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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박물관]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광주.전남에서는 10만년전부터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시대 유물로는 연천지역과 마찬가지로 아슐리안 석기를 대표하는 주먹도끼를 비롯하여 다양한 용도의 뗀 석기들이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주로 섬진강과 영산강 유역에 분포하고 있다. 신석기시대에도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주로 섬이나 해안지역의 조개더미 유적에서 신석기시대 유물들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해안가 유적지에서는 일본 규슈지방과 교류했던 흔적으로 추정된 흑요석들이 발굴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먹도끼, 영광 원흥리, 구석기시대. 한반도 구석기시대를 대표한 유물인 아슐리안 석기로 연천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전국적으로 고루 발견되고 있다.

광주.전남의 선사.고대문화
문자기록이 없는 선사시대는 당시 사람들이 남긴 물질 자료를 근거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한다. 광주.전남지역에서는 10만 년 전부터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섬진강과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뗀석기를 사용하였으며, 사냥과 채집, 이동생활을 하였다. 1만 년 전 무렵에는 토기제작, 간석기사용, 동물사육이 특징인 신석기시대가 시작된다. 이 시기 일부 지역에서는 농사도 지었다. 그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막을 짓고 정착생활을 하였다. 바닷가나 인근 섬에서는 조개무지 유적이 발견된다. 최근 내륙지역에서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천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벼농사가 발달하고, 대규모 마을이 생겼다. 마을 내에 갈등을 조정하는 지도자가 등장하였다. 고인돌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무덤이다. 기원전후 무렵 청동기사회가 해체되면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각지에 여러 나라들이 등장한다. 광주.전남을 포함하는 중서부지역에는 소국연맹체인 마한이 존재하였다. 마한은 이후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발전하는 백제와 경쟁 혹은 대립하면서 정치적.문화적으로 독립적인 성격을 오랜 기간 유지하였다. 이러한 특성은 3세기 후반부터 영산강유역에 축조되는 거대한 분구가 있는 대형옹관고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6세기 전반까지는 전남의 일부 지역이 가야문화권에 속하기도 하였으며, 6세기 후반부터는 백제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이 지역이 백제문화권에 편입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주먹도끼, 나주 대기동.영광 원흥리, 구석기시대, 여러면 석기, 나주 금곡리.영광 원흥리, 찍개, 나주 평산리.나주 등수리.보성 죽산리.나주 장동리.곡성 오지리

OLYMPUS DIGITAL CAMERA모룻돌, 화순 사수리,  외날찍개, 나주 금곡리 용호, 격지, 곡성 주산리,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몸돌, 나주 동강면.나주 금곡리 용호

OLYMPUS DIGITAL CAMERA격지, 곡성 오지리.고흥한동리.나주 금곡리 용호.무안 성내리.영광 군동

OLYMPUS DIGITAL CAMERA소형석기, 순천 월암리 월평, 긁개, 곡성 오지리.영광 마전, 구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슴베찌르개, 순천 월암리 월평.순천 덕산리 죽산,

OLYMPUS DIGITAL CAMERA돌날, 곡성 오지리, 좀돌날몸돌, 순천 덕산리 죽산.화순 사수리, 좀돌날, 순천 월암리 월평

OLYMPUS DIGITAL CAMERA말굽형석기, 영광 원흥리.영광 마전.순천 덕산리 죽산, 배모양 석기, 순천 우산리, 칼모양석기, 나주 화성리, 톱니날 석기, 영광 원흥리.순천 월암리 월평, 구석기 시대

구석기시대
구석기시대는 돌을 깨어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고, 식량을 채집하거나 사냥하며 생활하였던 시대이다. 처음에는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는 주먹도끼, 찍개, 여러면석기 등 대형 석기가 사용되었지만 점차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격지와 돌날을 가공하여 긁개, 밀개, 홈날, 톱니날, 슴베찌르개 등 기능이 분화된 작고, 정교한 도구가 만들어졌다. 광주.전남지역에는 10만 년 전의 순천 죽내리 유적을 비롯하여 광주 산월동과 치평동, 순천 우산리와 월평, 곡성 주산리, 함평 장년리, 영광 원흥리, 나주 화성리와 장동리, 화순 도산, 장흥 신북 유적 등이 있다. 주로 섬진강과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돌도끼, 신석기시대, 여수 안도 및 경도

간석기의 제작
신석기시대에는 석기의 날을 정교하게 다듬어 사용하는 후기 구석기의 뗀석기 전통이 계속 이어지며, 새로이 석기를 갈아 만드는 간석기 제작기술이 발전한다. 처음에는 날 부분만을 갈아서 사용하였지만 점차 석기면 전체를 갈아서 제작하였다. 신석기시대의 석기는 돌도끼, 돌칼, 돌창, 돌화살촉 등 기능에 따라 크기와 형태 등이 정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돌의 성질에 따라 흑요석처럼 깨진 날이 날카로운 것은 여전히 떼어내는 방법이 사용되며, 혈암처럼 무른 돌은 화살촉이나 이음 낚시축 제작에 사용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1) 숫돌, 여수 안도.경도, 2) 뼈화살촉, 여수 송도, 3)간돌창, 여수 안도 외, 4) 밀개, 여수 송도, 5) 돌칼, 여수 완도 외

OLYMPUS DIGITAL CAMERA1) 그물추, 신안가거도, 여수 도서지역,

OLYMPUS DIGITAL CAMERA1) 그물추, 신안가거도, 여수 도서지역, 2) 이음식 낚시바늘, 신안 가거도, 여수 도서지역, 3) 뼈낚시바늘, 여수 안도, 4) 찌르개, 여수 안도, 5) 뼈연모, 여수 도서지역 일대, 6),7) 뼈바늘, 여수 안도, 8) 뼈화살촉, 여수 안도

OLYMPUS DIGITAL CAMERA눌러찍은 토기, 여수 안도패총, 무문양토기, 여수 경도패총, 무문양토기, 여수 경도패총

OLYMPUS DIGITAL CAMERA신석기시대 토기, 여수 경도

신석기시대 토기
토기는 신석기시대에 처음 등장하여 음식물의 저장, 운반, 요리 등 인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크게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 등으로 구분된다. 덧무늬토기는 남해안과 통해안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는데, 토기의 표면을 도드라지게 하거나 기다란 점토띠를 붙여 장식한 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며, 그릇 겉면에 무늬새기개로 여러 가지 기하학적 무늬를 표현하였다. 전남지역의 신석기시대 토기는 여수 안도, 송도, 경도와 신안 가거도, 완도 여서도 등 남해안 일대의 패총유적에서 주로 확인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호남지역 신석기시대 유적분포. 영산강과 섬진강을 비롯한 강주변과 해안가에 유적지들이 분포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 뼈장신구, 여수 안도.완도 여서도, 2) 뼈 연모, 여수 도서지역 일대, 3), 토제구슬, 여수 송도, 4) 귀걸이, 여수 안도, 5) 조개꾸미개, 여수 안도, 6) 토우, 완도 여서도

귀걸이
귀에 구멍을 뚫어 거는 귀걸이는 한반도를 비롯한 일본, 중국 동북지역과 장강 이남지역, 러시아 연해주 등 동아시아 연안지역에서 널리 유행하던 장신구이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귀걸이는 7,000년 전부터 4,500년 전 무렵까지 사용되었다. 한반도에서는 강원도 고성 문암리 유적, 경남 사천 선진리유적, 전남 여수 안도패총, 울산 처용리유적, 부산 동삼동유적 등에서 발견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신석기시대의 장신구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구할 수 있는 동물이빨이나 뼈, 조개, 옥, 흙 등을 소재로 귀걸이, 팔찌, 발찌, 뒤꽂이, 인물 또는 동물의 모습을 본 뜬 토제품 등을 만들었다. 이러한 장신구는 신체를 꾸미는 기능도 있지만, 종교적.의례적.주술적.벽사적 기능을 지니기도 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OLYMPUS DIGITAL CAMERA조개팔찌, 여수 안도, 신석기시대

OLYMPUS DIGITAL CAMERA1) 돌칼, 여수 안도, 2) 흑요석, 여수 송도.여수 안도, 3) 돌미늘, 여수 안도. 여수 도서지역 일대

흑요석
활발한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광물로, 깨뜨려 유리처럼 날카로운 날을 만들 수 있다. 고대 이집트와 현대에는 수술용 메스로도 사용되었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흑요석은 백두산계와 일본 규수계로 나뉜다. 부산, 통영, 여수 등 남해안 일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은 일본 규슈의 고시타케에서 들여온 것으로, 한반도의 조개팔찌와 물물교환 한 것으로 밝혀졌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는 1만 년 전 빙하기 말에서 청동기시대 이전 시기로서 기후 변화와 함께 동.식물상이 변화하고,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인간의 삶에 많은 변화가 찾아 왔다. 멧돼지, 사슴 등 작고 빠른 동물이 나타나면서 활과 화살을 사용하는 사냥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바닷가 주변에서 굴, 조개 등의 먹거리를 채집하거나 배를 타고 나아가 고기를 잡는 어로 활동이 활발해졌다. 토한 토기가처음 사용되고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 일부 지역에서는 조, 기장과 같은 곡물을 재배하는 농사가 이루어졌다. 천이나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을 지어 있었으며, 옥이나 동물 뼈, 조개껍질등으로 몸을 꾸몄다. 광주.전남 지역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유적은 섬이나 해안가의 조개더미 유적이 대부분이다. 여수 동도패총과 안도패총, 신안 대흑산도 패총과 가거도 패총, 완도 여서도 패총 등이 대표적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선사시대 생활모습을 표현한 그림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위치한 반구대 암각화(국보)이다. 태화강변의 바위절벽에 새긴 그림으로 사람을 비롯해 사냥대상이던 고래, 거북이, 사슴, 호랑이, 멧돼지 등이 새겨져 있다. 사람은 짐승을 사냥하거나 배를 탄 모습, 그리고 춤을 추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성기를 강조한 경우가 많다. 짐승은 그물이나 우리에 갇히거나, 새끼를 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사냥 및 고기잡이의 성공을 빌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며,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베리아 일대의 선사시대 바위그림들과 비교되며 신석기시대 말기에서 청동기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구대(盤龜臺)는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태화강 태화강 상류지역을 말한다. 이 곳 반구대의 계곡은 암각화가 있는 곳을 비롯하여 바위절벽이 여러곳에 있어 예로부터 경치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경부고속도로 언양IC에서 나와 경주방향으로 20분쯤 달려가다 고속도로 방향으로 좁은길로 들어서서 한 10분쯤 자동차로 달려가면 반구대가 있는 계곡을 찾아 갈 수 있다. 1965년 건설된 사연댐때문에 겨울을 제외하고는 암각화는 대부분 물에 잠겨 있다. 암각화를 볼 수 없을 때가 많지만, 반구대 주변의 경치 또한 뛰어나다.

SANYO DIGITAL CAMERA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바위절벽. 댐건설로 대부분 물에 잠겨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암각화가 잠겨 있는 부분.

국보285호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13-2017_11_14겨울 동안 물이 빠졌을 때 드러난 반구대 암각화.

SANYO DIGITAL CAMERA반구대 암각화 사진. 신석기인의 생활모습과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신석기시대 후기 또는 청동기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로를 중심으로 생계를 이어갔던 한반도 신석기인의 바램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곳으로 들어오는 길에 볼 수 있는 바위절벽. 이곳을 반구대라고 부르며, 주변에서 바위절벽이 있는 지형이 많다. 맞은 편에 반구서원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반구대 맞은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에 반구서원이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반구서원 앞을 지나는 길.

SANYO DIGITAL CAMERA2개의 하천이 만나는 지점. 암각화가 있는 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지만 물에 잠기지는 않았다.

SANYO DIGITAL CAMERA암각화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보이는 반구서원.

SANYO DIGITAL CAMERA암각화가 있는 곳에 가까워지면 수목들이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SANYO DIGITAL CAMERA반구대 암각화 앞 안내표지판. 이곳에서 암각화가 있는 바위 절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바위절벽. 태화강 상류에 위치한 반구대는 기암괴석이 만들어 내는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암각화가 있는 절벽 부근.

울산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국보 285호,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이것은 암벽 경사면(10 m × 3 m)에 290여 점의 물상들이 새겨져 있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이다. 강바닥보다 높은 암반 위에 새겨져 있어서 원래는 물에 잠기지 않았으나 주변에 사연댐이 건설되면서부터 댐속에 잠겨 가뭄 때가 아니면 볼 수 없게 되었다. 암각화는 여러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물상, 동물상, 기타 배 같은 물상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인물상은 탈을 쓴 가면, 물짐승을 잡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기잡이 하는 어부 등이며, 동물상은 사슴, 호랑이, 멧돼지, 고래 등이고, 물상은 이 짐승들을 잡는 배, 그물, 덫 등이다. 이 조각(그림)들은 바위면을 쪼아가는 기법으로 조각한 것인데 선과 점으로 단순 소박하게 새겼지만,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과 역동감을 느낄 수 있어서 자연주의 양식에서 추상주의 양식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신석기 후기 내지 청동기시대으 사냥미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조각은 울산지역에서 고기잡이와 사냥에 종사하던 수렵어로인들이 사냥의 풍성과 다산을 기원해서 만든 일종의 종교적인 선사미술의 대표작품이다. (안내문, 울산시청, 2008년)

<출처>

  1. 울산시청
  2. 문화재청
  3. 중앙박물관
  4. 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사적),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주거유적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에 선사유적지(사적)이다. 한반도에서 조사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주거유적지 중 한 곳으로 기원전 6,0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남대천이 동해와 만나는 곳에 형성된 작은 석호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낙산사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4 km 정도 떨어졌다. 유적지에는 당시의 집터와 복원한 움집, 유물전시관 등이 있는데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주변 지형과 자연환경 등을 살펴보면서 신석기인들이 살았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1977년 호수를 매꾸어서 농지로 전용하는 공사중에 다랑의 석기와 토기 조각들이 출토되면서 유적지의 존재가 알려졌다. 발굴.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집터 11기, 불피웠던 자리 5기, 돌무지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어로생활을 했던 낚시도구, 돌칼 등과 가장 오래된 토기 중 하나인 덧무늬토기 등이 있다. 함경도와 연해주 등에서 살았던 신석기인들과 그 기원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성 문암리, 속초 조양동, 강릉 초당동과 함께 동해안을 대표하는 선사유적지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양양 오산리양양 오산리 유적지(사적).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주거유적지 중 한곳이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남대천이 동해바다와 만나 석호 주변 늪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대천 연어를 쫓아서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에 재현에 놓은 집터, 불피웠던 자리.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에 재현해 놓은 움집. 14기의 집터가 확인되었는데 원형에 가까운 평면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움집내부. 가운데 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움집.

OLYMPUS DIGITAL CAMERA야외에서 불을 피웠던 자리를 재현해 놓고 있다.

신석기인의 움집(수혈주거)
신석기시대 움집의 평면형태는 둥글거나 혹은 네모서를 줄인 네모꼴이 대부분이다. 지름 또한 한 변의 길이가 5~6 m 정도로 면적이 20~30 m² 정도였으며 대략 4~5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움집의 바닥은 진흙을 깔아 다졌으며, 그 위에 마른 풀이나 짐승 가죽 등을 깔고 생활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집안 가운데의 화덕자리는 음식물의 조리뿐만 아니라 실내를 따뜻하게 하거나 밝게 하는데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 유적인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에서는 발굴조사를 통해 14기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대체로 직경 6 m 가량의 원형에 가까운 평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모래로 된 바닥에는 5 cm 정도의 두께로 점토를  깐 다음 불을 놓아 단단하게 처리하였다. 내부 중앙에는 좁고 긴 돌을 여러 개 돌려 만든 네모난 화덕자리가 1~2개 설치되어 있다. 이 밖에도 5기의 야외노지가 확인되었는데, 대부분의 돌들은 오랫동안 불을 맞아서 깨어지거나 갈라진 채로 노출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일종의 공동취사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지의 형태는 대부분 1.5~3.4 m 의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20~30 cm가량 바닥을 파고 그 위에 여러겹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 움집터는 오산리 유적을 비롯하여 서울 암사동, 충북 쌍청리, 부산 동삼동, 황해도 봉산 지탑리 등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들 움집터는 한 유적에 몇개씩 모여 있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 중에는 서로 겹쳐 있는 예도 있어 한 마을에서 여러 시기에 걸쳐 새로운 집을 지으면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양양군청,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유적지 일대는 석호가 늪지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경포호나 영랑호 등과는 달리 퇴적이 많이 진행되어 늪지처럼 보인다. 바다에서 회귀한 연어를 비롯하여 다양한 어종의 물고기와 철새들이 많았으며, 신석기인들이 살기에 풍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이 곳은 쌍호라고 불리우며 농지로 변한 부분을 포함해서 상당히 넓은 석호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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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양양 오산리,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토기인 덧무늬 토기이다. 어로생활을 하던 동해안, 남해안 신석기인들이 사용하던 토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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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양양 오산리.

토기의 출현
토기는 인간이 흙과 불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최초의 발명품이다. 토기 발명 이전에는 나무와 갈대, 가죽 등으로 그릇을 만들어 식량을 담거나 운반하는 데 이용하였다. 새로이 토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음식물의 가공법이 발달하였고, 음식물의 종류도 많아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토기는 기원전 6,000년 무렵의 덧무늬 토기로 알려져 왔다. 덧무늬토기는 겉면에 진흙 띠를 붙여 무늬를 만든 것으로, 주로 동해안과 남해안의 여러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제주 고산리 유적에서 기원전 8,000년 무렵의 새로운 토기가 발굴됨에 따라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시작 연대가 앞당겨지게 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 누른무늬토기는 기원전 4,000~3,000년 무렵에 사용한 토기로 아가리 주변에만 무늬새기개로 누르거나 벌려서 무늬를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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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찍힌 토기, 양양 오산리

신석기시대의 토기를 빚는 방법으로는 손빚기법과 테쌓기법, 서리기법 등이 있다. 토기를 빚을 때는 받침대로 고래 척추뼈나 넓적한 돌, 원반형 토제품 등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또 토기 받침대와 토기 바닥이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받침대 위에 넓적한 나뭇잎을 깔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토기 바닥면에 나뭇잎 자국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5년)

OLYMPUS DIGITAL CAMERA가락바퀴, 3. 양양 오산리, 4. 강릉 하시동, 신석기인들의 어로생활을 보여주는 유물로 그물을 꿰었던 가락바퀴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동물토우, 양양 오산리

OLYMPUS DIGITAL CAMERA인물토우, 양양 오산리

OLYMPUS DIGITAL CAMERA유적도 동쪽에 해안 모래언덕에 위치한 솔비치콘도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 사적394호,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이 유적은 기원전 6,000년 이전부터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가 남아 있는 곳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목탄은 측정연대가 지금으로부터 8,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므로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 초기 단계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77년 처음 발견된 후 1987년까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6차례의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집터의 모양은 신석기 시대의 다른 유적이 움집인 것과는 달리 바닥이 둥근 형태의 지상가옥으로 밝혀졌다. 출토 유물 중, 토기는 아가리 부분에만 덧 띠를 붙이거나 눌러찍기로 무늬를 낸 납작바닥의 토기가 대표적이며, 석기는 이음낚시도구, 돌칼 등 해양어로 생활에 쓰인 도구가 많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양양군청, 2011년)

<참고문헌>

  1. 양양군청
  2. 중앙박물관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4. 문화재청

고성 문암리유적(사적),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유적지

강원도 고성군 죽암면 문암리에 있는 선사유적지(사적)이다. 발굴.조사결과 신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 유물들이 포함된 문화층과 주거지, 야외 노지, 경작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 전기 순수무문양토기, 융기문토기, 침선문토기, 결합식 낚시어구, 옥 귀걸이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경작지인 밭은 돌괭이, 뒤지개 같은 석기들과 탄화곡물 등으로 추정해왔던 신석기시대 농경생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확인된 신석기시대 농경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 아무르강과 동북3성,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서 형성된 동북아시아 신석기 문화를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적은 거의 없지만 사적으로 지정된 중요한 유적지로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자연환경 등을 살펴보는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유적지는 동해안에서 내륙쪽으로 400 m 떨어진 구릉 아래에 형성되어 있다. 유적이 있는 고성 죽왕면 일대는 동해안을 대표하는 석호인 영랑호와 송지호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농지가 넓은 지역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어로와 농경생활을 같이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관동팔경 중 한곳인 청간정이 인근에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성 문암리유적(사적). 양양 오산리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BC 5,000 ~ 3,000년경) 신석기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3차 발굴.조사(2010~2013년) 당시의 모습이다. 3차 발굴.조사에서는 신석기 시대 주거지 5기, 야외노지 13기 등의 유구와 함께 경작유구인 ‘밭’이 확인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 안내문.

OLYMPUS DIGITAL CAMERA발굴.조사 당시 모습. 여러곳에 흙을 쌓아 놓고 발굴작업 중임을 표시하는 장애물을 설치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주거지 등 유구가 확인되는 곳으로 보이는 발굴 현장.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텃밭에도 발굴.조사를 위해 울타리를 세워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주변 농경지 여러곳에 발굴.조사를 위해 울타리를 세워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곳에서 출토된 돌칼. 농경생활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다른 지역에서 출토되는 반달모양 돌칼과는 약간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결합식작살, 1.강원 고성 문암리, 2.복제품,  어로생활을 주로 했던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작살이다. 자루에 노끈을 연결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신석기시대, 강원 고성 문암리,

덧무늬토기는 기원전 6,000~4,000년 무렵에 사용된 것으로 겉면에 진흙 띠를 엇붙여 무늬효과를 낸 것이다. 남해안의 여러 조개더미에서 빗살무늬토기층 아래에서 출토되고 있어 빗살무늬토기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덧무늬 토기는 강원도 고성, 양양 등 동해안과 전남 여수 등 남해안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봐서는 해안가에서 어로생활을 하던 신석기인들이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신석기시대, 고성 문암리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신석기시대, 고성 문암리

OLYMPUS DIGITAL CAMERA바리, 신석기시대, 고성 문암리

OLYMPUS DIGITAL CAMERA멀리서 보이는 문암리유적.

OLYMPUS DIGITAL CAMERA문암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남쪽 백도항으로 가는 길. 유적지에서 300 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당시 사람들이 어로생활을 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백도항.

<참고문헌>

  1. 국립문화재연구소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3. 문화재청

[중앙박물관 특별전, 신석기인] 토기와 신석기인 예술 세계

1. 구석기에서 신석기시대로2. 곡물재배3. 사냥과 고기잡이4. 토기와 신석기인 예술세계

신석기인들은 기후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으로 생활이 안정되면서 팔찌나 목걸이, 귀걸이를 만들어 자신의 몸을 꾸몄으며, 사람의 얼굴, 여성, 동물, 배 모양을 띤 예술품을 만들기도 했다. 꾸미개 등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장식품의 용도도 있지만 집단의 신앙,의례와 관련되거나 소속, 신분 등을 나타내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사람이나 동물형상을 하고 있는 토우라 불리는 작은 조형물들은 풍요나 다산과 같은 인간의 바램을 표현한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다.

에필로그, 예술의 세계
흙이나 돌, 동물 뼈 등을 이용하여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든 조형물들이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종종 발견된다. 이들은 모두 크기가 10cm 이내의 소형으로 손 안에 완전히 들어갈 정도로 작으며,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도식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형물들 가운데 울산 신암리 유적에서 발견된 여인상은 산모의 안전한 출산 혹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물로 여겨진다. 이러한 여인상은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구석기시대 후기에 이미 제작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아시아에서는 1만년 전 무렵 농경의 시작과 함께 모든 생명체의 근원인 대지를 숭배하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3,500~2,500년에 해당하는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에는 발견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초창기에서 조기에 만들어진 단순한 형태의 인물상이 다양한 형태로 후기까지 이어진다. <출처: 중앙박물관>

흙이나 돌, 동물뼈 등을 재료로 하여 사람이나 동물이 형상을 만든 신석기시대의 토우는 단순한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간절한 바람을 담은 조형물이다. 한반도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의 토우는 모두 크기가 10cm 이내인 소형으로 손에 완전히 잡힐만한 크기이다. 사실적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 도식화되고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중 여인상은 풍요와 다산 혹은 산모의 안전한 출산을 기원하는 상징물로 이해되고 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동물토우, 1. 부산 동삼동, 2. 부산 동삼동, 3. 통영 욕지도,

OLYMPUS DIGITAL CAMERA동물토우, 4. 울산 세죽, 5. 양양 오산리

OLYMPUS DIGITAL CAMERA인면토우, 양양 오산리

OLYMPUS DIGITAL CAMERA여인상 1. 울산 신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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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상, 2.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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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상 3. 일본,

토기는 1만년 전 인간이 진흙을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화학적 변화를 깨닫고 만든 최초의 발명품이다. 토기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조리방법이 가능해져 먹을 수 있는 재료가 많아 지고 보관, 운반도 이전보다 손쉬워졌다. 이처럼 식생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사람들은 한 곳에 정착하면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토기는 변형이 쉬운 흙으로 형태를 만들기때문에 만든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이나 시기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중국 화중지방 이남이나 중동에서는 무늬를 그린 채색토기가 주를 이루는 반면 중국 동북지역, 한반도, 일본열도 등에서는 무늬를 새긴 토기가 많다. 이런 점에서 토기는 신석기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가 잘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의 신석기 토기
토기는 바탕흙을 물에 개어 빚어서 말린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에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이 등장하면서 식량 저장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농경을 전제로 한 정착생활이 시작되기 전의 유적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토기는 석기와 달리 변형이 쉬운 점토를 붙여 형태를 만들기 때문에 제작하는 지역이나 집단, 시기의 특징이 반영되기 쉽다.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 화중 이남 등지의 신석기시대 토기는 동식물 혹은 기하학적 무늬를 그린 채색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반면, 한반도,중국 동북지역, 시베리아, 북유럽 등지의 토기는 겉면에 무늬를 새긴 것이 많다. 점토띠를 덧붙여 장식 효과를 나타내는 덧무늬토기는 한반도, 시베리아, 일본열도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특히 일본의 조몬토기는 새끼줄을 꼬아 다양한 방식으로 눌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세계의 신석기시대 토기. 점토를 빚어 만든 토기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 특징을 보여준다. 고고학에서는 시대와 지역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유물이다.

근동의 신석기시대 토기
근동에서 토기의 제작과 사용은 곡물 재배가 이루어지고도 한참 후에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의 음식조리방식과 관련있다.이 지역에서 주로 먹는 빵과 유제품은 별도의 취사용 토기가 필요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6천5백년 무렵이 되어서야 저장용기로서 토기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적색 혹은 흑색의 마연토기였으나, 점차 기하학무늬 혹은 사람이나 동물무늬 등을 장식한 채문토기로 바뀌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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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리. 이란, 2. 항아리, 메소포타미아, 3. 바리, 메소포타미아

중국의 신석기시대 토기
중국의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데 씽롱와(興隆窪)문화의 지자문토기(之字紋土器), 양사오(仰韶)문화의 채도(彩陶), 롱산(龍山)문화의 흑도(黑陶) 등이 있다. 채도는 양사오문화를 비롯해 중국 신석기문화의 대표적인 토기로 대부분 붉은색 토기 표면에 검은 선으로 무늬를 그렸다. 무늬는 주로 기하학 무늬이거나 당시 사람들이 접촉했던 물고기, 새, 개구리,돼지 등을 주제로 삼았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중국의 신석기시대 토기. 중국은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신석기문화가 발달하였다. 지역에 따라서 다양한 특색을 가지는 토기들이 만들어졌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서 기술적, 예술적으로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4. 바리, 홍산문화, 5. 동이, 샤오허옌문화,

OLYMPUS DIGITAL CAMERA6.동이, 양사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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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깊은바리, 씽롱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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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바리, 짜오바우꺼우문화,

OLYMPUS DIGITAL CAMERA9. 세발솥. 따원커우문화, 10. 굽다리접시, 룽산문화,

OLYMPUS DIGITAL CAMERA11.항아리, 마지아야오문화, 12. 채색항아리, 양사오문화, 13. 채색항아리, 마지아야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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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항아리, 치지아문화

일본의 신석기시대 토기
일본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1만년 이상 사용되어 시간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이른 시기에는 끝이 뾰족한 깊은 바리 모양이 사용되었으나 점차 평저의 얕은 바리나 항아리 모양으로 바뀐다. 중기 이후에는 장식성이 강한 입체적 무늬가 유행하고 토기의 기종이 다양해지며 기능도 분화된다. 만기가 되면 동일본에서는 풍부한 기종과 장식성을 특징으로 하는 가에가오카(亀ヶ岡)식 토기가 발달하고 서일본에서는 단순한 기종과 장식성을 배제한 토기가 등장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일본의 신석기시대 토기. 조몬토기는 신석기시대가 시작된 약 기원전 10,000년부터 야요이시대가 시작된 기원전 3세기까지 일본열도에서 만들어진 토기를 말한다. 표면에 새끼줄무늬가 있어 조몬(繩文)토기라 부른다. 조몬토기는 일본열도의 신석기문화를 보여주는 유물로 토기 겉면에 화려하면서도 다양한 형상의 무늬를 새겨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조몬시대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숭배 등을 보여주는 종교적인 의미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러한 특징은 오늘날까지 일본 예술에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15. 귀때토기, 16.귀때토기, 17. 향로모양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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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깊은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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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깊은 바리,

OLYMPUS DIGITAL CAMERA 20. 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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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깊은 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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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깊은 바리,

OLYMPUS DIGITAL CAMERA23. 단지,

OLYMPUS DIGITAL CAMERA24. 굽다리접시, 25. 바리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토기
원시무문양토기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가장 이른 토기로 약 1만년 전에 제주도에서 등장하였다. 고산리식토기라고도 부르며 바탕흙에 유기물을 넣어 만든 것이 특징이다. 그 이후 덧무늬토기, 누른무늬토기, 심선문토기, 봉계리식토기, 겹아라기토기 등이 등장한다. 흔히 빗살무늬토기라고 부르는 심선문토기는 신석기시대 전기에 출현한 후 한반도 전역에서 유행하였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한반도의 신석기시대 토기.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토기로는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가 있다. 덧무늬 토기는 주로 남해안과 동해안 등 해안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겉면에 진흙띠를 붙여서 무늬를 만든 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난 토기로 전국적으로 발굴지역이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어 한반도를 대표하는 신석기시대 토기이다. 잘 알려진 빗살무늬토기로는 길쭉한 포탄 모양에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한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빗살 무늬 토기가 있으며, 지역적으로 약간씩 다른 형태와 무늬를 가지는 지역성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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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바리, 서울 암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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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바리, 서울 암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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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바리, 부산 동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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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바리, 양양 오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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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단지, 양양 오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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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바리, 경성 원수대

신석기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무덤이 만들어졌으며 남해안 조개무지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는 경우가 많으나 동굴을 무덤으로 이용하거나 뼈만 추려 토기 등에 넣기도 하였다. 신석기인들은 꾸미개로 죽은 이를 치장하고 토기, 석기 등 무덤의 주인이 사후세계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무덤에 같이 묻었다. 신석기시대 무덤은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기는 하나, 어로활동이 용이한 해안이나 큰강 주변이 주를 이룬다. 이는 한반도 신석기인들에게는 농경보다는 어로활도이 중요했음을 잘 보여준다.

풍요의 산물, 다양한 무덤의 등장
풍요로운 정착 생활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 무덤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신석기시대의 무덤은 남해안의 조개무지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조사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펴서 직접 묻는 것으로 통영 연대도 조개무지, 욕지도 조개무지, 상노대도 산등 조개무지 등에서 확인되었다. 시신의 다리를 구부리거나 옆으로 뉘어 묻은 예도 있다. 또 독널을 이용한 무덤이 부산 동삼동 조개무지와 진주 상촌리 유적에서 발견되었고, 춘천 교동 유적에서는 동굴에 무덤을 만들기도 하였다. 특히 울진 후포리 유적에서는 구겅이 안에 40여명의 뼈만 추린 후 돌도끼로 덮은 독특한 모습도 보인다. 다양한 신석기시대의 무덤에서는 토기, 돌도끼, 이음낚시, 숫돌 등 실생활에서 사용하였던 도구나 동물 이빨로 만든 발찌, 조개 팔찌, 귀고리 등의 장신구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껴묻거리가 없고 있더라도 적다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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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무덤 분포도.

OLYMPUS DIGITAL CAMERA간돌도끼, 울진 후포리

경북 울진군에 위치하고 있는 독특한 집단 묘지이다. 바닷가 산꼭대기의 자연적인 구덩이를 이용하여 40인 이상을 이차장(二次葬)으로 특수하게 매장하였다. 이 유적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장법은 세골된 뼈를 다발로 모아 구덩이의 중앙부에 놓은 세골장(洗骨葬)이다.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간 돌도끼로 모두 인골을 덮는 역할을 한 것이다. 대개 20cm 이상으로 길고 커서 실제로 사용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껴묻거리 용도로 특별히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 동물이빨제 발치, 2. 단지, 3. 바리, 4. 간 돌도끼, 5. 숫돌, 통영 연대도

통영군 산양면 연대도에 위치하고 있는 조개무지로 신석기시대 대규모 집단 무덤이다. 조사결과 바닥에 잔돌을 깔고 머리를 서쪽으로 하여 사람을 곧게 펴서 묻었으며, 한 구덩에 한 구의 시신을 묻는 것이 기본이었으나 2~3구가 함께 묻힌 예도 있다. 이음낚시 바늘, 그물 추, 동물뼈, 조가비 등이 출토되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1. 간 돌도끼, 2. 간 돌화살촉, 3. 대롱옥, 4. 단지, 바리, 춘천 교동

춘천 봉의산 동쪽 산 중턱 경사면에 있는 동굴 유적으로 동굴의 평면은 지름 약 4m 정도의 원형이며 천장은 반구형이다. 발견 당시 세 사람의 뼈는 모두 발을 중앙 쪽으로 두고 몸을 곧게 펴서 누운 모습이었다. 간 돌도끼, 간 돌끌, 간 돌화살촉, 낚시 바늘, 돌칼 등의 석기들과 토기가 발견되었다. 동굴의 천장에 그을음이 남아 있어, 이 동굴은 원래 불을 피웠던 집으로 사용되다가 폐기 후 무덤으로 다시 이용된 것이라 추정된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조가비 팔찌, 부산 가덕도 장항

부산 가덕도 북서쪽 장항에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최대 규모의 무덤이 조사되었다. 모두 48개체의 사람 뼈가 확인되었으며 주변에는 파손되지 않은 100여 점의 토기가 부장되어 있어 신석기시대의 무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시신을 안치하는 방법으로는 펴묻기와 굽혀묻기가 모두 확인되지만 굽혀묻기의 비율이 더 높다. 특히 조가비를 연결하여 목걸이처럼 늘어뜨린 사례는 가덕도 장항 유적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출처: 중앙박물관>

OLYMPUS DIGITAL CAMERA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 신석기시대 최대 규모의 무덤

OLYMPUS DIGITAL CAMERA부산 가덕도 장항.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