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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지리산 덕산사(옛 내원사)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에 있는 지리산 덕산사(德山寺)이다. 통일신라 말 무염대사가 덕산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어 삼층석탑과 절터만 남아 있었다.  1959년에 내원사라는 이름으로 중건되었다가 출토 유물 등을 통해 덕산사 절터임이 확인되어 2021년 덕산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절터에 대웅전, 비로전, 등의 전각들을 다시 지었는데 원래의 규모에 비해 작은 느낌을 준다. 비로전에는 인근 석남암사지에서 옮겨온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이 모셔져 있으며 그 앞에는 덕산사가 창건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보물)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청 지리산 덕산사 01-20220222<산청 지리산 덕산사>

산청 덕산사<덕산사 가람배치>

덕산사 불전으로는 대웅전, 비로전, 산신각 등이 있으며 건물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비로전에는 인근 석남암사지에서 옮겨온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을 모시고 있다. 대웅전은 앞면 3칸의 작은 불전이었는데 최그 건물을 중건하기 건물을 헐고 임시로 요사채를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산청 지리산 덕산사 06-20220222<비로전>

비로전에는 인근 석남암사지에서 옮겨온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을 모시고 있다. 이 불상에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에 적힌 글자를 통해 신라 혜공왕 때(766년)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국보_제233-1호_산청석남암사지_석조비로자나불좌상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화강암으로 조각한 불상이다. 원래 지리산 중턱의 석남암사지로 알려진 절터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9159년 덕산사가 재건될 때 사찰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불상의 정수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크게 솟아 있고 목에는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양쪽 어깨를 덮는 법의의 옷주름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가 일부 남아 있다. 불상의 신체 비례가 적절하여 안정감이 있고 조각 수준이 높아 조형적으로 우수하다.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이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 안에서 사리 단지가 발견되었는데, 단지 표면에 영태 2년(혜공왕 2년, 766)에 불상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제작 연대를 밝힐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한 고대 조각사 연구에 기준이 되며, 불교 역사와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안내문, 산청 덕산사, 2022년)

불상 중대석에서 발견된 납석사리호(국보)는 곱돌을 다듬어서 만든 항아리이다. 항아리 표면에 15행으로 비로나자불의 조성기록과 함께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 766년)이라는 기록이 있다. 두 승려가 죽은이의 혼령을 위로하고 중생을 구제하기를 바라며 석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봉안하였다는 내용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국보)>

 산청 지리산 덕산사 04-20220222<대웅전 건물터>

산청 지리산 덕산사 09-20220222<임시로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요사채>

산청 지리산 덕산사 03-20220222<칠성각, 산신각>

덕산사 삼층석탑(보물)은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덕산사 대웅전 건물터 앞에 남아 있었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기단과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에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지붕돌은 밑면 받침을 4단씩 두었다.

산청 지리산 덕산사 07-20220222<덕산사 삼층석탑(보물)>

산청 지리산 덕산사 05-20220222<덕산사 삼층석탑, 뒤에서 본 모습>

산청 지리산 덕산사 08-20220222<요사채>

산청 지리산 덕산사 02-20220222<요사채>

산청 지리산 덕산사 10-20220222<덕산사 계곡>

신라 무열왕 4년(657)에 원효대사가 지리산 동남쪽 30리에 형성된 성지에 덕산사를 세웠다. 훗날 동방의 대보살로 불렸던 무염국사가 덕산사에 상주하여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렇게 천여 년을 면면히 이어오다가 조선조 광해군 1년(1609)에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되었다. 이후 수백년 동안 절터로 방치되었다가 1959년 원경스님이 절을 다시 세워 내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대웅전, 비로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과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보물)이 있고,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있었던 산청 석탐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성사리호(국보)는 현재 부산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내문, 산청 덕산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 덕산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산청 지리산 대원사

경남 산청군 상장면 유평리 지릿산 동쪽 계곡에 위치한 대원사(大源寺)이다. 신라 진흥왕 때(548년) 연기조사가 평원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이후 폐사되어 절터만 남아 있던 것을 조선후기 숙종 때(1685년) 운권선사가 대원암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중건하였다. 한국전쟁 때 폐허가돠었다가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대원사는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산청 대원사 01-20220222<산청 지리산 대원사>

산청 대원사<대원사 가람배치>

산청 대원사 17-20220222<최근 크게 신축한 봉상루>

산청 대원사 08-20220222<대웅전 마당>

대원사는 지리산 동쪽 깊은 계곡에 위치하고 있지만 비교적 공간이 넓은 편이며 불전과 요사채들이 질서있게 배치되어 있다.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원통보전과 명부전을 두고 있다.

산청 대원사 02-20220222<대웅전>

산청 대원사 05-20220222<원통보전>

산청 대원사 13-20220222<명부전>

대원사는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사찰로 많은 요사채를 두고 있다. 요사채들은 대부분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다.

산청 대원사 11-20220222<원통보전 옆 큰 요사채>

산청 대원사 12-20220222<명부전 옆 요사채>

산청 대원사 03-20220222<대웅전 마당에 있는 요사채들>

산청 대원사 07-20220222<대웅전 오른쪽 요사채>

대웅전 뒷편에는 비구니들의 수행공간인 사리전이 있으며 그 앞에 다층석탑(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다층석탑(보물)은  2층 기단 위에 8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다층석탑이다. 2층 기단에는 4면에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으며 모서리 기둥모양 대신 사람형상이 탑신을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산청 대원사 09-20220222<사리전>

산청 대원사 10-20220222<대원사 다층석탑(보물)>

대원사는 지리산에서 동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입구에서 대원사에 이르는 약 2km의 계곡의 지리산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한곳으로 손꼽힌다.

산청 대원사 15-20220222<대원사 계곡>

산청 대원사 16-20220222<대원사 계곡>

대원사는 해인사의 말사로서 신라 진흥왕 무진 서기 548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초창 때에는 평원사라 불리었고 이후 숙종 을축년에 중암 운권선사가 대원암이라 개칭했으며 그후 고종 경인년에 구봉 혜흔선사가 지금의 대원사라 개칭했다. 창건 이후 세번의 화재와 재건이 거듭되었는데, 여순사건 때 또 한번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의 대원사는 1959년 김 법일 스님에 의해 지건되었다. 신라 자장율사가 세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구층석탑과 대웅, 사리전 등을 갖추었고 현재는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으로 이용되고 있다.  (안내문, 산청 대원사, 2015년)

<출처>

  1. 안내문, 산청 대원사, 2015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3. 위키백과, 2022년

 

경주 백률사, 삼국시대 이차돈이 순교한 곳에 창건된 사찰

경북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에 있는 사찰인 백률사(栢栗寺)이다. 삼국시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이차돈의 순교한 장소에 세워졌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삼국유사>에 693년(효소왕 2)에 이 사찰에 대한 대비관음상에 대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율사에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금동불상인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를 모시고 있었던 것으로 볼 떄 상당히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되었으며 그 떄 관음상이 없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률사에 있던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와 이차돈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은 일제강점기에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백률사(栢栗寺)>

백율사(栢栗寺)
계림(鷄林)의 북쪽 산을 금강령(金剛嶺)이라고 하는데 [그] 산의 남쪽에 백율사(栢栗寺)가 있다. 절에는 대비(大悲)의 상(像) 한구가 있는데, 언제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영험하고 이로움이 자못 현저하였다. 혹은 중국의 신장(神匠)이 중생사(衆生寺)의 불상을 조성할 때 함께 만든 것이라고 한다. 속설에는 이 대성(大聖)이 일찍이 도리천(忉利天) 위에 올라갔다가 돌아와서 법당에 들어갈 때 밟았던 돌 위에는 발자국이 지금까지 마멸되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한다. 혹은 부례랑(夫禮郞)을 구해서 돌아올 때의 자취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권 제3 제4 탑상 백율사,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OLYMPUS DIGITAL CAMERA<백률사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백률사에서 내려다 본 모습>

현재 백률사에는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를 모셨던 대웅전을 중심으로 요사채,범종각 등의 전각들이 있다. 오랜 세월 번창했던 사찰이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대웅전은 임진왜란 후 다시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백률사 대웅전>

백률사 대웅전, 경북 경주시 동천동 406-1
백률사는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刺楸寺)일 것이라 한다. 자추사가 맞다면 신라 법흥왕(法興王) 14년(527)에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삼도록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절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그 후 다시 지어졌다. 단층의 목조 기와집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多包)집으로 좌우 협칸에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은 불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 (金銅佛)로 알려져 있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는 높이 1.7 m로 통일신라 금동불상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현재는 약단지를 쥔 손이 없지만, 옛 사진에 약단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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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와 범종각>

백률사에는 이차돈순교비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따. 순교비에는 이차돈의 순교장면을 묘사한 그림과 그 내력을 적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9세기 헌덕왕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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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돈순교비에 표현된 순교장면>

사찰 경내에는 옛 건물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주춧돌을 비롯하여 석조유물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유물>

OLYMPUS DIGITAL CAMERA<주춧돌로 보이는 석조유물>

백률사 아래에는 8세기 경덕왕 때 창건된 굴불사(掘佛寺)가 있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8세기에 경덕왕이 백률사를 행차했을 때 염불소리가 들려 땅을 파보니 큰 돌이 나와 4면에 불상을 새기고 불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백률사를 오르는 길에서 보는 굴불사지>

OLYMPUS DIGITAL CAMERA<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5. 삼국유사 권 제3 제4 탑상 백율사,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청양 칠갑산 장곡사(長谷寺), 통일신라 선종계열 사찰

충안 청양군 대치면 개곡리 칠갑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장곡사(長谷寺)이다. 칠갑산 중턱 경사진 지형에 터를 잡고 전각들을 지었는데 상.하 대웅전이 있는 이원식(二院式)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 58호)와 고려초에 조성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74호)이 상 대웅전(보물 162호)에, 고려말 충목왕 때(1346년) 조성된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337호)가 모셔져 있다.

장곡사는 통일신라 때 (850년)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 804~880)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체징은 통일신라 말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지산문(迦智山門) 개창조로 여겨지는 승려이다. 당나라에서 유학한 후 신라로 돌아와 왕실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전남 장흥 가지산 보림사(寶林寺)에 머물렀으며 후원자들이 거대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117호)를 조성하였다. 장곡사에도 비슷한 시기에 철조약사여래좌상을 조성했던 점 등으로 볼 때 가지산문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1-20210414<칠갑산 장곡사>

들어가는 길

장곡사는 충남 서해안 홍성, 예산, 아산 등 지역과 금강유역 공주, 부여를 연결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양군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10 km 정도 떨어진 칠갑산 서쪽편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에 지어진 곳으로 보이는 일주문을 지나 약  800 m 산책로를 걸어 들어가면 된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2-20210414<장곡사 일주문>

청양 칠갑산 장곡사 03-20210414<장곡사 입구에서 본 전경>

장곡사는 천왕문이나 금강문 등 출입문을 두고 있지 않으며 2층 누각인 운학루를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운학루를 지나면 하 대웅전 영역에 들어선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4-20210414<장곡사 운학루>

하 대웅전 영역

2개의 원(院)으로 구성된 장곡사 중 아랫쪽에 위치한 하 대웅전 영역이다. 고려말 충목왕 때(1346년)  조성된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337호)를 모신 하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정전과 요사채 등이 배치되어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5-20210414<장곡사 하 대웅전 영역>

하 대웅전(보물 181호)은 조선 중기에 지어졌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6-20210414<장곡사 하 대웅전(보물 181호)>

장곡사 하대웅전에 고려말에 조성된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337호)을 모시고 있다. 불상 바닥에서 발원문이 발견되어 고려말 충목왕 때(1346년)에 조성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발원문에는 승려 백운을 비롯하여 천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어 많은 신도들의 불상 조성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08-20210414<하 대웅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 <천여명의 이름이 적힌 백운의 발원문, 고려 1346년, 청양 장곡사>

청양 칠갑산 장곡사 10-20210414<지정전>

청양 칠갑산 장곡사 11-20210414<지장전 내부>

하 대웅전 영역에는 요사채로 설선당(說禪堂)과 심검당을 두고 있으며 지장전 아래에 봉향각이 있다.  설선당은 승려들이 수행하면서 거처하는 건물로 하대웅전과 함께 조선중기에 지어졌다. 설선당 본채에 해당하는 건물은 주심포 양식이 남아 있는 공포와 세부적인 건축수법 등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으나 익랑은 승려들의 생활공간을 위해 후대에 민간 가옥 형식으로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30-20210414<요사채인 설선당>

청양 칠갑산 장곡사 29-20210414<최근에 다시 지은 심검당>

청양 칠갑산 장곡사 07-20210414<설선당 맞은편 봉향각>

상 대웅전 영역

윗쪽에 위치한 상 대웅전 영역은 장곡사의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 58호)를 비롯하여 철조비로자불좌상(보물 174호),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신 상 대웅전(보물 162호)를 중심으로  응진전,  요사채인 염화실을 두고 있으며 동쪽편 언덕에 금당과 삼성각을 배치하고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28-20210414<상 대웅전 영역으로 오르는 길>

청양 칠갑산 장곡사 27-20210414<아래에서 보이는 상 대웅전 영역>

청양 칠갑산 장곡사 12-20210414<상 대웅전 오르는 길에 볼 수 있는 석탑 부재를 비롯한 석조 유물들>

청양 칠갑산 장곡사 14-20210414<상 대웅전 영역>

상 대웅전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공포인데 주심포 양식도 일부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지만 내부 바닥에 전돌이 깔려 있고 주심포 공포양식이 일부 보이는 등 옛 건축 양식이 많이 남아 있는 건물이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22-20210414<상 대웅전(보물)>

철조약사여래좌상(국보)은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철조불상으로 사각형 돌로 만든 거대한 대좌 위에 올려져 있다. 불상은 높이 91 cm로 크지 않은 편으로 양감이 풍부하지 않고 부피감도 줄어든 9세기 후반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초에 많이 조성되었던 철조불상을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24-20210414<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국보)>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은 고려시대에 조성한 높이 61 cm의 철조불상이다.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지권인(智拳印) 수인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여래를 표현하고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25-20210414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보물)>

청양 칠갑산 장곡사 23-20210414<응진전>

청양 칠갑산 장곡사 26-20210414<응진전 뒷편 아담한 요사채>

청양 칠갑산 장곡사 20-20210414<상 대웅전 서쪽편에 위치한 요사채인 염화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21-20210414<상 대웅전 영역에서 내려다 보이는 하 대웅전 영역>

청양 칠갑산 장곡사 13-20210414<동쪽편 언덕에 위치한 금당>

상 대웅전 동쪽편 언덕에는 삼성각이 있으며 그 뒷편으로 칠갑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청양 칠갑산 장곡사 15-20210414<삼성각>

청양 칠갑산 장곡사 16-20210414<삼성각 내부>

청양 칠갑산 장곡사 18-20210414<칠갑산 정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청양 칠갑산 장곡사 17-20210414<삼성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 대웅전 영역>

청양 칠갑산 장곡사 19-20210414<삼성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하 대웅전 영역>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성왕 12년)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동안 변천되면서 지금은 대웅전이 상.하 두곳으로 나누어 있는 천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사찰이다. 도립공원 칠갑산 서쪽에 위치한 장곡사는 국보 2점, 보물 4점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지방문화재 1점을 비롯한 많은 비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특히, 보물 162호로 지정된 장곡사 상 대웅전의 바닥은 마루가 아닌 무늬가 있는 벽돌을 펴놓은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하 대웅전은 맞배지붕의 소규모 건축인데도 다포(多包)집 계통의 공포를 받쳐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또한 상.하 대웅전 내부의 약사여래는 일념으로 기도하면 난치병이 낫는 가피력(加被力)을 지닌 영험 있는 부처님으로 유명하여 전국에서 많은 신도들과 관광객이 찾아와 기도를 하고 있다.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출처>

  1. 안내문, 청양 장곡사,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청송 주왕산 주왕암(周王庵)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왕산계곡에 있는 주왕암(周王庵)이다. 대전사(大典寺)에 딸린 작은 암자로 대전사와 비슷한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에서 반란에 실패하고 이곳으로 피신왔던 주왕(周王)이 숨었다는 전설이 있는 주왕굴이 가까운 곳에 있다. 전각으로는 2층 문루인 가학루(駕鶴樓), 요사채, 나한전이 있다. 나한전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6나한 및 후불탱화가 있다.

청송 주왕산 주왕암 06-20210225<주왕암 가학루>

청송 주왕산 주왕암 01-20210224<요사채>

청송 주왕산 주왕암 02-20210225<나한전>

주왕암(周王庵)
이 암자는 대전사와 함께 창건되었다 하며 주왕의 혼을 위안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라고도 한다. 문간채인 가학루는 중층 누각으로 되어 있고 기와는 이끼가 그윽하여 오랜 풍상을 보여준다. 또한 16나한을 모신 나한전이 있다. 주왕암 옆에는 주왕의 최후 전설이 전해져 오는 주왕굴로 들어가는 협곡의 좁은 길이 있다. (안내문, 주왕산 대전사, 2020년)

주왕암에 좁은 계곡을 따라 200 m 정도 들어가면 협곡사이에 있는 작은 동굴인 주왕굴(周王窟)을 볼 수 있다. 깊이 2 m 정도의 좁은 동굴로 지금은 석굴사원처럼 사용되고 있다.

청송 주왕산 주왕암 03-20210225<주왕굴로 들어가는 협곡>

청송 주왕산 주왕암 11-20210225
<협곡사이로 만든 탐방로>

청송 주왕산 주왕암 04-20210225<주왕굴 입구>

청송 주왕산 주왕암 05-20210225<주왕굴 내부>

주왕굴(周王窟)
주왕굴은 협곡 사이 암벽에 위치한 자연동굴입니다. 당나라 때 스스로 주왕이라고 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한 주도라는 사람이 주왕산으로 숨어 들어온 뒤, 이곳에 은거하였다고 합니다. 신라왕은 주왕을 토벌하기 위해 마장군을 보냈고 주왕은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 발각되어 마장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안내문, 주왕산 대전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송  대전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5.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