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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청풍 망월산성, 삼국시대 남한강변에 쌓은 산성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망월산성이다. 망월산(해발 373 m) 정상부를 돌로 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495 m이다.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해 신라와 고구려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시기에 쌓은 산성 중 하나이다. 성벽은 대부분 옛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한 것이지만 서남쪽에는 원래 쌓았던 석축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성벽을 쌓은 양식이나 형태가 보은 삼년산성과 비슷하며, 신라가 쌓은 산성으로 보인다.

망월산성은 죽령 고갯길 아래에 위치한 단양과 중요 거점이었던 충주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남한강이 돌아 흐르는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청풍호가 망월산성을 감싸고 있다. 망월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남북으로 흐르는 남한강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오고가는 배들과 주변지역을 감시하기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가 쌓은 여주 파사산성, 충주 장미산성, 단양 적성산성과 온달산성과 비슷한 성격의 산성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청풍 망월산성. 남한강 내륙수운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다.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망월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풍 문화재단지에서 망월산성으로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산성 성문 아래에서 보이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성문은 원래 모습은 아닌듯하고 출입이 편리하도록 계단을 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은 중간 크기의 돌을 다듬어 촘촘히 쌓았다. 남서쪽에 남아 있는 성벽을 참조하여 복원한 것으로 보이는데 신라가 쌓은 대표적인 산성인 보은 삼년산성과 비슷한 양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은 폭이 상당히 넓은 편이며, 조선시대 산성과는 달리 여장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위에는 방어를 위해 목책을 쌓아두는 전통적인 산성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산성 안 망월산 정상부에 있는 작은 정자.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의 높이는 높은 곳이 4 m 정도이며, 경사진 지형과 성벽이 더해져 공략하기 쉽지않은 요새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망월산 정상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성 내부. 약간의 평지가 있지만 공간은 넓지 않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망월산성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하류방향), 아래에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상류 방향. 아래쪽에 청풍문화재단지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풍문화재단지에서 보이는 망월산성.

OLYMPUS DIGITAL CAMERA남한강 북쪽에서 보이는 망월산성

청풍 망월산성,
이 산성은 옛 청풍소재지의 동남쪽에 위치한 망월산의 정상부를 둘러싼 작은 규모의 석축산성이다. 둘레는 500 m이며,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약 4 m이다. 청풍문화재 단지에 인접되어 있으며, 본래는 남한강이 돌아 흐르고 있었으나, 지금은 청풍호가 감싸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청풍은 삼국시대 사열이현이며,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사열이산성을 늘려 쌓았다고 하였으나 이와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성황산과 <충청도읍지>의 태산이 군의 동쪽 3리에 있다고 하여 이 산성임을 짐작케 할 뿐이다. 최근에 성벽을 보수하고 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 326호),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 무덤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옥전 고분군(사적 326호)이다. 낙동강 지류인 황강변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힜는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총 1,000여기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중 합천박물관 뒷편 언덕에 봉분의 형태를 갖춘 18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이 곳은 고령군과 합천군의 경계와 가꾸우며 낙동강과 황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약 7 km 정도 떨어져 있다. 대가야 중심지였던 지산동 고분군이 있는 고령군과 함께 대가야를 주요 세력이 터를 잡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들은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굴식 돌방무덤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가야의 철기문화를 대표하는 철갑옷, 투구, 장신구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말안장 뒤에 깃발을 꽂는 기꽂이, 고구려 투구를 연상시키는 투구와 철제 말투구 등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신라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로마 유리잔이 이곳에서도 출토되어 신라와의 교류관계도 같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자를 무덤으로 보이는 M2호분에서는 화려한 장신구들이 출토되어 발달된 가야의 금속 세공기술을 보여주기도 한다.

SANYO DIGITAL CAMERA합천 옥전고분군(사적 326호).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 무덤으로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서 멀지 않은 낮은 구릉에 위치학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출토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합천박물관에서 27기의 큰 무덤이 남아 있는 구릉으로 오르는 길.

SANYO DIGITAL CAMERA입구 주변에 있는 무덤들. 고령 대가야 지산동 고분군이나 다른 지역 가야 고분에 비해 봉분의 크기는 작은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구릉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황강 주변으로 비교적 넓은 농지가 있으며, 낙동강이 가까워 내륙수운을 이용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고분군 중 위쪽에 있는 M1호분과, M2호분. M1호분에서는 무기류 등이 많이 출토되어 남자가, M2호분에서는 장신구 등이 많이 출토되어 여자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M1호분. 이곳에는 각종 철제무기를 비롯하여 로마에서 만들어진 유리잔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서 출토된 로마제 유리잔. 경주 고분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출토되었다. 신라와의 교류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옥전고분군 M1호분
봉분의 지름은 동서 19.5 m, 남북 21.4 m로 평면상 타원형을 이룬 반지하식의 덧널무덤으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그 가운데에 격벽을 만들어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구분하였다. 주위에는 3기의 순장곽이 축조되어 있는데 고령 지산동고분의 순장곽은 호석안에 포함되어 있음에 비해 이곳에서는 호석의 바깥에 연하여 축조된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제3차 조사(1989. 5. 8 ~ 1989. 7. 2)때까지도 전혀 도굴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처녀분이었으나 1991년 봄 안타깝게도 대규모의 도굴피해를 입었다. 유물은 각종 토기를 비롯하여 무구류와 말갖춤, 금동장허리띠 등이 발견되었으며, 특히 여기서 발견된 로만글라스는 경주의 신라고분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출토예로는 유일한 것으로 신라와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옆에 있는 봉분의 크기가 비교적 작은 M2호분, 금제귀걸이, 팔찌 등 다양한 장신구들이 출토되었으며, 고분속에 남아 있는 인골도 여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서 출토된 목걸이. 이곳에서는 2,000여 개가 넘는 구슬과 구슬을 만들었던 옥마저석이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뛰어난 금세공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금귀걸이

OLYMPUS DIGITAL CAMERA금팔찌

옥전고분군 M2호분
봉분의 지름이 동서 13.4 m, 남북 14.5 m의 타원형을 이루는 반지하식 덧널무덤이다. 유물은 금제귀걸이와 팔찌, 구슬목걸이 등 장신구, 말띠드리개, 발걸이, 안교 등의 말갖춤과 각종 토기가 부장되었다. M1호분과 M2호분은 출토유물을 통해 거의 같은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M1호분에서는 무구와 마구가 주로 부장되고 장신구류는 전혀 없는 데 비해 M2호분에서는 반대로 무구는 한 점도 없고 대신 마구와 다양한 장신구류만 발견되었으며, 고분 속에 남아 있었던 인골 감정 결과 여성의 뼈였으므로 M1호분은 남성, M2호분은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M3호분. 이곳에서는 최고 지배자의 상징인 용봉무늬와 봉황무늬, 용무늬가 새겨진 고리자루칼 4자루가 출토되었다. 말을 탈 때 깃발을 꽂았던 기꽂이도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용.봉황장식 고리자루칼, 김해박물관, 칼 손잡이 끝에 달린 둥근 고리 안에 용이나 봉황이 장신된 것으로 가야 무덤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에서 나온다.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여 장식대도라고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말안장의 뒤쪽에 붙여 기를 꽂는 것이다. 무사의 위엄과 화려함을 더해주며, 고구려의 무덤벽화에서도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M4호분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크고 작은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M11호분.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으로  M23호분을 비롯하여 여러 고분들이 모여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작은 크기의 무덤.

SANYO DIGITAL CAMERA옥전고분군에 있는 무덤 중 제일 아래쪽에 있는 무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말투구, 중앙박물관,  말투구는 복천동 고분군과 일본에서 발견되었으며, 이곳에서는 5점이 출토되었다.

옥전고분군, 사적 326호,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이 유적은 황강변 야산의 정상부에 위치하며 유구는 고총고분 27기를 포함하여 고분의 총 수는 약 1,000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유적은 1985년 겨울부터 1992년 봄까지 5차에 걸쳐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고분은 모두 146기인데, 유물은 토기를 비롯하여 철제의 갑옷과 투구, 각종 무기, 말갖춤, 귀걸이와 목걸이 등 무려 2,500여 점이 출토되었다. 이 고분군의 주인공은 『양직공도』와 「일본서기」에 전하는 다라국의 지배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고분 연구를 통해 다라국 또는 가야사 전반에 대한 재구성이 어느 정도 가능하며, 출토자료의 대부분이 일본의 중기고분에서 출토되는 것과 유사하여 향후 한일고분문화의 비교연구와 이를 토대로 한 한일고대사의 재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4. 중앙박물관, 2014년
  5. 김해박물관, 2012년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33호), 비화가야 점령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에 있는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33호)이다. 신라가 창녕지역을 편입한 이후 진흥왕이 이 곳을 다녀간 후 세운 기념비이다. 비석은 자연석 앞면에 비문을 새겨두고 있다. 앞부분은 닳아서 잃을 수 없지만 뒷부분은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비문의 내용은 다른 순수비처럼 이 지역을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한 사실, 통치이념 등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후반부에는 수행하던 신하의 명단이 나열되어 있어 당시의 행정조직, 신분제 및 사회조직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비문 내용중에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제목이 보이지 않아 단양 적성비와 함께 척경비로 일컫고 있으나, 비분의 내용과 성격 등을 고려해 볼 때 북한산, 마운령, 황초령의 순수비와 동일한 성격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이 척경비를 세운 시기는 대가야를 멸망시키기 1년 전으로 대가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창녕 도심 만옥정공원에 있는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33호). 신라 진흥왕이 비화가야를 영토에 편입시킨후 이 지역을 다녀간 후 기념으로 남긴 비석이다. 원래 화왕산성 아래 산기슭에 있던 비석을 발견한 후 이곳으로 옮겼다.

SANYO DIGITAL CAMERA비석은 높이 1.8 m 정도의 큰 돌에 글자를 새겼는데 마멸이 심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글자를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

SANYO DIGITAL CAMERA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부분. 진흥왕을 수행했던 인물들의 관직과 이름 등이 남아 있어 당시의 행정조직 등을 밝혀주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뒷면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다.

SANYO DIGITAL CAMERA비석이 있는 창녕 만옥정공원. 화왕산 등산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심공원으로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33호)를 비롯하여 통일신라 때 만든 삼층석탑, 창녕객사, 창녕 척화비 등 문화재가 공원내에 있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국보 33호,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동
이 비는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540~576, 재위)이 세운 기념비이다. 흔히 순수비로 통칭되나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 있는 순수비처럼 순수관경이란 말이 없고 다만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했으므로 따로 척경비라 일컫는다. 단양 적성의 진흥왕비와 비의 성격이나 형태가 거의 비슷하다. 비문 첫머리의 “신사년 2월1일 입”은 진흥왕 22년(561)으로 추정되어 기존 3개의 순수비보다 수년 앞서 건립했음을 알 수 있다. 매끄러운 화강암의 자연판석을 약간 다듬어 비문을 새겼으며 개석이 없고 인명과 관등의 표기 방식이 독특하며 고졸한 해서체 등을 지녀 신라 비석 중 가장 오랜 형식을 보여준다. 전문 642자 가운데 400자 정도가 판독되었다. 앞 부분은 마멸이 심하고, 뒷 부분은 관련인사가 나열되어 있다. 모두 27행인데 대개 한 줄에 26자씩 적었고 끝 줄은 3자이다. 돌의 크기는 높이 178 cm, 폭 175 cm, 두께 약 30 cm이다. 본래 화왕산 기슭에 있었던 것을 1914년 발견하였고, 192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창녕 송현동 고분군(사적 514호), 삼국시대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에 있는 송현동 고분군(사적 514호)이다. 창녕읍에서 화왕산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삼국시대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들이다. 아래쪽에 있는 교동고분군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무덤의 성격은 거의 비슷하여 지금은 2개의 고분군이 통합되어 사적5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도굴에 가까운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보고서는 남아 있지 않으며 발굴된 유물들은 일본으로 반출되어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사이에는 농경지로 바뀐 곳이 많아 두 지역이 분리된 것 처럼 보인다.

창녕지방에 자리잡았던 비화가야는 가야연맹체 중에서 특이하게 낙동강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던 세력이다. 가야연맹체의 일원이라기 보다는 신라와 관계가 깊었던 세력으로 여겨지며, 신라의 영향을 받은 각배, 철제무기류 등이 많이 출토된다. 주요 유적지로는 창녕 교동 고분군, 계성동 고분군 등이 있다. 신라 진흥왕이 561년에 이곳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워놓았다.

SANYO DIGITAL CAMERA창녕 송현동 고분군. 교동교분군 남쪽 화왕산 입구에 큰 규모의 봉분들이 들어서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이 고분군은 교동교분군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농경지 등으로 훼손되어 지금은 봉분 형태가 남아 있는 큰 무덤들만 17기 정도 확인되고 있다. 봉분 주위에 호석으로 둘러져 있는 무덤과 그렇지 않은 무덤들이 섞여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송현동 고분군 입구.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봉분이 큰 무덤.

SANYO DIGITAL CAMERA2호 무덤. 호석이 둘러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3호무덤

SANYO DIGITAL CAMERA4호무덤

SANYO DIGITAL CAMERA호석이 없는 5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뒷쪽편에 있는 무덤.

SANYO DIGITAL CAMERA2개의 무덤이 있어 쌍분처럼 보이는 안쪽에 있는 무덤. 아래쪽에는 농경지로 바뀌었다.

SANYO DIGITAL CAMERA송현동 고분군과 교동고분군 사이에도 무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농경지로 바뀌면서 훼손되어 확인할 수 없다.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교동교분군.

SANYO DIGITAL CAMERA교동고분군에서 보이는 송현동고분군.

창녕 송현동고분군, 경남 창녕군 송현리
창녕박물관 남쪽에서 목마산 쪽으로 무리지어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이다. 원래 80여 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17기 정도의 봉토분이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일제시대에 89.91호분이 발굴되어 엄청난 양의 유물이 반출되었고, 2000년 2월부터 6월까지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현황파악을 위한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일제시대의 정식 발굴보고서가 나오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축조시기, 무덤형식, 부장유물 등에서 북쪽에 인접한 교동고분군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지름 20 m정도의 대형무덤(1~7호분, 15호분)은 구릉의 높은 줄기를 따라 배치되었고, 소형무덤(8,9,11~14호분)은 합쳐져 표주박 모양으로 보이고 있다. 교동고분군과 마찬가지로 비화가야의 왕릉과 지배층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일제의 파괴, 그리고 후대의 경작과 도굴로 인한 피해가 극심하다.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000
  2. 안내문, 창녕박물관, 2010년

창녕 교동고분군(사적 514호), 삼국시대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에 있는 교동고분군(사적 514호)이다. 창녕에서 밀양으로 가는 20번 국도 옆에 있는 5~6세기 경 비화가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창녕도심에서 화왕산 북쪽 고갯길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편의상 국도를 기준을 서쪽을 A군, 동쪽을 B군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특별한 차이는 없으며 인근 송현리고분군과도 큰 차이가 없어 두 고분군이 통합되어 사적514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로 동쪽 높은 곳에 위치한 봉분들은 둘레에 호석을 쌓아 놓은 것이 많고 아래쪽 무덤들에는 호석이 거의 없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도굴에 가까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창녕지방에 자리잡았던 비화가야는 가야연맹체 중에서 특이하게 낙동강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던 세력이다. 가야연맹체의 일원이라기 보다는 신라와 관계가 깊었던 세력으로 여겨지며, 신라의 영향을 받은 각배, 철제무기류 등이 많이 출토된다. 주요 유적지로는 창녕 교동 고분군, 계성동 고분군 등이 있다. 신라 진흥왕이 561년에 이곳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워놓았다.

SANYO DIGITAL CAMERA창녕 교동고분군 A지구.  도로 서쪽에 있는 70여기의 무덤들로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의 크기는 다양하며 봉분 주위에 호석을 두르지 않았다.

SANYO DIGITAL CAMERAA지구 입구. 도로 바로 옆에 있다. 입구 주위에는 작은 봉분들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A지구에 있는 가장 큰 무덤

SANYO DIGITAL CAMERA남쪽편에 나린히 있는 비슷한 크기의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A지구에 있는 무덤 중 석실내부을 볼 수 있도록 한 무덤이다. 원래 내부를 공개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입구를 막아 놓았다.

SANYO DIGITAL CAMERA도로 옆에 있는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A지구 안쪽에 있는 무덤

SANYO DIGITAL CAMERA작은 크기의 무덤들.

SANYO DIGITAL CAMERAA지남 남쪽편 발굴.조사 작업이 진행중인 곳.

SANYO DIGITAL CAMERA동쪽편에 있는 B지구. 윗쪽에는 봉분둘레에 호석이 있는 무덤들이 있으며 아래쪽 무덤들은 호석이 없다.

SANYO DIGITAL CAMERAB지구 입구.

SANYO DIGITAL CAMERAB지구 아래쪽에 있는 무덤 중 봉분의 크기가 가장 큰 무덤.

SANYO DIGITAL CAMERAB지구 아래쪽에 있는 무덤들. 봉분의 크기는 비교적 큰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B지구 아래쪽에 있는 무덤중 둘레에 낮은 호석이 있는 무덤.

SANYO DIGITAL CAMERAB지구 위쪽으로 올라가면 봉분을 호석으로 둘러싸고 있는 무덤을 볼 수 있다. 호석으로 둘러진 고분은 신라 왕릉에서 볼 수 있는데, 신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B지구 위쪽에 있는 무덤들. 주위에 호석으로 둘러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B지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무덤.

SANYO DIGITAL CAMERA위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교동고분군과 창녕읍 도심 풍경. 비교적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가야 고분군에서 볼 수 있는 전망이 확 트인 풍경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식, 창녕 교동, 김해박물관. 관식을 관의 앞에 기우는 장신구로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졌으며, 주로 새 깃털이나 나비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관식은 관모와 함께 착용자의 신분을 과시하는 대표적인 위세품이다. 신라 경주에 출토된 유물들과 비슷하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식, 창녕 교동

OLYMPUS DIGITAL CAMERA은허리띠, 창녕교동, 김해박물관, 허리띠 장식은 천이나 가죽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장식품을 붙여 만들었다. 변진한에서는 호랑이나 말모양의 띠고리가, 삼국에서는 화려하고 복잡한 무늬를 장식한 것이 유행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은허리띠. 창녕 교동, 김해박물관, 신라 고분에서 금관과 함께 출토된 허리띠와 비슷한 형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금귀걸이, 창녕 교동,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뿔잔, 창녕교동, 김해박물관. 각배로도 불리는 유물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로부터 전해진 문화이다. 신라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 비화가야가 가야연맹체보다는 신라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뿔모양잔(각배)
뿔잔은 문자 그대로 소나 코뿔소 등 짐승의 뿔을 잘라 술과 같은 음료를 마시던 습관에서 유래된 것으로 점차 토기나 금속, 상아, 옥 등으로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처음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2,000년경 이란에서부터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4대왕인 석탈해가 아직 왕위에 오르지 않았을 때 토함산에서 내려오면서 심부름꾼을 시켜 마실물을 떠오게 하였는데 심부름꾼이 몰래 먼저 물을 마시자 뿔잔이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이를 꾸짖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까지 출토지가 알려진 뿔잔은 그리 많지 않지만 대체로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김해, 부산, 창녕, 달성 등에서 출토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청동합, 창녕 교동, 김해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자루솥, 창녕 교동, 김해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환두대도, 관모, 모형철기, 물미. 창녕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말안장, 창녕 교동, 김해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종형행엽, 교동11호분,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금동말띠꾸미개, 재갈,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금동말띠꾸미개,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재갈, 띠고리,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청동말종방울, 청동방울,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자귀, 낫,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장경호,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인화문병, 유개합, 창녕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그릇받침, 창녕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바라, 굽다리접시, 김해박물관

창녕 교동고분군,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창녕읍 북쪽 교동의 창녕박물관 일대에 무리지어 있는 가야시대의 고분군이다. 창녕에서 밀양으로 가는 24번 국도에 의해 동서의 2군으로 나누어져 있다. 서쪽의 70여 기를 A군으로, 동쪽 80여기를 B군으로, B군의 남쪽 송현동 고분군을 C군으로 나누기도 한다. 일제시대에 송현동 고분군의 일부와 함께 10여기정도가 발굴되었는데, 출토유물이 마차 20대와 화차 2량에 싣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한다. 1992년 2월부터 6월까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B군의 1~5호분을 발굴조사 했다. 도굴의 피해가 심해 만족스런 성과는 아니었으나, 교동고분군의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일제시대에 밝혀진 약간의 내용과 아울러 확인된 고분군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첫째, 고분의 돌방은 세 벽을 쌓고 한 쪽 짧은 벽을 입구로 매장했던 앞트기식돌방 무덤이 대부분이다. 둘째, 봉토 언저리에 호석이 돌아가는 것이 많고, 호석 밖으로 나무기둥을 세워 봉토를 방사선식으로 구분하여 다졌다. 셋째, 5~6세기경에 축조된 무덤이 고분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넷째, A군 최대의 7호분은 5세기 중엽 경으로 생각되는데, 출자형 금동관.은제띠고리.청동그릇 등이 출토되어 신라적 색채를 나타내고 있다. 가야세력이 신라에 편입되어 가는 모습을 짐작케 한다. 다섯째, A군 11호분에서는 금으로 글을 새긴 고리자루큰칼이 출토되었다. 신라를 통한 고구려와의 교류를 짐작케 하는 내용으로 해석되고 있다. 교동고분군은 비화가야 왕들을 묘역으로, 비화(比火)는 ‘빛들-빛이 좋은 들’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000
  2. 안내문, 창녕박물관, 2010년
  3.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