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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하엽정, 삼가헌 고택 별당으로 지어진 연꽃이 아름다운 정원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하엽정(荷葉亭)이다.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이 살고 있는 삼가헌 고택이 별당으로 하엽정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이다. 삼가헌을 18세기에 별당이 지어졌으며 별당 앞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주위에 국화와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파산서당이라는 작은 서당 건물로 지어졌는데 고종때 누마루를 달아내는 등 크게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그리 크지 않고 마당도 넓지 않으나 연못과 수목들을 잘 배치하여 절제된 듯 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정자 건물은 앞면 4칸 규모로 안쪽에 누마루를 달았으며,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과 골방이 배열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저택 정원과 별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하엽정. 삼가헌 고택 별당으로 지어진 건물로 연꽃이 활짝피는 계절에는 연꽃속을 떠다니는 배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4칸으로 온돌방과 마루로 되어 있으며, 19세기에 당시 유행했던 누마루를 달아내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엽정은 원래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으로 지어진 건물로 ‘파산서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못 경치를 즐기기 위해 만든 누마루. 문을 달지 않아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엽정 정자와 연못. 이곳에 별당을 조성할 때 연꽃과 국화를 심었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활짝피기 시작한 연꽃

OLYMPUS DIGITAL CAMERA정자 앞에서 본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연못 한쪽편에는 선비들이 좋아했던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육신 박팽년 후손이 살고 있는 삼가헌 고택.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영덕 괴시마을 물소와 서당, 남택만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작은 서당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마을에 있는 고택인 물소와 서당이다. 조선후기 좌승지를 지낸 물소와 남택만의 학덕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서당이다. 19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자형 건물이다. 가운데 대청마루가 있으며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영덕 영해면에 있는 영양 남씨 집성촌인 괴시마을이다. 고려말 유학자 목은 이색이 태어난 곳으로 중국 괴시마을과 비슷하여 괴시(槐市)로 불리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큰 하천인 송천이 흐르고 주위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마을에는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을 비롯하여 여러동의 고택들이 남아 있다. 마을 남쪽에는 영해도후보 읍치가 있으며 북쪽 고래볼 해안과는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물소와 서당. 조선후기 문신 남택만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작은 서당으로 마을 종택 옆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당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서당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있는 물소와 고택.

SANYO DIGITAL CAMERA 영덕 괴시마을. 목은 이색 선생 생가터 아래에 있는 전통마을로 영양남씨 집성촌이다. 마을에는 양반들이 살았던 20~30여 호의 전통가옥이 남아 있다.

영덕 물소와 서당
이 서당은 물소와 남택만의 학덕을 추모하고 후손들에게 학습의 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약 150년 전에 건립되었다. 한때는 사당으로도 활용되었다고도 전한다. 서당은 ‘-’자형으로 앞면 3칸, 옆면 1칸 반 규모의 맞배지붕으로 평면 구성은 전면에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방을 설치한 영남지역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서당 좌측 전면에는 물소와 고택이 있다.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영덕군청,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담양 죽림재, 서당으로 세운 사설교육기관

전남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에 있는 죽림재(竹林齋)이다. 창녕조씨 집성촌인 분향리 마을 언덕에 위치한 죽림재는 문중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곳으로 서원과 비슷한 형태와 규모를 하고 있다. 조선중기 문신인 조수문(1426~)이 후학 양성을 위해 작은 서당인 죽림재를 처음 세웠는데 이후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서원과 비슷한 규모로 확장되었다. 건물은 작은 정자인 죽림재를 중심으로 사당인 죽림사, 많은 사람들이 공부할 수 있는 강학공간인 취사당,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머물수 있는 숙소 건물과 또 다른 사당 건물인 세일재, 장서를 보관하던 장서각 등이 있다.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사당이 훼철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이곳을 서원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최근에 중건된 것으로 재실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향리 마을은 담양 일대에서 경치가 좋아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등 양반들이 세운 크고 작은 정자들이 들어서 있는 가사문학의 산실 증암천이 골짜기를 빠져 나와서 들판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죽림재 부근은 공립교육기관인 창평향교와 사설교육기관인 수남학구당 등 창평현 교육기관들이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증암천 상류의 크고 작은 정자들을 찾는 지역 유력인사들이 지나가면서 잠깐 들릴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학문적 교류가 용이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담양 죽림재, 전남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
이 죽림재는 창녕조씨 문중의 글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수련장으로 죽림 조수문이 창건했다고 한다. 초창 건물은 임진왜란 때 귀중한 책들과 함께 불에 타 버렸고 인조 원년(1623)에 6대손인 삼청당 조부에 의해서 다시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48년에 중수한 것이다. 이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죽림사는 죽림 선생과 그 아들인 운곡 조호, 삼청당 조부와 소은 정민하의 행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1708년에 문인과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철폐되었다가 2002년 복원되었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담양 죽림재. 창녕조씨 집성촌인 마을에서 글방으로 지어졌는데 서원으로 승격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서원과는 달리 사찰과 비슷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죽림재 입구에 있는 연못. 네모지게 조성되는 일반적인 연못과는 달리 지형에 맞추어 초승달 모양으로 생겼다.

OLYMPUS DIGITAL CAMERA죽림재와 죽림사.

OLYMPUS DIGITAL CAMERA조수문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 건물로 지었다는 죽림재. 앞면 2칸 짜리 온돌방이 있는 작은 서당 건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1948년에 중수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죽림재 현판.

OLYMPUS DIGITAL CAMERA죽림재 뒷편에 사당인 죽림사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죽림사 사당. 죽림 조수문과 그의 아들인 조호를 추모하기 위해 1708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것을 새로 중건한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죽림재 아래에 있는 장서각.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건물인 취사당. 앞면5칸 큰 건물로 경사진 지형에 지었다. 문을 열고 바깥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찰 강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취사당.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부근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재실처럼 보이는 건물인 세일재. 사당과는 달리 대청마루를 두고 있다. 내부에 영모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양쪽에 3칸씩 동.서재 형태로 기숙사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기숙하는 곳으로 실제로는 마을과 가까워 이 마을을 찾는 손님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증암천 상류지역은 가사문학의 산실로 경치가 빼어나 예로부터 이곳을 유람하기 위해 찾는 손님이 많아 숙소건물을 많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국의 경치좋은 곳이나 여행객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 위치한 고택이나 서원,향교 등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옆에 있는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죽림재 마당에 세워진 비석.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서 보이는 죽림재와 분향리 마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담양 수남학구당, 조선시대 사설 중등교육기관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에 있는 수남학구당(水南學求堂)이다.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등 지역 양반들이 세웠던 정자와 정원 많이 들어섰던 가사문학의 산실인 증암천이 골짜기를 빠져나와 넓은 들판과 만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시대 향적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절터에 조여심과 양자징을 중심으로 지역의 25개 성씨가 힘을 합쳐 조선중기 선조 때 세워졌다. 대부분 과거에 합격했거나 관직을 역임한 사람이었지만 평민출신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창평학구당’이라고도 불리며 유교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사설 교육기관으로 담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교육기관이다. 현재의 건물은 1988년에 크게 보수한 것을 4칸짜라 강당건물과, 2층문루, 관리사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18개 성씨가 참여하여 운영하고 있다.

담양군은 광주광역시 북동쪽에 위치한 군으로 주변에 크고 작은 산들이 있으며 호남지방의 큰 강인 영산강이 흐른다. 담양도호부와 창평현이 합쳐서 오늘날 담양군을 이루고 있으며, 영산강과 지천 주변으로 넓은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경제적 기반의 풍족하여 양반문화가 발달되었던 지방이다. 소쇄원을 비롯하여 부유층들이 조성한 크고 작은 정자와 원림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서원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으며, 다른 지역에는 많지 않은 여러 집안에서 힘을 모아 세운 학구당과 같은 사설교육기관이 여러 곳 남아 있다.

담양 수남학구당, 전남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
창평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힘을 모아 선조3년(1570)에 학문을 연구하며 유학 기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학구당이라는 교육기관을 창건하여 함께 공부하였다. 이러한 학구당은 당시 조선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사례로 보인다. 학구당의 창건에 참여한 사람들은 김,노,박,송,신,안,양,오,유,이,전,정,조,진,채,현 등 25개 성씨 출신이다. 이들 가운데 과거 시험에 합격하거나 관직을 역임한 명문가 출신이 대부분이지만 정병으로 군대에 입대한 평민 수준의 인물도 섞여 있다. 창립 당시 당원은 안우문을 포함하여 모두 8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환학당 조여심(1518~1594)과 고암 양자징 이 두사람이 연장자이면서 도의와 학문이 으뜸이어서 학구당 창건을 주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양자징을 학구당의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건립 직후 목청전.연은전의 참봉직에 나가느라 창평에 없었고, 1580년대에는 수령직을 맡아 경상도 거창과 충청도 석상에 나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후 운영에는 깊이 간여할 수 없었지만, 그의 동생 양자정이 당장이나 장의를 맡아 운영에 참여하였다. 이외의 소쇄원 사람들로 양천심, 양천경, 양천회 등이 학구당에 참여하였다. 학업을 위해 1570년 창립당시에 ‘자양집’, ‘가례’, ’19사략’, ‘소학’, ‘서부’, ‘간재집’을, 그리고 추가로 1580년에 ‘문선’을, 1581년에 ‘중용’을 구비하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서적이 10권 전질로 있었다는 ‘자양집’이다. ‘자양집’은 주자의 문집인 ‘주자대전’을 말한다. 이를 통해 학구당에서 행한 교육의 수준이 고등교육, 더 나아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과업교육이였음을 알 수 있다. 학구당은 멀리는 여말선초의 서재 교육을 계승한 것이지만, 16세기 사학의 흥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건국 이후 편성된 관학 교육이 이때에 이르면서 쇠퇴하고, 대신 사학이 흥기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사학은 초등교육에 해당하는 서당, 중등교육에 해당하는 학당으로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학구당은 교재나 학사규정 등을 두고 볼 때에 학당 수준의 교육기관이었다. <출처:필암서원>

OLYMPUS DIGITAL CAMERA담양 수남학구당. 가사문학의 산실 증암천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시대 사설중등교육기관이다. 조선중기 유학자 양자징을 중심으로 지역민에게 중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세워졌다. 서원이나 서당과는 달리 인물을 중심으로 특별한 학풍을 형성하지 않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출입문으로 문간채처럼 보이는 문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문루는 앞면 5칸 건물로 가운데 마루를 설치하여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휴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원이 제향행사를 통해 특정인의 학풍을 본받도록 주입하는 것과는 달리 학구당은 과거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공부를 하는 곳이라 할 수있다.  강당건물은 앞면5칸, 옆면 2칸으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학구당 현판

OLYMPUS DIGITAL CAMERA넓은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천정 아래에는 여러 사람이 남긴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으며, 가운데 특별한 뭔가(?)가 설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문루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주변경치. 무등산에서 발원한 증암천이 넓은 들판과 만나는 지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관리인이 거처하는 살림집.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담양 수북학구당, 조선시대 사설 중등교육기관

담양군 수북면 오정리에 위치한 수북학구당(水北學求堂)이다. 조선시대 사설 중등교육기관으로 성종 때 주변 마을 여러 성씨들이 힘을 모아서 과거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처음 세웠다. 서원이나 서당이 고위관료를 지내다 낙향한 인사나 명망이 높았던 유학자들이 세워 개인의 학문적 성향이 반영되어 있는 반면, 이곳 수북학구당은 순전히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많은 진사를 배출하여 지역에서 나름 영향력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며, 서원과는 달리 학문적인 성향은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담양군은 광주광역시 북동쪽에 위치한 군으로 주변에 크고 작은 산들이 있으며 호남지방의 큰 강인 영산강이 흐른다. 담양도호부와 창평현이 합쳐서 오늘날 담양군을 이루고 있으며, 영산강과 지천 주변으로 넓은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경제적 기반의 풍족하여 양반문화가 발달되었던 지방이다. 소쇄원을 비롯하여 부유층들이 조성한 크고 작은 정자와 원림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서원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으며, 다른 지역에는 많지 않은 여러 집안에서 힘을 모아 세운 학구당과 같은 사설교육기관이 여러 곳 남아 있다.

담양 수북학구당, 담양군 수북면 오정리
수북학구당은 조선시대에 많은 유생들을 배출하였던 곳이다. 성종 4년(1473)에 남(南).박(朴).진(陳)씨 등 3성씨 주관으로 건립하였으나 많은 유생들이 수학하러 오다 호랑이에게 해를 입어 철폐하였다고 한다. 그 후 숙종 35년(1709)에 김(金).이(李).우(禹).정(丁)씨 4성씨가 당초의 학구당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건립하여 많은 유학생을 배출하였는데, 특히 이곳에서는 많은 진사를 배출하여 당시 수북학구당의 세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후 영조 45년(1769) 윤광현 창평현령이 주민들을 동원하여 새로 복원하였으며, 지금 건물은 1990년에 보수한 것이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담양 수북학구당. 조선시대 많은 진사를 배출한 지역에서 명망있는 중등교육기관으로 노령산맥을 이루는 큰 산 중 하나인 병풍산(해발822m) 남쪽 자락끝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 세워졌을때에는 현위치보다 안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호랑이 피해를 많이 보았기때문에 마을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방과 대청마루 앞에는 반칸 정도 툇마루를 달아내어 잠깐 앉아서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학구당 현판

OLYMPUS DIGITAL CAMERA학구당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학구당 담장과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관리인이 사는 살림집.

OLYMPUS DIGITAL CAMERA학구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들판. 지금은 숲이 우거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원래는 앞이 틔여 있어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학구당 뒷편 대나무숲.

OLYMPUS DIGITAL CAMERA학구당 들어가는 길.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