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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주읍성(사적 231호), 동문인 조양문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에 있는 홍주읍성(사적 231호) 조양문이다. 홍주읍성에는 동문인 조양문, 서문인 경의문, 북문인 망화문, 남문인 홍화문을 두었는데 그 중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조양문만이 남아 있다. 성문은 큰 화강석을 쌓은 아치형 홍예문으로 성문 위에 문루를 두었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구한말 읍성을 수리할 때 흥선대원군이 문루 현판의 글씨를 직접 썼다고 한다. 구한말 항일의병이 이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면서 성문이 크게 파손되었다. 현재의 성문과 문루는 1975년에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홍주읍성은 홍주목 관아가 있던 읍치로 규모가 크고, 잘 보존되어 있는 읍성이다. 읍성 내에는 홍주목 관아와 주요 관청들이 있었는데, 관아의 규모도 큰 편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훼손되기는 했으나 남쪽과 서쪽 성벽, 동문인 조양문, 홍주목 동헌과 아문이 남아 있다. 홍주읍성은 구한말 고종때 대대적인 수리를 하였는데 조선이 마지막으로 축성한 성곽이라 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주읍성 동문인 조양문. 아치형 홍예가 있는 전형적인 읍성 성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문 문루.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직접 글씨를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문루는 1970년대에 복원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아치형으로 만든 성문. 바깥쪽에 옹성을 설치하지 않았다. 읍성 성문인 북문에만 옹성이 설치되어 있었다. 성벽에 총탄 흔적으로 보이는 구멍들이 몇군데 보이는데 구한말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생긴 흔적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조양문.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성문.

OLYMPUS DIGITAL CAMERA홍주읍성은 일부 훼손되기는 했지만 남쪽과 서쪽 성벽이 지금도 남아 있다.

조양문, 사적 231호, 충남 홍성군 오관리
이 문은 홍주성의 동문으로 조선 고종 7년(1870)에 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대대적으로 수리할 때 세운 문루다. 동문은 조양문, 서문은 경의문, 북문은 망화문이라 하는데 대원군이 친필로 문액을 하사하였으며 남문은 문루가 없다. 북문은 역대 목사들이 문루에서 사형수의 처형을 감시하기도 했는데 1894년 동학운동때는 수백명의 동학군이 여기서 처형되었다. 고종 광무 10년(1906) 항일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 홍주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때의 흔적이 조양문 곳곳에 보인다. 일본인들에 의하여 서문과 북문은 파괴되어 없어지고, 조양문 또한 파괴되었으나 부분적인 보수로 퇴락되었던 것을 1975년에 문루를 해체.복원하여 옛모습을 찾게 되었다. (안내문, 홍성군청, 2010년)

<출처>

  1. 홍성군청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4. 두산백과

[수원화성] 화서문(華西門, 보물 403호)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보물1710호)

팔달산 서장대를 지나서 능선을 따라 연결된 성벽을 내려오면, 나즈막한 언덕에 설치된 서북각루에서 잠시 쉬었다가, 평지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화서문(華西門, 보물403호)과 화서문을 지키는 망루 역할을 하는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보물 1710호)을 볼 수 있다. 화서문 부근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수원화성은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외벽을 쌓은 석축성을 기본으로 하고 암문, 옹성, 포루, 공심돈, 여장 등에는 벽돌을 일부 사용하였다. 중국의 경우는 대부분 벽돌을 이용해서 쌓은 전성이다. 화서문은 화성 서남쪽 남양만과 서해안 안산지역으로 연결되는 길이 출발한다.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문에 해당한다. 1896년 (정조 20면)에 완공된 약 200년된 건축물이다. 정문인 팔달문이나 북문인 장안문보다 성문의 크기가 작다. 성문 바깥쪽에는 옹성을 쌓았으며, 팔달문과 달리 옹성에 출입문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화서문은 축성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팔달문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화서문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이자 정조대왕의 최측근인 채제공(蔡濟恭)이 썼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원화성 서문에 해당하는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성문 앞에 옹성을 쌓고, 북쪽에는 공심돈을 두어 성문을 엄호하고 있다. 화서문을 통해 남양만과 안산일대 서해안 지역과 연결된다.

수원 화서문(華西門), 보물 403호,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동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이다. 1796년(정조19) 7월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20) 1월8일 마쳤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403호로 지정되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더너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화서문은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은 홍예문으로 1층 문루를 올려 놓고 있다. 성문 앞쪽에는 벽돌로 옹성을 쌓아 방어기능을 강화했다. 2층문루를 올려 놓은 팔달문이나 장안문에 비해 규모가 작다. 동문에 해당하는 창룡문과 비슷한 규모와 구조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성 내부에서 본 화서문. 문루는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판벽을 설치해 놓은 팔달문과는 달리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전형적인 문루 형태를 하고 있다.  문루 앞에 벽돌로 여장을 쌓아 조총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서문 현판. 초대 수원유수를 지낸 채제공이 쓴 글씨라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문루를 오르는 계단.

SANYO DIGITAL CAMERA문루 내부.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전통적인 성문 문루 형태를 하고 있다. 이전에 세워진 읍성 문루에 비해 여장을 높게 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은 전통적인 홍예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문 바깥쪽에는 옹성을 쌓아 방어기능을 보완하고 있다.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은 성문과 달리 구운 벽돌로 쌓은 중국풍의 전성(塼城)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옹성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 팔달문과 달리 옹성 한쪽을 열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옹성 위는 용도처럼 여장이 있는 통로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서문 남쪽 팔달산으로 연결되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안쪽.

OLYMPUS DIGITAL CAMERA서북각루에서 화서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수원화성 화서문.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화서문 왼쪽에는 성문을 엄호하기 위한 방어시설로 서북공심돈을 두고 있다.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인 돈대이다. 수원화성에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여러 시설물을 두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심돈이다. 구운 벽돌을 쌓어서 만든 시설로 당시 정조대왕이 크게 자랑스러워했다는 시설이다. 아마도 중국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인 천하제일관의 문루와 돈대, 성벽 등의 시설을 보고 수원 화성 축성시 많이 참조해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수원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보물1710호,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동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1796년(정조20) 3월10일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3층 건물로 아래쪽 부분의 치성(雉城)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는 전돌로 쌓았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1797년(정조21)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효과적인 재료 활용을 보여주는 서북공심돈은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화서문 동쪽편에는 성문을 엄호하기 위해 세운 방어시설인 서북공심돈이 있다. 수원 화성은 정약용 등 당대 최고의 실학자들이 동서고금의 성곽에 대한 기술을 연구하여 쌓은 조선시대 최고의 읍성으로 다양한 시설을 두고 있다.  공심돈은 수원화성에만 있는 시설로 청나라의 영향을 받았지만 치성 위에 돈대를 세우는 등 독창적인 면도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는 공심돈. 석축으로 쌓은 치성(雉城) 위에 벽돌로 속이 비어 있는 2층 돈대(墩臺)을 쌓고 그 위에 누각을 올려 놓았다. 돈대는 속이 비어 있어 공심돈이라 부른다. 치성에는 북쪽과 서쪽편에 각 2개씩 현안(懸眼)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2층에는 각면에 바깥으로 조총공격을 할 수 있도록 6개의 총안(銃眼)을 설치하고, 그 위에 포루를 설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공심돈 내부로 들어가는 문.

OLYMPUS DIGITAL CAMERA수원화성 공심돈 내부(모형, 수원화성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공심돈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공심돈에서 화서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성벽 아래 길을 화서문 옛길 (화수문~수원천)이라 부른다. 이 길은 수원화성 축성 때 만들어진 길로 몇백년 세월의 여유와 깊이를 품고 있는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북공심돈과 화서문.

SANYO DIGITAL CAMERA2010년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수원 화성 ]팔달문(八達門, 보물 402호), 수원화성 남문

수원 화성 남문인 팔달문(八達門, 보물 402호)이다. 수원화성 북문인 장안문(長安門), 한양도성의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과 함께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성문이다. 잘다듬은 화강석 쌓아 홍예문을 만들었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올려 놓았다. 문루 앞면 5칸의 우진작기붕을 하고 있다. 문루는 조총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판벽으로 막혀 있는데, 조선후기 성문 문루의 특징이다. 바깥쪽에는 구운벽돌로 쌓은 높이 약5m의 옹성(甕城)을 두여 2중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옹성은 무너져 없어졌던 것을 1975년에 복원하였으며, 성문 양쪽에 세웠던 좌.우 적대(敵臺)는 무너지고 지금은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북경을 비롯하여 청나라 성곽기술을 많이 참조하였는데 팔달문에서 그 특징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성문은 화강석을 쌓은 석성(石城)을 하고 있지만, 옹성은 벽돌로 쌓은 전성(塼城)을 하고 있어 수원 화성(華城) 축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조총과 화포가 일반화된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쌓은 성문의 형태로 명.청대에 쌓은 중국 읍성의 성문과 비슷하다. 팔달문은 그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사통팔달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수원화성의 남문이자 정문의 역할을 했다. 서울을 남대문인 숭례문 주변에 남대문 시장이 있듯이 이 곳 팔달문에는 지동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팔달문이라는 이름은 서쪽편 팔달산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북경에서 제일 유명한 만리장성인 팔달령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수원 팔달문(八達門), 보물 402호, 경기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2가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조대왕과 역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고 한다. 1794년(정조18) 2월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19) 5월20일에 완공되었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보물 402호로 지정되었다. 성문의 바깥에는 바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수원화성 남문인 팔달문. 숭례문, 흥인지문과 함께 가장 큰 규모의 성문으로 바깥쪽에 옹성을 둔 조선후기 성문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문 양쪽에 동.서적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은 화강석으로 쌓는 전통적인 석축성과 구운벽돌로 쌓은 중국 전성의 특징을 같이 가지고 있는 수원화성 축성방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팔달문. 성문은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홍예를 만들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올려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옹성은 화포와 조총이 일반화된 조선후기 성곽에서 볼 수 있는 방어시설이다. 팔달문 옹성은 중국 청나라 성곽기술을 받아들여 구운벽돌로 쌓아 올린 전성(塼城)이다. 성벽은 높이 5m 정도로 상당히 높은 편이며, 위에는 조총공격을 피할 수 있는 여장을 설치해 놓았다. 옹성 가운데에 출입문과 작은 문루를 올려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팔달문

OLYMPUS DIGITAL CAMERA벽돌로 쌓은 성벽과 여장.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 가운데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옹성내부 팔달문 홍예.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았는데, 숙종대에 크게 보강한 한양도성 석축에 비해 돌을 세련되게 잘 다음었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팔달문 성문.

OLYMPUS DIGITAL CAMERA문루는 앞면 5칸에 우진각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성문을 왕래하는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도로 개방된 조선전기 성문문루와는 달리 조총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판벽으로 막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부에서 본 문루.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 문루를 오르는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팔달문 문루와 옹성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은 수원화성 남문으로 정조가 현륭원으로 참배할 때 지나가던 문으로 수원 남쪽 경기남부지역과 연결된다. 정조는 수원에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의도적으로 상업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팔달문 안팎으로 시장을 조성하였다. 지금도 주변에는 지동시장을 비롯하여 재래시장들이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 부근 지동시장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 부근은 상업의 중심지로 오늘날까지 수원시 구도심을 형성하고 있다.

경복궁 외조(外朝), 광화문과 궁궐담장, 망루인 동십자각과 출입문들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法宮)으로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처음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은 궁궐배치의 기준이 되는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의 원칙을 제대로 따르고 있다. ’3문3조(三門三朝)’의 원칙에 따라 국왕의 생활공간인 연조(燕朝), 국왕 집무공간인 치조(治朝), 신하들이 집무공간인 외조(外朝)가 담장으로 분리되어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경복궁 궁궐 경계에는 높은 담장을 쌓고 동서남북 네곳에 대문을 만들었다. 네곳의 대문은 음양오행설에 따라 봄-여름-가을-겨울과, 나무-불-쇠-물 등을 상징하는 건춘문(建春門-동), 광화문(光化門-남), 영추문(迎秋門-서), 신무문(神武門-북)이라 이름 지었다. 담장의 남쪽편 모통이에는 궁궐방어시설로 망루인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두고 있는데 지금은 동십자각만이 남아 있다. 중국 자금성과 달리 경복궁 담장 바깥에는 해자를 파지 않았다.

광화문과 궁궐담장
궁궐의 바깥 경계에 높은 담장을 쌓았고, 담장의 동서남북 네 곳에 대문을 만들었다. 건춘문(建春門-동), 광화문(光化門-남), 영추문(迎秋門-서), 신무문(神武門-북)은 각각 봄-여름-가을-겨울과, 나무-불-쇠-물 등을 상징하는 명칭으로 전통적인 오행설에서 유래했다. 1968년 재건된 광화문은 콘크리트 구조로 만들었고, 위치도 원위치에서 뒤로 물러서 있었는데, 2010년 원래의 위치에 제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담장의 동남쪽과 서남쪽 모퉁이에 동십자각(東十字閣)과 서십자각(西十字閣))을 세워 망루로 사용했는데, 서십자각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고, 동십자각은 도로 확장으로 인해 담장을 안쪽으로 옮겨 쌓으면서 길 한가운데 나앉게 되었다. <출처: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과 궁궐담장. 일제강점기에 총독부건물을 지으면서 정문인 광화문과 주변담장들이 훼손되었다가 2010년 원래의 위치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광화문(光化門), 경복궁의 정문

궁궐 정문이자 신하들의 집무공간인 외조 출입문인 광화문은 왕실과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문으로 석축기단에 2층 문루를 올려 놓고 있다. 출입문으로 3궐(三闕)의 홍예를 두고 있는데, 궁궐 또는 대궐이라는 의미는 광화문 출입문을 의미한다. 한양의 궁궐 중에 경복궁만 유일하게 궐(闕)을 두고 있다. 경복궁이 처음 창건되었을때는 정도전이 사정문(四正門)이라 이름지어졌으며, 남쪽에 있어 오문(午門)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후 세종대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 이름지였다.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가 구한말 경복궁을 중건할 때 새로 지어졌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이전되었다가 한국전쟁때 폭격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철근콘크리이트로 1968년 복원되었다가 2010년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되었다.

복원된 광화문을 도로에서 본 첫 느낌은 바뀐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원래 콘크리이트로 지었던 광화문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고 방향만 경복궁 근정전을 중심으로 한 축에 맞추어졌다는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콘크리이트로 지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석축 성문에 전통적인 궁궐 건축의 자재인 금강송으로 지었다는 2층의 문루에서 궁궐 건물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복원된 광화문. 성문형태로 지어진 궁궐 정문으로 궐(闕)을 의미하는 석축을 쌓은 성문의 3개의 홍예문을 두고 있다. 성문 위에는 2층 문루가 세워져 있다. 원형대로 복원된 현재의 광화문 모습은 복원되기전 콘크리이트로 만든 광화문과 멀리서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이는 일제가 광화문을 철거하기전에 일본인 실무자가 정밀한 실측도면을 남겨 놓아서, 그 도면을 바탕으로 콘크리이트로 예전에 복원했으며, 현재의 건물 또한 그 도면을 바탕으로 복원했기때문에 그런 느낌을 갖게 만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광화문 문루. 2층으로 지어진 건물로 다포계 공포에 웅장한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다. 조총이 일반화된 구한말에 중건된 것을 복원하였는데, 조총의 공격을 막을 수 있도록 판문을 설치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최근 뉴스에 많이 등장했던 광화문 현판. 예전에는 한글로 적은 현판이 있었으나, 원래의 모습과 가깝게 복원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광화문은 삼문의 형식에 따라 홍예로 만들어진 3개이 궐문(闕門)이 있는데, 국왕이 지나가는 가운데 홍예를 높게 만들었다. 성문내부 천장에는 남쪽을 상징하는 주작을 그려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예 중앙에는 벽사(僻邪)의 기능을 갖는 석수(石獸)를 새겨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예 위쪽에는 용머리모양을 하고 있는 배수시설인 석누조(石漏槽)를 설치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려한 문양으로 장식해 놓은 여장(女墻).

OLYMPUS DIGITAL CAMERA성문 양쪽 모통이에 세워놓은 석수

OLYMPUS DIGITAL CAMERA문루 추녀마루에 올려놓은 잡상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광화문 문루

OLYMPUS DIGITAL CAMERA광화문 양쪽에 세워놓은 해치상(獬豸像). 해태라고도 불렸던 전설상의 동물로 서울의 상징이기도 하다. 선악을 구별하고 정의를 지키는 존재이다.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제압하기 위하여 세워놓았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광화문과 주변 담장

OLYMPUS DIGITAL CAMERA최근 공원으로 조성된 광화문 광장. 조선시대에는 의정부(議政府), 육조(六曹)를 비롯한 주요 관청들이 들어서 있어 육조거리로 불렸다. 지금도 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하여 주요 관청들이 들어서 있다. 경복궁 외조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선시대 예조(禮曹)와 구한말 삼군부(三軍府) 청사가 있었던 자리에 정부종합청사가 들어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흥례문과 광화문 사이 광장

OLYMPUS DIGITAL CAMERA광화문 안쪽에 위치한 수문장청(守門將廳). 광화문을 지키는 관리들이 근무하는 관청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광화문과 근정문 사이 중문인 흥례문

SANYO DIGITAL CAMERA광화문을 복원한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복원하기전 광화문

SANYO DIGITAL CAMERA콘크리이트로 복원했던 옛 광화문 잔해 일부

동십자각(東十字閣), 경복궁을 지키는 망루

경복궁 남동쪽 도로변에 홀로 서 있는 동십자각은 서십자각과 함께 경복궁의 동.서를 지키는 망루로서 역할을 해 왔던 곳이다. 서십자각은 없어지고 동십자각은 도로에 홀로 남아 마치 원래부터 길거리에 있던 것 처럼 보인다. 북경 자금성과는 달리 경복궁은 성으로서의 방어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은 궁궐 그 자체만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이 동십자각은 많지 않은 경복궁 방어 시설 중의 하나이다. 지금은 대로변에서 서 있으며, 서울이 오래된 고도임을 말해주고 있는 여러 문화재 중의 하나이다.

이 건물은 궁성(宮城)의 동남 모퉁이에 세웠던 망루와 같은 돈대(墩臺) 건물의 기능을 갖고 있던 것인데 궁성 원장(垣墻)이 헐리면서 현재와 같이 길가에 독립건물같이 되었다. 이 건물은 궁성 전면 양모서리에서 궁내외를 감시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인데 서십자각(西十字閣)은 헐려 현재 볼 수 없다. 평면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 방형(方形)이며 축부(軸部) 구성은 하방(下枋)과 창방(昌枋)만을 짜아 돌리고 주간(柱間)에는 무벽(舞壁)의 개방식이며 바닥은 흙바닥으로 되었다. 공포(慊包)는 이익공(二翼工)으로 주간에는 장화반(長花盤)을 넣어 끼우고 네 귀에서 귀 한 대를 내어 추녀 뒷몸을 받게 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옥정(屋頂)에는 절병통을 얹었으며 귀마루에는 양성을 발라 그 위에 잡상(雜像)과 용두(龍頭)를 올려 놓았다. 건물 주변에는 여장(女墻)을 쌓아 편문(便門)을 내었고 기단(基壇) 상부는 당초문(唐草文)의 조각장식을 베풀어 의장(意匠)하고 있다. <출처:서울육백년사, 서울시청>

OLYMPUS DIGITAL CAMERA경복궁 동십자각. 원래는 경복궁과 담장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도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지금은 도로 한가운데 홀로 서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십자각 문루. 원래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석축으로 쌓은 기단위에 앞면 3칸, 옆면2칸의 사모지붕을 하고 있는 작은 누각이다. 주위에 조총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벽돌로 여장을 쌓아 놓고 있다. 궁궐 건물로 추녀마루에 잡상을 올려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십자각이 있었던 경복궁 서쪽 모퉁이 부근 담장

신무문, 건춘문, 영추문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출입하는 문으로는 정문격인 남쪽 광화문이 있고, 동쪽에는 건춘문, 서쪽에는 영추문, 북쪽에는 신무문이 있다. 현재는 광화문과 신무문을 통해서 경복궁을 출입할 수 있고, 동.서쪽의 건춘문과 영추문은 굳게 잠겨 있다. 그 중 신무문은 청와대 정문과 연결되는 문으로 최근에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다. 경복궁 전체를 한번 둘러보고 건청궁과 집옥재, 향원정 일대에서는 최근에 개방된 신무문을 통해서 잠깐 바깥으로 나가서 청와대 정문과 신무문 바깥 모습을 관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경복궁 출입문 중 정문인 광화문은 삼문의 형식에 2층 문루를 올려 놓고 있으며, 나머지 동.서.북쪽 출입문은 단문의 형식에 1층 문루를 올려놓고 있는 구조이다. 북경 자금성과 비교해보면 자금성 정문은 5개의 출입문이 있는 오문의 형식이고, 북문인 신무문은 3분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마도 당시에 중국과 주변국간에 궁궐 건축 형식에 대한 예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복궁의 동문에 해당하는 건춘문. 정문인 광화문과는 달리 홍예로 만든 1개의 출입문(闕)을 두고 있다. 건춘문을 들어서면 세자의 거처인 동궁(東宮)을 비롯하여 왕실가족들이 거처하는 내전(內殿)과 연결되는 출입문으로 왕족.척신(戚臣).상궁 등이 드나들었던 출입문이다. 이런 까닭에 건춘문 바깥쪽에는 왕실 종친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인 종친부(宗親府)가 자리잡고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춘문 안쪽 동궁권역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경복궁 동쪽편 담장. 도로가 개설되면서 담장은 동십자각과 연결되지 않고 원래보다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건춘문과 주변 담장.

OLYMPUS DIGITAL CAMERA경복궁 동쪽편 도로와 담장. 원래는 북악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천이 흐르는 곳이다. 옛 그림이나 사진에는 개천과 북촌과 연결되는 다리 등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경복궁의 북문에 해당하는 신무문(神武門)이다. 이 문을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 늘 닫혀있었다고 한다. 비상시 국왕이 숙정문(肅靖門)이나 창의문(彰義門)을 통해 도성 밖으로 빠져나갈때 사용하기 위한 비상문이라 할 수 있다.경복궁을 처음 세웠을때는 없었으며, 세종15년(1443)에 만들어졌다. 중국 자금성 북문인 신무문과 같은 이름을 사용한다.

SANYO DIGITAL CAMERA신무문을 나서면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를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경복궁 후원 집옥재와 신무문 사이에 있는 중문에 해당하는 출입문. 삼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국왕이 드나드는 것으로 전제로 지어졌다.

SANYO DIGITAL CAMERA집옥재에서 신무문으로 연결되는 길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경복궁 신무문. 경복궁 관람시 북문 바깥으로 잠깐 나갔다 들어올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경복궁 신무문

OLYMPUS DIGITAL CAMERA 경복궁 서문에 해당하는 영추문(迎秋門)이다. 국왕을 직접 보필하는 관청인 궐내각사와 연결되는 출입문으로 관료들이 주로 출입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석축이 무너지면서 철거되었던 것으로 1975년에 복원하였다. 원래의 위치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도 영추문을 들어서면 궁궐에서 공식적인 연회가 열렸던 경회루 연못을 먼저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성문 내부 천정에 그려진 백호

SANYO DIGITAL CAMERA경복궁 안쪽에서 본 영추문

OLYMPUS DIGITAL CAMERA영추문과 주변 담장

OLYMPUS DIGITAL CAMERA경복궁 서쪽편 담장

[중국 베이징] 천안문(天安门)과 외금수교(外金水橋)

천안문은 베이징 내성 남문에 해당하는 출입문으로 오늘날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천안문은 자금성을 건설한 영락제 때인 1420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승천문이라 불렀다고 한다. 원래는 패루 성격을 갖는 출입문으로 앞면9칸의 목조건출물로 지어진 문루였으나, 1644년 이자성이 이끄는 군대의 공격으로 명나라가 멸망했을 때 소실되고 1651년 오늘날과 같은 성문 형태로 중건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출입문으로 5개의 문이 있는 성문 위에 문루를 올려 놓았다. 문루는 60개의 나무기둥으로 받혀진 정면9칸, 옆면 5칸의 2층 거대한 문루로 황금빛 유리기와 지붕을 하고 있다. 반면에 광화문은 3개의 출입문을 두고 있는데, 이는 천자의 궁궐과 제후의 궁궐을 구분한 궁궐제도에 따른 것이라 한다.

천안문 앞에는 황제가 사는 자금성과 바깥세상을 구분하는 외금수하(外金水河)가 흐르고 있으며, 외금수하를 건너는 다리는 인(仁),의(義),예(禮),지(知),신(信)을 상징하는 5개의 다리인 외금수교(外金水橋)를 세워놓고 있다. 5개의 다리와 성문 중 가운데는 황제만이 출입할 수 있으며, 다리에는 대리석을 깔아놓고 용이 휘감고 있는 난간기둥으로 장식하고 있다. 외금수교 앞에는 천안문과 함께 중국을 상징하는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인 화표((华表)와 석수인 돌사자상을 볼 수 있다. 천안문 앞 광장은 황제가 바깥 세상을 행차할 때 출발하는 지점으로 광화문대로와 마찬가지 넗은 길이 원래 있었다고 하며, 그 주변에는 관청들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천안문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광장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중국 국가박물관, 인민대회당을 비롯하여 주요 공공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또한 넓은 광장은 정치집회를 비롯한 주요한 행사를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뉴스 등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광경이다. 북경이 중국의 수도가 된 명대 이후로 이 곳에는 천안문이 존재했었고, 황제 권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던 곳이다. 일반 민중들은 자금성 내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천안문이 중국 황실을 대표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북경 천안문은 만리장성과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뉴스를 포함하여 각종 매체에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중국의 모습이다. 황금빛 지붕에 중국 오성홍기 모양의 현판과 그 아래 모택동 주석의 초상화는 대중매체를 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본 적이 있는 모습일 것이다. 천안문 광장은 자금성을 나서는 황제가 출발하는 곳으로 일반인들이 황제의 행렬을 볼 수 있었던 곳이다. 주변에는 주요 관청들이 들어서 있었는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SANYO DIGITAL CAMERA북경 자금성 천안문(天安门, 텐안먼). 천안문은 명.청대 황제가 기거했던 자금성 정문으로 명나라때인 1420년(영락18)에 처음 세워졌다. 원래는 서울 창덕궁이나 창경궁의 정문처럼 목조건축물로 지어진 문루(패루)가 있었다고 하는데 명나라말(1644년) 이자성의 공격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청나라 순치 8년(1651)에 성문의 형식으로 중건하였다고 한다. 성문은 5개의 출입문이 있는 높이 14.6m 성벽 위에 목조 문루를 올려놓은 형태이다. 문루는 앞년 9칸, 옆면 5칸의 건물로 60개의 나무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으며, 황금색 유리기와를 얹었다.

SANYO DIGITAL CAMERA 천안문에는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 모양의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아래로 중국 초대 모택동 주석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양쪽으로 中华人民共和国万岁(중화인민공화국만세),世界人民大团结万岁(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고 쓰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선의 법궁 광화문 또한 자금성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3개의 출입문이 있는 성문 위에 2층 문루를 올려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안문 앞에는 해자를 팠으며, 5개의 다리로 구성된 외금수교를 건너 천안문을 들어설 수 있다.  천안문 앞 해자는 황제가 머무는 궁궐과 외부세계를 차단하는 의미로 외금수하(外金水河), 이 외금수하를 건너는 5개의 다리는 외금수교(外金水橋)라 부른다. 5개의 다리는 인(仁),의(義),예(禮),지(知),신(信)을 상징한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 중국 북경 천안문 광장 앞을 흐르는 외금수하를 건너는 5개의 금수교 중에서 황제만이 건널 수 있었던 가운데 다리는 바닥에 대리석을 깔아 놓고 있다. 청대말 권력자인 서태후는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이 금수교을 건너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반면에 양쪽에 있는 다리에는 구운 전돌을 깔아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또한 가운데 다리 난간 기둥은 황제를 상징하는 용이 기둥을 휘감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반면에 다른 다리 난간 기둥은 연꽃봉우리 형상으로 장식하고 있다. 화강석을 사용한 우리나라 궁궐과 달리 자금성은 대리석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금수교 사이의 공간. 해자 난간 기둥도 연꽃봉우리로 장식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천안문 외금수교 양쪽에 세워진 화표(华表).  화표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용이 기둥을 휘감고 있는 형태롤 하고 있는 위쪽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구름이 날개모양을 하고 있는 장식이 있다. 화표는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높이는 10m가 넘고 무게가 5,000kg이 넘는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 화표 아래에 난간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사자상을 하고 있는 석수. 암사자가 왼발로 아기사자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다.

SANYO DIGITAL CAMERA 천안문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대리석으로 조각한 사자상. 세계 각처에 있는 중국식당 또는 중국 관련 건축물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사자상이라 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외금수교를 지나 천안문으로 입장하는 수많은 관광객들

SANYO DIGITAL CAMERA자금성 내부에서 본 천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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