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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고분군(사적 404호), 영산강 이북 백제 토착세력 무덤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토착세력의 무덤이다. 이곳에는 4개의 큰 봉분이 남아 있으며 발굴.조사결과 32기의 다양한 무덤이 확인되었다. 무덤의 형태는 독무덤, 굴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으로 다양하며 4세기부터 7세기초까지 오랜 세월동안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제신발, 관모, 고리자루큰칼 등 높은 신분이었음을 알려주는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나주 복암리는 현 나주시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영산강 이북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확인된 무덤형태나 유물 등으로 볼 때 영산강 유역으로 진출한 백제세력이 토착세력을 점차 지배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 복암리 고분군(사적 404호). 현재 이곳에는 4기의 큰 봉분을 볼 수 있는 옹관묘부터 굴식돌방무덤까지 여러시대의 무덤이 하나의 봉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SANYO DIGITAL CAMERA복암리 1호분.

SANYO DIGITAL CAMERA복암리 2호분

SANYO DIGITAL CAMERA복암리 3호분. 옹관묘, 횡혈식석실묘, 석곽옹관묘 등 7종류의 묘제는 물론 금동신발과 은제관식.큰칼.금귀고리 등 다양하면서도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 799점이 출토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복암리 4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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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암리 출토 옹관묘

OLYMPUS DIGITAL CAMERA신, 금동, 삼국시대(백제) 6세기, 전남 나주 복암리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병,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전남 나주 복암리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뚜껑접시, 삼국시대(백제) 6세기, 전남 나주 복암리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고리자루칼, 금동.은, 삼국시대(백제) 6~7세기, 전남 나주 복암리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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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5호분 출토품, 6세기 중엽, 1. 은제 관꾸미개,

OLYMPUS DIGITAL CAMERA2. 은제 허리띠 꾸미개

나주 복암리 고분, 사적 404호,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고분은 삼국시대 이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높았던 지배층의 무덤을 말한다. 이곳에는 4기의 고분이 있다. 이 지역은 영산강의 본류를 낀 구릉지대로서 원래 3기 정도가 더 있었으나 경지정리를 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3호분에서는 영산강유역에서 확인되는 옹관묘, 횡혈식석실묘, 석곽옹관묘 등 7종류의 묘제는 물론 금동신발과 은제관식.큰칼.금귀고리 등 다양하면서도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유물 799점이 출토되었다. 이와같이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것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복암리 3호분은 옹관(토기 항아리관) 중에서 이른 시기(3세기)에 해당하는 옹관묘를 비롯하여 횡혈식석실분(굴식 돌방무덤) 중에는 7세기 전반끼지 내려오는 묘제가 한분구 안에서 확인되고 있어 3세기 후반부터 7세기 전반까지 400여년간 동일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집단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한분구 안에서 다양한 묘제가 확인되는 복합묘제고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이다. 이를 통해서 영산강유역에서 나타나는 다장과 대형분구의 성토방법.과정.각 묘제간의 관계, 옹관묘와 석실분의 변천과정.매장방법 및 부장유물, 일본과의 관계, 영산강유역 토착세력과 백제와의 관계 등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영산강유역 고대사 연구와 규명에 결정적 자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고분이다.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4. 안내문, 국립중앙박물관

나주 반남고분군(사적 513호), 영산강유역 백제 토착세력 무덤

전남 나주시 반남면 일대에 남아 있는 반남고분군(사적 513호)이다. 영산강 하류 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한 자미산성을 중심으로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등 비교적 넓은 지역에 40여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에는 다른지역에서는 없는 대형옹관을 비롯하여 금동관, 금동신발, 봉황문 고리자루칼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른 시기의 것은 땅을 파서 옹관을 안치한 후 봉분을 쌓았으나 후대에는 봉분을 쌓고 정상부에 옹관을 안치하였다. 옹관고분은 영산강 유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매장방식으로 지역토착세력에 의해 완성된 형식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중심으로 영산강유역 토착세력일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나주국립박물관에 세워졌다.

SANYO DIGITAL CAMERA자미산성에서 내려다 본 반남면 일대(신촌리, 덕산리). 반남고분군은 삼한시대 마한과 삼국시대 백제의 지역 토착세력의 무덤들이다. 비교적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평지에 옹관을 묻고 봉분을 조성한 형태이다. 현재까지 약 40여기의 고분이 확인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고분 분포도(안내문, 나주시청, 2009). 자미산성을 중심으로 동쪽 신촌리에 9기, 덕산리에 14기 이상, 서쪽 대안리에 12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 자미산성.

SANYO DIGITAL CAMERA나주 신촌리고분군과 덕산리고분군. 반남초등학교 주변 평지에 여러기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다. 신촌리 일대에는 9기가 분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9호분 등이 발굴되었으며 금동관(국보 295호)을 비롯하여 금동신발, 금반지, 고리자루칼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덕산리 일대에는 14기 이상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이들 고분들은 5세기 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종되고 있으며 삼국시대 백제 지방세력의 무덤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신촌리 1호분.

SANYO DIGITAL CAMERA신촌리 2호분, 3호분. 평지에 봉분을 크고 웅장하게 쌓은 것으로 봉분을 먼저 쌓고 그 윗부분에 옹관을 묻었다고 한다.

나주 반남 고분군 사적513호 21-20191011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보 295호). 일제강점기에 발굴.조사과정에서 신촌리 9호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지역토착세력이 제작한 것인지, 백제에서 지역세력에게 하사한 위세품인지는 알 수 없다.

SANYO DIGITAL CAMERA덕산리 1호분. 신촌리 1호분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지명에 따라서 분류하기는 했지만 동일한 고분군이라 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덕산리 2호분

SANYO DIGITAL CAMERA덕산리 3호분. 봉분의 규모가 상당히 큰 것으로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덕산리 4호분

SANYO DIGITAL CAMERA덕산리 5호분

SANYO DIGITAL CAMERA덕산리 6호분

 

SANYO DIGITAL CAMERA덕산리 1호분에서 남쪽으로 700 m 정도 떨어진 곳에 7~11호분이 위치하고 있다. 봉분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나주 덕산리 고분군, 전남 나주시 반남면 덕산리
고분은 삼국시대 이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높았던 지배층의 무덤을 말한다. 이곳 덕산리에 남아 있는 고분들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대의 무덤 가운데 일부가 1930년에 발굴.조사되었는데, 이 때 무덤의 형태와 성격이 밝혀졌다. 당시 발굴된 고분은 바깥 모습이 하나의 봉토를 이루고 있으면서 내부에는 3개의 옹관(토기 항아리 관)이 묻혀 있었다. 그리고 무덤 가에는 물이 흐를 수 있는 도랑이 있었다. 당시 출토된 장신구 등의 유물과 옹관묘는 일본 규수지방의 옹관묘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비교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자미산성 서북쪽에 위치한 대안리 1~3호분. 자미산성 서쪽편에 위치한 대안리 일대에는 12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안리 1, 2호분

SANYO DIGITAL CAMERA봉분의 규모가 큰 3호분

SANYO DIGITAL CAMERA자미산성 서쪽편 언덕 아래에는 4~9호분이 있는데 그 중 3기만 현재 봉분을 볼 수 있다. 그 중 9호분은 반남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반남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인 9분과 그 앞에 있는 작은 8호분. 9호분에서는 9기의 옹관과 함께 금반지, 큰칼, 구리팔찌, 유리구슬 등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대안리 7호분.  그 너머로 4~6호분이 있는데 봉분은 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나주 대안리 고분군, 전남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
고분은 삼국시대 이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높았던 지배층의 무덤을 말한다. 이곳의 고분군은 삼국시대의 것이다. 그 모습을 살펴보면 바닥이 둥근 원형고분과 사각형인 방대형고분으로 나뉜다. 방대형 고분인 9호분에는 간단한 도랑이 둘려져 있다. 이 고분들의 관을 들여다보면, 도기 항아리에 시신과 부장품을 넣어 묻는 무덤형식으로 영산강 유역의 고분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옹관묘이다. 옹관묘는 이 지역의 토착적인 묘제이다. 특이한 것은 원형 고분인 5호분을 발굴한 결과 현실(관을 안치하는 공간)의 4벽과 천상을 판석으로 짠 석실분이라는 것이다. 석실분은 이 지역에 대한 백제의 통합 지배체제가 강화되면서 백제 지배계층의 묘제가 일반화되어 나타난 것이라 여겨진다. 6호분은 인멸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시굴조사를 통해 정비하였다.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반남고분군
이곳 반남 고분군에는 대형옹관고분 수십 기가 분포하고 있다. 대형옹관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분구 속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항아리)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이 고분양식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구별되는 영산강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양식이다. 대형옹관고분은 AD 3세기부터 6세기까지 약 3세기동안 영산강유역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3세기경에는 옹관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으나 4세기 붕반부터는 지상식으로 발전하며 이때에는 분구의 규모가 훨씬 대형화되어 그 규모가 40~50 m에 이른다. 대형옹관고분은 나주 반남 일대는 물론 영암, 함평, 무안 등 영산강을 따라 형성되고 있으며, 이 지역 고대 세력의 묘제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 옹관고분의 밀집도로 보아 이곳 반남 지역이 고대 지배세력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형옹관고분의 출토유물은 영산강유역 계통의 유물이 주를 이루나 후기에는 백제계, 일본계의 유물이 섞이게 되며 가야계의 특징도 일부 보이고 있다. 당시 사회가 백제, 가야, 왜 등과 활발한 교류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영산강의 고대 수로 조건을 이용한 해상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5세기 말경에는 대형옹관고분이 쇠퇴하고 횡혈식석실분, 전방후원형고분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들 석실은 토착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 지역의 고대세력이 능동적으로 횡혈식석실분을 채용하면서 사회발전을 모색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사회는 6세기 중엽부터 백제의 지방관제에 본격적으로 편입하게 된다.

<출처>

  1. 안내문, 나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나주 자미산성, 삼한시대 마한 유력세력 근거지에 남아 있는 산성

전남 나주시 반남면 소재지에 있는 산성인 자미산성이다. 영산강 일대 나주평야 중심부에 있는 낮은 야산인 자미봉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둘레는 약 740 m이고 흙으로 다져 쌓은 토축식 산성을 후에 돌로 쌓아 보강하였다. 성안에는 건물터와 샘터, 3곳의 문터가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백제의 지방세력이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려,조선시대 기와조각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미산성을 중심으로 북쪽과 서쪽으로 영산강이 흐르고 있으며 주변에는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부근에 삼한과 백제의 무덤유적인 반남고분군(사적 513호)이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 지역 유력한 세력들의 근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나주 자미산성. 나주시 반남면 소재지에 위치한 나즈막한 야산에 쌓은 작은 산성이다. 낮은 나주평야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어 넓은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요지로 삼한시대부터 지역 유력세력의 근거지였다.

SANYO DIGITAL CAMERA반남면 소재지 마을에서 산성을 오르는 길 입구.

SANYO DIGITAL CAMERA자미산성 오르는 길.

SANYO DIGITAL CAMERA성벽과 성문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정상부 아래에 자미산성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표지석 옆 성벽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는 자리.

SANYO DIGITAL CAMERA흙을 다져서 토축을 쌓았던 삼국시대 백제의 축성방법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자미산성 정상부로 오르는 길. 주변지역을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자미산성에서 남서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모습. 반남면 소재지가 자리잡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자미산성 남쪽으로 보이는 월출산

SANYO DIGITAL CAMERA동남쪽으로는 보이는 모습. 멀리 장흥군과 화순군의 높은 봉우리들이 보인다. 그 사이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쪽으로 보이는 모습. 멀리 광주까지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그 아래 삼한시대 마한 유력세력의 무덤으로  고분들이 덕산리와 신촌리에 분포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삼한시대 무덤이 덕산리 고분군

SANYO DIGITAL CAMERA자미산성 북서쪽 방향, 아래쪽에 대안리 고분군이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자미산성 서쪽. 아래에는 대안리 고분군이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자미산성 정상부 표지석

나주 반남 자미산성, 전남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덕산리
이 성은 영산강 유역에 펼쳐진 나주평야의 중심지에 위치한 98 m(높이)의 소형산성으로 주변지역은 물론이고 멀리 무등산, 금성산, 월출산, 영산강이 한눈에 바라다 볼 수 있는 산성이다. 전체적인 평면형태는 마안형의 산등성이를 600 m 정도 흙으로 쌓고 돌로 보강한 테뫼식의 소형산성이며 통일신라기에 축조된 산성으로 판단되며, 일부 기와의 문양이나 제작기법으로 미루어서는 삼국시기까지 소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성의 부속시설로는 남.북문지와 건물지 6개소, 북문밖의 샘터 1개소가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대안리 고분군, 덕산리 고분군, 신촌리 고분군 등이 있어서 이 지역의 중심세력이 거처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나주시청)

<출처>

  1. 안내문, 나주시청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김제 벽골제(사적 111호), 삼국시대 수리시설 유적

전북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에 있는 벽골제(사적 111호)이다. 제천 의림지, 밀량 수산제와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용 저수지로 금산사가 모악산에서 흘러 내려온 원평천이 동진강과 만나 바다로 흘러드는 지점에서 약 7 km 정도 떨어진 넓은 평야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시대 초기 백제 비류왕 때(330)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통일신라 원성왕 때(790), 고려 현종과 인종 (1143)에 고쳐 쌓았으며, 조선 초 태종 때인 1415에 다시 쌓은 이후 무너져 사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 벽골제 유적지에는 약 3 km 정도의 제방과 수문 흔적 2곳이 남아 있다. 제방은 일제강점기에 농사에 필요한 수로를 만들때 고쳐 사용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삼국시대 초기에 제방을 쌓은 이래 여러차례 수리를 하기는 했지만 오랜 세월 사용해 왔던 유서깊은 곳으로 당시의 높은 토목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김제 벽골제(사적 111호).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 중 하나로 지금은 그 모습이 일부 바뀌기는 했지만 당시에 쌓은 토축의 일부가 잘 남아 있는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벽골제 안내문. 벽골제는 장생거가 있는 현위치 부근에서 남쪽 월승리 명승산까지 약 3.3 km에 이르는 큰 규모 제방을 쌓고 조성한 저수지였다. 장생거, 경장거를 비롯하여 5개의 수문이 있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벽골제 제방. 흙으로 쌓은 토축으로 높이 3.3 ~ 4.3 m이며 상단폭은 10 m 정도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제방을 절단하여 수로를 조성하면서 그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바깥쪽 제방을 쌓은 토축은 삼국시대에 조성한 것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5곳의 수문 중 남아 있는 수문 흔적인 장생거. 나머지 한곳 경장거는 이곳에서 남쪽으로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수문은 길이 5.5 m 돌기둥을 4.2 간격으로 세우고 돌기둥 안쪽에 홈을파서 목제 둑판을 넣어 수위를 조절하는 구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벽골제 수문 모형. 양쪽 제방 위에 올라 동시에 물레를 돌리면 수문이 열린다.

장생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벽골제에는 총 5개의 수문이 있었고, 수문의 명칭은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라고 한다. 그 중 현재 제방과 함께 남아 있는 수문은 두 개소로 단지 내 장생거와 단지 밖 벽골제 제방을 따라 남쪽으로 약 2 km에 위치한 경장거이다. 1980년데 수문 일부 복원 공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벽골제중수비 기록에 지방의 단면과 수문구조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둑의 아래 넓이는 70자요, 위의 넓이는 30자이며, 높이가 17자이고 수문은 마치 구롱처럼 바라 보였다. … 또 양쪽 석주심이 움푹 들어간 곳에는 느티나무 판을 가로 질러서, 내외로 고리와 쇠줄을 달아 나무판을 들어올리면 물이 흐르도록 하였으니, 수분의 넓이는 모두가 13자요, 돌기둥의 높이는 15자이며, 땅속으로 5자나 들어가 있다. .. 이것이 벽골제의 대략이니 때는 영락 13년(1415)이다. …” (안내문, 김제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벽골제 제방 윗부분. 너비 10 m 정도이다. 일제강점기에 반으로 잘라 수로를 조성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원래 모습을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벽골제 안쪽. 넓은 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수로가 조성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벽골제 안쪽 물을 가두어 두었던 저수지. 조선 초 세종 때 (1420년) 홍수로 무너진 후 복구하지 않고 농토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벽골제 북쪽 끝 부분. 서해로 흘러드는 원평천과 만나는 지점이다. 현재 사용하는 있는 수문이 보인다.

김제 벽골제 사적111호21-20150807
벽골제 중수비. 조선초 벽골제를 다시 쌓으면서 이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지금은 닳아서 그 내용을 알아볼 수 없다.

 

SANYO DIGITAL CAMERA벽골제 앞에 조성된 공원. 옛 수시시설 모형들을 설치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 평야지대 논에서 사용되는 관개시설인 무자위이다. 염전에서는 최근까지도 사용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공원 광장에 옮겨놓은  월촌입석.

월촌입석
입석은 마을의 입구에 세우져 재앙을 막아주는 수문신이자, 마을의 풍농과 평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섬겨진 큰돌 문화재이다. 입석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남녀편으로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자편이 이겨야 그해 풍년이 든다고 믿고 있다. 줄다리기가 여자편의 승리로 끝나면 사용한 동아줄을 입석에 감아두고 고을의 풍농과 안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올린다. 임석에 감아둔 동아줄에 손을 대면 동티가 난다 하여 다음 제사 때까지 1년 동안 손을 대지 않는다. 이 입석은 사각기둥형 자연석이며 높이는 210 cm, 폭 62 cm, 두께 40 cm이다.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매년 지평선축제 때 이곳 벽골제에서 입석줄다리기를 재현하고 있다. (안내문, 김제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공원에서 볼 수 있는 ‘아리랑 문학비’

김제 벽골제, 사적 111호,
김제를 옛 마한시대에는 벽비리국, 백제시대에는 벽골군으로 불렀다. 이는 벼의 골이라는 뜻으로 도향의 이름이다. 이러한 지명의 연유로 벽골제는 우리 고어로 벼골의 둑이 한자로써 벽골제라 표기된 것에 기한한 듯 하다. 국내 최고최대의 저수지인 벽골제는 금만평야를 비롯하여 정읍시, 부안군 등 1만 ha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였다. 제방의 길이는 3.3 km, 둑의 높이는 5.7 m, 상단폭 10 m, 하단폭 21 m에 이르렀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등 관련문헌에 따르면 백제 비류왕 27년(330)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통일신라 원성왕 6년(790), 고려 현종 (1010 ~ 1031년), 고려 인종 21년(1143), 조선 태종 15년(1415) 등 4차례에 걸쳐 개축하였으나 조선 세종 2년(1420) 홍수로 무너졌다. 그후, 일제강점기인 1925년 동진수리조합에서 둑의 가운데를 파서 농지관개용 간선수로를 설치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천의 의림지, 밀양의 수산제와 더불어 3대 저수지였던 벽골제는 1963년 사적 111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기에 이르렀고, 1991년부터 벽골제개발사업이 착수되어 2만여평의 부지에 벽골제 농경문화박물관, 단야각, 단야루, 테마연못, 되배미 등을 조성하였고, 수문은 5개 중 현재는 장생거와 경장거 두 곳의 수문 석주가 남아 있다. (안내문, 김제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김제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제천 청풍 망월산성, 삼국시대 남한강변에 쌓은 산성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망월산성이다. 망월산(해발 373 m) 정상부를 돌로 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495 m이다.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신라와 고구려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시기에 쌓은 산성 중 하나이다. 성벽은 대부분 옛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한 것이지만 서남쪽에는 원래 쌓았던 석축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성벽을 쌓은 양식이나 형태가 보은 삼년산성과 비슷하며, 신라가 쌓은 산성으로 보인다.

망월산성은 죽령 고갯길 아래에 위치한 단양과 중요 거점이었던 충주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남한강이 돌아 흐르는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청풍호가 망월산성을 감싸고 있다. 망월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남북으로 흐르는 남한강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오고가는 배들과 주변지역을 감시하기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가 쌓은 여주 파사산성, 충주 장미산성, 단양 적성산성과 온달산성과 비슷한 성격의 산성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청풍 망월산성. 남한강 내륙수운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다.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망월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풍 문화재단지에서 망월산성으로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산성 성문 아래에서 보이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성문은 원래 모습은 아닌듯하고 출입이 편리하도록 계단을 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은 중간 크기의 돌을 다듬어 촘촘히 쌓았다. 남서쪽에 남아 있는 성벽을 참조하여 복원한 것으로 보이는데 신라가 쌓은 대표적인 산성인 보은 삼년산성과 비슷한 양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은 폭이 상당히 넓은 편이며, 조선시대 산성과는 달리 여장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위에는 방어를 위해 목책을 쌓아두는 전통적인 산성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산성 안 망월산 정상부에 있는 작은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의 높이는 높은 곳이 4 m 정도이며, 경사진 지형과 성벽이 더해져 공략하기 쉽지않은 요새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망월산 정상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성 내부. 약간의 평지가 있지만 공간은 넓지 않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망월산성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하류방향), 아래에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상류 방향. 아래쪽에 청풍문화재단지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풍문화재단지에서 보이는 망월산성.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북쪽에서 보이는 망월산성

청풍 망월산성,
이 산성은 옛 청풍소재지의 동남쪽에 위치한 망월산의 정상부를 둘러싼 작은 규모의 석축산성이다. 둘레는 500 m이며,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약 4 m이다. 청풍문화재 단지에 인접되어 있으며, 본래는 남한강이 돌아 흐르고 있었으나, 지금은 청풍호가 감싸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청풍은 삼국시대 사열이현이며,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사열이산성을 늘려 쌓았다고 하였으나 이와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성황산과 <충청도읍지>의 태산이 군의 동쪽 3리에 있다고 하여 이 산성임을 짐작케 할 뿐이다. 최근에 성벽을 보수하고 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