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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의림지와 제림(명승 20호), 삼한시대에 쌓은 오래된 수리시설

충북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와 제림(명승 20호)이다. 의림지(義林池)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에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로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각종 문헌에 그 기록이 남아 있는 유서깊은 유적지이기도 하다. 충청도를 호서(湖西)지방이라 부르는 것도 의림 서쪽에 있다는 뜻이며, 제천의 옛 이름인 (奈堤, 큰제방)도 큰 제방있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조선 세종 때 크게 수리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제방을 다시 쌓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제림(堤林)은 의림지 제방 위에 조성된 숲을 말하며,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명승지로 알려졌으며, 옛 그림에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주변에는 영호정, 경호루같은 누각과 바위들이 있어 역사적 의미를 같은 의림지와 함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의림지(명승 20호). 삼한시대에 쌓은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 중 한곳으로 예로부터 지역의 명승지로 손꼽히던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의림지 제방이 시작되는 지점. 제방 위에는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중심으로 다양한 나무들을 심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의림지와 함께 제방 위에 조성된 숲도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제방위에 조성된 숲.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제방 위 울창한 소나무 숲.

OLYMPUS DIGITAL CAMERA영호정(暎湖亭)은 의림지 남쪽 제방위에 있는 정자로 조선후기 순조 때 처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54년에 새로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제방 아래로 보이는 제천시.

OLYMPUS DIGITAL CAMERA제방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

OLYMPUS DIGITAL CAMERA제방 중간에 세워진 의림지 표지석.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에서도 경치가 빼어난 작은 섬처럼 돌출된 곳.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는 의림치 경치를 감상하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정자인 경호루(鏡湖樓), 1948년에 지어진 정자로 영호정과 더불어 의림지를 찾는 대표적인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아름드리 노송사이에 서있는 정자 누각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서남쪽편 협곡을 막고 있는 수문.

OLYMPUS DIGITAL CAMERA수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

OLYMPUS DIGITAL CAMERA수문 안쪽으로는 뒷편 용두산에서 흘러내려오는 하천이 보인다. 이 하천을 막아 저수지를 조성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둑을 쌓기에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문 부근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서쪽편에는 비교적 넓은 광장이 의림지를 바라보면서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북쪽에서 바라본 풍경. 가운데 작은 섬이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의림지 동쪽편.  2007년에 세워진 우륵정이란 정자가 있다. 근처에 우륵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우륵샘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우륵정에서 보이는 의림지 풍경

제천 의림지와 제림, 명승 20호
제천 의림지(義林池)는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 호반의 둘레는 1.8 km이고 수심은 8 m이다. 제방을 따라 소나무,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어 제림(堤林)이라 불린다. 물과 숲이 주변의 영호정 및 경호루 등과 함께 어루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호서(湖西)라는 충청도의 다른 이름은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내제(奈堤, 큰제방)라는 제천의 옛 이름도 의림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림지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쌓았다늕 설과 조선시대 현감인 박의림이 쌓았다는 설이 전해져 왔으며, 지명분석에 근거한 삼한시대 축조설이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세종실록에 의림제라고 하고 정인지에 의해 두차례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항일운동기간인 1914~1918년까지 대대적으로 수축하였으며, 1972년의 장마에 둑이 무너진 것을 이듬해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설로는 거북바위를 돌려 놓아 부자집이 몰락하였다는 이야기와 탁발승을 홀대하여 부자집이 몰락하고 그 자리에 저수지가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그리고 의림지에 있는 큰 이무기가 가끔 나와사 사람이나 가축을 해치는 일이 있었는데 어씨 오형제가 이무기를 잡은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게 되었다는 어장사참사가가 전해지고 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경주 사라리 유적, 경주의 대표적인 삼한시대 고분 유적지

경주시 서면 사라리에서 발견된 고분유적이다. 1995년 이곳에 공장을 세우는 과정에서 유물이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청동기시대 주거지, 원삼국시대 목관묘, 삼국시대 적석목관묘 등 다양한 시기의 무덤들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무덤 중 130호분에서는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호랑이모양 청동허리띠고리를 비롯하여 청동검과 칼집,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었다. 영천 어은동 출토유물과 함께 삼한시대 진한세력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유믈들이다. 56호분에서는 5세기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말머리가리개와 이형투구, 철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삼국사기』에는 고조선 유민들이 경주지역으로 이주하여 6촌을 이루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라리는 대구에서 영천을 통해 경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조선에서 남하한 유민들이 낙동강을 거쳐 대구 경산과 영천를 거처 이곳에서 자리잡았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무덤의 주인들은 신라 건국초기에는 이 지역의 지배계층이었으며, 4~5세기 신라를 건국한 박씨집단이 건척읍 일대로 이주한 이후에도 지역의 주요세력으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 사라리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사라리의 낮은 구릉에서 많은 삼한.삼국시대 무덤이 조사되었다. 특히 130호 무덤은 삼한시기의 널무덤 가운데 가장 독보적이다. 130호 무덤은 길이 325cm, 너비 225cm, 깊이 90cm로 다른 널무덤에 비해 뚜렷하게 크다. 부장갱을 갖추고 있으며 묻힌 이의 지위를 알 수 있는 껴묻거리도 많이 출토되었다. 널안에서는 목걸이.청동팔찌.호랑이모양 띠고리와 함께 청동거울.청동검과 칼집 등이 나왔다. 널 바닥에는 촘촘히 쇠도끼를 깔았다. 널 밖에는 칠기, 철기, 청동기, 와질토기 등을 껴묻었다. 사라리 130호 무덤은 널무덤의 마지막 형태로 덧널무덤으로 발전해 가는 과도기인 2세기초에 만들어졌으며, 이 일대를 다스린 지배자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출처: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건천읍 일대에 유력세력의 무덤들이 발견된 사라리 일대. 1995년 이곳에 공장을 세우는 과정에서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 과정 이후에 공장이 세워져 유적지에는 공장건물이 들어서 있다.

사라리고분군 지도 01구글 위성사진으로 본 사라리 고분군이 있던 유적지. 대구와 영천에서 경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앞 야산.

OLYMPUS DIGITAL CAMERA사라리는 나즈막한 야산과 농지가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분군이 있던 공장 앞 .

경주 지역사라리고분군은 영천에서 경주로 연결되는 중요한 교통로에 자리잡고 있다. 고조선 유민들이 정착했던 삼한시대 유적지이다. 고조선 유민들이 낙동강을 통해 대구와 영천을 거처 경주에 정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남쪽편에 신라를 건국한 박씨세력들이 이주하면서 조성된 금척리 고분군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라리 고분군에서 가장 많은 유물의 출토된 130호분의 형태이다. 1~2세기 삼한시대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껴묻거리로 한국형 동검,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 등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신라가 건국한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300년에 이르는 약 350년 동안 사람들이 죽으면 널무덤이나 덧널무덤에 묻혔습니다. 널무덤은 구덩이 안에 나무로 만든 널을 넣은 뒤 흙을 덮은 것으로 오늘날의 무덤과 비슷합니다. 한국식동검, 와질토기, 철기 등을 주검과 함께 넣었습니다. 널무덤에 뒤이어 나타나는 덧널무덤은 구덩이 안에 따로 나무덧널을 만들고 그 속에 널과 부장품을 넣어 묻은 무덤입니다. 이중으로 주검을 보호하는 셈입니다. 덧널무덤은 2세기 중엽 무렵부터 나타납니다. <출처: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사라리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검(1~2세기, 중앙박물관)으로 한국형 동검의 모양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검(1~2세기, 경주박물관). 경주지역에서의 한국식 동검문화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철과 청동으로 만든 유물이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쇠칼(1~2세기, 경주박물관). 청동검과 비슷한 형태로 한국형 동검 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쇠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허리띠고리(1~2세기, 중앙박물관), 사라리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삼한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호랑이모양 띠고리(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띠고리(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8′자 모양 띠고리(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팔찌(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거울(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단추(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반지, 청동팔찌(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유리목걸이(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유리목걸이(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유리목걸이(1~2세기, 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오리모양토기. (1~2세기, 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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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모양토기(경주 사라리, 경주박물관). 집모양토기에서 당시 사람들이 주거양식을 엿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투구(4세기, 경주박물관). 1995년 경주 사라리 5호 덧널무덤에서 출토된 투구. 투구는 볼 가리개와 이마를 보호하는 쇠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머리 위쪽을 보호하는 복발이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경주 서쪽 건천읍 지역으로 경주의 박씨세력이 이주한 4~5세기 이후에도 사라리 지역 지배계층은 유력세력으로 남아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판갑옷(4세기, 경주박물관)

말머리가리개
경주 사라리 65호 덧널무덤에서 1995년 출토되었습니다. 치열한 전투에서 말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여러 장의 철판을 조립하여 만들었습니다. 말머리의 앞을 덮는 얼굴덮개와 볼 쪽에 매달리는 볼가리개, 그리고 뒤쪽에 경사지게 새워 귀 가리개 역할을 하는 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철판 두 장을 이어붙인 얼굴덮개는 고구려계통의 말머리가리개에서 보이는 것으로 양국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출처:경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말머리 가리개(5세기, 경주 사라리, 경주박물관). 5세기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말머리 가리개이다. 고구려 철기병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라리 남쪽 건천읍 지역에 남아 있는 금척리 고분군(사적 43호)이다. 4~5세기 이 지역으로 이주한 박씨세력들의 무덤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