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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화서문(華西門, 보물)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보물)

팔달산 서장대를 지나서 능선을 따라 연결된 성벽을 내려오면, 나즈막한 언덕에 설치된 서북각루에서 잠시 쉬었다가, 평지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화서문(華西門, 보물)과 화서문을 지키는 망루 역할을 하는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보물)을 볼 수 있다. 화서문 부근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수원화성은 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외벽을 쌓은 석축성을 기본으로 하고 암문, 옹성, 포루, 공심돈, 여장 등에는 벽돌을 일부 사용하였다. 중국의 경우는 대부분 벽돌을 이용해서 쌓은 전성이다. 화서문은 화성 서남쪽 남양만과 서해안 안산지역으로 연결되는 길이 출발한다.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문에 해당한다. 1896년 (정조 20면)에 완공된 약 200년된 건축물이다. 정문인 팔달문이나 북문인 장안문보다 성문의 크기가 작다. 성문 바깥쪽에는 옹성을 쌓았으며, 팔달문과 달리 옹성에 출입문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화서문은 축성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팔달문과 함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화서문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이자 정조대왕의 최측근인 채제공(蔡濟恭)이 썼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원화성 서문에 해당하는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성문 앞에 옹성을 쌓고, 북쪽에는 공심돈을 두어 성문을 엄호하고 있다. 화서문을 통해 남양만과 안산일대 서해안 지역과 연결된다.

수원 화서문(華西門), 보물 403호,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동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이다. 1796년(정조19) 7월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20) 1월8일 마쳤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403호로 지정되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더너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화서문은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은 홍예문으로 1층 문루를 올려 놓고 있다. 성문 앞쪽에는 벽돌로 옹성을 쌓아 방어기능을 강화했다. 2층문루를 올려 놓은 팔달문이나 장안문에 비해 규모가 작다. 동문에 해당하는 창룡문과 비슷한 규모와 구조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성 내부에서 본 화서문. 문루는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판벽을 설치해 놓은 팔달문과는 달리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전형적인 문루 형태를 하고 있다.  문루 앞에 벽돌로 여장을 쌓아 조총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서문 현판. 초대 수원유수를 지낸 채제공이 쓴 글씨라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문루를 오르는 계단.

SANYO DIGITAL CAMERA문루 내부.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전통적인 성문 문루 형태를 하고 있다. 이전에 세워진 읍성 문루에 비해 여장을 높게 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잘다듬은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은 전통적인 홍예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문 바깥쪽에는 옹성을 쌓아 방어기능을 보완하고 있다.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은 성문과 달리 구운 벽돌로 쌓은 중국풍의 전성(塼城)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옹성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 팔달문과 달리 옹성 한쪽을 열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옹성 위는 용도처럼 여장이 있는 통로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서문 남쪽 팔달산으로 연결되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안쪽.

OLYMPUS DIGITAL CAMERA서북각루에서 화서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수원화성 화서문.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화서문 왼쪽에는 성문을 엄호하기 위한 방어시설로 서북공심돈을 두고 있다.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인 돈대이다. 수원화성에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여러 시설물을 두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심돈이다. 구운 벽돌을 쌓어서 만든 시설로 당시 정조대왕이 크게 자랑스러워했다는 시설이다. 아마도 중국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인 천하제일관의 문루와 돈대, 성벽 등의 시설을 보고 수원 화성 축성시 많이 참조해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수원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보물1710호,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동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1796년(정조20) 3월10일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3층 건물로 아래쪽 부분의 치성(雉城)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는 전돌로 쌓았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1797년(정조21)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효과적인 재료 활용을 보여주는 서북공심돈은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화서문 동쪽편에는 성문을 엄호하기 위해 세운 방어시설인 서북공심돈이 있다. 수원 화성은 정약용 등 당대 최고의 실학자들이 동서고금의 성곽에 대한 기술을 연구하여 쌓은 조선시대 최고의 읍성으로 다양한 시설을 두고 있다.  공심돈은 수원화성에만 있는 시설로 청나라의 영향을 받았지만 치성 위에 돈대를 세우는 등 독창적인 면도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는 공심돈. 석축으로 쌓은 치성(雉城) 위에 벽돌로 속이 비어 있는 2층 돈대(墩臺)을 쌓고 그 위에 누각을 올려 놓았다. 돈대는 속이 비어 있어 공심돈이라 부른다. 치성에는 북쪽과 서쪽편에 각 2개씩 현안(懸眼)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2층에는 각면에 바깥으로 조총공격을 할 수 있도록 6개의 총안(銃眼)을 설치하고, 그 위에 포루를 설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공심돈 내부로 들어가는 문.

OLYMPUS DIGITAL CAMERA수원화성 공심돈 내부(모형, 수원화성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공심돈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공심돈에서 화서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성벽 아래 길을 화서문 옛길 (화수문~수원천)이라 부른다. 이 길은 수원화성 축성 때 만들어진 길로 몇백년 세월의 여유와 깊이를 품고 있는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북공심돈과 화서문.

SANYO DIGITAL CAMERA2010년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수원화성] 서이치~서북각루(西北角樓), 팔달산 북쪽 능선

팔달산 정상에 자리잡은 수원화성 지휘소인 서장대에서 서문에 해당하는 화서문 부근 서북각루(西北角樓)까지는 거리(약400m)가 짧으면서 경사가 있는 편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포루와 치의 간격이 약간 좁은 편이다. 서장대 아래 경사진 능선에 치성과 포루가 각 1개씩 설치되어 있다. 성벽 바깥에는 수원역과 경기도청 등 주요 행정기관에 많이 몰려 있다.

경사진 능선을 따라서 내려오던 성벽길이 평지로 바뀌는 곳에는 화서문 일대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장대(將臺) 기능을 갖는 서북각루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맞은편 숙지산과 함께 서남쪽으로 연결되는 길을 감시하고 방어할 수 있는 곳이다. 서북각루를 보호하기 위해 부근에 치성이 설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서장대가 있는 팔달산 정상부에서 내려다 본 수원화성 서북방향. 서해안 안산지역으로 길이 연결된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서문 방향으로 내려가는 성벽길. 경사진 능선을 따라서 성벽을 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팔달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계단길

서이치(西二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잘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떠서 ‘치성’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서이치는 서포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능선 중간쯤 경사가 완만해지는 곳에 치성(雉城)을 설치해 방어상 취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원화성 서이치(西二雉).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에서 본 치성과 주변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치성과 포루 사이 성벽

서포루(西砲樓)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에서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20) 5월30일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火砲)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서이치에서 조금 내려오면 화포설치할 수 있는 포루(砲樓)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 포루는 팔달산 서북쪽에서 화성으로 들어가기 용이한 지점에 설치되어 있다. 지금도 포루 아래에는 팔달산을 오르는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포루는 치성과는 달리 구운벽돌로 치성을 쌓고 그 위에 누각을 올려 놓고 있다. 치성 내부는 공심돈처럼 비어 있으며, 무장한 병사들이 주위를 엄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포루 내부. 마루를 깔아 놓았으며, 지금은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서포루와 주변 성벽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포루

OLYMPUS DIGITAL CAMERA팔달산 능선을 따라 연결된 성벽은 서포루 부근에서 경사가 완만해지며, 화성내부로 들어가기 용이하다. 팔달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이곳을 지나간다.

OLYMPUS DIGITAL CAMERA서포루 아래 경사가 완만한 언덕으로 이어진 성벽. 모서리에 방어시설로 치성을 설치했다.

OLYMPUS DIGITAL CAMERA치성과 서북각루가 나란히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일치(西一雉), 성벽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공격하기 위해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서북각루와 서포루 사이에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포루에서 서북각루로 이어지는 성벽(안쪽)

서북각루(西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이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로 숙지산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서북각루. 화서문 바깥쪽 넓은 들판을 감시하면서 화서문 일대 군사를 지휘하기 용이한 곳에 설치되어 있다. 성벽이 방향을 바꾸는 모서리에 누각을 세워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누각은 앞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전 건물들과는 달리 벽돌을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이 방향을 바꾸논 모서리 지점을 치성처럼 바깥으로 돌출시켰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북각루

OLYMPUS DIGITAL CAMERA서북각루에서 화서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멀리 공심돈과 옹성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서문에서 서북각루 사이의 성벽(바깥쪽).

OLYMPUS DIGITAL CAMERA화서문에서 서북각루 사이의 성벽(안쪽)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수원화성] 서장대(西將臺, 華城將臺), 팔달산 정상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

팔달산 정상부 능선을 북쪽 끝자락에는 서장대(西將臺)와 서노대(西弩臺)가 설치되어 있다. 서장대는 주변 동태를 감시하고 화성내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곳이다. 수원화성에는 군사들을 지휘하는 곳으로 서장대와 함께 장안문 동쪽에 연무대(鍊武臺)라고도 불리는 동장대(東將臺)가 설치되어 있다. 서장대는 앞면3칸, 옆면3칸 규모의 2층 누각이다. 서장대 뒷편 사방으로 쇠뇌를 공격할 수 있는 방어시설인 서노대가 설치되어 있다. ‘화성장대(華城將臺)’라 적힌 현판은 정조의 친필이며, 그는 이곳에서 직접 군사훈련을 지휘하기도 했다고 한다. 뒷편에는 앞면 3칸 규모의 후당(後堂)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사통팔달(四通八達)’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산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팔달산 정상부에 올라서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장대에 올라서면 수원시내는 물론이고, 북쪽으로는 광교산과 용인방면이, 남쪽으로는 융건릉이 있는 화산(華山)과 오산 독산성까지 주변 경치가 한눈으로 들어온다. 서장대 아래에는 수원유수부 관아이자 국왕의 임시 거처인 화성행궁이 자리잡고 있으며, 비상시 서장대를 거쳐 성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팔달산 정상부 북쪽 능선 끝자락에 수원화성에서 제일 중요한 시절인 서장대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장대는 앞면 3칸, 옆면 3칸의 2층 누각이다. 지붕 위에는 조선시대 건축물에서는 잘 쓰지 않는 절병통을 올려놓고 있다. 정조가 ‘화성장대(華城將臺)’라 적힌 현판 글씨를 직접 썼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장대 1층내부. 가운데 난간이 있는 마루가 있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오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장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주변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서장대 아래에는 수원유수부 관아이자 정조가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행차할 때 머물렀던 화성행궁이 위치하고 있다. 비상시 서장대 뒷편 암문을 통해 성바깥으로 빠져나가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성행궁 앞 광장에서 본 팔달산과 서장대.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서장대.

OLYMPUS DIGITAL CAMERA서장대 뒷편에는 군무(軍務)를 보던 앞면 3칸 규모의 후당건물과 서노대가 있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장대 뒷편 성벽

서노대(西弩臺)
노대는 성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복노대가 두 곳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서장대 뒷편 서노대. 군사지휘부인 서장대를 엄호하기 위한 시설로 사방으로 쇠뇌를 쏠 수 있게 지은 방어시설이다. 정팔각형으로 구운벽돌로 쌓은 청나라풍의 시설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노대 내부. 가운데 노(弩)를 설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사방에 여장을 설치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노대에서 내려다 본 서장대.

OLYMPUS DIGITAL CAMERA서노대에서 내려다 본 수원화성 서쪽 수원 부근

SANYO DIGITAL CAMERA화서문과 장안문 사이 성벽.

SANYO DIGITAL CAMERA화홍문 부근

SANYO DIGITAL CAMERA연무대와 창룡문 부근.

SANYO DIGITAL CAMERA수원화성 동쪽편 성벽

SANYO DIGITAL CAMERA팔달문 주변.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장대 부근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장대.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노대.

OLYMPUS DIGITAL CAMERA서장대에서 북쪽 화서문으로 내려가는 길.

서장대(西將臺, 華城將臺)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정조18) 8월11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29일 완성되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19) 윤2월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출처:수원시청>

[수원화성] 서삼치~서암문, 팔달산 정상부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

수원 팔달산(八達山)은 해발 128m의 낮은 야산으로 남북으로 약 1.2km, 동서로 400m 정도이며 정상부는 약 400m 정도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수원화성 중에서 산성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팔달산 아래 남쪽을 향하고 있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사방으로 시야가 틔여 있어 주변 동태를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기 용이하다. 정상부 능선 남쪽 끝자락에는 서남각루(西南角樓)가 설치되어 수원화성 남쪽 팔달문 바깥지역을 감시하며, 북쪽 끝자락에는 서장대가 설치되어 수원화성 내부와 주변지역을 동태를 감시하고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서남암문에서 방향을 바꾼 성벽은 정상부 능선을 따라서 서장대(西將臺)까지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연결되어 있다. 성벽길은 경사가 완만해서 걷기에 수월하다. 성벽 아래로는 수원의 주요 행정시설과 수원역이 있고, 멀리 사도세자 능이 있는 화산이 멀리 보인다. 정상부에는 성벽 바깥으로 출입할 수 있는 2곳의 암문과 치성 1곳, 포루 1곳을 두고 있다. 서남암문은 서남각루를 출입하기 위한 암문이며, 서장대 뒷편 서암문(西暗門)은 비상시 행궁에서 서장대를 거쳐 성 바깥으로 탈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치성1곳과 포루는 이들 암문과 주변을 엄호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팔달문에서 경사진 언덕을 따라 이어진 성벽은 서남암문에서 방향을 바꿔 정상부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OLYMPUS DIGITAL CAMERA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바깥쪽.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능선을 따라서 이어지는 성벽. 수원화성은 팔달산의 높이가 낮아 정상부에도 여장을 설치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 성벽

서삼치(西三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서삼치는 서포루와 서남암문 사이에 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팔달산 정상부에는 치성이 1곳만 설치되어 있다. 치성(雉城)은 일정한 거리마다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방어시설로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기 쉽게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치성 내부. 여장이 높게 설치되어 있으며, 총안을 통해 조총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총안으로 내려다 보이는 성벽 바깥.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에서 본 서치성.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삼치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중간에 통로가 있다. 이 통로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며, 허물어졌던 것을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통로 주벽 성곽, 능선을 따라 평지가 있어 인공적으로 내부는 흙으로 토축을 쌓고 바깥쪽에 석축을 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장대로 연결되는 길. 지대가 높은 중간쯤에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포루로 이어지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서포루로 연결되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서암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서포루(西砲樓)
포루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6년(정조20) 8월18일에 완공되었다. 서암문이 적에게 발각되어 공격받는 것에 대비하여 설치되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서포루는 바깥쪽으로 돌출된 치성 위에 누각형태의 포루를 올려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서포루 누각형태의 목조 건물.

OLYMPUS DIGITAL CAMERA서포루 내부. 내부 구조로 볼 때 화포를 설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서포루와 주변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서포루를 지나면 경사가 거의 없는 능선길이 이어지며, 능선 끝에는 수원화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서장대(西將臺)가 있다. 서장대 부근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성바깥으로 출입할 수 있는 서암문이 있다.

서암문(西暗門)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문이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 서암문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기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 전까지 암문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춰져 있다. 1796년(정조20) 6월18일 완공되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서암문은 서장대에서 바깥으로 출입하기 위한 통로이다. 비상시행궁에서 서장대를 거쳐 화성 바깥으로 탈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암문은 자연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만들었기때문에 화성 안팎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OLYMPUS DIGITAL CAMERA암문으로 내려가는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으로 나가는 암문

OLYMPUS DIGITAL CAMERA암문 주변은 구운벽돌을 이용해서 쌓은 전성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암문

OLYMPUS DIGITAL CAMERA서암문 주변 성벽

[수원화성] 팔달문~서남각루(西南角樓), 팔달산 남쪽 능선으로 이어진 성벽

수원화성(사적3호) 팔달문에서 정상부까지 성벽들로 이어져 있다.  기존 산성 축성방법에 따라 지은 석축성을 하고 있으며 성벽 위에는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정조때 쌓았지만 숙종대에 쌓은 한양도성에 비해 화강석의 크기가 작고 잘 다듬지는 않았다. 경사진 지형으로  방어에 용이하기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방어 시설을 많이 두고 있지 않다. 정상부까지 치성(雉城)과 포루(砲樓)가 1곳씩 설치되어 있다. 치성은 성벽을 돌출시켜 방어에 용이하도로 하고 있다. 포루는 치성과 비슷하지만 화포(火砲)를 설치할 수 있는 곳으로 치성과 달리 벽돌로 쌓았으며 지붕을 얹었다.

팔달산(八達山)은 해발 128m의 나즈막한 동산을 수원화성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팔달산은 정상부가 경사가 거의 없는 능선으로 되어 있는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는 서장대(西將臺)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남쪽끝에는 주변 동태를 감시하고 서남각루(西南角樓)가 설치되어 있다. 성벽에서 서남각루까지는 옹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용도로 연결되어 있고, 용도를 출입하는 출입문인 서남암문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원화성 남문인 팔달문에 서쪽 팔달산을 오르는 성벽. 수원화성 성벽중에서 경사가 심한 편이지만 성벽을 걸어오르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무리가 되지는 않는다. 중간에 방어시설물인 ‘남치’와 ‘남포루’, 정상부에 서남암문(西南暗門)과 용도(甬道)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 성벽. 화강석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는 조총 공격에 대비하여 여장을 올려 놓고 있다. 정조때 쌓은 성곽이지만 숙종대에 쌓은 한양도성에 비해 화강석의 크기가 작고 잘 다듬지 않았다.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2010년

남치(南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시설이다. 성벽 가까이에 접근하는 적군을 쉽게 공격하고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을 의미하는데 꿩이 자기 몸은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남치는 팔달문과 남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중간에 세워진 방어시설인 치(雉). 치는 성벽 바깥으로 노출된 방어시설로 성벽을 오르는 적들을 공격하기 쉽도로 만든 것이다. 삼국시대 산성에서 볼 수 있는 치성과는 달리 총안(銃眼)이 설치된 여장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남치.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가까운 곳에 있는 적에게 총을 발사 할 수 있는 근총안.

OLYMPUS DIGITAL CAMERA치성에서 보이는 성벽 바깥쪽.

OLYMPUS DIGITAL CAMERA남치(南雉)와 주변 성벽. 아래쪽에는 팔달문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능선을 따라서 이어지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남치 부근 성벽길.

OLYMPUS DIGITAL CAMERA팔달산을 오르는 성벽길

SANYO DIGITAL CAMERA2010년 남치 부근

남포루(南砲樓)
남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팔달문과 서남암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7월9일 완공되었다.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火砲)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이다. 팔달문 주위의 성벽과 화양루를 수비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성벽을 따라서 조금 걸어 오르면 수원화성에 설치된 5개의 포루 중 하나인 남포루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포루는 화포를 설치할 수 있는 방어시설로 치성과 마찬가지로 성벽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수원화성 남포루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아 구운벽돌로 쌓았으며, 그 위에 지붕을 올려 놓았다. 공심돈처럼 내부가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포루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남포루 내부. 아래쪽에는 블랑기같은 화포를 배치하고 위쪽에 총안이 있는 판벽이 설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도깨비 얼굴을 그려 놓은 총안이 있는 판벽

OLYMPUS DIGITAL CAMERA판벽 바깥쪽으로 보이는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남포루를 지나 팔달산 정상부에 설치된 서남암문으로 오르는 성벽길.

OLYMPUS DIGITAL CAMERA남포루와 주변 성벽.

OLYMPUS DIGITAL CAMERA서남암문 아래 바깥쪽 성벽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남암문(西南暗門)과 서남포사(西南舖舍)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이 문은 용도(甬道: 담을 양쪽에 쌓아 만든 길)의 출입문이기도 하다. 5개의 암문 중에서 유일하게 포사(舖舍)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796년(정조20) 8월6일 홍예가 완성되었다. 포사는 성 밖의 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신호를 전달하였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팔달산 정상부 남쪽편 능선에 위치한 서남암문. 서남암문은 남쪽편 능선 끝에 세워진 방어시설인 서남각루(西南角樓)를 출입하는 암문이다. 암문과 서남각루까지는 용도(甬道)로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남암문 주벽 성벽과 달리 구운벽돌을 사용하여 성벽을 쌓고 있으며, 그 위에 작은 문루를 올려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암문위에 설치된 작은 문루인 서남포사(西南舖舍). 포사는 성 밖의 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로 조총공격에 대비해 판벽으로 막아 두고 있다.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신호를 전달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암문 옆 성벽은 곡면을 주어 치성과 같은 기능을 하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바깥쪽에서 본 암문.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서남암문.

OLYMPUS DIGITAL CAMERA서남암문과 바깥쪽 용도(甬道).

OLYMPUS DIGITAL CAMERA서남각루까지 연결된 용도(甬道).

OLYMPUS DIGITAL CAMERA용도는 본성 성벽에 비해 성벽을 낮게 쌓고 있다. 수원화성 용도는 그 형태나 방어상 취약한 지역을 보완하는 기능적인 측면에 남한산성 옹성과 비슷하다.

OLYMPUS DIGITAL CAMERA 용도의 동쪽에 위치한 용도동치(甬道東雉). ’치’란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방어시설로 수원화성에 설치된 10개의 치성가운데 하나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용도서치(甬道西雉), 용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남각루(西南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바싱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서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팔달산 남쪽 능선에 설치한 용도의 남쪽 끝에 세워졌다. 1796년(정조20) 4월16일 공사를 시작하여 7월20일 완성하였다. 편액에는 화양루(華陽樓)라고 쓰여져 있는데 ‘화(華)’자는 화성을 뜻하고 ‘양(陽)’자는 산의 남쪽을 뜻하는 것이다. <출처:수원시청>

OLYMPUS DIGITAL CAMERA용도는 팔달사 정상부를 따라 이어지는 능선 끝자락 서남각루까지 이어진다. 서남각루는 전망이 좋은 위치에 설치되어 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성안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장대(將臺)와 비슷한 성격의 건물이다. 화양루(華陽樓)라고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감각루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정자이다. 누마루처럼 바깥쪽을 높게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남각루 내부. 가운데에는 전돌을 깔아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용도 끝은 양쪽이 치성처럼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내부는 치성과 거의 비슷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용도 바깥쪽 성벽. 성벽 바깥쪽은 경사가 급해서 성벽을 높게 쌓지 않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바깥쪽에서 본 용도 성벽

SANYO DIGITAL CAMERA2010년.

수원 화성(華城), 사적3호, 수원시 팔달구 일원
화성은 정조대왕 재위 13년만인 1789년 10월7일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원침(園寢)을 지금의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그곳에 있던 관아와 민가를 지금의 수원시 중심부에 있는 팔달산 동쪽 기슭으로 옮겼다. 이후 1793년 수원도호부가 화성유수부로 승격되었고 1794년 1월부터 1796년9월까지 화성이 축조되었다. 화성의 규모는 둘레가 약 5.74km, 성벽 높이 5m 가량이며 여장의 높이는 약 1.2m이다. 화성 성역은 정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당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정조대왕을 정점으로 관료.학자.기술자.백성들이 함께 만든 근대적 신도시이며 실학의 총체적 결정체이다. 화성은 정약용의 기본설계서인 『성설(城說)』에 기초하여 조선.중국.일본 성곽의 축성법 중 장점을 채택하였으며 거중기, 녹로와 유형거 및 각종 수례 등 새로운 과학기기를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화성 축성에 대한 모든 내용을 『화성성역의궤』라는 공사보고서를 통해 상세하게 남겨놓았다. <출처:수원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