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석조유물

[부여박물관] 석조유물

부여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석조유물들이다. 불교와 관련된 석탑, 승탑, 석등, 비석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무덤에 세워졌던 석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부여가 사비기 백제의 도읍이었지만 주로 고려와 조선시대에 조성되었던 석조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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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탑, 8~10세기, 부여 기탑리. 목조건축물을 모방해서만든 초기 승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받침돌이 연꽃무늬가 새겨진 석조대좌의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연꽃무늬 석등받침, 6~7세기, 부여 기탑리

OLYMPUS DIGITAL CAMERA 연꽃무늬 석등받침, 8~10세기, 부여 석목리

OLYMPUS DIGITAL CAMERA 맷돌, 11~13세기, 부여 금곡리 금강사터

OLYMPUS DIGITAL CAMERA맷돌, 11~13세기, 부여 금곡리 금강사터

OLYMPUS DIGITAL CAMERA문인석,16~18세기, 논산 성동면 우곤리

OLYMPUS DIGITAL CAMERA 동자상, 16~18세기, 출토지 미상

<출처>

  1. 문화재청
  2. 부여박물관

 

 

보은 법주사 석조, 사찰 입구 물을 담아두는 그릇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에 남아 있는 석조이다. 법주사 승려들의 식수를 담아두던 돌그릇이라고 한다.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가장 큰 석조 중 하나이다. 사각형 모양으로, 아무런 조각을 하지 않은 간결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석조는 식수를 담아두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찰입구에 놓여져 사찰을 찾은 신도들이 손을 씻으면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는 서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카톨릭 성당이나 이슬람사원 입구에서 비슷한 기능을 하는 분수나 석조가 놓여 있다.

법주사(法住寺)는 삼국시대 진흥왕 때 (553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혜공왕 때(776년) 승려 진표가 크게 중창함으로써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오늘날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곳에는 오랫동안 금동대불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대웅전에서는 옛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까지 신앙의 중심이었던 목탑도 유일하게 남아 있다.

보은 법주사 석조,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석조는 높이 1.3m, 길이 4.46m, 너비 2.4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며 쌀 80가마를 채울 수 있는 부피를 지니고 있다. 바닥부터 윗부분에 이르기까지 수직의 벽을 이루고 있으며, 안팎의 벽체에는 아무런 무늬 장식이 없이 단조로운 형태이나 윗면의 가장자리는 모를 깎아서 부드러운 느낌을 내고 있다. 벽체의 두께도 다르게 하여 긴쪽은 23cm, 짧은쪽은 34cm 두께를 조정하여 수리적인 비례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아랫부분에 11cm의 구멍이 있어 실제로 물을 담아두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모통이부분 일부의 손상 흔적을 제외하고는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법주사 석조.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손을 씻고 목을 축이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법주사 석조는 사찰 경내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개울 건너편으로 길이 있어 구석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통일신라 때는 사찰을 들어오는 입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 아래쪽에 물이 나오는 작은 구멍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 내부.

SANYO DIGITAL CAMERA2008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보은 법주사 석련지(국보 64호), 돌로 작은 연못을 표현한 통일신라 걸작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석연지(石蓮池, 국보 64호)이다.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천왕문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조성된 것으로 다른 사찰에서 없는 특이한 형태의 유물이다.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을 띄어 두어 극락세계를 표한하고 있다. 연지는 팔각형 받침돌 위에 버섯모양의 사잇돌이 몸돌을 받치고 있다. 몸돌은 큼직만한 연꽃모양을 하고 있으며, 표면에는 연꽃잎을 새겨 장식하고 있다. 몸돌 윗쪽에는 낮은 기둥 세워 난간을 이루고 있으며 몸돌 위쪽에도 짧은 난간을 새겨 놓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통일신라시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슷한 형태의 유물로 부여의 백제 왕궁에서 출토된 것과 공주 절터에서 출토된 석조가 있다.

법주사(法住寺)는 삼국시대 진흥왕 때 (553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혜공왕 때(776년) 승려 진표가 크게 중창함으로써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오늘날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곳에는 오랫동안 금동대불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대웅전에서는 옛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까지 신앙의 중심이었던 목탑도 유일하게 남아 있다.

보은 법주사 석련지, 국보 64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신라 성덕왕 19년(720)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95m, 둘레 6.65m에 이르는 희귀한 석조조형물이다.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이다. 전체적인 조형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의한 것이며 특히 동자주(난간의 짧은 기둥)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 동자주와 유사하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보은 법주사 석련지(국보 64호).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섬세한 조각수법과 절제되면서도 화려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랫받침돌을 팔각형을 하고 있으며, 구름무늬가 새겨진 사잇돌을 거대한 몸돌을 받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모습. 물을 담아두는 몸돌은 연꽃잎을 새겨 연꽃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위에 난간을 올려놓고 있다. 표면에는 작은 연꽃을 다시 새겨 놓았다.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2008년 법주사 석연지.

OLYMPUS DIGITAL CAMERA법주사 석연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공주박물관 야외전시실] 석조불상을 비롯한 유물들

공주박물관 야외에는 공주 지역에서 출토된 석조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주에는 삼국시대 백제 성왕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대통사와 석조불상이 남아 있는 서혈사를 비롯하여 많은 사찰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 지역에서 출토된 불상, 석탑, 석조 등 불교 유물들이 박물관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보물148호, 149호로 지정된 대통사 절터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석조를 비롯하여 서혈사 절터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과 통일신라시대 석탑 등이 있다.

대통사는 공주시 반죽동에 있던 사찰로 『삼국유사』에는 신라 법흥왕이 양나라 무제를 위해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성왕이 창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신라 이후에 대통사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사가 있던 반죽동 일대에는 조선시대 충청감영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공주읍치의 중심지였다. 서혈사는 대통사 인근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이후에 크게 번창했던 사찰로 석조여래좌상 3구와 여러점의 석조유물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공주박물관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석주 유물인 대통사 석조와 서혈사 석조여래좌상. 공주를 대표하는 사찰이었던 대통사와 서혈사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공주 대통사 석조, 보물148호, 보물149호, 삼국시대 백제. 대통사 절터에서 출토된 석조이다. 통일신라 이후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직육면체 석조와는 달리 원통형을 하고 있다. 삼국시대 백제의 전형적인 석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여래좌상, 통일신라 9세기, 공주 서혈사 터. 서혈사는 공주시 웅진동에 있었던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에 큰 사찰로 규모를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터에는 3구의 석조여래좌상이 남아 있었는데 형태과 온전한 1구는 보물979호로 지정되어 박물관 내부에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박물관 내부에 전시중인 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보물979호)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자나불좌상, 통일신라, 공주 서혈사터.

OLYMPUS DIGITAL CAMERA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인 불상들.

OLYMPUS DIGITAL CAMERA여래입상, 고려, 공주 소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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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입상, 고려, 공주 신흥리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여래좌상, 고려 12~13세기, 연기 반곡리

OLYMPUS DIGITAL CAMERA배례석, 통일신라 9세기, 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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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 고려, 공주 금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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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광배, 백제 7세기, 공주 금학동

OLYMPUS DIGITAL CAMERA여래좌상, 통일신라, 공주 반죽동

OLYMPUS DIGITAL CAMERA여래좌상, 고려 12~13세기, 공주 금학동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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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입상, 고려 12~13세기, 홍성 상하리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여래좌상, 고려 12~13세기, 대전 보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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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입상, 고려, 공주지역

OLYMPUS DIGITAL CAMERA여래좌상, 고려 12~13세기, 공주 금학동 절터

OLYMPUS DIGITAL CAMERA석탑과 부재들. 주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탑 부재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통일신라 9세기, 출토지 미상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통일신라 9세기, 공주 반죽동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통일신라 9세기, 공주 봉황동

OLYMPUS DIGITAL CAMERA석탑받침, 조선 15~16세기, 충남

OLYMPUS DIGITAL CAMERA석등연화대석, 백제 6~7세기, 공주 정치리

OLYMPUS DIGITAL CAMERA부도, 조선, 공주 삼각리

OLYMPUS DIGITAL CAMERA부도, 고려 12~13세기, 아산 아산리

OLYMPUS DIGITAL CAMERA대좌 하대석, 고려 12~13세기, 공주 상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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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돌기둥, 조선, 공주 반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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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우기 받침돌, 조선, 공주 반죽동. 공주 감영에 있었던 측우기 받침돌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계단난간석, 공주 대통사터. 조선시대까지 감영 건물에 재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초석, 통일신라 9세기, 공주 중동

OLYMPUS DIGITAL CAMERA초석, 통일신라 8~9세기, 공주 서혈사터

OLYMPUS DIGITAL CAMERA초석, 조선 15~16세기, 충남.

OLYMPUS DIGITAL CAMERA십이지신상, 조선 15~16세기, 공주 반죽동

OLYMPUS DIGITAL CAMERA비석받침돌, 고려, 충남

OLYMPUS DIGITAL CAMERA비석머릿돌, 조선, 충남

OLYMPUS DIGITAL CAMERA용머리, 조선 15~16세기, 충남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강릉시립박물관] 야외전시실, 석조유물

강릉시립박물관 야외에는 영동지방에서 출토된 불상을 비롯한 석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지방은 선사시대 이래로 사람들이 거주해 살아왔던 지역이다. 지역에는 통일신랏시대에 세워졌던 큰 절터들의 있으며, 많지는 않지만 석조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박물관 야외에는 강릉 옥천동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석불입상과 통일신라시대 석탑 부재 등이 전시되어 있다.

강릉석불입상
이 불상은 고려시대 석불입상이다. 불상의 높이는 1.8m 가량이며, 신체와 불상의 받침대인 대좌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옥천동 민가에 있던 것을 1992년 이곳에 옮겨 놓았으며, 어리는 떨어졌던 것을 붙여 놓은 것이다. 머리 윗부분은 특히 손상이 심하여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다. 사각형의 납작한 얼굴에 두 눈은 수평으로 길며, 코는 마모가 심하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두 발은 불상의 몸과 함께 조각하지 않고, 받침대인 대좌에 조각되어 있다. 굴곡 없는 통 모양의 신체 표현이라든지, 사각형에 가까운 토속적인 얼굴, 불상의 발을 신체와 함께 조각하지 않고 따로 대좌 위에 조각하여 하반신의 발목과 연결되게 한 점은 고려시대 돌조각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불상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가 없어지고 전체적으로 마모도 심하지만, 고려시대 조각의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불상이다. <출처:강릉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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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지역에서 출토된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조불상이다. 투박하면서도 서면적인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강릉 옥천동 석탑재
이 석탑재는 통일신라시대의 무진사터 전하는 곳에서 1940년 발견된 석탑의 탭재이다. 관음사로 옮겼다가 1992년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탑재는 기단부의 한쪽면이다. 1층 몸돌 면에는 머리빛과 몸빛을 발하는 부처가 앉아 있는 모습이 얕게 돋을새김되어 있고 모서리기둥 1개와 버팀기둥 1개가 표현되어 있고 각 칸에는 팔부신장이 한명씩 얕게 돋을새김 되어 있다. 탑재 가운데 지붕돌은 받침수가 5단이고 빗물끊기홈이 있다. 지붕돌 윗면은 적당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 중 지붕돌 하나는 찰주구멍이 있어 3층 지붕돌로 추정된다. 두 탑재 모두 조각솜씨가 매우 뛰어나고 부처와 신장의 배치 등으로 보아 양양 진전사지 석탑과 비교되며, 통일신라 하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출처:강릉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강릉 옥천동 석탑재. 신장상과 부처상이 있다.

강릉 귀부(龜趺)
이 귀부는 1965년 강릉시 임당동 139번지 도로 확장 공사 중 땅 속에 묻혀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거북모양 받침돌은 지대석(地臺石)과 같은 돌로 되어 있다. 등에는 6각형의 거북등무늬가 새겨져 있고 중앙에는 비몽자리가 있다. 얼굴은 눈.코.입.귀.수염까지 표현하였으나 매우 퇴화된 형식이며,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목이 짧고, 앞발은 앞으로 나와 있으나 뒷발은 움츠린 상태로 파손되었다. 고리는 중앙에서 약간 비껴 오른쪽으로 향해 있다. 인근 민가의 뒤뜰에 보관되어 온 것을 1992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출처:강릉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강릉도호부 관아가 있던 임당동 지역에서 출토된 거북모양의 비석 받침돌이다. 조각수법이나 표현방식 등이 떨어지는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맷돌과 건물 주춧돌.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주춧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