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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임란북천전적지, 임진왜란 때 중앙 관군이 왜군과 첫 전투를 벌렸던 곳

경북 상주시 만산동에 있는 임란북천전적지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 중앙 관군이 의병과 함께 왜군 주력부대와 최초로 전투를 벌렸던 곳이다. 당시 조성에서는 북방에서 전투경험이 많았던 이일을 경상도에 순변사로 파견하여 왜군과 맞서도록 하였다. 당시 상주목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지방관리들은 왜군을 피해 숨어버렸는데 상주에서는 판관 권길, 종사관 윤섬 등이 의병장 김준신 등과 함께 이곳에서 왜군을 맞서 싸우다 800여 명이 전사하였다. 1990년 대 이곳에 순국한 이들을 모시는 사당인 충렬사가 세워 사적공원으로 조성하였다. 또한 옛 상주목 객사였던 상산관을 비롯하여 여러 관아 건물들을 이곳으로 옮겼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 임란북천 전적지. 상주 북천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당시 전투에서 순국했던 상주 판관 권길 등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 세워졌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당을 중심으로 앞 마당에는 기념관, 제실, 비석을 모신 비각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주전투에서 순국한 권길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

OLYMPUS DIGITAL CAMERA비각에는  종사관 윤섬, 박호, 이경류와 의병장 김준신, 김일을 기리는 「충신의사단비」 복제본과 권길의 충절을 새겨 둔 「판관권길사의비」가 있다.

이 비각에는 임진왜란(1592년) 떄 이곳 북천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3충신(종사관 윤섬, 박호, 이경류)과 2의사(의병장 김준신, 김일)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신의사단비」 복제본과 상주목판관으로 봉직 중 순국한 권길의 충절을 새겨 둔 「판관권길사의비」가 보호되고 있다. 「충신의사단비」 는 1793년(정조 17)에 사액 받아 충이단에 비를 세웠는데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충의단에 있는 비와 똑같이 복제한 것이며, 「판관권길사의비」는 창석 이준 선생이 찬하여 1698년(숙종 24)에 건립된 충렬사에 세웠는데 충렬사가 훼철되면서 자산 아래로 1991년에 임란북천전적지를 조성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OLYMPUS DIGITAL CAMERA마당에 있는 재실

OLYMPUS DIGITAL CAMERA전적지 앞을 흐르는 북천과 상주읍치.

OLYMPUS DIGITAL CAMERA상주전투와 관련된 기록 등을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

OLYMPUS DIGITAL CAMERA 윤섬 교지, 윤섬(1561~1592년)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순변사 이일의 종사관으로 파견되어 상주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교리로서 비교적 직위가 높은 문신이었지만 종사관으로 전투에 직접 참전하여 순국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정 임란일기. 조정(1555 ~ 1636년)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참전했으며 당시 기록을 적은 많은 「남행록」 등 많은 저작물을 남겼다.

OLYMPUS DIGITAL CAMERA남행록과 문견록

OLYMPUS DIGITAL CAMERA이전의 형제급난도. 정경세와 함께 의병을 일으킨 이준(1560 ~ 1635년)이 전투에서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형 이전(1558 ~ 1648년)이 동생을 업고 빠져나와 생명을 건지게 한 일화를 그린 그림이다.

상주전투
왜군들의 침략 사실을 접한 조선 조성에서는 4월 17일, 이일을 순변사로 임명하고, 성응길, 조경을 각각 좌우방어사로 삼아 영남으로 급파하였다. 이에 이일이 군사를 모아 명령을 받은지 3일 만에 출정하였고, 경상감사 김수도 열읍에 공문을 보내 수령들로 하여금 각자 소속군사를 이끌고 정해진 지역에서 대기하도록 하였다. 고을 수령들은 각기 군졸들을 이끌고 대구 냇가에 순변사가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수일이 지나도 순변사가 오지 않고 왜군의 북상 소문이 들리자 동요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비가 내리는데다 군량미마저 끊기자 싸워보지도 못하고 모두 흩어져 버렸다. 이일은 문경을 거쳐 4월 23일에 상주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상주목사 김해가 이미 적을 피해 산속으로 도주하였고, 판관 권길 만이 고을을 지키고 있었다. 이에 이일이 판관을 시켜 관아의 창고를 열고 곡식을 풀어 백성들을 모으고, 흩어진 군졸과 무기를 수습하게 하여 수백 명의 군사를 모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조련을 받아보지 못한 농민들이었기 때문에 급히 상주 북방 북천에 진을 치고 대오를 편성하여 서울에서 내려온 장졸 등과 함께 훈련을 시켰다. 그러던 중 고니시가 이끄는 왜군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에 이일 휘하의 장졸들은 산을 의지하고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크게 패하여 종사관 윤섬, 이경류, 박호 등 중앙군과 판관 권길, 사근도찰방 김종무, 호장 박걸, 의병장 김준신, 김일 등 900여 명이 순국하였다. 이일은 단신으로 탈주, 중앙에 패보를 전한 다음 물러나서 조령을 지키려 하였으나 도순변사 신립이 충주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OLYMPUS DIGITAL CAMERA임란북천전적지로 옮겨온 옛 상주목 객사건물이 상산관.

OLYMPUS DIGITAL CAMERA상주목 관아 동헌 문루였던 태평관.

상주 임란북천 전적지, 경부 상주시 만산동
이곳 북천변 자산 기슭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시 왜군에 대항하여 우리 관군과 의병들이 격전한 전적지이다. 이 전투에서 순변사 이일이 인솔한 관군과 상주지방에서 창의한 의병들이 왜군의 기습을 받아서 종사관 윤섬, 이경류, 박호 등과 상주판관 권길, 사근도 찰방 김종무, 호장 박걸, 의병장 김준신, 김일 등 수 많은 군사들이 순절하고 패전하였으나 임란사상 중앙 관군과 의병들이 뜻을 모아 왜군에 대항한 첫 전투라는데 큰 뜻을 지니고 있다. 1990년부터 사당, 전시관, 사적비 등을 세우고 원래 있었던 박걸 단소 및 권길 사의비를 이건하여 사적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