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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석련대(보물), 하나의 돌로 만든 거대한 석조대좌

전북 김제시 금산사 경내에 있는 석련대(石蓮臺, 보물)이다. 일종의 석조대좌로 불상을 올려놓는 받침대이다. 높이가 1.52 m, 둘레 10 m에 이르는 상당히 큰 규모의 석조물이다. 전체가 하나의 돌로 만들었지만 여러개이 돌로 만든것처럼 보인다. 아래받침돌 위치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가운데받침돌 위치에는 육각형 꽃무늬를 새겼다. 윗받침돌부분에는 불상을 올려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있고 연꽃이 불상을 받치는 형태로 조각해 놓았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조각이나 장식이 사치스러운 점 등을 볼 때 고려초에 만든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제 금산사는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사찰로 신라 경덕왕 때인 8세기에 진표율사에 의해 사찰로서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후백제 견훤이 유폐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금산사에는 미륵불상을 모시는 장륙전 모습이 남아 있는 미륵전(국보)를 비롯하여 금강계단(보물), 오층석탑(보물), 육각다층석탑(보물) 등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김제 금산사 경내에 있는 석련대(보물). 불상을 올려 놓았던 둘레 10 m의 거대한 석조대좌이다.

SANYO DIGITAL CAMERA가운데받침돌에 해당하는 부분은 안상을 새기고 가운데 조각상을 새겼다. 윗받침돌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연꽃잎을 큼지막하고 입체감있게 표현해 놓았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대적광전 앞에 놓여진 석련대.

김제 금산사 석련대, 보물 23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연화대 형식으로 조각된 불상의 좌대로 높이가 1.52 m, 둘레가 10 m에 달하는 거대한 연화대이다. 연화대 전체가 1개의 돌로 되어 있으나 여러개의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상, 중, 하 대의 삼단 양식을 정연히 갖추고 있다. 하대석의 측면은 10각형이며 8개 면에는 안상을 음각하고 그 안에 서화를 조각하였으며 2개 면에는 사자상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복련판을 각 변에 따라 10판을 돌려 웅려하게 표현하였다. 이와같은 조각과 장식 이외에도 중대, 상대 등에는 안상과 화문, 연판문 등을 장식적 의장법으로 조각하였다. 상대석 윗면 중앙부분에는 두 개의 방형 구멍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이 좌대가 석불 입상을 세우는데 이용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좌대의 조각 수법이 통일신라시대의 양식과 유사하나 무질서한 안상의 배치와 연판내의 사치스러운 조각 및 장식법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초기, 대략 10세기경의 석조물로 추정하고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09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남원 만복사지 석조대좌(보물), 거대한 금동불상이 올려졌던 대좌

전북 남원시 왕정동 만복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대좌(보물)이다. 거대한 불상을 올려 놓는 받침으로 절터 서쪽 금당터에 위치하고 있다. 하나의 큰 돌을 조각하여 상.중.하대를 표현하고 있다. 하대 옆면에는 안상과 꽃을, 위쪽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상대에도 연꽃무늬를 새긴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위쪽에는 불상을 고정시키기 위해 파놓은 네모난 구멍이 있다. 통일신라 8각형 대좌 형식에서 벗어나 6각형으로 이루진 것이 특징이다. 대좌 위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불상이 올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남원 만복사는 고려시대에 창건한 평지사찰로 상당한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동국여지승랑』 기록에 따르면 목탑, 금당 등 여러 전각들과 금동불상 등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거대한 금동불은 아마도 이 석조대좌 위에 올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 버린 후 폐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터에는 오층석탑(보물 30호), 당간지주(보물 32호), 석좌(보물 31호), 석불입상(보물 33호) 등 석재로 만든 유물들이 남아 있다. 조선전기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중 ‘만복사 저포기’에 등장할 정도로 상당히 유명한 사찰이었다.

SANYO DIGITAL CAMERA남원 만복사지 서쪽 금당터에 올려져 있는 석조대좌(보물 31호). 거대한 금동불상을 올려 놓았던 대좌이다. 하나의 돌로 상대, 중대, 하대를 조각해 놓고 있다. 8각형이 주를 이루었던 통일신라 때와는 달리 6각형으로 만들었다.

SANYO DIGITAL CAMERA동쪽편에서 본 석조대좌. 연꽃무늬 등이 새겨진 상대의 바깥쪽을 비롯하여 파손된 부분들이 여러곳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석조 대조가 올려져 있는 서쪽 금당터. 고려초에 창건된 만복사는 고구려 사찰의 가람배치를 계승하여 목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금당을 두고 있다. 그 중 서쪽 금당에 거대한 금동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금당터 축대.

SANYO DIGITAL CAMERA금당 건물 기둥을 세웠던 주춧돌.

SANYO DIGITAL CAMERA금당 건물 앞에 놓여 있는 석재들.

SANYO DIGITAL CAMERA만복사 절터.  목탑을 중심으로 좌.우.뒷편에 3개의 금당을 두는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이는 만복사의 성격이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계열의 사찰이 아니라 기도를 하러 절을 찾은 사람을 위한 불전을 중심으로한 사찰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남원 만복사지 석조대좌, 보물 31호, 전북 남원시 왕정동
이 석좌는 불상을 올려놓았던 육각형의 받침돌로, 만복사를 지으면서 함께 만든 것으로 보인다. 아랫부분은 각 측면에 꽃 장식을 담은 코끼리 눈 모양을 새기고 그 위에 연꽃을 조각하였다. 중간부는 아래쪽보다 너비가 줄어 들었는데, 모서리마다 짧은 기둥모양을 새겼다. 윗부분은 다시 넓어지며 그 옆면 역시 연꽃으로 장식하였던 듯하다. 위쪽 바닥 중앙에는 불상을 고정시키기 위해 파놓은 사방 30cm 가량의 네모난 구멍이 있다. 이 석좌는 높이 1.4m 정도인 하나의 돌에 전체를 조각했는데, 육각형 모양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출처: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