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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둔황(敦煌), 서역으로 출발하는 실크로드 도시

중국 간쑤성(甘肃省) 둔황(敦煌)은 간쑤성, 청해성(青海省), 신장 위구르자치구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19만의 지방소도시이다. 고대 실크로드에서 중국 밖(外地)으로 떠나는 출발지이자, 시안(長安)에서 옥문관까지 이어지는 길이 900 km 하서주랑(河西走廊)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기원전 111년 한무제가 실크로드를 개척하면서 둔황현(敦煌縣)을 설치하였으며 명나라 때 해상교역로가 활성화되기 전까지 실크로드 관문도시로서 물자와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철도를 비롯한 주요 교통로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농업과 관광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주요 유적으로 실크로드 서역북도 출발점인 옥문관, 서역남도 출발점인 양관, 천불동이라 불리는 막고굴 등이 있으며, 중앙아시아 사막 풍경을 대표하는 명사산과 월아천, 아단지질공원 등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실크로드를 대표하는 풍경인 명사산과 월아천>

둔황공황은 도심에서 동쪽으로 12.7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란저우, 우루무치, 시안, 베이징 등과 연결되는 항공편이 있다. 둔황 공항 앞에 기차역이 있으며 시안에서 둔황까지는 10시간 이상 소요된다. 막고굴이 남쪽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버스로 직접 연결된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 공항>

막고굴(莫高窟, Mogao Cave)은 명사산 동쪽 남북으로 약 1.6 km 걸쳐 약 600 여개의 석굴사원을 말한다. 오호십육국 때 처음 조성되기 시작되어으며 원대(元代)까지 약 1,000에 걸쳐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5세기 북양 때 조성된 것이며 북위 때 조성된 굴에는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북주(北周)와 수당(隋唐) 조성된 굴에서는 중국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19세기 말 장경동에서 많은 고문서들이 발견되면서 서구에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이 있는 명사산 동쪽 언덕>

SANYO DIGITAL CAMERA<둔황 막고굴>

SANYO DIGITAL CAMERA<막고굴 96호굴인 북대불전>

명사산은 감숙성 둔황시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모래언덕으로 모래들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울림소리처럼 들린다고 하여 명사산(鳴沙山)이라 부르며 그 아래 샘이 솟는 작은 오아시스인 월아천이 사막의 극적인 풍경을 잘 표현하고 있어 예로부터 둔황을 대표하는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명사산과 월아천은 낙타를 타고 실크로드를 출발하는 장면으로 많이 등장하는 곳이다.

SANYO DIGITAL CAMERA<명사산 모래언덕>

OLYMPUS DIGITAL CAMERA<월아천과 월아산장>

둔황의 전통시장인 사주시장(沙州夜市)에서는 실크로드의 전통 음식과 이곳에서 거래되었던 물품들과 지역민들이 사용하는 생활용품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시장에서는 물품이 활발히 거래되는 옛날의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고, 중소도시 전통 재래시장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신장의 중심도시인 우루무치에서 옛 실크로드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 사주시장>

SANYO DIGITAL CAMERA<생필품이 거래되는 모습>

사주시장에서는 다양한 먹거리와 이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서 시장의 활기찬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시장 광장 한편에 설치된 벤치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즐길 수 있다. 이곳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주문을 받는 사람이 다르며 음식 주문을 받으면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 여러 곳에서 음식을 가져다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주시장 중심부 광장>

SANYO DIGITAL CAMERA<광장에 설치된 테이블과 의자>

SANYO DIGITAL CAMERA<실크로드의 특성을 보여주는 낙타고기 요리>

SANYO DIGITAL CAMERA<도심에 위치한 호텔>

실크로드(緋緞路)는 근대 이전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를 말하며 좁게는 고대 북방민족이 중앙아시아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오아시스길을 말한다. 둔황은 실크로드 타클라마칸 사막 남북쪽에 만들어진 서역남로와 북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이곳에서 중국 바깥으로 나간다고 여겨졌다. 둔황에는 한대 만리장성 서쪽 끝 2개의 관문인 양관(陽關)과 옥문관(玉門關)이 있다. 양관(陽關)은 서역남로를 출발하는 관문으로 타클라마칸사막 남쪽길을 통해 호탄, 카슈카르 등을 거쳐 서역으로 연결된다. 옥문관(玉門關)은 서역북로를 출발하는 관문으로 누란, 투루판, 쿠울러 등을 거쳐 서역으로 연결된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부근 한대 만리장성>

옥문관(玉門關)은 한 무제 때 흉노를 공략하기 위해 하서사군(河西四郡)을 설치하면서 옥(玉)을 수입하던 통로라 하여 옥문관이라 불렀다. 옥문관은 설치된 이래 여러 차례 위치를 옮겼으며 당대(唐代)까지 서역과 연결되는 중요 교통로로 번창하였다. 둔황 북서쪽 9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옥문관 유적은 1907년 영국 탐험가가 소방반성(小方盤城)을 조사하다가 옥문도위(玉門都尉)라 적힌 목간을 발견하면서 그 위치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유적은 당나라 때 건설된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관성>

SANYO DIGITAL CAMERA<한대 만리장성 성벽>

SANYO DIGITAL CAMERA<옥문관 주변 봉수대>

아단국가지질공원(敦煌雅丹国家地質公園)은 옥문관에서 25 k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옥문관을 나서 사막길에 볼 수 있었던 이채로운 풍경은 많은 전설을 만들어 냈던 것으로 보인다. 옥문관에서 사막을 가로질러 물이 흘렀던 강을 따라서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주변에 다양한 모습의 바위들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국가지질공원 전경>

SANYO DIGITAL CAMERA<기암괴석>

양관(陽關)은 서역 남도(南道)로 나가는 관문으로 당대(唐代) 인도를 방문했던 현장법사가 양관을 통해 중국으로 돌아왔다. 양관 일대는 소륵하(疏勒河, Shule River) 주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크게 번창했는데 송대(宋代) 이후 실크로드와 함께 쇠퇴하였다. 당시 쌓았던 성벽은 남아 있지 않으며 언덕에 봉수대터만 볼 수 있다. 지금은 양관박물관이 세워져 실크로드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한대 만리장성 관문을 재현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양관 부근 봉수대>

양관박물관에는 엣 양관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벽돌로 쌓은 명청대 성벽에 비해 성벽이 높지 않으며 내부도 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양관 성문, 성벽, 치성, 공성과 방어무기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옥문관 주변 있는 한대 장성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양관박물관>

양관은 둔황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7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양관 일대는 남쪽 높은 산악 지역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모이는 곳으로 여러 곳의 오아시스가 있고, 그 주변에 농경지와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양관 성벽 안쪽에 있는 오래된 오아시스, 황수 파수고(黄水坝水库)라 한다.>

SANYO DIGITAL CAMERA<사막과 풍부한 수량의 저수지>

SANYO DIGITAL CAMERA<저수지 뒷편으로 보이는 양관 봉수대 유적지>

SANYO DIGITAL CAMERA<큰 규모의 저수지>

SANYO DIGITAL CAMERA<저수지 제방>

SANYO DIGITAL CAMERA<제방 아래 수로 입구>

SANYO DIGITAL CAMERA<풍부한 수량의 마을 수로>

마을은 사막지역에 방풍림으로 많이 이용되는 포플러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에 농작물이 심어져 있다.  이 곳의 농작물을 주로 포도를 많이 재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 건포도를 만들어서 내륙으로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제 발전에 따라서 수요가 늘어서인지 경작지는 계속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최근에 심은 어린 포도나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방풍림이 울창한 마을 가로수>

SANYO DIGITAL CAMERA<마을 주택가>

SANYO DIGITAL CAMERA <포도 농장>

SANYO DIGITAL CAMERA<포노 농장 식당>

SANYO DIGITAL CAMERA<사막에서 볼 수 있는 포도 건조장>

<출처>

  1. 위키백과, 2021년
  2.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 2006년
  3. 실크로드사전, 편저 정수일, 창비, 2013년
  4. 百度百科, 2021년

 

투루판 자오허고성(交河故城), 사막에 남아 있는 고대도시 유적

중국 투루판시에 남아 있는 고대도시 유적인 자오허교성(交河故城)이다. 투루판 도심 서쪽 10 km 떨어진 야르나즈 계곡 무르투강에 있는 작은 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자로 교하(交河)라 부른다. 전한때부터 450년 고창국에 멸망하기까지 투루판 지역을 통치했던 차사전국(車師前國)의 수도였으며, 당나라 때에는 안서도호부가 설치되었다. 당나라 때 기록에 따르면 인구는 7,000명 정도였다고 한다.  840년 키르키즈에 멸망될 때까지 실크로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3세기 몽골의 침입 이후 폐허가 되었다. 고창국 수도였던 가오창고성과 함께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도시유적이다.

SANYO DIGITAL CAMERA<자오허고성 입구>

두 강이 교차하는 지점에 배처럼 생긴 지형에 형성된 이 고대도시는 길이 1.6 km, 폭 300 m 정도로 동시대 고대도시와 거의 비슷한 규모이다. 성벽을 인공적으로 쌓지 않고 높이 30 m 정도의 자연절벽을 성곽으로 사용하고 있으다. 도시는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과 비슷한 형태로 관공서, 불교사원, 주거지와 상업지구, 작업장, 군사훈련장 등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들은 대부분 바위를 파거나 흙을 쌓아서 만든 투루판지역 건축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투루판 기후 특성상 옛 모습의 잘 남아 있는데 도시가 황폐화되기 직전인 당나라 때 모습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자오허 고성 모형>

양쪽을 흐르는 강은 오랜 세월 땅을 깎으면서 흘러 깊은 협곡을 형성하고 있다. 고성은 높은 자연절벽을 성벽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남문, 동문, 서문을 두고 있는데 그 중 서문을 정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자오허고성 남문과 높은 성벽>

SANYO DIGITAL CAMERA<고성 남문 앞 광장>

SANYO DIGITAL CAMERA<고성 양쪽을 흐르는 강>

SANYO DIGITAL CAMERA<고성 남문, 옆쪽에 병사들이 머물렀던 공간이 있다>

자오허고성은 남문에서 대불사까지 중앙대로를 중심으로 동쪽, 서쪽과 대불사 뒷편 북쪽의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동쪽은 관공서를 포한한 주거지역이며 서쪽은 주거지역과 작업장, 군사훈련장 등이, 북쪽은 대불사를 중심으로 주거지와 불교사원 등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들은 도로를 향해 창문을 두지 않으며 공간들은 폐쇄적으로 분리되어 있어 당나라 장안의 도시 배치를 참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자오허고성 건물 배치>

남문을 들어서면 안쪽으로 오래된 건물 유적이 산재해 있으며 건물이 없는 공터를 많이 볼 수 있다. 공공기관이나 작업장이나 군사훈련장 등이 주로 배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남문 안쪽>

SANYO DIGITAL CAMERA<남문 안쪽 언덕에 있는 건물유적>

SANYO DIGITAL CAMERA<남문 안쪽 대로 동쪽편 지역 건물들>

SANYO DIGITAL CAMERA<남문 안쪽 대로 서쪽편 건물들>

남문에서 300 m 쯤 걸어 들어가면 도시전체와 주위를 감시하기 위해 세운 전망대(了望 台)가 있다. 전망대는 둘레 88 m, 높이 8.4 m의 망루이다. 건물을 내부에 큰 방을 중심으로 4면에 군인들이 쉴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전망대>

SANYO DIGITAL CAMERA<전망대 내부>

SANYO DIGITAL CAMERA<전망대 주변 건물들>

자오허고성은 전망대에서 대불사 불탑까지 약 400 m 정도의 중앙대로가 연결되어 있다. 도로 양쪽으로 창문이 없는 높은 담장이 도시 공간을 구분하고 있으며 중간쯤에 동서방향 도로가 남북을 구분하고 있다. 각 구역은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담장으로 도시를 폐쇄적으로 구분한 당나라 장안의 도시계획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전망대에서 대불사 불탑까지 연결되는 큰길과 양쪽 담장>

SANYO DIGITAL CAMERA<큰길 동쪽편 담장>

SANYO DIGITAL CAMERA<전망대와 불탑 중간 지점>

SANYO DIGITAL CAMERA<동서를 관통하는 도로>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앞 광장에서 보이는 큰 길>

전망대 앞 큰길에서 우측 언덕길로 올라가면 관서유지(官署遺址)에 들어서게 된다. 한나라 차사전국 때 관청과 군대가 주둔했던 지역으로 서주시대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크게 확장되었다. 이곳에는 군사들이 주둔하면서 훈련을 받던 연병장 같은 마당이 있고, 그 주변으로 땅속으로 굴을 파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관청 건물들을 볼 수 있다. 넓은 마당 곳곳에 출입문이나 환기구를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관서유지>

SANYO DIGITAL CAMERA<동쪽 성벽 주변>

SANYO DIGITAL CAMERA<관서유지 북쪽, 대불사를 비롯하여 상업지구, 민가들이 내려다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자오허고성 중앙대로 동쪽 민가지역>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뒷편 승려들의 승탑들이 모여있는 탑림>

관서유지에서는 11 m의 넓은 정사각형 안뜰이 있는 건물을 볼 수 있다. 안뜰에는 다른 곳과 연결되는 문과 터널, 방을 볼 수 있는데 상당히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윗쪽에서 본 안뜰>

SANYO DIGITAL CAMERA<안뜰로 내려오는 계단과 방>

SANYO DIGITAL CAMERA<환기구가 있는 방>

SANYO DIGITAL CAMERA<위쪽이 개방되어 있는 부분>

SANYO DIGITAL CAMERA<다른 집으로 연결되는 터널>

SANYO DIGITAL CAMERA<윗쪽이 개방되어 있는 문>

SANYO DIGITAL CAMERA<관서유지 동쪽에 있는 큰 건물유적>

관유유지에는 200여 기 영아고묘군(婴兒古墓群)이 있다. 고창국시기 유적으로 추정되는데 왜 이곳에 아기무덤이 있는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자오허고성 관청 중심부에 아주 가까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아고묘군(婴兒古墓群)>

자오호고성 중앙대로 중간쯤에 동문과 서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이 도시를 남북으로 나누고 있다. 다른 골목과 마찬가지로 건물들은 큰 길을 향해 창문을 두지 않고 있다. 관서유지 북쪽에는 많은 주민들이 거주했던 민가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작은 골목으로 통해 길들이 연결되고 있다. 관서유지에 비해 건물 외벽들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관서유지와 마찬가지로 폐쇄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관서유지에서 내려오는 길>

SANYO DIGITAL CAMERA<길 옆에 있는 건물, 외벽이 개방되어 있어 상가처럼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중앙대로와 연결되는 큰 길>

동성문(東城門)은 30 m 높이의 절벽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비교적 초기에 세워진 구조물이다. 성문 양쪽 2개의 감시탑, 초소, 방어용 울타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문을 사람이나 물자의 통행을 위해 지은 것은 아니고 주민들이 강물을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자오허고성 동성문>

SANYO DIGITAL CAMERA<성문 옆 초소>

중앙대로 서쪽에는 주거지역 외에 많은 수공예 공방이 자리잡고 있었다.  직물, 술, 신발 등을 만들었던 건물과 수공예품을 만들었던 작업장 등이 확인되고 있다. 건물의 외벽과 지붕이 튼튼하게 만들어진 동쪽 지역과는 달리 건물이 크게 훼손되었으며 넓는 마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중앙대로에서 서문으로 연결되는 길>

SANYO DIGITAL CAMERA<공방들이 있었던 서쪽지역 건물들>

SANYO DIGITAL CAMERA<서쪽지역 건물>

일반적인 고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자오허고성은 불교사원인 대불사를 중심으로 상업지구와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대불사 앞 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중앙대로 입구 전망대와 함께 도시에서 랜드마크가 되었던 거대한 불탑이 광장 앞에 세워져 있다. 불탑을 중심으로 큰 규모의 상가들이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뒷편 골목에 크고 작은 점포와 서민들이 살았던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불탑>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와 광장>

SANYO DIGITAL CAMERA<불탑 서쪽 큰 상가로 보이는건물들>

SANYO DIGITAL CAMERA<불탑 동쪽편 건물 유적>

SANYO DIGITAL CAMERA<불탑 주변 상업지구 건물>

대불사는 면적 5,100 ㎡이며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절터에는 불상을 모셨던 불단이 있는 큰 규모의 금당터를 비롯하여 2개의 탑과 우물, 요사채 등이 있었으며 중문 앞 광장에 큰 규모의 탑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금당 건물터>

도시는 대불사를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이며 실크로드를 여행했던 많은 상인들과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광장 서쪽 상업지구 건물들>

대불사 동쪽에서 남쪽 관서유지까지는 많은 주민들어 거주했던 주거지역이 형성되었다. 광장에서 동문으로 큰 길이 연결되어 있으며 크고 작은 골목들이 큰길과 연결되어 있다. 건물들의 비교적 그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

SANYO DIGITAL CAMERA<많은 건물들이 있었던 대불사 동쪽 주거지역>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에서 동문으로 연결되는 큰길>

대불사 뒷편에는 승려들의 승탑이 모여 있는 탑림이 있으며 큰 길로 연결되어 있다. 탑림으로 연결되는 큰길에서는 비교적 큰 규모 건물 유적이 남아 이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동쪽 탑림으로 연결되는 길>

SANYO DIGITAL CAMERA<탑림으로 가는 길 동쪽에 남아 있는 큰 건물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에서 동문으로 연결되는 큰길>

SANYO DIGITAL CAMERA<벽체가 잘 남아 있는 주거지역 건물 유적>

SANYO DIGITAL CAMERA<동문으로 이어지는 길>

SANYO DIGITAL CAMERA<주거지역 좁은 골목길>

SANYO DIGITAL CAMERA<동문으로 연결되는 길>

SANYO DIGITAL CAMERA<큰 규모의 건물 유적>

SANYO DIGITAL CAMERA<동문 부근 >

<출처>

  1. 안내문, 자오허고성, 2010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4.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

투루판 카레즈(Karez), 사막에 물을 공급하는 관개시스템

투루판 지역 사람들의 역사와 삶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인 카레즈(Karez)이다. 카레즈는 건조한 지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한 관개시스템으로 페르지아 지역에서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카니스탄의 ‘카레즈’, 이란의 ‘카나트’, 북아프리카의 ‘호가라’ 등이 있다. 카레즈는 운하처럼 수로를 파는 것이 아니라 지하 수m~수십m에 터널을 파서 관개수로를 만든다. 카레즈시스템은 우물,  지하수로, 표면수로, 지하저수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가 5천km에 이르며 1,110여개의 카레즈 우물과 수로가 운용되고 있다. 중국에서 만리장성, 경항운하와 함께 대표적인 인공구조물로 알려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카레즈 시스템에 연결된 우물>

SANYO DIGITAL CAMERA<지하수로에서 보이는 우물 입구>

SANYO DIGITAL CAMERA<물이 흐르는 지하수로, 넓은 공간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물을 저장하는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지하공간>

SANYO DIGITAL CAMERA<물이 흐르는 지하수로>

SANYO DIGITAL CAMERA<지하수로>

SANYO DIGITAL CAMERA<지상으로 연결되는 수로>

SANYO DIGITAL CAMERA<지표상을 흐르는 수로, 물이 맑고 깨끗하다>

투루판 지역은 천산산맥 남쪽 분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고도가 상당히 낮다. 천산산맥에서 발원한 물길은 투루판 도심 서쪽 자오허고성(交河古城) 부근 계곡, 가오창고성(高昌古城) 북쪽 베제클리크 석굴이 있는 계곡 등을 통해 투루판분지로 흘러든다. 자오허고성, 가오창고성 등 투루판 분지의 도시들은 계곡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오랜 세월 농업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관개수로를 개척해 왔으며 그 노력의 결과가 오늘날 투루판의 카레즈에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많은 물이 흘렀던 것으로 보이는 자오허고성 옆을 흐르는 강>

SANYO DIGITAL CAMERA<베제클리크 석굴 옆을 흐르는 계곡>

SANYO DIGITAL CAMERA<토욕구 계곡을 지나 투푸판 분지로 흘러드는 물길>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분지 사막에서 볼 수 있는 카레즈가 지나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카레즈를 통해 끌어들이 물로 조성된 투루판 도심 호수공원>

SANYO DIGITAL CAMERA<수로가 흐르는 포도밭>

SANYO DIGITAL CAMERA<카레즈 물길에 의존하고 있는 포도밭>

SANYO DIGITAL CAMERA<사막에서 볼 수 있는 포도를 건조하는 시설>

카레즈를 건설하는 도구로는 굴착 도구, 바퀴를 이용한 리프팅 도구, 흙을 옮기는 운송도구, 조명 및 구조를 지탱하는 보강도구 등이 있다. 투루판 카레즈 박물관에는 카레즈를 건설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도구, 카레즈의 구성 요소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굴착작업을 위해 작업인원이 투입되는 장면>

운송수단으로는 바구니를 주로 사용했다. 바구니는 고리버들 또는 뽕나무로 짠 것으로 파낸 흙을 들어내는데 사용된다. 파낸 흙은 소나 인력을 이용하여 줄로 끌어서 옮긴다.

SANYO DIGITAL CAMERA<구멍을 통해 바구니로 흙을 꺼내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람과 장비, 파낸 흙을 운반하기 위해 사용되는 큰 바퀴 형태의 리프팅 도구>

SANYO DIGITAL CAMERA<소를 이용해서 줄을 끄는 모습>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

투루판 가오창고성 대불사(大佛寺)터, 당 현장법사가 인도 순례길에 머물렀던 곳

중국 투루판 옛 고창국 도성이었던 가오창고성(高昌古城) 외성 남서쪽에 위치한 대불사(大佛寺) 절터이다. 당나라 승려 현장법사가 인도로 순례를 떠나는 길에 잠시 들러서 설법을 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크로드에 있었던 많은 사찰들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 지금은 없어진 서역의 불교 사찰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현장법사는 고창국 국왕 국문태의 초청을 받아 이곳에서 1개월 동안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설법했으며 국왕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10년 후 순례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이곳을 다시 찾으려 했으나 고창국은 당(唐)에 의해 멸망하여 다른 길로 돌아왔다고 한다.

대불사절터는 고성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규모는 남북 70 m, 동서 120 m 정도이다. 가오창고성 내성이 있는 동쪽에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건물외벽들이 담장을 이루고 있는 도시형 사찰이다. 서역의 종교시설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절터>

SANYO DIGITAL CAMERA<투루판 가오창고성 대불사 정문과 외벽>

SANYO DIGITAL CAMERA<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불상을 모신 불전이 보인다.>

대불사는 불상을 모신 불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법회가 열리는 돔형 강당이 배치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들을 두고 있다. 실크로드에 있는 교통요지에 있는 사찰답게 사막을 여행하는 순례객들을 위한 요사채가 상당히 많은 것이 특징이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주불전>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앞 마당>

주불전은 불상을 모신 공간으로 중앙에 불상을 모시기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벽면에도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두고 있다. 목조건축물로 지어진 동아시아의 불전과는 달리 흙벽돌로 쌓은 서역의 불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벽돌로 기단을 쌓고 건물을 올렸는데 아치형 지붕이 있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주불전>

SANYO DIGITAL CAMERA<불상을 모셨던 자리>

주불전 마당 북쪽편에는 법회가 열렸던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현장법사가 설법을 펼쳤던 유서깊은 곳으로 옛 모습을 복원해 놓고 있다. 건물 벽면은 사각이며 돔형 지붕을 올려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강당, 돔형 건물로 외부는 벽면으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대불사 절터에는 벽돌로 지은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는 대부분 승려들이나 순례객들이 머물 수 있는 요사채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주거지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불전 앞 마당 주위에는 상당히 큰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찰 입구 강당 옆에 있는 건물, 2층 이상의 크고 높은 건물이다.>

SANYO DIGITAL CAMERA<강당 맞은편에 있는 건물, 상당히 큰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강당 옆 주불전 뒷편에 있는 건물들>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옆 건물터>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뒷편>

SANYO DIGITAL CAMERA<주불전 뒷편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

SANYO DIGITAL CAMERA<대불사 담장너머로 가오창고성 외성 성벽이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주거지 모습을 보이는 요사채 내부>

SANYO DIGITAL CAMERA<요사채 건물터>

가오창고성은 투루판 분지에 있었던 고성으로 서한(西漢)시대부터 13세기까지 존재했던 지역의 중심지였다. 현재 남아 있는 고성터는 둘레 5.4km 정도로 당나라 장안성을 모방하여 만들었다. 성터에는 외성과 내성 성벽을 비롯하여 고창국 궁굴터, 대불사 절터 등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많은 건물터가 남아 있는 투루판 가오창 고성>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

둔황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풍경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잘 알려진 둔황(敦煌)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이다. 명사산은 감숙성 둔황시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모래언덕으로 모래들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울림소리처럼 들린다고 하여 명사산(鳴沙山)이라 부르며 그 아래 샘이 솟는 작은 오아시스인 월아천이 사막의 극적인 풍경을 잘 표현하고 있어 예로부터 둔황을 대표하는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명사산과 월아천은 낙타를 타고 실크로드를 출발하는 장면으로 많이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만리장성 서쪽 끝 관문인 옥문관(玉門關)과 양관(陽關)이 실크로드 출발점이었다.

SANYO DIGITAL CAMERA<둔황 명사산과 월아천>

실제 둔황 도심에서  남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도심 공원에 가깝다. 명사산은 일몰 풍경이 아름다워 그 시간에 맞추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았다. 입구에서는 사막을 걷기 위해서는 덪신이 필요하다며 돈을 받고 대여해 주고 있으며, 명사산 사막을 즐기기 위한 낙타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명사산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관광객을 기다리는 낙타들>

SANYO DIGITAL CAMERA<출입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명사산 모래언덕>

명사산은 서쪽 막고굴에서 시작하여 동서 약 40km, 남북으로 약 20km에 이르는 모래언덕으로 최고 높이가 1,700m 정도이나 상대 높이 100 m 정도 크고 작은 모래언덕들이 연결되어 있다. 지형이 수시로 변하는 사막에서 오랜세월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사산에서 보이는 해가 뜨는 일출이나 해가 지는 일몰 풍경이 아릅답다.

SANYO DIGITAL CAMERA<명사산 모래언덕>

명사산을 오르는 방법은 낙타를 타고 모래산을 천천히 올라가는 방법과 월아천 근처의 모래산에 설치해 놓고 있는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사막을 즐기고 체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2~3시간 올라가서 일출이나 일몰을 감상하며, 일정이 바쁘거나 체력이 달리는 사람은 월아천 부근 모래언덕에 설치된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가 그 아래의 월아천 풍경을 감상하게 된다.

SANYO DIGITAL CAMERA<낙타들이 기다리는 휴게소>

SANYO DIGITAL CAMERA<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 오르는 관광객들>

SANYO DIGITAL CAMERA<낙타를 타고 실크로드를 떠나는 풍경을 만들고 있다.>

입구에서 명사산 월아천까지는 약 1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꼬마열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명사산을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꼬마열차에서 보이는 입구>

SANYO DIGITAL CAMERA<멀리 보이는 월아천 입구>

SANYO DIGITAL CAMERA<사막 가운데 있는 월아천 입구 휴게소>

SANYO DIGITAL CAMERA<휴게소를 지나면 보이는 월아천과 월아산장>

SANYO DIGITAL CAMERA<모래바람을 느낄 수 있는 월아천 맞은편 모래언덕>

월아천(月牙泉)은 길이 200m, 폭 30m의 작은 오아시스로 초생달처럼 생겼다. 월아천 옆에는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했던 월아산장이 있다. 월아산장은 오층목탑처럼 생긴 건물을 중심으로 여러동의 중국풍 유곽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1997년에 만든 것이라 한다. 사막 주거양식과는  동떨어진 중국 강남지역 건축양식이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이곳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자리잡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월아산장 누각건물>

SANYO DIGITAL CAMERA<2층 누각>

SANYO DIGITAL CAMERA<객실 건물>

SANYO DIGITAL CAMERA<정원의 작은 정자>

SANYO DIGITAL CAMERA<누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월아천>

월아천은 사막에 샘이 솟는 오아시스 특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월아천의 존재는 기록만으로도 2천년이 넘는 곳이며 그 동안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는 둔황지역 관개농업의 발달로 지하수 수위가 내려가 오아시스가 마르고 있다고 한다. 명사산 입구에 큰 연못 두개를 만들어 다른 곳에서 물을 끌어 월아천의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월아천과 주위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

SANYO DIGITAL CAMERA<월아천 맞은편 모래언덕>

OLYMPUS DIGITAL CAMERA<인근에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은 연못>

월아천 뒷편 모래언덕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 언덕위에서 월아천과 월아산장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모래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올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월아천 뒷편 모래언덕>

SANYO DIGITAL CAMERA<모래언덕을 오르는 나무계단>

SANYO DIGITAL CAMERA<모래썰매를 대여해 주는 곳>

SANYO DIGITAL CAMERA<모래썰매>

SANYO DIGITAL CAMERA<모래가 나무를 덮고 있는 이국적인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월아천과 월아산장>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중국 국가급풍경명승구총람, 도서출판 황매희,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