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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예안이씨 상리종택

경북 안동 풍산읍 상리에 위치한 예안이씨 상리종택이다. 예안이씨 7세손 이훈의 종택으로 중종대에 처음 지어졌다.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ㅁ’자형 본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앞면 7칸 규모로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과 부엌 등이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중문을 중심으로 왼쪽편에 3칸 규모로 있으며, 중문 오른쪽 끝편에도 작은 사랑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은 시골의 낡은 부잣집 같은 분위를 주고 있는데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본채와 넓은 마당이 있다. 마당 오른쪽에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다른 고택의 연못들보다 잘 만들고 가꾸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이 위치한 풍산읍 상리는 옛 풍산읍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은 중종대에 조광조와 친분이 있던 이영.이전.이훈 삼형제가 사화를 피해 낙향하면서 그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예안이씨 상리종택, 경북 안동시 풍산읍 상리리
이 건물은 예안이씨 7세손 이훈(1489~1552)의 종택으로 조선 중종 20년 무렵에 세워졌다. 그는 연산군 10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의 참혹함을 보고 나서 벼슬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 집을 짓고 살았다. 평지에 자리잡은 남서향집으로 대문채는 없어지고 지금은 ‘ㅁ’자형 정첩만 남아 있다. 정면 7칸, 측면 7칸, 뒷면 5칸 규모의 이 건물은 대청이 좌측에 놓이고 안방이 중앙 쪽으로 나오면서 상방이 대청 앞에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일반적인 ‘ㅁ’자형 주택의 안채가 대청 중앙에 놓이고 좌우로 상방과 안방이 대칭적으로 놓여지는 것과 사뭇 다른 것이다. 또한 이 집의 안채와 같은 칸살 구성은 안동지방에서 보이는 특이한 유형으로, 대개 18세기 이후에 건축된 건물들에서 보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SANYO DIGITAL CAMERA예안이씨 상리종택. 마을 입향조 중 한명인 이훈의 종택으로 중종대에 처음 지어졌다. 대문채는 없어지고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본채만 남아 있다.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본채는 건물이 낡아 보이지만 꽤 규모가 있어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는 앞면 3칸 규모로 대청마루와 온돌로 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에는 ‘시은고택市隱告宅’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 옆 마당.

SANYO DIGITAL CAMERA마을에 있는 예안이씨 충효당과 마찬가지로 마당 한쪽에 작은 연못을 두고 있다. 아마도 풍수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택에 비해 연못이 작거나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잘 꾸며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예안이씨 상리종택 전경.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
4. 문화재청

안동 예안이씨충효당(보물 553호)

경북 안동 풍산읍 하리리(下里里)에 있는 고택인 안동 예안이씨충효당(禮安李氏忠孝堂)이다. 이 고택은 풍산천과 넓은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때 의병활동과 후손들의 효심으로 인해 국가로부터 ‘충효당(忠孝堂)’이라 이름을 하사받은 유서깊은 저택이다. 조선중기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집은 넓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고 개방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은 살림집인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ㅁ’자형 본채와 별당인 ‘쌍수당(雙修堂)’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학적 측면에서 고려시대 양식부터 조선후기 양식까지 다양한 형태의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건물 내부 구조도 화려함이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건물 자체는 부나 권세를 상징하는 중후함이나 화려함보다는 소박한 양반저택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집을 방문했을 때 종손이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설명을 친절하게 잘 해 주었고 저택 내부를 세심히 구경할 수 있었다.

이 집이 있는 마을은 풍산읍치 남쪽에 있다고 하여 하리(下里)라고 불렀다고 한다. 예안이씨(禮安李氏)가 모여사는 집성촌으로 이 집을 비롯하여 일성당(日省堂), 사직공파구택 등 고택등이 남아 있다. 마을 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넓은 들판이 있는 곳으로 마을에 고려시대 석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교통요지에 세워졌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동 예안이씨충효당(禮安李氏忠孝堂), 보물 553호, 경북 안동시 풍산읍 하리
이 집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이홍인 부자의 충과 효가 얽혀있는 유서 깊은 집이다. 이홍인 공의 후손들이 사는 집으로서 명종 6년(1551)에 지은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건축으로 추정되며 ‘충효당’이라 부른다. 안채와 사랑채가 맞붙어 있고 안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내부의 중앙은 뜰로 꾸민 소박한 집으로 남쪽과 서쪽에 바깥으로 통하는 대문이 있다. 남문이 본래의 대문이지만 지금은 서문을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서문 바깥에 평행하게 있던 바깥채를 철거한 뒤에 드나드는 문도 옮긴 것으로 보인다. 공간에 비하여 넓고 튼튼한 문틀을 하고 있으며 드나드는 문이 많아 흥미롭다. 서쪽에는 一자형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가진 ‘쌍수당’이라는 별당이 있다. ‘쌍수당’이란 충과 효를 한 집안에서 다 갖추었다는 의미로, 이홍인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나서 왜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순국한 충의를 기리고 그 후손 한오의 지극한 효를 기리는 것이다. 이 집은 부분적으로 수리를 하고 변형도 되었으나 나직한 야산을 배경으로 하고 풍산평야를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상류주택과는 달리 소박하고 서민적인 민가 성격이 강하다. <출처:문화재청>

SANYO DIGITAL CAMERA풍산읍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예안이씨충효당(보물553호). 원래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대문이 별도로 없고 별당인 ‘쌍수당’이 먼저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예안이씨충효당 살림집. 전형적인 안동지방의 양반가옥 형태인 ‘ㅁ’자형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붕이 일자 형태로 잘 설계되어서 위압감을 주지 않고 아주 평온한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중문 왼쪽에 작지만 앞면 4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다. 왼쪽 2칸은 마루, 오른쪽은 온돌방으로 되어있다. 집주인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면서 손님을 맞는 공간이다.

SANYO DIGITAL CAMERA안채 오른쪽. 안방 출입문과 창문들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중문을 들어서면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방과 부엌들이 배치되어 있다. 주인 할머니께서 마루에 앉아 오가는 손님을 살펴보는 전형적인 양반가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SANYO DIGITAL CAMERA이 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방문. 보통 한옥의 경우에는 방문 중간을 분리하는 문틀이 없으나, 이집에만 있는 양식이라 한다. 고려시대 건축양식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SANYO DIGITAL CAMERA반면에 대청마루에는 방문 중간에 분리하는 문틀이 없는데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  문을 열어 두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는 추워서 겨울을 보내기가 힘들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기둥과 마루를 연결하는 부분도 일반적인 한옥과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SANYO DIGITAL CAMERA오랜 세월에 걸쳐서 여러차례 중수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는 흔적들이 기둥에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채 오른쪽에 부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왼쪽에는 사랑채에 딸린 작은 방들이 있고, 별당인 ‘쌍수당’을 출입하는 문이 따로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이 집은 오른쪽에 안채를 출입하는 문이 별도로 있다. 남쪽을 향하고 있어 원래 출입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여러차례 중수하는 과정에서 안채 정면 방향이 서쪽에 중문을 새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정문으로 사용하는 사랑채 옆 출입문. 사랑방 아궁이가 있다. 그 옆에 외양간이 자리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를 키웠던 외양간.

SANYO DIGITAL CAMERA왼쪽 별당으로 연결되는 출입문.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 왼쪽편에는 이 저택의 별당 건물이 있다. 별당은 ‘쌍수당’이라 부르며, 충과 효를 다 갖춘 집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살림집인 본채 건물은 비교적 소박하게 지었는데 반해, 별당의 웅장하면서 화려하게 지었다. 이 별당에 올라서면 멀리 풍산지역 벌판이 한눈에 들어 온다.

SANYO DIGITAL CAMERA정면에는 ‘쌍수당’ 적힌 현판이 걸려 있고 옆쪽에 ‘백원당(百原堂)’이라는 이름도 같이 있는 것 같다.

SANYO DIGITAL CAMERA풍수사상을 반영하여 배산임수를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작은 연못.

SANYO DIGITAL CAMERA마당에서 낙동강 주변 풍산읍 넓은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안동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안동 임청각(보물182호)와 함께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영남산 동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대저택인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종택이다. 숙종대인 처음 짓기 시작하여 영조대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집앞에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칠층전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옛 절터에 지어진 집으로 보인다. 실제로 법흥사는 조선중기까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안동지역에 있는 권문세가들이 살던 고택들 중에서 건물의 크기나 구성,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위치 등을 고려해 볼 때 임청각과 함께 가장 크고 화려하게 지은 고택이다. 지금은 그 앞으로 중앙선 철로때문에  위치상의 장점이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마당이 넓고, 정원을 자연스럽게 잘 꾸며놓고 있는 아름다운 대저택이다.

건물은 살림집인 안채와 사랑채, 별당 건물인 영모당(永慕堂), 그 뒷편에 작은 정자인 북정(北亭),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과 부엌들을 배치하였다. 안채를 들어가는 중문 왼쪽편 끝에는 마루방과 온돌방이 있는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 왼쪽편에는 큰 연못과 별당인 영모당이 있다. 영모당 뒷편에 작은 정자인 북정을 따로 두고 있다.

안동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法興洞 固城李氏 塔洞派 宗宅), 안동시 법흥동
이 집의 본채는 조선 숙종 30년(1704)에 좌승지 이후식이 지었고, 북정(北亭)은 영조51년(1775)에 진사 이종주가 지었다고 한다. 솟을대문채, 사랑채, 안채, 정자와 연못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나중에 방앗간채, 사랑채, 외양간채가 더 지어졌다. 사랑마당에는 연못이 있고, 안채의 동쪽에는 3칸 크기의 사당이 있다. 안채는 정면 8칸, 측면 6칸으로 높은 자연석 축대 위에 세워졌다. 이 집은 숲이 우거진 야산과 계곡에 흐르는 물을 건물과 잘 조화시킨 사대부 저택으로서 전통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임청각과 함께 안동지역을 대표하는 대저택인 고성이씨 탑동파종택.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사찰인 법흥사가 있던 절터였다. 지금도 저택 앞에는 법흥사지칠층전탑(국보16호)이 남아 있다. 중앙선철도가 집앞을 지나가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기는 했지만, 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문간채. 별당과 정원이 있는 저택 남쪽편 모퉁이에 대문이 위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채를 출입하는 문.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는 숙종대에 지어졌는데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쌓고 건물을 지었다. 앞면 8칸 규모로 안마당이 있는 ‘ㅁ’자형 을 이루고 있는데, 중문채와 대청마루가 있는 본채를 2칸씩 바깥으로 돌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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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안마당. 4칸 규모의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과 부엌을 배치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앞면 2칸 규모의 사랑채. 별당인 영모당이 손님을 접견하는 사랑채 역할을 했기때문에 사랑채는 일반 가옥의 작은사랑채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루방에 ‘정우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안채와 사랑채.

OLYMPUS DIGITAL CAMERA이 집은 다른 고택에 비해서 별당과 정원을 크고 웅장하게 꾸며놓고 있다. 마당에 넓은 연못이 있고, 앞쪽에는 별당인 영모당이, 뒷편에는 작은 정자인 북정이 있다. 정원에는 다양한 수목들이 심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별당 건물인 영모당.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연못과 정원을 내려다 보고 있다. 별당에서 정원과 바깥쪽 낙동강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별당 뒷편에 있는 작은 정자인 북정. 높은 곳에 위치하여 낙동강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다.

SANYO DIGITAL CAMERA안채 뒷편에 있는 불천위조상을 모시는 사당. 숙종대 관리를 지낸 이후영을 불천위 조상으로 모신다고 한다. (?)

SANYO DIGITAL CAMERA2009년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
4. 문화재청

 

안동 임청각(보물182호), 독립운동가 이상룡을 배출한 99칸 대저택

경북 안동시 법흥동에 남아 있는 고택인 임청각(臨淸閣, 보물182호)이다. 조선중기 중종때 관리였던 이명이 처음 지었으며, 18세기에 크게 중건하였다고 한다. 권문세가의 세거지가 많은 안동지역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99칸 대저택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중앙선 철도가 집앞을 지나가면서 행랑채를 비롯한 부속건물들이 철거되어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집은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을 비롯하여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유서깊은 곳으로 국가현충시설로도 지정되어 있다. 영남산 동쪽 기슭에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는 배산임수의 풍수적 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저택으로 낙동강변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부근에 있는 법흥사지칠층전탑과 함께 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영조대 중건하면서 99칸으로 크게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살림집에 해당하는 안채와 이에 딸린 행랑채, 조선중기에 지은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 별당 건물이 군자정(君子亭)과 사당 등이 남아 있다. 안채는 용(用)자가 옆으로 누운 형태를 하고 있으며, 군자정은 ‘丁’형을 하고 있다. 사당을 제일 높은 곳에, 그 아래에 사랑채, 안채, 행랑채가 차례로 배치되어 있어 건물간 위계질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안동 임청각(臨淸閣), 보물182호, 경북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은 중종 14년(1519)에 형조좌랑을 지냈던 고성이씨 이명(李洺)이 지은 집으로 원래는 99칸의 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70여 칸만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 중 하나인 이 집은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년)의 생가이며, 그의 아들과 손자 삼대에 걸쳐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용(用)자 가로 누은 듯한 독특한 평면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남녀와 계층별로 매우 뚜렷한 공간 구분을 이루고 있어 건물의 위계질서가 매우 분명함을 알 수 있다. 별당형식의 정자 건물인 군자정(君子亭)은 임청각의 사랑채로서 평면이 ‘丁’자를 옆으로 누인 형태이다. 이 정자 내부에 이곳을 찾은 시인묵객들이 아름다운 자연에 취하여 지은 시들이 걸려 있다. 임청각이란 당호는 퇴계 이황의 친필로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동부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에서 따온 것이다. 건물 앞을 흐르는 낙동강과 영남산 자락에 터전을 잡은 건물이 자연환경과 잘 어울린다. <출처: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안동 임청각(보물182호). 조선시대 권문세가들의 세거지가 많았던 안동지방에서도 그 규모가 돋보였던 99칸의 대저택이다. 비교적 지대가 높은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부근에 있던 칠층전탑과 함께 안동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이가옥은 임시정부 국무령을 역임한 이상룡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으로 국가현충시설로도 지정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임청각은 동쪽 높은 곳에 사당과 별채인 군자정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자정은 이집을 처음 지은 중종때부터 있었던 건물로 우리나라에 가장 오래된 한옥이자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바깥주인이 손님을 접견하는 사랑채로 지어진 건물로 ‘丁’자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온돌방 아궁이와 툇마루 난간.

OLYMPUS DIGITAL CAMERA군자정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 풍경. 지금은 중앙선 철도가 막혀있으며, 낙동강 주변 또한 도심으로 개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군자정 뒷편에는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저택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은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제사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반칸 정도의 툇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에서 내려다 본 군자정과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집안사람들이 거처했던 안채와 행랑채. ‘用’형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아래쪽에 하인 등이 거처하는 행랑채가 있으며, 가운데 마당이 있는 안채와 바깥사랑 등이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아래쪽에 위치한 행랑채. 바깥쪽으로 노출된 건물에는 광들이 있으며, 안채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바깥쪽으로 돌출된 작은 사랑채와 행랑채가 우물을 중심으로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안채를 출입하는 중문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에서 바깥으로 돌출된 작은 사랑채. 대청마루 2칸과 온돌방 1칸으로 되어 있다. 대청마루를 통해 안채의 방들과 연결된다.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에는 작은 행랑채가 돌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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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사람들이 거처하는 공간인 안채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임청각 앞을 지나는 길. 중앙선 철도가 지나가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으로 법흥사지칠층전탑과 종갓집인 고성이씨 탑동파종택이 자리잡고 있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국보 16호),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塼塔)

안동시 법흥동 법흥사(法興寺) 옛 절터에 남아 있는 칠증전탑(국보16호)이다.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다.  탑은 1층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쌓아 올렸다.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규모에도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탑의 기단부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천왕상과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다. 탑의 중앙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설치된 감실과 연결하고 있다. 탑의 지붕에는 기와를 얹은 흔적이 있어 전탑이 목탑을 모방하여 만들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탑(塼塔)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쌓아 올린 탑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탑의 형식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했지만 거의 남아 있있지 않으며 이 탑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탑이다.

안동시 법흥동은 안동시내에서 낙동강변을 따라서 안동댐으로 연결되는 길에 위치하고 있다. 탑이 있는 마을이름이 법흥동인 것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법흥사(法興寺)가 있었다는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는 조선중기까지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옛 절터에는 고성이씨 탑동파(塔洞派) 종택이 자리잡고 있다. 낙동강과 반변천이 합류하는 경치가 뛰어난 곳에 자리잡은 탑으로 조선시대까지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중앙선 철도가 건설되면서 고택인 임청각, 고성이씨탑동파 종택과 함께 철로에 갇혀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국보16호), 낙동강 본류와 반변천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 보이는 법흥사 옛 절터에 홀로 남아 있다. 절터에는 고흥이씨 탑동파종택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는 이 지역을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이정표가 되었지만, 지금은 중앙선 철도에 가려 마치 숨어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은 1층 기단에, 탑신을 7층으로 쌓아 올린 전탑이다. 높이 17m에 이르는 거대한 탑이지만 비례가 충실하여 안정감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은 1층으로 높지 않은 편이다. 기단 각면에는 화강석에 사천왕상과 팔부중상을 새겨 놓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기단부에 시멘트를 발라 놓았다. 여러 차례 수리과정에서 원래의 모습과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감실이 있는 정면 오른쪽 기단에 새겨진 조각상. 부조로 돋을새김하였는데 조각수법은 양호한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정면 왼쪽편 조각상.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기단부에 새겨진 조각상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기단부에 새겨진 조각상.

OLYMPUS DIGITAL CAMERA탑신 1층 몸돌에는 불상을 올려 놓는 감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도록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지붕돌에는 기와를 얹은 흔적이 남아 있어, 전탑이 목탑을 모방하여 만들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09년 7월. 당시에는 “안동 신세동7층전탑”이라 불렸다.

OLYMPUS DIGITAL CAMERA법흥사지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종택.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法興寺址 七層塼塔), 국보 16호, 경북 안동시 법흥동
이 탑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이다. 탑의 높이는 16.8m, 기단 폭은 7.75m이며, 단층기단에 7층의 몸돌을 차츰 크기를 줄여가며 쌓아올려 놓았다. 이 탑이 있는 일대가 법흥동인 점으로 미루어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건립되었다는 법흥사(法興寺)가 있었다는 것으로 추측되나, 탑 이외의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이 터에는 고성이씨 탑동파(塔洞派) 종택이 있다. 이 탑은 기단부와 탑신부 및 탑두부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 탑두부는 노반(露盤)이 남아 있고, 상륜부(相輪部)는 유실되었다. 기단부에는 네모꼴로 팔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 한 판석이 축조되어 있으며, 팔부중상과 사천왕상의 조각수법에는 서로 차이가 있다. 각층 지붕 윗면에는 기와를 이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는 목탑이 전탑보다 앞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안동의 역사서인 『영가지(永嘉誌)』에는 ‘조선 성종 18년(1487)에 고쳐졌고, 당시까지 법흥사가 3칸 정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5년)

<출처>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백과,
4.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