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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Xi'an) 비림박물관] 대하석마(大夏石馬), 5호16국시대 유물

대하석마(大夏石馬)로 불리는 이 석마는 시안 비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가급문물(국보) 중 하나이다. 대하(大夏)는 동진시대 5호16국 중 흉노족에 의해 세워진 왕조로 24년 정도 지속되었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생동감있게 조각해 놓고 있다. 셴양시 싱핑(兴平) 한무제 능원(漢茂陵)에 있는 곽거병의 무덤에 있던 “마답흉노(馬踏匈奴)” 조각상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앞발 사이에 글자가 새겨진 작은 비석이 있다. 흉노족 왕조 유물인데 아이러니하게 흉노를 밟고 있는 말을 표현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대하석마(大夏石馬),>

말을 특징을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사실적이며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한무제 때 흉노를 제압한 장군 곽거병의 무덤 앞에 있는 석마.>

말이 흉노족을 밟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석마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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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서 본 모습. 흉노족 얼굴이 있던 자리에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석에 새겨진 글자. ”大夏眞興六年(424년)”, “大將軍”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비림박물관을 들어서면 거의 첫번째로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대하석마(大夏石馬, Daxia stone horse), 대하 진흥 6년(424),
This stone horse is one of the national treasure in Xi’an Beilin Museum. It was carved in the 6th year of Zhenxiang Period, Da Xia (424). Da Xia, lasted only 24 years, was founded by the minority Huns in the sixteen kingdoms of Eastern Jin. There are very few surviving relics and therefore this simple carved stone horse is extremely precious. The inscriptions in front of its front feet represent valuable historic documents.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부여박물관] 석조유물

부여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석조유물들이다. 불교와 관련된 석탑, 승탑, 석등, 비석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무덤에 세워졌던 석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부여가 사비기 백제의 도읍이었지만 주로 고려와 조선시대에 조성되었던 석조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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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탑, 8~10세기, 부여 기탑리. 목조건축물을 모방해서만든 초기 승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받침돌이 연꽃무늬가 새겨진 석조대좌의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연꽃무늬 석등받침, 6~7세기, 부여 기탑리

OLYMPUS DIGITAL CAMERA 연꽃무늬 석등받침, 8~10세기, 부여 석목리

OLYMPUS DIGITAL CAMERA 맷돌, 11~13세기, 부여 금곡리 금강사터

OLYMPUS DIGITAL CAMERA맷돌, 11~13세기, 부여 금곡리 금강사터

OLYMPUS DIGITAL CAMERA문인석,16~18세기, 논산 성동면 우곤리

OLYMPUS DIGITAL CAMERA 동자상, 16~18세기, 출토지 미상

<출처>

  1. 문화재청
  2. 부여박물관

 

 

보은 법주사 석조, 사찰 입구 물을 담아두는 그릇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에 남아 있는 석조이다. 법주사 승려들의 식수를 담아두던 돌그릇이라고 한다.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가장 큰 석조 중 하나이다. 사각형 모양으로, 아무런 조각을 하지 않은 간결한 형태를 하고 있다. 석조는 식수를 담아두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찰입구에 놓여져 사찰을 찾은 신도들이 손을 씻으면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는 서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카톨릭 성당이나 이슬람사원 입구에서 비슷한 기능을 하는 분수나 석조가 놓여 있다.

법주사(法住寺)는 삼국시대 진흥왕 때 (553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혜공왕 때(776년) 승려 진표가 크게 중창함으로써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오늘날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곳에는 오랫동안 금동대불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대웅전에서는 옛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까지 신앙의 중심이었던 목탑도 유일하게 남아 있다.

보은 법주사 석조,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석조는 높이 1.3m, 길이 4.46m, 너비 2.42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며 쌀 80가마를 채울 수 있는 부피를 지니고 있다. 바닥부터 윗부분에 이르기까지 수직의 벽을 이루고 있으며, 안팎의 벽체에는 아무런 무늬 장식이 없이 단조로운 형태이나 윗면의 가장자리는 모를 깎아서 부드러운 느낌을 내고 있다. 벽체의 두께도 다르게 하여 긴쪽은 23cm, 짧은쪽은 34cm 두께를 조정하여 수리적인 비례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아랫부분에 11cm의 구멍이 있어 실제로 물을 담아두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모통이부분 일부의 손상 흔적을 제외하고는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법주사 석조.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손을 씻고 목을 축이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법주사 석조는 사찰 경내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개울 건너편으로 길이 있어 구석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통일신라 때는 사찰을 들어오는 입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 아래쪽에 물이 나오는 작은 구멍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 내부.

SANYO DIGITAL CAMERA2008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보은 법주사 석련지(국보), 돌로 작은 연못을 표현한 통일신라 걸작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석연지(石蓮池, 국보)이다.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천왕문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조성된 것으로 다른 사찰에서 없는 특이한 형태의 유물이다.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을 띄어 두어 극락세계를 표한하고 있다. 연지는 팔각형 받침돌 위에 버섯모양의 사잇돌이 몸돌을 받치고 있다. 몸돌은 큼직만한 연꽃모양을 하고 있으며, 표면에는 연꽃잎을 새겨 장식하고 있다. 몸돌 윗쪽에는 낮은 기둥 세워 난간을 이루고 있으며 몸돌 위쪽에도 짧은 난간을 새겨 놓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통일신라시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슷한 형태의 유물로 부여의 백제 왕궁에서 출토된 것과 공주 절터에서 출토된 석조가 있다.

법주사(法住寺)는 삼국시대 진흥왕 때 (553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혜공왕 때(776년) 승려 진표가 크게 중창함으로써 미륵신앙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오늘날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곳에는 오랫동안 금동대불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대웅전에서는 옛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까지 신앙의 중심이었던 목탑도 유일하게 남아 있다.

보은 법주사 석련지, 국보 64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신라 성덕왕 19년(720)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95m, 둘레 6.65m에 이르는 희귀한 석조조형물이다.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이다. 전체적인 조형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의한 것이며 특히 동자주(난간의 짧은 기둥)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 동자주와 유사하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보은 법주사 석련지(국보).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연꽃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섬세한 조각수법과 절제되면서도 화려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랫받침돌을 팔각형을 하고 있으며, 구름무늬가 새겨진 사잇돌을 거대한 몸돌을 받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모습. 물을 담아두는 몸돌은 연꽃잎을 새겨 연꽃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위에 난간을 올려놓고 있다. 표면에는 작은 연꽃을 다시 새겨 놓았다.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2008년 법주사 석연지.

OLYMPUS DIGITAL CAMERA법주사 석연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공주박물관 야외전시실] 석조불상을 비롯한 유물들

공주박물관 야외에는 공주 지역에서 출토된 석조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주에는 삼국시대 백제 성왕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대통사와 석조불상이 남아 있는 서혈사를 비롯하여 많은 사찰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 지역에서 출토된 불상, 석탑, 석조 등 불교 유물들이 박물관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보물148호, 149호로 지정된 대통사 절터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석조를 비롯하여 서혈사 절터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과 통일신라시대 석탑 등이 있다.

대통사는 공주시 반죽동에 있던 사찰로 『삼국유사』에는 신라 법흥왕이 양나라 무제를 위해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성왕이 창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신라 이후에 대통사는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사가 있던 반죽동 일대에는 조선시대 충청감영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공주읍치의 중심지였다. 서혈사는 대통사 인근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이후에 크게 번창했던 사찰로 석조여래좌상 3구와 여러점의 석조유물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공주박물관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석주 유물인 대통사 석조와 서혈사 석조여래좌상. 공주를 대표하는 사찰이었던 대통사와 서혈사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공주 대통사 석조, 보물148호, 보물149호, 삼국시대 백제. 대통사 절터에서 출토된 석조이다. 통일신라 이후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직육면체 석조와는 달리 원통형을 하고 있다. 삼국시대 백제의 전형적인 석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여래좌상, 통일신라 9세기, 공주 서혈사 터. 서혈사는 공주시 웅진동에 있었던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에 큰 사찰로 규모를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터에는 3구의 석조여래좌상이 남아 있었는데 형태과 온전한 1구는 보물979호로 지정되어 박물관 내부에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박물관 내부에 전시중인 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보물979호)

OLYMPUS DIGITAL CAMERA비로자나불좌상, 통일신라, 공주 서혈사터.

OLYMPUS DIGITAL CAMERA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인 불상들.

OLYMPUS DIGITAL CAMERA여래입상, 고려, 공주 소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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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입상, 고려, 공주 신흥리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여래좌상, 고려 12~13세기, 연기 반곡리

OLYMPUS DIGITAL CAMERA배례석, 통일신라 9세기, 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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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 고려, 공주 금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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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광배, 백제 7세기, 공주 금학동

OLYMPUS DIGITAL CAMERA여래좌상, 통일신라, 공주 반죽동

OLYMPUS DIGITAL CAMERA여래좌상, 고려 12~13세기, 공주 금학동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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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입상, 고려 12~13세기, 홍성 상하리

OLYMPUS DIGITAL CAMERA약사여래좌상, 고려 12~13세기, 대전 보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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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입상, 고려, 공주지역

OLYMPUS DIGITAL CAMERA여래좌상, 고려 12~13세기, 공주 금학동 절터

OLYMPUS DIGITAL CAMERA석탑과 부재들. 주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탑 부재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통일신라 9세기, 출토지 미상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통일신라 9세기, 공주 반죽동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통일신라 9세기, 공주 봉황동

OLYMPUS DIGITAL CAMERA석탑받침, 조선 15~16세기, 충남

OLYMPUS DIGITAL CAMERA석등연화대석, 백제 6~7세기, 공주 정치리

OLYMPUS DIGITAL CAMERA부도, 조선, 공주 삼각리

OLYMPUS DIGITAL CAMERA부도, 고려 12~13세기, 아산 아산리

OLYMPUS DIGITAL CAMERA대좌 하대석, 고려 12~13세기, 공주 상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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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돌기둥, 조선, 공주 반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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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우기 받침돌, 조선, 공주 반죽동. 공주 감영에 있었던 측우기 받침돌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계단난간석, 공주 대통사터. 조선시대까지 감영 건물에 재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초석, 통일신라 9세기, 공주 중동

OLYMPUS DIGITAL CAMERA초석, 통일신라 8~9세기, 공주 서혈사터

OLYMPUS DIGITAL CAMERA초석, 조선 15~16세기, 충남.

OLYMPUS DIGITAL CAMERA십이지신상, 조선 15~16세기, 공주 반죽동

OLYMPUS DIGITAL CAMERA비석받침돌, 고려, 충남

OLYMPUS DIGITAL CAMERA비석머릿돌, 조선, 충남

OLYMPUS DIGITAL CAMERA용머리, 조선 15~16세기, 충남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