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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 석탑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오층석탑(보물)이다. 고려초에 세워진 것으로 높이 9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석탑이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아래층 기단에는 사자상을, 윗층 기단에는 팔부중상을 새겨놓고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얇고 넓게 만들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 받침이 남아 있으며, 탑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철로 만들 찰주가 높이 솟아 있다.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백제 석탑의 특징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01<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년)>

SANYO DIGITAL CAMERA<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09년>

아래층 기단부에는 사자상을, 윗층 기단부에는 팔부중상을 새겨 놓고 있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02<기단부(동쪽), 팔부중상 중 마루라가와 긴나라>

마후라가(摩睺羅迦), Mahoraga,오른손에 금강저를 잡고 머리 위에 뱀이 서리고 서 있다. 머리는 사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가 없다. 왼손은 뱀꼬리를 잡고 좁은 때의 목도리를 하고 백(帛) 요대(腰帶)를 했다.긴나라(緊那羅) Kinara, 화문(花紋)의 광배에 새를 올려 놓은 보관 두 마리와 돼지머리 운문좌(雲紋座)대 위에 있는 좌상을 요갑(腰甲), 경갑(脛甲), 어깨 위에 얹어 놓은 목에는 목도리를 두른 여인상이다.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05<기단부(북쪽), 야가와 천>

용(龍), Naga 야가(耶加), 운문(雲紋) 좌우에 좌상으로 화문(花紋)의 광배에 용의 두광(頭光)인데 다리가 앞 가슴을 만지고 있다. 머리에 수건으로 징징 동여맨 것 같은 보관에 견갑(肩甲), 흉갑(胸甲), 경갑(脛甲), 왼손은 금강저를 들고 오른손은 두광의 용꼬리를 꽉 지고 있다. 천(天) Deve,오른손에 금강저를 들고 왼손은 두광으로 된 큰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있다. 목도리 치장에 아름다운 꽃무늬 요대(腰帶)가 아름답다. 광배에 용트림하는 것 같은 다섯가락의 무늬 두 개 매듭된 머리띠 보관을 쓴 얼굴은 힘센 장사이다.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07<기단부(서쪽), 가루아와 아수라>

가루라(迦樓羅), Garura,운문(雲紋) 좌대 위에 좌상이다. 좁은 폭의 목도리를 하고 오른손에 금강저를 들고 왼손에는 불꽃무늬 보주를 쥐었다. 머리끈을 질끈 동여 맨 것 같은 보관에 좁은 폭의 목도리를 했다. 손목에는 용과 같이 연꽃무늬 팔찌를 했고 요갑(腰甲)을 하고 있다.  아수라(阿修羅), Asura, 운문대(雲紋臺) 위의 좌상이다. 삼면육비(三面六臂)의 연꽃무늬 보관에 뒤로 높이 쳐든 양손에는 두개의 큰 공이 올려져 있고 뒤편 두번째 오른손에 작은 막대기가 잡혀 있고 왼손에도 어깨 위에 있는 같은 크기의 막대기를 잡으려 한다. 삼도가 있고 여덟개 보주로 된 목걸이가 부드러워 보이는 통견에 양손은 합장하고, 왼손에 두 겹의 팔찌가 아름답다. 정면상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상이다.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개의 형상이다. 우리가 흔히 질서가 없이 흐트러진 상황을 아수라장이라 함은 이에서 유래된 것이다.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10<기단부(남쪽), 건달파와 야차>

야차(夜叉) yaksa, 야차는 나무의 신이자 지하의 광물을 지키는 신이라는 점에서 염주와 같은 구슬을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건달파(乾達婆) Gandharva,건달파는 머리에 사자관을 쓰고 하프모양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며 음악을 좋아하는 중(衆)으로 우리나라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건달이라 하는 것은 이에서 유래된 것이다.(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기단 위에 탑신 1층 몸돌을 받치는 사잇돌을 끼워 넣었다. 탑신부1층 몸돌에는 감실을 표현한 문짝을 새겨 놓았으며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을 얇고 넓게 만들었는데 1,2층 지붕돌은 2장의 돌을 끼워 맞춘 것으로 보인다.  꼭대기에는 탑의 무게를 받쳐주는 찰주가 남아 있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09<탑신부>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03<문짝이 새겨진 1층 몸돌과 지붕돌>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24
<남쪽에서 본 모습>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22
<서쪽에서 본 모습>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04<북쪽에서 본 모습>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14<뒷편에서 본 모습>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보물) 20230316_15<뒷편에서 본 모습>

보원사(普願寺)는 그 내력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절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이 있으며, 절터에서 6세기 중엽에 제작된 금동불상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백제때부터 있었던 사찰로 여겨진다.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언급한 의상대사를 계승한 화엄십찰 중 하나로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절터에는 오층석탑(보물), 법인국사탑(보물) 등이 있으며, 절터에서 출토된 거대한 철조불상이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보물) 20230316_13<서산 보원사지(사적), 2023년)>

SANYO DIGITAL CAMERA<2009년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보원사지 절터>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보물,고려시대, 높이 9m,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통일신라~고려초의 wjs형적인 석탑양식이다. 목조탑파에서 석조탑파로 변환되는 과정의 형식이며 아래층 기단에 사자상을, 위층 기단에 8부 중상을 새긴 것이 특이하다. 기단부에 우주(隅柱), 탱주(撐柱)를 세웠고 탑신부 1층 밑에 받침돌 한장을 끼워 넣은 것과 옥개석의 물매가 평활하며 끝이 살짝 들어 올려진 것 등이 백제계 양식이다. 또한 옥개석 받침을 4층으로 한 것은 신라계 양식을 가미한 것으로 백제지역에 신라 이후 세워지는 석탑의 공통된 양식이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미려하고 경쾌하며 안정감이 있다. 상륜부에는 긴 찰주만 남아 있지만 1945년 광복 전까지 아름다운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련, 용차, 보주 등의 부재가 완전하게 있었다고 한다. 1968년 해체 복원시 사리 내갑, 외갑, 사리병, 납석소탑 등이 출토되며 부여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23년)

<출처>

  1. 안내문, 서산시청, 202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3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3년
  4. 위키백과, 2023년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보물), 금강계단 앞에 세워진 석탑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오층석탑(보물)이다.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금강계단 앞에 세워져 있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은 높이 7.2m의 오층석탑이다. 통일신라 석탑의 기본 양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고려 석탑의 특징도 반영되어 있다. 석탑 구성요소간 비례가 적절하고, 세부 조각수법도 양호한 편이다. 석탑이 신앙의 중심이었던 통일신라와는 달리 형식적이며 장식적인 기능을 갖고 있었던 고려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해체.수리과정에서부처의 사리와 금동여래불상 등이 발견되었다.

김제 금산사는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사찰로 신라 경덕왕 때인 8세기에 진표율사에 의해 사찰로서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후백제 견훤이 유폐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금산사에는 미륵불상을 모시는 장륙전 모습이 남아 있는 미륵전(국보)를 비롯하여 금강계단(보물), 오층석탑(보물), 육각다층석탑(보물) 등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김제 금산사 오층석탑(보물).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금강계단을 꾸미는 장식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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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지붕돌 끝이 살짝 들려 있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들도 잘 반영되어 있다. 전체적인 비례나 세부 조각수법이 양호한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탑의 기단부.  탑신을 안정적으로 받쳐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오층으로 된 탑신부. 1층 몸돌을 높게 만들었으며, 2층부터는 순차적으로 낮게 만들었다. 지붕돌 끝을 살짝 들어 올리고 지붕받침도 3단으로 두는 등 고려석탑의 특징들도 잘 반영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동쪽에서 본 오층석탑.

SANYO DIGITAL CAMERA금산사 주불전에 해당하는 미륵전 안쪽 언덕에 금강계단 앞에 세워져 있다. 주불전 앞에 세워져 있는 일반적인 석탑들과는 다른 공간배치이다.

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보물25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탑(塔)은 부처님의 사리나 경전을 봉안하여 법당 앞 중앙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석탑은 방등계단을 장엄하는 정중탑(庭中塔)으로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이다. 이중기단 위에 높이 7.2m의 5층 석탑이 우뚝 서 있어 방등계단을 더욱 성스럽게 장엄하고 있다. 탑의 구조는 통일신라 석탑의 일반형을 따르고 있으나 하층기단이 협소하고 옥개석, 추녀 끝이 살짝 들려 고려이 시대적 특징을 보여준다. 상륜부의 노반이 크고 넓으며 그 위에 특이한 복발이 있고 복발 위에 보륜과 보주가 설치되어 있다. 1971년 해체.복원하였는데 과거 부처님인 정광여래사리 2과와 석가모니불 사리 5과가 나와 복원과 동시에 다시 봉안하였으며 금동여래 8분 등 다른 유물은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전시중이다. (안내문, 문화재청, 2009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보물), 고려초기 양식을 볼 수 있는 오층석탑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동사지 절터에 오층석탑(보물)이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놓은 오층석탑이다.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고려 석탑만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탑신 1층 몸돌은 여러개의 돌을 조립해 2단으로 만들었다. 지붕돌도 1~3층은 4장, 4층은 2장의 돌을 조립해서 만들었다. 이는 하나의 돌로 몸돌과 지붕돌을 만든 통일신라 석탑과는 다른 제작수법이다. 지붕돌은 경사가 완만하면서 모퉁이 끝을 살짝 들어 올렸다. 구조상 불규칙적인 면도 있지만 구성에서 규칙적인 면을 보이며 전체적인 비례도 양호하다. 통일신라 양식이 남아 있는 고려초기에 조성된 석탑이다.

하남 동사지(桐寺址) 절터는 남한산성과 이성산성이 사이의 작은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한강을 건너는 중요한 나루터가 있던 광주지역에 있던 대표적인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터 규모로 볼 때 상당히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두개의 탑만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사찰의 쌍탑식 가람배치와는 달리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하남 동사지 오층석탑(보물). 고려시대 절터에 삼층석탑과 나란히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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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7.5m의 상당히 큰 석탑이다. 통일신라 석탑과는 달리 여러장의 돌로 1층 몸돌을 만들었으며, 지붕돌도 여러장의 돌을 짜맞추어 만드는 등 고려 석탑만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세보적인 표현이 투박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나 규칙성 등은 양호한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2층으로 된 기단부는 여러장의 돌로 짜 맞추었는데 그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세부 표현도 통일신라 석탑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1층 몸돌을 여러장의 돌로 2단으로 구성한 것은 고려초 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양식이다.

SANYO DIGITAL CAMERA지붕돌은 1~3층까지는 4장, 4층은 2장의 돌로 짜 맞추었다. 지붕돌 밑면 받침도 5~3단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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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모습.

SANYO DIGITAL CAMERA2개의 탑이 남아 있는 절터.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 보물 12호,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이 석탑은 고려 초기의 절터로는 최대 규모인 동사지(桐寺址)에 3층 석탑과 나란히 남동향으로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높이 7.5m 의 이 석탑은 경기도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큰 탑이다. 이 탑의 기단은 여러 장의 사각형 석재로 조립하였는데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과 버팀기둥이 새겨져 있다. 1층 탑신은 상하 2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다른 석탑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1층 탑신의 하단는 4장의 방형 석재로, 그리고 상단은 1장의 석재로 만들었는데 모서리 기둥이 새겨져 있다. 2층 이상의 탑신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서리 기둥이 표현되어 있다. 1층부터 3층까지의 지붕돌은 각각 4장의 석재로 만들어져 있으며 4층은 2장, 5층은 1장의 석재로 제작되었다. 지붕돌의 낙수면은 경사가 완만하고 추녀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에 이르러 반전을 보이고 있다. 상륜에는 노반석만이 남아 있다. 이 석탑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정사각형의 탑으로 탑신부의 각층 비례도 조화를 이루는 등 양식면에서는 전체적으로 신라 석탑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원주 천수사 오층석탑, 고려초기 쌍탑식 가람배치를 위해 세운 오층석탑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중인 천수사지 오층석탑이다. 탑의 1층 기단은 남아 있지 않으며, 2층 기단과 5층의 탑신만이 남아 있다. 탑신 2층 몸돌부터 그 높이가 급격히 낮아 진다. 통일신라 삼층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체적 구성요소간의 비율이 간결하지 못해서 조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통일신라 때부터 이어진 정형화된 쌍탑형식의 가람배치를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고려초 지방 호족인 경기도 광주지역 호족들이 세운 하남 동사지에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이 나란히 배치된 쌍탑형식을 볼 수 있다. 원주 천수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OLYMPUS DIGITAL CAMERA원주 천수사 오층석탑. 고려초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이 나란히 배치된 가람배치를 위해 세웠던 쌍탑 중 오층석탑이다. 기단부가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비례가 적절하지 못하여 불안정한 느낌을 주며, 조각수법도 떨어지는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부 2층. 탑신처럼 몸돌 위에 지붕을 얹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는 1층 몸돌만 높게 만들었으며, 2층부터는 급격히 낮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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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천수사지 삼층석탑.

원주 천수사 오층석탑, 고려,
하층기단 덮개돌 아래 부재는 없어졌다. 각각의 탑신부 몸돌은 한 개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2층 몸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낮아진다. 지붕 처마에는 각 층마다 3단의 받침이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풍경의 일종인 풍탁을 단 작은 구멍이 네 개씩 남아 있다. 탑꼭대기 장식인 상륜부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중앙박물관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천 안흥사지 오층석탑, 경기 지역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 석탑.

서울 용산국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안흥사지 오층석탑이다. 경기도 이천시 안흥사 절터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에 옮겼다가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았다. 기단부 1층은 낮고 2층은 높게 만들었으며, 모서리에 기둥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은 높게, 그 위로는 낮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조각수법이 많이 남아 있는 석탑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천 안흥사지 오층석탑. 경기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통일신라 오층석탑이다. 탑의 규모가 크고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도 양호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의 기단부. 1층 기단을 낮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옆면과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탑신부. 1층 탑신을 제외하고는 몸돌을 낮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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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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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본 모습.

안흥사 오층석탑, 경기 이천 안흥사터, 통일신라말~고려초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있는 일반적인 형태이다. 탑신 높이는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며, 처마 및 층단받침은 네단인 5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섯단을 이루고 있다. 탑의 세부 수법이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띠며, 균형잡힌 비례로 보아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2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중앙박물관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