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오층석탑

서산 개심사 오층석탑

충남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 경내에 있는 오층석탑이다. 고려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단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았다. 기단은 불상 대좌의 연꽃무늬가 새겨진 받침돌 위에 올려져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석탑의 크기도 작고, 조각수법이나, 석탑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간의 비례 등이 다른 석탑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서산 개심사(開心寺)는 백제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고려말에 크게 중수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수만과 서산지역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상왕상(象王山)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말 왜구의 피해가 극심할 때 해미읍성과 함께 지역의 중심 사찰로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찰 경내에는 대웅전(보물143호)를 비롯하여 여러 전각들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서산 개심사지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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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렸다. 고려 말에 세워진 것으로 탑의 크기도 작고 전체적인 조형미나 세부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기단부. 불상대좌처럼 기단을 연꽃무늬가 조각된 받침돌 위에 올려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5층으로 된 탑신.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몸돌 모서리에 기둥을 세웠으며, 지붕돌은 뚜껍고 평평하며, 끝을 과도하게 들어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보물)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道岬寺) 경내에 있는 오층석탑(보물)이다. 높이 5.45m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았다. 원래 단층기단 위에 탑신이 올려져 있었는데, 발굴.조사 과정에서 하층기단부가 발견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구성이나 세부 조각수법에서 고려초기 석탑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적절하며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도갑사는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도선국사가 영암 출신인 까닭에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세조때 수미대사가 크게 중창하여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도갑사에는 도선국사 영정을 모신 국사전과 도선국사비(보물1395호)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해탈문(국보50호), 석조여래좌상(보물89호), 오층석탑(보물1433호) 등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도갑사 오층석탑(보물). 고려초에 만든 오층석탑으로 2층부터 탑신의 크기와 높이를 점진적으로 낮아져서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기단부에는 기둥모양 외 특별한 장식이 없다.

SANYO DIGITAL CAMERA5층으로 된 탑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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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 본 오층석탑.

SANYO DIGITAL CAMERA도갑사는 영암출신인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영암 도갑사 오층석탑, 보물 1433호,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탑이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예배의 대상이다. 도갑사 탑은 다섯층으로 돌을 깎고 다듬어서 만든 탑이다. 기단과 몸체에 해당하는 탑신, 그리고 탑의 몸체들을 덮고 있는 지붕 모양의 옥개석과 탑의 머리부분을 장식하는 상륜부(탑의 꼭대기 부분)로 구성되어 있다. 탑 전체를 받치는 지대석과 하나의 층으로 된 기단부의 면석은 4장의 널찍한 돌로 짜 맞추었다. 1층에서 5층으로 올라갈수록 각 층의 몸체들이 낮아져서 안정감이 있다. 1층의 몸체들은 보통 하나의 돌로 처리하는데 4장의 널찍한 돌로 짜 맞춘것이 특이하다. 탑의 조성시기는 고려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칠곡 정도사지 오층석탑(보물), 경북지역 향리들이 세운 고려 석탑

대구시 수성구 국립대구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정도사지 오층석탑(보물)이다. 통일신라 석탑의 영향을 받은 고려초기 석탑이다. 높이 4.64m의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았다. 정형화된 형태이지만 통일신라 말의 석탑에 비해 약간 크게 만드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들도 보이고 있다. 아래층 기단 각면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기둥모양과 탑의 조성 내력을 기록한 명문이 한쪽 면에 새겨져 있다.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진 탑신 1층 몸돌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이 새겨져 있다. 기단 위에 1층 몸돌을 받치는 사잇돌이 있으며, 지붕돌 끝을 살짝 들어올리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있다. 전성기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 그 규모나 조각수법, 조형미 등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다른 지역 고려 석탑에 비해서는 조형미나 조각수법이 양호한 편이다.

경북 칠곡군 정도사 절터에 남아 있던 석탑이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경부선 건설과정에서 경복궁 마당으로 옮겼던 것을 1994년에 대구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탑에서는 향리들이 고려 때인 1019부터 1031년까지 오층석탑을 세운 과정을 기록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칠곡 정도사지 오층석탑(보물). 고려초 칠곡지역 향리들이 10여년에 걸쳐서 조성한 오층석탑이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고려 석탑의 특징들도 반영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아래층에는 안상을 각면에 3개씩 새겨놓고 있다. 안상 안에 새겨진 것은 귀꽃이다. 위층 기단에는 기둥 모양을 새긴 것 외 특별한 장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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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 기단 한쪽면에는 탑의 조성 내력에 대한 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1층 몸돌에는 문짝모양이 새겨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지붕돌 아래 받침은 4단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었으며 모퉁이를 살짝 들어 올리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들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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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리들이 탑을 세운 과정을 기록한 문서.

약목군(지금의 경북 칠곡군 약목면)의 향리들이 정도사 석탑을 건립한 과정을 기록한 무선이다. 현종 10년(1019)부터 현종 22년(1031)에 걸쳐 오층석탑을 세운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문서는 1905년 경부선 철도를 건설할 때, 철도에 인접한 절터의 석탑을 해체하던 과정에서 탑속의 놋그릇에 담긴 채로 발견되었다.
“(약목)군사의 호장인 인용교위 이원민과 부호장인 응률, 이성, 품유, 신언, 그리고 호정인 굉운과 부호정인 성헌, 관인 광책 등이 태평 3년(현종14, 1023) 계해년 6월 어느날 (그 탑을) 정도사에 안치하도록 의견을 출납하였으므로..” (중앙박물관,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북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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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본 모습.

칠곡 정도사지 오층석탑, 보물357호, 고려 1031년, 높이 4.64m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정도사 터에 있던 석탑으로, 1924년 경복궁으로 이전했다가 1994년에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옮겨 왔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이은 고려 초의 석탑이다. 원래 5층이었느나 현재는 5층 지붕돌은 남아 있지 않고, 5층 몸돌 위에 노반만 올려져 있다. 아래층 기단 각 면에는 안상을 세구씩 조각하고 안상무늬의 아랫부분에 귀꽃을 표현하여 장식미를 더했다. 위층 기단 한 면에는 이 탑이 고려 현종 22년 태평 11년(1031)에 국가의 안녕을 빌기 위하여 건립하였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을 보존하기 위해 2001년에 새로운 면석으로 교체하여 조립하였으며, 원래의 면석은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1층 몸돌 정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이 새겨져 있다. 탑 안에서는 형지기와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는데, 형지기에는 이 탑의 이름과 1019년부터 1031년에 걸쳐서 상주계 경산부에 속하였던 약목군의 향리와 백성들이 발원하여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안내문, 대구박물관, 2013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천안 천흥사지 오층석탑(보물), 고려초에 조성된 웅장한 석탑

충남 천안시 성거읍 천흥사(天興寺) 절터에 있는 오층석탑(보물354호)이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높이 5.27m의 오층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았다. 윗층 기단은 각 면마다 1개씩 4개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은 높게,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높이가 줄어든다. 지붕돌은 얇고 너비가 좁으며, 밑받침이 3단으로 매우 얕게 조각되었다. 전체적으로 크고 웅장하고 구성에도 규율성을 보인다. 작고 정형화된 모습을 보였던 통일신라 말 석탑에 비해 크고 웅장하게 조성되었던 고려초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천흥사는 천안 성거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찰이었다. 천흥사종(국보280호)를 비롯하여 오층석탑(보물354호), 당간지주(보물99호)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성종대에 폐사지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초 많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했던 사찰들이 억압을 받았던 시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천안 천흥사지 오층석탑(보물).  높이 5.27m의 크고 웅장한 석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2층으로 된 기단부. 아래층 기단 각면에는 안상을 새겨 놓았으며, 윗층 기단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1개씩의 돌로 만들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몸돌과 지붕돌을 작고 낮게 만들었는데 그 비율이 적절하여 안정된 느낌을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1층 몸돌.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얇고 좁게 만들었으며, 처마는 수평이며 끝을 살짝 들어올린 고려석탑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지붕돌 아래 받침은 3단으로 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층석탑에 세워져 있는 천흥사 절터.

천안 천흥사지 5층석탑, 보물 354호,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천흥사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거대한 모습으로, 고려왕조 시작 직후 석탑의 규모가 다시 커지던 당시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기단은 아래층이 너무 얕아 마치 1층으로 된 듯 하다. 아래층 기단의 4면마다 7개씩의 안상이 촘촘히 조각되어 있다. 위층 기단의 4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몸돌은 4면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몸돌은 4면의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뚜렷하게 새겨 놓았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완만하다. 지붕돌은 얇고 너비가 좁으며, 밑받침이 3단으로 매우 얕게 조각되었다. 경사면은 가파르다가 이내 수평을 이루고 있어 그 반전감이 크고, 네 귀퉁이에서의 들림은 날아갈 듯 가뿐하다.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돌의 구성에도 규율성이 있다. 특히 탑신에서 보이는 완만한 체감율은 온화하고 장중한 느낌을 더해준다. 절터에는 탑 외에도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보물99호)가 남아 있으며, 동종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동종은 남겨진 기록에 의해 고려 현종 원년(1010)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탑 역시 이와 시대를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4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보물), 정림사지 석탑을 계승한 석탑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사(無量寺) 경내에 있는 오층석탑(보물)이다. 이 탑은 1층 기단 위에 5층탑신을 올려놓은 고려시대 석탑이다. 기단은 각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웠다. 탑신 몸돌은 지붕돌에 비해 높이가 낮은 편이나 전체적으로는 비례가 적절하여 안정적이며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지붕돌은 넓고 얇으며, 끝이 살짝 들려 있다. 전체적으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연상시킨다. 익산 왕궁리오층석탑과 함께 백제 석탑 양식이 잘 반영된 대표적인 석탑이다.

부여 무량사는 조선 세조때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로 경내에 김시습 초상화를 모시는 영정각과 그의 부도탑이 있다. 부여 서쪽 만수산에 있는 무량사는 삼국시대 떄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중창하였다. 사찰 경내에는통일신라 때 금당(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극락전(보물 356호), 오층석탑(보물185호)와 석등(보물 233호)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무량사 오층석탑(보물).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연상시키는 규모이다. 백제와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세부 조각수법도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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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1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았다. 탑신 몸돌의 크기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작아지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단층으로 된 기단부. 모서리에 각면에 기둥을 세워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 지붕돌은 4장의 돌을 짜맞추었다. 정림사지 석탑의 영향을 받아 지붕돌을 넓고 평평하게 만들었다. 몸돌은 낮은편이지만 전체적인 비례는 적절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 1층 몸돌과 지붕돌.

OLYMPUS DIGITAL CAMERA정면에서 본 오층석탑. 정림사지에서 볼 수 있는 1탑 1금당식 가람배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쪼에서 본 오층석탑과 석등(보물233호)

OLYMPUS DIGITAL CAMERA부여 무량사.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보물 185호,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사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5층석탑이다. 기단은 다듬은 석재를 층단으로 괴임을 만들고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웠다. 탑신은 지붕돌과 몸돌을 한 층으로 하여 5층을 이루고 있다. 네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몸돌은 지붕돌에 비하여 높이가 낮은 편이나 전체적으로 알맞은 비례를 보이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석탑의 부분재료들이 따로 만들어진 점이나 지붕돌이 얇고 넓은 점,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는 그 높이가 점차 줄어드는 모습들은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과 많이 닮았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971년 해체수리를 할 때 1층에서 금동제 아미타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왔고, 3층에서 금동보살상, 5층에서는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