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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보물 459호), 전탑을 그대로 모방한 석탑

충북 제천시 장락동 절터에 남아 있는 칠층모전석탑(보물 459호)이다. 전탑을 모방하여 만든 모전석탑으로 벽돌처럼 생긴 점판암을 다듬어 쌓아서 다른 모적석탑과는 달리 전탑과 외형이 거의 흡사하다. 탑의 높이는 9.1 m로 상당히 높은 편이며, 감실이 있는 1층 기단 위에 7층 탑신을 올렸다. 탑신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층단을 갖춘 전형적인 전탑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귀퉁이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있다. 석탑의 형태나 제작 수법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남한강 유역과 경북 북부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중국 산동지방 전탑을 모방한 전탑이나 모전석탑 중 하나이다.

이곳은 장락사(長樂寺)가 있던 절터이다. 장락사는 삼국시대에 처음 창건되어 조선중기까지 존속하다가 17세기경에 폐사되었다. 남한강 유역의 다른 절터와 마찬가지로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으며, 이 시기에 조성된 유물들이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장랑동 칠층모전석탑(보물 459호). 점판암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인데 외형이 전탑과 거의 똑같다. 전체적인 비례가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조각수법도 양호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감실이 있는 1층 기단부. 자연석으로 쌓았는데 모퉁이에는 화강암으로 된 돌기둥을 세웠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 벽돌로 쌓은 전탑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지붕돌은 아래.위층단을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모습.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보물459호, 통일신라 말기, 높이 9.1 m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 쌓은 탑으로 흙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을 모방하였다하여 모전탑이라고 한다. 이 탑은 회흑색의 점판암으로 만든 모전탑으로 현재 높이가 9.1 m이며, 건립연대는 탑의 형식이나 돌 가공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된다. 기단은 단층 기단으로서 자연석으로 쌓았으며, 1층 몸돌 네 귀에 화강암으로 된 돌기둥을 세웠다. 2층 이상의 몸돌이나 지붕돌은 전부 점판암을 잘라서 쌓아 올렸으며, 특히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형식과 같이 상하에서 층단을 이루었다. 전체가 7층에 이르는 높은 탑인데 각 층의 줄임 비율이 적항하여 장중한 기풍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전쟁 때의 심한 피해로 무너지기 직전에 있었는데, 1967년에 해체 복원하였다. 이때 7층 지붕돌 위에서 꽃모양이 새겨진 청동편이 발견되어 탑의 꼭대기를 이루는 상륜부는 청동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1.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보물 1565호), 가야산 고갯길 입구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

경북 성주군 수류면 백운리 법수사(法手寺)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1656호)이다. 높이 6 m로 비교적 큰 규모로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을 새겼으며, 위층 기단과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일반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에 비해 1층 기단이 높게 만들었다. 해인사 부근 월광사지 삼층석탑과 비슷한 양식이다. 전체적으로 약간 불안정하게 보이며 전체적인 조형미는 약간 떨어지는 편이다.

법수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때(802년)에 창건된 사찰로 성주에서 해인사로 넘어가는 서성재 고갯길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500 m 정도의 가야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산지 사찰로 전망이 좋은 곳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각들이 있는 큰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었다. 주위에 형성된 마을 규모로 당시 사찰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큰 금당터가 남아 있는데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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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보물 1656호). 높이 6 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삼층석탑이 가야산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아래층 기단에는 각 면에 안상이 3개씩 새겨져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아래층 기단을 높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져놓고 있다. 지붕돌은 얇게 만들어졌으며 모서리를 치켜올려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앞에 놓여진 석물. 연꽃모양을 조각해 놓은 것으로 석등받침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설명이 없다. 석탑과 너무 가까이 있어 원래 위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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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삼층석탑.

OLYMPUS DIGITAL CAMERA절터는 가야산 중턱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석탑이 있는 주불전 영역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빼어나다. 사찰을 조성할 때 해가 떠는 동쪽을 향해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영주 부석사, 구례 화엄사, 합천 영암사지 등에서 볼 수 있는 공간배치로 화엄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층석탑 옆쪽에 남아 있는 큰 규모의 금당터.

OLYMPUS DIGITAL CAMERA금당터에 모아 놓은 절터에 남아 있던 석재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입구에서 본 모습. 경남 합천군과 경북 성주군을 경계짓는 가야산 줄기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편에서 본 모습. 주위에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법수사의 옛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법수사지삼층석탑, 보물 1656호, 경북 성주군 수류면 백운리
이 탑은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창건된 사찰인 법수사에 조성된 높이 6 m의 3층석탑이다. 대가람으로 전해지는 법수사(法手寺)는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고 석탑과 금당터의 거대한 석축,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 경순왕의 제자인 김황(나주김씨의 비조)이 승려가 되어 법명을 범공이라 하고 법수사에 머물면서 해인사에 드나들며 산승으로 일생을 마쳤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또한 9개의 금당과 8개의 종각에 1,000여 칸이 넘는 건물이 있었다고 하였으니 대가람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석탑은 이중의 기단과 3층의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륜부는 파손되었다. 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3구씩의 안상을 조각하였고, 위층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다. 옥개석은 밑면의 받침이 5단이며, 네 귀퉁이가 위로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작고 네모진 받침 위로 엎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있다. 이 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에 비해 아래층 기단이 높은 것이 특징으로, 이러한 양식상의 변화를 볼 때 신라 말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성주군성, 2017년)

<출처>

  1. 안내문, 성주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합천 월광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29호)

경남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월광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보물 129호)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높이 5.5 m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 특별한 장식은 없다. 2기의 탑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약간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어 조성연대가 다를 것으로 추청되고 있다. 몸돌에 비해 아래층 기단이 약간 크다는 느낌을 주지만 전체적인 조형미나 세부 조각수법은 양호한 편이다.

석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월광사지는 해인사에서 흘러 내려온 가야천과 그 지류과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2기의 석탑 외에 절터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절터로 볼 때 사찰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조선시대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가야 태자가 창건했다는 기록 외에는 사찰 내력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해인사를 중심으로 가야산에 세워졌던 여러 사찰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합천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으로 2기의 석탑이 나란히 서 있는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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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사지 동삼층석탑. 높이 5.5 m 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기단부를 약간 크게 만들었으나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나 조각수법 등은 양호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의 덮개돌을 8개의 부재로 구성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이며, 아랫층 덮개돌의 경사가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얇고 모서리를 살짝 들어올려 경쾌한 느낌을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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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뒷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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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5.5 m의 월광사지 서삼층석탑. 도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기단부의 형태가 동탑과 다른 양식을 사용하고 있어 다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층 기단 윗부분의 경사가 거의 없는 편이며, 몸돌 가운데 2개의 기둥을 새겨놓은 것이 특징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탑 탑신부. 동탑과 마찬가지로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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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뒷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2기의 삼층석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절터. 석탑 외 절터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나 건물터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 뒷편에 새로 세워진 작은 사찰.

합천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보물129호, 경남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이 석탑은 월광사지의 동.서로 배치되어 있는 쌍탑으로, 서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최근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중기단에 삼층 몸돌을 갖춘 전형적인 신라 탑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탑의 높이는 5.5 m이다. 이 두 탑은 전체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만든 방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어 같은 연대에 세워진 것이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월광사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월광태자)이 창건하였다고 해서 월광사라고 한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합천 영암사지 삼층석탑(보물 480호)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영암사지(사적 131호)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480호)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높이 3.8 m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기단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탑신 몸돌에도 기둥모양을 새겼다. 위층 기단과 1층 몸돌이 약간 높은편이나 전체적인 비례는 양호한 편이다.

영암사지는 합천군 황매산 남쪽 자락에 있는 통일신라 절터이다. 창건연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으나 고려 때 적연선사가 입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망이 아주 좋은 황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축대를 쌓아 인공적으로 절터를 조성했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절터에는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삼층석탑(보물 480호)와 거북받침돌(보물 489호) 2기가 남아 있으며, 금동여래입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물과 건축부재 등이 출토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암사지 삼층석탑(보물 480호).높이 3.8 m의 삼층석탑으로 모서리에 새긴 기둥 모양 외 특별한 장식이 없는 통일신라 삼층석탑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와 조각수법 등은 양호하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위층 기단이 약간 높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 몸돌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단이 4단이며 지붕모서리를 살짝 들어 올려 경쾌한 느낌을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서 본 모습. 황매산 바위를 배경으로 석탑이 우뚝 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해가 떠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남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황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영암사지. 영주 부석사처럼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건물터를 조성했다. 절터는 대체로 해까 뜨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합천 영암사지 삼층석탑, 보물 480호,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이 탑은 가운데 몸돌이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에 복원하였으며, 1차 금당지 앞에 서 있다. 2단의 기단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 떠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다.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편이며 2.3층은 크게 줄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씩이고, 처마 밑이 수평이며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내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탑의 머리장식부분은 전부 없어졌으나, 3층 지붕돌의 윗면에 구슬과 화려한 장식을 꽂는 쇠막대를 끼우던 구멍이 있다. 위층 기단과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느낌은 있으나, 전체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며 각 부재의 짜임새 또한 간결하다. 신라석탑의 양식을 잘 이어받고 있으나, 기둥 표현이 섬약하고 지붕돌 받침수가 줄어든 점으로 보아 건립시기는 9세기경으로 짐작된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군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보물1832호),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곳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봉정암 경내에 있는 오층석탑(보물 1832호)이다.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얻어온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5대 적멸보궁 중 한곳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탑은 거대한 자연암반을 기단을 삼아 오층 탑신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석탑 주위에 연잎을 돌려 기단으로 삼고 있다. 탑신 몸돌에는 3층까지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에는 받침을 3단으로 새겨 놓고 있다. 상륜부에는 연꽃봉우리 형태의 석재를 올려놓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 구성이 단순하며, 지붕돌에 표현된 양식 등에서 고려후기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봉정암(鳳頂庵)은 설악산 소청봉 아래 높은 곳(해발 1244 m)에 위하고 있는 백담사 부속암자로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하나로 많은 불교신자들이 찾는 성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삼국시대에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모시면서 창건했다고 하며, 여러차례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1832호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 07-20170625인제 봉정암 오층석탑.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봉정암 뒷편 봉우리 아래에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은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아 4층 탑신을 올려 놓았다. 지붕돌 아래 받침을 두껍게 3단으로 새기는 등 고려후기 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을 받치는 바위에 연잎을 새겨 기단임을 보여주고 있다.

보물1832호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 06-20170625옆쪽에서 소청봉을 배경으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주위에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보물1832호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 09-20170625뒷편  봉우리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석탑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봉정암.

보물1832호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 08-20170625석탑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설악산 봉우리들.

OLYMPUS DIGITAL CAMERA봉정암에서 올려다 보이는 석탑.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 보물1832호,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석가사리탑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셔와 이곳에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지고, 통일신라 문무왕 13년(673) 원효대사를 비롯한 승려들이 암자를 새로 보수한 후 이 탑을 보존하였다고 하나 현재 이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일반적인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탑을 받치고 있는 바위 윗면에는 연꽃을 새겨 놓았다.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어 고려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 봉정암, 2017년)

<출처>

  1. 봉정암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