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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벼락도끼와 돌도끼] 돌도끼에 대한 인식의 변화

1. 벼락도끼2. 돌도끼에 대한 인식의 변화3. 선사시대 생활필수품

조선시대 벼락도끼로 불리면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겨졌던 선사시대 유물들은 20세기 서양의 고고학이 들어오면서 사람이 만든 도구였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벼락도끼로 불렸던 구석기시대 뗀석기, 신석기시대 돌로 만든 도구들, 청동기시대에 사용된 간석기들이 고고학적인 조사 등을 통해 수집되기 시작되었으며, 조선시대 왕실에 벼락도끼로 진상되었던 유물 또한 고고학적 측면에서 주목받았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선사시대 유적에대한 조사는 총독부에서 주관하여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으며 고고학적인 연구성과를 남겨 놓고 있다.

벼락도끼에서 돌도끼로, 돌도끼에 대한 인식의 변화
20세기 근대 학문 체계를 갖춘 고고학이 서양에서 들어오면서 벼락도끼를 천지조화의 산물이나 자연물이 아닌 사람이 만든 물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찍개, 격지 같은 구석기시대 뗀석기와 돌도끼, 돌끌, 홈자귀 등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간석기를 수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돌도끼는 대부분 고고학 조사에서 수집된 것입니다. 이외에 이왕가박물관 소장품, 발견품, 구입품, 기증품 등도 있습니다. 이왕가박물관 소장품 중 간돌검, 돌끌, 홈자귀 등의 간석기는 조선시대의 벼락도끼에 대한 기사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합니다. 또한 1970년대에는 발견품의 신고가 증가했는데, 이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돌도끼를 옛사람들이 만든 도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별도끼,星型石斧, 1. 청동기시대, 2.평안남도 대둥군 미림리, 청동기시대, 3. 1923년구입,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달도끼, 環形石斧, 1. 경기도, 청동기시대, 2,3,4.청동기시대

일제강점기 선사시대의 조사
1880년대 개항 직후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이 우리나라의 유적과 유물에 대해 소개한 단편적인 기록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조사는 일제강점기 고고학 자료를 독점한 조선총독부에서 주관하였다. 이 가운데 당시에는 ‘석기시대’라고 불렀던 선사시대에 대한 조사는 주로 조선총독부 촉탁이었던 도리이 류조(1870~1953년)가 담당하였다. 한반도 전체를 망라하여 지표채집과 간단한 시굴조사를 시행하며 유물 채집에 주력하였다. 1922년에는 조선총독부에 고적조사과가 설치되었으며, 이때 후지타 료사쿠(1892~1960년)가 고적조사위원으로 부임하여 웅기 송평동 조기무지 등 선사시대 유적을 조사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石斧, 1,2. 함경북도 나선시 웅기패총,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홈자귀, 有溝石斧, 1.함경북도 종성군 동건산, 청동기시대, 2. 황애도 안악군 동산동, 청동기시대, 3. 경주 외동읍, 청동기시대, 4. 구입품,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끌, 石鑿, 1. 경주 신당리, 신석기시대, 2. 통천 발산,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끌, 石鑿, 3. 경주, 청동기시대, 4,5. 구입품,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石斧, 1. 경주, 청동기시대, 2. 경남,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石斧, 3. 입수, 청동기시대, 4.울산 황방산, 청동기시대, 5. 평북 강계군 등공동,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石斧, 6. 함북 경흥군 서수리, 청동기시대, 7. 총천군 발산,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石斧, 8. 진해 갑산, 청동기시대, 9. 경주,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石斧, 10. 함북 종성군 동건산,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石斧, 11. 경주 외동읍, 12. 구입품, 청동기시대

20세기 초 수집한 돌도끼

OLYMPUS DIGITAL CAMERA홈자귀, 有溝石斧, 경주,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石斧, 1.항북 회령시 봉의면, 청동기시대, 2. 함북 회령시, 청동기시대, 3. 1919년 구입,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石斧, 4. 영주 풍기읍, 청동기시대, 5. 남영주 연평리, 청동기시대, 6, 1916년 입수, 청동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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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끌, 石鑿, 함북 회령시 춘동, 청동기시대

요코야마 자료
일본인 요코야마 쇼자부로(1897~1959년)가 1930년대 경기도 문산과 파주 일대에서 수집한 석기이다. 경성제국대학에서 윤리학을 강의했던 요코야마는 아마추어 고고학자로 고고유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을축년 대홍수가 있었던 1925년 서울 암사리 주변에서 석기와 토기 조각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여 1944년까지 서울.경기지역에서 약 5천여 점의 선사시대 유물을 모았다. 석기의 경우 완성품은 물론 제작 과정을 알 수 있는 미완성품까지도 채집하고, 문산 일대에서 구석기를 확인하였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 자료들은 광복 직후 국립박물관에서 인수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찍개, 兩面器, 1. 파주 문산읍, 구석기시대, 2. 서울 응암동, 구석기시대, 대형긁개, 搔器, 3. 파주 문산읍,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石斧, 1. 남양주 이패동.삼패동, 청동기시대, 2. 서울 망우동,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홈자귀, 有溝石斧, 3. 서울 망우동, 청동기시대, 4. 파주 독서동,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끌, 石鑿, 5. 함북 청진시, 청동기시대, 6. 서울 망우동, 청동기시대, 7. 서울 망우동,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石斧, 구리 인창동, 청동기시대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문화재청

 

 

[중앙박물관특별전, 벼락도끼와 돌도끼] 벼락도끼, 왕의 진상품

1. 벼락도끼2. 돌도끼에 대한 인식의 변화3. 선사시대 생활필수품

2016년 봄, 국립중악박물관에서는 ‘벼락도끼와 돌도끼”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였다. 선사시대 유물들에 대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관점과 해석, 고고학적인 측면 등을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선사시대 유물에 대한 고고학적인 인식은 없었지만 여러곳에서 발견되는 돌로 만든 도끼 등을 ‘벼락도끼’로 인식했음을 실록을 비롯하여 여러 문헌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인위적으로 가공되어 도끼와 같은 특정한 도구의 형태를 하고 있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왕실에 진상되었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 돌로 만든 도끼 등을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때부터 소장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조선왕실에서 전해오던 벼락도끼로 불렸던 유물들과 일제강점기에 고고학적인 조사 등을 통해 입수된 선사시대 유물들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고고학이 도입되면서 유물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모습 등를 살펴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시는 선사시대 유물들에 대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관점과 해석, 고고학적인 측면 등을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벼락도끼와 돌도끼

우리나라에서 선사시대의 유적과 유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요? 고려시대 이전에는 문헌이 전하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돌도끼를 ‘벼락도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벼락이 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돌도끼를 벼락도끼라고 불렀습니다.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는 신의 도끼라는 뜻이 담겨 있는 벼락도끼를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신묘한 약효를 가진 만병통치약이라고 여겼습니다. 근대적 학문 체계로서의 고고학이 자리를 잡기 이전까지는 우연히 발견된 과거의 유물과 유적을 흔히 당대의 지배적인 자연관이나 종교관에 따라 초자연적 산물로 해석하였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발달하면서 돌도끼의 용도, 제작 시기와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사시대의 생활 필수품이었던 돌도끼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마련한 이번 전시가 오래 전 이땅에 살았던 사람들과 현재 우리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평안도 의주의 바윗돌에 벼락이 쳤다. 그곳에서 찾아낸 벼락도끼를 임금님께 바쳤다. – 『세종실록』 권93, 세종23(1441) 6월 8일 -

OLYMPUS DIGITAL CAMERA다목적용 도끼, 주먹도끼, 手斧, 양평 도곡리, 구석기시대. 주먹도끼는 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뗀석기이다. 몸돌 양쪽 겉면을 깨뜨려 격지를 떼어낸 석기이다. 1978년 전곡리유적에 이런 형태의 주먹도끼 문화가 발견되어 동북아시아에도 아슐리안계통의 전기구석기문화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최초의 도끼, 찍개, 1. 兩面器, 김포 신곡리.풍곡리, 구석기시대, 2. 兩面器, 파주 금파리, 구석기시대, 3. 單面器, 연천 원당리, 구석기시대, 찍개는 석영이나 둥근 자갈돌 한쪽면만 떼어내 날을 형성한 몸돌석기이다. 한 면에 날이 형성된 외날찍개(單面器)와 두면에 날이 형성된 양날찍개(兩面器)가 있다. 사냥한 짐승을 찍어서 토막내거나 뼈를 부수는 등 거친 착업에 쓰는 석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최초의 도끼, 찍개, 4. 單面器, 김포 신곡리.풍곡리, 구석기시대, 5. 兩面器, 연천 횡산리,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우두머리의 도끼, 별도끼, 星形石斧, 1. 김포 양촌면, 청동기시대, 2. 평택 소사동, 청동기시대. 별도끼는 톱니처럼 보인다고 하여 톱니날도끼라고도 부르며 청동기시대에 사용된 돌도끼이다. 실제 무기 등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달도끼와 함께 의식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벼락도끼, 雷斧, 1. 황해도 장연군 몽금포리, 청동기시대, 2. 傳 연천 전곡면, 청동기시대. 벼락도끼로 불렸던 청동기시대 돌도끼이다. 인위적으로 가공되었기때문에 초자연적인 존재로 여겨져 국왕에게 진상되었다고 한다.

왕의 진상품, 벼락도끼

뇌신(雷神)은 하늘에서 비와 바람,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는 신으로 도끼(雷斧)를 지니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8세기경 중국의 당(唐)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벼락도끼 관련 기록은 세종23년(1441)을 시작으로 광해군14년(1622)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7번 보입니다. 신의 물건인 벼락도끼에 신묘한 약효가 있다고 생각하여 임금에게 진상품으로 올렸습니다. 백성들은 벼락도끼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겨 임산부에게 갈아 먹이기도 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어 아이에게 채워 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16세기 초부터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자리를 잡으면서 벼락도끼를 자연적인 기(氣)가 뭉쳐서 만들어진 물건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7세기 이후에는 실록에서 벼락도끼에 대한 기록이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출처: 중앙박물관>

신의 물건이었던 벼락도끼가 벼락과 함께 인간세상에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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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뇌신, 雷公圖, 김덕성(1729~1797년),

조선 18세기 후반 뇌공도 우측 상에 “현은 김덕성이 그린 뇌공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천둥의 신인 뇌신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뇌신은 고대의 신으로 번개와 천둥을 일으키는 신이다. 천둥을 일으키는데 사용하는 북인 뇌고(雷鼓)와 나무망치를 등에 메고 칼을 들고 있다. 뇌신의 근육질 몸매와 역동적인 자세는 조선시대 그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요소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뇌공도에 기록된 글 “현은 김덕성이 그린 뇌공도이다. 산을 뽑을 것 같은 힘과 세상을 다 덮는 기운이 역대 최고이니 이처럼 웅건한 신장이 과연 누구인가. 맹분(孟賁)과 하육(夏育)과 같은 장사라 하더라도 이에 이르지는 못하리라, 갑자년(1804) 8월.” * 맹분과 하육: 중국 춘추전국시대 천하장사의 이름. 엄청난 용기와 힘의 소유자로 두사람은 용사(勇士)의 범칭이 되어 ‘분육(賁育)’으로 일컬어 진다.

OLYMPUS DIGITAL CAMERA중국의 뇌신,

OLYMPUS DIGITAL CAMERA서양의 뇌신, 일본의 뇌신. 서양의 뇌신 중에는 그리스신화 12신 중 주신인 제우스가 뇌신에 해당한다.

벼락도끼, 귀한 약재로 사용하고 임금님께 진상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뇌검(雷劍), 1,2,3. 옛 이왕가박물관 소장품, 청동기시대. 조선시대에 벼락도끼로 생각되어 국왕에게 진상된 간석기 등 유물들이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 및 창덕궁에 전해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뇌부(雷斧), 4. 옛 이왕가박물관 소장품, 청동기시대, 5,6. 창덕궁 이관품,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벼락도끼의 약효, 『본초강목(本草綱目)』, 이시진(1518~1593년), 중국 명

1596년 초간 『본초강목(本草綱目)』은 약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동식물 및 광물을 분류하고 생산지와 효용을 기술해 놓은 중국 명나라 때의 의학서이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18세기 이후에 전래되었다. 이 책에는 벼락도끼에 대한 다양한 약효가 소개되어 있어 그 당시 벼락도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알 수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 벼락도끼의 약효, 『본초강목(本草綱目)』 중 벼락도끼의 효능을 설명한 글

돌을 축축히 한 후 갈아서 즙을 복용하고 또한 삶아서 복용한다. 베개 속에 넣어 두면 악몽을 꾸지 않게 한다. 끝을 갈아서 먹으면, 피로중에 좋고, 병을 일으키는 노충(勞蟲)을 죽이고, 뱀이나 지네 등 고독을 배출하며, 설사를 막아준다. 상자나 장롱에 놓아두면 좀이 생기지 않는다. 각종 뇌물(雷物)을 몸에 지니면 마음이 안정되어, 헛것을 보고 놀란 병의 치료에 쓴다. <출처: 중앙박물관>

벼락도끼를 자연물로 설명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정교한 벼락도끼는 사람의 솜씨일까?, 「청파집(靑坡集)」 판목, 이욱(1438~1498년), 조선 철종 4년(1853) 판각 추정.

조선시대에는 벼락도끼를 천지조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했으나, 15세기 문인 이육은 벼락도끼가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노련한 장인이 만든 물건일 가능성을 그의 문집 「청파집」 중 「청파극담(靑坡劇談)」에 남겼다. <출처: 중앙박물관>

벼락도끼에 대해 설명한 글 별이 떨어져 돌이 되고, 벼락치고 천둥이 울려 돌을 얻으니 칼 같기도 하고 도끼 같기도 하다. 그 다듬은 솜씨는 진실로 우연이 아니고, 훌륭한 장인과 노련한 손을 거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으니, 어찌 천지조화의 능력이 자연스럽고 신묘하여 사람의 솜씨보다 뛰어나다 하겠는가? 누가 하늘에 사물이 있어 자연히 이와 같다고 말하겠는가? 천지에서 생겨나는 물건 가운데 초록의 꽃 같은 것은 교묘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음양의 정기를 빌려서 일시에 번영하고 호화로운 것이다. 금.옥.흙.돌은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교묘하게 될 수 없다. 나는 벼락도끼.벼락칼의 연원을 알지 못하니 박학다식한 군자를 기다려 알고자 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오행설로 풀어 본 벼락도끼

벼락도 불기운이다. 불(火)이 다 타면 흙(土)이 되고 흙이 뭉쳐져서 돌(石)이 되는 것이 바로 그 이치다. – 중국 송대의 학재 채원정(1135~1198년)  -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문화재청

[공주박물관 선사고대문화실] 선사시대 충남지역

국립공주박물관 2층은 “충청남도 선사고대문화실”이라는 이름으로 충청남도 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유물들을 연대순으로 전시하고 있다. 충청남도는 금강 본류와 크고 작은 지천 주변에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아왔다. 공주 석장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알려진 구석기시대 주거유적지이도 하다. 또 태안반도와 서해안 일대는 중요한 연안 해상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었기때문에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중국, 일본과 문화교류가 활발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문화가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신석기시대에는 공주 석장리를 비롯하여 대전 둔산동 등 금강 중류지역에 충남지역의 주요 유적지들이 분포하고 있다. 반면에 청동기시대에는 한.중.일 해상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는 천안, 아산, 당진 등 서해안가 가까운 지역에 크게 부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충청, 경기, 호남지역에는 50여개의 소국들이 마한이 성립되었으며 그 중 천안지역이 마한연맹체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금강변에 위치한 선사시대 유적지인 공주 석장리 유적지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오랜기간 동안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1960년대 미국인 대학원생이 처음으로 발견한 이래 우리나라 고고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유적지이다.

충청남도의 선사시대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한 충청남도는 낮은 구릉지대가 많고 금강과 같은 큰 하천과 그 지류 주위에 작은 평야가 발달하여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구석기시대에는 주로 금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뗀석기를 사용하는 구석기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신석기시대에는 해안가와 내륙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토기의 사용과 농경이 크게 발전하였고 더욱 큰 집을 짓고 대규모의 부락을 이루며 살았다. 기원전 3세기부터 중국에서 철기 제작기술이 전래되어 다양한 철제 도구들과 정교한 청동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경제.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남서부 지역에는 기원 전후부터 마한으로 불리는 50여개의 소국들이 성립되었다. <출처:공주박물관>

구석기시대의 뗀석기
충남지역의 구석기시대 유적은 주로 금강 중류의 대전.공주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이 가운데 공주 석장리유적은 1964년 발굴조사에서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한국 구석기시대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다. 구석기시대는 사냥과 채집에 따라 이동생활을 시작하였고, 처음에는 찍개와 긁개, 여러면석기 등 단순한 뗀석기를 사용하다가 차츰 돌 재질이 다양해지고, 만드는 기술도 발달되면서 돌날이나 슴베찌르개 등 정교한 도구가 만들어졌다. 금강유역에서 출토되는 뗀석기 가운데 슴베찌르개는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출토 량이 월등히 많아 우리나라 뗀석기문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몸돌과 격지(공주 석장리), 찍개(대전 둔산동), 찌르개(대전 대정동), 슴베찌르개(대전 용산동, 공주 석장리), 구석기시대.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지역에서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토기와 석기
신석기시대(8,000~1,500BCE)가 되면 고기잡이.사냥.채집.농사.가축 기르기 등 다양한 생산 활동에 따라 한 곳에 정착해 살면서 토기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충남지역에는 신석기시대의 일반적인 모양인 뾰족바닥의 빗살무늬토기와 땅을 갈 때 사용하는 돌보습, 실을 뽑아내는 가락바퀴, 열매나 곡식을 가공하기 위한 갈돌과 갈판이 주로 출토되었다. 충남지역은 큰 하천과 하천으로 흘러드는 지류가 많고, 구르이 발달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였기떄문에 해안 지역뿐만 아니라 내륙에서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충남지역에서 조사된 집터는 후기에 해당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전.중기유적도 있다. 집터는 가운데에 화덕이 설치된 움집이며, 빗살무늬토기는 바닥에 무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빗살무늬토기, 아산 성내리, 신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빗살무늬토기, 서산 대죽리, 신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가락바퀴, 아산 성내리.서산 대죽리, 신석기시대

가락바퀴는 솜이나 털 등의 섬유를 꼬아 실을 뽑아내는 방적기구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시대와 장소에 따라 재료나 형태가 다양하다. 가운데에 뚤려 있는 구멍에 축이 될 막대를 끼워 고정시킨 뒤, 손으로 섬유를 잡고 가락바퀴를 돌리면 섬유가 꼬이면서 실이 만들어 진다. 이렇게 만든 실로 가죽을 꿰매어 입거나 간단한 형태의 옷감을 만들어 옷을 지어 입은 것으로 보인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돌보습, 공주 장원리,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토기
청동기 시대에는 납작바닥에 적갈색이나 황갈색을 띠는 민무늬토기가 나타나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모양과 크기 등이 다르게 만들어졌다. 충남지역에서는 빠른 시기의 집터에서 입부분에 간단한 선이나 구멍 등의 무늬가 있는 토기와 겹입토기가 출토되며, 늦은 시기의 원형집터나 돌널무덤에서는 송국리식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또한 고운 흙으로 빚어 겉면을 흑연 등의 광물질이나 산화철을 발라 문질러 광택을 낸 검은간토기나 붉은간토기도 있다. 붉은간토기는 둥근 바닥에 짧은 목의 단지와 굽다리가 달린 토기가 많다. 그리고 검은간토기와 함께 주로 돌널무덤에서 출토되는 덧띠토기는 입부분에 둥근 띠가 덧붙어 있다. 한편 굽다리가 달린 독특한 모양의 토기는 고운 흙으로 빚었으며, 겉면이 비교적 매끄러운 것이 특징이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충남지역의 청동기시대 토기. 청동기시대에는 민무늬토기를 비롯하여 기술발전을 보여준 검은간토기, 붉은간토기 등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는 지역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토기들이 만들어졌는데, 송국리형 토기는 충남지역을 대표하는 토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겹아가리토기, 대전 용산동,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구멍무늬토기, 천안 백석동,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부여 송국리. 아산 와우리,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붉은간토기, 공주 장선리,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굽단지, 천안 백석동.천안 운전리,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붉은간토기, 대전 신대동,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덧띠토기, 대전 궁동.금산 수당리, 초기 철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덧띠토기, 청양 분향리.아산 권곡동, 초기 철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검은간토기, 금산 수당리,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의 간석기
청동기시대에는 이전 시기보다 석기의 제작기술이 크게 발달되며, 종류는 보다 다양해지고 기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본격적인 쌀농사가 시작되면서 수확을 위한 돌칼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반달모양에서 점차 세모꼴로 변한다. 또한 예리하고 날렵하게 가공되어 살상력이 높아진 화살촉.간돌감.창.달모양 도끼 등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며, 특히 간돌검과 달모양 도끼는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였다. 한편 마을이 번성하면서 집을 짓는데 필요한 공구류가 다량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목재를 얻기 위해 삼림 벌채가 늘어나면서 돌도끼의 사용이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목재를 가공하기 위한 홈자귀.대팻날.돌끌 등은 청동기시대에 새로이 만들어진 석기들이다. 이외에 도구이 날을 갈기 위한 숫돌, 실을 뽑아내는 가락바퀴, 곡식이나 열매를 가공하기 위한 갈판과 갈돌도 만들어졌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기시대의 간석기. 청동기시대에는 제작기술의 발전으로 일상생활 등에는 다양한 석기들이 만들어졌다. 충남지역은 한.중.일 해상교역로의 거점으로 초기 성읍국가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천안, 당진, 대전, 공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돌칼, 1.3,부여송국리, 2.아산 시전리, 4~6.천안 백석동,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생활도구로 농사에 사용되었던 돌칼이다. 초기에는 반달모양돌칼이 주로 사용되었다가 점차 세모형태로 바뀌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돌살촉, 공주 화월리, 서천 한산면,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돌검, 공주 남산리, 대전 추동리, 청양 신흥리, 금산 음대리, 대전 신대동, 청동기시대. 전국적으로 고루 출토되는 형태로 지배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유물이다. 청동검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바퀴날 도끼, 천안 백석동, 청동기시대. 돌검과 함께 지배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숫돌, 대전 대정동,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 홈자귀, 공주 신영리. 당진 자개리,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갈돌과 갈판, 공주 장원리, 대전 관평동, 청동기시대

홈자귀는 머리 부분에 홈이 파인 도끼로 각종 도구나 집 등의 시설물을 만들 때 필요한 나무가공용 도구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타나는 독특한 석기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날은 한 쪽에만 있으며, 반대쪽에는 ‘ㄱ’자 모양으로 굽은 나무자루에 끈으로 견고하게 묶을 수 있도록 오목한 홈이 패여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을 중심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마을의 규모가 커지고, 각종 시설물의 건설이 널어나면서 홈자귀와 같은 나무 가공용 도구가 발달하게 되었다. <출처:공주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천안 용곡동, 공주 장선리, 아산 명암리), 돌끌(아산 명암리),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검을 비롯한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 지배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유물들이 대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검, 대전 비례동.서산 탑곡리,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대롱옥, 아산 갈매리, 공주 남산리, 공주 화월리, 청동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쇠투겁창, 검, 칼자루끝장, 공주 수촌리유적 출토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청동방울, 당진 우두리, 초기 철기시대.

<출처>
1. 국립공주박물관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특별전, 베트남 고대문명전] 동선문화 사람들

 

동선(Dong Son, 東山)문화는 기원전 500~0년에 베트남 북부 홍강 유역에서 크게 번창했던 선사시대문화이다. 동선문화 사람들은 비옥한 평야지대에서 쌀을 경작하고, 소와 돼지를 길렀으며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선문화는 실제로는 철기시대 문화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농기구를 비롯하여 일상생활 도구로 철기나 석기를 사용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청동으로 만든 도구를 많이 사용했던 것이 특징이다. 또한 청동북을 비롯하여 청동종, 발모양을 하고 있는 도끼 등 베트남 고유의 형태를 보여주는 청동기 또한 많이 만들어졌다. 또한 청동북 등에는 깃털장식을 한 사람, 항해하는 배, 주상가옥, 의례 등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모습 등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동선 사람들, 홍 강 평야를 개척하다.
동선의 발달된 금속기 문화는 수공업 발전을 촉진시켰다. 정착생활이 보편화 되면서 홍강 삼각주의 인구도 폭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필요한 농기구, 토기, 무늬, 배, 직물 및 장식품의 수요도 급증하였다. 다양한 종류의 청동기 제작은 동선의 청동기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한편 동선 문화를 대표하는 청동 북에는 깃털 장식을 한 사람, 항해하는 배의 모습, 주상가옥, 악기연주, 의례 등 동선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를 통해 동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대형 선박 문양은 당시 배를 이용한 교통과 운송이 활발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홍강유역의 사람들은 홍 강 평야가 있는 저지대로 거주 지역을 이동하여 처음으로 홍 강 평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로를 이용한 교역망을 구축하였고, 제방을 쌓아 저습지를 개발하면서 농경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동선 사람들은 목재, 대나무 그리고 ‘꼬Co’라는 나뭇잎을 이용하여 주상가옥을 만들어 살았다. 주상가옥은 사람들이 덥고 습한 기후를 견딜 수 있도록 고안된 가옥 구조이며 또한 뱀과 같은 짐승들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유리하다. 오늘날에도 베트남 소수 종족의 대부분은 주상가옥에서 생활한다. 주변 지역과 교류.교역하면서 형성된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홍 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는 베트남 역사의 기반이자 요람이 되어 현재의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동선문화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주요 장신구>

. 한반도나 중국과는 다른 동남아 고유의 장신구 형태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1.머리장식(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2.허리띠 꾸미개(동선, 타연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1.머리장식(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청동으로 만든 머리꽂이 장신구이다. 원형의 중심고리 가장자리에 고리 무늬가 두 개씩 쌍을 이루어 장식되어 있다. 머리에 꽂을 수 있도록 침이 돋아 있다. 2.허리띠 꾸미개(동선, 타연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장식성과 조형성이 뛰어난 것이 있다. 거북 모양은 수평 방향, 사각 판형은 수직방향으로 고리를 연결한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3.목걸이(동선문화 BC 500~0년, 유리.마노 등),  4.팔찌(동선문화 BC 500~0년, 유리)>

3.목걸이(동선문화 BC 500~0년, 유리.마노 등), 유리, 마노, 수정, 연옥으로 된 구슬이 연결된 목걸이다. 지금은 일련으로 되어 있지만 원래의 향태는 아닐 가능성이 높으며, 착장용으로 추정된다. 4.팔찌(동선문화 BC 500~0년, 유리), 동선의 유리제 팔찌이다. 남색과 녹색이 나는 유리로 제작되었다. 외면의 단면 형태는 ‘D’형이고, 내면은 직선형으로 마연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5.팔찌(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6.팔찌(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5.팔찌(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동선의 청동 투조 장식 팔찌이다. 장방형 투조가 2단으로 배치된 동선문화의 대표적인 청동 팔찌이다. 단면이 ‘>’형으로 꺾이고, 얇은 청동 판을 장방형으로 뚫어 만든 것이다. 6.팔찌(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동선의 청동 팔찌로 2단형, 1단형, 단면 ‘T’자형, 사방 돌출형, 또아리 형 등이 있다. 모두 동선 문화의 다양한 제작기술을 보여주는 청동유물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귀걸이(티우두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돌,유리)>

연옥과 유리로 만들어진 마디가 있는 귀걸이이다. 재질과 색상응 차이가 있지만 형태적으로 유사한 형식이다. 동아시아에서 발견되는 형태와 동일하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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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롱구슬(티우두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주황색 마노와 흑색 연옥으로 만들어진 대롱구슬이다. 중앙을 길게 관통하여 연결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다. 목걸이로 연결되었던 것의 일부로 추정된다. 3.팔찌(동선문화 BC 500~0년, 연옥),연옥으로 만들어진 조립식 팔찌이다. 3조각으로 분리된 상태이며, 잘린 면이 만나는 지점마다 끈으로 묶어 연결시킬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팔찌(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한반도와는 그 형태가 완전히 다른 원통모양의 팔찌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2.팔찌(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동선사람들의 대표적인 관형 팔찌이다. 상하지름의 차이가 있어서 좁은 쪽이 손목부분이고 넓은 쪽이 위로 향한다. 표면에 음각 평행선을 돌려 단을 나눈 것과 작은 종이 화려하게 부착된 것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3.사람모양 손잡이 칼(동선,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

사람모양 손잡이가 부착된 동선의 단검이다. 손잡이 인형의 장신구 착장 상태를 통해 동선 사람들의 장신구와 복식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동선문화 사람들이 사용했던 청동으로 만든 생활용기들이다>

. 항아리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청동기들에서 발달된 청동기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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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있는 항아리(푸쑤엔, 하노이시,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중국에 볼 수 있는 청동 제기와 비슷한 형태와 무늬를 하고 있다. 당시 중국과 베트남의 교류관계를 보여준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유행하였던 깃털무늬 술항아리이다. 동체의 표면에는 새의 깃털이 시문되었으나 대각에는 용줄무늬가 투조로 조각되었다. 동선 문화에 유입된 중국 문물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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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청동으로 된 솥이다. 바닥이 좁고 구연이 수평으로 뻗은 이 형태는 청동 솥의 공통적인 형태이다. 상면에 끈을 관통시킬 수 있는 고리 2개가 있으며, 새 한 쌍이 등을 돌려 반대편에 앉아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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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사발(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대각이 없는 청동 발이다. 주로 무덤에서 부장품으로 출토되는 것으로 평소 귀하게 여겨지는 물건이다. 표면에 문양은 없고 동체 중앙에 선이 둘러져 장식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굽다리접시(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한반도의 굽다리 접시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대각이 부착된 청동 발이다. 대각은 삼각형 무늬가 연속으로 투조로 장식되었고, 동체에도 동심원 무늬 등 다양하게 장식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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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중국의 영향을 받은 형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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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뚜껑이 없는 동선의 청동 항아리이다. 솥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부장품으로 무덤에 매장되는 대표적인 청동기이다. 실용적이고, 표면에 다양한 문양이 표현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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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있는 항아리(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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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있는 항아리(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몸체에는 항해하는 선박이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뚜껑에는 청동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태양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동선문화의 대표적인 청동 합이다. 청동 북처럼 뚜껑의 중앙에는 일광문이 배치되었고, 그 주위에 문양대를 둘러 새와 거치문을 시문하였고, 몸체에도 항해하는 선박을 새기는 등 동선북의 모티브와 같은 문양 구성을 보이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북(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동선북 고면에 새겨진 무늬>

동선문화 시기에 제작된 청동북이다. 크기, 모양, 문양, 제작연대 등을 기준으로 A,B,C,D,E 모두 5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고면의 문장대 구성과 두꺼비 장식 등의 세부 속성이 형식 분류의 기준이 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모형북(티우두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1.모형북(티우두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모형북은 동선 청동 북을 모형으로 만든 것이다. 기본적인 것은 청동 북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나 세부적인 것은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모형 북의 경우 고면에 고리가 부착된 것이 많다. 대부분 부장용으로 제작된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2.타악기(동선,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흔들어 소리를 내는 마라카스와 같은 소형 타악기와 마탁과 같은 형태의 소형 종이 동선 무덤에서 부장품으로 함께 출토되고 있다. 청동 북에 종을 흔드는 모습이 표현되어 당시 연주하던 모습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3.종(밋선,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소형 종이다. 우리나라의 망방울과 같은 형태도 있고 동선의 특징적인 문양이 표현된 소형 종도 있다. 동선 북에 표현된 종을 흔드는 모습에서 이 종의 용도를 알 수 있다. 양손에 잡고 흔들어 연주하는 타악기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종(맛선, 타인호아,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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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장식이 있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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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모양이 있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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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무늬가 새겨진 종>

동선의 청동 종은 청동 북과 함께 가장 많이 발견되는 악기 중에 하나이다. 종의 내부에는 진자없이 두드리는 방법으로 연주하는 것과 내부에 진자가 달려 있어서 흔들어 연주하는 것으로 크게 구분된다. 전체적으로 아치형을 그리며, 퍼지는 소리의 울림이 고려된 구조이다. 종의 상단에는 대칭되는 2개의 뿔이 솟아 있고, 코끼리 장식 등 동물 문양이 장식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동선문화 청동 북에 새겨진 다앙한 무늬들>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가옥이나 배, 악기 연기 모습 등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들이 많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모형 솥(동선,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청동제 솥의 미니어처이다. 무덤에 부장하기 위한 명기로 제작된 것으로 바닥이 좁고, 구연이 수평으로 넓게 뻗은 형태, 2개의 꼬지가 부착된 점 등 기본적인 요소를 충실히 따르며 제작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2.국자(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술통에서 술을 덜어 낼 때 사용하는 국자이다.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손잡이 끝에 크고 작은 고사리 무늬가 장식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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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사람이 촛대를 들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촛대의 상단에는 조립식으로 결합되는 등잔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등잔(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등잔(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등잔은 동선 문화의 늦은 시기에 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낮은 등잔에는 3개의 다리가 부착되었고, 중앙에 등심이 솟아 있다. 잔의 가장자리에 원형테가 둘러져 있고, 중앙에 봉황이나 사람모양장식과 함께 걸 수 있는 고리가 형성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장례와 배모양 관
강과 바다 가까운 곳에 살면서 배를 즐겨 타던 홍 강 유역의 사람들은 죽어서도 배에 묻혔다.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속을 파서 만든 관을 사용했는데, 목관의 밑이 둥근 배처럼 생겼다고 해서 배모양 목관이라 부른다. 옌박(Yen Bac)유적에서는 목관 대신 실제 사용했던 배에 시신을 안치한 무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무덤 내부에는 장신구로 치장된 시신과 함께 동선 북, 칼, 창, 도끼, 그릇, 종 등 많은 청동기들과 토기들이 놓여 있었다. 발굴 조사된 동선사람들의 무덤 중에는 부장품이 많은 무덤에 비해 부장품이 빈약한 무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차이는 주인의 신분이나 부의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동선 사람이 죽으면 절구 찧는 행위를 통해서 주위에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청동 북에 표현된 그림 중에는 장례를 지르면서 상부상조하는 농촌 마을의 풍경도 담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통나무관(동선문화 BC 500~0년)>

. 배모양을 하고 있는 통나무관이다. 습지지역 뻘밭에 묻혀 있어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쩌우깐 무덤은 하노이 푸쑤엔지역에 위치하는 배모양 통나무관 무덤이다. 1974년 모두 8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는데 깊이 1.8~2.2m에서 통나무관이 발견되었다. 시신의 머리방향은 모두 동남쪽을 향해 묻혀 있었다. 습지 지역이라 무덤 내부에 물이 차 있어서 산소와 차단되어 나무가 썪지 않고 2,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존되었다. 통나무관은 나무를 반으로 갈라 속을 파고 다듬어서 관을 만들었다. 관의 길이는 3.18m, 폭 0.6m이다. 관안에는 시신이 바로 누운 상태로 있었으며, 청동도끼, 칼, 창, 항아리, 청동 귀걸이 등이 함께 놓여 있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 사발과 잔(동선.티우두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토제), 4. 단지(동선문화 BC 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2. 손칼(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3. 창(동선문화 BC 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5. 모형북(동선,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 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6. 항아리(동선문화 BC 500~0년, 토제)>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중앙박물관특별전, 베트남 고대문명전]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과 농업의 발달

1. 청동북, 동선문화 상징2. 홍강 유역 청동기문화3. 동더우, 고문문화4. 동선문화, 국가의 성립, 5. 동선문화 사람들6. 사후인문화7. 남비엣국, 동선문화의 전승

베트남의 고대 문화 중에서 잘 알려진 동선(Dong Son) 문화는 기원전 500~0년 사이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 형성된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청동기문화이다. 명칭은 1924년 발견된 홍강델타 하류의 타인호아 성에 위치한 동선 유적에서 유래한 것이다. 동선문화의 주거 유적이나 무덤에서는 주로 청동기, 무기, 장신구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에 해당하지만 의례에 사용한 제기를 비롯하여 청동기 제작기술이 매우 발달되었으며 제사를 위한 의례용 용기로 알려져 있는 청동 북은 동선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동선문화 시기의 청동기는 상당히 세련되고 발달된 모습을 보이는데 동선문화 사람들이 만들었던 청동기들은 타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중국 남부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동선문화 사람은 의례용 제기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청동제 도구들을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석기와 철기를 많이 사용하고 청동기는 의례용으로 제작했던 한반도와는 달리 베트남에서 구리가 풍부하게 생산되었던 보인다.

베트남 최초의 국가는 반랑국(Van Lang,文郞)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기원 3000년 경에 국가를 세웠다는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다. 실제 반랑국은 동선문화와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7세기에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랑국은 뛰어난 청동 주조기술을 바탕으로 홍강 유역의 비옥한 농토에 기반한 쌀 경작 중심의 경제였다. 반랑국은 기원전 3세기에는 툭판(Thuc Phan)에 의해 멸망하고 어울락(Au Lac)국이 세워졌다. 어울락국은 기원전 111년에 전한의 무제의 의해 멸망하고 이후 1000년간 베트남은 중국의 지배를 받는다.

국가의 성립
비옥한 평야지대인 홍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당시 부족들 사이에 많은 전쟁이 있었다. 동선 사람들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청동기로 창, 화살, 검 등의 공격용 무기와 가슴보호구와 같은 방어용 무기를 만들었다. 이 홍강 유역에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반랑(Van Lang)국이 세워진다. 당시 반랑국은 15개의 부족으로 구성된 부족연맹체 사회로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처럼 흥브엉(Hung Vuong)의 건국신화가 전해지고있다. 하지만 반랑국은 당시 홍강 삼각주 일대에서 백월족(百越族)의 세력을 규합한 툭판(Thuc Phan)에 의해 기원전 257년 멸망하고, 툭판은 어울락(Au Lac)국을 세웠다. <출처:중앙박물관>

* 반랑국(Van Lang, 文郞): BC 690~BC 257년, 홍브엉(Hung Vuong, 雄王):반랑국의 시조
* 어울락국(Au Lac, 甌雒):BCE 257~179년, 툭판(Thuc Phan, 蜀泮):어울락 국의 왕

OLYMPUS DIGITAL CAMERA<청동기 동선문화시기 국가의 성립을 보여주는 각종 무기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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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의 청동검을 우리나라의 비파형동검이나 한국형동검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칼의 몸통과 손잡이를 함께 주조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청동 검과 제작 방식이 다르다. 칼날의 형태가 독특하며, 날의 양면과 손잡이 부분에 다양한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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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손잡이가 투조로 장식된 칼이다. 날의 형태가 버들잎 모양이며, 중앙에 문양이 있다. 이 칼도 손잡이를 함께 주조한 일체형으로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꺽창(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유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표면에 세밀하게 장식을 하고 있다.

꺽창은 전투에서 마차나 말을 탄 적을 끌어내리기 위해 고안된 무기이다. 동선 시기에 실제 사용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표면에 동물이 새겨져 있고 투조(透彫)로 장식되어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2.창(동선, 타안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창(동선, 타안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창의 길이가 비교적 짧은 편이고, 거푸집에 용액을 부어 만드는 주조(鑄造)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자루가 끼워지는 공부의 끝이 ‘-’자형인 것과 제비꼬리처럼 갈라진 연미형(燕尾形)으로 구분된다.

OLYMPUS DIGITAL CAMERA<3.화살촉(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투겁이 달려 있는 청동 화살촉이다. 촉의 머리는 삼각형으로 꼬리처럼 미늘이 달려 있다. 투겁에는 화살대에 고정시키기 위한 고정용 구멍이 뚫려있다. 동선 시기 제작된 장거리 공격용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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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사람모양 손잡이 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사람모양의 장식이 있는 손칼로 발달된 청동기 제작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동선문화의 대표적인 장식 손칼이다. 사람 모양 손잡이가 부착된 형태로, 당시 동선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남자상은 윗옷을 입지 않고, 바지인 ‘코(Kho)’를 입었다. 여자상은 치마와 저고리인 ‘엠(Yem)’을 입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5.손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 문화의 청동 손칼이다. 구멍을 뚫어 장식하는 투조기법으로 장식된 것과 장식없이 실용성이 강조된 두가지 형식이 있다. 날과 손잡이가 연결된 일체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6.가슴걸이(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청동판으로 제작된 사각형 가슴걸이는 전투에서 가슴부분을 보호해 주는 방어용 무기이다. 형태에 따라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으로 구분되며, 가장자리에 끈을 연결하여 고정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베트남 동선문화를 대표하는 청동기 형태인 발모양 도끼이다. 동선시기에 가장 유행한 청동도끼는 발모양 도끼이다. 발모양 도끼는 버선모양의 날과 투겁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날의 형태에 따라 삼각형, 사각형, 곡선형 등이 있다. 날의 겉면에는 사람, 사슴, 악어 등의 동물 그림을 새겨 넣었다.

OLYMPUS DIGITAL CAMERA<1.도끼(동선,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발모양도끼에 새겨진 장식>

OLYMPUS DIGITAL CAMERA<1.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2.발모양 도끼(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3.끌(타우두옹,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4.집게(푸쑤엔, 하노이시,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5.못(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OLYMPUS DIGITAL CAMERA<6.가래(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홍강 평야와 농경
홍강 유역에는 1,500㎢에 달하는 너른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동선 사람들은 농경에 필요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비옥한 홍 강 삼각주로 이주하며 저습지 개발을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홍수와 바닷물이 농지로 유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제방을 쌓았으며, 수로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고, 배수시설도 설치하였다. 동선 사람들은 소로 논을 갈았으며, 볍씨 뿌리는 시기를 조절하고 관개(灌漑)도 하였다. 또한 겨울에 파종하여 봄에 수확하는 겨울벼가 보급되면서 2모작도 가능해졌다. 벼농사가 발달함에 따라 홍강 삼각주 주변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기원후 2년 시행된 군현의 인구조사에서 홍강과 마강 유역의 호수는 128,174戶.912,250인으로 조사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동선문화 사람들의 농경생활을 보여주는 농기구와 토기들>

OLYMPUS DIGITAL CAMERA<쟁깃날(티우도용,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 사람들이 실생활에서도 많이 청동기를 많이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로 한반도에서는 철로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청동기시대에도 청동기는 의례용 기기로 사용되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지역에서는 구리가 상당히 많이 생산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쟁깃날(티우도용, 타인호아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농경사회의 동선 사람들은 청동으로 다양한 농기구를 만들었다. 둥근 대형 쟁깃날은 소가 끄는 용도이고, 소형의 마름모꼴과 원형의 쟁깃날은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이다. 청동쟁기와 황소.물소를 이용한 우경이 보급되면서 농업생산성이 증가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소형 낫(고문, 푸토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석기로 만든 한반도의 반달모양 돌칼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도구이다. 한반도에서는 철기시대 초기까지 석기를 사용했던데 반해 청동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조개 모양으로 생긴 소형 낫은 우리나라의 반월형 돌칼과 같이 칼 등을 한 손에 움켜쥐고 이상을 자르는 수확용이다. 손에 움켜쥐기 쉽도록 단면에 곡률이 있으며, 톱니와 같은 날이 형성되었다. 끈을 묶을 수 있는 구멍도 뚫려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낫(고문, 푸토성, 동선문화 BC500~0년, 청동)>

동선문화에서 처음 나타난 형식이다. 자루와 연결되는 공부(鞏部)가 함께 주조되어 자루를 끼워 넣은 방식이다. 날 중앙에 돌출된 등날을 만들어 날의 강도를 높였다. 동선 시기 청동 낫 사용은 보편화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동선토기, 두옹코(Duong Co)토기
동선토기는 그릇을 빚을 때 사용하는 점토가 매우 엄선되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입자가 고운 흙을 사용하여 기벽이 단단하고, 물이 잘 투과되지 않았다. 그릇의 입은 넓게 벌어지고, 둥근 동체로 이어지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토기표면의 색조는 붉은 색을 내거나 회색을 띠며, 새끼줄무늬와 바둑판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당시 두옹(Duon)천 주변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홍강 유역의 동선 토기를 대표하였지만, 이후 중국 제도(製陶)기술이 베트남에 유입되고 도기(陶器)의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동선토기의 제작 전통은 도자기로 전화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새모양토기(해남 군곡리 BC 100년, 토제), 2.새모양토기(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3.항아리(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4.단지(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5.사발(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OLYMPUS DIGITAL CAMERA<6.항아리(동선문화 BC500~0년, 토제)>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