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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柏孜克里千佛洞), 투루판을 대표하는 석굴사원

중국 투루판시에 있는 베제클리크 석굴(柏孜克里千佛洞, Bezeklik Caves)이다. 실크로드 북로에서 투루판 분지로 들어가는 입구인 화염산 무토우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베제클리크는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라는 뜻으로 현재 77개의 석굴 사원이 남아 있으며 많은 석굴 벽화가 있었다. 불교가 전파된 경로에 남아 있는 석굴 유적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베제클리크 석굴은 초기 이슬람인들의 파괴가 있었고, 20세기초 독일인들이 수차례에 주요 벽화들을 도굴해 베를린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내부 석굴을 들어가 보면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벽화를 떼어내 간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베제클리크 석굴사원>

SANYO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석굴사원은 수도자들이 더위와 비를 피하여 명상을 하기 위해 바위로 된 벼랑에 동굴을 파서 만들었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소카왕때 처음 생겼으며,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도 전해졌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 석굴, 중앙아시아의 키질, 투루판 베제클릭, 둔황석굴, 중국의 윈강 석굴 등이 규모도 크고 잘 알려진 석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석 석재로 인공적으로 조성은 석굴암이 대표적이다.

SANYO DIGITAL CAMERA<남쪽편 36 ~ 39호 석굴>

둔황 막고굴과 마찬가지로 바위산을 뚫어 석굴 사원들을 조성해 놓았다. 석굴은 둥근 아치형 천장과 직사각형의 평면을 하고 있으며 천정과 벽면은 불화로 장식하고 있다. 석들은 대부분 도굴되어 벽화를 볼 수 있는 석굴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남아 있는 벽화만으로도 당시의 석굴사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내부관람이 가능한 39호 석굴>

석굴은 바위를 파서 조성했는데 여러 석굴들이 마치 아파트처럼 배치되어 있으며 앞에는 베란다 역할을 하는 난간이 있는 통로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석굴을 오가는 통로와 석굴 앞 테라스>

SANYO DIGITAL CAMERA<31호굴>

SANYO DIGITAL CAMERA<내부 관람이 가능이 27호굴>

SANYO DIGITAL CAMERA<복원이 진행중인 석굴>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석굴과 돔형 지붕>

SANYO DIGITAL CAMERA<석굴사원 아래>

SANYO DIGITAL CAMERA<복원 작업이 진행중인 부분>

화염산 무토우 계곡은 북쪽 산악지역에서 분지로 강물이 흘러내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동쪽편 토유크석굴이 있는 계곡이 출입로였는데 고창국이 고창고성에 자리잡으면서 실크로드 북로에서 고창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번성했다. 석굴은 고창고성에서 1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토우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황량한 풍결을 보여주는 화염산>

SANYO DIGITAL CAMERA<베제클리크 석굴 유적지 입구>

SANYO DIGITAL CAMERA<입구에서 내려다 보이는 베제클리크 석굴>

SANYO DIGITAL CAMERA<북쪽으로 이어지는 계곡>

SANYO DIGITAL CAMERA<계곡 옆 수목들>

SANYO DIGITAL CAMERA<계곡 주변 울창한 숲>

SANYO DIGITAL CAMERA<베제클리크 석굴 뒷편 화염산>

20세기 초 일본인이 수집하여 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중앙아시아 유물인 오타니 걸렉션 중에는 이곳에서 수집한 벽화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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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변단편(法華經變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23굴, 9세기>

제23굴 전실에 그려진 <법화경변> 단편이다. 벽화의 윗부분에는 여러 색의 구름으로 이루어진 둥근 구획 안에 보살의 성중(聖衆)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연꽃대좌 위에는 정면을 향해 가부좌(跏趺坐)를 한 보살이 있고, 그 주위로 보관과 목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를 한 보살이 있다. 벽화의 아랫부분에는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된 인물들이 말, 낙타 등을 이끌고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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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도 단편(千佛圖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18굴, 6~7세기>

제18굴 회랑에 그려진 천불도 단편이다. “천불”이란 무수히 많은 부처를 가리킨다. 부처는 불법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수많은 부처를 그린 천불도는 불법이 우주에 편재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체로 열과 행에 따라 동일한 형식의 부처가 반복되는 구성이다. 천불도 단편에서 부처는 가는 흰색선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구획 안에 배치되어 있으며, 통견의 법의를 입고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있다. 이목구비가 큰 얼굴, 명암법, 어두운 배경색은 모두 베제클리크 초기 벽화의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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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 단편(惡鬼像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10~12세기>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중당(中堂)의 네 모퉁이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안쪽 좌측 벽에 그려진 사천왕 앞에 앉아 있는 악귀를 그린 것이다. 악귀는 겁에 질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앞으로 모아 화살 2개를 쥐고 있다. 오른쪽에는 사천왕의 오른쪽 발과 코끼리 머리장식을 한 오른쪽 다리 일부가 보인다. 악귀의 과장된 표정과 근육, 화려한 채색 등이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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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단편(惡鬼像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 15굴, 10~12세기>

 눈이 세개인 악귀가 표현된 벽화 단편이다. 제15굴 중당에는 각 모퉁이에 사천왕이 그려져 있는데, 이 악귀는 입구 좌측에 그려진 사천왕 옆에 그려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녹색 피부의 악귀는 타원형의 얼굴에 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위로 올려 긴 화살통을 들고 있다. 악귀의 색채 구성과 표현방식이 제15굴 중당에 그려진 화두금강(火頭金剛) 단편과 유사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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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帳幕壁畵斷片),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5굴, 10~12세기>

위구르어와 한자로 쓴 명문이 있는 벽화 단편이다. 공양자의 이름과 발원 시기를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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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가 있는 벽화 단편,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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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Vidya-raja),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분노에 찬 모습을 한 채로 화염에 둘러싸여 있는 명왕의 하반신에 해당하는 벽화이다. 베제클릭 제 20동굴의 중당 벽화에서 확인되는 유사한 도상에 의거하여 볼 때, 이 상은 6개의 팔을 지니고 각각 칼, 도끼, 법륜 등을 든채 오른쪽을 향해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베제클릭 석굴사원에서 그 형식이 완성되고 널리 그려진 대표적인 벽화로 ‘서원화’가 있다.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현재의 시점에서 볼 떄 과거불)로 부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이야기가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한국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8장면으로 그린 팔상도와 비슷한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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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단편(誓願畵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33굴, 10~12세기, 복제품,석가모니가 전생에 상인이었을 때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제33굴 오른쪽 벽 안쪽에서 2번째로 배치된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서원화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 즉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과거불을 만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이 벽화에는 두 명의 인물이 나란히 앉아 공양물이 담긴 화려한 쟁반을 들고 있고, 왼쪽 끝에는 공양의 대상이 되는 과거불의 광배, 발, 옷자락 등의 일부가 보인다. 인물의 얼굴과 복장에 각기 다른 개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차림새로 보아 당시 실크로드에서 상인으로 활약한 소그드인과 위구르인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SANYO DIGITAL CAMERA<33호 석굴>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4.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

 

투루판 가오창고성 대불사(大佛寺)터, 당 현장법사가 인도 순례길에 머물렀던 곳

중국 투루판 옛 고창국 도성이었던 가오창고성(高昌古城) 외성 남서쪽에 위치한 대불사(大佛寺) 절터이다. 당나라 승려 현장법사가 인도로 순례를 떠나는 길에 잠시 들러서 설법을 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크로드에 있었던 많은 사찰들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 지금은 없어진 서역의 불교 사찰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현장법사는 고창국 국왕 국문태의 초청을 받아 이곳에서 1개월 동안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설법했으며 국왕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10년 후 순례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이곳을 다시 찾으려 했으나 고창국은 당(唐)에 의해 멸망하여 다른 길로 돌아왔다고 한다.

대불사절터는 고성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규모는 남북 70 m, 동서 120 m 정도이다. 가오창고성 내성이 있는 동쪽에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건물외벽들이 담장을 이루고 있는 도시형 사찰이다. 서역의 종교시설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절터>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가오창고성 대불사 정문과 외벽>

SANYO DIGITAL CAMERA<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불상을 모신 불전이 보인다.>

대불사는 불상을 모신 불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법회가 열리는 돔형 강당이 배치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들을 두고 있다. 실크로드에 있는 교통요지에 있는 사찰답게 사막을 여행하는 순례객들을 위한 요사채가 상당히 많은 것이 특징이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주불전>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앞 마당>

주불전은 불상을 모신 공간으로 중앙에 불상을 모시기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벽면에도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두고 있다. 목조건축물로 지어진 동아시아의 불전과는 달리 흙벽돌로 쌓은 서역의 불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벽돌로 기단을 쌓고 건물을 올렸는데 아치형 지붕이 있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주불전>

SANYO DIGITAL CAMERA<불상을 모셨던 자리>

주불전 마당 북쪽편에는 법회가 열렸던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현장법사가 설법을 펼쳤던 유서깊은 곳으로 옛 모습을 복원해 놓고 있다. 건물 벽면은 사각이며 돔형 지붕을 올려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강당, 돔형 건물로 외부는 벽면으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대불사 절터에는 벽돌로 지은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는 대부분 승려들이나 순례객들이 머물 수 있는 요사채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지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불전 앞 마당 주위에는 상히 큰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찰 입구 강당 옆에 있는 건물, 2층 이상의 크고 높은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 맞은편에 있는 건물, 상당히 큰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강당 옆 주불전 뒷편에 있는 건물들>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옆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뒷편>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뒷편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담장너머로 가오창고성 외성 성벽이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주거지 모습을 보이는 요사채 내부>

SANYO DIGITAL CAMERA<요사채 건물터>

가오창고성은 투루판 분지에 있었던 고성으로 서한(西漢)시대부터 13세기까지 존재했던 지역의 중심지였다. 현재 남아 있는 고성터는 둘레 5.4km 정도로 당나라 장안성을 모방하여 만들었다. 성터에는 외성과 내성 성벽을 비롯하여 고창국 궁굴터, 대불사 절터 등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많은 건물터가 남아 있는 투루판 가오창 고성>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

시안 대흥선사(大興善寺), 당나라 밀종(密宗)의 중심 사찰

중국 시안에 있는 남아 있는 유서깊은 사찰인 대흥선사(大興善寺, Daxingshan Temple)이다. 대흥선사는 서진(西晉) 때(266년) 준선사(遵善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당나라 때 인도 승려 선무외(善無畏, Su­bhakara­simha, 637~735), 금강지(金剛智, Vajrabodhi, 671–741), 불공(不空, Amoghavajra, 705~774)이 인도에서 밀교들 들여와 이곳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많은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당나라 불교 6대 종파 중 밀종(密宗)의 총본산으로 여겨지며 많은 불경이 번역되어 대자은사, 천복사와 함께 당나라 장안의 삼대역경장(三大譯經場)으로 불렸다. 당나라 말 회창폐불(會昌廢佛) 때 원래의 대흥선사는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그 이후의 내력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의 사찰은 명나라 때 중건된 것을 최근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유적지 박물관처럼 운영되고 있는 대자은사나 천복사와는 달리 사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대흥선사>

밀교(密敎)는 불교의 삼보인 불(佛), 법(法), 승(僧) 중 부처의 가르침인 법(法)을 상징하는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를 본존으로 하는 종파이다. 인도 힌두교의 영향를 많이 받은 종파로 인도에서 유래했으며 중국에서는 밀종(密宗), 한국과 일본에서는 진언종(眞言宗)이라 하며 티베트불교도 이에 해당한다. 당나라 때 많은 밀교경전이 이곳에서 번역되었으며 신라 승려 혜통(惠通)은 선무외에게 밀교를 배운 후 귀국하여 진언종을 일으켰으며, 일본 승려 구카이(空海)는 인근 청룡사에서 혜과로부터 밀교를 배운후 일본 진언종을 일으켰다.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慧超, 704~787년)는 당나라 장안에 금강지에서 밀교를 배웠으며 불경번역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입구에 있는 밀교의 대표적인 상징인 금강저(金剛杵)>

오늘날 대흥선사는 명나라 때 중건된 사찰을 기준으로 현대에 복원한 것이다. 가람배치는 산문, 천왕전, 대웅보전, 지장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사찰 뒷편에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불경을 번역했던 옛 역경원 건물 형태를 계승하고 있다. 사찰 경내에는 오랜 세월동안 대흥선사를 중수하면서 세웠던 중수비 등이 많이 남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천복사의 가람배치와 거의 비슷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대흥선사 출입문인 산문>

산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천왕전이 있고, 양쪽에  경내로 출입하는 출입문을 두고 있다. 출입문으로 천왕문을 사용하는 한국 사찰의 가람배치와는 약간 다른 부분이다. 천왕전 앞 마당 양쪽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 건물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흥선사 천왕전>

OLYMPUS DIGITAL CAMERA<천왕전 내부에 모셔진 불상>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

OLYMPUS DIGITAL CAMERA<천왕전 앞 마당 오른편에 있는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요사채>

천왕전을 지나면 정면에 주불전인 대웅보전이 중심영역으로 들어선다. 마당 양쪽에는 구고지장전(救苦地藏殿), 평안지장전(平安地藏殿)이 있으며 다음으로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 요사채들이 배치되어 있다. 전통적인 사찰 가람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을 중시하는 오늘날 대흥선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보전은 오방불(五方佛)을 모시고 있으며 뒷면의 관음보살, 선재동자, 용녀가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은 궁궐 정전과 비슷한 규모의 건물로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이 있는 중심 영역>

OLYMPUS DIGITAL CAMERA<구고지장전(救苦地藏殿)>

OLYMPUS DIGITAL CAMERA<구고지장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평안지장전(平安地藏殿)>

OLYMPUS DIGITAL CAMERA<평안지장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종루>

OLYMPUS DIGITAL CAMERA<고루>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에 모셔진 오방불>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뒷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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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과 선재동자, 용녀>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옆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기와불사를 하고 있는 모습>

주불전인 대웅보전 뒷편은 노천지장전(露天地藏殿)을 중심으로 관음전, 문수전, 보현전이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밀교의 대표적인 신앙대상인 대흑천(大黑天), 애염명왕(愛染明王),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마리지천(摩利支天)을 모신 불전이 자리잡고 있다. 대흥선사를 방문한 신도들이 기도를 올리는 공간으로 현대 불교에서 대흥선사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대흥선사를 중수하면서 세웠던 비석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향을 올리는 향로를 중심으로 불전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밀교를 대표하는 신앙대상을 모신 불전>

OLYMPUS DIGITAL CAMERA<어부와 상인의 신으로 숭상받는 대흑천>

OLYMPUS DIGITAL CAMERA<밀교의 신앙 대상인 명왕 중 서쪽을 상징하는 위덕명왕(大威德明王)>

OLYMPUS DIGITAL CAMERA<애염명왕(愛染明王)>

OLYMPUS DIGITAL CAMERA<노천지장전>

OLYMPUS DIGITAL CAMERA<지장전 앞 향로>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OLYMPUS DIGITAL CAMERA<보현전>

OLYMPUS DIGITAL CAMERA<문수전>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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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세워진 중수비>

OLYMPUS DIGITAL CAMERA<중수비 머릿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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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광지삼장국사비>

관음전 뒷편으로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밀교 경전을 번역했던 옛 역경원(譯經院)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사찰 뒷편에는 전탑형식의 사리탑이 있다. 마당에는 노송이 10그루 이상 있으며 명나라 떄 심어진 등나무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수행공간 중심 건물인 법당>

OLYMPUS DIGITAL CAMERA<법당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 있는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법당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법당 뒷편 역경원을 연상시키는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 소원을 적어 걸어놓은 곳>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작은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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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탑, 1992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출처>

  1. 안내문, 시안 대흥선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천복사(荐福寺), 당나라 장안 화엄종 중심 사찰

중국 시안(西安)시 옛 장안성 서남쪽에 있는 천복사(薦福寺, Jianfu Temple)이다. 당나라 장안에 있던 6대 종파 중 화엄종 근본도량으로 불교가 번성했던 당대(唐代에 높은 명성과 광범위한 인기를 누렸다. 당나라 황실을 후원을 받았던 중요 사찰로 중요한 불교 의식들이 거행되었으며 국내외에서 많은 승려들이 불교연구를 위해 모여 들었다. 번경원에서는 많은 불교경전들이 이곳에서 번역되었으며 당나라 장안에서 불경을 번역했던 사찰 중 3번째로 손꼽혔던 중하한 사찰이었다. 당나라 말기에 천복사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소안탑은 그자리를 지켰으며 명,청대에 탑을 중심으로 사찰로서의 모습을 다시 갖추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천복사 전경>

천복사는 당고종 사후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측천무후가 수양제 저택이 있었던 터에 헌복사(献福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웠다. 706년 불경을 번역하는 번경원(翻經院)이 설치되었으며 소안탑이 건립되었다. 712년 화엄종 3조인 승려 법장이 천복사에서 입적하면서 화엄종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당현종 때는 중국에 밀교를 전한 승려 금강지(金剛智)가 머물며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당무종의 회창폐불(845년) 때 대자은사, 서명사, 대장엄사화 함께 폐사를 면한 중요한 사찰이었다. 사찰 내 곳곳에 천복사를 중건하면서 그 내력을 기록했던 유서깊은 비석들이 남아 있다. 지금은 비림박물관에 소장.전시 중인 당나라 명필 안진경(顏眞卿, 709 ~ 785년)의 대표작이자 후대 서예의 교본처럼 사용되었던 작품인 다보탑감응비(多寶塔感應碑)가 대표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를 상징하는 소안탑(小雁塔, The small wild goose Pogoda)>

화엄종 근본도량으로 당나라 때 크게 번창했던 천복사는 송나라 이후 파괴되었으며 명나라 이후  소안탑을 중심으로 전각들이 중건되었다. 가람배치는 앞쪽으로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한 불전들이, 뒷편에 옛 번경원(飜經院)을 계승한 장경루(藏經樓) 등이 배치되어 있다. 원래 천복사에 비해 작은 규모이지만 사찰의 모습이 제대로 남아 있다. 소안탑 앞 종루의 새벽종소리는 안탑신종(雁塔晨鐘)이라 하여 관중팔경 중 하나로 손꼽혔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루와 종루 사이 마당에 남아 있는 수령 1,000년이 넘은 고목들>

천복사 신앙공간은 소안탑 앞쪽에 배치되어 있는 산문(山門), 천왕전(天王殿), 자씨각(慈氏各), 대웅보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자씨각 앞에는 종루와 고루가, 대웅보전 앞에는 동소정(東小亭), 서소정(西小亭)이, 마당 양쪽에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다.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주요 전각들은 대부분 청나라 떄 중건한 것으로 벽돌과 목조건축 양식이 혼재된 전형적인 청나라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앞 마당>

명나라 때 지어진 남산문(南山門)은 명.청대 이후 천복사의 정문이었다. 벽돌과 목재로 지어졌으며 성문처럼 아치형 출입문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명.청대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앞쪽에는 1514년에 적은 “칙사천복사(敕賜薦福寺)”라는 현판이 , 북쪽에는 명대에 적은 “최성법문(最胜法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칙사천복사(敕賜薦福寺)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 남산문>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남산문에서 자씨각으로 이어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작은 요사채>

산문을 지나 조금 걸으면 한국의 사찰 출입문에 해당하는 천왕전 건물터가 있고 문루인 자씨각(慈氏閣)을 중심으로 고루(鼓樓)와 종루(鐘樓)가 있는 공간이 있다. 자씨각은 명나라 때(1449년) 지어진 벽돌로 지은 문루로 2층에서 천복사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목조건축물이 한국 사찰의 문루와 비교되는 건축물이다. 자씨각 앞 마당에는 천복사의 오래 내력을 보여주는 수령 1,300년이 넘은 고목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왕전터와 천복사 중수비>

OLYMPUS DIGITAL CAMERA<문루에 해당하는 자씨각>

OLYMPUS DIGITAL CAMERA<수령 1,300년이 넘은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자씨각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앞 마당에서 본 자씨각>

자씨각 마당 양쪽에는 청나라 때 벽돌로 지은 종루와 고루가 있다. 종루에는 금나라 때(1192년) 때 만든 높이 3.35 m의 철종이 있었다. 소안탑과 함께 새벽에 울리는 종소리를 안탑신종(雁塔晨鐘)이라 하여 관중팔경 중 하나로 손꼽이는 명승이었다. 지금은 복제품이 종루 앞에 세워져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종루 옆에는 명나라 때(1494년)에 만든 작은 종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루>

OLYMPUS DIGITAL CAMERA<종루>

OLYMPUS DIGITAL CAMERA<종루 옆 마당에 있는 금나라 철종(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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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 옆에 걸려 있는 작은 종>

천복사 주불전은 대웅보전으로 앞면 5칸 규모의 단층건물로 청나라 때 지어졌다. 대웅보전 앞 마당에는 천복사를 중건하면시 세웠던 중수비와 옛 가람배치를 새겨놓은 비석이 있으며 마당 양쪽에는 청나라 지은 정자건물이 양쪽에 세워져 있다. 화엄종 중심사찰이었던 오래 내력과 중요성에 비해 현재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대웅보전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 주불전인 대웅보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앞 마당에 세워진 비석들>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의 옛 가람배치를 새겨놓은 비석>

OLYMPUS DIGITAL CAMERA<동소정>

OLYMPUS DIGITAL CAMERA<동소정 뒷편 불전>

OLYMPUS DIGITAL CAMERA<서소정>

OLYMPUS DIGITAL CAMERA<서조정 뒷편 불전>

현재 천복사는 사찰로 운영되고 있지 않으며, 천복사 절터 유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일반 사찰과는 달리 대웅보전 내부에는 소안탑과 천복사의 역사를 보여주는 주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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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상,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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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상 머리,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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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황삼년조상탑,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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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인, 당>

OLYMPUS DIGITAL CAMERA<선각 보살그림 탁본,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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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면관음상 머리, 당>

OLYMPUS DIGITAL CAMERA<손을 새긴 벽돌, 당, 소안탑 부재>

OLYMPUS DIGITAL CAMERA<천복사 건축부재, 당>

OLYMPUS DIGITAL CAMERA<불상 좌대>

OLYMPUS DIGITAL CAMERA소안탑 북문에 있던 당대 선각그림

OLYMPUS DIGITAL CAMERA<불상 좌대,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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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각, 명, 천복사 출토>

대웅보전 뒷편에는 이곳에 당나라 장안에서 3번째로 큰 규모의 번경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전각인 장경루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주위로 승려들이 머물면서 수행했던 승방의 모습이 남아 있다. 장경루를 배경으로 소안탑의 웅장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뒷편 장경루>

OLYMPUS DIGITAL CAMERA<장경루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장경루 옆 작은 승방>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장경루>

소안탑(小雁塔)은 당나라 때 (707년) 처음 세워졌으며 천복사탑(薦福寺塔)이라 불렸는데 천복사가 화엄종 중심 사찰이었기 때문에 화엄탑(華嚴塔)으로도 불렸다. 명.청대 대자은사 대안탑과 비교되어 소안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벽돌로 쌓은 15층 전탑(塼塔)이었는데 여러차례 지진으로 손상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1965년 옛방식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나라 전탑(塼塔)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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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복사 소안탑>

OLYMPUS DIGITAL CAMERA<소안탑 앞에 세워진 중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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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모습>

소안탑 뒷편에는 후문에 해당하는 문루인 백의각(白衣閣)이 있으며, 시안 도심으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문이 있다. 현재 천복사는 정문인 남산문을 사용하지 않기때문에 서쪽 박물관이나 북쪽 출입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안탑 뒷편 백의각>

OLYMPUS DIGITAL CAMERA<백의각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백의각 뒷편에 세워진 중수비>

<출처>

  1. 안내문, 시안 천복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대자은사(大慈恩寺), 당나라 장안을 대표하는 사찰

중국 시안시에 있는 사찰인 대자은사(大慈恩寺)이다. 당고종이 어머니 문덕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되었다. 당고종 때(622년)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 등을 보관하기 위해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을 세웠으며, 이곳에서 신라 승려 원측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과 함께 많은 불경들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현장의 제자 규기(窺基)가 법통을 이어받으면서 법상종(法相宗) 중심 사찰이 되었다.

불교가 크게 번창했던 당나라 때 수도 장안에 있던 많은 사찰 중에서도 으뜸이 되었던 사찰로 대명궁에서 남쪽을 7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64.7 m에 이르는 거대한 대안탑과 함께 수도 장안의 랜드마크가 되었으며 당시 장안사람의 신앙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 통일신라 경주 황룡사, 일본 헤이안시대 쿄토 도지(東寺)와 비슷한 위상과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대자은사은 명나라 때 재건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사찰이라기 보다는 유적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대자은사>

대자은사는 크고 작은 자원(子院) 10개를 비롯하여 건물이 1,797칸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으나, 북송 때에는 대안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전각들은 파괴되었다. 이후 명나라 때 대안탑을 7층으로 수리하면서 현재와 비슷한 형태로 재건되었다. 현재의 가람배치는 대안탑을 중심으로 앞쪽으는 대웅보전을 비롯한 불전들이, 뒷편에는 현장법사를 기념하는 현장삼장원(玄奘三藏院)이 배치되어 있고 사찰 남북으로 큰 광장이, 동.서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입구에 세워진 현장법사 동상>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광장>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광장에서 본 대자은사>

대안탑 앞쪽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일반적인 사찰의 가람배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규모는 크지 않으며 고찰의 모습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정문을 들어서면 양쪽에 고루(鼓樓)와 종루(鐘樓)가, 마당 양쪽에서는 요사채에 해당하는 객당(客堂)과 운수당(雲水堂)을 볼 수 있다. 대안탑 앞에는 주불전은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보전이 있으며 서쪽에 선각당(先覺堂), 시현당(示現堂), 관음전(觀音殿)이, 동쪽에 가람전(伽藍殿), 감로당(甘露堂), 재신전(財神殿)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정문>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불전이 있는 영역>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마당 입구에 세워져 있는 종루와 고루>

OLYMPUS DIGITAL CAMERA<명.청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고루>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 운수당>

OLYMPUS DIGITAL CAMERA<동쪽편 객당>

주불전인 대웅보전은 벽돌로 지은 명.청대 건물 양식을 하고 있는데,목조 기둥이나 출입문, 지붕 등에서 전통 목조건축 양식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대웅보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대웅보전 서쪽에는 하나의 건물에 선각당, 시현당, 관음전이 있다. 선각당(先覺堂)은 조사당(祖師堂)에 해당하는 불전으로 대자은자 역대 주지들을 모셨다. 시현당(示現堂)은 팔상전(八相殿)에 해당하는 곳으로 석가모니 일생에서 중요한 8장면을 그린 그림을 보신 곳이다. 관음전을 포함하여 전통 사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불전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서쪽 불전들>

OLYMPUS DIGITAL CAMERA<선각당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시현당 내부 팔상도>

OLYMPUS DIGITAL CAMERA<관음전 내부>

대웅보전 동쪽에는 하나의 건물에 가람전(伽藍殿), 감로당(甘露堂), 재신전(財神殿)이 배치되어 있다. 가람전은 가람을 수호하는 토지신 성격의 보살을 보시고 있는 곳이다. 감로당은 부처님 말씀이자 신들의 음료인 감로수(甘露水)가 있는 사후세계 복을 비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사찰에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공간이다. 재신전은 중국에서 재신(財神)으로 숭상받는 삼국지 영웅 관우를 모신 곳으로 전(殿)으로 된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보전 동쪽 불전들>

OLYMPUS DIGITAL CAMERA<가람전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감로당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재신전 내부>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은  당고종 때(652년) 현장법사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비롯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5층으로 지어졌으나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무너진것을 수리하면서 10층으로 증축하였으며, 명나라 때 지진으로 손상된 것을 수리하면서 현재와 같이 7층으로 바뀌었다. 1959년에 현재의 모습을 수리되었다.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으며 7층에서 시안시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입구에서 본 대안탑>

OLYMPUS DIGITAL CAMERA<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대안탑 1층>

OLYMPUS DIGITAL CAMERA<내안탑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대안탑>

패엽경(Pattra-leaf scriptures) 은 고대 인도에서 종이대신 나뭇잎에 글씨를 적은 불경이다. 현장법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인도에서는 종이가 없었기 때문에 종이에 불경을 적었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패엽경이라 부른다. 중국 국보급 문화재로 이곳에는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패엽경(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7층에서내려다 보이는 북측 광장>

OLYMPUS DIGITAL CAMERA<동측 정원>

대안탑 뒷편에는 현장법사가 제자들과 함께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번역했던 번경원(飜經院) 등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그를 기리는 기념관 성격의 공간으로 현장삼장원(玄奘三藏院)이라 부른다. 대편각당(大遍觉堂)을 중심으로 서쪽 광명당(光名堂), 동쪽 반야당(般若堂)의 3원(院)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현장법사를 기념하는 벽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안탑 뒷편 현장삼장원>

OLYMPUS DIGITAL CAMERA<대편각당>

OLYMPUS DIGITAL CAMERA<대편각당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대편각당에서 본 대안탑>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반야당>

OLYMPUS DIGITAL CAMERA<반야당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반야당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광명당>

OLYMPUS DIGITAL CAMERA<광명당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서쪽 정원>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정원에 있는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정원>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북쪽 대로에서 본 대안탑>

<출처>

  1. 안내문, 시안 대자은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