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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루판 베제클리크 석굴(柏孜克里千佛洞), 투루판을 대표하는 석굴사원

중국 투루판시에 있는 베제클리크 석굴(柏孜克里千佛洞, Bezeklik Caves)이다. 실크로드 북로에서 투루판 분지로 들어가는 입구인 화염산 무토우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베제클리크는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라는 뜻으로 현재 77개의 석굴 사원이 남아 있으며 많은 석굴 벽화가 있었다. 불교가 전파된 경로에 남아 있는 석굴 유적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베제클리크 석굴은 초기 이슬람인들의 파괴가 있었고, 20세기초 독일인들이 수차례에 주요 벽화들을 도굴해 베를린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내부 석굴을 들어가 보면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벽화를 떼어내 간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베제클리크 석굴사원>

SANYO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석굴사원은 수도자들이 더위와 비를 피하여 명상을 하기 위해 바위로 된 벼랑에 동굴을 파서 만들었다. 기원전 3세기 인도 아소카왕때 처음 생겼으며, 아프카니스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도 전해졌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 석굴, 중앙아시아의 키질, 투루판 베제클릭, 둔황석굴, 중국의 윈강 석굴 등이 규모도 크고 잘 알려진 석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석 석재로 인공적으로 조성은 석굴암이 대표적이다.

SANYO DIGITAL CAMERA<남쪽편 36 ~ 39호 석굴>

둔황 막고굴과 마찬가지로 바위산을 뚫어 석굴 사원들을 조성해 놓았다. 석굴은 둥근 아치형 천장과 직사각형의 평면을 하고 있으며 천정과 벽면은 불화로 장식하고 있다. 석들은 대부분 도굴되어 벽화를 볼 수 있는 석굴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남아 있는 벽화만으로도 당시의 석굴사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내부관람이 가능한 39호 석굴>

석굴은 바위를 파서 조성했는데 여러 석굴들이 마치 아파트처럼 배치되어 있으며 앞에는 베란다 역할을 하는 난간이 있는 통로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석굴을 오가는 통로와 석굴 앞 테라스>

SANYO DIGITAL CAMERA<31호굴>

SANYO DIGITAL CAMERA<내부 관람이 가능이 27호굴>

SANYO DIGITAL CAMERA<복원이 진행중인 석굴>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석굴과 돔형 지붕>

SANYO DIGITAL CAMERA<석굴사원 아래>

SANYO DIGITAL CAMERA<복원 작업이 진행중인 부분>

화염산 무토우 계곡은 북쪽 산악지역에서 분지로 강물이 흘러내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동쪽편 토유크석굴이 있는 계곡이 출입로였는데 고창국이 고창고성에 자리잡으면서 실크로드 북로에서 고창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번성했다. 석굴은 고창고성에서 1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무토우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황량한 풍결을 보여주는 화염산>

SANYO DIGITAL CAMERA<베제클리크 석굴 유적지 입구>

SANYO DIGITAL CAMERA<입구에서 내려다 보이는 베제클리크 석굴>

SANYO DIGITAL CAMERA<북쪽으로 이어지는 계곡>

SANYO DIGITAL CAMERA<계곡 옆 수목들>

SANYO DIGITAL CAMERA<계곡 주변 울창한 숲>

SANYO DIGITAL CAMERA<베제클리크 석굴 뒷편 화염산>

20세기 초 일본인이 수집하여 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중앙아시아 유물인 오타니 걸렉션 중에는 이곳에서 수집한 벽화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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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변단편(法華經變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23굴, 9세기>

제23굴 전실에 그려진 <법화경변> 단편이다. 벽화의 윗부분에는 여러 색의 구름으로 이루어진 둥근 구획 안에 보살의 성중(聖衆)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연꽃대좌 위에는 정면을 향해 가부좌(跏趺坐)를 한 보살이 있고, 그 주위로 보관과 목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를 한 보살이 있다. 벽화의 아랫부분에는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된 인물들이 말, 낙타 등을 이끌고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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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도 단편(千佛圖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18굴, 6~7세기>

제18굴 회랑에 그려진 천불도 단편이다. “천불”이란 무수히 많은 부처를 가리킨다. 부처는 불법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수많은 부처를 그린 천불도는 불법이 우주에 편재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대체로 열과 행에 따라 동일한 형식의 부처가 반복되는 구성이다. 천불도 단편에서 부처는 가는 흰색선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의 구획 안에 배치되어 있으며, 통견의 법의를 입고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있다. 이목구비가 큰 얼굴, 명암법, 어두운 배경색은 모두 베제클리크 초기 벽화의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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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 단편(惡鬼像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10~12세기>

 베제클리크 석굴 제15굴 중당(中堂)의 네 모퉁이에는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안쪽 좌측 벽에 그려진 사천왕 앞에 앉아 있는 악귀를 그린 것이다. 악귀는 겁에 질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앞으로 모아 화살 2개를 쥐고 있다. 오른쪽에는 사천왕의 오른쪽 발과 코끼리 머리장식을 한 오른쪽 다리 일부가 보인다. 악귀의 과장된 표정과 근육, 화려한 채색 등이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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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상단편(惡鬼像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 15굴, 10~12세기>

 눈이 세개인 악귀가 표현된 벽화 단편이다. 제15굴 중당에는 각 모퉁이에 사천왕이 그려져 있는데, 이 악귀는 입구 좌측에 그려진 사천왕 옆에 그려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녹색 피부의 악귀는 타원형의 얼굴에 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위로 올려 긴 화살통을 들고 있다. 악귀의 색채 구성과 표현방식이 제15굴 중당에 그려진 화두금강(火頭金剛) 단편과 유사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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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帳幕壁畵斷片),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제15굴, 10~12세기>

위구르어와 한자로 쓴 명문이 있는 벽화 단편이다. 공양자의 이름과 발원 시기를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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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가 있는 벽화 단편,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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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Vidya-raja),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10~12세기>

 분노에 찬 모습을 한 채로 화염에 둘러싸여 있는 명왕의 하반신에 해당하는 벽화이다. 베제클릭 제 20동굴의 중당 벽화에서 확인되는 유사한 도상에 의거하여 볼 때, 이 상은 6개의 팔을 지니고 각각 칼, 도끼, 법륜 등을 든채 오른쪽을 향해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베제클릭 석굴사원에서 그 형식이 완성되고 널리 그려진 대표적인 벽화로 ‘서원화’가 있다.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현재의 시점에서 볼 떄 과거불)로 부터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 이야기가 한 화면에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다. 한국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8장면으로 그린 팔상도와 비슷한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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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화 단편(誓願畵斷片), 베제클리크 석굴, 제33굴, 10~12세기, 복제품,석가모니가 전생에 상인이었을 때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제33굴 오른쪽 벽 안쪽에서 2번째로 배치된 서원화의 일부분이다. 서원화는 석가모니가 각기 다른 전생에서 당시의 부처, 즉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과거불을 만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이 벽화에는 두 명의 인물이 나란히 앉아 공양물이 담긴 화려한 쟁반을 들고 있고, 왼쪽 끝에는 공양의 대상이 되는 과거불의 광배, 발, 옷자락 등의 일부가 보인다. 인물의 얼굴과 복장에 각기 다른 개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차림새로 보아 당시 실크로드에서 상인으로 활약한 소그드인과 위구르인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SANYO DIGITAL CAMERA<33호 석굴>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4.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

 

투루판 토유크석굴(吐峪沟石窟), 서진시대 처음 조성된 석굴사원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루판(吐鲁番)시 신산현(鄯善县)에 있는 토유크석굴(吐峪沟石窟)이다. 투루판 도심 옛 고창고성에서 남서쪽으로 약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 골짜기로 천산산맥 눈이 녹아내린 물이 투루판분지로 흘러드는 계곡이다. 옛 문헌에 정곡사(丁谷寺)라 불렸던 곳으로 서진(西晉)시대 처음 조성되어 1600여년 역사를 지닌 중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불교 유적지 중 하나이다. 위구르 전통 마을이 남아 있는 외진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지만, 사막과 황무지로 이루어진 투루판지역에서 사람의 통행이 많았던 주요 교통로였던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토요크 계곡>

SANYO DIGITAL CAMERA<계곡 아래쪽>

SANYO DIGITAL CAMERA<계곡 아래로 보이는 투루판 분지, 입구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석굴사원은 계곡 양쪽으로 500 m 정도의 범위에 분포하고 있는데 동쪽에 2곳, 서쪽에 2곳의 동굴군이 있으며 현재 46기의 석굴이 남아 있다. 석굴사원은 대부분 5세기 말과 7세기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13세기 이슬람세력이 자리잡으면서 그 기능을 잃었다. 3~9세기 불교 벽화가 일부 보존되어 있으며 20세기 초 해외탐험가에 의해 많은 문서와 불화 등이 발굴되었다. 석굴사원의 모습이 잘 남아 있으며 실크로드를 통한 중국과 서역의 문화 교류를 잘 보여주는 유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SANYO DIGITAL CAMERA<토유크 석굴 사원>

일제강점기인 20세기초에는 세계적인 중앙아시아 유물 수집의 유행이 있었는데, 이때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났는데, 현지에서 약탈과 구매 등의 방법으로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있다. 많은 중앙아시아 유물들을 수집한 오타니가 파산을 하게 되면서 이를 구매한 일본 자본가 구하라가 당시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를 위해 조선총독부에 이를 기증하면서 오늘날까지 그 유물이 남아 있다.

화면의 중앙에 앉아 있는 보살은 보관에 작은 불좌상이 있어 일찍부터 관음보살로 판명되었다. 가운데 관음보살이 있으며, 그 주위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예배하는 보살과 인물이 여럿 그려져 있다. 관음보살이 쓰고 있는 높은 모자의 정면에는 관음보살이 모시는 부처인 아미타여래가 작게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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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이 그려진 번, 觀音普薩幡, 투루판 토유크 석굴, 9~10세기.>

토유크석굴에서 출토된 회화단편이다. 이 그림에는 왼쪽에 있는 문을 향해 세 명의 인물이 나란히 서 있다. 문의 왼쪽에도 또 다른 인물의 윤곽이 희마하게 보인다. 배경은 붉은색이며 오른쪽 윗부분은 여러 개의 검은 점으로 덮여 있다. 세명이 인물이 흰옷을 입고 있어 마니교도를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지만,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회화 단편( 繪畵斷片), 투루판 토유크 석굴, 10~11세기>

앞뒷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드리개이다. 상단의 삼각형 공간에는 작은 불좌상이 있고, 그 아래에 몸을 한쪽으로 약간 틀고 있는 보살이 서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어깨에는 휘날리는 천의를 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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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그려진 드리개, 菩薩幡, 토유크 석굴사원, 8~9세기>

토요크 계곡은 실크로드 상 주요 교통로였기때문에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였다. 당나라 때는 정곡사(丁谷寺)라는 사찰을 중심으로 불교가 크게 번창했으며 이슬람 선교사가 중국을 처음 방문하여 선교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위구르인이 투루판 지역에 정착한 이래 이슬람 성지가 되었으며 석굴사원들은 이슬람 수도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계곡 아래에는 가장 오래된 위구르인 마을인 마자촌(麻扎村)이 있으며 이곳에 있는 마자(麻扎)는 대표적인 이슬람 성지로 손꼽힌다.

SANYO DIGITAL CAMERA<계곡 입구에 있는 위구르인 마을 마자촌(麻扎村)>

SANYO DIGITAL CAMERA<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

SANYO DIGITAL CAMERA<화염산 아래 투루판 분지>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4.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 

둔황 막고굴(莫高窟), 혜초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석굴사원

중국 감숙성(甘肅省) 둔황(敦煌)에 있는 대표적인 천불동인 막고굴(莫高窟, Mogao Cave)이다. 명사산 동쪽 벼랑에 남북으로 약 1.6km 걸쳐 약 600 여개의 동굴이 남아 있으며 약 2,400여 개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오호십육국 때 처음 조성되기 시작되어으며 원대(元代)까지 약 1,000에 걸쳐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5세기 북양 때 조성된 것이며 북위 때 조성된 굴에는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북주(北周)와 수당(隋唐) 조성된 굴에서는 중국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명대(明代) 이후 중앙아시아의 교류가 줄여들면서 교역도시로서 둔황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막고굴도 쇠퇴하게 되었다. 19세기 말 장경동에서 많은 고문서들이 발견되면서 서구에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 막고굴>

들어가는 길

막고굴은 둔황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명사산 절벽에 있는 석굴사원들을 말한다. 자동차로 사막길을 1시간 정도 달리면 사막에 있는 바위산이 보이는데 그 곳에 막고굴이 조성되어 있다. 막고굴이 있는 바위산을 흐르는 강 건너편에 주차장이 있으며 약 10여분 걸으면 막고굴에 도착한다.  매표소에서 입구에 들어가는 길에는 북송(서하)시대에 조성된 고승들이 사리탑을 볼 수 있고, 다리를 건너면 최근에 만든 중국풍의 목조 패루가 있으며 석굴을 파서 만든 세계문화유산인 막고굴을 볼 수 있게 된다

SANYO DIGITAL CAMERA<주차장에서 막고굴로 들어가는 길>

막고굴이 있는 바위산 앞에는 평소에 강물은 없지만,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녹았을 때만 물이 흐르는 강이 있다.  불교에서 바깥세상과 부처님의 세상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이 곳을 흐른 강물이 절벽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바위산 앞을 흐르는 강>

SANYO DIGITAL CAMERA<주위 흩어져 있는 승탑들>

SANYO DIGITAL CAMERA<강을 건너는 다리>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입구 패루>

 장경동이 있는 북쪽 석굴

막고굴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 실크로드 중심지였던 둔황 도심에서 약 20 km 정도 거리에 있어 걸어서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수백개의 석굴들이 오늘날 아파트처럼 좁은 거리에 몰려있어 한적한 곳에 수행하는 선종계열 사찰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 하다. 신라 혜초 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하여 수 많은 언어로 쓰여진 고문서들이 발굴된 16굴은 막고굴 중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석굴을 조성하는데 종사했던 이름없는 장인들이 거처했던 불상이나 벽화가 없는 석굴들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출입문>

막고굴 북쪽에는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한 수 많은 고문서들이 발굴된 ‘장경동(藏經洞)’이라 불리는 제16굴이 있다. 1900년 둔황 막고굴을 지키던 도사가 제16굴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밀실에 숨겨둔 5만여점의 고문서를 발견하여 영국인에게 넘기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 여러차례 유물들이 서 유럽인들에게 넘겨졌다.

SANYO DIGITAL CAMERA<장경동이 있는 16호굴 부근 석굴들>

석굴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제일 큰 것은 10층 높이 정도 되는 것도 있고, 작은 토굴도 있다. 석굴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 보다는 훨씬 넓고 시원하다. 현재의 석굴 입구는 석굴 보호와 관람 편의성을 위해 최근에 만들어 졌다. 사다리를 타고 들어가거나 나무 계단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북쪽편 석굴들>

석굴들 중 크고, 목조로 만든 출입문과 처마, 벽화가 남아 있는 석굴들은 위층에 있고 아래에는 작은 석굴들이 자리잡고 있다. 석굴들은 지역 유력자의 후원을 받았으며, 규모가 큰 석굴에는 이름난 승려가 기거하면서 수행하였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규모의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벽화, 지붕, 출입문 등을 제대로 갖춘 큰 규모의 석굴>

SANYO DIGITAL CAMERA<비천상 벽화가 유명한 428호 굴>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 <296굴, 421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벽화, 지붕, 출입문을 제대로 갖춘 큰 규모의 석굴>

SANYO DIGITAL CAMERA<273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오대산형상도’로 유명한 61호굴 주변>

SANYO DIGITAL CAMERA<아파트를 연상시키는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 석굴들>

북대불전

막고굴을 높이 34.5m 의 제96호굴인 북대불전(北大佛殿)이다. 외부에 드러난 처마만으로도 약 10층 건물처럼 보이는 거대한 석굴이다. 내부에는 미륵불 입상이 모셔져 있으며, 외부는 7층 이상의 목탑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북대불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대십국 때 세워진 석굴이라고 한다. 당시 이지역을 지배한 서하(西夏) 유력자의 지원을 받아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북대불전은 오랜 세월에 유지되어 왔으며, 미륵불상은 수차례에 걸쳐 보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 미륵불상을 모신 장륙전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96호굴>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입구>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앞에 세워진 비석>

SANYO DIGITAL CAMERA<94호굴>

SANYO DIGITAL CAMERA<94호굴 벽화>

SANYO DIGITAL CAMERA<96호굴 북쪽 석굴들>

막고굴에는 벽화와 불상들이 남아 있는 곳은 474개라고 한다. 막고굴에는 전체 4,500 ㎡에 이르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방문객들은 극히 일부분만 볼 수 있다. 막고굴에는 석굴 내부에만 벽화를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외부에도 벽화들을 남겨놓고 있다. 막고굴에 그려진 벽화는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된 프레스코 기법으로 회반죽 위에 안료를 이용해서 벽화를 그렸다.

SANYO DIGITAL CAMERA<북대불전 주변에 남아 있는 벽화>

SANYO DIGITAL CAMERA<벽화>

막고굴 남쪽으로는 와불이 있는 158호굴을 비롯하여 남대불이 있는 130호굴 유명한 석굴들이 많다. 석굴들은 수당(隋唐)대에 만들어진 것이 많지만 서하(西夏) 때 벽화와 불상들이 조성되고 보수되었다고 한다. 현재 볼 수 있는 유물들은 후대에 만들어진 곳이 많고 청대(淸代)까지 보수가 이루어 진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북대불전 남쪽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다양한 형태 석굴들>

SANYO DIGITAL CAMERA<석굴을 오르는 계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둔황 막고굴 유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중앙아시아 석굴사원에서 약탈한 문화재들을 다수 소장.전시하고 있다.  20세기초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인 오타니 고즈이라는 사람이 대규모의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3차에 걸쳐서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났는데, 현지에서 약탈과 구매 등의 방법으로 무려 5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을 수집했으며 이를 오타니 컬렉션이라고 있다.

<여행하는 승려(行脚僧圖)>는 경전을 짊어지고 여행하는 승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주인공은 노란 점과 붉은 선으로 장식된 검은색 천을 어깨에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그림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현장(玄裝), 보승불(寶勝佛), 티베트 불화에 보이는 18나한(羅漢) 가운데 한명이 달마다라(達磨多羅), 실크로드를 여행하며 공연하는 이야기꾼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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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승려, 行脚僧圖, 둔황, 9~10세기, 중앙박물관>

둔황에서 발견된 번에는 2명의 보살이 그려져 있다. 위쪽의 보살은 가사를 걸친 채 왼쪽을 향하고 있고, 아래쪽의 보살은 군의를 입고 천의를 걸친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붉은색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음영을 가해 입체감을 주었다. 보살 옆에는 보살의 이름을 써 넣은 방제가 있는데, 아래 보살의 경우 “나무불휴식보살(南無不休息菩薩)”이라는 글씨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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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그려진 번, 菩薩幡, 둔황(敦煌), 1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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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 그림 드리개, 菩薩立像幡, 둔황, 10세기.>

승려를 표현한 부조 3점은 건축물의 벽면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각각의 승려는 감실에 앉아 있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의 승려들은 명상에 잠긴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두건같이 감싸며 몸을 완전히 가리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며, 그 옷은 승려마다 각기 다른 색을 띤다. 일부 상에는 금칠의 흔적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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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잠긴 승려, 僧像, 둔황, 10세기>

사막에 세워진 승탑들

입구 주차장에서 막고굴까지 가는 중 길가를 비롯하여 멀리 사막 한가운데까지 많은 승탑들을 볼 수 있다.  주로 서하(西夏) 때 승려들의 승탑이라 한다. 목조 건축물을 모방해서 만든 본 한국의 승탑과는 달리 인도 불교 사원의 모습과 비슷하다.

SANYO DIGITAL CAMERA<인도 불교사원 모습을 하고 있는 승탑>

SANYO DIGITAL CAMERA<다른 형태의 승탑>

SANYO DIGITAL CAMERA<사막에 흩어져 있는 승탑들>

둔황 막고굴 앞쪽에는 사막의 모래바람으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고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서 많은 방풍림을 심어 녹지를 조성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방풍림을 심어 놓은 정원>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앞 방풍림길>

SANYO DIGITAL CAMERA<막구굴 입구 휴게소>

<출처>

  1. 안내문, 둔황 막고굴유적지, 2010년
  2. 위키백과, 2020년
  3.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례출판, 2006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5. 百度百科, 2020년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 제대로된 모습을 갖춘 삼국시대 석굴사원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에 있는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이다. 제2석굴암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팔공산 자락 절벽에 동굴을 만들고 불상을 모신 석굴사원이다.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굴사원으로 바위에 마애불상을 새기고 그 앞에  전실을 두었던 삼국시대에 비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모신 불상들은 700년 경에 조성된 것으로 아미타여래를 본존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시고 있다. 본존물은 대좌위에 앉아 있는 자세로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삼국시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미소띤 얼굴 대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좌.우의 보살은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을 들고 있는데 당나라 불상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109호).  바위에 마애불상을 새기고 그 앞에 전실을 두었던 이전의 석굴사원과는 달리 바위를 파서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안치했던 인도, 중국의 정통 석굴사원을 구현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사원에 모신 불상. 석굴 높이는 4.25 m이며, 높이 4.25 m의 본존불은 아마타여래를 표현하고 있다. 미소를 띤 삼국시대 불상과는 달리 근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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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편 협시보살. 보관을 쓰고 있는 관세음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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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편은 대제지보살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이 있는 절터.

군위 아마타여래삼존 석굴, 국보 109호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 석굴은 이곳에서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석굴로 아미타여래 삼존불을 모신곳이다. 이 석굴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인 신라 눌지왕 대에 아도하상이 수도전법한 곳이며, 문무왕 대에 원효대사가 본존불과 본존불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 곳이다. 이 삼존 석굴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모태가 되었다. 가람은 오랜 세월 폐허로 방치되었는데, 1927년 새롭게 발견되어 삼층 모전 석탑을 보수하였고, 1961년에는 초대 주지 스님이 부임하면서 법당을 지었다. 삼존 석굴은 1962년 황수영 박사의 학술 조사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고, 그 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예산을 받아 석불교, 계단, 석난간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1985년부터 삼대 법등 주지 스님이 다시 절을 지어 지금의 도량이 되었다.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군위군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4. 위키백과, 2020년

속초 설악산 계조암 석굴, 흔들바위와 함께 있는 석굴 사원

강원도 속초시 설악악동에 있는 계조암석굴이다. 설악산 신흥사 부속암자로 울산바위(명승 100호) 아래에 있는 작은 석굴사원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향성사와 함께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자장율사, 원효대사, 의상조사 등 고승들이 수행을 하던 작은 석굴로 여러 조사들이 대를 이어 수행하였다고 하여 계조암(繼祖庵)이라 부른다. 설악산의 명소인 흔들바위와 같이 있는데 여러 바위 중에서 둥글게 보이는 목탁바위 밑 굴속에 암자가 있다.

계조암의 중건에 대한 내력은 게 알려진 바가 없으며 구한말 승려 응화가 삼성각을 지은 후 암자로서 모습을 갖추고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계조암 석굴 뒤로는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울산바위가 보이고 앞으로는 설악산 계곡과 여러 봉우리들이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는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와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작은 노점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암자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설악산 계조암. 울산바위 아래에 있는 작은 석굴사원으로 고승들이 대를 이어 수행을 했다는 곳이다. 석굴 앞에는 설악산의 오랜 명소인 흔들바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흔들바위가 있는 계조암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계조암 앞에 있는 큰 바위는 100여 명이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하여 ‘식당암’이라고도 부른다. 한쪽편에는 설악산 명소인 흔들바위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08년 모습. 바위 위에는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가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설악산 흔들바위. 우각석(牛角石)이라고 불리는 이 바위는 원래 두개가 있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계조암 석굴. 울산바위 아래 목탁바위 밑 석굴에 불상을 모시고 수행했다고 한다. 석굴이 주불전에 해당하며 옆쪽에 삼성각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내부. 상당히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어 극락전에 해당하는 불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에서 내려다 본 흔들바위와 식당암. 그 너머로 권금성 봉우리와 설악산 계곡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 있는 삼성각. 나반존자 등을 모시고 있는 불전으로 구한말에 처음 조성된 전각이다. 예전에 2층 건물 형태로 있었는데 최근에 기단을 다시 쌓고 그 위에 불전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2008년 계조암 삼성각의 모습. 불전과 요사채를 겸하고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왼쪽편에 있는 요사채. 석축을 쌓아서 터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성각 아래에 있는 큰 바위. ‘계조암’이라 적힌 큰 글자를 비롯하여 많은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08년에는 이곳에 음료나 먹을 것을 팔던 작은 가게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고 그 자리에 흔적만이 남아 있다. (윗쪽 사진)

SANYO DIGITAL CAMERA전형적인 수학여행 사진 장면이 항상 연출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흔들바위 뒷편 햇빛에 빛나는 울산바위.

계조암 석굴
계조암은 신라 652년 (진덕여왕 6)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자장은 이곳 석굴에 머물면서 향성사(신흥사)를 창건하였다. 동산, 각지, 봉정에 이어 의상, 원효 등 조사의 칭호를 얻을만한 승려가 이어져 수도하던 도장이라 하여 계조암(繼祖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창건이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신흥사사적기》애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1890년(고종 27년) 응화가 삼성각을 세웠으며, 1908년 동암이 단청을 하고, 동고가 후불탱화를 조성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석굴과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석굴 안에 봉안된 부처님과 삼성각에 모신 나반존자상은 특히 영험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어 예로부터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석굴 앞에는 문 역할을 하는 쌍용바위가 있고, 쌍용바위 앞에는 100여 명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반석이 있어 ‘식당암’이라 부른다. 식당암 머리 부분에는 흔들바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유각석이 있다. 우각석은 원래 두 개였는데, 한 풍수 학자가 불가의 영기가 넘쳐 흐름을 시기하여 한 개를 굴려 떨어뜨렸다고 한다. 석굴법당은 목탁이라 불리는 바위에 자리잡고 있어 다른 기도처보다 영험이 크다고 하는 목탁바위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안내문, 계조암, 2017년)

<출처>

  1. 계조암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