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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동리산 태안사, 통일신라 선종 동리산파 중심 사찰

전남 곡성군 죽곡면 동리산 자락에 있는 태안사(泰安寺)이다. 통일신라 선종을 이끌었던 승려 혜철이 크게 중창하면서 구산선문 동리산파 중심사찰이 되었다. 고려가 건국된 이후 광자대사 윤다가 크게 중창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잡았다. 고려중기 송광사가 수선결사의 중심사찰이 되면서 그 위상이 축소되었으나, 조선초 효령대군이 머물면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사찰이 되었다. 한때 40여동의 건물이 있었던 큰 사찰이었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으며 최근에 전각들이 다시 중건되면서 큰 사찰로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태안사는 동리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산중 사찰로 가람배치에 격식을 크게 중요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출입문인 일주문을 들어서면 강당 건물인 보제루와 대웅전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경내 마당에는 석탑이 없고 아래쪽 연못에 삼층석탑이 있다. 경내에는 불전보다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요사채 건물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보제루 아래에는 광자대사탑(보물 274호), 탑비(보물275호)를 비롯한 승려들의 승탑들이 세워져 있으며, 대웅전 뒷편에는 사실상 태안사를 창건한 혜철의 승탑(보물 273호)와 탑비가 있다. 석탑이나 불전보다는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계열 사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곡성 태안사. 통일신라 선종 구산선문 중 동리산파의 중심사찰이었다. 고려중기까지는 지역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었으나 수선결사 이후 송광사가 지역 중심사찰이 되면서 그 위상이 낮아 졌다.

OLYMPUS DIGITAL CAMERA태안사의 첫번째 출입문인 능파각, 조선 영조 때 중건한 건물이다. 계곡 양쪽에 석축을 쌓고 올린 누각 형태의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태안사 오르는 길. 수행을 중요하게 여기는 선종계열 사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산지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태안사 일주문. 사찰 일주문 중에서는 비교적 오래된 것으로 조선후기에 고쳐지었다. 앞면 1칸의 2개의 기둥에 맞배지붕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을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승탑들. 광자대사탑(보물 274호)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승탑들을 볼 수 있다. 지역 중심사찰로서 뛰어난 승려들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광자대사탑(보물 274호)은 고려초 태안사를 크게 일으킨 승려 광자대사 윤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전체적인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으며, 세부적인 조각수법이나 섬세한 표현 등이 돋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려초 태안사를 크게 일으킨 광자대사 윤다의 행적과 업적을 기리는 내용을 적은 광자대사탑비(보물 275호)이다. 현재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이 온전히 있으며, 글이 적힌 비몸은 일부 조각만 남아 있다. 비봄이 파손되어 글자를 읽을 수 없지만 옛기록에 따르면 광자대사의 행적을 기록해 놓았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을 지나 보제루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태안사 주불전인 대웅전. 한국전쟁때 불타버린 것을 중건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옆쪽에 있는 불전.

OLYMPUS DIGITAL CAMERA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 언덕에 있는  적인선사탑(보물 273호). 통일신라 때 승려 적인선사 혜철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적인선사탑비.

OLYMPUS DIGITAL CAMERA적인선사탑 옆에는 요사채인 염화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 강당건물인 보제루. 강당은 불법을 강론하고 신자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사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동쪽편에 있는 큰 요사채인 적묵당이다. 앞면 7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요사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적묵당 안쪽에 있는 요사채인 보림원.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에 있는 해회당.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전통적 요사채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태인사 아래쪽에 있는 둥근 모양의 연못. 가운데 섬에 삼층석탑이 있다.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곡성 태안사,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원년(742) 2월에 신성한 승려 세 명이 처음 세웠다고 「동리산태안사사적」에 전한다. 그 뒤 1대조사 헤철선사가 당나라 서당지장(西堂地藏)에게 불법을 전수받고 돌아와 신라 구선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개창하였다. 풍수지리사상의 원조인 2대조사 도선국사도 태안사에서 10년간 머물며 혜철선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 3대조사 광자대사가 절을 고쳐 지었는데, 이때는 건물 40여 동 110여칸에 이르는 규모였으며 법당에는 높이가 1.4 m인 약사여래철불을 모셨다고 한다. 그 후 고려 고종 10년(1223)에는 당시 집권자인 최우가 고쳐 지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숙종 10년(1684)에 주지 각현이 창고를 새로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초에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이 이곳에 머무르고 완당을 건축하였으며, 대바라(큰바라)를 만들고 완당완기를 남겼다. 정유재란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다시 고쳐 지어 옛 가람의 규모를 되찾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대웅전이 불타는 등 피해를 크게 입었으며 일주문과 능파각, 보제루, 해회당, 선원, 미타전(염화실)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은 이후에 복원된 것이다. 태인사 경내에 혜철의 부도인 적인선사 조류청정탑(보물 273호), 윤다의 부도인 광자대사탑(보물 274호), 광자대사탑비(보물275호), 승무를 출 때 사용하던 태안사대바라(보물 956호), 천순이라는 명문이 있는 태안사동종(보물 1349호), 태안사 능파각, 태안사 일주문, 태안사 삼층석탑 등 보물 5점과 지방문화재 4점이 있는 천년 고찰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7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화순 계당산 쌍봉사, 목탑 형식의 불전이 남아 있는 사찰

전남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쌍봉사(雙峯寺)이다. 통일신라 말 중국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돌아온 철감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선종 구산선문에 속하지는 않지만 철감선사의 제자 징효가 영월 흥녕사에서 사자산문을 열었다. 고려초에는 크게 쇠퇴했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중기 혜소국사가 크게 중건하였으며 이후 조선시대에도 여러차례 중건이 있었다. 사찰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통일신라말 선종을 이끌었던 주요 사찰 중 한 곳이다.

사찰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탑과 금당이 일렬로 배치된 전통적인 1탑1금당식 가람배치가 남아 있는 사찰이다.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대웅전은 높이 12 m의 목탑 형식을 갖춘 불전으로 화재로 불타버리기 전까지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사찰 건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건물이었다. 주불전은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전이며 좌.우에 지장전과 호성전을 두고 있다. 호성전은 ‘丁’자형태를 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불전으로 세조의 영정을 모셨던 곳이라 한다. 사찰 뒷편 언덕에 있는 철감선사의 승탑(국보 57호)와 탑비(보물 170호)는 화려하면서 섬세한 조각수법과 조형미가 뛰어나 구례 연곡사 승탑과 함께 동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순 쌍봉사. 통일신라말 선종을 이끌었던 철감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1탑1금식 가람배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출입문인 금강문.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천왕문 주위로 담장이 세워져 있다. 불국사처럼 회랑으로 둘러려 있던 통일신라 이전 사찰의 모습이 남아 있는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금강문을 들어서면 첫번째로 볼 수 있는 대웅전.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 있던 목탑형식의 건물이었다. 1985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복원한 건물로 전체적인 비례가 삼국시대 목탑처럼 안정적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삼존불상. 불상은 가운데에 석가여래가 앉아 있고, 왼쪽에 아난존자가, 오른쪽에 가섭존자가 합장을 하고 서 있는 모습을 하고있는 삼존불상이다. 조선후기 숙종대(1694년)에 만들진 것으로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뒷편에 있는 극락전. 전통적인 가람배치에 따르면 불상을 모신 금당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산중에 자리잡은 사찰답게 아마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순 쌍봉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조선후기 숙종 때 조성된 불상이다.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극락전 오른족에 있는 호성전. 정자각처럼 앞쪽에 1칸이 튀어나와 있는 ‘丁’자형 건물이다. 원래는 세조의 위패를 모셨던 건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는 철감선사와 중국 종심선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극락전 왼쪽에 있는 지장전.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 마당 동쪽에 있는 요사채. 서울에서 먼곳에 위치하고 있어 찾는 손님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이나 유명 사찰에 비해 요사채의 규모가 작다.

OLYMPUS DIGITAL CAMERA호성전 뒷편에 있는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서쪽편에서 본 쌍봉사.

OLYMPUS DIGITAL CAMERA철감선사 승탑과 탑비가 있는 언덕으로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쌍봉사 철감선사탑(국보57호)이다. 목조건축물을 모방해서 만든 통일신라 승탑 중 뛰어난 걸작이다. 받침돌과 탑신의 비례가 우수하며, 당시 목조건축물의 구성요소 등이 세밀하게 표현되고 있어 당시 불교조각 및 건축 경향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철감선사탑비(보물 170호). 글이 적힌 비몸은 없어지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조각수법이 세밀하고 힘이 넘친다. 머릿돌 앞쪽에는 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출처>

  1. 쌍봉사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구례 지리산 연곡사, 화려한 승탑문화를 꽃피운 선종 사찰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지리산 피아골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연곡사(鷰谷寺)이다. 이 사찰은 국보급 문화재인 동부도 (국보), 북부도(국보), 서부도(보물)와 동부도탑비(보물), 현각대사탑비(보물), 삼층석탑(보물) 등 화려한 승탑문화가 남아 있다 이는 통일신라말 불교의 큰 흐름이었던 선종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구산선문이었단. 남원 실상사, 장흥 보림사, 곡성 태안사가 지리산을 중심으로 호남지방에 자리잡고 있다.

연곡사는 삼국시대 연기조사가 처음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통일신라 말 선종사찰로 크게 번창하였다.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참전하면서 왜군에 의해 사찰이 불타버렸으며, 이후 소요대사 태능을 중심으로 중창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고광순의 중심으로 의병활동 때문에, 한국전쟁에서는 빨치산 활동으로 건물들이 불타버렸다. 한국전쟁 이후 거의 폐사되었던 것으로 1960년대 이후 대웅전을 비롯하고 크고 작은 불전들과 요사채가 들어서면서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최근까지 사찰 건물들이 복구되기는 했지만 원래의 규모에 비해서는 많이 축소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구례 지리산 연곡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뒷편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불전과 요사채들이 들어서 있고, 앞쪽은 넓은 마당을 이루고 있다. 연곡사는 통일신라 말 선종계열 사찰로 크게 번창했는데, 지리산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많은 승려들이 머물 수 있도록 요사채 건물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구례 지리산 연곡사(鷰谷寺),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는 백제 성왕22년(544)에 인도의 고승인 연기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연기조사가 처음 절의 터를 잡을 적에 이곳에 큰 연못이 있어 물이 소용돌이치며 제비들이 노는 것을 보고 연곡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선종사찰로 번성하였고 도선국사, 현각선사 등 많은 고승대덕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연곡사 스님들이 승병활동을 했던 보복으로 왜군에 의해 완전 전소되었으나 임란 이후 소요태능스님이 중창불사를 하여 400여 스님들과 더불어 이곳에 총림을 개설하고 선풍을 일으켰다. 1907년 연곡사가 항일의병의 근거지라는 이유로 다시 일본군에 의해 완전 전소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또 다시 전소되는 수난을 겪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동승탑(국보 53호), 북승탑(국보 54호)과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보물 151호), 현각선사탑비(보물 152호), 동승탑비(보물 153호), 소요대사탑(보물 154호) 등의 석조물만이 유적으로 남아 전해오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 중흥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안내문, 연곡사,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연곡사가 자리잡고 있는 피아골.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여러 골짜기들 중에서 비교적 잘 알려진 곳으로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 활동했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연곡사도 한국전쟁 때 불타버려 상당기간 동안 거의 폐사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곡사 일주문.

OLYMPUS DIGITAL CAMERA일주문 안쪽 넓은 정원에 있는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경내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삼층석탑. 선종사찰로서 자리잡은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선종 계열 사찰이기는 하지만 삼층석탑의 위치로 볼 때 현재의 건물 배치는 원래의 규모에 비해 크게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찰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강당 건물인 삼홍루. 앞면 5칸 규모의 2층 누각 건물로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강당 앞에서 본 일주문과 주변 풍경. 지금은 넓은 마당과 정원으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곡사 경내. 연곡사는 선종계열 사찰로 크게 번창하기는 했지만, 인근 화엄사의 영향을 받아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아 계단식으로 터를 조성한 후 건물을 세웠다.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여러차례 전란으로 불에 타 버려 내력있는 목조건축물은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곡사 주불전이 대적광전.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렸던 것을 60년대에 작은 규모로 중건했던 것을 최근에 연곡사의 규모에 걸맞게 큰 건물로 새로 지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적광전 왼쪽편 관음전.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편 명부전.

OLYMPUS DIGITAL CAMERA명부전 뒷편 삼성각

OLYMPUS DIGITAL CAMERA대웅전에서 내려다 본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불전들이 있는 곳보다 아래쪽에는 요사채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ㄱ’형으로 담장이 있는 살림집 형태를 하고 있는 무설전.

OLYMPUS DIGITAL CAMERA맞은 편에 위치한 소요당.

OLYMPUS DIGITAL CAMERA범종각.

OLYMPUS DIGITAL CAMERA주불전인 대웅전 뒷편에 연곡사를 대표하는 동승탑과 탑비가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전남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에 위치한 동 승탑(국보 53호)이다. 목조건축물을 모방해서 만든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승탑이다. 도선국사의 승탑이라고는 전하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지붕들은 당시 목조건축물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기와, 서까래 등을 새밀하게 새겨 놓고 있다. 머리장식으로는 봉황과 연꽃무늬를 새겨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동 승탑 옆에 있는 탑비(보물 153호)이다. 글이 새겨진 비몸은 없어지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웅장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조각수법이 떨어지 머릿돌에 용무늬를 생략하는 등 형식적이며 간략해진 고려시대 탑비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비몸이 없고 탑의 이름을 적어 놓는 머릿돌 가운데 글씨가 남아 있지 않아 탑과 탑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승탑에서 내려다 본 연곡사.

OLYMPUS DIGITAL CAMERA동승탑에서 조금더 걸어오르면 북승탑이 나타난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승탑(국보 54호)은 고려초기에 세워진 승탑으로 승탑의 크기, 구성요소, 조각수법 등에 있어서 동 승탑과 거의 비슷하다. 승탑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아래쪽에 있는 현각선사의 승탑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동 승탑을 모방해서 만들기는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뛰어난 걸작으로 고려초기 승탑을 대표할 수 있는 유물 중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연곡사 대웅전 서쪽편에는 고려초 연각사를 크게 중흥시킨 현각선사 탑비와 조선중기 연곡사를 크게 중창한 소요대사 승탑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전남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 경내에 있는 현각선사탑비(보물 152호)이다. 이 탑비는 고려초 활동했던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글이 적힌 비몸은 없어지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은 용의 머리와 거북모양의 몸체로 되어 있다. 머릿돌은 여러마리의 용이 다투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였는데 조각수법이 세밀하고 힘이 넘친다.

OLYMPUS DIGITAL CAMERA 전남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에 있는 소요대사탑(보물 154호)이다. 연곡사 경내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서부도(西浮屠)라고도 불린다. 석종형 승탑이 많이 만들어졌던 조선 중기에 조성된 승탑이지만 통일신라 승탑인 동 승탑의 형식을 계승하고 있다. 동 승탑이나 북 승탑에 비해 조각수법 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동시대 승탑에 비해서 조형미가 양호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요대사탑 아래에는 구한말 이지역 의병을 이끌었던 고광순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때 일본군에 의해 연곡사가 불타 버렸다고 한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