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석조불상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경북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 고운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보물)이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8세기 불좌상을 모델하여 조성된 지방양식의 불상이다. 대좌와 광배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손상이 거의 없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얼굴에 눈.코.입을 작게 표현했으며 허리가 작고 약간 치켜 올라간 어꺠로 불안전상 자세를 하고 있다. 광배는 배모양을 하고 있는데 연꽃과 덩굴무늬,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 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대좌 중대석이 8각형 기둥모양으로 장색했으며 상.하대석은 연꽃모양을 하고 있다. 전형적인 9세기 불상으로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과 함께 경주와는 다른 지역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운사 약사전에 모셔져 있다.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20230830_04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20230830_03
<반대편에서 본 모습>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20230830_01<약사전 내부>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보물) 20230830_02<고운사 약사전>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보물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은 약사전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광배와 받침대는 온전히 남아 있고, 불상도 오른손 등 일부를 빼고는 부서진 곳이 거의 없다. 불상의 머리에는 꼬불꼬불한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카락인 나발을 붙여 놓았으며 육계는 낮고 편평하여 분명하지 않다. 불상의 옷은 오르ㅉ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으며, 왼쪽 겨드랑이 밑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 옷 주름을 같은 간격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불상 뒤쪽의 광배는 끝이 날카로운 배 모양이다. 머리 고아배와 몸 광배에는 연꽃과 덩굴무늬 등을 표현하였고, 가장자리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받침대 중 윗받침석은 연꽃을 위로 떠 받드는 모양으로, 가둔데 받침석은 팔각으로 모서리를 기둥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아래 받침석은 연꽃잎을 엎어 놓은 모양이다. 광배가 불상보다 더 섬세하고 화려하게 표현된 고운사 석조 여래 좌상은 통일신라 시대 9세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의성 고운사, 2023년)

<출처>

  1. 안내문, 의성 고운사, 2023년
  2. ‘보물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충남 당진시 정미면 안국사지 절터에 있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이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보살이 배치된 삼존석불이다. 본존물은 머리에 커다란 사각형 갓을 쓰로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얼굴이 신체에 비해 큰 편이며 몸체는 조형미가 없는 편이며 신체만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다. 옆에 있는 보살상도 본존불과 비슷한 형태이다. 고려시대 지방호족들을 중심으로 조성했던 거대 석조불상들과 비슷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1<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커다란 돌에 신체를 얇게 조각하여 새겨 놓고 있는데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기둥처럼 보인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1
<갓을 쓰고 있는 형태의 본존불>

오른쪽 협시보살은 인동당초문이 있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2
<오른쪽 협시보살>

왼쪽 협시보살은 얼굴이 남아 있지 않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13
<왼쪽 협시보살>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6
<오른쪽 아래에서 본 모습>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4<옆에서 본 모습>

안국사는 안국산에 위치한 절터이다. 2003년 출토된 기와에서 요나라 연호가 적혀 있어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삼층석탑(보물), 맹향암각 등이 남아 있다. 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사찰에 내력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은 없다.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20230316_05<당진 안국사지>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및 석탑, 보물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조성시기는 2003년 발굴조사시 출토된 태평(요나라 성종 연호) 명문기와로 보아 고려 현종 12~21년(1021~1030년)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과 몸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머리에 네모난 갓 모양의 보개를 쓰고 있다. 두 팔과 두 손이 신체에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도 본존불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 하단의 석탑은 원래 5층일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1층에 1매의 몸돌만 남아 있고 그위에 4매의 지붕틀이 겹쳐져 있으며 받침부의 구조는 매우 간략하다. 1층 몸톨의 네 모서리에 기둥 형태가 표현되어 있고 3면에는 여래좌상, 1면에는 문고리형이 조각되어 있어 4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기본 형식에서 벗어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불상과 석탑은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나타난 양식으로 혼란기 백성들이 마을 공동으로 세운 것으로 거칠고 섬세하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구원사상을 넘어 힘든 현실세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 지역공동체의 모습이 엿보인다.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당진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3.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4. 홈페이지, 당진시청, 2023년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조불상

충남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이다. 고려전기 석조불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높이 18m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고려 광종 때 (968년경) 왕실의 후원을 받아 승려 조각장 혜명이 제작하였다.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아 세련되고 정밀한 조각수법을 자랑하는 통일신라 때와는 달리 투박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토속적인 불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얼굴이 몸통에 비해 크고, 전체적인 균형미가 떨어지지만, 위압적이면서도 토속적이고 자비로움보다는 강하고 신비한 느낌을 주는 고려초기 미륵불의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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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

머리에는 높은 관을 쓰고 그 위에 보개를 올려 놓고 있으며, 네 모퉁이에는 쇠방울을 달았다. 비정상적으로 크게 묘사된 얼굴에는 눈.코.입이 크고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귀는 거의 어깨까지 닿을 정도로 길게 표현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얼굴부분>

천의(天衣)는 몇가닥의 옷주름이 얕게 조각되어 있고, 두손은 몸에 비해 크게 조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몸체 부분>

‘은진미륵’으로 불렸던 이 불상은 관촉사 경내 안쪽편 언덕 아래에 세워져 있다. 몸통에 비해 머리부분이 상당히 크고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석불입상이다. 관촉사는 황산벌 넓은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낮은 언덕에 석축을 쌓아서 절터를 조성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세워진 관촉사 경내>

OLYMPUS DIGITAL CAMERA<불상 얼굴 부근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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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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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석등, 불상이 일렬로 배치된 모습>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 논산시 관촉동
높이가 18m에 이르는 국내 최대 석불로서, 보통 ‘은진미륵’이라 불리고 있다. 미륵불은 56억 7천만년이 지난 뒤에 그 때까지도 못다 구제된 중생들을 위해 나타난다는 미래불로 대개 산이나 들 등 바깥에 세워진 경우가 많다. 자연암반 위에 허리부분을 경계로 하여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이 보살상은 몸통에 비해 특별히 얼굴이 강조되어 전체적인 균형미는 약간 떨어지지만 불상 전체에서 느껴지는 강한 원초적인 힘은 고려시대 초기에 이 지방에서 많이 유행하는 불교예술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 얼굴과 손에 집중된 표현양식은 마치 토속적인 신상을 보는 듯 위압적이며, 자비로운 보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강한 메시지와 신비감을 담고 있는 모습이다. 관촉사 사적비에 의하면 고려 광종 19년(968)에 공사를 시작하여 목종 9년(1006)에 완성하였으며, 혜명대사가 대형 석불을 만들어 세울 수 없어 걱정할 때 사제촌에 나타난 동자들이 강가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아 기뻐하며 돌아와 불상을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거석불의 대표적인 예로 인근에 있는 부여 임천의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들 수 있는데, 이 두 불상은 고려시대에 충남지역에서 크게 유행하던 불상의 양식으로 새로운 지방적 미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관촉사 불상의 건립은 이후 충남 각 지역에서 거불상의 조성에 큰 계기가 된 듯 하다. (안내문, 논산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논산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3년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경북 예천군 예천읍 동본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여래입상(보물)이다. 높이 3.46m의 거대한 석조불상으로 하나의 돌에 조각해 놓고 있다. 옷주름, 적절한 신체의 비례, 경직되지 않은 얼굴모습 등 통일신라 불상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터에는 불상과 함께 삼층석탑(보물)이 남아 있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1<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머리에는 크고 넓은 육계가 솟아 있으며 네모반듯하고 풍만한 얼굴, 반쯤 뜬 눈, 넓적한 코, 웃는 입이 표현되어 있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은 얼굴에서 통일신라 말기 불사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2<불상 얼굴>

신체는 얼굴에 비에서 작은편이 짧은 목, 좁은 어깨, 짧은 팔 등 평판적인 가슴과 함께 위축된 모습을 보여준다. 옷은 허벅지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는데 둔중하고 도식적은 옷주름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3<불상 신체>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7
<정면에서 본 모습>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5
<옆에서 본 모습>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6
<뒤에서 본 모습>

주택가에 있는 절터에는 석조여래입상(보물)과 삼층석탑(보물)이 남아 있다. 발굴조사 결과 건물터와 우물 등 유구와 기와, 청자접시 등이 발견되었다.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20221130_04<절터>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동본리 석조여래입상은 높이 3.46m의 석불로, 보물인 동본리 삼층석탑과 함께 있다. 발견 당시에는 불상의 무릎 아래가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1960년 발굴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석불은 큰 얼굴에 길게 감은 눈, 넓적하고 짧은 코, 미소를 띤 입이 적절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 인상이 자비롭고 온화하다. 광배가 있었던 흔적은 없다. 전체적으로 큼직한 머리와 몸, 경직되지 않은 얼굴과 양다리에 있는 긴 타원형의 옷주름 등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 양식을 이으면서도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도 함께 나타난다.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대표적인 통일신라 사방불

경북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굴불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사면불상(보물)이다. 이 불상은 큰 바위 에 불상을 새겼는데 서쪽에는 아미타여래, 동쪽에는 약사여래, 북쪽에는 미륵보살, 남쪽에는 석가모니를 새긴 사방불(四方佛)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8세기에 경덕왕이 백률사를 행차했을 때 염불소리가 들려 땅을 파보니 큰 돌이 나와 4면에 불상을 새기고 불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입체감과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뺴어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부족하며 조화를 잘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사방불(四方佛)이란 각 방위마다 불국토가 있고 그곳에 상주하며 네방위를 패표하는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이다. 불국토 신앙과 오악숭배사상, 호국사상 등이 결합되어 통일신라 떄 성행하였다. 불교경전엔 약 5세기경에 언급되기 시작했으며 시대와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한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서쪽은 아미타여래 삼존상을 표현하고 있다. 아미타여래는 바위에 몸통을 새기고 그 위에 머리를 조각해 올려 놓았다. 좌우에는 별도로 보살상을 조각해 세워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아미타여래 삼존상>

동쪽에는 약사여래를 표현하고 있는데 양발을 무릎위에 올리고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과 신체가 세련되고 생동감있게 표현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약사여래좌상>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여래 얼굴>

북쪽면 오른쪽에는 입체감있게 조각한 보살입상이 서 있고 왼쪽에는 6개의 팔이 달린 관음보사을 얕은 선으로 새겼다. 미륵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쪽면 관음보살과 미륵보살>

남쪽면에는 석가여래삼존상을 표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오른쪽 보살상과 가운데 본존상 머리를 떼어갔다고 한다. 4면에 새겨진 불상 중 조각수법이 제일 나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면 석가여래삼존상>

OLYMPUS DIGITAL CAMERA<굴불사지 절터와 석조사면불상(보물)>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 보물), 경북 경주시 동천동 산 4
이 불상은 경주의 북쪽 산인 소금강산(小金剛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약 3m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보살상을 조각한 사방불 (四方佛)형태이다. 불상은 서쪽면에는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 동쪽면에는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 남쪽면에는 삼존입상(二等立像)이, 북쪽면에는 보살상(菩薩像) 두 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북쪽면 보살상 중 한 분은 얼굴이 열하나, 팔이 여섯 달린 관세음보살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불렀다고 한다. 최근의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가운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금고(金鼓)에는 굴석사 (石寺)라는 명문(銘文)이 있다. (안내문, 2012년, 경주시청)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