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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국보 103호), 사실적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

국립광주박물관 중앙 로비에 전시중인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103호)이다.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했던 쌍사자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원래 광양시 옥룡면 중흥산성 절터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반출하려던 것을 회수하여 경복궁 내에 옮겼다가 이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쌍사자 석등은 2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통일신라의 독창적인 양식이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5호),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353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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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 103호). 2마리의 사자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석등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했던 쌍사자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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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리의 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사실적 표현과 조각수법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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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사자 석상. 사실적이며 힘이 넘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무늬가 새겨진 평이한 모습의 아래받침돌.

OLYMPUS DIGITAL CAMERA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팔각형으로 4곳에 창을 두고 있다. 특별한 장식이 없으나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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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쌍사자 석등, 국보 103호, 통일신라 9세기 후분, 전남 광양시 옥룡면 중흥산성 절터
석등은 부처의 자비심을 상징하는 빛을 밝히기 위해 불을 켜는 곳이다. 받침은 두 마리의 사자가 늠름하게 가슴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며, 화사석을 받치고 있다. 사자는 갈기가 달린 숫사자로 입과 갈기, 꼬리가 서로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불을 켜는 곳에는 창을 댄 못 구멍이 남아 있고, 지붕돌에는 연꽃모양 장식을 얹었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양식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의 석등, 박경식, 학연문화사, 2013년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석등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영암사지(사적 131호) 절터에 남아 있는 쌍사자석등(보물 353호)이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석등으로 금당터 앞 석축 위에 세워져 있다. 석등은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2마리의 사자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받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 2마리의 사자가 가슴을 맞대고 마주선 모습인데 갈기와 꼬리, 근유 등을 사실적을 표현하고 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고 4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놓고 있다.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5호)와 비슷한 형태이며, 통일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영암사지는 합천군 황매산 남쪽 자락에 있는 통일신라 절터이다. 창건연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으나 고려 때 적연선사가 입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망이 아주 좋은 황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축대를 쌓아 인공적으로 절터를 조성했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절터에는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삼층석탑(보물 480호)와 거북받침돌(보물 489호) 2기가 남아 있으며, 금동여래입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물과 건축부재 등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두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석등으로 생동감있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등을 8각을 기본 평면으로 하고 있다. 아래 받침돌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받침돌에는 기둥형태 대신 2마리의 사자를 조각해 놓았다. 사자의 갈퀴, 꼬리, 몸통의 근육 등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을 밝히는 화사석, 쌍사자에 비해 조각 수법이나 조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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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석등.

OLYMPUS DIGITAL CAMERA금당 앞에 별도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석등이 올려져 있다. 석축 옆에는 석등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계단이 있다. 석등 아래에 삼층석탑이 놓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황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영암사지. 영주 부석사처럼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건물터를 조성했다. 절터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보물 353호,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영암사터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1933년경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 사자를 배치한 가운데 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기본 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받침돌에는 연꽃이 조각되었고 그 위로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서 있다. 사자의 뒷발은 아래받침돌을 딛고 있으며, 앞발은 들어서 윗받침돌을 받들었다.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퀴와 꼬리, 근육 등이 사실적이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을 8각으로 얇고 평평하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조각이 솟아 있다. 각 부분의 양식이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에 비해 다소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제 5호)과 견줄 수 있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양산 통도사 석등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 관음전 앞에 세워져 있는 석등이다. 석등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 팔각의 아래받침돌, 팔각기둥, 연꽃무늬로 장식한 윗받침돌을 두고, 그 위에 화사석을 두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사각형을 하고 있으며 창을 크게 만들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는 많이 떨어지는 편이며, 화사석의 형태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통도사 경내에 있는 많은 석등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양산 통도사는 우리 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큰 절로, 신라 선덕여왕 때 (646년)에 자장율사가 세웠다. 불보(佛寶) 사찰로도 불리는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이 있는 대표적인 사찰이다. 또한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사찰내에는 석종형 탑인 금강계단과 대웅전(국보 290호)를 비롯하여 많은 불전들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통도사 관음전 앞에 세워져 있는 석등. 크고 웅장하지만 투박한 고려시대 석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투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받임돌. 가운데 기둥이 굵으며 사각형에 가까운 팔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4각형 평면을 하고 있으며, 창을 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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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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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통도사 불이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석등이 세워져 있는 관음전. 중로전 영역에 있는 3곳의 불전 가운데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중로전에서 석등이 이곳에만 세워져 있다.

석등
석등은 등불을 밝히는 석조물이다. 불교에서 등불을 밝히는 것은 공양 중에서도 으뜸이 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석등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 팔각의 하대석을 올렸다. 그 위에 팔각의 기둥을 두었는데, 중앙에는 3줄의 띠 매듭으로 장식하고 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였고,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의 각 면에는 네모난 창을 크게 뚫어 불빛이 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에는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달고 꼭대기에는 보주를 놓아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시대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부등형의 팔각인 점, 화사석이 세로로 긴 사각형인 점 등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안내문, 양산 통도사, 2017년)

<출처>

  1. 양산 통도사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산 범어사 석등

부산시 금정구 범어사 경내에 남아 있는 석등이다.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할 때 같이 조성한 것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석등은 8각형 평면의 3단으로 된 받침돌 위에 화사석과 지붕돌이 올려진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등이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졌으며, 가운데받침돌은 8각형 기둥모양을 하고 있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이 만들어져 있으며, 창문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석등의 내력은 오래되었지만, 조각수법이 투박하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몇자례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전체적인 조화나 균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불을 밝히는 등(燈)은 인류의 문명생활과 함께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만들어졌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불을 밝혀 조명을 하는 등기(燈器)와 부처에 불빛을 올리는 공양구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다. 목조건물을 모방해서 만든 승탑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석탑이나 승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이후 많은 사찰에서 석등을 세웠는데 경주보다는 지방의 화엄십찰이나 선종계통 사찰에서 크고 웅장한 석등이 많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산 범어사 석등.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중간에 수리를 하여 원래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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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석등 양식이 적용되어 있으나 화개석과 지붕돌을 상대적으로 크게 만들어 전체적인 조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가운데받침돌은 후대에 새로 만든 것이라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석등을 받치는 받침돌. 윗받침돌을 상대적으로 크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을 밝히는 화개석, 문짝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다른 석등에 비해 창문을 만드는 수법도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부산 금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범어사는 통일신라 때 전국 화엄십찰 중 하나이며, 남해안 침략하는 왜(倭)를 물리치고자 하는 바램으로 세웠던 사찰이다. 호국사찰 성격을 갖고 있었던 화엄종 사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대에 중건하기 시작하여 숙종대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 삼층석탑은 범어사에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통일신라시대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부산 범어사 석등, 부산시 금정구 청룡동
이 석등은 신라의 의상대사가 678년(문무왕18)에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오나, 양식상의 특징으로 보아 범어사 3층석탑과 같은 9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석등은 금당이나 탑과 함께 사찰의 중심부에 놓인다. 이 석등은 원래 미륵전 앞에 있던 것인데, 일제시대에 종루가 심검당 앞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짐에 따라 옮긴 것이다. 형태는 하대석 위에 8각의 간주석을 세우고, 그 위에 상대석을 놓아 석등을 밝힐 수 있는 창이 나 있는 화사석을 받치고, 그 위에 옥개석을 덮었다. 각 석재의 평면은 모두 8각이다.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시대 석등의 전형적이고 기본적인 양식에 속한다. 이 석등은 하대석 윗면의 복련이나 상대석 아랫면의 양련이 모두 복엽으로 8잎이 조각되어 있다. 화사석에는 4면에 장방형의 창을 내었다. 그러나 후대에 보완된 간주석이 빈약하고, 상대석이 두터워서 균형이 잘 맞지 않고, 하대석과의 비례가 맞이 않아 전체적 조화를 잃었다. 또 위쪽 상륜부의 부재들이 없어졌으며, 옥개석 위에 얹힌 노반은 제 짝이 아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3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보령 성주사지 석등

충남 보령시 성주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석등이다. 8각형 평면의 3단의 받침돌과 화개석, 지붕돌로 구성된 높이 2.2 m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가운데받침돌은 8각형 기둥 모야을 하고 있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고 있다. 조각수법이 비교적 많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는 양호한 편이다.

불을 밝히는 등(燈)은 인류의 문명생활과 함께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만들어졌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불을 밝혀 조명을 하는 등기(燈器)와 부처에 불빛을 올리는 공양구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다. 목조건물을 모방해서 만든 승탑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석탑이나 승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이후 많은 사찰에서 석등을 세웠는데 경주보다는 지방의 화엄십찰이나 선종계통 사찰에서 크고 웅장한 석등이 많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주사지 석등. 절터 오층석탑 앞에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등 화사석과 지붕돌. 조각수법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등이 세워진 아래받침돌.

성주사(聖住寺)는 보령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었던 사찰로 통일신라 선종 구산선문 중 성주산파의 중심사찰이었다. 충남 보령시에서 공주, 부여와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산중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평지사찰로 금당 뒷편에 3기의 삼층석탑, 앞편에는 오층석탑이 배치된 특이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동삼층석탑은 다른 곳에서 옮겨 왔기 떄문에 금당 뒷편에 2개의 탑이 세워 별도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을 중요시 했던 기존 불교와는 달리 수행을 중시여기는 선종계열 불교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치원 글을 지은 낭혜화상탑비(국보 8호)가 절터에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주사지 오층석탑과 석등.

보령 성주사지 석등, 통일신라, 높이 2.2 m
탑 앞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것을 1971년 석탑 4기를 해체 수리할 때 현재의 5층 석탑 앞에 복원한 것이다. 팔각을 기본으로 하였고, 복원할 때 부근의 판석 4개를 모아 지대석으로 이용하였다. 지대석 아랫돌은 정삭각형으로 각 면에 2개씩의 안상 조각이 있고, 그 위에 여덟 잎의 연꽃이 새겨져 있는 받침이 놓여 있다. 옥개석은 아랫면에 일단의 옥개받침이 있고 처마가 약간 위로 반전하였다. 조각 솜씨가 거칠고, 창에 문의 고정 흔적이 없으며, 등을 놓는 내부가 비실용적인 점 등으로 미루어 4기의 석탑보다 시대가 뒤떨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