 있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등을 모신 오천불전과 명부전, 응진전, 요사채 등을 두고 있다. 대웅전 앞 경내에는 통일신라 때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중국풍 오층전탑(보물 189호)이 있다. 1959년 탑의 해체.수리 과정에서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사라장엄구(보물 325호) 등이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칠곡 송림사. 삼국시대에 석가모니 사리를 모시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경주에서 상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 평지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림사 주불전인 대웅전. 임진왜란 직후  다시 중건할 때 지은 것을 그후 여러차례 중수하였다. 앞면 5칸으로 맞배지붕에 다포계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조선후기 불전 건축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칠곡 송림사 20200120-21
석가여래와 문수.보현보살로 구성된 삼존불상 중 본존불로 높이 3 m에 육박하는 큰 불상이다. 17세기 대웅전 중수과정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앞에 우뚝 세워져 있는 중국풍의 오층전탑(보물 189호). 전체 높이 16 m로 상당히 높은 편인데 각층의 지붕돌을 넓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꼭대기에는 금동으로 만든 머리장식이 남아 있어 통일신라 전탑의 상륜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의 해체.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닫침형태의 사리구 안에 유리잔과 사리를 담은 유리병이 있다. 통일신라 금속공예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층전탑 옆 경내 마당에 있는 석재들. 사찰의 오랜 내력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층전탑 옆에 있는 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응진전

OLYMPUS DIGITAL CAMERA산령각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입구에 있는 강당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천불전. 석조아미타여래 삼존좌상(보물 1606호) 등이 모셔져 있다.

칠곡 송림사 20200120-21
석조아미타여래 삼존좌상 중 아미타여래좌상(보물 1606호)

송림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흥왕 때 진나라 사신이 명관대사와 함께 불서 2,700권과 불사리를 가지고 와서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선종 9년(1092)에 대각국사 의천이 중수하였으나 고종 22년(1235) 몽골의 3차 침입으로 전탑만 남고 가람이 모두 소실되었다. 그 뒤 중창했으나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또 한번 소실되어 재차 빈터만 남게 되었다. 이후 중창을 거쳐 숙종 12년(1686) 기성대사가 중건 당시 숙종의 어필로 현재 대웅전의 편액을 하사 받았으며, 철종 9년(1858) 영추 스님이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건물은 대웅전, 일주문, 설법전, 종각, 명부전, 삼천불전, 종무소, 요사채, 산령각, 응진전, 삼성각, 선불장 등이 있다. 칠곡송림사오층전탑(보물 189호), 칠곡송림사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보물 1605호), 칠곡송림사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1606호), 칠곡송림사명부전목조시왕상과제상, 송림사복장전적, 칠곡송림사대웅전, 송림사명부전석조삼장보살좌상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안내문, 칠곡 송림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칠곡 송림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군위 제 2 석굴암으로 불렸던 작은 사찰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이 사찰이다. 제2석굴암으로 곳으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바위에 석굴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모신 전통 석굴사원 형태를 제디로 갖추고 있는 곳이다. 석굴 앞에 중국 전탑을 모방해서 만든 모전석탑이 일부 복원되어 있으며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비로전을 별도로 두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팔공산 자락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고 독특한 형태의 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2석굴암으로 불렸던 사찰.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를 중심을 비로전, 모전석탑 등을 두고 있는 작은 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 마당에 있는 불전인 비로전.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 옆 야외에 있는 삼존석굴 석조비로나불좌상.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불좌상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은 삼존석불이 모셔진 이후인 9세기 경에 만들어졌다. 당시에 유행하던 신라 비로자나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상의 변천과 신앙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통견식의 법의를 입고 있다. 양쪽 어깨에 법의가 조금씩 걸쳐져 있어 앞가슴이 넓게 드러나 있다. 두 팔을 타고 내려온 옷 주름은 두 무릎에서 다시 물결무늬를 만들고 있다. 수인은 지권인이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두 빰은 풍만하며 귀가 길게 늘어져 있고, 머리는 소라 껍대기처럼 말린 모양이며, 육계는 편평하다. 원래는 파괴된 대좌와 함께 지금의 위치에서 약 30 m북쪽에 있었으나 1990년 대웅전을 늘려 지으며 대좌와 불단을 새로 만들고 옮겼다.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 마당에 있는 모전석탑. 지금은 단층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3층이었다고 한다. 이 석탑이 조성된 유래에 대해선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군위 삼존석굴 모전석탑
이 모전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단층의 탑신부를 조성한 특이한 형태로써 작자와 유래는 알 수 없다. 본래 3층이었으나, 탑신부에 자생한 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지면서 탑도 같이 무너졌다고 한다. 1949년 당시 창건주가 주선하여 군위군 우보면 신도들의 힘을 모아 현재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탑의 전체 높이는 400 cm, 기단의 한 변은 390 cm이며, 우주와 탱주는 약 16 cm, 옥개석에서 정상부까지는 약 165 cm이다. 모서리 기둥과 각 면 3개의 안 기둥 및 기단 덮개돌이 있으며, 1층 탑신부에는 약 20여 단의 일정하지 않은 직사각형 판석을 쌓았다. 1층 지붕돌의 층급은 3단이며 지붕돌 상면에도 다시 여러 단의 층급을 놓아 점차 체감되게 하였고 다시 그 상부 중앙에 노반 및 보주를 배치하였다.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 원래는 석굴 앞까지 갈 수 있도록 1960년대에 계단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로 오르는 계단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에는 아미타여래를 본존불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두고 있다. 바위에 불상을 새기던 삼국시대 석굴사원과는 달리 석굴을 파고 불상을 모신 정통 석굴사원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전 뒷편 불전과 승방들이 있는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이 있는 바위산.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을 흐르는 개울.

<출처>

  1.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양평 용문산 용문사, 은행나무로 유명한 사찰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용문산(1,157 m) 자락에 있는 고찰인 용문사(龍門寺)이다. 통일신라 신덕왕 때(913년) 대경대사가 처음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말 정지국사가 이곳에 대장견을 봉안하였으며 조선 태조 때 조안이 크게 중창하였다. 이후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해 보전을 짓고 원찰로 삼았다. 이후 1907년 항일의병이 근거지로 삼으면서 일본군에 의해 사찰 전체가 불타버렸으며 이후 여러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각으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장전, 관음전, 삼성각, 요사채 등을 두고 있는데 대부분 최근에 중건된 것이다. 사찰 뒷편 언덕에는 고려말 활동했던 정지국사 승탑(보물 531호) 비가 있으며 관음전에는 고려말.조선초기 불상양식을 잘 보여주는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1790호)를 모시고 있다. 한국 불교에서 역사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찰은 아니지만 가장 크고 오래돤 은행나무가 있는 서울에서 가까운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양평 용문사 20191109-41양평 용문산 용문사. 통일신라 때 창건된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세종비 소현왕후를 모시는 원찰로 여겨졌다. 용문산 중턱 계곡에 축대를 쌓아 터를 잡고 그 전각들을 세웠는데 공간은 비교적 넓은편이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2용문사 산문.

양평 용문사 20190603-03산문에서 계곡을 따라 20여분을 걸으면 용문사 사천왕문이 보인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4용문사 앞을 흐르는 계곡

양평 용문사 20191109-49용문사 사천왕문

양평 용문사 20190603-10천왕문 부근에서 본 모습. 수령 1,100년이 넘은 은행나무과 용문산 정상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다.

양평 용문사 20191109-48
가을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

양평 용문사 20191109-46은행나무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주불전인 대웅전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지장전을 비롯한 불전들이, 서쪽으로는 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13대웅전 내부

양평 용문사 20190603-12용문사 마당에서 보이는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20191109-45대웅전 옆에는 죽인이의 명복을 비는 공간인 지장전이 있다.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수도권 사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양평 용문사 20190603-16지장전 내부.

양평 용문사 20190603-15경내 마당 동쪽편에 위치한 관음전.

양평 용문사 20200115-31
관음전에 모셔진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1790호). 고려말.조선초 불상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는 불상이다.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
관음전에 모셔진 이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전형적인 고려 후기의 조각 양식을 계승한, 15세기 초의 우수한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당당하면서도 화려한 귀족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관음보살은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손에 보명이나 연꽃을 들며 머리에는 아미타불이 새겨진 보관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높이가 73 cm인 이 보살상은 자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높게 묶은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계율을 지키고 열심히 수행한 사람이 태어날 수 있는 극락 세계를 의미하는 중품중생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고 참선할 때의 자세인 길상좌로 앉아 있다. 왼쪽 가슴께에는 아래 내의를 고정시킨 삼각형 고리가, 배 위쪽에는 치마를 묶은 매듭이 있다. 이처럼 신체에 자연스럽게 걸쳐진 옷은 발목 부분에서 부드럽게 주름지며 양 무릎을 덮었고 그 위에 영락이 장식되었다. 이 보살 좌상은 전형적인 고려 후기의 보살상의 양식적인 특징인 높게 묶은 머리, 가슴 및 무릎의 구슬을 꿰어 만든 영락 장식, 왼쪽 가슴의 삼각형 고리를 갖추고 있어 장육사 건칠보살좌상(1395년, 보물 933호)이나 파례사 목조 관음보살 좌상(1447년 이전, 보물 992호) 등과 더불어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조각 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양평 용문사 20191109-47경내 동쪽편에 있는 요사채.

양평 용문사 20190603-20뒷편으로 승려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1109-42요사채 뒷편에 있는 산령각.

양평 용문사 20191109-43산령각 아래 칠성각.

양평 용문사 20191109-44그 아래에는 미소전이라 불리는 불전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7관음전 뒷편 정지국사탑이 있는 곳을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용문사 경내. 깊은 산중에 있지만 공간은 넓은 편이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8용문사 정지국사비(보물 531호). 고려말 활동한 정지국사(1324 ~ 1395년)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조선초에 조성한 것으로 목조건축물 형태를 하고 있는 통일신라 이래 전통 승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9용문사 정지국사 비(보물 531호). 비는 부도에 딸린 탑비로 조선 태조 7년(1398)에 건립되었으며 조성당시의 찬조자 명단과 정지국사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양평 용문사 20190603-05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요사채 성격의 건물들

양평 용문사 20190603-06승려들의 사리를 모신 승탑들.

용문사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현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 11년(1459) 서현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 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들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대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 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 선결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여 대웅전, 삼성각, 범족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 일주문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531호 정지국사 부도 및 비와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가 있다.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상주 노악산 남장사, 옛 상주목 읍치 가까운 곳에 위치한 큰 사찰

경북 상주시 남장동 노악산에 있는 남장사(南長寺)이다. 통일신라 때 우리나라에 범패(불교음악)을 처음 도입한 진감선사가 북장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명종 때(1186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건하면서 남장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떄 불타 이후 인조 때 크게 중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남장사에는 주불전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영산전.보광전.금륜전 등 많은 불전과 요사채 등을 두고 있다. 사찰 전각들은 그 내력이 깊지 않으나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0호),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성(보물 922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1641호), 감로왕도(보물 1641호), 영산회 괘불도(보물 2007호) 등 많은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다. 인근 북장사에 비해 원래의 사찰규모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존하는 전각들과 소장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볼 때 상주목 읍치와 가까운 곳에 있어 조선후기 이후 상대적으로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노악산 남장사. 통일신라 때 진감선사가 처음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고려초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을 지나 남장사로 들어가는 길. 전망좋은 산중턱에 위치한 북장사와는 달리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장사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범종루. 남장사에는 천왕문과 금강문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장사 석장승, 조선시대

장승은 마을 입구나 사찰 입구에 세워지는 것으로, 잡귀와 액운의 출입을 막고 사찰 내으 재산과 경계를 표시하는 민간 신앙물로, 마을에서는 수호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장승은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남장사에는 사천왕상이 없다. 따라서 남장동을 지키기 위한 수호신으로 세워진 것 같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범종루를 지나면 주불전이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남장사는 극락보전이 주불전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전각들은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보광전이 있는 뒷편 공간에 모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극락보전.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좌상(보물 1635년)을 모시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 마당 한쪽편에 있는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극락보전 뒷편에 있는 건물. 보광전과 마주보고 있는 큰 건물로 강당 건물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요사채 건물. 계단을 통해 보광전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실질적인 주불전으로 보이는 보광전.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보물 990호)와 목각 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922호)를 모시고 있는 공간이다.

상주 남장사 23-20191225
남장사 보광전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0호)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922호).

상주 남장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990호
이 불상은 남장사 보광전의 목조 불단에 모셔져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현재 불간 뒤 원광인 광배가 없고 불신만 남아 있다. 크기는 불상 높이 133 cm, 머리높이 34 cm, 어깨 폭 58 cm, 무릎 폭 102 cm이다. 나선형 머리카락의 머리 위에는 큼진한 실상투가 있고, 백호가 표시되어 있다. 얼굴은 눈.코.입 각 부분이 모두 잘 정제되어 있는데 눈은 반쯤 감은 형태이다. 특히 어깨에 닿을 듯한 긴 귀와 목에 돌려진 삼도가 원만하게 잘 조화되어 위엄있고 자비스러운 인상을 자아낸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철불의 다양한 양식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안내문, 상주 남장사, 2019년)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물922호
이 목각탱은 조손후기에 새겨진 것으로 규격은 226 x 236 cm이다. 주존인 철조 비로자나불 뒷벽의 후불탱으로 모셔져 있는 이 목각탱은 아미타극락회상의 도상을 나무로 조각해 금본을 입힌 것이다. 불상의 뒷벽은 종이나 비단에 그린 탱화가 아닌 목각탱으로 장엄한 장식은 조선후기에 나타난 특이한 형식으로 보이며, 전국적으로 6점이 조사되어 있을 정도로 드문예에 속한다. 조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28년 개금한 기록이 있으며, 전체 구성이나 조각수법 등이 대승사의 목각탱과 매우 유사하다. (안내문, 상주 남장사,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보광전 옆 요사채. 많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이다. 이곳을 찾는 신도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ㄱ’형 민가 형태의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보광전 뒷편 전륜각. 앞면 3칸 건물로 산신각과 같이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그 옆으로는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진영각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 안쪽 마당.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내려다 보이는 보광전. 앞면 3칸에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후기 불전 건축 양식을 하고 있다.

상주 남장사 24-20170713
남장사 영산회괘불도 (보물 2007호)

상주 남장사 22-20070915남장사 감로왕도(보물 1641호)

남장사
노악산 중턱 산자락에 자리한 남장사는 신라 흥덕왕 7년(832) 진감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에서 범패(불교음악)를 최초로 만든 곳으로, 보광전 철조비로자나불(보물 990호)와 전단향나무로 조성해 봉안한 후불목각탱화(보물 922호) 등의 문화재들은 상주 불교문화의 대표성을 드러내 주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남장사 입구의 석장승은 정겨운 모습으로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으며 주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사찰이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 남장사, 2019년
  2.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