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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

충남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절터에 있는 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5.5 m의 이 불상은 약단지를 들고 있어 약사여래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투박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옷주름이나 얼굴의 표현 등에서 세련된 조각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 석조불상에 비해 조형미나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남아 있는 절터는 아산 외암마을 입구 맞은편 낮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절터에 남아 있는 사적비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창건한 용담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고려초 광종 때 중창하였다고 한다. 절터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고려시대 교통요지에 세워졌던 여러 사찰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

, 고려초에 조성된 불상으로 투박하지만 약간 세련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 얼굴은 크고 둥글게 표현하고 있는데 귀가 어깨선까지 닿을 정도로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한손에 약병을 들고 다른손으로 받치고 있는 약사여래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불상이 남아 있는 절터. 고려시대에 중창한 용담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보물 536호, 고려시대, 충남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약사불은 질병과 무지의 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으로, 이 불상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5.5 m의 입상이다. 불상의 얼굴은 둥근 형으로 볼 살이 두툼하게 처리되었고, 눈은 가늘게 뜨고 있고 코는 오똑하며 입은 전체적으로 작은 편이다. 귀가 어깨선까지 닿고 목에는 뚜렷하게 삼도가 표시되어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감싸 발목까지 내려오고, 왼쪽과 오른쪽의 대칭이 잘 어우러진 타원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약단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왼손으로 받치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증명한다. 불상 옆에는 용담사 사적비가 있는데, 내용은 용담사라는 절을 신라 애장왕 때에 원효가 처음 지었고, 고려 광종 때 혜명조사가 다시 건립하였다는 것이다. 불상은 조각한 수법과 양식으로 보아 고려초기 10세기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아산시청, 2010년)

<출처>

  1. 아산시청
  2. 문화재청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금동약사여래입상(보물), 약병을 든 약사여래를 표현한 불상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금동약사여래입상(보물)이다. 높이 29 cm의 작은 금동불상으로 손에 약병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 상투모양 머리인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에는 미소가 없어 근엄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귀를 크게 만들었다. 대좌와 광배가 남아 있지 않으며, 발밑에는 대좌에 꽂았던 촉이 남아 있다. 외형이나 얼굴 표정 등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와 비슷하다.

통일신라는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대표하는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삼국시대와는 달리 통일신라만의 고유한 양식이 많이 형성되었다. 통일신라 불상이나 석탑을 보면 고려시대에 비해서 조형미나 조각수법, 예술적인 표현 등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에 고구려 불상에서 보여주었던 생동감 넘치고, 힘있는 모습은 다소 줄어들고 후대에 들어서는 정형화되는 경향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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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약사여래입상, 보물, 통일신라 8세기>

 대좌와 광배는 남아 있지 않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한 금동불상으로 귀를 크게 표현했으며 손에 약항아리가 온전히 남아 있다.

금동약사여래입상(金銅藥師如來立像)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높이 29㎝의 자그마한 금동불로,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없어졌지만 비교적 잘 보존된 약사여래입상이다. 약사여래는 모든 중생의 질병을 구제해준다는 의미를 지닌 부처로 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특징이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고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풍만한 얼굴은 미소없이 근엄한 인상이며 눈· 코·입의 선이 명확하고 치밀하여 세련된 조각미가 느껴진다. 두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게 표현되었고,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지그재그형 옷주름과 U자형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당당하고 건장한 신체는 두껍게 축 늘어진 옷으로 인해 다소 둔중해진 듯 하다. 오른손은 허리 아래로 내려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를 맞대고 있고, 왼손에는 약항아리를 들고 있다. 대좌는 없지만 불상을 대좌에 꽂았던 뾰족한 촉이 두 발 밑에 하나씩 남아 있으며, 불상 뒷면에는 주조할 때 뚫은 구멍 자국이 남아 있다. 높다란 머리묶음과 얼굴 표정 등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비슷하여 8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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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 본 모습. 양어깨에 옷을 걸쳐 입었는데 고승의 영정이나 지장보살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불상에 이런 복식을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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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본 모습

 

경주 남산 삼릉곡 제6사지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마애선각여래좌상

경주 남산 삼릉곡 6번째 절터 뒷편 큰 바위에는 얼굴부분만 선각으로 새겨진 마애불상과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있다. 석조약사여래좌상은 석가여래가 도를 깨닫는 순간을 표현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약사여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약사여래는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로 둥근 약단지를 들고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광배에는 불상과 꽃무늬, 불꽃무늬로 화려하게 장식고 있으며 대좌에는 향로와 공양천인상을 새겨놓고 있다. 신체의 표현이나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화려한 광배 장식 등 9세기 불상의 특징도 같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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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삼릉곡 석조약사여래좌상>

경주 남산 삼릉곡 석조약사여래좌상, 통일신라,9세기,
이 불상은 원래 경주 남산 삼릉곡 정상 가까이에 있는 마애대불 건너편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석가모니가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항마촉지인의 손갖춤을 하고 있는 약사불로 근엄하면서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통통한 얼굴, 건장한 신체, 얌전하게 흘러내린 계단식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절정기인 8세기 불상의 여운이 보인다. 그러나 침울한 얼굴표현, 생감감이 둔화된 웅크린 자세, 화려하고 장식적인 광배와 대좌 등 9세기 불상의 특징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8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만든 불상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석조약사여래좌상>

남산 삼릉계곡 6번째 절터 언덕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옮겼다고 한다. 광배에 불상과 불꽃무늬, 꽃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을 올려 놓은 연화대좌.>

OLYMPUS DIGITAL CAMERA<대좌 안상에 공양인상과 화로 등을 새겨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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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있던 자리>

남산 삼릉계곡 6번째 절터 뒷편에 이 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부근에서 기와 등이 발견되어 원래 불전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릉곡 제6사지 마애선각여래좌상과 석조약사여래좌상터
석조여래좌상 뒤쪽 30 m 바위 절벽 면에 얼굴부분만 선각으로 새겨진 마애불상이 있다. 부드러운 선으로 새겨진 원만한 상이다. 바위 면에 비하여 불상이 너무 커서 본래부터 완전한 모습의 상은 아니었던 듯하다. 바위속에 숨어 있던 부처님이 이 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 반겨주는 모습은 아닐까? 이 바위의 오른쪽 바위 절벽 중턱에는 1915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있었다.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어 작은 전각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OLYMPUS DIGITAL CAMERA<마애선각여래좌상>

OLYMPUS DIGITAL CAMERA<절터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

<출처>

  1. 안내문, 국립중앙박물관, 2016년
  2. 안내문, 경주시청,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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