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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다호리 고분군(사적), 삼한시대 지방유력 세력 무덤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에 있는 다호리 고분군(사적)이다. 삼한시대 고대국가 형성기에 낙동강 습지와 그 주변에 만들어진 무덤, 생활공간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유적이다. 가야초기 널무덤 70여기와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이 발굴조사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청동검, 청동거울, 오수전, 철검, 손칼, 쇠도끼, 쇠갑옷 등 철기제품과 칼집, 활, 화살, 붓, 부채 등 칠기제품, 그리고 민무늬 토기, 와질 도티 등이 있다. 청동거울과 오수전 같은 유물이 출토되어 기원전 1세기에서 1세가 후반 사이 유적임을 알려주고 있다. 통나무를 파서 만든 목널은 다른 지역과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문자생활의 증거인 붓과 현악기 등이 나왔으며, 청동거울과 오수전을 통해 중국, 낙랑과 활발한 교역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창원 다호리고분군(사적)>

창원 다호리고분<다호리고분군 유적 분포>

다호리 1호 무덤은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고 속을 파낸 통나무널이다. 널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청동검, 철검, 쇠도끼, 중국거울, 붓 등이 남겨진 대나무 바구니를 묻었다. 이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무덤 형태로 삼한시대 해상교역을 통해 번성했던 이 지역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1호 무덤이 발견된 지역(도로 건너편)>

다호리 널무덤이 발견된 곳은 다른 지역 가야 고분과 달리 실제로 눈으로 보이는 봉분은 없다. 늪지가 논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거의 없고 논이었다가 유적이 발굴된 지역임을 알려주는 안내표지판이 있다. 늪지에 있어 유물이 훼손되지 않아 무덤의 구조는 물론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로 옆 유적지 조망장소>

OLYMPUS DIGITAL CAMERA <창원 다호리 1호 무덤(나무널 무덤), 기원전 1세기,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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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동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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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투겁창>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16<쇠도끼>

쇠도끼는 당시 철이 많이 생산되었던 변한지역에서 교역을 위한 화폐대용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17<쇠도끼>

붓은 나무판에 글을 쓰고, 칼은 나무를 깎아 지우는 용도로 사용했다. 문자를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18<손칼과 붓>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19<붓글씨 재현품>

청동거울과 칠기 등의 유물들은 중국 한나라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낙랑을 통해 중국과 교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20<청동 허리띠 부속구>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21<청동거울(성운문경)과 청동방울>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는 토기, 칠기, 목기, 대나무 등 여러 재질의 유물에 칠을 하였다. 여기에 사용된 칠기법은 같은 시기 낙랑이나 중국의 그것과 달라 독자적인 칠문화가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22<칠그릇>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24<칠부채>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23<유리구슬>

중국 동전은 교류를 위해 바닷길을 오가던 이들이 남긴 중요한 유물로 이 무덤이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경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중앙박물관특별전-금관가야-20200212_10<1. 오수전>

이 청동고리는 각각의 무게가 5.25g, 10.25g, 11.55g, 22.73g이다.  무게의 배율이 1:2의 비율로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양팔저울의 추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고리>

유력개인의 등장
주남저수지에 인접한 다호리 유적은 평지에서부터 구릉 정상부까지 목관묘, 옹관묘, 목곽묘, 석곽묘 등 다양한 무덤이 분포한다. 목관묘는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고 속을 파서 만든 통나무관과 판재를 조립하여 만든 관이 있다. 통나무관은 1호 무덤에서 실물이 나왔다. 1호무덤은 통나무관 아래에 껴묻거리 구덩이가 있었고, 여기서 청동검, 쇠칼, 여러가지 형태의 쇠도끼, 중국거울, 동전 등 금속기류와 붓, 부채, 검집, 화살통 등 칠기류가 나왔다. 청동과 쇠로 만든 검은 그 형태가 비슷하다. 이것은 청동기에서 철기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붓은 2,000년 전 우리나라에서 문자를 사용하였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중국거울과 동전은 당시 중국과 교역하였음을 알려준다. 이런 유물을 소유한 무덤 주인은 당시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부를 통해 권력을 지녔던 사람으로 보인다. 따라서 다호리 유적은 삼국이 형성되기 전에 집단 내에서 개인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여러기의 널무덤이 출토된 지역>

OLYMPUS DIGITAL CAMERA<도로 옆 유적지>

창원 다호리는 낙동강 하류 습지인 주암저수지에 위치하고 있다. 낙동강 이북 밀양과 비화가야가 있었던 창녕, 금관가야 중심지 김해와 항구가 있는 마산과 육로와 낙동강 수로를 통해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다. 습지에 위치하고 있었기때문에 적으로부터 방어가 용이하고 배를 이용한 낙동강 수운을 쉽게 이용할 수 있었기때문에 무역거점으로 발전한 것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옆 습지>

OLYMPUS DIGITAL CAMERA<인근 주남저수지>

창원 다호리집단의 성장
가야가 건국되기 전인 기원전 2세기 경, 남해안에서 가장 눈에 띠는 교역항은 사천 늑도 유적입니다. 이곳에서는 일본 야오이 시대의 토기를 비롯해 낙랑토기와 한문화, 중국 동북 지역의 토기 등 다양한 문화가 확인됩니다. 한편 내륙지역에서는 창원 다호리 집단이 두각을 드러내어 변한의 중심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창원 다호리 유적은 현재까지 100기 이상의 널무덤이 조사되었으며, 중국 한대의 청동거울과 동전, 철기, 칠기, 왜계토기 등 국제적인 유물을 확인하였습니다. 하지만 2세기 이후에는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고 있어, 이후 이 집단이 어떻게 되었는지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유적지에서 출토된 집모양토기를 통해 습지에서 살았던 다호리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집은 구덩이를 파서 만든 움집과 다락집이 있는데  움집은 보통사람들의 살림집으로, 다락집은 창고 또는 지배자의 거처로 추정된다. 다락집은 높은 기둥을 세워 만드는데 이것은 짐승과 습기로부터 곡물을 보호하거나 지배자의 권위를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한나라 유물에서도 비슷한 유물들의 출토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집모양 토기(복원품)>

OLYMPUS DIGITAL CAMERA<창원 다호리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다호리마을 유물전시관>

OLYMPUS DIGITAL CAMERA<다호리 마을>

기원전 1세기경 민무늬토기의 제작전통에 새로운 토기제작기술이 더해져 와질토기라는 독창적인 토기가 만들어진다. 새로운 토기 제작기술로는 회전판, 굴가마, 환원염소성, 타날 등이 있다. 와질토기로 밀폐된 굴가마에서 구워 회색을 띤다. 형태는 민무늬토기에서 변화된 것이 많으나 점차 굽다리가 붙는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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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질토기>

OLYMPUS DIGITAL CAMERA<주머니호>

OLYMPUS DIGITAL CAMERA<주머니호, 항아리>

OLYMPUS DIGITAL CAMERA<손잡이바리, 주머니호>

OLYMPUS DIGITAL CAMERA<야요이 토기>

의창 다호리고분군(사적 237호), 창원시 동읍 다호리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의 수많은 고분군이 밀집되어 있는 유적이다. 1988년 3월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조사를 통해 널과 함께, 칠기, 청동기, 철기의 생활용품과 무기류들이 출토되어 기원전 1세기 삼한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밝혀 주었다. 이 유적에서 목재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었던 것은 수분이 많은 지형적 특징때문이었다. 철새도리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 같은 많은 습지는 이러한 지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칠기는 낙랑과의 교류를 다시 증명해 주었으며, 청동기와 철기는 이 지역의 가야사를 되살리고, 기원전.후부터 이 지역에서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안내문, 창원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창원시청, 2011년
  2.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3.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5.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제천 의림지와 제림(명승), 삼한시대에 쌓은 오래된 수리시설

충북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와 제림(명승)이다. 의림지(義林池)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에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로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각종 문헌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서깊은 유적지이기도 하다. 충청도를 호서(湖西)지방이라 부르는 것도 의림 서쪽에 있다는 뜻이며, 제천의 옛 이름인 (奈堤, 큰제방)도 큰 제방있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때 크게 수리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방을 다시 쌓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제림(堤林)은 의림지 제방 위에 조성된 숲을 말하며,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명승지로 알려졌으며, 옛 그림에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주변에는 영호정, 경호루같은 누각과 바위들이 있어 역사적 의미를 같은 의림지와 함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의림지(명승). 삼한시대에 쌓은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 중 한곳으로 예로부터 지역의 명승지로 손꼽히던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의림지 제방이 시작되는 지점. 제방 위에는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중심으로 다양한 나무들을 심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의림지와 함께 제방 위에 조성된 숲도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제방위에 조성된 숲.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제방 위 울창한 소나무 숲.

OLYMPUS DIGITAL CAMERA영호정(暎湖亭)은 의림지 남쪽 제방위에 있는 정자로 조선후기 순조 때 처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54년에 새로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제방 아래로 보이는 제천시.

OLYMPUS DIGITAL CAMERA제방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

OLYMPUS DIGITAL CAMERA제방 중간에 세워진 의림지 표지석.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에서도 경치가 빼어난 작은 섬처럼 돌출된 곳.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는 의림치 경치를 감상하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정자인 경호루(鏡湖樓), 1948년에 지어진 정자로 영호정과 더불어 의림지를 찾는 대표적인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아름드리 노송사이에 서있는 정자 누각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서남쪽편 협곡을 막고 있는 수문.

OLYMPUS DIGITAL CAMERA수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

OLYMPUS DIGITAL CAMERA수문 안쪽으로는 뒷편 용두산에서 흘러내려오는 하천이 보인다. 이 하천을 막아 저수지를 조성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둑을 쌓기에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문 부근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서쪽편에는 비교적 넓은 광장이 의림지를 바라보면서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북쪽에서 바라본 풍경. 가운데 작은 섬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동쪽편.  2007년에 세워진 우륵정이란 정자가 있다. 근처에 우륵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우륵샘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우륵정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제천 의림지와 제림, 명승 20호
제천 의림지(義林池)는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 호반의 둘레는 1.8 km이고 수심은 8 m이다. 제방을 따라 소나무,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어 제림(堤林)이라 불린다. 물과 숲이 주변의 영호정 및 경호루 등과 함께 어루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호서(湖西)라는 충청도의 다른 이름은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내제(奈堤, 큰제방)라는 제천의 옛 이름도 의림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림지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쌓았다늕 설과 조선시대 현감인 박의림이 쌓았다는 설이 전해져 왔으며, 지명분석에 근거한 삼한시대 축조설이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세종실록에 의림제라고 하고 정인지에 의해 두차례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항일운동기간인 1914~1918년까지 대대적으로 수축하였으며, 1972년의 장마에 둑이 무너진 것을 이듬해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설로는 거북바위를 돌려 놓아 부자집이 몰락하였다는 이야기와 탁발승을 홀대하여 부자집이 몰락하고 그 자리에 저수지가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그리고 의림지에 있는 큰 이무기가 가끔 나와사 사람이나 가축을 해치는 일이 있었는데 어씨 오형제가 이무기를 잡은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게 되었다는 어장사참사가가 전해지고 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경주 사라리 유적, 경주의 대표적인 삼한시대 고분 유적지

경주시 서면 사라리에서 발견된 고분유적이다. 1995년 이곳에 공장을 세우는 과정에서 유물이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청동기시대 주거지, 원삼국시대 목관묘, 삼국시대 적석목관묘 등 다양한 시기의 무덤들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무덤 중 130호분에서는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호랑이모양 청동허리띠고리를 비롯하여 청동검과 칼집,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었다. 영천 어은동 출토유물과 함께 삼한시대 진한세력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유믈들이다. 56호분에서는 5세기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말머리가리개와 이형투구, 철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삼국사기>에는 고조선 유민들이 경주지역으로 이주하여 6촌을 이루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라리는 대구에서 영천을 통해 경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조선에서 남하한 유민들이 낙동강을 거쳐 대구 경산과 영천를 거처 이곳에서 자리잡았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무덤의 주인들은 신라 건국초기에는 이 지역의 지배계층이었으며, 4~5세기 신라를 건국한 박씨집단이 건천읍 일대에서 이주한 이후에도 지역의 주요세력으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건천읍 사라리 일대>

경주 건천읍 일대에 유력세력의 무덤들이 발견된 사라리 일대는 1995년 이곳에 공장을 세우는 과정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 과정 이후에 공장이 세워져 있는 유적지>

경주 사라리고분군<영상사진으로 본 사라리 고분군이 있던 유적지>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앞 야산>

OLYMPUS DIGITAL CAMERA<사라리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고분군이 있던 공장>

사라리 고분군은 영천에서 경주로 연결되는 중요한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다. 고조선 유민들이 정착했던 삼한시대 유적지이다. 고조선 유민들이 낙동강을 통해 대구와 영천을 거처 경주에 정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남쪽편에 신라를 건국한 박씨세력들이 이주하면서 조성된 금척리 고분군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라리 고분군에서 가장 많은 유물의 출토된 130호분의 형태>

1~2세기 삼한시대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껴묻거리로 한국형 동검,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 등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신라가 건국한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300년에 이르는 약 350년 동안 사람들이 죽으면 널무덤이나 덧널무덤에 묻혔습니다. 널무덤은 구덩이 안에 나무로 만든 널을 넣은 뒤 흙을 덮은 것으로 오늘날의 무덤과 비슷합니다. 한국식동검, 와질토기, 철기 등을 주검과 함께 넣었습니다. 널무덤에 뒤이어 나타나는 덧널무덤은 구덩이 안에 따로 나무덧널을 만들고 그 속에 널과 부장품을 넣어 묻은 무덤입니다. 이중으로 주검을 보호하는 셈입니다. 덧널무덤은 2세기 중엽 무렵부터 나타납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사라리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검(1~2세기,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검(1~2세기, 경주박물관)>

경주지역에서의 한국식 동검문화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철과 청동으로 만든 유물이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쇠칼(1~2세기, 경주박물관)>

청동검과 비슷한 형태로 한국형 동검 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쇠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허리띠고리(1~2세기, 중앙박물관)>

사라리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비슷한 시기 중국 한나라에서도 많이 출토되고 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호랑이모양 띠고리(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띠고리(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8′자 모양 띠고리(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팔찌(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거울(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단추(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반지, 청동팔찌(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유리목걸이(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유리목걸이(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유리목걸이(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오리모양토기. (1~2세기, 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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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모양토기(경주 사라리, 경주박물관)>

집모양토기에서 당시 사람들이 주거양식을 엿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투구(4세기, 경주박물관)>

1995년 경주 사라리 5호 덧널무덤에서 출토된 투구. 투구는 볼 가리개와 이마를 보호하는 쇠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머리 위쪽을 보호하는 복발이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경주 서쪽 건천읍 지역으로 경주의 박씨세력이 이주한 4~5세기 이후에도 사라리 지역 지배계층은 유력세력으로 남아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판갑옷(4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말머리 가리개(5세기, 경주 사라리, 경주박물관)>

5세기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말머리 가리개이다. 고구려 철기병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말머리가리개
경주 사라리 65호 덧널무덤에서 1995년 출토되었습니다. 치열한 전투에서 말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여러 장의 철판을 조립하여 만들었습니다. 말머리의 앞을 덮는 얼굴덮개와 볼 쪽에 매달리는 볼가리개, 그리고 뒤쪽에 경사지게 새워 귀 가리개 역할을 하는 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철판 두 장을 이어붙인 얼굴덮개는 고구려계통의 말머리가리개에서 보이는 것으로 양국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2년)

OLYMPUS DIGITAL CAMERA<사라리 남쪽 건천읍 지역에 남아 있는 금척리 고분군(사적)>

4~5세기 이 지역으로 이주한 박씨세력들의 무덤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 사라리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사라리의 낮은 구릉에서 많은 삼한.삼국시대 무덤이 조사되었다. 특히 130호 무덤은 삼한시기의 널무덤 가운데 가장 독보적이다. 130호 무덤은 길이 325cm, 너비 225cm, 깊이 90cm로 다른 널무덤에 비해 뚜렷하게 크다. 부장갱을 갖추고 있으며 묻힌 이의 지위를 알 수 있는 껴묻거리도 많이 출토되었다. 널안에서는 목걸이.청동팔찌.호랑이모양 띠고리와 함께 청동거울.청동검과 칼집 등이 나왔다. 널 바닥에는 촘촘히 쇠도끼를 깔았다. 널 밖에는 칠기, 철기, 청동기, 와질토기 등을 껴묻었다. 사라리 130호 무덤은 널무덤의 마지막 형태로 덧널무덤으로 발전해 가는 과도기인 2세기초에 만들어졌으며, 이 일대를 다스린 지배자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안내문,경주박물관,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