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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사적 55호), 안향을 모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소수서원(紹修書院, 사적 55호)이다.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을 모시기 위해 풍기군수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이란 이름으로 세웠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이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직하면서 국왕으로부터 ‘소수서원’이란 현판을 하사받은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서원은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중국 당나라 때 집현전서원 등의 설치에서 유래하였다.

소수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답게 건물이 크고 그 숫자다 많은 편이다. 경사진 언덕에 계단식으로 강학공간과 제향향공간이 배치되는 후대의 서원과는 달리 죽계천변에 옛 절터에 여러 건물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있다. 강학공간을 동쪽에, 제향공간을 서쪽에 두고 있는 동학서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서원의 중심에는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걸린 강학당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유생들이 공부하는 직방재와 일신재, 학구재, 지락재와 서고, 전사청 등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서쪽편에 안향 등 을 모신 사당인 문성공묘가 배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 소수서원(사적 55호). 숙수사란 사찰이 있던 곳에 강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다른 서원에 비해 유행들이 머물렀던 기숙사 건물이 크고 많은 편이다.

소수서원 들어가는 길

소수서원은 안향이 머물렀던 숙수사란 절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동쪽으로 죽계천이 흐르고 서쪽에는 나즈막한 언덕이 있으며, 학자수라 불리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솔밭길에는 절터임을 말해주는 당간지주를 볼 수 있으며, 죽계천 너머로 옛사람들이 쉬었던 취한대란 작은 정자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입구.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서쪽 낮은 둔덕에는 학자수라 불리는 울창한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서원 들어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59호).

SANYO DIGITAL CAMERA서원 동쪽으로 흐르는 죽계천. 고려말 유학자 안축이 지은 ‘죽계별곡’의 배경이 되는 하천이다.

SANYO DIGITAL CAMERA죽계천 옆에 세워진 작은 정자인 취한대.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출입문. 후대 서원과는 달리 솟을삼문이나 문루를 사용하고 있지 않고 작은 협문을 두고 있다. 그 앞에은 제사에 올리던 제물을 잡던 성생단이 있다.

진입영역
서원 왼편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둔덕은 거북이가 알을 품은 모습처럼 보여 영귀봉이라 한다. 영귀봉 주변으로 수백년 된 적송이 장관인데, 소나무에게서 선비의 충절을 배운다는 뜻으로 학자수라 불리기도 한다. 보기에도 멋진 소나무 숲은 서원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영귀봉 위에는 작별의 정을 나누던 소혼대가 있다. 서원 정문인 지도문 앞 잔듸 제단은 성생단이다. 매년 봄, 가을에 안향 선생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할 가축의 흠결을 살피고 잡던 제단터이다. 지도문 오른쪽 경령점은 죽계수를 따라 펼쳐지는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학문을 이야기 하던 곳으로 1543년 주세붕이 세웠다. 경렴정에는 스승인 퇴계 이황의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썼다고 전해지는 초서의 대가 고산 황기로의 현판이 남아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강학공간

소수서원은 후학양성을 위해 세워진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강당 건물인 강학당(보물 1403호)를 중심으로 여러동의 건물들을 두고 있다. 유생들이 머물렀던 기숙사는 3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학문의 단계에 따라 지락재, 학구재, 일신재와 직방재가 있으며, 평상시 많은 유생들이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강학공간 한쪽편에는 도서관 격인 장서각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의 중심 건물인 강학당(보물 1403호). 앞면 4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궁궐건물에서 볼 수 있는 겹처마를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당 내부. 명종이 친필로 ‘소수서원’이라 적은 현판이 걸려 있다. 퇴계 이황의 건의로 국왕으로 부터 현판을 하사받은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이 머무는 기숙사 중 가장 낮은 단계인 지락당. 앞면 3칸 건물로 온돌방 1칸, 마루 2칸으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두번째 단계인 학구재. 앞면 3칸짜리 건물로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 1칸씩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3번째와 4번째 단계 유생들이 머무는 일신재와 직방재이다. 앞면 6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이다.

SANYO DIGITAL CAMERA서적과 목판을 보관하던 장서각.

SANYO DIGITAL CAMERA일영대. 일영대는 해시계로 알려져 있다. 자연속 주춧돌 위에 문지도리석을 올려 놓은 것으로 숙수사의 유적이라는 설도 있다.

강학영역
서원은 크게 강학영역과 제향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강학영역은 학문을 닦고 배우던 공간이다. 앞의 제일 큰 건물이 강학당(보물 1403호)이고, 오른쪽 뒤편으로 돌아가면서 지락재와 학구재, 일신재와 직방재가 위치한다. 강학당 왼쪽으로 장서각이 있다. 건물배치는 하학상달, 즉 학문의 차례와 단계를 뜻한다. 독서를 통한 학문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지락재를 시작으로, 성현의 길을 따라 학문을 구하는 학구재,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일신재, 그리고 깨어있어 마음을 곧게 한다는 직방재, 이 직방재에 이르면 학문을 크게 이루게 되므로 비로소 명륜당이라 불리는 강학당에 들어 세상의 이치를 밝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배출된 인재가 4,000여명에 달한다. 1543년에 건립된 강학당 내부에는 명종임금이 내려준 친필 편액이 걸려있으며,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장서각은 책과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제향공간

소수서원은 고려 때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제향공간에는 사당인 문성공묘(보물 1402호)과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있다. 사당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는데 후대 서원과는 달리 그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반면에 사당을 사(祠)라 하지 않고 묘(廟)로 격을 높여 부르고 있다. 사당 뒷편에는 안향초상(국보 111호)와 주세붕초상(보물 717호)를 모시기 위한 건물인 영정각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서원 동쪽편에 위치한 사당인 문성공묘(보물 1402호). 다른 서원에 비해 건물도 소박하며 공간도 넓게 쓰고 있지 않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뒷편에 있는 전사청.

SANYO DIGITAL CAMERA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영정각. 1970년대에 세워진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정료대와 관세대. 정료대는 밤에 서원을 밝히던 조명시설로 윗부분 석재 위에 관솔을 피워 정원을 밝혔다. 관세대는 사당을 참배할 때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대야를 올려놓는 받침들이다.

제향영역
제향영역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문성공묘(보물 1402호)와 전사청, 영정각 등의 건물이 있다. 문성공묘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문성공 회헌 안양의 위패를 모신 사묘로 1542년 주세붕이 세웠다. 문성공묘를 사(祠)라 하지 않고 묘(廟)로 격을 높여 부른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매년 봄, 가을로 두 번의 제사를 지낸다. 문성공묘 뒤편에 있는 전사청은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준비하던 곳이다. 일반적으로 전당후묘라 하여 강학공간 뒤에 제향공간을 두는데 서쪽방향을 중시하는 우리 전통사상에 따라 강학공간 측면 서쪽에 제향공간을 배치한 독특한 사례이다. 서원에 영정각이 있는 것도 특이한 일로 안향초상(국보 111호)과 주세붕초상(보물 717호) 등 보물급 영정을 많이 소장하고 있어 1975년에 특별히 지어진 건물이다. 현재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SANYO DIGITAL CAMERA서원 뒷편에 있는 사료관

소수서원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 지역 출신 고려시대 유학자인 회헌 안양의 위패를 모신 사묘를 세우고, 이듬해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후에 퇴계 이황이 명종임금께 건의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받았다. 서원은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강학공간에는 강학당을 중심으로 지락재, 학구재, 일신재, 직방재 등의 건물이 있고 제향공간에는 문성공묘, 전사청, 영정각 등이 있다. 소수서원은 숙수사라는 절터에 세워졌다. 서원 안팎으로 당간지주 등 숙수사 유적이 남아 있어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 1402호),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을 모신 사당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에 있는 문성공묘(보물 1402호)이다. 고려시대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을 주향으로 안축, 안보, 주세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앞쪽 제사 준비를 하는 퇴간을 두고 있다. 건물 주위로 담장을 둘렀으며, 앞과 옆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데 후대 서원의 사당과는 달리 작은 협문을 사용하고 있다. 최초 서원에 세워진 사당으로 ‘사(祠’자를 쓰고 있는 다른 사당과는 달리 ‘묘(廟)’자를 사용하고 있어 격이 높음을 짐작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문성공묘(보물 1402호). 건물은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앞에는 ‘문성공묘’라 적힌 현판이 달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출입문. 삼문형식을 하고 있는 후대 서원의 삼문과는 달리 작은 협문을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학서묘의 공간배치에 따라 서쪽에 배치되어 있다. 향교나 후대 서원과는 달리 마당 한쪽에 담장으로 둘러진 작은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주 소수서원 강학당(보물 1403호), 최초의 서원 ‘백운동’이란 현판이 걸린 건물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에 있는 강학당(보물 1403호)이다. 서원에서 교육기능을 하는 강학공간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서원 출입문이 있는 남쪽 기단에 계단이 설치하여 내부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높게 쌓고 그 위 건물을 올렸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사방에 툇마루를 설치하여 공간이 넓어 보인다.

조선 중종때 주세붕이 성리학을 처음 도입한 안향을 모신 ‘백운동서원’을 세울때 강학공간으로 정의한 영역으로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건물 남쪽에 걸려있고, 명종이 친필로 쓴 ‘소수서원’ 현판이 내부 대청마루에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강학당(보물 1403호). 서원 강학공간 중심건물로 동향을 하고 있지만, 현판은 남향을 하고 있다. 최초로 세워진 백운동 서원의 강당으로 후대에 세워진 서원의 강당이나 향교의 명륜당과는 약간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놓았다. 최초의 서원답게 궁궐 전각을 연상시키는 건물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을 향하는 건물 남쪽에 ’백운동’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사방에 1 m 정도 툇마루를 두어 잠시 앉아서 쉬거나 통로로 사용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앞쪽에서 본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당 내부. 정면에 명종이 친필로 쓴 ‘소수서원’이라 적힌 현판을 볼 수 있다. 내부는 3면이 개방되어 있는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안동 도산서원(사적 170호), 퇴계 이황을 모신 서원건축을 대표하는 서원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도산서원(陶山書院, 사적170호)이다. 퇴계 이황을 모시기 위해 조선중기 선조 7년(1574)에 세워진 서원으로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선조는 명필 한석봉이 쓴 편액을 하사하였으며, 광해군 때 월천 조목이 배향되었다. 퇴계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류성룡, 김성일이 있는데 이들 또한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문신이다. 처음에는 이들과 함께 인근 호계서원에 모셔졌으나 두사람의 서열을 정함에 있어서 지역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어 류성룡은 하회마을 인근의 병산 서원에, 김성일은 임천서원에 따로 모셨다.

도산서원은 영남 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으며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에 존속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한곳이다. 1970년에 성역화 사업으로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서 오늘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서원 도서관인 광명실에는 약 5000여권의 장서가 있었으며, 장판각에는 2790여판의 목판이 보관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인근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겨 보관.전시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도산서원(사적 170호). 퇴계 이황을 모신 곳으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 장소이면서도 서원 건축을 대표하는 곳으로도 의미가 큰 곳이다.

주요 건물로는 퇴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상덕사(보물 211호), 강학공간 중심건물로 강당인 전교당(보물 210호). 기숙사인 동.서재. 서적을 보관하는 광명실과 장판각, 이황이 직접 세웠으며 가르치던 도산서당과 부속 건물 등이 있다. 선현을 모시고 후진을 양성하는 서원 본래의 기능에서도 대표적인 서원이면서도, 서원 건축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곳이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고 있는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계단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서원내 어디에서든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들어가는 길.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도산서원은 학문을 수양하는 서원으로서는 입지가 상당히 좋은 곳에 있다.  민가와는 상당이 떨어져 있는 숲속에 있으면서도 낙동간 너머 넓은 벌판이 있어서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세상을 보면서 치세를 고민할 수 있는 장소이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들어가는 숲길.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SANYO DIGITAL CAMERA낙동강 너머로 꽤 넓은 벌판이 있고, 민가들이 많은 마을도 볼 수 있다. 마을과는 낙동강으로 막혀 있어서 멀리 떨어진 듯 하면서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낙동강 건너편에는 조선후기 정조 때 이곳 시행한 과거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시사단을 볼 수 있다.

시사단
강 건너편 비각은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조대왕께서 퇴계 이황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그 16년(1792)에 관원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임금의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다음날 이곳 송림에서 어제로 과거를 보았는데, 응시자는 7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 체재공이 지었다.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만이 현 위치에서 지상 10 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의 자리를 표해두고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앞 마당. 서원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는 고목들을 여럿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당에 있는 우물인 열정.

열정(冽井)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역경의 정괘 ‘정렬한천식’에서 의미를 취하였다. 우물은 마을이 떠나도 옮겨가지도 못하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다. 이처럼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퍼내어 마시듯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심신을 수양해야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고목. 퇴계 이황이 산책을 했던 길이 고목 뒷편에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고목 뒷편 퇴계 이황이 산책을 즐겼던 언덕인 천연대.

천연대
퇴계 선생께서 자연의 이치를 체득하고 심성수양을 위해 산책하시던 곳이다. 『시경』 중의 ‘하늘에는 새가 날고 물에는 물고기가 뛰어 논다’에서 인용하여 천연대라 이름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서원 출입문. 누각이나 솟을삼문이 있는 다른 서원과는 달리 작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서원의 풍경을 가리지 않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도산서당, 퇴계 이황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던 공간

정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중심영역으로 강학공간까지는 계단식으로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퇴계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던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다. 동쪽에는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도산서당이 있고 서쪽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관리소인 하고직사, 강당 역할을 했던 역락서재가 있다. 후에 도산서원으로 바뀔때 옛 건물들은 그대로 두고 뒷편에 강학공간과 사당을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정문을 들어서면 도산서원을 대표하는 장면인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진 전교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쪽편에 자리한 도산서당. 퇴계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직접 지은 건물로 앞면 3칸 규모의 소박한 건물이다. 왼쪽에 퇴계가 주로 머물렀던 작은 온돌방이 있으며, 오른편에 대청마루가 있다.

도산서당
퇴계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재’라 하였고, 마루는 ‘암서헌’이라 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대청마루.

SANYO DIGITAL CAMERA마당 한편에 있는 연못인 ‘정우당’. 퇴계선생은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우당
퇴계 선생은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 연꽃은 진흙탕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속은 비고 줄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맑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마당에 있는 작은 우물인 ‘몽천’. 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간다는 의미로 ‘역경’의 몽괘에서 의미를 취하여 몽천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동쪽편에 있는 작은 화단. ‘절우사’라고 불리우며 이 곳에 매, 대나무, 국화, 소나무 등을 심어 퇴계선생이 직접 가꾸셨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절우사에서 본 도산서당.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이다. 도산서원은 강당인 전교당 아래에 동.서재가 있지만, 이 곳 도산서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서원내에는 농운정사외에도 역락서재라는 별도의 건물이 있으며, 다른 서원에 비해서 고직사 건물또한 많은 방을 두고 있다. 아마도 전국각처에서 도산서원을 찾아온 선비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농운정사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다. 공부하던 동편 마루를 ‘시습재’라 하였고,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이라 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농운정사 옆쪽에 있는  역락서재. 퇴계가 도산서당에 머물때 제자들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서원을 찾은 손님들이 묵는 장소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락서재
퇴계 선생께서 도산서당에서 학물을 강론할 때 정사성을 비롯한 제자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출입문에서 내려다 본 모습. 건물배치와 정원이 아름답다.

강학공간

도산서원 강학공간은 서원 뒷편 높은 곳에 있는데 상덕사를 앞쪽에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멀리까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강학공간에는 강당건물인 전교당(보물 210호)를 비롯하여 동.서재, 도서관에 해당하는 많은 서적들을 보관했던 동.서광명실, 목판을 보관했던 장판각이 있다. 강학공간 건물들은 퇴계가 직접 세운 것은 아니고 그의 사후 서원으로 바뀌면서 지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출입문인 진도문.

SANYO DIGITAL CAMERA진도문 동쪽에 있는 누각 형태의 건물인 동광명실. 서적을 보관하던 도서관 건물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주위에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었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서광명실.

광명실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동.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지었다. 광명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 준다.”는 뜻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건물인 전교당(보물 210호). 앞쪽에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멀리 낙동강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온돌방 1칸과 앞면 3칸의 넓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도산서원’이라 적힌 현판은 명필 한석봉의 글씨로 선조가 내린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전교당 대청마루. 앞쪽에 문을 달고 있지 않아 바람이 시원하며 멀리 낙동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출입문 지붕을 크게 만들어 경치를 약간 가리고 있는데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동.서재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건물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동편 건물을 ‘박약재’라 하고, 서편 건물을 ‘홍의재’라 한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동재 뒷편에 있는 목판을 보관했던 장판각.

장판각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선조어필, 퇴계선생문집, 유묵, 언행록, 병서, 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을 보관해오다가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제향공간

상덕사(보물 211호)는 도산서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으로 퇴계 이황선생의 제자인 조목 선생의 위패와 같이 모셔져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출입문. 도산서원이 세워질 때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쪽에 제사 준비를 하는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옆에 있는 전사청.

고직사, 서원 관리인이 머무는 살림집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살림집인 고직사는 강학공간 옆에 있는 상고직사와 농운정사 뒷편에 있는 하고직사가 있다. 다른 서원에 비해 건물 규모도 크고 방의 숫자 또한 많은편이다. 서원이 주변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지방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묵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옆에 있는 상고직사. ‘ㅁ’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살림집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에는 제사 준비를 하는 넓은 대청마루가 있으며 양쪽으로 제기 등을 보관하는 창고가 많은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 출입문과 문간방.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에서 내려다 본 풍경.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기숙사였던 농운정사 뒷편에 있는 하고직사. 손님들이 머물렀던 공간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에서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퇴계종택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및 삼문(보물 211호),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에 있는 상덕사 및 삼문(보물 211호)이다. 상덕사(尙德祠)는 퇴계 이황과 제자 조목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으로 도산서원 제일 뒷편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호계서원에서는 도산의 학풍을 이어받은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이 퇴계 제자로 같이 위패를 모셨으나, 당시 지역민들 사이에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 사이에 그 위상의 높고 낮음을 다투다가 같이 빠지면서 제자로서는 조목만 남게 되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쪽에 제사 준비를 하는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사당 삼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사당을 지을 때 같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상덕사 경내에는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고 담장너머로만 그 모습을 살짝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중기 선조 때 처음 세워졌다.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앞 마당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삼문. 사당을 세울때 같이 지어진 것으로 경사진 언덕에 있어 앞면 기둥을 높게 하였다. 양쪽에는 원래 흙담장이 있었는데, 1970년대 수리하는 과정에서 돌담장으로 바뀌었다.

SANYO DIGITAL CAMERA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

도산서원 상덕사, 보물 211호,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을 모시는 사당으로, 이를 둘러싼 담장도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에는 흙담장이었으나, 도산서원 정비사업 때 현재의 돌담장으로 바꾸었다. 상덕사는 조선 선조 7년 (1574)에 건립되었으며 이황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곳이다. 도산서원의 제일 뒤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문을 두었다. 기단은 화강암으로 만든 돌로 4단을 쌓은 후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의 맞배집이다. 건물의 구조는 전교당과 비슷하며 네모기둥에 공포를 두지 않는 간략한 굴도리집이며 부연이 없는 홑처마로 꾸며 매우 검소하게 지은 건물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