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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추원당과 어초은사당, 마을 입향조를 모신 재실과 사당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마을에 있는 추원당과 어초은사당이다. 추원당은 윤선도가 집안사람들과 함께 조상을 모시기 위해 세운 재실로 현재의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새로 지은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규모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지붕 모퉁이에는 활주를 세웠다. 건물 앞과 옆에는 1칸 규모의 높은 지붕을 하고 있는 차양을 두고 있다. 행랑채는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방을 두고 있다. 제사를 비롯한 집안행사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어초은사당은 윤선도의 4대조로 해남 연동리마을 입향조인 윤효정을 모신 사당이라 한다.

SANYO DIGITAL CAMERA해남 추원당. 녹우당(사적 167호) 뒷편에 있는 마을 재실로 조선후기 윤선도가 조상을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웠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추원당 행랑채. 가운데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3칸씩 행랑채를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솟을대문.

SANYO DIGITAL CAMERA재실건물은 앞면 3칸규모의 전통한옥 형태를 하고 있는 큰 건물로 앞쪽과 왼쪽에 높은 지붕을 하고 있는 차양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 앞 비를 피하기 위해 세운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차양. 구한말 이후 건물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시설이다.

SANYO DIGITAL CAMERA차양 안쪽에 있는 재실.

SANYO DIGITAL CAMERA재실 뒷편.

추원당(追遠堂)은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은 고산선생의 고조부(4대조) 윤효정(1476~1543)의 제각으로 1935년에 새로 지었다. 시향은 음력 11월 15일 어초은 사당에서 지내고, 이곳 추원당에서는 제관과 참배하는 후손들이 숙식을 하며, 문중회의를 한다. 추원이란 먼 조상이나 부모를 추모하여 정중히 공경을 다함을 뜻한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뒷편에 있는 입향조를 모신 사당.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사당 건물로는 큰 규모이다.

SANYO DIGITAL CAMERA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사당 출입문.

어초은사당
어초은은 덕음산 아래 백련동에 처음 터를 잡고 해남윤씨가를 중흥시킨 인물로 사당 뒤 묘와 함께 녹우당 공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삼개옥문 적선지가”라 불릴 정도로 적선으로 가문을 더욱 빛내었다. 매년 음력 11월 15일 시제사를 지낸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해남 녹우당 일원(사적 167호). 마을 종택인 녹우당을 중심으로 고산사당, 어초은사당, 추원당이 남아 있다. 입구에는 큰 은행나무가, 뒷편에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2451호)가 있다. 앞쪽에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와 종가전적(보물 482호) 등을 소장하고 있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출처>

  1.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달성 묘골마을 도곡재, 후학을 양성하는 재실로 바뀐 한옥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마을에 있는 고택인 도곡재(陶谷齋)이다. 조선후기 정조 때 대사성을 지낸 박문현이 주택으로 처음 지은 집이다. 19세기에 인조 때 활동한 도곡공 박종우를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재실인 도곡재로 바뀌었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실로 사용하면서 약간 개조되어 일반 주택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고택이다.

달성군 묘골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순천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 후손은 사육신 가운데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가문으로 사육신이 복권되면서 조선후기에는 관직에도 많이 진출했다. 양반들이 모여살았던 전통마을로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이 있었던 곳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종가 건물이었던 태고정(보물 554호)를 비롯하여 여러동의 고택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묘골마을 도곡재. 18세기에 주택으로 지어졌다가 19세기에 후학을 양성하는 재실로 바뀌었다. 안쪽에 살림집인 안채가, 바깥쪽에 사랑채가 있는 마당을 넓게 쓰는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대문채. 도시형 한옥과는 달리 바깥쪽으로 창문을 두고 있지는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쪽에서 본 대문채. 한쪽에는 외양간을, 반대쪽에는 문간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로 바깥쪽에 사랑마루를, 안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마루 옆에는 작은 툇간을 달아내어 누마루처럼 사용하고 있다. 19세기에 재실로 바뀌면서 개조한 부분으로 간략한 형태의 누마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누마루 앞에 있는 작은 연못.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뒷편에 있는 아궁이. 안채를 출입하는 작은 문이 있고 안마당에서 불을 지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궁이 위에는 서책을 보관하는 다락을 설치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를 출입하는 중문채. 사랑채가 있는 마당을 향해 문을 두고 있는 온돌방이 있는데 작은 사랑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안마당에서 본 중문채.

OLYMPUS DIGITAL CAMERA살림집인 안채.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과 부엌을 배치한 ‘ㄱ’자 형태의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대청마루

OLYMPUS DIGITAL CAMERA안채 한쪽끝 아궁이 위에 큰 다락방을 만들었다. 서책을 보관하는 장소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락방 아래 아궁이.

OLYMPUS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안채.

OLYMPUS DIGITAL CAMERA안마당 안쪽편에 있는 고방채. 한쪽편에는 다락방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방채 다락방과 그 아래 공간

OLYMPUS DIGITAL CAMERA달성 묘골마을 전경. 도곡재는 종가에 해당하는 태고정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도곡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도곡재는 사육신 중 한 분인 박팽년 선생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는 묘골마을 내에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대사성을 지낸 박문현이 1778년(정조2)에 주택으로 건립하였던 것을 19세기 중엽부터 도곡공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선생이 호를 따라 도곡재라 부르게 되었다. 박종우는 인조 때의 문신으로 낙재 서사원을 사사하였고 한강 정구 문하에 출입하였으며 문장의 행의가 추앙되었다고 대구읍지 증에 기록되어 있다. 도곡재는 조선시대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실례를 잘 보여주며 안채, 사랑채, 대문채 등이 3개 권역으로 분리되어 일곽 안에 잘 보존되어 있다. 좌측으로 낸 대문채를 들어서면 남향하여 사랑채에 해당하는 도곡재가 자리하고 사랑채 우측에 연한 중문채를 들어서면 ‘ㄱ’자형의 안채와 우측의 고방채가 자리하여 튼 구조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인 도곡재는 원래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였으나 후대에 재실로 사용하면서 왼쪽에 퇴칸 1칸을 달아 내고 대청을 넓혀 누처럼 꾸몄다.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남양주 유릉(사적 207호) 재궁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유릉(사적 207호) 재실이다. 황제의 능으로 먼저 조성된 홍릉 재실의 예를 따르고 있는데, 건물 배치는 약간 다른 면을 보인다. 유릉 재실은 국왕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이는 재방과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두 건물은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양쪽 건물 모두 솟을대문에서 어도로 연결되어 있다. 솟을대문이 있는 행랑채에는 많은 방과 마루를 두고 있다.

재실은 원래 무덤이나 사당옆에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은 집을 말하며 삼국시대 시조묘나 신궁제도에서 그 기능이 유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유학이 사회전반을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왕릉을 조성하는 산릉제도에서 그 기능이 정립되었다고 하며, 일반 사대부에서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으로 많은 재실들이 건축되었다. 재실은 평상시 영(종5품) 또는 참봉(종9품) 등이 능역의 관리를 위해 근무하는 곳이며,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능역 안쪽에 위치한 재궁. 홍릉 재궁의 예를 따르고 있지만 규모가 큰 편이며 건물 배치도 다르다.

OLYMPUS DIGITAL CAMERA재궁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재궁에는 2개의 건물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두 건물은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국왕이 지나가는 어도가 두 건물에 모두 설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오른쪽 건물은 앞면 6칸 규모의 건물로 전체적인 형태로 볼 때 제관이 머무는 공간인 재방인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왼쪽편 건물은 앞면 7칸 규모이며,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인 것으로 보인다. 안향청에서 능역내 침전까지는 어도가 연결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유릉 행랑채. 상당히 긴 건물로 많은 방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제기고 옆에는 어도가 능역내 침전으로 연결된다.

OLYMPUS DIGITAL CAMERA재궁에서 능역으로 연결되는 어도.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남양주 홍릉(사적 207호) 재궁, 황제의 능역에 조성된 재궁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대한제국 1대 황제 고종의 홍릉(사적 207호) 재궁이다. 홍릉은 황제의 능으로 조성되어 기존 왕릉과는 달리 재궁이라 부르며 건물 규모나 형태 등 다른 부분이 많다. 왕릉을 지키는 관리들이 머무는 공간이자 제관이 머무는 공간인 재실도 홍살문 바깥쪽 능역 입구에 있던 기존 왕릉 재실과는 달리 홍살문 안쪽 능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홍릉 재실은 국왕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이는 재실 건물을 가운데 두고 뒷편에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이 배치되어 있으며, 솟을대문이 있는 행랑채에는 많은 방과 마루를 두고 있다.

재실은 원래 무덤이나 사당옆에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은 집을 말하며 삼국시대 시조묘나 신궁제도에서 그 기능이 유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유학이 사회전반을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왕릉을 조성하는 산릉제도에서 그 기능이 정립되었다고 하며, 일반 사대부에서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으로 많은 재실들이 건축되었다. 재실은 평상시 영(종5품) 또는 참봉(종9품) 등이 능역의 관리를 위해 근무하는 곳이며,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경기도 남양주 고종의 홍릉 재궁. 능역 입구에 있던 기존 왕릉 재실과는 달리 홍살문 안쪽 능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

홍릉 재실
이 건물은 대한제국의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민씨의 제향을 준비하는 곳이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능참봉 등이 상주하던 곳이며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된 모든 준비를 하던 공간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제물을 준비하는 전사청과 그 외 부속 공간인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산릉제례를 주관하는 제관이 머무는 공간인 재방. 앞면 7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기존 왕릉 재실에 비해 규모가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재방 뒷편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 건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재궁 출입문인 솟을대문과 행랑채. 솟을대문 좌우에 가마를 세워두는 공간을 두고 있다.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

영월 장릉(사적 196호) 재실, 조선후기 재실 형태가 남아 있는 곳

강원도 영월군 영흥리 조선 6대 단종의 장릉(사적 196호)에 있는 재실이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죽었다. 숙종 때 단종이 복위되면서 장릉이 승격되었기때문에 재실도 이때 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재실은 산릉제례를 주관하는 제관이 머무는 공간인 재방을 중심으로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행랑채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조선후기 왕릉 재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재실은 원래 무덤이나 사당옆에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은 집을 말하며 삼국시대 시조묘나 신궁제도에서 그 기능이 유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유학이 사회전반을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왕릉을 조성하는 산릉제도에서 그 기능이 정립되었다고 하며, 일반 사대부에서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으로 많은 재실들이 건축되었다. 재실은 평상시 영(종5품) 또는 참봉(종9품) 등이 능역의 관리를 위해 근무하는 곳이며, 제례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월 장릉 입구에 있는 장릉 재실. 단종이 숙종 때 복위되면서 재실도 이때 처음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효종 영릉 재실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산릉제례를 주관하는 제관이 머무는 공간인 재방. 앞면 4칸 규모의 비교적 작은 건물로 구한말 재실건축에서 볼 수 있는 누마루를 두고 있지 않다. 또한 솟을대문에서 재방까지는 어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국왕이 참석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재방 앞 마당. ‘ㄷ’자형 행랑채로 둘러싸여 있고 마당에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행랑채에는 온돌방이 많지 않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재실 출입문과 행랑채. 온돌방이 많지 않은 것도 조선후기 재실 건축의 특징이기도 하다.

OLYMPUS DIGITAL CAMERA재궁 옆 창고와 작은 방이 있는 건물. 제기를 보관하던 제기고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제기고 뒷펴에는 앞면 5칸 규모의 건물이 있다. 국왕이 내린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안향청 건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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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청 건물 앞 마당에 심어진 나무.

OLYMPUS DIGITAL CAMERA영월 장릉 입구에 심어진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영월 장릉 단종 역사관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