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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복룡동 유적(사적), 읍치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 이후 생활유적

경북 상주시 도심에 있는 복룡동 유적(사적)이다. 옛 상주목 읍치였던 상주읍성 외곽에 있는 생활유적이다. 2004년 택지개발을 위한 발굴.조사 과정에서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 건물터, 연못, 수혈유구, 구상유구 등이 확인되었으며 도기류, 기와, 자기류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건물터와 생활유구들은 읍성 외곽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면 통일신라 이후 상주읍성을 중심으로 한 지방 도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상주 복룡동 유적 사적477호 20100911-11
상주 복룡동 유적(사적). 옛 상주목 읍치 동쪽편 외관에 위치하고 있는 통일신라 이후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유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에서 확인된 연못 유구. 조선시대 기와와 자기류 등이 이곳에서 출토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우물 유구. 조선시대 기와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상주 복룡동 유적 (연못과 우물), 조선시대
본 유구는 상주 복룡동 중앙로 확장 공사 중에 조사된 것으로,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 371번지에 해당한다. 연못은 기반층인 황갈색사질층과 자갈모래층 위에 축조되었는데, 축조 당시에는 더 깊게 만들었으나, 현재는 1~2단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연못의 규모는 길이 830 cm, 폭 550 cm, 깊이 50 cm이며, 벽면은 길이 100 cm, 폭 50 cm의 할석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그리고 벽석에 이용된 석재 중에는 건축지의 주춧돌을 재사용한 경우도 있다. 연못 중앙에는 길이 370 cm, 폭 180 cm 규모의 수혈이 나타나는데 수혈에는 20 cm 정도의 천석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연못 내부에서는 조선시대 기와편과 다수의 자기류가 출토되었다. 또한 우물의 축조는 70 ~ 90 cm 크기의 냇돌과 할석을 쌓아 만들었고, 우물의 가장 아래에는 목재를 결구하여 축조하였다. 우물의 규모는 깊이 70 cm 이고, 직경 70 cm이다. 우물 내부에서는 조선시대 기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러한 유적은 조선시대 정원연구에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경상도 감영이 설치되었던 상주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남석제 호(복룡동 256), 병(복룡동 230-3), 벼루(복룡동 256), 통일신라.

OLYMPUS DIGITAL CAMERA암키와(복룡동 256), 수막새(복룡동 397-5), 수키와(복롱동 256), 통일신라

OLYMPUS DIGITAL CAMERA수막새(복룡동 10-4), 고려시대, 수막새(복룡동 256), 암키아(복룡동 10-4), 고려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암막새(복룡동 256), 통일신라, 암막새(복룡동 256), 고려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명문 납석제품(복룡동 256), 통일신라

상주 복룡동 256번지 유적에서 출토된 납석제 유물로 표면에 한자가 새겨져 있다. 한자의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사벌주희”라는 여성 인명을 중심으로 모자 또는 모녀 관계로 추정되는 남자 인명 “萬(?)韓公”. “~리랑(~里娘)”라고 하는 6명의 여성 인명으로 보인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분청사가 매병(복룡동 230-3), 유개호(복룡동 256), 조선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매병(복룡동 256), 고려시대

상주 복룡동 유적
복룡동 유적은 상주시역에서 처음 발굴 조사된 대규모의 취락 유적으로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중다양한 유구들이 동일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조영되고 있음이 확인됨으로써 상주지역의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대구.경산의 영남 내륙 지역과 충주를 비롯한 충청도 지역과의 문화상의 연관성이나 연속성을 비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송국리형 주거지가 낙동강 상류 지역에서도 확인됨에 따라 청동기시대 문화상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며, 그 전파 경로에 대한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복룡동 유적의 건물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초창되어 이후 그 터를 이용하여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동일 지역에 지속적으로 폐기와 건립이 반복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판단되어 이 지역에서 생활하던 당시 사람들의 주거 공간의 분할과 규모 등 지방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복룡동유적이 상주읍성지의 북동편 외곽에 위치하며, 우물과 다양한 기능의 수혈 유구들이 확인되고 있어 이 지역의 서민 생활상을 복원.연구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복룡동유적에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유구들과 함께 다양한 유물들이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어 상주 시가지의 변화 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상주 사람들의 사회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복용동 석조여래좌상(보물 119호). 유적지 인근 마을에 있던 고려시대 불상으로 지금은 상주 도심 왕산공원으로 옮겨졌다.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출처>

  1.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충주 조동리 유적, 선사시대 생활유적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선사시대 생활유적지이다. 남한강 충주댐 하류 방향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 유적으로서 신석기.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남한강을 건너는 나루터로 원주와 제척지역을 연결해 주며, 남한강 조운에서도 중요했던 곳으로 보인다. 원주로 연결되는 국도 19호선 목행대교와 충북선 철도가 부근을 지나가고 있다.

1996년부터 여러차레 발굴조사가 이루어 졌다. 발굴.조사 결과 신석기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청동기 문화층에서는 민무늬토기 외에 집터, 불땐자리, 움, 도랑 등의 다양한 생활유적이 확인되어 큰 마을을 이루며 생활했음을 보여준다. 출토유물로는 각종 토기류와 화살촉, 돌도끼, 대패날,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가 나왔고 쌀, 보리, 밀 등의 곡물과 복숭아 씨앗, 도토리 등이 나와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충주지역 신석기.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조동리 선사유적. 신석기 ~ 청동기시대 집터 등 마을 유적이 확인되었다. 이곳은 남한강을 건너는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량면소재지가 위치한 조동리 마을은 전체가 생활유적지라 할 수 있지만 남한강 제방 안쪽 농경지로 사용하던 곳에 옛 유물과 집터 등이 발굴되었다. 발굴조사가 끝난 지금은 다시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다.

충주 조동리유적  21-20191212발굴조사 당시 모습.

조동리 선사유적
조동리 유적은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조돈마을 1364-2(전) 일대에 위치한다. 1996년 1차 조사를 실시하여 중원지역에서는 드물게 신석기 ~ 청동기시대 문화층이 잘 발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유물포함층이, 청동기츠에서는 집터 9기.불때자리 49기.움 18기.도랑 유구 7기.돌무지 유구 1기 및 근대의 우물 1기.불땐자리 1기 등 모두 87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유구와 많은 출토 유물상으로 볼 때 청동기시대에 이곳에 대규모 취락을 형성하고 활발한 생산경제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신석기층의 불땐자리가 6,200 bp로, 청동기층은 집터가 2,715 bp. 불땐자리가 2,995 bp로 측정되어, 약 7천년 전 처음신석기인이 조동리에 와서 살았고, 약간의 공백 상태로 있다가 약 3천년 전쯤부터 다시 청동기인이 와서 농경생활을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조동리 선사유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굽잔토기(복제품), 조동리 유적지를 대표하는 유물로 강한 지역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동리의 굽잔토기
굽잔토기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긴 네모꼴 집터에서 출토되며, 주로 경기도.강원도.충청도 등 중부지방에서 발견되고 있다. 바탕흙이 곱고 겉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간 뒤 소성하여 제작하였다. 길고 가는 굽다리의 내부에 원통형 구멍이 깊숙이 뚫려 있으며, 배가 부른 몸통을 지닌 모습으로 주로 한강유역에서 출토되고 있어 강한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 토기는 청동기시대 토기 중 특징적인 것으로 집안에 둔 신성한 토기로서 제사와 같은 특수 목적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여겨진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조동리 유적에서 확인된 생활 유적들

조동리 유적의 발굴현황
조동리 유적은 남한강가에 형성된 넓은 충적대지에 위치한 선사시대 생활유적으로 크게 3지구로 구분되며, 1지구를 중심으로 3차에 걸쳐 신석기.청동기 문화층을 발굴조사하였다. 발굴결과 확인된 유구와 출토유물 및 입지환경으로 볼 때 조동리 유적은 청동기시대에 큰 규모의 마을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불땐자리 1기가 조사된 신석기층을 정밀 조사하면 중원지역의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문화발달 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발굴당시 확인된 집터

조동리의 집터
집터는 청기층에서 네모꼴 집터7기.둥근꼴 집터 2기 등 모두 9기가 조사되었는데, 유적의 중앙부에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내부 시설물로는 기둥구멍(3.7.8호)과 불땐자리(1.4.7.9호)가 있으며 출입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불땐 자리는 길죽한 강자갈돌로 만든 돌돌림형태로 1개(1.4호) 또는 2개(7.9호)를 설치하였다. 집터의 긴 길이방향은 대체로 남한강 흐름방향과 일치한다. 특히 7호 집터는 움 벽면에 상수리나무를 가공한 판지를 대어 벽체를 형성하였음이 확인되어 주목된다. 유물은 토기.석기.뼈연모.치레거리.곡물낟알.열매씨앗 등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연대 측정결과 2,700 bp로 밝혀져 이 시기 중원지역의 청동기시대 생활문화상을 이해할 수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재현해 놓은 마을

조동리마을의 생활상
남한강변의 넓은 충적대지 위에 자리잡은 조동리 마을은 청동기시대에 네모꼴과 둥근꼴의 집을 짓고, 식량 저장을 위한 움과 음식조리를 위한 야외 불땐자리를 설치하였으며, 여러 가지 용도에 맞는 토기와 석기를 제작하였다. 쌀.보리.밀.조 등의 곡물을 생산하고, 계절에 따라 주변에서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도토리.복숭아 등 야생식물을 채집하여 기본적인 식생활을 해결하고 움에 식량을 저장하였다. 물고기잡이와 짐승사냥을 통해서 단백질이 풍부한 먹거리를 확보하여 토기에 담아 삶거나 불때 자리에 익혀 먹었다. 실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고, 옥으로 치레걸이를 만들어 몸을 치장하는 미의식을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사와 같은 의식행위도 있었음을 출토유물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민무늬토기,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숫돌, 홈자귀, 갈판, 청동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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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패날, 긴돌찰, 화살촐,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발화석, 청동기시대

석기류
석기는 땅을 파는 돌괭이.돌보습, 나무를 자르거나 다듬는 돌도끼.돌대패날, 사냥이나 무기로 사용된 간돌검.화살촉, 곡식을 수확하는데 쓰인 돌낫.반달돌칼, 곡식을 가공하는데 쓰인 갈돌과 갈판, 물고기잡이 도구인 그물추, 실을 감는데 사용하는 가락바퀴, 도구를 가는데 사용하는 숫돌, 불을 일으키는데 사용된 발화석, 도구를 제작하는 데 쓰인 망치돌 등 매우 다양한 석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뗀석기 전통을 지닌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뗀돌도끼가 많이 주목되며, 미완성 석기, 격지, 부스러기 등이 많이 출토되어 석기제작 행위가 매우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앞을 지나는 도로.

OLYMPUS DIGITAL CAMERA도로와 제방 사이에 유적지가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박물관 옆에 있는 동량면사무소. 선사시대 이래 교통의 중심지였던 이곳이 지금도 생활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을 흐르는 남한강. 충주댐에 하류방향으로 약 3 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협곡을 지나던 남한강이 평야지대와 만나는 지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멀리서 보이는 조동리 주변지역

 조동리선사유적
충주댐으로부터 약 3 km 하류의 남한강변 충적대지에 위한 선사시대의 대규모 마을 유적으로서 신석기.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이 잘 보존된 곳이다. 신석기시대의 문화층에서는 민무늬토기 외에 집터, 불땐자리, 움, 도랑 등의 다양한 생활유적이 드러나 대규모의 사람들이 큰 마을을 이루며 생활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로는 각종의 토기류와 화살촉, 돌도끼, 대패날,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가 나왔고 쌀, 보리, 밀 등의 곡물과 복숭아 씨앗, 도토리 등이 나와 당시의 식생활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이곳은 충주지역의 신석기.청동기시대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