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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천복사 소안탑(小雁塔), 화엄탑으로 불렸던 벽돌로 쌓은 전탑

시안 천복사(薦福寺)에 있는 소안탑(小雁塔, The small wild goose Pogoda)이다. 당나라 때 (707년) 처음 세워졌으며 천복사탑(薦福寺塔)이라 불렸는데 천복사가 화엄종 중심 사찰이었기 때문에 화엄탑(華嚴塔)으로도 불렸다. 명.청대 대자은사 대안탑과 비교되어 소안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벽돌로 쌓은 15층 전탑(塼塔)이었는데 여러차례 지진으로 손상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며 1965년 옛방식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나라 전탑(塼塔)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천복사 소안탑>

벽돌로 쌓은 전탑으로 원래는 높이 88 m, 15층이었는데 현재는 높이 43 m이며 13층을 하고 있다. 기단은 높이 3.2 m, 둘레 23.38 m의 벽돌로 쌓은 기단부 위에 탑신이 올려져 있다. 내부는 비어 있으며 벽돌로 쌓은 계단을 통해 오를 수 있다. 각층마다 남북에 아치형 창문이 있으며 벽돌로 목조건축물을 모방한 지붕이 있다. 대안탑과는 달리 벽면에 목조기둥을 표현한 장식을 두고 있지 않다.

OLYMPUS DIGITAL CAMERA<벽돌로 쌓은 기단부>

기단부 앞.뒤에 탑내부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으며, 계단 앞 양쪽에 소안탑을 중수하면서 그 내력을 기록한 중수비가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소안탑을 오르는 계단과 양쪽에 세워진 중수비>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출입문과 그 앞에 세워진 명.청대 양식의 패방>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출입문>

탑신은 현재 13층이 남아 있는데 1층은 높고, 2층부터는 낮게 만들었다. 4면에 창문과 출입문이 있는 대안탑과는 달리 남북 방향으로만 출입문과 창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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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탑 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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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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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목조건축물의 지붕을 모방해서 만든 지붕>

천복사(薦福寺)는 당나라 때 측천무후가 당고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워졌던 큰 사찰이다. 통일신라 불교의 주류이기도 했던 화엄종의 중심 사찰이었으며 845년 당무종에 의한 회창폐불 사건 때 폐사를 모면했던 4대 사찰 중 하나이다. 명.청대 크게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명.청대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천복사 전경>

OLYMPUS DIGITAL CAMERA<시안박물관 정원에서 본 소안탑>

 Built in 707 AD in the Tang Dynasty , the Small Wild Goose Pagoda was initially called “Jianfu Pagoda “, and had this new name i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It was originally a fifteen-storey multi-eaved brick pagoda. Due to many earthquakes, its top part was completely damaged, and its body developed cracks. In 1965, the Chinese government renovated the pagoda using materials and techniques that are exactly the same as those used for building it. Presently, it stands at a height of 43.38 m, with a pedestal, a body, and a top. Sitting on an underground palace, this square-shaped pedestal has a brick shell with a clay core, a height of 3.2 meters, and a perimeter of 23.38 meters. The body of the pagoda has a brick frame built around a hollow interior. Brick stairs can be followed up the internal wall of the body. The pagoda’ souter contours are a naturally elegant convex curve that is very similar to the entasis curve in Greek architecture. Each storey has gradually-tiered dense eaves. There are arched windows in the south and north walls of the second and higher stories. With the overall structure being well preserved, the Small Wild Goose Pagoda was a perfect example of multi-waved square brick pagodas built in ancient China. In 1961, the Small Wild Goose Pagoda was listed by the State Council of China as one of the first batch of “Major Historical and Cultural Sites Protected at the National Level”. (안내문, 시안 천복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대자은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시안 대자은사 대안탑(大雁塔), 당나라 장안의 랜드마크였던 탑

중국 시안시 대자은사(大慈恩寺)에 있는 대안탑(大雁塔, Wild Goose Pagoda)이다. 당고종 때인 652년 현장법사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가져온 불경을 비롯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5층으로 지어졌으나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무너진것을 수리하면서 10층으로 증축하였으며, 명나라 때 지진으로 손상된 것을 수리하면서 현재와 같이 7층으로 바뀌었다. 1959년에 현재의 모습을 수리되었다.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어 있으며 7층에서 시안시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당나라 건축과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어왔으며 남아 있는 많은 기록을 통해 그 역사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장안(長安, 현 시안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유서깊은 탑으로 통일신라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일본 헤이안시대 교토 도지(東寺) 오층목탑과 함께 동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시안 대자은사와 대안탑>

대안탑은 인도의 스투파와 중국 전통 건축양식이 융합된 벽돌로 전탑이다. 탑은 정사각형 평면에 높이 64.7 m에 이르는 7층 전탑이다. 탑의 외관에는 중국 목조건축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데 각층 4면에는 아치형 문이 있으며 내부에는 목조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안탑은 전통 목탑이 화재나 천재지변으로 경전이 손상될 것을 염려하여 벽돌로 지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태종 때 인도를 다녀온 현장은 수많은 불상, 불경 등을 가져왔는데 이를 보관하기 위해 대안탑을 세울 것을 황실에 요청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벽돌로 쌓은 기단>

OLYMPUS DIGITAL CAMERA<7층으로 된 탑신>

대안탑은 벽돌을 쌓으면서도 기둥이나 대들보 등을 표현하고 있으며, 각층마다 벽돌로 기와지붕을 표현하고 있으며 각면에 1개씩 아치형의 창문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층 출입문>

OLYMPUS DIGITAL CAMERA<벽돌로 쌓은 벽면에 표현된 기둥>

OLYMPUS DIGITAL CAMERA<탑신 각층에 표현된 기둥과 출입문, 지붕>

이곳에는 대당삼장교비(大唐三藏聖敎碑)가 있었다. 당태종이 현장법사가 번영한 불경에 대해 적은 서문을 짓고   당태종의 아들 고종이 황세자 시절에 불경번역 경위에 대해 지은 글이 적혀 있다. 당대 명필 저수량이 쓴 글씨를 썼다. 원본은 중국 국보급 유물로 시안 비림박물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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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삼장성교서비(大唐三藏聖敎序碑,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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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삼장성고서기비(大唐三藏聖敎序記碑, 복제품)>

대안탑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비롯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다. 내부는 일반적인 건물처럼 보물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이 있으며 각층에는 대안탑을 상징하는 각종 유물들(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각층은 목재로 만든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중국의 목탑 등의 건축 양식을 반영하고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층 내부>

OLYMPUS DIGITAL CAMERA<각층을 연결하는 목조 계단>

OLYMPUS DIGITAL CAMERA<불상이 모셔진 2층>

OLYMPUS DIGITAL CAMERA<명대동주도금불상(明代铜铸鎏金佛像, A gilt bronze Buddha figurine of the Ming Dynasty)>

OLYMPUS DIGITAL CAMERA<2층 창문>

OLYMPUS DIGITAL CAMERA<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볼 수 있는 3층>

패엽경(Pattra-leaf scriptures) 은 고대 인도에서 종이대신 나뭇잎에 글씨를 적은 불경이다. 현장법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인도에서는 종이가 없었기 때문에 종이에 불경을 적었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패엽경이라 부른다. 중국 국보급 문화재로 이곳에는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패엽경(貝葉經, Pattra-leaf scriptures, 복제품)과 한문으로 번역한 불경>

OLYMPUS DIGITAL CAMERA<4층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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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에 전시된 인도 스투파 모형>

OLYMPUS DIGITAL CAMERA<5층, 풍탁과 옛 벽돌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당전(唐磚, Broken bricks of the Tang Dynasty)>

OLYMPUS DIGITAL CAMERA<풍탁(風鐸, Wind bell), 명나라 때 제작된 탑의 추녀에 걸려있던 것을 복제한 것이다. 풍경이라고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6층 창문>

OLYMPUS DIGITAL CAMERA<7층 창문>

대안탑 내부는 지금도 일반에 공개되어 관람객들이 내부를 살펴볼 수 있다. 각층 창문에서 바깥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데, 지금도 시안 도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나라 때 대안탑이 처음 세워진 이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화려했던 당나라 장안(長安) 경치를 감상했을 것이다. 대자은사는 궁궐인 대명궁과 남북으로 일직선 상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창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대명궁과 일직선 상으로 약 7 km 정도 떨어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쪽 창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창문으로내려다 보이는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동쪽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대자은사(大慈恩寺)는 당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사찰로 당고종이 어머지 문덕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워졌다.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온 현장법사가 머물면서 불경을 번역했던 곳으로 현장법사의 발원으로 대안탑이 세워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자은사 입구 현장법사 동상과 대안탑>

OLYMPUS DIGITAL CAMERA<북쪽 광장에서 본 대안탑>

OLYMPUS DIGITAL CAMERA<남쪽에서 본 대안탑>

<출처>

  1. 안내문, 시안 대자은사,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百度百科, 2020년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189호)

경북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에 있는 오층전탑(보물 189호)이다. 통일신라 때 중국에서 가져온 부처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워신 탑으로 구운 벽돌로 쌓아 올린 중국풍의 전탑이다. 기단은 석탑과 마찬가지로 화강암 석재를 가구식으로 조립하여 쌓았으며 그 위에 벽돌로 탑신을 쌓아 올렸다. 전체 높이 16 m로 상당히 높은 편인데 각층의 지붕돌을 넓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꼭대기에는 금동으로 만든 머리장식이 남아 있어 통일신라 전탑의 상륜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전탑은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은 편이며 그 중에서 전탑의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59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1층 몸돌에는 조선시대 목불, 석불, 동불 등이, 2층 지붕돌에서는 통일신라 사리장엄구가, 상륜부 복발에서는 고려시대 청자 상감원형합이 발견되었다. 특히 통일신라 사리장엄구에는 녹색 유리제 사리병, 유리잔, 장신구 등이 발견되었으며 감은사지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출토유물로 볼 때 여러차례 수리.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칠곡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189호). 통일신라 때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세운 전탑 중에서도 그 원형이 제대로 남아 있으며 제작수법이나 전체적인 조형미가 우수한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기단은 잘 다듬은 화강석을 가구식으로 짜서 만들었으며 그 위에 벽돌로 탑을 쌓았다. 탑신 1층 몸체 부분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이곳에서 조선시대 봉안한 불상들이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2층부터 탑신의 높이는 거의 비슷한 편이며 지붕을 넓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안정정인 느낌을 주고 있다. 2층 지붕 부분에서 통일신라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2층 지붕 부분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사리장엄구(보물 325호). 유리자과 사리병이 내부 있다.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륜부. 통일신라 전탑 상륜부가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었다. 1959년 해체.수리를 할 때 원형과 같은 모양으로 모조품을 올려 놓았다.

OLYMPUS DIGITAL CAMERA상륜부 복발 안에서 발견 고려시대 청자 상감원형합(보물 325호)

OLYMPUS DIGITAL CAMERA남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서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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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에서 본 모습

송림사 오층전탑, 보물 189호, 경북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5층 전탑으로 높이 16.13 m, 기단폭 7.3 m이다. 우리나라에는 몇 기밖에 남아 있지 않은 전탑 중에서도 상륜부까지 남아 있는 희귀한 탑이다. 화강암 기단 위에 탑신부가 이중으로 축조되어 있다. 1959년 해체.수리 때에 현재보다 좁은 4.5 m 정도의 원래의 기단 석축과 초층 몸돌 2층.3층 지붕돌.복발 등에서 여러 가지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불상을 모시는 감실 내부에서 조선시대 목불과 파손된 석불.동불이 발견되었다. 2층 지붕돌에서는 거북형의 석함 속에 사리구가 모셔져 있었는데 녹색 유리제 사리병과 유리잔.수목형 금제품.옥류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들 모두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상륜부의 복발 안에는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 상감원형합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부묘가 아닌 곳에서 청자가 출토된 예가 드물기에 그 의미가 있다. 또한 이 탑이 고려시대에 보수된 적이 있음을 말해 준다. (안내문, 칠곡 송림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칠곡 송림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4. 위키백과, 2020년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보물57호), 화강석과 벽돌을 섞어서 만든 전탑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오층전탑(보물 57호)이다. 이 전탑은 화강암 석재와 벽돌을 섞어서 만든 우리나라 전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층 몸돌 남쪽에는 감실을 만들었으며 그 양쪽에 인왕상을 새겼다. 벽돌로 쌓았기 때문에 지붕돌 처마 너비가 좁고, 매끈하지 않으며, 다른 전탑과는 달리 기와를 얹이 않았다.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나 세부적인 표현 등이 떨어지는 녚이다. 수도였던 경주에 비해서 제작기술이 많이 떨어지고 벽돌로 쌓은 전탑 자체가 우리나라에 없었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탑이 있는 이곳은 남안동 IC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며, 안동과 의성을 연결해 주는 국도에 멀지 않은 곳을 경북 남부와 안동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요지이다. 탑이 있었던 사찰도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동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이 잠시 머물던 역원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탑이 세워진 운흥동이나 법흥동 또한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전탑이나 모전석탑들이 중국 당나라를 여행했던 승려들의 영향을 받아 세워졌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조탑리 오층전탑(보물 57호). 기단없이 탑신만 5층으로 쌓은 전탑이다. 전체적인 비율에서 주는 조형미나 세부적인 표현이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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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높이 8.65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전탑이다. 1층 몸돌은 화강석으로 쌓고 그 위에 벽돌로 쌓은 한국적인 전탑의 특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1층 몸돌 남쪽편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 출입문을 만들어 놓고 있으며, 그 옆에 인왕상을 조각했다.

SANYO DIGITAL CAMERA감실과 양쪽에 새겨진 인왕상.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1층 몸돌. 일반 건축물처럼 화강석을 다듬어 쌓아 올렸다.

SANYO DIGITAL CAMERA지붕돌은 벽돌로 쌓았기때문에 처마 너비가 매우 좁으며, 다른 전탑과는 달리 기와를 얹지 않았다.

SANYO DIGITAL CAMERA전탑이 세워져 있는 조탑리 절터. 주요 교통로에 위치한 평지사찰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곳이다.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 보물57호,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으로 높이가 8.65m이고 기단 너비는 7m이다. 흙으로 쌓은 기단 위에 화강석으로 몸돌을 만들고, 남면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내고 그 좌우에 인왕상을 조각하였는데, 조형미가 뛰어나다. 그리고 1층 지붕돌부터 한 변이 27cm이고, 두께가 5.5cm되는 벽돌을 사용하여 어긋나게 축조하였다. 몸돌은 1층의 높이에 히하여 2층 이상은 급격히 줄어든다. 그 형식이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과 같다. 탑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조선시대에 수리된 바 있으며, 최근 1917 이후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치는 동안 건립 당시의 원형을 많이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문화재청, 2009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보물56호), 도심 기차역에 남아 있는 벽돌로 쌓은 탑

경북 안동시 운흥동에 있는 오층전탑(보물56호)이다. 통일신라 때 세워진 벽돌로 쌓은 전탑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은 편이다. 탑은 높이 8.35m이며, 무늬없는 벽돌로 5층을 쌓았다.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설치했으며, 2층 몸돌에는 인왕상을 새긴 화강암 판석을 붙였다. 벽돌로 쌓았기때문에 처마 너비가 매우 짧으며, 처마끝에는 기와를 올려 놓았다. 탑의 꼭대기에는 금동제 머리장식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탑은 안동시 도심 기차역 구내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는 법림사(法林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근처에 옛 절터임을 알려주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현재의 탑은 여러차례 수리과정을 거치면서 그 형태가 변했던 것으로 보인다. 법림사에 7층 전탑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법흥사지 칠층전탑과 마찬가지로 7층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동 운흥동 오층전탑(보물 56호). 기단없이 벽돌로 쌓은 오층전탑이다. 여러 차례 수리.과정을 거치면서 원형이 바뀌어 전체적인 조형미는 떨어지는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기단 역할을 하는 탑신 1층 몸돌. 남쪽편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을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탑신부는 위로 올라갈 수록 낮게 만들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벽돌로 쌓았기때문에 지붕돌 처마 너비가 매우 좁아 어색해 보인다. 감실과 기와를 얹은 지붕에서 목탑의 양식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2층 몸돌 남쪽에 붙여진 인왕상이 새겨진 판석.

SANYO DIGITAL CAMERA탑이 세워져 있는 안동역 구내. 앞쪽에 이곳이 절터임을 알려주는 당간지주가 있다.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 보물56호, 안동시 운흥동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이다. 한국전쟁 때 일부 파괴되었던 것을 196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탑은 건립된 이후 여러 번의 수리를 거치면서 원형이 일부 변경되어 외관이 많이 손상되었다. 이 곳은 법림사(法林寺)의 옛터라고 전하여지는데, 서편 약 5m 지점에 떨어져 있는 당간지주가 이를 뒷받침하여 준다. 탑의 높이는 8.35m이며, 탑신부는 길이 27.5cm, 너비 12.5cm, 두께 6cm의 무늬가 없는 벽돌을 사용하여 길고 짧음이 어긋나게 5층으로 쌓았다. 이 탑은 원래 7층이었으며, 법흥사 탑과 같이 금동제으 상륜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탑은 각 층마다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형식적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지붕돌 윗면의 기와와 함께 목탑의 잔재로 보아야 할 것이다. 2층 남쪽면에는 인왕상(仁王像) 2구를 조각한 화강암 판석이 설치되어 있다. (안내문, 문화재청, 2009년)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