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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삼청교와 우화각,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

전남 순천 조계산 송광사 삼청교와 우화각이다. 대웅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가는 돌다리로 송광사에서도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손꼽힌다. 삼청교는 잘다듬은 돌을 쌓아 홍예를 만든 돌다리로 조선후기 숙종 때 처음 만들어졌다. 규모가 웅장하거나 건축수법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사찰 앞을 흐르는 작은 개울과 전각인 임경당, 사자루와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삼청교 위에 있는 작은 통로 건물인 우화각이 있는데,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사찰을 출입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세운 것이다.

송광사는 고려중기 이후에 크게 번창한 사찰로 통일신라 사찰과는 달리 가람배치에 큰 의미를 두는 않고 주위 환경에 어울릴 수 있도록 여러 전각들을 배치하고 있다. 삼청교를 건너자면 바로 출입문인 천왕문이 있고, 그 안쪽에 주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불전과 요사채들이 배치되어 있다. 가람배치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수행을 중시하는 승보사찰 송광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승보사찰 송광사를 대표하는 풍경을 손꼽히는 사찰 앞을 흐르는 개천을 건너는 돌다리인 삼청교와 우화각.

OLYMPUS DIGITAL CAMERA삼청교와 우화각. 능허교라고도 불리는 삼청교는 잘다듬은 돌로 쌓아 홍예를 만든 돌다리로 그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주위 환경들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위에 세워진 우화각은 통로 역할을 하는 건물로 안쪽 천왕문과 함께 ‘丁’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가는 우화각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우화각 내부에 걸려 있는 현판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요사채 건물인 임경당. 개천쪽으로 돌출된 누마루를 두고 있다. 사찰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건물구조로 조선후기 고택에서 볼 수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창청교 위쪽에 있는 강당 건물인 사자루와 그 앞을 흐르는 개천

OLYMPUS DIGITAL CAMERA잘 다듬은 돌로 쌓은 축대와 배수구.

<출처>

  1.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순천 송광사 조계문, 첫번째 출입문

전남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송광사의 첫번째 출입문인 조계문이다. 일주문은 경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송광사는 강당 앞 개울 건너에 위치하고 있다. 2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 전형적인 일주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맞배지붕으로 화려한 다포계 공포가 지붕을 떠 받치고 있다. 청색 바탕에 화려한 금색으로 쓴 현판이 인상적이다. 현재의 건물은 19세기 초에 새로 지은 것인데, 사찰 일주문 중에서는 오래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조계문. 다포계 공포와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하고 있다. 양쪽에 담장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계문 현판. 푸른 바탕에 금색으로 글씨를 쓰고 있는데,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로쓰기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내부에는 가로쓰기로 “승보종찰조계총림”이라 적힌 현판을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현판 양식이다.

SANYO DIGITAL CAMERA개울 건너편에서 보이는 조계문.

송광사 조계문
조계문은 송광사의 첫 관문으로 일주문이라고도 부른다. 이 일주문은 신라말에 처음 세운 것을 1310년, 1464년, 1676년, 1802년에 고쳐 지었으며 현재의 조계문은 양식상 1802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계단 좌우에 세운 돌짐승은 그 형태가 모호하여 사자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것은 세속의 번뇌와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니 가능한 행동과 마음가짐을 경건히 해야 한다. (안내문,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49호), 고려시대에 지어진 목조건축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는 수덕사 대웅전(국보 49호)이다. 1937년 해체.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묵서에 따르면 1308년(고려 충렬왕 34)에 처음 지어졌다. 고려시대에 만든 건축물로 당시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수덕사는 충청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백제의 건축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4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지붕 위에만 공포를 올린 주심포 양식을 하고 있다.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을 사용하고 있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건물 앞면에는 빗살문을 달았으며, 뒷편에는 양쪽에 창을 설치하고 가운데에는 판문을 달았다. 건물 내부에는 봉정사 극락전처럼 전돌을 깔았었는데 지금은 마루로 바뀌었다.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을 사용하고 있다.

예산 수덕사(修德寺)는 덕숭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백제 때 처음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에 절터가 남아 있는 화엄십찰 중 한곳인 보원사가 고려중기까지는 지역의 중심 사찰이었는데, 고려말 큰 영향력이 있었던 나옹선사가 수덕사를 크게 중창하면서 지역의 중심 사찰로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불교에서도 조계종 내 큰 영향력이 있는 사찰로 주변 사찰들을 말사로 거느리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49호).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손꼽히는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3칸, 옆면 4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둥은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을 주고 있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앞쪽에는 빗살문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면에는 양쪽에 창문을 두고 있으며 가운데에는 판문이 있다. 벽면에는 원래 불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을 받치는 공포를 기둥 위에만 두고 있는 주심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고려시대 건축양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옆면에서 본 지붕을 받치는 공포. 맞배지붕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겹처마를 하고 있는 서까래.

SANYO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왼쪽편 앞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덕숭산 중턱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사찰을 세웠다. 경내에서 내려다 보이는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

수덕사 대웅전, 국보 49호, 고려시대, 충남 예산군 덕산문 사천리
백제시대 사찰인 수덕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로 백제 위덕왕 재위 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가.아미타.약사 삼존불을 모신 이 대웅전은 1937년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의 내용으로 보아 1308년 (충렬왕34)에 건립되었다. 건축은 고려시대에 유행한 주심포 양식이고, 정면3칸. 측면4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바른 돌쌓기 형식의 기단에 사각형의 자연석으로 기둥 놓을 자리를 북돋게 조각한 주춧돌을 놓았고, 그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각 칸에는 섬세한 빗살 3분 합문이 있고, 측면에는 맨 앞쪽에 출입문을 설치하였다. 뒷면에는 각 칸에 문을 장식하고 있지만 중앙 칸에만 문을 달았다. 외부에 노출된 가구는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며, 측면 맞배지붕의 선과 노출된 목부재의 구도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건축된 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난 점으로 한국 목조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안내문, 예산군청, 2012년)

<출처>

  1. 예산군청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4. 두산백과

순천 선암사 일주문, 조선후기에 세워진 출입문

전남 순천시 선암사 출입문인 일주문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사찰 일주문 중에서는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건물 앞면 1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다른 사찰 일주문과는 달리 양쪽에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상량문에 따르면 병자호란 이후에 다시 세워진 것이라 한다. 전체적으로 조선후기 건축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암사(仙巖寺, 사적 507호)는 조계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서쪽 기슭에 위치한 송광사와 쌍벽을 이루는 큰 사찰이다. 신라의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9세기말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선암사를 크게 중건하면서 큰 사찰로 자리잡았다. 지금도 태고종을 대표하는 중심사찰 역할을 하고 있다. 사찰내에는 삼층석탑(보물395호), 승선교(보물400호), 북승탑(보물1184호), 동승탑(보물1185호) 등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순천 선암사 일주문. 사찰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세우는 다른 사찰의 일주문과는 달리 주불전 가까운 곳에 세워져 있다. 일주문 옆에 담장이 있는 것도 특이하다.

OLYMPUS DIGITAL CAMERA1칸 규모의 출입문이지만 맞배지붕에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는 화려한 일주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조계산선암사”라고 적힌 현판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선암사 일주문

순천 선암사 일주문,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이 일주문은 누문(樓門)인 강선루를 지나 처음 들어서게 되는 문으로 1719년에 세워진 것이다. <조계문창건상량문>에 의하면 원래의 건물은 화재로 인해 없어지고 1540년에 다시 세웠으나 병자호란으로 피해를 당하였다가 1719년에 또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단층 맞배기와집으로 원형의 주춧돌 위에 배흘흘림기둥을 세웠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 3군의 공포를 배치해 놓은 다포식 건물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김천 직지사 대웅전(보물 1576호), 조선후기 불전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불전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주불전인 대웅전(보물 1576호)이다. 이 불전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조선후기 불전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물은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건물 내.외부에 많은 벽화와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내부에는 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여래가 모셔져 있다. 불상을 모시는 불단(보물 1859호), 후불탱화(보물 670호)와 함께 조선후기 불교건축과 문화를 잘 보여주는 불전이다.

직지사(直指寺)는 백두대간 황악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경북지방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삼국시대 때인 418년에 아도화상이 처음 창건했다고 전해지면 646년(선덕여왕 14)에 자창이 크게 중창하면서 큰 사찰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큰 역할을 했던 사명대사가 출가한 사찰이었기 때문에 조선후기 8대가람이자 지역을 대표하는 큰 사찰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직지사에 남아 있는 유물 또한 대부분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 보물 1576호,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김천 직지사 대웅전은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까지는 좌측의 계곡을 끼고 지형에 맞추어 휘어져 올라온 북쪽에 위치하며, 萬歲樓에서 대웅전에 이르기까지는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禪堂이 위치해 있으며, 대웅전 앞 뜰에는 2개의 삼층탑이 놓여 있는 2탑식 중정형 가람배치를 가진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 가구의 구성 및 부재의 표현기법은 조선후기의 건축적 특징이 잘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직후 재건된 불전들의 경향을 보이며, 아름답고 뛰어난 기법을 보여주는 내·외부 많은 벽화와 불단이 남아 있는 등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 문화재청>

20160203_141659-2016_02_03직지사 대웅전(보물 1576호). 이 사찰의 주불전으로 조선후기 사찰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직지사은 임진왜란 때 큰 역할을 했던 사명대사가 출가했던 곳으로 조선후기 전국 8대가람이자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잡고 있다.

20160203_112435-2016_02_03화강석으로 축대를 쌓고 건물을 올렸는데, 앞면 5칸 규모의 상당히 큰 규모의 불전이다.

20160204_122259-2016_02_04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한 공포.

20160204_122206-2016_02_04옆쪽에서 본 대웅전.

직지사 대웅전 수미단-2007_09_11대웅전 내부.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왼쪽에 약사여래, 오른쪽에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불상 뒷편 영산회상도, 약사회도, 극락회도로 구성된 3폭의 후불탱화(보물 670호)는 조선후기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불상을 받치고 있는 수미단(보물 1859호)는 고부조의 투각과 화려한 채색 등 조선후기 목공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20160204_121647-2016_02_04대웅전 앞 동.서삼층석탑(보물 606호).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고 문경시 도천사 절터에서 쓰러져 있던 것을 1970년대에 옮겨 놓은 것이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삼층석탑으로 통일신라 사찰 가람배치에서 보이는 쌍탑식 가람배치를 구현해 놓고 있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2.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