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선사시대

충주 조동리 유적, 선사시대 생활유적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선사시대 생활유적지이다. 남한강 충주댐 하류 방향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 유적으로서 신석기.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남한강을 건너는 나루터로 원주와 제척지역을 연결해 주며, 남한강 조운에서도 중요했던 곳으로 보인다. 원주로 연결되는 국도 19호선 목행대교와 충북선 철도가 부근을 지나가고 있다.

1996년부터 여러차레 발굴조사가 이루어 졌다. 발굴.조사 결과 신석기 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청동기 문화층에서는 민무늬토기 외에 집터, 불땐자리, 움, 도랑 등의 다양한 생활유적이 확인되어 큰 마을을 이루며 생활했음을 보여준다. 출토유물로는 각종 토기류와 화살촉, 돌도끼, 대패날,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가 나왔고 쌀, 보리, 밀 등의 곡물과 복숭아 씨앗, 도토리 등이 나와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충주지역 신석기.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조동리 선사유적. 신석기 ~ 청동기시대 집터 등 마을 유적이 확인되었다. 이곳은 남한강을 건너는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량면소재지가 위치한 조동리 마을은 전체가 생활유적지라 할 수 있지만 남한강 제방 안쪽 농경지로 사용하던 곳에 옛 유물과 집터 등이 발굴되었다. 발굴조사가 끝난 지금은 다시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다.

충주 조동리유적  21-20191212발굴조사 당시 모습.

조동리 선사유적
조동리 유적은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조돈마을 1364-2(전) 일대에 위치한다. 1996년 1차 조사를 실시하여 중원지역에서는 드물게 신석기 ~ 청동기시대 문화층이 잘 발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고, 유물포함층이, 청동기츠에서는 집터 9기.불때자리 49기.움 18기.도랑 유구 7기.돌무지 유구 1기 및 근대의 우물 1기.불땐자리 1기 등 모두 87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유구와 많은 출토 유물상으로 볼 때 청동기시대에 이곳에 대규모 취락을 형성하고 활발한 생산경제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신석기층의 불땐자리가 6,200 bp로, 청동기층은 집터가 2,715 bp. 불땐자리가 2,995 bp로 측정되어, 약 7천년 전 처음신석기인이 조동리에 와서 살았고, 약간의 공백 상태로 있다가 약 3천년 전쯤부터 다시 청동기인이 와서 농경생활을하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조동리 선사유적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굽잔토기(복제품), 조동리 유적지를 대표하는 유물로 강한 지역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동리의 굽잔토기
굽잔토기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긴 네모꼴 집터에서 출토되며, 주로 경기도.강원도.충청도 등 중부지방에서 발견되고 있다. 바탕흙이 곱고 겉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간 뒤 소성하여 제작하였다. 길고 가는 굽다리의 내부에 원통형 구멍이 깊숙이 뚫려 있으며, 배가 부른 몸통을 지닌 모습으로 주로 한강유역에서 출토되고 있어 강한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 토기는 청동기시대 토기 중 특징적인 것으로 집안에 둔 신성한 토기로서 제사와 같은 특수 목적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여겨진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조동리 유적에서 확인된 생활 유적들

조동리 유적의 발굴현황
조동리 유적은 남한강가에 형성된 넓은 충적대지에 위치한 선사시대 생활유적으로 크게 3지구로 구분되며, 1지구를 중심으로 3차에 걸쳐 신석기.청동기 문화층을 발굴조사하였다. 발굴결과 확인된 유구와 출토유물 및 입지환경으로 볼 때 조동리 유적은 청동기시대에 큰 규모의 마을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불땐자리 1기가 조사된 신석기층을 정밀 조사하면 중원지역의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문화발달 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발굴당시 확인된 집터

조동리의 집터
집터는 청기층에서 네모꼴 집터7기.둥근꼴 집터 2기 등 모두 9기가 조사되었는데, 유적의 중앙부에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내부 시설물로는 기둥구멍(3.7.8호)과 불땐자리(1.4.7.9호)가 있으며 출입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불땐 자리는 길죽한 강자갈돌로 만든 돌돌림형태로 1개(1.4호) 또는 2개(7.9호)를 설치하였다. 집터의 긴 길이방향은 대체로 남한강 흐름방향과 일치한다. 특히 7호 집터는 움 벽면에 상수리나무를 가공한 판지를 대어 벽체를 형성하였음이 확인되어 주목된다. 유물은 토기.석기.뼈연모.치레거리.곡물낟알.열매씨앗 등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연대 측정결과 2,700 bp로 밝혀져 이 시기 중원지역의 청동기시대 생활문화상을 이해할 수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재현해 놓은 마을

조동리마을의 생활상
남한강변의 넓은 충적대지 위에 자리잡은 조동리 마을은 청동기시대에 네모꼴과 둥근꼴의 집을 짓고, 식량 저장을 위한 움과 음식조리를 위한 야외 불땐자리를 설치하였으며, 여러 가지 용도에 맞는 토기와 석기를 제작하였다. 쌀.보리.밀.조 등의 곡물을 생산하고, 계절에 따라 주변에서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는 도토리.복숭아 등 야생식물을 채집하여 기본적인 식생활을 해결하고 움에 식량을 저장하였다. 물고기잡이와 짐승사냥을 통해서 단백질이 풍부한 먹거리를 확보하여 토기에 담아 삶거나 불때 자리에 익혀 먹었다. 실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고, 옥으로 치레걸이를 만들어 몸을 치장하는 미의식을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사와 같은 의식행위도 있었음을 출토유물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민무늬토기,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숫돌, 홈자귀, 갈판,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
대패날, 긴돌찰, 화살촐,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발화석, 청동기시대

석기류
석기는 땅을 파는 돌괭이.돌보습, 나무를 자르거나 다듬는 돌도끼.돌대패날, 사냥이나 무기로 사용된 간돌검.화살촉, 곡식을 수확하는데 쓰인 돌낫.반달돌칼, 곡식을 가공하는데 쓰인 갈돌과 갈판, 물고기잡이 도구인 그물추, 실을 감는데 사용하는 가락바퀴, 도구를 가는데 사용하는 숫돌, 불을 일으키는데 사용된 발화석, 도구를 제작하는 데 쓰인 망치돌 등 매우 다양한 석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뗀석기 전통을 지닌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뗀돌도끼가 많이 주목되며, 미완성 석기, 격지, 부스러기 등이 많이 출토되어 석기제작 행위가 매우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앞을 지나는 도로.

OLYMPUS DIGITAL CAMERA도로와 제방 사이에 유적지가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박물관 옆에 있는 동량면사무소. 선사시대 이래 교통의 중심지였던 이곳이 지금도 생활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을 흐르는 남한강. 충주댐에 하류방향으로 약 3 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협곡을 지나던 남한강이 평야지대와 만나는 지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멀리서 보이는 조동리 주변지역

 조동리선사유적
충주댐으로부터 약 3 km 하류의 남한강변 충적대지에 위한 선사시대의 대규모 마을 유적으로서 신석기.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이 잘 보존된 곳이다. 신석기시대의 문화층에서는 민무늬토기 외에 집터, 불땐자리, 움, 도랑 등의 다양한 생활유적이 드러나 대규모의 사람들이 큰 마을을 이루며 생활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로는 각종의 토기류와 화살촉, 돌도끼, 대패날, 그물추, 가락바퀴 등의 석기류가 나왔고 쌀, 보리, 밀 등의 곡물과 복숭아 씨앗, 도토리 등이 나와 당시의 식생활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이곳은 충주지역의 신석기.청동기시대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충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영주 가흥리 암각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새겨놓은 바위그림

경북 영주시 가흥동에 있는 암각화이다. 마애여래삼존상(보물 221호)이 새겨진 바위 아래에 새겨진 것으로 높이 1 ~ 1.5 m, 너비 4.5 m 정도이다. 바위에 도구로 쪼아 새긴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3 ~ 5개의 선을 연결하고 있는데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보물 605호)의 얼굴그림을 변형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의미는 알 수 없다. 암각화란 선사시대 바위나 동굴벽면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을 새겨 놓은 것으로 풍요와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행위의 결과로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주 가흥리 암각화.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의 활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처럼 큰 하천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은 얼굴모양을 간략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암각화가 새겨진 큰 바위. 위쪽에 통일신라 때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다. 지역에서 큰 의미를 갖는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영주 가흥리 암각화, 경북 영주시 가흥동
이 암각화는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이 영주시 서편을 따라 남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남쪽으로 굽어도는 지점에 있다. 가흥리 마애삼존불상과 같은 암반의 남쪽 수직 석벽에 새겨져 있으며 1989년에 발견되었다. 그림이 새겨진 암벽은 거친 화강암질로 높이 약 4 m, 폭이 5 m가 넘는 꽤 큰 규모이다. 암벽은 상하로 구분되는데, 암각화는 하단부에 있으며, 전체 암각화가 차지하는 규모는 높이 1.5 m, 길이 4.5 m 정도이다. 검포형의 암각화가 점차 도식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암벽에 신앙의 대상물을 새기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제의 장소로서의 특징이 나타난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제천 입석리 선돌, 마을 입구에 세워졌던 큰 돌

충북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선돌이다. 3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7개의 돌을 쌓아 만든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 선돌이다. 충북지방에서 확인된 선돌 중 가장 큰 편으로 위쪽이 뾰족한 남성 선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입석리’라는 마을 이름도 이 선돌에서 유래하였다.

선돌은 길쭉한 자연석 또는 일부분 가공한 기둥 모양을 돌을 땅위에 세워 기념물 또는 신앙대상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조성된 것을 주로 선돌이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에 비해 그 숫자는 적지만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나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제천 입석리 선돌.  7개의 돌을 쌓아 하나의 선돌을 만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선돌.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선돌이 세워져 있는 입석리 마을.

제천 입석리 선돌, 충북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
이 선돌은 입석마을 입구의 길 옆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으며, ‘선돌백이’라 불리고 있다. ‘입석리(立石里)’라는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 선돌은 전체적으로 3단 구성을 하고 있다. 가장 아랫부분은 높이 66 cm의 낮고 폭이 넓은 3개의 돌을 놓았고, 그 위에 높이 96 cm, 너비 140 cm, 두께 96 ~116 cm 크기의 돌 3개를 올려 놓아 중앙부를 이루고 있다. 가장 윗부분에는 높이 245 cm, 너비 258 cm, 둘레 654 cm의 커다란 돌을 올려놓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7개의 돌을 쌓아 하나의 선돌 형태를 이루고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입석리 선돌은 지금까지 충북지방에서 확인된 선돌 가운데 가장 큰 편에 속하며, 위 끝 한쪽이 뾰족한 남성 선돌의 특징을 가진다. 남한강 유역의 대표적 선돌의 하나인 입석리 선돌은 제천 황석리 선돌, 단양 각기리 선돌들이 짝을 이루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홀로 있으며, 이 마을의 문화적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 선돌을 보존하기 위하여 1974년부터 주민들이 ‘선돌회’를 조직하여 관리하고 있고,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선돌제’를 지내고 있다.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제천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선사시대 바위그림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있는 바위그림인 천전리 각석(국보 147)이다.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가 있는 대곡천에서 상류방향으로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유적으로 바위에 각종 동문문양과 동심원을 비롯한 기학학적인 문양이 상부에 새겨져 있다. 반구대 암각화, 고령 알터마을 암각화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형태의 암각화는 신석기말이나 청동기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비는 종교적 상징으로 해석되며 북방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하부에는 돛을 단 배, 말, 용 등의 그림과 글씨들이 가는 선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신라 때 새겨진 것으로 기마행렬도, 배가 항해하는 모습 인물 등의 그림들은 당시 생활양식을 연구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림과 함께 800여자 이상의 글씨가 새겨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약 300여 자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신라 법흥왕때 새겨진 것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이 새겨놓은 그림으로 당시의 생활모습이나 정신세계 등을 보여주고 있는 유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오랜 세월동안 바위에 새겨진 그림들이다. 윗부분이 15도 정도 기울어진 형태의 바위에 각종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바위에 새겨진 그림들. 윗부분에는 각종 동물문양과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등 추상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고 아랫부분에는 돛을 단 배와 말 등의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바위에 새겨진 글씨와 그림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놓은 안내표지판의 그림. 아래쪽에 글씨가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보147호 울주 천전리 각석 15-20171114

바위그림에 새겨진 각종 문양과 그림들.

암각화란 바위위나 큰 절벽, 동굴 안 벽면 등에 사물이나 기호를 쪼기, 새기기, 칠하기 등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바위그림’, ‘암각화’라고 한다. 바위그림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에서도 발견되지만 전형적인 사례들은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주로 찾아진다. 바위그림은 대개의 경우, 풍요, 다산 제의의 산물로 이해되고 있다.
- 기하학무늬: 둥근무늬, 우렁무늬, 마름모꼴무늬, 굽은무늬, 가지무늬
- 동물상: 사슴, 호랑이, 파충류, 환상적인 동물, 물고기
- 인물상, 서있는 입상, 인물상 (안내문, 울산시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에 새겨진 그림들. 눈으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지만, 동물그림 등이 많이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에서 2번째, 마름모꼴 무늬와 물고기모양 무늬 등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에서 3번째. 마름모꼴무늬, 사람얼굴 등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심원, 마름모꼴, 타원형 등 다양한 형태의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에서 4번째

OLYMPUS DIGITAL CAMERA왼쪽에서 5번째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들. 신라 법흥왕 때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돛을 단배, 말 등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눈으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새겨진 그림들

OLYMPUS DIGITAL CAMERA천전리 각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은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대곡천에서 상류방향으로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이 새겨진 바위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그림이 새겨진 바위.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전리 각석 앞을 흐르는 대곡천. 반구대 암각화 주변과 마찬가지로 기암괴석이 빼어난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에도 비슷한 형태의 바위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바위 앞을 흐는 대곡천.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10
천전리 각석은 1970년 12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유적으로, 대곡천변에 있는 윗부분이 15도 가량 경사진 형태의 바위에 각종 동물문양과 동심원, 나선형, 음문, 마름모와 추상적인 문양, 역사시대에 새겨진 돛을 단 배, 말과 용 등이 가는 선 그림, 신라시대 명문 등이 새겨져 있다.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추상적인 문양들이 암면의 전면에 걸쳐 분포되어 있으며 이러한 추상적인 도형 그림은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비는 일종의 종교적 상징으로 해석된다.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날카로운 금속도구를 이용하여 그어서 새긴 세선화는, 망를 끌거나 돛을 단 단배, 말 등이 행렬을 이루고 있으며, 용 그림 등도 확인된다. 신라시대 명문은 을사, 기미, 등을 통해 6세기 초의 기록으로 추정되며, 명문은 크게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갈문왕이 을사년(645년) 6월 18일 새벽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과 사부지갈문왕 부인 지몰시혜가 남편이 죽자 그리움에 사무쳐 그의 흔척이 남은 천전리 계곡으로 어린 아들(후의 진흥왕)과 함께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천전리 각석은 선시대뿐만 아니라 고대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적이다. (안내문, 울산시청, 2011년)

<출처>

  1. 울산시청
  2. 문화재청
  3. 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중앙박물관특별전, 벼락도끼와 돌도끼] 돌도끼, 선사시대의 생활필수품

1. 벼락도끼, 2. 돌도끼에 대한 인식의 변화, 3. 선사시대 생활필수품

돌도끼(石斧)는 둥근 자갈이나 몸돌을 다듬거나 갈아서 만든 도끼로 파편을 떼어내어 다듬은 뗀돌도끼와 자갈을 갈아서 만든 간돌도끼가 있다. 뗀돌끼는 구석기시대부터 만들어 사용한 도구로 제작이 쉬울뿐 아니로 예리한 날을 만들 수 있어 가장 많이 사용된 석기이다. 간돌도끼는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사용된 도구로 도끼형태로 갈아서 사용한다. 도끼는 전쟁이나 사냥에 무기로 사용할 수 있으며, 나무를 벌채하고 가공하는데 사용했으며, 목재를 가공하는데는 자귀라 불리는 특이한 형태의 돌도끼를 사용했다. 청동기시대에는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돌도끼가 만들어졌는데 돌끌, 홈자귀, 별도끼, 달도끼 등이 있다.

선사시대의 생활필수품, 돌도끼
1960년대 웅기 굴포리, 공주 석장리 등 구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된 뒤, 우리나라 전역에 있는 주거지와 무덤, 조개무지 등의 유적에서 다양한 돌도끼가 출토되었습니다. 돌도끼를 수집하고 연구한 결과가 축적되면서 기록이 남지 않은 선사시대의 기술과 도구에 관한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구석기시대에 사용한 돌도끼는 형태가 단순하며 다목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신석기시대에는 날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마연한 돌도끼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주로 땅을 일구는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청동기시대가 되면 사용 목적에 맞게 돌도끼의 형태와 크기가 세분화, 전문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돌끌, 홈자귀, 별도끼, 달도끼 등 다양한 종류의 돌도끼를 만들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최초의 돌도끼,

OLYMPUS DIGITAL CAMERA찍개, 單面器, 1.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2,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찍개, 兩面器, 3.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돌을 떼어내어 날을 만들어 사용한 구석기시대 도구이다. 사냥을 하거나 전쟁을 하는데 사용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도구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찍개, 單面器, 4.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5.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6, 김포 신곡리.풍곡리, 구석기대. 찍개, 兩面器, 7.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찍개, 單面器, 8. 연천 횡산리, 구석기시대, 9.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10. 연천 원당리, 구석기시대

다목적용 돌도끼

OLYMPUS DIGITAL CAMERA주먹도끼, 手斧, 1. 파주 와동리, 구석기시대, 주먹찌르개, 手鎬, 2.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주먹도끼, 3.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4. 연천 원당리,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주먹도끼, 5. 김포 신곡리.풍곡리, 구석기시대, 6. 파주 와동리,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주먹도끼, 7.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8.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9. 양평 도곡리,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주먹도끼, 10.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11.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주거지출토 별도끼, 星形石斧, 청동기시대, 달도끼, 環狀石斧, 가평 대성리, 청동기시대. 별도끼는 톱니날도끼라고 도 부르며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용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거지 출토 달도끼, 環狀石斧, 1. 경기도, 청동기시대, 2. 평택 소사동,  별도끼, 星形石斧, 3. 평택 토진리,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출토 달도끼, 環狀石斧, 4. 안성 반제리, 초기 철기시대, 5. 양평 공세리, 청동기시대. 달도끼는 바퀴날도끼라고도 부르며 별도끼와 비슷한 용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OLYMPUS DIGITAL CAMERA가평 대성리 유적 주거지와 돌도끼 출토 위치

기능에 따라 형태가 다양해진 돌도끼

OLYMPUS DIGITAL CAMERA자루에 끼운 돌도끼. 목재를 가공하는데 사용되는 자귀라 불리는 돌도끼이다. 신석기시대에 생겨난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김포 양촌리 유적 4호 주거지

OLYMPUS DIGITAL CAMERA파주 당하리 유적 고인돌 하부 노출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후포리 유적 돌도끼 노출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지표 수습 돌도끼, 石斧, 1. 1981년 입수, 청동기시대, 2. 정선 여량리, 청동기시대, 3. 2000년 입수,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지표 수습 돌도끼, 石斧, 4. 봉화 삼동리, 청동기시대, 5. 강화 화천읍, 청동기시대, 6. 부산,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유적 출토 돌도끼, 石斧, 7. 화성 남양동, 청동기시대, 8. 평택 토진리, 청동기시대, 9. 춘천 중도, 원삼국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지표 수습 돌도끼, 石斧, 10. 화성 석우리, 청동기시대, 조개무지 출토 돌도끼, 石斧, 11. 부산 동삼동, 신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주거지 출토 돌도끼, 石斧, 12. 김포 양촌면, 청동기시대, 13. 김포 양촌면,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주거지 출토 돌도끼, 有溝石斧, 14. 김포 양촌면,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무덤출토 돌도끼, 石斧, 15. 울진 후포리, 신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무덤출토 돌도끼, 有溝石斧, 16. 파주 당하리, 청동기시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