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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보물 418호)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에 있는 보각국사탑과 비(보물 428호)이다. 보각국사는 고려중기에 활동한 승려로 『삼국유사』를 저술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탑은 바닥돌 위에 8각의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몸돌과 지붕돌이 있는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전형적인 승탑이다. 몸돌 앞면에는 탑이름, 뒷면에는 문모양이 조각되어 있으며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과 보살상을 새겨 놓고 있다. 탑비는 당대 문장가인 민지가 지었으며, 글씨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왕희지 글씨체를 보기 위하여 비석을 탁본하면서 그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다. 지금도 일부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사본이 월정사에 남아 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보물 418호). 고려말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8각형의 목조건축물 형태을 하고 있는 전통 승탑양식을 따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자연석 바닥돌 위에 8각형 받침돌이 3단으로 올려져 있다. 가운데 받침돌에는 동물이 조각되에 있으며 원형에 가까운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몸돌에는 탑이름과 문모양, 사천왕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천왕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는 부분

OLYMPUS DIGITAL CAMERA인각사 보각국사탑비(보물 418호). 일연의 행적과 비를 세운 경위, 제자들의 이름 등을 새겨 놓았다. 중국에서 직접 왕희지 글자를 집자하여 글을 새겼으며 당대 문장가인 민지가 비문을 지었다. 왕희지의 글씨를 얻기 위해 수많은 탁본이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비가 크게 훼손되어 일부만 남아 있다. 원본은 옛 탁본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앞면에는 일연의 행적과 그를 추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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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에 남아 있는 글씨

OLYMPUS DIGITAL CAMERA뒷면에는 비를 세운 경위, 제자들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면에 남아 있는 글씨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 보물 418호, 경북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입적한 보각국사 일연의 사리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탑비이다. 탑은 자연석으로 된 바닥 위에 놓여 있으며, 받침돌, 몸돌,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팔각 받침돌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부분에는 동물 조각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윗부분은 원형에 가까우며 단조롭 소박한 연꽃이 새겨져 있다. 탑신은 팔각이며 정면에는 ‘보각국사 정조지탑’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문모양의 조각이 있으며 남은 6면에는 사천왕 입상과 연꽃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지붕의 두꺼운 추녀 밑은 위로 살짝 들려 있고, 낙수면은 급한 편이며 지붕 선 끝 부분에 꽃 장식이 달려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이 큼직하게 올려져 있다. 비는 국사의 제자인 법진이 세웠으며,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고, 글씨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비의 앞면에는 스승인 일연의 행적과 스승에 대한 추모의 정을 담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경위, 다비식 때의 영험, 제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안내문, 군위 인각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군위 인각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0년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과 비(보물 531호)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전리 용문사에 있는 정지국사탑과 비(보물 531호)이다. 고려말 활동한 정지국사(1324 ~ 1395년)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조선초에 조성한 것으로 목조건축물 형태를 하고 있는 통일신라 이래 전통 승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은 4각이고 윗받침돌과 탑몸는 8각형을 하고 있다. 받침돌에는 연꽃장식 외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몸돌에는 문짝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전통 승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조각수법이는 조형미는 이전 승탑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비는 사각형의 작은 형태로 윗쪽 모서리를 살짝 깍은 단순한 형태이다. 비문은 당대 학자인 권근이 지었는데 정지국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20190603-01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보물 531호). 통일신라 승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조각수법이나 조형민는 떨어지는 편이다.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20190603-04아래.위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고 있으며, 가운데 받침돌은 북 모양을 하고 있다.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20190603-05몸돌과 지붕돌은 8각형을 하고 있는데 몸돌에는 형식적으로 문을 새겨놓고 있다.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20190603-06옆에서 본 모습.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20190603-02용문사 정지국사 비(보물 531호). 비는 부도에 딸린 탑비로 조선 태조 7년(1398)에 건립되었으며 조성당시의 찬조자 명단과 정지국사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20190603-03정지국사탑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용문사.

용문사 정지국사 부도 및 비, 보물 531호
이 부도는 팔각원당형으로 지대석 위에 연꽃 문양이 조각된 사각형의 하대석을 놓았다. 그 위에 원통형의 중대석이 놓여 있고 옆면에 연꽃 문양이 새겨진 팔각형의 상대석이 중대석 위에 있다. 탑신부는 팔각형으로 한 면에만 문을 새겼고 팔각형의 지붕돌은 윗면의 합각선이 두툼하고 끝에는 꽃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는 현재 앙화석 부분만 남아 있다. 비는 부도에 딸린 탑비로 조선 태조 7년(1398)에 건립되었으며 조성 당시의 찬조자 명단과 정지국사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문은 권근이 지은 것으로, 태조 4년(1395) 천마산 적멸암에서 세상을 떠난 고려 말의 정지국사가 중국 연경에서 수학하였고, 입적 당시 많은 사리가 나와 태조가 이를 듣고 ‘정지국사’라 추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부도와 비는 승려가 세상을 떠나면 부도와 탑비를 세우던 신라 시대 이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성 방법에서 조선초기 부도 연구의 기준이 된다.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양평 용문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순천 송광사 경내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이다. 보조국사가 열반하자 왕으로부터 ‘불일 보조국사’란 시호와 ‘감로탑’이라는 탑호를 받았으며, 감로탑은 3년뒤인 1213년에 세워졌다. 원래 다른 곳에 있었으나 여러차례 옮겨졌다가 관음전 뒷편으로 옮겨졌다. 탑은 4각형의 대좌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놓았다. 몸돌은 구형을 하고 있으며 지붕돌은 팔각형을 하고 있는데 고려후기 조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각수법이나 조형미가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고려중기 불교개혁을 이끈 지눌의 승탑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는 승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송광사 뒷편 언덕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 고려중기 불교개혁 운동을 이끈 보조국사 지눌의 승탑이다. 조형미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불교역사에서 차지하는 지눌의 승탑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받침돌.

SANYO DIGITAL CAMERA둥근 구형의 몸돌.

SANYO DIGITAL CAMERA팔각형의 지붕돌은 고려후기 조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감로탑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송광사 수행공간.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1세인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부도탑이다. 보조국사는 1210년(희종 6) 열반하였으며 고려 희종이 ‘불일 보조국사’란 시호와 ‘감로탑’이란 탑호를 내렸고 3년 후인 1213년(강종 2년) 음력 4월 10일에 세워졌다. 독특한 형태와 고려 고승의 부도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출처>

  1. 안내문, 순천 송광사,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국보 102호), 공모양 몸돌이 있는 특이한 형태의 승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홍법국사탑(국보 102호)이다. 홍법국사탑비(보물 359호)과 함께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정토사 절터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지금은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고 있다. 네모난 바닥돌 위에 8각형의 받침돌을 올리고 그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올렸다. 받침돌은 8각형의 아래받침돌 위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괴임돌, 용무늬가 조각된 가운데 받침돌, 연꽃무늬가 새겨진 윗받침돌로 구성되어 있다. 몸돌은 기존의 승탑과는 달리 둥근 공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로.세로로 묶은 모습의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기존의 승탑처럼 목조건물 지붕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비천상이 조각되어 있다. 통일신라 이후 정형화된 8각형 목조건물 형태의 승탑 양식을 타르면서도 공모양의 몸돌을 두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탑비가 세워진 1017년 이전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법(弘法, ?~?)국사는 고려초에 활동한 승려로 당나라에 유학했으며 말년에 충주 정토사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탑비에 적힌 글자의 마모가 심해 알아보기 힘들어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는 편이다. 고려 목종으로부터 홍법이라는 시호와 실상(實相)이라는 탑호를 받았다. 그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보물 359호)도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그가 머물렀던 정토사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었으며, 절터에 있던 법경대사탑비(보물 17호)는 인근 마을에 옮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국보 102호). 고려초 활동했던 홍법국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8각형을 기본으로 한 기존 승탑의 형태를 계승하면서도  둥근 공모양의 몸돌을 두고있는 독창적인 형태의 승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받침돌은 장식이 없는 아래받침돌 위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괴임돌을 두고 그 위에 가운데 받침돌과 윗받침돌을 올렸다. 통일신라 승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부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받침돌에는 구름과 용을 입체감있게 새겨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몸돌과 지붕돌. 몸돌은 둥근 공모양을 끈으로 묶어놓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위에 기존 승탑과 비슷한 지붕돌을 얹어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돌 아래에는 비천상을 새겨 놓고 있다. 지붕돌 모서리에는 꽃모양을 조각해 놓았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뒷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홍법국사탑비(보물 359호)과 함께 최근에 보수작업이 완료되어 박물관 야외에 전시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흥법국사탑과 탑비가 있던 충주 정토사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어 현재는 찾아가 볼 수 없다.

OLYMPUS DIGITAL CAMERA절터에 있던 법경대사탑비(보물 17호)와 절터에서 출토된 건축부재들은 인근 마을에 옮겨져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에는 복제품이 법경대사탑비 등과 함께 세워져 있다.

충주 정토사 홍법국사탑, 충북 충주시 정토사터, 고려 1017년 이전, 국보 102호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홍법국사의 사리를 모셨던 탑으로 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와 쌍을 이룬다. 홍법국사는 당나라에서 수행하였고, 고려 성종 때 대선사를 거쳐 목종 때 국사의 칭호를 받았다. 신라의 탑 형식을 이어 팔각형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공을 십자로 묶은 듯한 몸돌을 둔 것은 고려 초의 새로운 시도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출처>

  1. 중앙박물관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4. 위키백과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여박물관] 석조유물

부여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석조유물들이다. 불교와 관련된 석탑, 승탑, 석등, 비석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무덤에 세워졌던 석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부여가 사비기 백제의 도읍이었지만 주로 고려와 조선시대에 조성되었던 석조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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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탑, 8~10세기, 부여 기탑리. 목조건축물을 모방해서만든 초기 승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받침돌이 연꽃무늬가 새겨진 석조대좌의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연꽃무늬 석등받침, 6~7세기, 부여 기탑리

OLYMPUS DIGITAL CAMERA 연꽃무늬 석등받침, 8~10세기, 부여 석목리

OLYMPUS DIGITAL CAMERA 맷돌, 11~13세기, 부여 금곡리 금강사터

OLYMPUS DIGITAL CAMERA맷돌, 11~13세기, 부여 금곡리 금강사터

OLYMPUS DIGITAL CAMERA문인석,16~18세기, 논산 성동면 우곤리

OLYMPUS DIGITAL CAMERA 동자상, 16~18세기, 출토지 미상

<출처>

  1. 문화재청
  2. 부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