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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 강학당(보물), 최초의 서원 ‘백운동’이란 현판이 걸린 건물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에 있는 강학당(보물)이다. 서원에서 교육기능을 하는 강학공간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서원 출입문이 있는 남쪽 기단에 계단이 설치하여 내부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높게 쌓고 그 위 건물을 올렸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사방에 툇마루를 설치하여 공간이 넓어 보인다.

조선 중종때 주세붕이 성리학을 처음 도입한 안향을 모신 ‘백운동서원’을 세울때 강학공간으로 정의한 영역으로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건물 남쪽에 걸려있고, 명종이 친필로 쓴 ‘소수서원’ 현판이 내부 대청마루에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강학당(보물). 서원 강학공간 중심건물로 동향을 하고 있지만, 현판은 남향을 하고 있다. 최초로 세워진 백운동 서원의 강당으로 후대에 세워진 서원의 강당이나 향교의 명륜당과는 약간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 놓았다. 최초의 서원답게 궁궐 전각을 연상시키는 건물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을 향하는 건물 남쪽에 ’백운동’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사방에 1 m 정도 툇마루를 두어 잠시 앉아서 쉬거나 통로로 사용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앞쪽에서 본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당 내부. 정면에 명종이 친필로 쓴 ‘소수서원’이라 적힌 현판을 볼 수 있다. 내부는 3면이 개방되어 있는 넓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안동 도산서원(사적), 2010년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도산서원(陶山書院, 사적)이다. 퇴계 이황을 모시기 위해 조선중기 선조 7년(1574)에 세워진 서원으로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선조는 명필 한석봉이 쓴 편액을 하사하였으며, 광해군 때 월천 조목이 배향되었다. 퇴계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류성룡, 김성일이 있는데 이들 또한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문신이다. 처음에는 이들과 함께 인근 호계서원에 모셔졌으나 두사람의 서열을 정함에 있어서 지역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어 류성룡은 하회마을 인근의 병산 서원에, 김성일은 임천서원에 따로 모셨다.

도산서원은 영남 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으며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에 존속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한곳이다. 1970년에 성역화 사업으로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서 오늘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서원 도서관인 광명실에는 약 5000여권의 장서가 있었으며, 장판각에는 2790여판의 목판이 보관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인근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겨 보관.전시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도산서원(사적). 퇴계 이황을 모신 곳으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 장소이면서도 서원 건축을 대표하는 곳으로도 의미가 큰 곳이다.

주요 건물로는 퇴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상덕사(보물), 강학공간 중심건물로 강당인 전교당(보물). 기숙사인 동.서재. 서적을 보관하는 광명실과 장판각, 이황이 직접 세웠으며 가르치던 도산서당과 부속 건물 등이 있다. 선현을 모시고 후진을 양성하는 서원 본래의 기능에서도 대표적인 서원이면서도, 서원 건축 측면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곳이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고 있는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계단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서원내 어디에서든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들어가는 길.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도산서원은 학문을 수양하는 서원으로서는 입지가 상당히 좋은 곳에 있다.  민가와는 상당이 떨어져 있는 숲속에 있으면서도 낙동간 너머 넓은 벌판이 있어서 세상과 격리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세상을 보면서 치세를 고민할 수 있는 장소이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들어가는 숲길.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SANYO DIGITAL CAMERA낙동강 너머로 꽤 넓은 벌판이 있고, 민가들이 많은 마을도 볼 수 있다. 마을과는 낙동강으로 막혀 있어서 멀리 떨어진 듯 하면서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낙동강 건너편에는 조선후기 정조 때 이곳 시행한 과거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시사단을 볼 수 있다.

시사단
강 건너편 비각은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조대왕께서 퇴계 이황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그 16년(1792)에 관원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임금의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다음날 이곳 송림에서 어제로 과거를 보았는데, 응시자는 7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 체재공이 지었다.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만이 현 위치에서 지상 10 m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의 자리를 표해두고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 앞 마당. 서원의 오랜 내력을 말해주는 고목들을 여럿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당에 있는 우물인 열정.

열정(冽井)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역경의 정괘 ‘정렬한천식’에서 의미를 취하였다. 우물은 마을이 떠나도 옮겨가지도 못하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다. 이처럼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퍼내어 마시듯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심신을 수양해야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고목. 퇴계 이황이 산책을 했던 길이 고목 뒷편에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고목 뒷편 퇴계 이황이 산책을 즐겼던 언덕인 천연대.

천연대
퇴계 선생께서 자연의 이치를 체득하고 심성수양을 위해 산책하시던 곳이다. 『시경』 중의 ‘하늘에는 새가 날고 물에는 물고기가 뛰어 논다’에서 인용하여 천연대라 이름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서원 출입문. 누각이나 솟을삼문이 있는 다른 서원과는 달리 작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서원의 풍경을 가리지 않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도산서당, 퇴계 이황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던 공간

정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중심영역으로 강학공간까지는 계단식으로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퇴계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던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다. 동쪽에는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도산서당이 있고 서쪽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관리소인 하고직사, 강당 역할을 했던 역락서재가 있다. 후에 도산서원으로 바뀔때 옛 건물들은 그대로 두고 뒷편에 강학공간과 사당을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정문을 들어서면 도산서원을 대표하는 장면인 아름다운 정원이 꾸며진 전교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쪽편에 자리한 도산서당. 퇴계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직접 지은 건물로 앞면 3칸 규모의 소박한 건물이다. 왼쪽에 퇴계가 주로 머물렀던 작은 온돌방이 있으며, 오른편에 대청마루가 있다.

도산서당
퇴계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재’라 하였고, 마루는 ‘암서헌’이라 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대청마루.

SANYO DIGITAL CAMERA마당 한편에 있는 연못인 ‘정우당’. 퇴계선생은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우당
퇴계 선생은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 연꽃은 진흙탕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속은 비고 줄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맑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마당에 있는 작은 우물인 ‘몽천’. 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간다는 의미로 ‘역경’의 몽괘에서 의미를 취하여 몽천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동쪽편에 있는 작은 화단. ‘절우사’라고 불리우며 이 곳에 매, 대나무, 국화, 소나무 등을 심어 퇴계선생이 직접 가꾸셨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절우사에서 본 도산서당.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농운정사이다. 도산서원은 강당인 전교당 아래에 동.서재가 있지만, 이 곳 도산서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서원내에는 농운정사외에도 역락서재라는 별도의 건물이 있으며, 다른 서원에 비해서 고직사 건물또한 많은 방을 두고 있다. 아마도 전국각처에서 도산서원을 찾아온 선비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농운정사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工’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다. 공부하던 동편 마루를 ‘시습재’라 하였고,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이라 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농운정사 옆쪽에 있는  역락서재. 퇴계가 도산서당에 머물때 제자들이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서원을 찾은 손님들이 묵는 장소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락서재
퇴계 선생께서 도산서당에서 학물을 강론할 때 정사성을 비롯한 제자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출입문에서 내려다 본 모습. 건물배치와 정원이 아름답다.

강학공간

도산서원 강학공간은 서원 뒷편 높은 곳에 있는데 상덕사를 앞쪽에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멀리까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강학공간에는 강당건물인 전교당(보물 210호)를 비롯하여 동.서재, 도서관에 해당하는 많은 서적들을 보관했던 동.서광명실, 목판을 보관했던 장판각이 있다. 강학공간 건물들은 퇴계가 직접 세운 것은 아니고 그의 사후 서원으로 바뀌면서 지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출입문인 진도문.

SANYO DIGITAL CAMERA진도문 동쪽에 있는 누각 형태의 건물인 동광명실. 서적을 보관하던 도서관 건물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주위에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두었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서광명실.

광명실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동.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지었다. 광명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 준다.”는 뜻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건물인 전교당(보물 210호). 앞쪽에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멀리 낙동강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온돌방 1칸과 앞면 3칸의 넓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도산서원’이라 적힌 현판은 명필 한석봉의 글씨로 선조가 내린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전교당 대청마루. 앞쪽에 문을 달고 있지 않아 바람이 시원하며 멀리 낙동강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출입문 지붕을 크게 만들어 경치를 약간 가리고 있는데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SANYO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

동.서재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건물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동편 건물을 ‘박약재’라 하고, 서편 건물을 ‘홍의재’라 한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동재 뒷편에 있는 목판을 보관했던 장판각.

장판각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선조어필, 퇴계선생문집, 유묵, 언행록, 병서, 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을 보관해오다가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하였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제향공간

상덕사(보물 211호)는 도산서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사당으로 퇴계 이황선생의 제자인 조목 선생의 위패와 같이 모셔져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출입문. 도산서원이 세워질 때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쪽에 제사 준비를 하는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당 옆에 있는 전사청.

고직사, 서원 관리인이 머무는 살림집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살림집인 고직사는 강학공간 옆에 있는 상고직사와 농운정사 뒷편에 있는 하고직사가 있다. 다른 서원에 비해 건물 규모도 크고 방의 숫자 또한 많은편이다. 서원이 주변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지방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묵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강학공간 옆에 있는 상고직사. ‘ㅁ’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살림집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에는 제사 준비를 하는 넓은 대청마루가 있으며 양쪽으로 제기 등을 보관하는 창고가 많은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 출입문과 문간방.

SANYO DIGITAL CAMERA상고직사에서 내려다 본 풍경.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당 기숙사였던 농운정사 뒷편에 있는 하고직사. 손님들이 머물렀던 공간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도산서원에서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퇴계종택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및 삼문(보물), 2010년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에 있는 상덕사 및 삼문(보물)이다. 상덕사(尙德祠)는 퇴계 이황과 제자 조목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으로 도산서원 제일 뒷편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퇴계 이황선생의 모신 서원은 안동 월곡면에 있었던 호계서원이었으나,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도산서당 뒤편에 도산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호계서원에서는 도산의 학풍을 이어받은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이 퇴계 제자로 같이 위패를 모셨으나, 당시 지역민들 사이에 유성룡 선생과 김성일 선생 사이에 그 위상의 높고 낮음을 다투다가 같이 빠지면서 제자로서는 조목만 남게 되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쪽에 제사 준비를 하는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사당 삼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사당을 지을 때 같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상덕사 경내에는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고 담장너머로만 그 모습을 살짝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퇴계 이황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중기 선조 때 처음 세워졌다.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앞 마당

SANYO DIGITAL CAMERA상덕사 삼문. 사당을 세울때 같이 지어진 것으로 경사진 언덕에 있어 앞면 기둥을 높게 하였다. 양쪽에는 원래 흙담장이 있었는데, 1970년대 수리하는 과정에서 돌담장으로 바뀌었다.

SANYO DIGITAL CAMERA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

도산서원 상덕사, 보물 211호,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을 모시는 사당으로, 이를 둘러싼 담장도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에는 흙담장이었으나, 도산서원 정비사업 때 현재의 돌담장으로 바꾸었다. 상덕사는 조선 선조 7년 (1574)에 건립되었으며 이황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곳이다. 도산서원의 제일 뒤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문을 두었다. 기단은 화강암으로 만든 돌로 4단을 쌓은 후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의 맞배집이다. 건물의 구조는 전교당과 비슷하며 네모기둥에 공포를 두지 않는 간략한 굴도리집이며 부연이 없는 홑처마로 꾸며 매우 검소하게 지은 건물이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보물), 2010년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에 있는 전교당(보물)이다. 도산서원 강학공간 중심 역할을 하는 강당 건물로 사당인 상덕사를 제외하고는 제일 높은 곳에 있다. 건물 앞에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서 낙동강과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앞면 1칸은 온돌방. 나머지 3칸인 넓은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형태나 구조는 간단하며 아주 소박하고 검소하게 지어진 건물로 여겨진다. 대청마루 앞에 문이 없어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으며, 옆면과 뒷면에는 쌍여닫이문이 있다. 조선중기 선조 때 세워진 건물로 당시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다. 대청마루 앞 현판에 적힌 ‘도산서원’이라는 글씨는 선조가 도산서원에 이름을 내리면서 당시 명필인 한석봉 선생이 선조 앞에서 쓴 글씨라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도산서원 강학공간 중심건물인 전교당(보물). 앞면 4칸의 강당건물로 단순하면서도 크지 않게 지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이 크지는 않지만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높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전교당 대청마루 앞. 걸터 앉아 경치를 감상하기 좋다. 앞쪽에는 문을 달지 않아 개방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 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출입문 지붕을 크게 만들어 경치를 막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하는 ‘도산서원’ 현판.

SANYO DIGITAL CAMERA전교당 대청마루. ‘전교당’이라 적힌 현판을 비롯하여 글씨가 적힌 현판들이 걸려 있다. 뒷쪽에는 쌍여닫이문이 있는데, 조선중기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넓은 대청마로. 한쪽에는 ‘한존재’라 적힌 온돌방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걸터 앉을 수 있는 툇마루가 있다.

도산서원 전교당(典敎堂), 보물 210호,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이 건물은 퇴계 이황을 추모하는 도산서원의 강당에 해당된다. 전교당은 조선 선조 7년(1574년)에 건립되었다. 건물의 구조는 매우 간소하며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인데,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한존재)으로 구성되었다. 대청의 전면은 개방되어 있으나 측면과 배면에는 각 칸마다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쪽마루는 건물 뒷면의 대청 뒷부분과 온돌방의 오른편에만 설치하였다. 대청의 윗부분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선조가 이름을 내린 현판의 글씨는 명필인 석봉 한호가 쓴 글씨라고 한다. 전면 좌우에는 부속건물로 동재인 박약재와 서재인 홍의재가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달성 도동서원(사적), 조선 5대 서원으로 손꼽히는 김굉필을 모신 서원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도동서원(道東書院, 사적)이다. 조선중기 유학자 김굉필을 모신 서원으로 선조 때 인근 비슬산 자락에 처음 세워졌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04년 이곳으로 옮겨 중건하였다. 선조가 직접 ‘도동서원’이란 글자를 쓴 현판을 내린 사액서원이다. 숙종때 그의 학풍을 계승한 한강 정구가 이곳에 같이 모셔졌다. 전국 5대 서원으로 손꼽히며 구한말 서원훼철령에도 제외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한곳이다.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 곳에 있으면서도 낙동강 너머로 마을과 농토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서원으로의 입지가 아주 좋은 곳으로 도산서원이나 병산서원과 입지조건 측면에서 같은 맥락을 하고 있다. 건물은 경사진 지형에 수월루, 환주문, 중정당, 사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흙과 기와로 쌓은 담장이 강당,사당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김굉필(1454~1504년)은 조선전기 성리학자로 사림세력의 태두라 할 수 있는 김종직에게 학문을 배우고, 조광조에게 학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종직->김굉필->조광조->이황.이이로 이어지는 정통 성리학을 계승한 유학자로서 후대에 많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를 모시는 서원으로는 아산의 인산서원, 희천의 상현서원, 순천의 옥천서원, 달성의 도동 서원 등이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도동서원(사적). 전국 5대 서원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낙동강과 주변 경치가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동서원 출입문인 수월루. 앞면 3칸의 2층 문루로 서원을 찾은 손님들과 함께 낙동강 경치를 감상하면서 풍류를 즐기던 공간으로 보인다. 수월루 주위에 선비들이 좋아했던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출입문인 환주문이다. 강당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좋게 출입문을 작게 만들었다. 양쪽으로 기와와 흙을 쌓아서 만든 아름다운 담장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공간 중심건물인 중정당. 앞면5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서원건축물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건물은 잘 다듬은 화강석 석재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기단에는 4개의 용머리로 장식하고 있는데 서원 앞 낙동강물이 넘쳐 흐르지 않도록 하는 바램을 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대청마루 내부. ‘도동서원’이라 적힌 현판은 명필로 손꼽히는 선조가 직접 써서 내렸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강학공간 앞 담장과 출입문이 경관을 가리지 않도로 하고 있다. 기와와 흙으로 쌓고 수막새로 장식한 담장이 주위 경관과 어울려 좋은 경관을 만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생들이 머물면서 공부하는 동재인 거인재.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온돌발 2칸과 마루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서재인 거의재.

OLYMPUS DIGITAL CAMERA거의재 안쪽에 있는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던 장판각.

강학영역
강학영역은 학문을 닦고 배우던 공간이다. 정면에 보이는 중정당이 원장과 유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던 강당인데, 그 앞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학문을 닦으며 기거하던 동쪽 기숙사 ‘거인재’와 서쪽 기숙사 ‘거의재’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또한 강당의 정면 기단에는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와 다람쥐 모양의 동물이 장식되어 있다. 이 4개의 용머리는 서원 앞 낙동강물이 넘쳐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한 비보책으로 물의 신 ‘용’을 상징한다. 그리고 강당 주위 담장은 흙과 기와를 쌓은 맞담으로 형태와 구성이 매우 아름답다. 장판각은 유물과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뒷편에는 사당이 있는 제향공간은 축대를 쌓아 조성했다. 축대에는 다양한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을 오르는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안쪽에도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사당에는 김굉필과 그의 학풍을 계승한 정구가 모셔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사를 준비하는 건물인 전사청. 원래 전사청은 제기 등을 보관하는 작은 건물이고,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은 고직사라고 하는데, 도동서원에서는 한 건물에서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 있는 곳간채. 흙담에 기와를 얹어놓은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전사청을 출입하는 문간채.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에서 본 전사청 문간채.

OLYMPUS DIGITAL CAMERA도동서원 앞에 심어진 은행나무. 임진왜란 직후 도동서원을 중건할 때 심은 것으로 ‘김굉필나무’로 불린다. 한그루의 나무이지만 가지가 울창해서 숲처럼 보인다.

김굉필 나무
김굉필은 조선 전기 성리학자로서 벼슬길보다는 학문과 교육에 치중하여 성리학과 사림 정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리하여 광해군 2년(1610)에는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계승한 ‘동방오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조선 선조 40년(1607)에 김굉필의 외증손 한강 정구가 도동서원 건립을 기념해 심어서 ‘김굉필 나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나무는 도동서원 앞을 돌아 흐르는 낙동강을 굽어보며 서 있는데, 높이가 25 m, 줄기 둘레가 8.7 m이다.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많이 벌어져 있어서 이 나무를 멀리서 바라보면 울창한 숲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도동서원을 오가는 버스.

OLYMPUS DIGITAL CAMERA도동서원 앞을 휘감으면서 흐르는 낙동강.

OLYMPUS DIGITAL CAMERA서원 뒷편 다림재를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동서원과 낙동과 맞은편에 마을과 농토가 있다. 

달성 도동서원(사적 488호)
도동서원은 조선시대 유학자인 한훤당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운 서원이다. 이 서원은 소수서원.병산서원.도산서원.옥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서원 중 하나이며,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보존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이 서원은 선조1년(1568)에 쌍계서원이라는 이름으로 현풍 비슬산 기슭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그 뒤 선조 37년(1604)에 보로동서원이란 이름으로 지금 이 자라에 옮겨 다시 세웠으며, 광해군 2년(1610)에 ‘도동’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서원의 정문인 수월루 아래 외삼문과 환주문을 지나면 강당인 중정당과 유생들이 기거하던 동재와 서재가 있다. 중정당 오른쪽 건물은 서원 관리인이 살았던 전사청이고, 왼쪽 뒤편의 건물은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던 장판각이다. 중정당 뒤편에 있는 돌계단을 오르면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과 사당이 있으며, 내삼문 오른쪽에는 제기를 보관하는 증반소가 있다. 도동서원은 수월루에서 높은 곳을 따라 환주문.중정당.사당을 일직선상에 두어 앞에는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영역, 뒤에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 구조이다. 또한 흙과 기와로 쌓아 만든 담장을 둘러서 검소하고 단아하면서도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한국 서원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