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삼한

[공주박물관 선사고대문화실] 마한과 한성백제기 충남지역

삼한(三韓)은 서쪽 마한에 54국, 동쪽 진한에 12국, 동남쪽 변한에 12국이 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고 중국 역사서에 남아 있다. 그 중 마한(馬韓)은 호서, 호남 지방에 존재한 연맹체로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 중반까지 존재하였다. 마한은 54개의 작은 성읍국가들의 연맹체로 그 중 천안지방에 근거를 둔 목지국이 중심이 되었다.  지금도 교통의 중심지인 천안삼거리 인근에 위치한 천안 청당동에서는 무덤도랑을 지닌 묘제, 동물형상의 허리띠고리, 한반도를 대표하는 무기인 고리자루칼을 비롯한 철제무기, 공구 등이 출토되었다. 마한의 집터들은 에서는 발전된 토기제작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들과 유리구슬을 제작했던 거푸집 등이 출토되어 촌락에서 다양한 생산활동을 했음을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마한지역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무덤주인의 권위를 나타내는 칼을 비롯한 무기류, 생활용품에 해당하는 각종 토기들이 부장품으로 묻혔다. 중국과의 교류가 많았던 지역답게 중국의 영향을 받은 토기 제작기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마한의 무덤
기원 전후부터 300년경까지는 백제.신라.고구려가 소국을 통합해가던 시기이다. 그러나 충남지역에는 독자적인 마한(3~4세기)의 문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마한에서는 시신을 묻을 때 나무널과 나무덧널을 이용하였다. 무덤 주위에 ‘ㄷ’ 또는 ‘ㅁ’자 모양의 도량을 돌린 주구묘를 만들었다. 이러한 무덤 형태는 충청도의 내륙과 중서부지역에 주로 분포항였지만, 최근에는 경기도 남부와 전남지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무덤에는 각종 철기와 함께 둥근바닥 항아리.깊은바리.두귀단지.겹입단지.새모양토기.톱니무늬 토기 등 지역색이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적인 토기가 주로 껴묻혔다. 이 시기에는 철기의 제작이 보편화되고, 중국 전국계와 낙랑의 새로운 토기제작기술이 도입되었다. 모양을 만들기 위한 물레와 토기의 겉면을 다듬기 위한 두드림법이 사용되었으며, 소성온도를 높일 수 있는 밀폐된 가마의 도입으로 단단한 회색계열의 토기가 만들어졌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표주박모양 토기, 공주 하봉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네귀달린 단지, 공주 남산리 출토,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겹아가리단지, 두귀달린 단지, 공주 남산리 출토,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잔, 천안 두정동,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둥근바닥항아리, 공주 하봉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연기 용호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고사리모양장식검(연기 용호리), 둥근고리 자루칼(연기 응암리), 마한. 한반도지역 고유의 고리자루칼이다. 장식이 거의 없는 초기 고리자루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쇠도끼(공주 남산리. 천안 용원리. 공주 분강.저석리), 쇠투겁창(천안 용원리, 공주 분강.저석리), 둥근고리자루칼(천안 청당동),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덩이쇠, 공주 남산리.대전 구성동,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쇠낫, 천안 용원리, 마한

마한의 집터,
마한의 집터들은 구릉지대에 위치하며, 방형의 집터 안쪽 네 모서리에 각각 1개씩의 기둥을 세운 형태이다. 한성백제 지역에서 확인되는 ‘凸’ 또는 ‘呂’자형 집터와는 다른 또렷한 지역적 특징을 보여준다. 집터에서는 계란모양토기.시루.깊은바리 등 취사와 관련된 일상생활용기를 비롯하여 사발 등의 식기와 아궁이테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마한문화를 대표하는 두드림무늬토기는 정선된 점토띠로 그릇모양을 만들고, 그릇 안쪽에 받치모루를 대고 토기 겉면을 두드리며 단단하게 한 뒤, 물레로 형태를 다듬과 바닥을 마무리한 토기이다. 이러한 작업과정은 바탕흙이 굳기 전에 진행해아 하므로 숙련된 동작이 필수적이다. 그릇의 표준화에 따른 대량생산, 밀폐된 가마로 높은 온도에서 단단하게 구워져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된 점 등은 토기 제작기술이 이전보다 훨씬 발전된 결과라고 할 수있다. 또한 집터에서 출토된 유리구슬 제작과 관련된 거푸집은 집터 안에서 다양한 생산활동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받침모루, 아산 갈매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목걸이, 천안 용원리.연기 응암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유리구슬 거푸집, 아산 갈매리, 연기 응암리

거푸집은 광물을 녹여 만든 금속이나 유리 등의 액체를 제품으로 만들기 위한 모형이나 틀이다. 유리는 석영.탄산소다.석회암 등을 섞어 높은 온도에서 녹인 후 급히 얼리면 생기는 투명한 물질이다. 유리구슬을 만드는 방법은 유리를 가열하여 말랑해지면 막대에 감아 대롱모양으로 만든 다음 기위로 자르거나, 거푸집으로 작은 구슬을 한꺼번에 만드는 방법 등이 있다. 전시품은 둥근 유리구슬을 만드는 거푸집이다. 갈색 연질의 네모난 점토판에 벌집처럼 구멍을 뚫고, 구멍 가운데에 작은 구멍을 뚫어 구슬의 구멍이 생기도록 철심 혹은 나무침을 세운 후 유리액체를 부어 구슬을 만들었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얼굴무늬 손잡이, 천안 두정동,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귀때토기, 대전 구성동,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바리(아산 갈매리), 깊은 바리(공주 장원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시루, 대전 송촌동,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
계란모양토기, 공주 장선리, 마한

OLYMPUS DIGITAL CAMERA아궁이틀 편, 아산 갈매리, 마한

아궁이는 방고래에 불을 넣거나 솥이나 가마에 불을 지피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틀은 아궁이의 앞부분을 장식하는 것으로, 마한.백제지역에서는 대부분 흙으로 만들어졌다. 모양은 ‘∩’자 모양의 점토판에 돋을띠로 표현된 무늬가 있다. 백제에서는 서울 풍납토성이나 부여 군수리 등 도성의 집터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어 상당한 위상을 갖는 집단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문헌에 남아 있지 않은 백제에서의 취사(炊事)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서상 부장리 고분군
한성백제(기원전18년~475년) 시기인 4~5세기 충남지역은 여전히 마한의 문화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해안교통로의 거점이자 철과 소금의 주요 생산지였던 태안반도의 맹주는 어느지역이었을까? 2004~2005년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고분군 발굴조사에서는 마한의 전형적인 ‘ㅁ’자형 도랑이 돌려진 분구묘 13기가 확인되었는데, 한변의 길이가 20~4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무덤 안에서는 금동관모와 신발, 자루솥, 고리자루큰칼, 중국제 자기편, 흑색마연토기 등으로 대표되는 위세품과 함께 짧은목단지, 넓은입항아리 등의 백제토기류, 큰칼.창.도끼.손칼 등의 철기류, 금동귀걸이.곱은옥.구슬 등의 장신구류가 다량 출토되었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는 마한의 전통묘제인 ‘ㅁ’자형 도랑이 돌려진 분구묘와 함께 한성백제에서 하사한 최고 수준의 위세품이 출토된 것이다. 이로 보아 당시 이 지역의 지배세력은 한성백제에 철과 소금을 공물로 바친 대가로 태안반도의 맹주로 부상할 수 있었으며, 한성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산에 대해서는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朝)에 마한 54소국 가운데 치리국국(致利鞠國)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으며, 부장리 고분군은 2006년 사적 제475호로 지정되어 사적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충남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무덤 서산 부장리고분군(사적475호)이다. 2000년 이후 이곳에 임대아파트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청동기시대에서 백제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덤, 주거지 증 다양한 유적이 발굴되었다. 무덤은 토광묘에서 목관묘까지 다양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산 부장리 고분 출토 유물. 서산 부장리고분군에서는 백제의 지방세력을 대표하는 형태의 다양한 유물들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특히 5호분에는 공주지역에서 볼수 있는 금동관모, 철제초두, 각종구슬을 비롯하여 환두대도, 철검, 도끼, 각종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한성백제기 지방의 유력한 세력으로서 마한의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둥근바닥항아리, 서산 부장리, 백제. 상당히 큰 규모의 항아리이다. 중국과 교류가 많았던 이 지역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OLYMPUS DIGITAL CAMERA병모양토기, 짧은목단지, 곧은입단지,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세발토기, 흑색마연토기,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
반부달린투겁창, 쇠투겁창과 창고달, 쇠투겁창,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쇠낫, 삼칼,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끌, 손칼,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
칼, 손칼, 쇠도끼,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쇠도끼,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세잎장식둥근고리자루큰칼, 두잎장식둥근고리자루큰칼, 백제. 장식이 들어간 고리자루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쇠자루솥, 서산 부장리, 백제. 두(鐎斗)라고 불리는 액체를 데우는데 사용하는 용기이다. 청동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곳에서 출토된 것은 철로 만든 것이다. 왕릉이나 지배층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물로 상류층에서만 사용하는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리구슬, 유리곱은옥, 박유리구슬,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금동귀걸이,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흑옥달린귀걸이,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유리 대롱옥, 서산 부장리, 백제

OLYMPUS DIGITAL CAMERA금동관편, 천안 용원리, 백제

관이나 관장식은 머리에 쓰는 장식품인 동시에 의관제의 중요한 품목으로 정권의 질서체계를 상징한다. 백제의 금동관은 역U자 형태로 관 윗부분에 대롱모양의 장식이 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이 금동고나편은 천안 용원리 9호 석곽묘에서 출토된 것으로, 백제 중앙으로부터 사여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공주박물관>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부여.삼한실] 삼한의 대표적 유적지

삼한(三韓)은 마한.진한.변한을 말한다. 고조선 지배계층 중 중국에서 이주한 세력에 밀려 남쪽에 정착한 세력과 토착세력이 연맹체를 이루었던 진국(辰國)이 삼한으로 바뀌었다. 삼한은 서쪽 마한에 54국, 동쪽 진한에 12국, 동남쪽 변한에 12국이 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고 중국 역사서인 <위지>와 <후한서> 등에 남아 있다. 이후 마한은 백제를 중심으로, 진한은 신라을 중심으로 통일된 고대국가를 형성했으며, 변한은 가야연맹체로 발전하였다.

삼한의 유적지는 비교적 많은 곳에 남아 있는데, 중앙박물관에서는 삼한시대 유적적 중 대표적인 곳으로 마한의 맹주였던 목지국이 있던 천안 청당동, 진한의 중심지였던 경주 탑동, 변한과 삼한을 대표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던 창원 다호리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교통의 중심지인 천안삼거리 인근에 위치한 천안 청당동에서는 무덤도랑을 지닌 묘제, 동물형상의 허리띠고리, 한반도를 대표하는 무기인 고리자루칼을 비롯한 철제무기, 공구 등이 출토되었다. 경주의 중심인 경주 탑동에서도 지배층의 무덤에서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를 비롯하여, 고리자루칼, 투겁창 등이 출토되었다. 주남저수지가 있는 창원 다호리 늪지에서는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한국형동검, 철제무기와 농기구, 제사에 사용했던 칠기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당시 사람들의 문자생활을 보여주는 붓,손칼,벼루 등 다양한 문방구들이 같이 출토되었다.

마한
마한은 중부 일대, 호서 지방과 호남 지방에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 중반에 존재한 소국 연맹체였다. 목지국을 중심으로 54개 소국 연맹체로 구성된 마한은 중부지방에서는 중도 유형 문화, 호서 지방에서는 방형 집자리와 주구토광묘, 호남지방에서는 주구묘와 독널무덤을 남기며 토착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마한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천안 청당동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충남 천안 청당동(1996년 발굴),
청당동 유적은 무덤 도랑을 지닌 묘제, 허리띠 고리의 성행 등이 특징적이다. 짧은 목항아리와 경질무문의 깊은 바리가 부장품으로 많이 나오고 고리자루칼을 비롯한 각종 철제 무기와 공구, 구슬 등이 확인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무기, 1.화살촉,  3.손칼,

OLYMPUS DIGITAL CAMERA2.창,

OLYMPUS DIGITAL CAMERA8.고리자루칼

OLYMPUS DIGITAL CAMERA농공구, 4.조각칼, 5.도끼, 6.낫, 7.송곳,

OLYMPUS DIGITAL CAMERA장신구, 9.말모양 허리띠고리,  11.허리띠고리

OLYMPUS DIGITAL CAMERA10.옥장신구,

진한
진한은 기원 전후부터 경주와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으며, 사로국에 의해 통합되어 삼국의 하나인 신라로 발전했다. 고고학적으로는 널무덤과 덧널무덤을 만들어 쓰고 주머니호와 쇠뿔손잡이 항아리, 다양한 철기를 부장하는 특징이 파악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진한의 대표적 유적지인 경주 탑통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경주 탑동 유적 (2010년 발굴)
경주시 탑동의 목관묘 유적이다. ‘ㅍ’자 형태의 나무널이 확인되고, 묘광 중앙에는 부장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무널 내부에서는 무기류와 장신구류가 출토되었고, 충전토에서 토기와 쇠솥, 투겁창 및 다수의 칠기흔 등이 확인되었다. 주로 경주 외곽에서 확인되던 수장급의 무덤이 경주 시내에서 처음으로 조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무기 1.칼,  3.고리자루 칼, 4.칼,

OLYMPUS DIGITAL CAMERA2.칼.칼집, 5.창, 농공구,  8.낫

OLYMPUS DIGITAL CAMERA6.화살촉, 농공구, 7.도끼,

OLYMPUS DIGITAL CAMERA장신구, 9.호랑이 모양 허리띠 고리,

OLYMPUS DIGITAL CAMERA10.곰모양 장신구,

OLYMPUS DIGITAL CAMERA 11.거북모양단추, 12.개구리모양 단추,

OLYMPUS DIGITAL CAMERA13.팔찌,

OLYMPUS DIGITAL CAMERA14.거울, 15.거울,

OLYMPUS DIGITAL CAMERA16.유리구슬

변한
삼한의 하나로 마한의 동쪽 진한의 서쪽에 위치하며, 지금의 김해 지방에 있던 구야국 등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졌다. 변진으로도 불리며, 이들 중 대부분이 뒤에 가야 연맹체를 구성했다. 중국 군현과 왜에 철을 수출한 철 산지로 유명하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변한의 대표적 유적지인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 (1988년 발굴)
삼한 시기 변한의 대표적인 무덤 유적이다. 수장의 무덤을 만들면서 통나무로 속을 파서 만든 관 안에 시신을 안치하고, 관 아래에 부장 구덩이를 파고 바구니에 여러 보물들을 넣어 매장하는 풍속이 있었다. 그 안에 철제 도끼, 낫, 괭이, 따비 등의 농기구와 창, 칼, 화살과 같은 무기들, 제사에 사용했던 각종 칠기 그릇들과 제사했던 음식들을 함께 묻었다. <출처:충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무기류, 1.화살촉, 농공구, 8.도끼

OLYMPUS DIGITAL CAMERA2.검, 3.칼.칼집, 4.창,6.꺽창,

OLYMPUS DIGITAL CAMERA5.창,

OLYMPUS DIGITAL CAMERA농공구, 7.낫,

OLYMPUS DIGITAL CAMERA장신구, 9.허리띠고리, 10.톱니무늬 청동고리, 12.거울

OLYMPUS DIGITAL CAMERA11.유리구슬,

OLYMPUS DIGITAL CAMERA칠기, 13.뚜껑있는 원통모양 칠기, 14.원통모양 칠기

OLYMPUS DIGITAL CAMERA통나무널에 묻힌 변한의 지배자, 창원 다호리 유적(사적327호)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다호리 일대의 낮은 구릉에 자리잡은 변한의 대표적인 공동묘지로 70여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1호 무덤에는 통나무널과 그 아래 구덩이에 유물이 가득 담긴 대바구니가 있었다. 무덤의 형태나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기원전 1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출처:중앙박무관>

OLYMPUS DIGITAL CAMERA다호리 유적 목관 노출 모습과 껴묻거리 바구니

 

[중앙박물관 부여.삼한실] 삼한 사람들의 생활과 대외교류

삼한은 기존의 토기 제작 기술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어 만들어졌다. 가마에서 구워서 단단해진 경질무문토기와 단단하게 두드리는 두드림기법이 적용된 타날문 토기가 있는데 단단해서 실용성이 좋은 경질무문토기의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또한 삼한에는 이 시기의 종교적 성격을 같는 새모양을 하고 있는 토기가 많이 출토되는데 이는 조령신앙과 관련되어 있으며, 한반도를 많이 찾아오는 철새인 오리모양의 토기가 많다.

한반도 남쪽 지역에 존재했던 삼한은 중국, 일본과 주요 해상교통로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은 고조선내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세력들이 남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우수한 기술과 지식 등으로 인해서 상당한 문화 수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유물이 출토된 지역은 경남 사천의 늑도, 제주도, 여수 거문도, 창원 다호리, 김해 양동리, 대구 만촌동, 울산 하대리 등 남해안 해상교통의 요지나 큰 강이 있는 지역이다. 중국의 동전, 청동거울 등 교역과 관련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출토된 동전으로는 진나라에서 사용한 반량전, 왕망의 신나라에서 사용한 화전과 화포, 한나라에서 사용한 오수전 등 다양한 시대의 동전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창원 다호리에서는 붓과 손칼이 출토되는 등 문자를 사용하고 상당히 높은 문화수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과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야요이토기와 무기들도 출토되고 있다.

고대인과 새
고대 사람들은 새가 봄철에 곡식의 씨앗을 가져다 주거나 죽은 이의 영혼을 천상으로 인도한다고 하는 이른바 조령신앙을 믿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새를 형상화한 유물이 발견된다. 삼한의 유적에서는 오리모양 토기와 새 모양 목기, 새무늬 청동기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물이 출토되어 새와 관련된 의례나 제의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고대인과 새

OLYMPUS DIGITAL CAMERA새무늬 청동기, 1.경남 고성 동외리(1995년 발굴),  가운데의 큰 새 2마리를 중심으로 모두 42마리의 새와 고사리무늬, 톱니무늬 등이 새겨져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있어 끈을 걸 수 있다. 고대인은 새를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 주는 신성한 존재로 여겼으므로, 이러한 유물은 농경과 관련된 여러 의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새모양토기, 2.충남 서천 오석리(1996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새모양토기, 3.전남 해남군 군곡리(1986년 발굴), 4.전남 나주 용호(2000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5.경북 경주 사라리(1996년 발굴)

삼한의 토기
삼한시대에는 종래의 민무늬토기가 계속 사용되는 한편 새로이 연질토기와 와질토기가 등장하여 이 시기의 대표적인 토기가 되었다. 와질토기에 뒤이어 등장한 경질토기는 밀폐된 굴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 회청색을 띠며 단단하여 실용적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삼한의 토기

중부지역의 마한 토기
중부 지역의 마한은 ‘呂, 凸’와 같이 독특한 출입 시설을 갖춘 주거지와 새로운 토기, 초기 형식의 온돌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그 중에서 토기는 기존의 제작 전통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어 만들어졌는데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로 구분된다. 경질무문토기는 예전보다 높은 온도로 굽는 신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한뎃가마와 굴가마에서 구워졌다. 타날문토기는 기벽을 단단하게 하는 두드림기법을 적용하여 표면에 삿무늬와 문살무늬가 남아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중부 지역의 마한 토기, 1,2,3.단지, 강원 춘천 중도(1982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 4.단지, 충남 천안 청당동(1996년 발굴), 5.화분형 토기, 충남 아산 갈매리(2004년 발굴)

호남 지역의 마한 토기
호남 지역의 마한은 집터와 조개더미, 무덤 등이 조사되었는데, 집터의 경우 출입구가 없이 네모난 형태이며 화덕만 설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남지역에서는 경질무문토기의 비중이 높은 편이고 타날문토기도 회청색보다는 적갈색으로 구워진 것들이 많다. 조개더미에서 제사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작은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6.시루, 전남 화순 대곡리(1971년 발굴), 7.단지, 전남 화순 대곡리(1971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8.단지, 전남 영암 옥야리(1990년 발굴), 9.단지, 전남 함평 소명동(1999년 발굴), 10.귀때토기, 전남 화순 대곡리(1971년 발굴)

영남지역의 진.변한 토기
영남 지역의 진.변한에서 출토되는 와질토기는 매우 고운 흙으로 빚어 밀폐된 굴가마에서 낮은 온도로 구워 회백색 혹은 회흑색을 띤다. 토기의 형태는 민무늬토기에서 변화된 것이 많은데, 목이 나팔처럼 벌어진 쇠뿔손잡이 항아리와 덧띠토기에서 발전한 주머니호가 대표적이다. 후기가 되면 짧은 목에 굽다리를 붙인 토기가 유행하고 그릇의 형태도 다양해진다. 돌림판을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형태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1.화로모양토기, 경북 경주 조양동(1979년 발굴), 12.굽다리접시, 경남 김해 양동리(1990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13.단지(1984년 입수), 14.단지,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15.항아리,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발굴),

OLYMPUS DIGITAL CAMERA OLYMPUS DIGITAL CAMERAOLYMPUS DIGITAL CAMERA오리모양토기, 16,17,18,19,20,21.

OLYMPUS DIGITAL CAMERA경북 경주 덕천리(2004년 발굴), 22.경북 경산 임당동(1999년 발굴), 23,울산 중산리(1991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 새장식 항아리, 24.울산 하대(1991년 발굴)

대외교류
삼한은 한반도를 벗어나 중원, 오르도스, 왜 등과도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는 철을 낙랑과 왜로 수출하였고, 실제로 남부 지방의 여러 유적에서 중국 및 일본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청동 세발솥.거울.동전 등은 중국과의 교류 흔적이며, 야요이 토기.청동 투겁창 등은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철기의 등장과 함께 활발해진 교류는 사회 변화를 촉진하고 고대 국가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삼한의 대외교류

OLYMPUS DIGITAL CAMERA중국계 1,2. 거울, 경북 경주 사라리(1996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3,4.거울, 경남 김해 양동리(1990년 발굴),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출토된 중국 한나라의 거울이다. 일종의 위세품으로 추정되며, 성운문경, 내행화문경, 방격규구경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5.오수전, 전남 여수 거문도(1980년 입수), 한나라 때 사용된 오수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6.반량전, 경남 사천 늑도(1985년 발굴), 7.화전, 제주 금성리(1996년 발굴), 8.화포, 제주 산지항(1929년 입수), 9.오수전, 경기 인천 운복동(2007년 발굴),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출토된 중국동전이다. 진시황이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면서 만든 반량전, 신나라 왕망 때 주조된 화전과 화포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0.화살촉, 경기 인천 운북동(2007년 발굴), 11,12,13.동전 거푸집(1952년 입수),

OLYMPUS DIGITAL CAMERA14.세발솥, 울산 하대(1991년 발굴), 세발솥은 전형적 중국의 제기로 삼한과 중국과의 교류를 보여준다. 신분을 나타내고 정치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의기이다. 낙량 지역(평양)과 김해 양동리, 울산 하대리에서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일본계, 15.창,경남 김해 양동리(1990년 발굴), 16.꺽창, 경북 대구 만촌동(1969년 입수), 18.화살촉, 경남 창원 삼동동(1982년 발굴), 일본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라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17.야요이 토기,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19.거울, 경남 창원 삼동동(1982년 발굴)

의례
삼한의 조개더미에서는 뼈와 뿔로 만든 생활 도구들과 함께 점치는 뼈가 출토된다. 점치는 뼈는 사슴이나 멧돼지의 어깨뼈에 미리 줄을 맞추어 둥근 홈을 판 후 불로 지질 때 나타나는 금이 간 모양을 보고 길흉화복을 점친 것이다. 부여에서는 전쟁을 앞두거나 나라의 큰일을 할 때 언제나 점을 보았다. 점복이나 의례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진행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삼한의 의레

마한의 제천의식
해마다 5월이면 씨부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떼를 지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술을 마시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춤을 출때에는 수십명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구부렸다가 치켜들었다 하면서 손과 발을 서로 장단을 맞추는데, 그 풍류가락이 마치 방울춤과 비슷하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도 이렇게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점치는 뼈, 1.전남 해남 군곡리(1986년 발굴), .경남 양산 다방리(1995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2.경북 경산 임당동(1999년 발굴),

뼈연모
삼한의 조개더미에서는 뼈와 뿔로 만든 칼손잡이.송곳.바늘.낚시.화살촉.뒤꽂이.점뼈 등이 출토된다. 점뼈는 사슴이나 멧돼지의 뼈에 줄을 맞추어 둥근 홈을 판 후 불로 지질 때 나타난 금이 간 모양을 보고 길흉화복을 점친 것이다. 주로 사슴의 뿔을 이용해 만든 칼 손잡이는 대부분 조개더미에서 많은 양이 출토되고 있어 쇠손칼이 당시의 중요한 생활도구였음을 말해준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점치는 뼈, 1. 경남 양산 다방리(1995년 발굴), 뼈로 만든 도가, 4.새기개, 부산 낙민동(2000년 발굴), 5.칼 손잡이, 부산 낙민동(2000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OLYMPUS DIGITAL CAMERA6,7,8.칼 손잡이, 전남 해남 군곡리(1986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9.화살촉, 전남 해남 군곡리(1986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10.화살촉, 부산 낙민동(2000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제사, 11.모형토기, 전남 해남 군곡리(1986년 발굴)

문자의 수용
창원 다호리 1호 무덤 널 아래의 대바구니에서 붓과 손칼이 출토되었다. 중국 고대의 자료와 비교해 볼 때, 붓과 손칼은 대나무쪽이나 나무판에 글을 쓰고 지우는 문방용구로 추정된다. 즉 붓은 오늘날의 연필, 손칼은 지우개, 대나무쪽은 공채인 셈이다. 붓, 손칼과 함께 출토된 4점의 청동 고리도 중국 한 대으의 천칭 저울추의 일종인 겁마로 파악되고 있으므로 문자와 함께 도량형도 당시 지배층을 중심으로 사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한.중.일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지역에 위치한 다호리 지배층들이 중국과 교류를 하면서 문자라를 사용한 흔적들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필기도구, 1.붓,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발굴), 2.손칼과 칼집,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6.목간, 충남 부여 능산리(1992년 발굴, 복제품), 창원 다호리 1호 무덤 널 아래의 대바구니에서 붓과 손칼이 출토되었다. 중국 고대의 자료에서 볼 때, 붓과 손칼은 대나무쪽이나 나무판에 글을 쓰고 지우는 문방용구로 추정된다. 즉 붓은 오늘날의 연필, 손칼은 지우개인 셈이다. 다호리 무덤에서 출토된 붓과 손칼은 교역용으로 이용된 쇠도끼와 함께 출토되어 철을 교역할 때 사용한 영수증 작성용 필기구였을 가능성이 높다. 2000년 전 우리나라에서 문자가 사용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3.짐승모양 연적, 평양 도제리(1970년 입수), 네 다리를 벌린 짐승 몸통의 빈 공간 속에 물을 넣고, 좁다란 원통에 뚫린 구멍을 통해 공기를 조절함으로써 별에 물을 따를 수 있게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4.벼루, 평양 석암리(1916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5.죽간, 평양 석암리(1924년 발굴), 7.낙랑 호구 목간, 평양 정백리(1992년 발굴, 복제품), 8.죽간, 평양 석암리(1924년 발굴, 복제품)

OLYMPUS DIGITAL CAMERA문자가 새겨진 거울, 9.거울, 경북 경주 조양동(1979년 발굴), 10.거울, 경북 경주 조양동(1979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11.천칭추,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삼각거치무늬 청동고리, 다호리 1호 무덤에서 출토된 이 청동고리는 각각의 무게가 5.25g, 10.25g, 11.55g, 22.73g이다.  무게의 배율이 1:2의 비율로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양팔저울의 추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박물관 부여.삼한실] 부여와 삼한의 철기문화

기원전.후의 시기에는 한반도에 처음 등장한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중계무역 등으로 번성하다, 한무제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한사군이 설치되었다. 이 시기 한반도 북부에는 부여와 고구려, 옥저.동예가, 중남부 지역에는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이 있었다. 부여와 고구려는 주변 세력과 경재을 통해 비교적 이른 시기에 고대국가로 성장하였다. 부여는 그 세력이 지금의 길림성 일대이지만, 부여에서 분화된 세력들이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한 지배계층이 되었기떄문에 한반도 고대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반도 북부 동해안에 위치한 옥저와 동예는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느슨한 연맹체 형태였으며 고구려에 예속된 상태였다.

한반도 남부의 크고 작은 성읍국가들 또한 느슨한 마한.진한.변한의 느슨한 연맹체였다가. 마한은 백제를 중심으로, 진한은 신라를 중심으로 통일되었으며, 변한은 가야연맹체를 유지하였다. 호남지역의 마한, 경남지역의 변한, 경북 지역의 진한으로 구성된 삼한은 고조선의 세력교체시 이동한 세력들이 근거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남쪽 지역에 존재했던 삼한은 중국, 일본과 주요 해상교통로에 있었으며, 고조선 멸망 이후 남하한 세력들의 우수한 기술과 지식 등으로 인해서 상당한 문화 수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한과 변한은 중국, 일본과의 교역을 통해서 많은 부를 축적했던 것으로 보이며, 상당한 문화 수준를 보이는 유물들이 이들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철기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쇠로 만든 농기구를 사용하여 농업생산력이 증가하였으며, 철제 무기의 사용으로 국가의 지배질서가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삼한의 철기는 초기에는 주조로 만든 호미, 괭이 등 농기구가 대부분이었으나, 점차 철기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무기를 제작하게 되었다. 삼한에서는 아주 발달된 한국형 동검이 출토되기는 하지만, 청동검은 지배계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의기로서 역할을 했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철제무기가 크게 발전하면서 무기로서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었다. 삼한의 철제무기는 다양한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변한에서는 철을 낙랑과 왜에 수출하면서 경제력을 축적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여.삼한
고조선 멸망 전후, 중국 동북 지역에는 부여와 고구려, 한반도 동북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 중남부 지역에는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이 있었다. 부여와 고구려는 주변 세력과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문화 역량을 강화하여 일찍이 고대국가로 성장하였다. 옥저와 동예는 고구려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마한.진한.변한은 점차 백제, 신라, 가야로 통합되어 가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철기 생산이 본격화하면서 쇠로 만든 농기구와 무기가 널리 쓰였다. 철기의 사용으로 국가의 지배 질서도 빠르게 확립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부여(夫餘)
부여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 5세기까지 존속하였던 고대국가이다. 영역은 중국 지린성 일대로 추정되는데 중심지는 주변 나라와의 전쟁을 겪으면서 이동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왕은 중앙을 지배하고 지방은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의 관리들이 통치하였다. 농업과 목축으로 생업을 삼았으며 말과 구슬, 모피 등의 특산물이 있었다. 부여 왕실의 후손이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한 지배 계층이 되었으므로 부여는 우리나라 고대 국가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부여는 동이 지역 중에서 가장 평탄하고 넓은 곳으로 토질은 오곡이 자라기에 알맞다…. 목책을 둥글게 쌓아 성을 만들고 궁실과 창고와 감옥이 있다. – 『후한서』 동이전 -

옥저.동예
옥저는 러시아 연해주와 함경도 일대에 존재하였다. 읍락의 군장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통일된 정치체를 이루지 못하고 고구려의 견제와 지배를 받으면서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였다. 옥저의 무화는 두만강 일대의 단결-크로높카 문화로 추정된다. 동예는 한반도 동북부와 강원도 일대에 존재하였다. 옥저와 비슷한 수준의 사회로, 각 읍락들은 산과 물을 경계로 영역을 엄격하게 지켰으며 이를 어길 때에는 노예나 동물로 변상하는 제도가 있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옥저는 토질이 비옥하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하고 있어 오곡이 잘 자라며 농사짓기에 적합하다… 음식.주거.의복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예는 남쪽으로 진한, 북쪽으로 고구려.옥저와 접하고, 동쪽은 큰 바다에 닿았으며 조선의 동쪽이 모두 예의 땅이라고 하였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마한은 서쪽에 있어 54개의 작은 고을들을 모두 나라로 일컬었다.  - 『삼국유사』 권1 칠십이국 -
진한은 동쪽에 있어 열두 개의 작은 고을을 나라로 일컬었다. – 『삼국유사』 권1 칠십이국 -
변한은 남쪽에 있어 열두 개의 작은 고을들을 각각 나라로 일컬었다. – 『삼국유사』 권1 칠십이국 -

OLYMPUS DIGITAL CAMERA부여와 옥저.동예는 한반도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국가이지만, 그 영역이 만주와 북한지역이기때문에 국내에는 유물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최근에 김포 운양동 지역에서 부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김포 운양동 유적
주구묘에서 금귀걸이와 쇠칼, 투겁창, 화살촉 등의 철제 무기류가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부여의 대표적인 유적인 유수 노하심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금귀걸이와 부여의 특징으로 알려진 제비꼬리 모양의 쇠 투겁창 등이 출토되어 부여가 남부지방에 끼쳤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김포 운양동(2012년 발굴), 1.칼,

OLYMPUS DIGITAL CAMERA2.창, 3.제비꼬리모양 창,

OLYMPUS DIGITAL CAMERA 4.손칼, 농공구와 장신구, 6.낫, 7.끌, 8.도끼,

OLYMPUS DIGITAL CAMERA 5.화살촉 9,귀걸이,

OLYMPUS DIGITAL CAMERA10.구슬

OLYMPUS DIGITAL CAMERA항아리, 11,12,13. 함북 웅기 송평동(1929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갈색간토기, 14.함북 종성 지경동(1985년 입수), 항아리, 15.함북 종성 삼봉리(1948년 지표조사), 항아리, 16. 전 강원 강릉(2000년 입수)

철기문화의 발전
우리나라에 철기가 처음 들어온 것은 기원전 4세기 무렵이지만 전국적으로 철기가 제작.사용된 것은 기원전 1세기 무렵이다. 철기 사용으로 향상된 생산력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으며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초기의 철기는 주조로 만든 농기구가 대부분이었으나 점차 한의 철기 제작 기술이 보급되어 무기가 다양하게 제작되고 말갖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삼한의 철기

삼한의 농기구
삼한에서는 철제 농기구의 제작.보급으로 농경지가 확대되고 본격적인 수리시설이 만들어지는 등 농업 생산 기술이 향상되었다. 철제 농기구는 경지를 가는 작업에서 곡물 수확에 이르는 모든 농사 과정에 폭넓게 사용되었다. 철제 농기구를 통한 경지의 확장과 생산력 증대는 인구 증가와 더불어 권력의 집중화를 가져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1.낫, 충북 제천 양평리(1982년 발굴), 2.낫, 경북 경주 조양동(1979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3.따비,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4.따비, 경북 경주 조양동(1979년 발굴), 5.따비, 경북 포항 옥성리(1994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6.쇠스랑, 경남 김해 양동리(1990년 발굴), 7.가래, 충북 충주 하천리(1983년 발굴), 8.가래, 경북 포항 옥성리(1994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9. 납작도끼, 경남 김해 양동리(1990년 발굴), 10.납작도끼,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11,12. 도끼, 경북 경주 조양동(1979년 발굴), 13.도끼, 경북 포항 옥성리(1974년 발굴), 14.도끼, 충북 제천 도화리(1983년 발굴), 15.도끼, 경남 김해 양동리 (1990년 발굴)

삼한의 무기
삼한에서는 철기가 널리 사용되면서 무기를 만드는 재료가 청동에서 철로 바뀐다. 이 시기의 무기는 예리한 날과 살상력이 높은 꺾창, 투겁창, 화살촉, 칼 등이 있었다. 이러한 철제 무기는 전투에서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어 삼한의 소국들이 통합하여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6.칼.칼집, 경북 경주 사라리(1996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17.칼,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18.창, 경북 경주 조양동(1979년 발굴), 19.창, 경북 경주 사라리(1996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20.화살촉, 충남 천안 청당동(1996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21.꺽창집, 대구 평리동(1974년 발견)

제철도구

OLYMPUS DIGITAL CAMERA23.송풍관, 경기 화성 기안동(2012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24.숫돌,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25.쇠망치, 경남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26.철광석, 경남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여러 나라의 생활

가무와 음주를 좋아하는 풍속이 있다. 현악기가 있는데, 모양이 축과 같다. 이것을 켜면 소리와 곡조가 나온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OLYMPUS DIGITAL CAMERA현악기, 광주 신창동(1992년 발굴, 복제품)

삼한 사람들의 음식 문화
다호리 유적에서는 원형두, 방형두, 원통형 칠기, 뚜껑 달린 원통형 칠기, 사각합, 컵형 칠기 등이 출토되어 칠기가 당시 최고 상층 집단의 식기 또는 제기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제사 지낼 때 상 위에 올리는 삼색 과실인 밤과 감도 출토되어, 한대의 거울 명문에 등장하는 대추와 함께 이때 이미 제사의 기본 상차림이 마련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동이나 부여는 음식을 먹을 때 거의 모두 조두를 사용한다. – 후한서 동이전
큰 밤이 나는데 크기가 배반 하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OLYMPUS DIGITAL CAMERA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1.원형칠기와 감,

OLYMPUS DIGITAL CAMERA2.밤이 담긴 굽다리접시

OLYMPUS DIGITAL CAMERA평남 대동 대동강변(1927년 구입), 3.한경

큰 구슬이 크기는 마치 대추 같다. – 후한서 동이전
구슬을 재보로 삼아 이를 옷에 달아 장식을 하거나, 목이나 귀에 매달기도 한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OLYMPUS DIGITAL CAMERA목걸이, 1,2,3. 경남 김해 양동리 (1990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4,경남 창원 삼동동(1982년 발굴), 5.충남 천안 청당동(1996년 발굴)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발에는 가죽신을 신는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OLYMPUS DIGITAL CAMERA1.호랑이 모양 허리띠 고리, 경북 경주 사라리(1996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2.칼.칼집, 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3.칠기 신발, 평남 대동 채협총(1931년 발굴)

삼한의 말갖춤
말갖춤은 말을 부리기 위한 도구로, 고조선 말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말갖춤은 수레 부속구와 함께 출토되어 주로 말이 수레를 끄는 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부 지역에서 출토되는 말갖춤은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이 대표적이다. 모두 재갈멈추개가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초기의 것은 단순한 프로펠러 모양이지만, 후기가 되면 S자 모양으로 변하고 고사리무늬 장식 등이 더해지기도 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말갖춤, 1.경북 경주 조양동(1979년 발굴), 2.경남 창원 다호리(1988년 발굴),

OLYMPUS DIGITAL CAMERA3.울산 하대(1996년 발굴), 4.경북 경주 탑동(2010년 발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