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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보물), 퇴계의 제자들이 공부하던 공간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에 있는 농운정사(濃雲精舍, 보물)이다. 퇴계 이황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도산서당을 세우고 제자들이 묵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은 건물이다. 조선중기(1561년)에 지은 건물로 그 원형이 잘 남아 있다. 건물은 ‘工’자 형태를 하고 있는데 공부가 성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건물 양쪽에는 돌출된 형태의 마루가 있는데 제자들이 모여 공부를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퇴계가 직접 설계에 관여한 건물로 다른 서원이나 향교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보물) 01-20221029<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보물)>

건물은 ‘工’자 형태의 도토마리 양식을 하고 있는데, 도산서당 건립을 맡았던 승려 법연의 구상에 따른 것이라 한다. 건물은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동쪽 마루는 시습재(時習齋)라 하여 공부를 하는 곳이고 서쪽 마루는 관란헌(觀欄軒)이라 하여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동쪽마루는 문을 열면 퇴계가 거처했던 도산서당이 바로 보인다. 가운데에는 온돌방이 있으며 뒷편에 돌출된 형태로 부엌과 창고가 있다.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보물) 07-20221029<농운정사>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보물) 03-20221029<공부를 하는 공간인 시습재>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보물) 05-20221029<바깥쪽에서 본 시습재>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보물) 04-20221029<가운데 온돌방>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보물) 06-20221029<뒷편 부엌과 창고>

도산서원 출입문을 들어서면 동쪽에는 퇴계가 머물던 도산서당(보물)이 있고, 서쪽에 제자들이 머물던 숙소 건물인 농운정사(보물)가 있다. 퇴계를 모신 사당인 상덕사와 강당인 전교당이 있는 건물들은 그의 사후에 조성한 것으로 전형적인 서원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보물) 09-20221029<입구 양쪽에 배치된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보물) 08-20221029<바깥쪽에서 본 농운정사>

도산서원<도산서원 공간배치>

농운정사
농운정사는 퇴계의 제자들이 머물면서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건물은 ‘工’자 모양으로 하였는데 학생들의 공부가 성취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퇴계가 설계하였다. 농운정사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동쪽 마루는 시습재(時習齋)로 공부를 하는 곳이고, 서쪽 마루는 관란헌(觀欄軒)으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었다. 마루 뒤쪽에는 지숙료(止宿寮)가 있는데 서당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 ‘지숙’의 어원은 ‘자로를 집에 묵어가게 하다.(止子路宿)’에서 온 것이다. 퇴계의 ‘지숙료’는 주자 지숙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止)는 ‘머물다’는 뜻이고 숙(宿)은 ‘묵다’는 뜻, 료(寮)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작은 집’이란 뜻으로 쓰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22년
  2. 도산서원 홈페이지, 2022년
  3.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보물), 퇴계 이황이 후학을 양성하던 곳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에 있는 도산서당(陶山書堂, 보물)이다. 이곳은 퇴계 이황이 머물면서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다.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중기(1561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퇴계 이황이 제자들과 함께 머물면서 공부하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유서깊은 곳이다. 퇴계가 머물던 방은 완락재(玩樂齋이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주자(朱子)의 글에서 인용한 이름으로 학문의 즐거움과 겸손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조선시대 서당이 점차 확장되면서 서원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보물) 01-20221029<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보물)>

16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1칸의 작은 건물로 마루와 온돌, 부엌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제자가 늘어나면서 부엌과 마루를 확장했는데 마루에는 덧지붕을 달아내었다. 당시 선비들이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보물) 03-20221029<도산서당>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보물) 02-20221029<’암서헌’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약간 넓은 마루>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보물) 04-20221029<온돌방과 부엌>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보물) 05-20221029<옆쪽에서 본 부엌 출입문>

도산서당은 퇴계 사후에 도산서원을 조성하면서도 생전에 머물렀던 서당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특이한 형태의 서원(書院) 공간배치이다. 도산서원 출입문을 들어서면 동쪽에는 도산서당이, 서쪽에는 농운정사가 배치되어 있다. 농운정사는 제자들이 머물면서 공부하는 공간이다.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보물) 09-20221029<도산서원 앞쪽에 배치된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보물) 07-20221029<도산서원을 들어서면 보이는 도산서당>

도산서원<도산서원 공간배치>

도산서당(陶山書堂, 보물)
도산서당은 퇴계가 만년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1560년 완성되었으며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원래 부엌, 온돌방, 마루로 되어 있었는데, 제자들이 늘어나면서 부엌과 마루를 확장하였으며 확장한 마루 위에는 덧지붕을 달았다. 퇴계가 머물던 방의 이름은 완락재(玩樂齋)인데 ‘완상하며 즐긴다.’의 의미이다. 제자를 가르쳤던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으로 ‘바위에 깃들어 작은 효험을 바란다.’는 뜻을 포함한다. 두 이름 모두 주자(朱子)의 글에서 따온 것으로, 학문의 즐거움과 겸손한 마음을 담았다. (안내문, 안동시, 2022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경주 도봉서당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도봉서당(桃峯書堂)이다. 조선 중종 때(1545년) 유학자 황정(1426-1497)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추보재(追報齋)라는 재실로 처음 건립되었다. 오랜 세월 전란 등을 거치면서 훼손된 것을 후손들의 서원 형식으로 중건하였다. 건물은 강당인 도봉서당을 앞에 두고 뒷편에 사당을 배치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도봉서당>

OLYMPUS DIGITAL CAMERA<숭앙문>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건물인 도봉서당>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인 상허당>

경주 도봉서당(桃峯書堂), 경북 경주시 서악동 709-1번지
도봉서당은 조선 성종 대의 학자였던 불권헌 (不倦軒) 황정(1426~1497)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45년(중종 1년) 지금의 위치에 추보재(追報齋)라는 묘하재실(墓下齋室)로 건립되었다. 이후 전란(亂)과 긴 세월을 거치며 훼손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불권헌(不倦軒) 황정의 후손들이 1915년 추보재가 있었던 자리에 도봉서당(桃峯書堂) 일곽을 중건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이 서당은 숭앙문(嵩仰門)·도봉서당(桃峯書堂)·추보재(追報齋)·연어재(鳶魚齋)·상허당(尙虛堂) 등 모두 7동 이며 일종의 서원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배치형식은 재사(齋舍)를 강당 뒤에 둔 전강당 후재사형인데, 이는 경상도 지역에서 보기 드문 예(例)이다. 강당(도봉서당)은 정면 5칸·옆면 1.5칸으로 전면에 툇마루를 두었고, 옆·뒷면에 쪽마루를 둘렀다. 사당(상허당)은 정면 4칸·옆면 1.5칸이며, 중당협실(中堂室)로 구성된 바로 볼 때 강당형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서재(연어재)는 남쪽과 동쪽면을 모두 팔작지붕으로 처리하여 두 개의 정면을 갖게 한 점이 눈길을 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경주 양동마을 강학당

경북 경주시 강동면 안강마을에 있는 강학당(講學堂)이다. 구한말에 마을 여주이씨 집안에서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작은 서당이다. 건물은 ‘ㄱ’자형으로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했으며 오른쪽에 마루와 작은 방이 있는 날개채를 달아 내었다. 건물 뒷편에는 서당을 관리하기 위해 지은 작은 행랑채가 있다. 앞쪽에 있던 서당건물이었던 심수정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양반 집성촌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었던 서당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강학당>

OLYMPUS DIGITAL CAMERA<강학당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날개채에 있는 작은 장판각>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행랑채>

OLYMPUS DIGITAL CAMERA<강학당으로 들어오는 길>

강학당(講學堂)
이집은 여주 이씨 집안의 서당으로 지족당 이연상이 고종7년(1870)경에 세웠다. 경주 손씨 집안의 서당인 안락정과 쌍벽을 이룬다. 공부하는 곳이니 만큼 대문과 담장 없이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었으며 앞마당에서 마을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장판각’이라는 편액이 걸린 1/3칸짜리 방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이씨 집안은 이 서당 이외에도 규모가 좀더 큰 경산서당을 소유하고 있다. 동쪽에 서 있는 행랑채는 서당의 살림살이를 맡았던 곳이다.(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양동마을 경산서당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경산서당(景山書堂)이다. 이언적의 손자인 무첨담 이의윤을 배향할 목적으로 세워진 서당이다. 원래는 마을 안쪽 안계리에 있었는데 그곳에 저수지가 건설되면서 종가인 무첨당에서 가까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경산서당이 세워진 19세기에는 서원이 난립하여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시기로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지 못하고 서당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서원 설립을 준비하기 위해 세워진 서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경산서당>

건물은 강학공간인 강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출입문인 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앞면 5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온돌방 1칸씩을 두고 있다.  대청마루에는 ‘이선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청마루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온돌방>

유생들이 기숙는 동재만을 두고 있는데 동재만을 두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가운데 1칸은 작은 마루가 있으며,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재>

OLYMPUS DIGITAL CAMERA<경산서당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서당 앞 넓은 마당>

<출처>

  1. cultural Heritage Wiki,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