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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사탑(보물 358호), 쌍탑 형식으로 만들어진 승탑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보물 358호)이다. 고려말 승려인 보제존자 나옹의 승탑이다. 원주 영전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옮겼던 것을 현재는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승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쌍탑 형식의 삼층석탑으로 만들어 졌다. 고려말에 통일신라 쌍탑 형식으로 세운 것도 특이하며, 제대로된 형태를 갖춘 삼층석탑 중에서는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기단과 탑신 등 구성요소의 비례나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뛰어난 편이며, 통일신라 후기 석탑과 비슷한 수준이다.  보제존자의 승탑은 여주 신륵사에는 석종형태로, 양주 회암사지에는 전통적인 승탑 형태로 만들어져 있지만, 영전사지에는 석탑 형식으로 만들어서 세워져 있다.

나옹선사(1320∼1376년)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나옹(懶翁)은 그의 호이며, 시호는 선각(禪閣)이며 공민왕으로부터 보제존자((普濟尊者)라는 호를 받았다. 중국 원나라 법원에서 인도의 승려 지공의 지도를 받았으며,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머물면서 불법을 전했다고 한다. 회암사 주지를 지냈으며, 고려말에서 조선초 불교를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승려로 전국의 많은 사찰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의 승탑은 양주 회암사를 비롯하여, 여주 신륵사, 원주 영전사에 세워졌으며, 여주 신륵사에는 그를 모신 조사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보물 358호). 고려말 활동한 승려 나옹의 승탑으로  쌍탑형식의 삼층석탑처럼 만들어졌다. 2기의 승탑이 다른 양식을 사용하고 있어 원래 같은 승탑이었는지 의문스럽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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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탑은 높이 3.92 m이며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렸다. 기단 위에 괴임돌을 두는 등 고려초기 삼층석탑 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탑 기단부.

OLYMPUS DIGITAL CAMERA동탑 탑신.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수평적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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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탑은 높이 4.12 m이며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렸다. 동탑과는 지붕돌의 양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서탑 기단부.

OLYMPUS DIGITAL CAMERA서탑 탑신부.

OLYMPUS DIGITAL CAMERA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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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존자 탑지석. “도인 각수가 왕사 보제존자의 사리 1매를 탑에 모셨고, 비구니 묘관도 보제존자 사리 1매를 동쪽 탑에 모셨다. 대공덕주 봉익대부 서윤현의 법명은 각희이며, 처는 단산군부인 장씨이니 법명은 묘연이다.”라늠 명문이 적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전사지 출토 사리구, 고려시대, 강원도 원주시 영전사지, 춘천박물관

SANYO DIGITAL CAMERA나옹선사가 주지로 있던 양주 회암사지에 있는 승탑. 전통전기 승탑 양식을 계승한 고려말 양식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보물 228호). 고려말 승려로 신륵사에서 입적한 나옹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이다. 목조건물 형태를 하고 있는 기존 승탑과는 달리 그릇을 엎어 놓은 복발형 승탑과 비슷하다. 종처럼 생겼다고 하여 석종이라 부른다.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사탑, 보물 358호, 강원 원주 영전사 터
보제존자 나옹(1320~1376)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고려 우왕 14년(1388)에 세운 승탑이다. 보통 승탑이 팔각집 모양이거나 종모양을 띠는 것에 비해 이 승탑은 특이하게 불탑과 같이 네모난 형태의 두 탑으로 이루어져 매우 이채롭다. 나옹의 사리를 모신 승탑은 이 탑 외에도 그가 입적한 여주 신륵사와 그가 주지로 있던 양주 회암사 터에도 남아 있다. (안내문, 국립중앙박물관, 2012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중앙박물관
5. 위키백과

부여 무량사 김시습 승탑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에 있는 김시습의 승탑이다. 무량사 입구 서쪽편 언덕에 여러기 승탑들과 함께 위치하고 있다. 승탑은 기단, 탑신,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승탑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기단에 용을 새겨 놓고 있다. 조선시대 승탑으로서는 조각수법이나 표현이 뛰어난 편이다. 승탑 앞에는 그를 위해 막걸리 1통과 과일이 놓여져 있는데,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부여 만수산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무량사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했던 생육신 중의 한사람이자 당대의 천재로 널리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보낸 사찰이다. 이 사찰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흔적으로 그가 직접 그렸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사실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영정이 보관되어 있고, 사찰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에는 그의 승탑이 모셔져 있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반대하여 젊은 나이인 21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다 간 그의 삶이 아쉬워해서 그런지 그가 만년을 보낸 무량사도 그의 명성과 함께 크게 번창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무량사 입구 동쪽편 언덕에 있는 김시습 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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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탑은 대좌모양의 기단 위에 탑신을 올려 놓았다. 조선시대 승탑 중에서는 조각수법이나 조형미 등이 양호한 편에 속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아래,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가운데받침돌에는 구름속을 노니는 용을 조각해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 몸돌과 지붕돌.

OLYMPUS DIGITAL CAMERA머리장식.

OLYMPUS DIGITAL CAMERA무량사 전각에 모셔진 김시습 초상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무량사.

매월당 김시습의 사리를 모신 팔각원당형 부도이다. 부도는 스님들의 사리를 봉안한 시설로서 주로 통일신라 이후 8각의 목조건물 양식을 본뜬 팔각원당 모양과 석종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김시습부도는 아래의 3단을 이루는 기단 위에 탑신과 머리장식을 올렸는데 모든 부재의 단면이 8각을 이루고 있고 전체 높이는 284 cm이다. 기단은 위.아래받침돌에 연꽃을 장식하고, 가운데 받침돌에는 구름속에서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을 새겼다. 탑신의 몸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연꽃 덮개가 조각된 지붕돌에는 꽃장식이 달린 여덟 귀퉁이가 높게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복발과 보주 등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김시습 부도는 신라와 고려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작품으로 1495년 건립되었으며, 현재 그의 자화상이 무량사에 보존되어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 관음전 뒷편에 있는 보조국사 지눌의 감로탑이다. 고려후기에 만들어진 승탑으로 2층 대좌위에 둥근공 모양의 몸돌과 지붕돌이 올려져 있다. 고려후기 승탑사리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탑의 재료나 조각수법, 전체적인 비례에 보여주는 조형미 등이 통일신라나 고려 기의 승탑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승보사찰로 여겨지는 송광사와 조계종을 대표하는 보조국사 지눌의 역사적인 의미나 불교계에서의 위상 등을 고려해 볼 때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년)은 고려중기 승려로 고려말 무신정권기에 불교 개혁운동인 ‘정혜결사’를 일으켰다. 오늘날 한국 불교의 중심이 되는 조계종의 정신적 지주이며, 이곳에서 머물며 불교 결사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송광사가 승보사찰로서 한국 불교의 중심이 되게 하였다.

SANYO DIGITAL CAMERA순천 송광사 뒷편에 있는 보조국사 감로탑. 고려중기 불교 결사 운동을 이끌었던 보조국사 지눌의 승탑이다. 통일신라나 고려초 승탑에 비해 조각수법이나 표현 등이 떨어지는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기단부는 2단의 정사각형 대좌를 쌓은 형태이다. 문양 등 특별한 장식을 하고 있지 않다.

SANYO DIGITAL CAMERA고려 중기 이후 승탑에서 볼 수 있는 둥근 공 형태의 몸돌.

SANYO DIGITAL CAMERA지붕돌은 두껍게 만들어 세련됨이나 섬세함 등이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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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탑 옆에 세워진 비석. 보조국사탑비는 이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순천 송광사는 한국 선종을 대표하는 수행도량으로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사찰로 손꼽히며 그 중 수행을 중시하는 승보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려중기 불교개혁 운동의 하나로 수행결사인 정혜결사의 중심지가 되었다. 송광사에는 다른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석탑이나 석불같은 조형미가 뛰어난 통일신라시대 불교 예술품들은 많지 않은편이다. 송광사의 문화재로는 국사전(국보 56호)을 비롯하여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황엄경변상도(국보 314호), 하사당(보물 263호), 약사전(보물 302호) 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우리나라 3대 사찰로 손꼽히는 순천 송광사(사적 506호). 선종 계열 사찰로서 건물 배치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양양 선림원지 승탑(보물 447호)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선림원지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승탑(보물 447호)이다. 이 승탑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던 것을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복원한 것으로 지금은 기단부만 남아 있다. 원래는 절터 뒷편으로 50m 쯤 올라간 중턱이라고 한다. 네모난 바닥돌과 8각의 아래받침돌은 같은 돌로 2매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받침돌 각 면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안상안에는 사자 4쌍이 새겨져 있다. 아래받침돌 위에는 연꽃이 새겨진 괴임돌이 놓여 있으며, 그 위에 북 모양의 중간받침돌과 윗받침돌이 한돌로 만들어져 놓여 있다. 가운데 받침돌에는 용이 입체적으로 새겨져 있는데, 승탑에 조각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탑신은 남아 있지 않으나 입체적인 조각수법이나 독창적인 양식 등이 돋보인다.

선림원(禪林院)은 강원도 동해안 양양과 속초지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인 56번국도가 지나가는 구룡령 아래 계곡에 위치한 큰 사찰이었다. 통일신라 때(9세기) 홍각선사가 창건한 이 사찰은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계열 사찰이었다. 구룡령을 넘기전에 잠시 머물수 있었던 곳으로 많은 승려들과 여행객들을 위한 쌀을 씻은 물이 끝없이 흘러내린다고 해서 미천골로 불렸다. 1948년에 명문(銘文)이 있는 신라 범종이 발견되었으며, 절터에는 석탑(보물 444호)을 비롯하여 석등(보물 445호)·홍각선사탑비(보물 446호)·승탑(보물 447호) 등이 전해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양 선림원지 승탑(보물 447호). 탑신은 없고 기단부만 남아 있지만 섬세하면서 입체감이 넘치는 조각수법과 독창적인 양식 등이 돋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바닥돌과 아래받침돌 아랫단은 같은돌로 만들어졌다. 아래받침돌 아랫단 옆면에는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교대로 사자 1쌍씩을 새겨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북모양의 가운데 받침돌과 윗받침돌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가운데받침돌에는 구름속을 날고 있는 용을 생동감 넘치게 조각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그 위에 탑신을 올려 놓는 괴임돌을 조각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양 선림원지 뒷편에 세워져 있는 승탑.

OLYMPUS DIGITAL CAMERA양양 미천골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선림원지 절터.

양양 선림원지 승탑, 보물 447호,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부도는 원래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의 기단부를 놓고 그 위에 탑신석, 옥개석, 상륜부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부도는 일제침략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1965년에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복원한 것으로 지금은 기단부만 남아 있다. 원 위치는 뒷산 중턱의 50 m쯤 올라간 곳이다. 네모난 지대와 8각의 하대까지가 같은 돌로 2매로 구성되었는데 지대 부분은 땅위 드러난 부분만 다듬었다. 하대 8각의 각 면에는 각기 안상이 1구씩 있으며 안상안에 교대로 사자 1쌍씩 4쌍이 새겨졌다. 하대 위에는 둥근 모양의 연화대석이 놓여 있고, 그 위에 간주 모양의 중대석과 원형평면의 상대석이 한돌로 만들어져 놓여 있다. 중대석 표면에 운룡문이 있는데 이는 부도 중대석에 나타나는 운룡문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 상대부분에는 앙련이 장식되고, 윗면에는 탑신을 받치기 위한 괴임대가 새겨져 있다. 이 부도의 건립연대는 신라 정강왕 원년(886)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공주 갑사 승탑(보물 257호), 생동감있는 조각상이 표현된 승탑

충남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 갑사에 승탑(보물257호)이다. 3단으로 된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승탑이다. 받침돌은 아래층이 넓고 위층을 좁게 만들었다. 아래받침돌에는 사자.구름.용을 입체감 있게 조각해 놓고 있다. 가운데 받침돌에는 꽃장식과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상을,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을 새겼다. 탑신 몸돌에는 문짝과 사천왕상을 새겨놓고 있다. 지붕돌은 기와골 등을 실제 목조건축물처럼 섬세하게 조각했다.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입체감 있게 조각상을 새겨 생동감이 넘치나, 지붕돌을 비롯하여 윗부분을 작게 만들어 안정감이 약간 부족해 보인다. 승탑에 표현된 세부적인 조각들을 고려시대 승탑 중에서는 상당히 뛰어난 편에 속한다. 갑사 뒷편 언덕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 승탑의 주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갑사(甲寺)는 공주 계룡산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의상대사와 관련된 화엄십찰에 속하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현재의 갑사는 원래 위치에서 약간 옮겨진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 때 이곳 출신 영규대사가 의병장으로 큰 역할을 하면서 국가로부터 인정받아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내에는 삼신불괘불탱(국보289호), 철당간(보물256호), 승탑(보물257호), 동종(보물478호) 등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공주 갑사 승탑(보물 257호). 원래 갑사 뒷편 중사자암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기단부의 조각상들이 힘이 넘치며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탑신 지붕돌을 작게 만들어 전체적으로는 안정감이 떨어지는 ㅍㄴ이다.

SANYO DIGITAL CAMERA기단부. 아래받침돌에는 사자상과 구름속을 나는 용을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가운데 받침돌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상을 표현했다.

SANYO DIGITAL CAMERA탑신부. 지붕돌에는 기왓골을 표현하고 세밀한 면이 있으나 기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만들었다. 몸돌에는 문짝과 사천왕상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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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본 갑사 승탑.

SANYO DIGITAL CAMERA계룡산 갑사는 통일신라 화엄십찰에 속하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승탑은 뒷편 언덕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공주 갑사 승탑, 보물 257호
승탑이란 승려들의 유골을 안장한 묘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초에 처음 나타난다. 팔각형의 지붕을 가진 팔각원당형으로 되어 있는 이 승탑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양식일 뿐만 아니라 조각 솜씨도 뛰어나 신라 말기와 고려초기의 승탑 양식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원래 갑사 뒷산의 중사자암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5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