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석조불상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03호),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보물 203호)이다. 운문사와 함께 서쪽 대비갑사로 창건된 사찰인 대비사로 들어가는 계곡 입구 마을에 모셔져 있다. 화재 등으로 광배와 대좌, 불상 등이 큰 손상을 입어 얼굴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신체는 가슴은 당당하지만 허리는 잘록하고 표현되어 있다. 옷은 몸에 밀착되어 있으며 옷주름도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인 양감이 풍부하면서 세려되게 표현되어 있으며 세부적인 조각수법은 뛰어난 편이다.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5-20200106
청도 박곡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03호). 석굴암 본존불 양식을 따르고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이다. 대좌는 팔각형을 기본으로 상.중.하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꽃무늬를 새겨놓고 있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1-20200106얼굴 형체를 알 수 없으며 훼손된 부분이 많지만 전체적인 신체비례나 세부적인 표현이 뛰어난 작품이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3-20200106불상은 대비사 계곡 입구 마을에 건물을 세워 그 안에 모셔져 있다. 그 앞에는 삼층석탑이 놓여 있어 작은 사찰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다.

청도 박곡리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203호04-20200106마당 한쪽편에 있는 석재. 화재로 크게 훼손된 광배처럼 보인다.

청도 박곡동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203호,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이 불상은 높이 276 cm의 석조 석가여래좌상으로 대비사 골짜기 입구의 보호각 속에 모셔져 있다. 몇차례의 화재와 인위적인 파손을 당해 원래의 모습을 잃었으나 지금의 모습으로도 예술적 안목과 세련된 솜씨를 느낄 수있다. 얼굴의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도 박력있는 모습, 힘찬 어깨와 당당한 가슴, 몸에 밀착된 법의 등에서 강건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수법을 볼 수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분된 8각 연꽃모양으로 당대의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불상은 석굴암 불상과 그 양식이 비슷한 통일신라 전성기의 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1636호)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있는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1636호)이다. 부석사 부근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 온 불상이다.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있는 석가여래를 표현한 불상이다. 팔각형의 대좌위에 올려져 있는데 대좌에는 향로와 7사자, 보살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장식적인 경향을 보이는 통일신라 9세기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1636호)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모셔진 자인당. 인근 절터에서 옮겨온 비로자나여래를 표현한 2기의 불상과 함께 모셔져 있다.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 9세기 후반 비로자나여래 불상을 대표하는 작품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이다. 부석사 부근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 온 2기의 불상이다. 왼손 검지를 오른손을 감싸진 지권인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비로자나여래를 표현한 불상이다. 팔각형의 대좌위에 올려져 있는데, 각 면에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 뒷편 광배에도 다양한 형태의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통일신라 9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비로자나여래를 표현한 대표적인 불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중 동쪽에 있는 불상.

SANYO DIGITAL CAMERA
서쪽에 있는 불상. 광배에 삼존불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불상들이 표현되어 있으며, 석조 대좌에도 보살상이 표현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모셔진 자인당. 조사당을 지나 숲길을 조금 걸어가면 볼 수 있다. 원래 승려들이 기거하는 선방이었으나 지금은 석조여래좌상을 모시고 불전으로 바뀌었다.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보물 220호,
이 두 불상은 원래 부석사 동쪽 폐사지에 있었던 것을 부석사 자인당으로 옮겨 놓은 3좌의 석불좌상 중 양편에 모셔진 두 불상이다. 동편의 불상은 나선형 머리에 상투 모양의 형태가 불분명한데, 얼굴은 둥근 편으로 단정한 인상이다. 눈은 뚜렷하지 않지만 약간의 미소 흔적은 남아 있다. 어깨가 나무 뒤로 젖혀지고, 가슴과 배가 편평하게 표현되었으며, 신체의 볼륨은 없는 편이다. 두 손은 없어졌던 것을 보수하여 놓았다. 서쪽의 불상은 동쪽 불상과 비슷하지만 신체가 좀 더 풍만하여 부드러운 편이다. 9세기 후반기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으로서, 당시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 양식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3년)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 통일신라 양식이 남아 있는 고려초기 불상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이다. 청풍도호부 관아가 있던 읍리에 있었는데,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의 서민적 미륵불상과는 달리 통일신라 말의 세련면서도 힘이 있는 조각수법이 남아 있다. 반면에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 형식적의 주름 등 고려초의 쇠퇴한 불상 조각수법도 같이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 이래 영남지방의 관문인 죽령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던 청풍지역의 번성했던 과거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고려시대에는 주요 교통로나 경관이 좋았던 지역에 큰 사찰들이 있었는데, 청풍 지역에는 큰 사찰이 남아 있지 않다. 이 불상의 존재로 볼 때는 이곳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사찰이 고려시대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 고려초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청풍지역 대광사라는 사찰입구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
불상은 높이 3.3 m의 비교적 큰 규모로 통일신라 말의 세련된 조각수법이 남아 있지만,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 등 고려초 불상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얼굴과 상체부분. 얼굴은 사각형에 후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옷은 어꺠를 감싸고 있는데 신체 윤곽이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좌위에 올려진 두발.

OLYMPUS DIGITAL CAMERA
옆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청풍문화재단지 내 보호각에 모셔진 불상.

청풍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
이 불상은 높이가 341 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다. 옷은 통견의(양어깨를 덮은 법의)를 걸치고 안에 속내의를 받쳐입고 있으며, 배에서 매듭을 지어 V자형으로 겹겹이 대좌에까지 내려왔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 읍리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 536호)

충남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절터에 있는 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 536호)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5.5 m의 이 불상은 약단지를 들고 있어 약사여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투박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옷주름이나 얼굴의 표현 등에서 세련된 조각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 석조불상에 비해 조형미나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남아 있는 절터는 아산 외암마을 입구 맞은편 낮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절터에 남아 있는 사적비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창건한 용담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고려초 광종 때 중창하였다고 한다. 절터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고려시대 교통요지에 세워졌던 여러 사찰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 536호), 고려초에 조성된 불상으로 투박하지만 약간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 얼굴은 크고 둥글게 표현하고 있는데 귀가 어깨선까지 닿을 정도로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한손에 약병을 들고 다른손으로 받치고 있는 약사여래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남아 있는 절터. 고려시대에 중창한 용담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보물 536호, 고려시대, 충남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약사불은 질병과 무지의 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으로, 이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5.5 m의 입상이다. 불상의 얼굴은 둥근 형으로 볼 살이 두툼하게 처리되었고, 눈은 가늘게 뜨고 있고 코는 오똑하며 입은 전체적으로 작은 편이다. 귀가 어깨선까지 닿고 목에는 뚜렷하게 삼도가 표시되어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감싸 발목까지 내려오고, 왼쪽과 오른쪽의 대칭이 잘 어우러진 타원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약단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왼손으로 받치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증명한다. 불상 옆에는 용담사 사적비가 있는데, 내용은 용담사라는 절을 신라 애장왕 때에 원효가 처음 지었고, 고려 광종 때 혜명조사가 다시 건립하였다는 것이다. 불상은 조각한 수법과 양식으로 보아 고려초기 10세기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아산시청, 2010년)

<출처>

  1. 아산시청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