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석탑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보물)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내원사 경내에 있는 덕산사 삼층석탑(보물)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덕산사 대웅전 건물터 앞에 남아 있었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기단과 탑신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에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지붕돌은 밑면 받침을 4단씩 두었다.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1-20220222<산청 덕산사 삼층석탑(보물)>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2-20220222<기단부>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3-20220222<1층 몸돌과 지붕돌>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4-20220222<2층, 3층 탑신부>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12-20220222
<북쪽면>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11-20220222
<남쪽면>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6-20220222<뒤쪽에서 본 모습>

덕산사 통일신라 말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어 절터만 남아 있었다. 1959년 중건하면서 인근 대원사와 비슷한 이름인 내원사로 불리웠닥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덕산사 절터였음이 확인되어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산청 덕산사 삼층석탑 (보물) 05-20220222<덕산사 경내>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 보물,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신라 무열왕 때인 657년때 처음 세워졌으나, 1950년대에 도굴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1961년에 내원사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맨 위의 지붕돌이 많이 부셔 졌으며,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3층으로 된 지붕돌은 평평한 느낌이지만 모서리를 올려 경쾌함을 더하려 하였다. 4개의 주름 지붕돌과 전체적으로 길쭉해진 모습은 통일신라의 늦은 시기인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여러장의 돌을 짜 맞춘 기단은 이른 시기의 전통을 잇고 있는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변화를 살릴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안내문, 산청 덕산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 덕산사,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대원사 사리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보물)이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8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다층석탑이다. 2층 기단에는 4면에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으며 모서리 기둥모양 대신 사람형상이 탑신을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8층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에 장식이 별로 없고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 있다.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사리를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웠다고 전해지며 현재의 탑은 조선후기 정조 때(1784년)에 다시 세웠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1-20220222<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이 석탑의 특정적인 부분은 2층 기단 모서리에 기둥 대신 사람형상이 새겨져 있다. 이는 사람이 사리를 모신 탑신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조각 수법이나 형식은 비교적 소박한 편이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5-20220222<기단부>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4-20220222<기단부>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6-20220222<탑신부>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7-20220222<머리장식>

석탑 앞 배례석에 석탑이 조선후기 정조 때(1784년) 다시 세웠음을 알려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3-20220222<배례석>

대원사(大源寺)는 신라 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그 뒤 폐사되었던 것으로 조선후기 숙종 때 다시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02-20220222<산청 대원사 삼층석탑>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 보물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은 신라 선덕여왕 15년(645)에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높이 5.5m의 탑이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던 것을 조선 정조 8년(1748)에 다시 세웠다. 1989년에 해체하여 복원하는 과정에서 58과의 사리와 사리를 넣은 보관함이 발견되었다. 탑은 두개의 바닥돌 위에 여덟개의 지붕돌을 올린 구조이며, 꼭대기의 머리 장식은 일부만 남아 있다. 위층 바닥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 대신 사람의 모습을 한 조각상이 새겨져 있으며, 네 면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대원사 다층석탑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조각은 소박한 편이나, 전체적으로 비율이 뛰어나고 탑의 각 부재가 완전하게 남아 있어 조선시대 석탑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산청 대원사,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 대원사,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산청 단속사지 동, 서 삼층석탑(보물)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동, 서 삼층석탑(보물)이다. 금당터 앞에 2개의 삼층석탑이 동서로 나란히 세워져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 쌍탑식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기단 이래층은 바닥돌 역할을 겸하고 있으며 그 위에 다시 기단을 올렸다. 몸돌과 지붕돌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긴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다.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는 노반과 연꽃모양의 앙화가 남아 있다. 장식이 거의 없으나 각부분의 비례나 조각수법이 우수한 편이다. 통일신라 전성기 삼층석탑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1-20220222<산청 단속사지 동, 서 삼층석탑(보물)>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8-20220222<동탑>

기단부 1층에는 양쪽 모서리와 가운데 2개의 모서리 장식을 새겨 놓고 있으며 2층 기단부에는 모서리와 가운데 1개의 기둥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2-20220222<동탑 기단부>

탑신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지붕돌은 각각 5단의 받침을 새겨 놓고 있다.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3-20220222<동탑 1층 몸돌과 지붕돌>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5-20220222<동탑 머리장식>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4-20220222<동탑 정면>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4-20220222
<동탑 서쪽면>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5-20220222
<동탑 북쪽면>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6-20220222
<동탑 동쪽면>

서탑은 동탑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데 동탑에 비해 많이 훼손되었다.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7-20220222<서탑>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1-20220222<서탑 기단부>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2-20220222<서탑 1층 몸돌>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3-20220222<서탑 지붕돌>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6-20220222<서탑 머리장식>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09-20220222<정면에서 본 모습>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1-20220222
<서탑 서쪽면>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2-20220222
<서탑 북쪽면>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23-20220222
<서탑 동쪽면>

단속사(斷俗寺)신라 35대 경덕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단속사는 조선초기 교종에 속한 사찰로 존속했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절터에는 동, 서 삼층석탑(보물)이 남아 있으며 건물 기둥을 받쳤던 초석 등이 일부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는 솔거가 그린 그림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절터 입구에는 최치원이 쓴 글자를 새긴 돌과 최치원의 독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분황사 관음보살상과 단속사 유마상
또 경주의 분황사 관음보살과 진주의 단속사 유마상(維摩像)도 모두 그의 필적이다. 대대로 신화(神畵)라고 전한다. (삼국사기 권 제 48 열전 제8 솔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0-20220222<단속사지 동, 서 삼층석탑(보물)>

산청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보물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돌이나 나무로 만든 조형물로, 실제 사리가 없더라도 부처를 모신 신성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산청 단속사지 동삼층석탑과 산청 단속사지 서 삼층석탑은 단속사지의 금당 터 앞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 불탑이다. 기단,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이 남아 있는데, 기단은 2단이고 몸돌과 지붕돌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 장식은 일부만 남아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아래층 가운데에는 기둥 모양이 2개 있고 위층 가운데에는 1개만 있으며,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고, 모시리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쳐 두는 네모난 장식인 노반과 연꽃 모양의 장식인 앙화가 남아 있다. 장식이 많지 않고 간략하다는 점에서 9세기 통일 신라 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출처>

  1. 안내문, 산청군청,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위키백과, 2022년
  5. 삼국사기 권 제 48 열전 제8 솔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보물), 고려초기 석탑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에 옛 절터에 남아 있는 구층석탑(보물)이다. 높이 약 6 m로 2층 기단 위에 9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을 새겼으며, 윗층 기단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기는 것 외 특별한 장식은 없다. 1층 탑신은 높게 만들었으며 2층부터는 낮은 높이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세부적인 조각수법은 평이하고 탑신이 높아 전체적으로 안정감은 부족해 보인다.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01-20210414<청양 서정리 구층 석탑(보물)>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03-20210414<기단부>

몸돌과 지붕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지붕돌은 완만하게 작아지는 비율을 가졌다.  1층 지붕돌 받침은 5단이며, 나머지 지붕돌 받침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04-20210414<1층 탑신>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05-20210414<윗층 탑신>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11-20210414
<서쪽에서 본 모습>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12-20210414
<북쪽에서 본 모습>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13-20210414
<동쪽에서 본 모습>

석탑이 세워진 곳에는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청양에서 공주와 부여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정산현(定山縣) 읍치가 있었던 곳이다. 석탑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주요 교통로에 자라잡고 있었던 고려시대 사찰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02-20210414<석탑이 남아 있는 절터>

청양 서정리 9층석탑, 보물 18호, 고려초기
고려 초기에 세워진 9층 석탑이다. 부근에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탑 이외에 절이 있었다는 흔적은 현재 찾을 수 없다. 탑은 사각형의 2층 기단 위에 세웠는데 아래 기단의 네 면에는 2개씩의 안상(眼象) 조각이 있고, 위의 기단에는 모서리 기둥과 버팀목을 새겼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의 돌을 사용하였으며 지붕돌은 완만하게 작아지는 비율을 가졌고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1층의 지붕돌 받침은 5단이지만 2층 이상은 3단으로 되어 있으며, 상륜부는 모두 사라졌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얇으며 층수가 9층이라는 점에서 안정감이 떨어지지만,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고 상하의 비례가 아릅답게 조성되는 등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의 석탑 양식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청양군청, 2021년)

<출처>

  1. 안내문, 청양군청, 202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경북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장연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보물)이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으로 2층 기단위에 삼층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기단과 탑신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둔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은 없다. 전체적인 조형미나 세부조각수법은 양호한 편으로 높이 4,8 m 정도 높지 않은 편으로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9세기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1979년 원래 자리로 복원해 놓았는데 기단부는 새로 석재를 보충하였다. 동탑은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1층 몸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석탑이 있는 장연사지 절터는 운문사에서 육로로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동강 지류인 동창천에서 가까운 계곡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동창천을 따라 형성된 밀양과 경주를 연결하는 교통로에 있으며, 주위에 농토는 적지 않은 편이다. 2개의 탑을 세웠을 정도로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주요 교통로에 있던 사찰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1-20200106청도 장연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동.서삼층석탑. 통일신라 주요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경주 감은사지와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7-20200106뒷쪽에서 본 동.서삼층석탑. 장연사지 절터는 들판이 내려다 보일 정도 높이에 절터가 자리잡고 있다. 동창천과 주위의 넓은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동해와 주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경주 감은사지와 비슷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11-20200106두개의 탑 중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던 동탑. 높이 4.6 m 로 2층 기단 위에 3층탑신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동탑 몸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5-20200106동탑 기단부. 몸돌 모서리에 가운데에 기둥을 새겨 놓고 있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6-202001063층 탑신. 몸돌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고 있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이고 네귀퉁이를 살짝 치켜 올렸는데, 평이하면서 단순한 느낌을 준다.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았는데 서탑 머리장식을 모방해 다시 만들어 올렸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8-20200106옆에서 본 모습.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2-20200106서탑은 동탑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무너져 인근 개천가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복구해 놓은 것으로 기단 1층은 새로 보충한 석재로 복원하였다.

청도 장연사지 동서삼층석탑 보물677호 03-20200106원래의 위치에 남아 있던 동탑.

청도 장연사지 삼층석탑, 보물 677호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으로 높이는 동탑 4.6 m, 서탑 4.84 m이다. 서탑은 일찍이 무너져서 개천가에 버려져 있었으나 1980년 2월 동탑 옆에 복원되었다. 몸돌과 지붕돌에 크고 작은 손상이 있으며 하층기단은 대부분이 보충한 석재로 이루어졌다. 동탑에서는 1984년 해체.보수 공사 때 몸돌 일단 내부에서 특이한 목재 사리합과 그 안에 장치했던 푸른색 사리병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쌍탑 기단부는 이중기단이며 각 면에 모서리 기둥 두 깨씩을 본떠 새겼을 뿐, 다른 장식은 없는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으로 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