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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북대암, 북쪽 봉우리 아래 작은 암자.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북대암(北臺庵)이다. 운문사 북쪽 600 m 정도 떨어진 봉우리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운문사 일대 5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신승이 수도했던 곳에서 200 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처음을 창건된 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운문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암자로 원래는 불전과 수행공간을 겸한 작은 전각만 있었으나 지금은 산신각, 칠성각과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5사찰 중 북쪽 소보갑사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1-20200106청도 운문사 북대암. 운문사를 내려다 보는 북쪽 봉우리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운문사 5사찰을 창건했다는 신승이 수행했던 곳 부근이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15-20200106북대암에서 내려다 보이는 운문사. 이 사찰을 대표하는 장면이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8-20200106운문사 북쪽 봉우리 아래에 북대암이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9-20200106북대암은 운문사에서 600 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자동차로 암자 아래까지 올라올 수 있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10-20200106북대암 옆 운문사를 창건했다는 신승이 수행했던 계곡이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7-20200106아래에서 본 북대암. 불전 아래에 여러동의 요사채 건물들을 두고 있다. 이곳에 머무는 승려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11-20200106안개 낀 운문사 일대.

청도 운문사 북대암 03-20200106운문사 주불전.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어 극락전이라 할 수 있는 불전이다. 원래 불전과 요사를 겸했던 암자건물이다.

청도 운문사 북대암 04-20200106북대암 뒷편 북대라 불릴 수 있는 바위봉우리와 그 아래에 있는 독성각과 산신각.

청도 운문사 북대암 13-20200106그 옆에 있는 칠성각.

청도 운문사 북대암 06-20200106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요사채.

청도 운문사 북대암 05-20200106요사채 위 장독대

청도 운문사 북대암 02-20200106그 뒷편으로 운문사를 창건한 신승이 수행했던 계곡이 있다.

호거산 북대암(北臺庵)
북대암은 운문산성(일명 지룡산성) 바로 아래에 세워져 있으며 운문산에서 최초로 세워진 암자이다. 북대는 운문사에서 보면 북쪽에 위치하고, 제비집처럼 높은 곳에 지어져 있어서 “북대”라 이름 지어졌다. 북대암에서 동쪽으로 약 200 m 옆 계곡을 건너 돌로 축대를 쌓은 곳이 있다. 이곳은 옛날 보양국사가 터를 잡은 곳이며 오작갑이 지어져 있다. 신승이라고만 전해져 온 창건자는 삼년만에 오작갑을 짓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옆으로 30보 앞뒤로 10여보 정도의 채마밭에서 운문사를 내려다 보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특히 오후 4시 정도의 햇빛을 받을 때는 정말 멋진 선경이 펼쳐진다. 또 한번 뒤돌아보면 원효대사의 발심수행장에 있는 시 한 수가 생각이 난다. “높은산 험한 바위는 지혜있는 사람이 거처할 곳이요. 푸른솔 깊은 계곡은 수행하는 자가깃들 곳이니라” 북대암은 법당을 비롯한 산신각, 칠성각, 요사 및 신도들의 숙소인 동굴형 요사, 총 다섯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제일 위쪽에 축대를 쌓아 산신과 독성을 모시고, 그 옆에 칠성각, 아래에는 법당이 있다. 법당에는 주불로 아미타부처님, 협시보살이신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70년대까지는 한 채의 집에 인법당과 스님들의 방도 있었으나 지금은 전체를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 옆에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가 있다. 앞마당은 시멘트 바닥인데 아래에는 방으로 꾸며져 신도들의 숙소로 사용된다. 북대암은 원래 운문사를 창건하기 전에 세워졌다고 하나 지금은 운문사에 소속된 “산내암자”이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청도 운문사 내원암, 동쪽 계곡에 세워진 암자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내원암(內院庵)이다. 운문사 동쪽 1 km 정도 떨어진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시대 원응국사가 창건했으며, 조선 숙종 때(1694년), 순조 때(1831년) 다시 중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일제강점기에 옛 암자터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전각으로는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북대암이나 사리암과는 달리 아늑한 계곡 속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5사찰 중 동쪽 비슬갑사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3-20200106청도 운문사 내원암. 운문사 동쪽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1-20200106내원암 주불전인 무량수전. 내원암은 일제강점기에 다시 지어진 암자로 주불전을 중심으로 불전과 요사채가 배치된 전형적인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7-20200106대웅전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

청도 운문사 내원암 05-20200106대웅전 앞 마당 동쪽편에 있는 전각

청도 운문사 내원암 10-20200106맞은편에 있는 요사채

청도 운문사 내원암 06-20200106뒷편에 있는 요사채들

청도 운문사 내원암 08-20200106무량수전 뒷편 높은 곳에 위치한 삼성각.

청도 운문사 내원암 09-20200106삼성각 앞에서 내려다 본 모습.

청도 운문사 내원암 02-20200106내원암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청도 운문사 내원암 04-20200106내원암 옆으로 흐르는 계곡.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청도 운문사 사리암, 남쪽 계곡에 세워진 암자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사리암이다. 사리암은 운문사에서 남쪽으로 3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에서 1 km 정도 떨어진 해발 500 m 정도의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경사가 심한 바위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전각으로는 관음전을 비롯하여 천태각, 산령각, 요사채 등이 있다. 특히 천태각 아래 사리굴은 운문사 4굴 중 하나로 손꼽히는 기도처이다.

신라 진흥왕 때 운문사를 비롯하여 5곳에 절이 세워졌는데 그때 남쪽에 세워졌던 천문갑사는 아니지만 그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리암은 고려초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구한말 1845년에 승려 효원이 중창하였다. 이후 나반존사상을 봉안하면서 나반존자의 기도처로 알려졌다. 나반존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일컫는 말로 독성이라고도 부른다.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중생을 제도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1-20200106청도 운문사 사리암. 운문사에서 남쪽 삼계봉 중턱 경사진 지형에 세워져 있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15-20200106사리암 주불전인 관음전.

청도 운문사 사리암 16-20200106관음전 바위 아래에 천태각과 산령각이 있다. 천태각은 나반존자를 모신 전각으로 일반 사찰의 독성각에 해당한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17-20200106천태각 아래 있는 사리굴. 운문사 4굴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공간이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14-20200106암자 아래에 있는 요사채. 많은 승려들이 머무는 것으로 보인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8-20200106사리암을 오르는 길이 시작되는 계곡에 위치한 주자창. 운문사에서 남쪽으로 계곡을 따라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7-20200106주차장에서 보이는 사리암. 산봉우리 중턱 험한 지형에 암자가 세워져 있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6-20200106사리암 오르는 길. 암자 아래까지 자동차길이 있기는 하지만 경사가 심하고 험한 편이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4-20200106사리암 오르는 길.

청도 운문사 사리암 05-20200106도로 중간 쯤에서 보이는 남쪽 운문산 계곡

청도 운문사 사리암 03-20200106자동차가 올라올 수 있는 끝부분. 이곳에서 10여 분을 걸어 오르면 사리암에 도착한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02-20200106사리암 옆을 흐르는 험준한 계곡

청도 운문사 사리암 09-20200106계곡을 지나는 다리.

청도 운문사 사리암 10-20200106사리암을 오르는 계단길.

청도 운문사 사리암 11-20200106중간쯤 약간 평탄한 길도 있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 12-20200106아래에서 보이는 사리암.

청도 운문사 사리암 13-20200106사리암 입구 풍경.

청도 운문사 사리암 18-20200106사리암 요사채 앞 작은 마당.

청도 운문사 사리암 19-20200106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출처>

  1.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합천 해인사 홍제암(보물 1300호), 사명대사가 입적한 유서깊은 암자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에 있는 암자인 홍제암(弘濟庵, 보물 1300호)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큰 역할을 했던 사명대사가 머물다 입적한 곳이다. 그의 사후 광해군이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홍제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의 사후 영정을 모시기 위해 현 건물이 세워졌으며 여러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불상을 모시는 불전과 생활공간인 요사채를 겸하고 있는 인법당(因法堂) 형식을 하고 있다. 양쪽이 누마루처럼 돌출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工’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다. 가운데 불상을 모시는 불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영정을 모시는 조사전을 비롯하여 여러 기능의 방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툇마루를 통해 연결되고 있다. 여러 기능의 공간이 한 건물에 있는 독특한 형태의 암자로 건축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합천 해인사 홍제암(보물 1300호). 사명대사가 마지막으로 머물다 입적한 유서깊은 암자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출입문인 보승문. 유교식 삼문 형식을 하고 있는 출입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건물은 그의 사후 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불전과 생활공간이 한 건물에 있는 특이한 형태의 암자로 ‘工’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다. 1970년대에 크게 수리하여 지금은 새로 지은 건물처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가운데는 불상을 모신은 불전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홍제암’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내부에 모셔진 불상.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은 앞면 2칸의 누마루처럼 생긴 형태로 ‘표충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영자각(影子閣)이라 하며 고승 16명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영조 때 표충사라고 불렀는데 밀양에 표충사가 있어 이후에 이곳을 폐하였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편도 앞면 2칸의 누마루처럼 생겼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의 공간들은 툇마루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안쪽에 생활공간인 요사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홍제암.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서쪽편에 있는 큰 규모의 요사채.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 있는 작은 요사채. 승려들이 머무는 공간이 상당히 많은 편으로 해인사 승려들이 머물기를 선호하는 공간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홍제암 동쪽 석장비와 승탑들이 있는 공간과 연결되는 작은 협문.

OLYMPUS DIGITAL CAMERA사명대사 석장비(보물 1301호). 사명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비문을 지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훼손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장비와 함께 있는 승탑과 비석들.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석장비 10-20180205홍제암 뒷편 언덕에 있는 사명대사 사리를 모신 승탑(보물 1301호)

홍제암, 보물 1300호
홍제암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가 선조대왕의 하사로 1608년에 창건하여 수도하시다가 입적하신 곳이다. 1614년(광해 6)에 혜구 스님이 양자전을 지어 서산, 사명, 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하였고, 1674년에 현종께서 홍제당(암)을 사핵하였으며 그동안 6차례 보수하였는데, 현존 건물은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예산 조치로 1979년 10월에 완전 해체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보물 1301호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가 있다. 사명대사 부도 및 탑비는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으로 1612년(광해 4)에 건립하였고, 1943년에 일본인 합천 경찰서장이 파손하였던 것을 1958년에 복원하였다. 부도는 사명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석조물로서 1610년 입적하신 해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속초 설악산 계조암 석굴, 흔들바위와 함께 있는 석굴 사원

강원도 속초시 설악악동에 있는 계조암석굴이다. 설악산 신흥사 부속암자로 울산바위(명승 100호) 아래에 있는 작은 석굴사원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향성사와 함께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자장율사, 원효대사, 의상조사 등 고승들이 수행을 하던 작은 석굴로 여러 조사들이 대를 이어 수행하였다고 하여 계조암(繼祖庵)이라 부른다. 설악산의 명소인 흔들바위와 같이 있는데 여러 바위 중에서 둥글게 보이는 목탁바위 밑 굴속에 암자가 있다.

계조암의 중건에 대한 내력은 게 알려진 바가 없으며 구한말 승려 응화가 삼성각을 지은 후 암자로서 모습을 갖추고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계조암 석굴 뒤로는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울산바위가 보이고 앞으로는 설악산 계곡과 여러 봉우리들이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는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와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작은 노점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암자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설악산 계조암. 울산바위 아래에 있는 작은 석굴사원으로 고승들이 대를 이어 수행을 했다는 곳이다. 석굴 앞에는 설악산의 오랜 명소인 흔들바위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흔들바위가 있는 계조암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계조암 앞에 있는 큰 바위는 100여 명이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하여 ‘식당암’이라고도 부른다. 한쪽편에는 설악산 명소인 흔들바위가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08년 모습. 바위 위에는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가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설악산 흔들바위. 우각석(牛角石)이라고 불리는 이 바위는 원래 두개가 있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계조암 석굴. 울산바위 아래 목탁바위 밑 석굴에 불상을 모시고 수행했다고 한다. 석굴이 주불전에 해당하며 옆쪽에 삼성각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내부. 상당히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어 극락전에 해당하는 불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앞에서 내려다 본 흔들바위와 식당암. 그 너머로 권금성 봉우리와 설악산 계곡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 있는 삼성각. 나반존자 등을 모시고 있는 불전으로 구한말에 처음 조성된 전각이다. 예전에 2층 건물 형태로 있었는데 최근에 기단을 다시 쌓고 그 위에 불전 건물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2008년 계조암 삼성각의 모습. 불전과 요사채를 겸하고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굴 왼쪽편에 있는 요사채. 석축을 쌓아서 터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삼성각 아래에 있는 큰 바위. ‘계조암’이라 적힌 큰 글자를 비롯하여 많은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2008년에는 이곳에 음료나 먹을 것을 팔던 작은 가게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고 그 자리에 흔적만이 남아 있다. (윗쪽 사진)

SANYO DIGITAL CAMERA전형적인 수학여행 사진 장면이 항상 연출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흔들바위 뒷편 햇빛에 빛나는 울산바위.

계조암 석굴
계조암은 신라 652년 (진덕여왕 6)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자장은 이곳 석굴에 머물면서 향성사(신흥사)를 창건하였다. 동산, 각지, 봉정에 이어 의상, 원효 등 조사의 칭호를 얻을만한 승려가 이어져 수도하던 도장이라 하여 계조암(繼祖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창건이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신흥사사적기》애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1890년(고종 27년) 응화가 삼성각을 세웠으며, 1908년 동암이 단청을 하고, 동고가 후불탱화를 조성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석굴과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석굴 안에 봉안된 부처님과 삼성각에 모신 나반존자상은 특히 영험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어 예로부터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석굴 앞에는 문 역할을 하는 쌍용바위가 있고, 쌍용바위 앞에는 100여 명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반석이 있어 ‘식당암’이라 부른다. 식당암 머리 부분에는 흔들바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유각석이 있다. 우각석은 원래 두 개였는데, 한 풍수 학자가 불가의 영기가 넘쳐 흐름을 시기하여 한 개를 굴려 떨어뜨렸다고 한다. 석굴법당은 목탁이라 불리는 바위에 자리잡고 있어 다른 기도처보다 영험이 크다고 하는 목탁바위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안내문, 계조암, 2017년)

<출처>

  1. 계조암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