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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도봉서당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도봉서당(桃峯書堂)이다. 조선 중종 때(1545년) 유학자 황정(1426-1497)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추보재(追報齋)라는 재실로 처음 건립되었다. 오랜 세월 전란 등을 거치면서 훼손된 것을 후손들의 서원 형식으로 중건하였다. 건물은 강당인 도봉서당을 앞에 두고 뒷편에 사당을 배치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도봉서당>

OLYMPUS DIGITAL CAMERA<숭앙문>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건물인 도봉서당>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인 상허당>

경주 도봉서당(桃峯書堂), 경북 경주시 서악동 709-1번지
도봉서당은 조선 성종 대의 학자였던 불권헌 (不倦軒) 황정(1426~1497)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45년(중종 1년) 지금의 위치에 추보재(追報齋)라는 묘하재실(墓下齋室)로 건립되었다. 이후 전란(亂)과 긴 세월을 거치며 훼손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불권헌(不倦軒) 황정의 후손들이 1915년 추보재가 있었던 자리에 도봉서당(桃峯書堂) 일곽을 중건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이 서당은 숭앙문(嵩仰門)·도봉서당(桃峯書堂)·추보재(追報齋)·연어재(鳶魚齋)·상허당(尙虛堂) 등 모두 7동 이며 일종의 서원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배치형식은 재사(齋舍)를 강당 뒤에 둔 전강당 후재사형인데, 이는 경상도 지역에서 보기 드문 예(例)이다. 강당(도봉서당)은 정면 5칸·옆면 1.5칸으로 전면에 툇마루를 두었고, 옆·뒷면에 쪽마루를 둘렀다. 사당(상허당)은 정면 4칸·옆면 1.5칸이며, 중당협실(中堂室)로 구성된 바로 볼 때 강당형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서재(연어재)는 남쪽과 동쪽면을 모두 팔작지붕으로 처리하여 두 개의 정면을 갖게 한 점이 눈길을 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경주 양동마을 강학당

경북 경주시 강동면 안강마을에 있는 강학당(講學堂)이다. 구한말에 마을 여주이씨 집안에서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작은 서당이다. 건물은 ‘ㄱ’자형으로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했으며 오른쪽에 마루와 작은 방이 있는 날개채를 달아 내었다. 건물 뒷편에는 서당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작은 행랑채가 있다. 앞쪽에 있던 서당건물이었던 심수정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양반 집성촌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었던 서당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강학당>

OLYMPUS DIGITAL CAMERA<강학당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날개채에 있는 작은 장판각>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행랑채>

OLYMPUS DIGITAL CAMERA<강학당으로 들어오는 길>

강학당(講學堂)
이집은 여주 이씨 집안의 서당으로 지족당 이연상이 고종7년(1870)경에 세웠다. 경주 손씨 집안의 서당인 안락정과 쌍벽을 이룬다. 공부하는 곳이니 만큼 대문과 담장 없이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었으며 앞마당에서 마을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장판각’이라는 편액이 걸린 1/3칸짜리 방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이씨 집안은 이 서당 이외에도 규모가 좀더 큰 경산서당을 소유하고 있다. 동쪽에 서 있는 행랑채는 서당의 살림살이를 맡았던 곳이다.(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양동마을 경산서당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경산서당(景山書堂)이다. 이언적의 손자인 무첨담 이의윤을 배향할 목적으로 세워진 서당이다. 원래는 마을 안쪽 안계리에 있었는데 그곳에 저수지가 건설되면서 종가인 무첨당에서 가까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경산서당이 세워진 19세기에는 서원이 난립하여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시기로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지 못하고 서당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서원 설립을 준비하기 위해 세워진 서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경산서당>

건물은 강학공간인 강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출입문인 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앞면 5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온돌방 1칸씩을 두고 있다.  대청마루에는 ‘이선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온돌방>

유생들이 기숙는 동재만을 두고 있는데 동재만을 두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가운데 1칸은 작은 마루가 있으며,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재>

OLYMPUS DIGITAL CAMERA<경산서당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서당 앞 넓은 마당>

<출처>

  1. cultural Heritage Wiki,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달성 하엽정, 삼가헌 고택 별당으로 지어진 연꽃이 아름다운 정원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하엽정(荷葉亭)이다.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이 살고 있는 삼가헌 고택이 별당으로 하엽정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이다. 삼가헌을 18세기에 별당이 지어졌으며 별당 앞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주위에 국화와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파산서당이라는 작은 서당 건물로 지어졌는데 고종때 누마루를 달아내는 등 크게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그리 크지 않고 마당도 넓지 않으나 연못과 수목들을 잘 배치하여 절제된 듯 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정자 건물은 앞면 4칸 규모로 안쪽에 누마루를 달았으며,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과 골방이 배열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저택 정원과 별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하엽정. 삼가헌 고택 별당으로 지어진 건물로 연꽃이 활짝피는 계절에는 연꽃속을 떠다니는 배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4칸으로 온돌방과 마루로 되어 있으며, 19세기에 당시 유행했던 누마루를 달아내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엽정은 원래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으로 지어진 건물로 ‘파산서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못 경치를 즐기기 위해 만든 누마루. 문을 달지 않아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엽정 정자와 연못. 이곳에 별당을 조성할 때 연꽃과 국화를 심었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활짝피기 시작한 연꽃

OLYMPUS DIGITAL CAMERA정자 앞에서 본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연못 한쪽편에는 선비들이 좋아했던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육신 박팽년 후손이 살고 있는 삼가헌 고택.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영덕 괴시마을 물소와 서당, 남택만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작은 서당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마을에 있는 고택인 물소와 서당이다. 조선후기 좌승지를 지낸 물소와 남택만의 학덕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서당이다. 19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자형 건물이다. 가운데 대청마루가 있으며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영덕 영해면에 있는 영양 남씨 집성촌인 괴시마을이다. 고려말 유학자 목은 이색이 태어난 곳으로 중국 괴시마을과 비슷하여 괴시(槐市)로 불리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큰 하천인 송천이 흐르고 주위에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마을에는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을 비롯하여 여러동의 고택들이 남아 있다. 마을 남쪽에는 영해도후보 읍치가 있으며 북쪽 고래볼 해안과는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물소와 서당. 조선후기 문신 남택만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작은 서당으로 마을 종택 옆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당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서당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있는 물소와 고택.

SANYO DIGITAL CAMERA 영덕 괴시마을. 목은 이색 선생 생가터 아래에 있는 전통마을로 영양남씨 집성촌이다. 마을에는 양반들이 살았던 20~30여 호의 전통가옥이 남아 있다.

영덕 물소와 서당
이 서당은 물소와 남택만의 학덕을 추모하고 후손들에게 학습의 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약 150년 전에 건립되었다. 한때는 사당으로도 활용되었다고도 전한다. 서당은 ‘-’자형으로 앞면 3칸, 옆면 1칸 반 규모의 맞배지붕으로 평면 구성은 전면에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방을 설치한 영남지역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서당 좌측 전면에는 물소와 고택이 있다.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영덕군청,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