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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혔던 마을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양동마을이다. 안동 하회마을, 천전마을, 봉화 닭실마을과 함께 조선시대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혔던 곳으로 하화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조선 전기에 터를 잡은 전형적인 반촌(班村)이다. 조선 성종 때 손소가 혼인하여 처가가 있는 이 마을에 들어왔으며 회재 이언적의 아버지인 이번이 손소의 사위가 되고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모여사는 대표적인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에는 조선중기에 지어진 고택인 송첨종택, 무첨당(보물), 관가정(보물), 향단(보물)을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고택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언적을 모신 옥산서원(사적)과 이언적이 살았던 독락당(보물), 손중돈을 모신 동강서원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양동마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 두곡고택에서 본 마을 풍경>

마을은 태백산맥이 형산강을 만나서 끊어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형산강이, 서쪽으로는 기계천이 흐르고 있으며 동해안에서는 상당히 넓은 안강평야가 펼쳐져 있다. 큰 하천의 중상류 지역에 산을 등지고, 하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송소종택이나 무첨당(보물)같은 종가를 중심으로 양반가옥과 소작농 가옥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으며, 전망이 좋은 곳에 정자와 서당 등이 들어서 있다. 마을은 안계라는 작은 개천이 마을 가운데를 흐르고 있는데 마을 입구  주변을 하촌, 안쪽을 거림, 서쪽 2개의 골짜기를 물봉골, 안골이라 부른다. 마을입구 하촌 언덕에는 마을을 대표하는 대저택인 관가정(보물), 향단(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안골에는 마을 경주손씨 종가인 송첨종택과 후손들의 저택들이, 물봉골에는 여주 이씨 종가인 무첨당을 중심으로 후손들의 저택들이,두림에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손들의 저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경주 양동마을2
<경주 양동마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위치한 초등학교>

OLYMPUS DIGITAL CAMERA<관가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마을 옆을 흐르는 기계천과 멀리 형산강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산서당 부근에서 보이는 안강평야>

 하촌(下村), 마을 입구

양동마을 입구를 하촌(下村)이라 부르는데 작은 개천을 중심으로 서쪽 언덕에는 큰 저택을 중심으로 주택들이 들어서 있고, 동쪽 언덕에 강학당, 심수정, 안락정 등 마을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과 휴식공간 등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마을을 대표하는 대저택인 향단과 관가정이 마을 입구 전망좋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아래에 병자호란 당시 쌍령전투에 참전하여 전사한 손중로(1598~1636년)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향단과 관가정은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인 손중돈과 이언적이 지은 조선중기 건축물이다. 맞은편 언덕에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손이 조선후기에 지은 이향정 고택이 있으며, 대저택 주위에는 분가한 후손들이 지은 크고 작은 집들이 모여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동마을 하촌>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세워진 정충비각>

관가정(觀稼亭, 보물)은  형산강과 기계천이 흐르는 안강평야의 넓은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중기 고위관료를 지낸 손중돈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면서도, 왼쪽으로 누마루가, 오른쪽으로는 살림집이 확장되었다. 뒷편에는 손소를 모신 사당이 있다. 대문과 담은 원래는 없었다. 관가정 앞 언덕에 있는 정자나무 아래에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아래에서 보이는 모습>

대청마루는 사실상 누마루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삼면이 개방되어 정자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관가정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는 뜻으로 이 곳에 올라서면 형산강 주변의 넓은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OLYMPUS DIGITAL CAMERA<양동마을 관가정 사랑채>

관가정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분가한 집이다. 관가정 주위에는 많은 집들이 모여 있는데 분가한 후손들이나 관가정 살림을 도와주던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다른 곳에 비해 주택의 규모가 작은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 언덕에 위치한 관가정과 주위 고택들>

OLYMPUS DIGITAL CAMERA<관가정 오르는 길에 있는 초가집들>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 있는 작은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관가정 아래 평지에 있는 초가>

OLYMPUS DIGITAL CAMERA<관가정 바로 아래 있는 작은 초가>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양동마을>

OLYMPUS DIGITAL CAMERA<관가정 아래 마을사람들의 휴식공간이 되었던 공터>

향단(香壇, 보물)은 마을 입구 낮은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대저택으로 조선중기에 지어졌다. 이 집은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부임하면서 병환중인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이언적은 관직생활을 했던 그를 대신하여 부모를 봉양했던 동생 이언괄에게 이 집을 물려주면서 여주 이씨 향단파의 종가가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동마을 향단(보물)>

향단 주위에는 분가한 후손들이 살아왔던 고택들을 볼 수 있다. 기와지붕을 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있는 고택으로 아마도 여주이씨 향단판 후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향단 아래에 있는 고택들>

OLYMPUS DIGITAL CAMERA<향단 아래 평지에 있는 마당이 넓은 고택>

향단 맞은편 언덕에는 양동마을 사람들의 후학양성을 위해 세웠던 서당들과 휴식공간 등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 초등학교 부근에는 경주손씨 서당인 안락정이 있으며, 향단 맞은편에는 여주이씨 서당으로 사용되었던 심수정과 강학당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항단 맞은편, 입구에 관광안내소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심수정과 강학당이 있는 언덕>

OLYMPUS DIGITAL CAMERA<심수정 아래에 있는 고택>

심수정(心水亭)은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을 추모하기 위해 1560년 경에 처음 세워졌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17년에 현재의 모습을 중건한 것이다. 여주 이씨 문중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서당역할을 했던 건물이다. 대청마루와 누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이 웅장하며,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마주 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촌 큰 길에서 보이는 심수정>

OLYMPUS DIGITAL CAMERA<심수정>

OLYMPUS DIGITAL CAMERA<심수정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심수정 뒷편 강학당으로 들어가는 길>

강학당(講學堂)은 구한말에 마을 여주이씨 집안에서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작은 서당이다. 앞쪽에 있던 서당건물이었던 심수정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양반 집성촌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었던 서당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강학당>

이향정(二香亭) 고택은 온양군수를 지낸 이범중이 살던 집으로 조선 숙종 때 지어졌다. 하촌 동쪽 언덕에 위치한 저택으로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하고 있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아래채,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곡식을 보관했던 광을 많이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손이 살았던 대저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하촌 큰길에서 보이는 이향정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이향정 고택>

물봉골

물봉골은 향단이 있는 언덕 뒷편에 있는 작은 골짜기로 마을 여주이씨 종가인 무첨당(보물)을 중심으로 규모있는 고택들이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여주이씨 후손 중 비교적 성공한 후손들의 분가하면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뒷편 안강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영귀정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정자들과 최근에 이곳으로 이전해온 경산서당이 자리잡고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동마을 물봉골>

OLYMPUS DIGITAL CAMERA<물봉골 언덕에 위치한 무첨당(보물)>

OLYMPUS DIGITAL CAMERA<하촌 큰길에서 물봉골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언덕에 보이는 무첨당 안채를 출입하는 협문과 안채 담장>

OLYMPUS DIGITAL CAMERA<무첨당 아래 광장>

무첨당(無忝堂, 보물)은 회재 이언적 종가의 별채이다. 앞면 6칸, 옆면 2칸에 누마루를 달아내어 ‘ㄱ’자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조선중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제사를 지내고 손님접대를 위해 사용되었던 상류층 주택의 별당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첨당(보물)>

OLYMPUS DIGITAL CAMERA<무첨당 본채>

OLYMPUS DIGITAL CAMERA<사당>

대성헌(對聖軒)은 18세기 중엽 이언적의 후손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이언적이 살았던 종가인 무첨당 옆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하고 있으며, 지형에 맞추어 전체적으로 남서향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헌>

OLYMPUS DIGITAL CAMERA<맞은편 언덕에 보이는 대성헌>

물봉골에는 남향을 하고 있는 언덕에 종가인 무첨당과 큰 저택인 대성헌이 자리잡고 있으며, 맞은편 언덕에는 분가한 후손들의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집들도 많지만 집의 규모나 위치로 볼 때 분가한 후손들의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대성헌 맞은편 언덕에 있는 초가>

OLYMPUS DIGITAL CAMERA<대성헌 앞 물봉골 언덕으로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ㄱ’형을 하고 있는 한옥>

OLYMPUS DIGITAL CAMERA<언덕 높은 곳에 있는 큰 규모의 저택>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규모의 한옥>

경산서당(景山書堂)은 이언적의 손자 무첨담 이의윤을 배향할 목적으로 세워진 서당이다. 원래는 마을 안쪽 안계리에 있었는데 그곳에 저수지가 건설되면서 종가인 무첨당에서 가까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조선후기 서원 설립을 준비하기 위해 세워진 서당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산서당>

OLYMPUS DIGITAL CAMERA<경산서당 앞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경산서당 앞 마당>

영귀정(詠歸亭)이다. 여주이씨 고택들이 모여있는 물봉골 서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회재 이언적이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세운 정자가 있던 곳에 후손들이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왼쪽 2칸은 넓은 대청마루가, 오른쪽 1칸은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귀정>

OLYMPUS DIGITAL CAMERA<영귀정 너머로 보이는 안강 들판>

거림(居林)

거림은 하촌을 지나서 안골로 들어가기까지 마을 안쪽을 말한다. 하촌과 마찬가지로 서쪽 언덕과 평지에 집들이 들어서 있고 동쪽에 정자와 사당 등이 들어서 있다. 양동마을 중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서쪽 언덕은 이른 시기에 성공한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집을 짓고 살고 있으며 아래쪽 평지에는 후대에 분가한 후손들이 살고 있다. 경주손씨와 여주이씨가 섞여서 살고 있는 지역으로 다양한 규모의 고택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양동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

양동마을 안쪽 서쪽편 언덕에는 종가인 물봉골 무첨당에서 이른 시기에 분가한 후손들의 고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언적의 손자인 수졸당 이의잠의 고택과 양졸당 이의징을 기리는 정자를 비롯하여 큰 규모의 고택 등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많은 고택들이 있는 거림 서쪽편 언덕>

수졸당(守拙堂) 고택운 이언적의 손자인 수졸당 이의잠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종가인 무첨당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17세기 초 광해군 때 처음 지어 졌으며 영조 때(18세기) 사랑채를 늘려 지었다. 대문채는 지붕을 사랑채보다 낮게 하여 격식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비교적 이른시기에 분가한 집으로 상류층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졸당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무첨당 옆에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수졸당 고택 아래에 있는 양졸정>

OLYMPUS DIGITAL CAMERA<양졸정 아래 고택들>

거림 동쪽편 언덕은 서쪽을 향하고 있어 고택의 거의 없으며 수졸당의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와 영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아래쪽 평지에 조선후기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지은 고택들이 있다. 18세기에 지은 대저택인 두곡고택이 대표적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두곡고택과 동호정으로 들어가는 길>

두곡고택(杜谷古宅)은 18세기 이언적 후손이 분가하면서 세운 집이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아래채가 튼 ‘ㅁ’자 평면을 하면서 주위에 부속건물들을 배치하였다. 마을 안쪽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오래된 종가와는 달리 낮은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큰 규모의 대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두곡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수졸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두곡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보이는 두곡고택과 동호정>

영당(影堂)은 수졸당 이의잠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1636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3칸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앞쪽에는 제사를 위한 공간인 퇴간을 두고 있다. 전형적인 사당건물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영당 앞에는 재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있으며 뒷편에는 이의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자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당>

OLYMPUS DIGITAL CAMERA<영당 앞 재실>

OLYMPUS DIGITAL CAMERA<동호정>

두곡고택 입구를 지나면 평지에 비교적 많은 고택들이 모여 있다. 두곡고택같은 대저택도 있으며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한옥, 조그만 초가집 등 다양한 형태의 집들을 둘러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거림 안쪽>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문간채가 있는 집>

OLYMPUS DIGITAL CAMERA<평지에 있는 큰 규모의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작은 규모의 한옥>

안골

안골은 조선중기 이전 양동마을이 시작되었던 곳으로 보인다. 경주손씨 입향조인 손소가 살았으며, 손중돈과 이언적이 태어난 종가집인 송첨종택을 중심으로 낙선당 고택 등 분가한 경주손씨 후손들이 주로 살고 있으며 안골 입구에는 조선후기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지은 고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골 입구>

안골 입구에는 분가한 후손들이 지은 고택들과 작은 초가집들이 모여 있다. 삼산고택을 비롯하여 근암고택, 상춘헌 고택, 사호당고택, 비슷한 규모의 고택이 있는데 모두 조선후기에 분가한 여주이씨 후손들의 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안골 입구>

안골 입구에 있는 삼산고택은 19세기 이후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큰 규모의 고택이다.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면서도 마당을 넓게 쓰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안골 입구에 있는 삼산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삼산고택>

OLYMPUS DIGITAL CAMERA<근암고택 아래 안골로 들어가는 길>

근암고택(謹庵古宅)은 양동마을 안골 입구 경치좋은 언덕에 위치한 고택으로 조선후기 정조 때 지어졌다. 건물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후기에 분가한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주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근암고택 사랑채>

근암고택 옆에 있는 상춘헌(賞春軒) 고택은 마을에서 일반적인 건물 형태인 ‘ㅁ’자형 주택이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ㄷ’자인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의 건물이고 앞쪽에 ‘-’자형 행랑채가 연결되어 있다. 경사진 언덕에 꽃나무 등을 심어 정원을 적절히 조성해 놓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상춘헌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상춘헌에서 보이는 안골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상춘헌 고택 아래 초가집>

사호당(沙湖堂) 고택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고택으로 구한말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건물은 ‘ㄷ’자형 안채, ‘-’자형 행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안채 옆으로 ‘-’자형 사랑채가 연결되어 있다. ‘ㅁ’자형을 하고 있는 영남지방 한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사랑채를 옆으로 달아내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사호당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사호당 고택 옆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고택 아래에 있는 작은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안골로 들어가는 길, 언덕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고택들이 보인다.>

안골을 경주손씨 종가인 송첨고택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집들이 모여있어 조선중기 이전 양동마을 규모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OLYMPUS DIGITAL CAMERA<송첨종택 아래 광장>

송첨종택(松簷宗宅)은 조선중기에 경주손씨 마을 입향조인 손소가 지은 집으로 아들 손중돈과 외손자 이언적이 태어난 유서깊은 고택이다. 이 집터에서 세명의 현인이 태어났다고 해서 풍수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은 ‘-’자형 대문채가 있고 그 안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ㅁ’자형을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송첨종택>

OLYMPUS DIGITAL CAMERA<종택 아래 초가집>

낙선당(樂善堂) 고택은 손소의 셋째 아들인 손숙돈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조선중기 중종 때 처음 지어졌다. 사랑채가 대문채, 아래채와 함께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고, 오른쪽에 행랑채와 안채가 ‘ㅁ’자형 본채를 이루고 있다. 집주인이 천석꾼이었다고 하며 많은 곳간을 두고 있다. 마을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저택에 속하지면 기난을 낮게 하고 건물들은 소박하게 지어졌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선당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낙선당 고택에서 보이는 안골마을>

창은정사는 안골에서도 제일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집으로 19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마을 고택 중에서는 비교적 늦은시기에 지어졌지만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는 대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창은정사>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길>

OLYMPUS DIGITAL CAMERA<중턱에 있는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안채와 사랑채가 별도로 있는 큰 규모의 한옥>

OLYMPUS DIGITAL CAMERA<’ㄱ’자형 한옥>

OLYMPUS DIGITAL CAMERA<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반대편 언덕에서 보이는 안골>

OLYMPUS DIGITAL CAMERA<물봉골로 넘어가는 길>

이 마을은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마을로, 500여 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양민공 손소(1433-1484)가 혼인하여 처가가 있는 이곳에 들어온 것을 계기로 경주 손씨가 양동 마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여주 이씨는 찬성공 이번(1463-1500)이 손소의 사위가 되면서 이 마을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이처럼 혼인한 신랑이 처가를 따라가서 사는 일이 많았다. 그동안 두 집안에서는 우재 손중돈(1463-1529)과 회재 이언적(1491-1553) 등 많은 유학자를 배출하였다. 마을 앞으로는 안강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설창산 산줄기에 마을이 들어선 모양새가 독특하고 아름답다. 산에서 뻗어내린 네 줄기의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150여 채의 옛집들이 굽이굽이 들어서 있는데, 이 중에서는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기와집이 네 채나 남아 있어 눈여겨 볼 만하다. 집들은 대개 ‘ㅁ’자 모양인데, 이는 조선 중기 영남 지방의 일반적인 가옥 형태이다. 다양한 가옥의 조화는 우리나라 전통 역사마을의 생활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주변의 산, 들판, 강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하늘의 별처럼 늘어서 있는 마을의 고택(星羅古宅)’은 진풍경이다. 양동마을은 전체가 중요민속문화재(1984), 세계문화유산(2010), 형산강팔경(2016)으로 선정되어 보전되고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경주 세심마을, 회재 이언적 후손들이 사는 마을

경북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전통마을인 세심마을이다. 자옥산(570m), 도덕산(702m), 어래산(571m) 사이에 형성된 좁은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조선중기 문신 이언적이 살았던 독락당(보물)과 그를 모시는 옥산서원(사적)을 중심으로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이언적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 본가인 양동마을을 떠나 독락당을 짓고 머물면서 살았는데, 옥산서원에 세워지고 그의 서자 이전인이 터를 잡고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 뒷편에는 통일신라 절터에 남아 있는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세심마을>

경주 독락당(보물)

독락당(獨樂堂, 보물)은 이언적이 옥산천 계곡 경치 좋은 곳에 지은 별장 성격의 한옥이다. 현존하는 고택 중 비교적 른 시기인 1516년(중종11)에 지어졌다. 이언적은 인근 양동마을 출신으로 벼슬을 물러난 후 낙향하여 이곳에 머물렀다. 이후 그의 손자들이 이곳에 살림집인 경청재를 지었으며 가까운 곳에 이언적을 모시는 옥산서원(사적)이 세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이언적 후손들이 사는 생활 터전이 되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독락당(보물)>

OLYMPUS DIGITAL CAMERA<계곡에서 보이는 독락당과 담장>

독락당 뒷편에는 계정은 계곡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ㄱ’자형 건물이다. 마당쪽으로 온돌방을 두고 있으며, 계곡을 향하는 방향으로 벽이 없는 넓은 마루를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계정>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천 계곡에서 본 계정>

독락당은 옥산천 계곡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후손들이 지은 살림집인 경청재가 있고 대문 옆으로 독락당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다. 옥산천은 수량이 비교적 풍부하면서도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독락당 아래 옥산천 계곡>

독락당은 이언적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살림집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독락당 살림집은 1601년(선조34) 회재  이언적의 손자들이 옥산서원과 독락당을 유지하기 위해 지은 집으로 경청재(敬淸齋)라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후손들이 살고 있는 독락당 살림집>

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

세심마을은 이언적의 후손들이 살았던 마으로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며 크고 오래된 고택은 거의 없는 편이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한 강학당인 귀후재(歸厚齋)가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이전인을 기리는 <잠계 이전인기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마을에서 옥산천 상류 방향으로 700m 떨어진 곳에 이전인을 기리는 장산서원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세심마을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 <잠계 이전인기적비>

OLYMPUS DIGITAL CAMERA<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입구에 있는 비교적 오래된 주택>

OLYMPUS DIGITAL CAMERA<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귀후재>

OLYMPUS DIGITAL CAMERA<귀후재>

OLYMPUS DIGITAL CAMERA<수리 이전 모습>

귀후재(歸厚齋)는 옥산에 대대로 살던 여강 이씨의 대표적인 강학당(講學堂)으로 조선 현종 3년(1662)에 이상규가 창건하였다. 이곳에서는 문중 자제들을 주로 교육하였으며 건립연대는 인근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서당인 강학당(1867년 경 건립)과 안락정(1776년 경 건립)보다 앞선다.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건물이며, 본채 이외에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대문채가 남아 있다. 한국전쟁 이후까지도 강학 기능이 유지 되었다고 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9년)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안쪽 광장>

OLYMPUS DIGITAL CAMERA<관강객을 위한 농촌체험공간>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세심마을>

OLYMPUS DIGITAL CAMERA<독락당을 지나 옥산천 상류 방향으로 연결되는 길>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은 1층 기단 위에 1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높이 5.9m의 석탑이다. 불국사 다보탑처럼 정형화된 석탑의 양식에서 벗어난 이형석탑으로 볼 수 있다. 통일신라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으며, 주변에는 주춧돌과 기왓장들이 흩어져 있었다. 계곡의 물이 풍부하고 경치가 좋아서 통일신라때 부터 사찰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정혜사지 절터와 십삼층석탑(국보)>

옥산서원

옥산서원(玉山書院, 사적)은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 ~ 1553년)을 기리기 위해 1592년(선조5)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처음 세웠으며 1573년 국왕으로부터 ‘옥산(玉山)’이라는 이름이 내려져 사액서원이 되었다. 강당건물인 구인당(求仁堂)을 중심으로 한 강학공간이 앞쪽에, 위패를 모신 체인묘(體仁廟)를 중심으로 제향공간이 뒷쪽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서원 입구에 위치한 청분각에는 이언적의 <수필고본>(보물), 김부식의 <삼국사기> 완본 9권(국보) 등 많은 서적들을 소장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서원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서원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서원 입구>

OLYMPUS DIGITAL CAMERA<서원 앞 마당>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서원 강당>

세심대(洗心臺)는 서원 앞을 흐르는 개천 가운데 있는 넓은 너럭바위 일대를 말한다. 독락당에서 흘러내려온 개천은 세심대에서 작은 폭포와 용소(龍沼)를 만들어 빼어난 경치를 만들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세심대>

OLYMPUS DIGITAL CAMERA<옥산서원을 감싸고 있는 울창한 숲, 세심대에서 본 모습>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청도 신지리마을, 교통요지에 위치한 밀양박씨 집성촌

경북 청도군 금천면에 있는 신지리마을이다. 조선중기 박하담에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밀양박씨 집성촌이다. 마을 앞으로는 운문사 계곡에서 흘러 내려온 동창천이 흐로고 있으며 개천을 건너는 섶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울산, 밀양, 대구, 경주를 연결하는 교통로가 네거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주변에 비교적 넓은 농지가 있어 경제력이 풍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입구에 초등학교가 있으며, 예전엔 장터가 있었다고 한다.

박하담과 김대유를 모시는 선암서원이 동창천변에 있으며, 마을입구에는 후손인 박시묵이 조선후기에 지은 대저택인 운강고택을 중심으로 분가한 후손들이 살았던 고택인 도일고택, 섬암고택, 운남고택, 명중고택 등 크고 작은 고택들이 모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청도 신지리마을 57-20200106청도 신지리마을 가운데를 지나는 큰길. 동창천을 따라 밀양과 경주를 연결하는 오래된 교통로이다.

청도 신지리마을 64-20200106마을 입구 엣 섶다리에서 동쪽 대비사가 있는 계곡으로 연결하는 길. 대비사 부근 고개를 넘어 운문사를 거쳐 울산으로 가는 옛길이다. 마을 입구에는 2개의 교통로가 만나는 네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청도 신지리마을 63-20200106마을 입구 네거리에서 첫번째로 볼 수 있는 고택인 명중고택. 운강고택 손자가 분가하면서 1881년에 지은 집이다.

청도 신지리마을 65-20200106그 옆으로 운강고택 아들이 분가하면서 지은 운남고택이 있다. 그 안쪽으로 운강고택이 보인다.

청도 신지리마을 58-20200106운강고택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있고 주위에 크고 작은 고택들이 모여 있다.

청도 신지리마을 60-20200106운강고택 대문채와 골목길.

청도 신지리마을 61-20200106골목길 담장 너머로 보이는 운남고택

청도 신지리마을 62-20200106대문채 앞 담장 너머로 보이는 명중고택. 운강고택에서 분가한 후손들이 주변에 모여 있는 전형적인 집성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청도 신지리마을 59-20200106담장너머로 보이는 운강고택. 사랑채 앞에 강당형식으로 지은 큰 규모의 작은 사랑채가 있다. 안쪽에 큰 사랑채와 안채가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대저택이다.

청도 신지리마을 66-20200106운강고택 앞 도로 건너에 있는 섬암고택. 운강고택 둘째 아들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그 옆으로 박시묵의 동생이 지은 도일고택이 있다.

청도 신지리마을 51-20200106운강고택에서 400 m 정도 떨어진 동창천 옆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선암서원. 삼족당 김대유와 소요당 박하담을 모시기 위한 서원이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박하담의 후손들이 서당으로 다시 지었다.

청도 신지리마을 53-20200106선암서원 강당. 선암서원은 19세기말 훼철된 후 밀양박씨 집안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서당으로 다시 세웠다. 사당은 없고 강당만 있는 살림집 형태를 하고 있다.

청도 신지리마을 52-20200106선암서원 앞에서 동창천으로 들어가는 길.

청도 신지리마을 56-20200106마을 앞을 흐는 큰 하천인 동창천. 운문사 계곡에서 흘러내려와 낙동강 지류인 밀양강으로 흘러간다. 멀리 섶다리가 있었던 자리에 하천을 건너는 다리가 보인다. 그 안쪽에 운강고택 주인이 지은 정자인 만화정이 있다.

청도 운강고택과 만화정 11-20100705섶다리 옆 경치좋은 곳에 위치한 만화정.

청도 신지리마을 54-20200106선암서원 옆으로 이어지는 수목이 울창하고 경치가 뛰어난 산책로

청도 신지리마을 55-20200106산책로 아래로 보이는 동창천

<출처>

  1.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2. 안내문, 청도군청, 2020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해남 연동리 마을, 윤선도 유적지

전남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연동리마을이다. 조선후기 문신 윤선도가 살았던 고택 녹우당이 있는 마을로 해남의 대표적인 고산 윤선도 유적지이다. 조선중기 윤효정이 처음 터를 잡고 살았으며, 종택에 해당하는 녹우당과 마을 재실인 추원당, 윤효정 사당과 고산 사당 등이 남아 있다. 마을 입구에는 큰 연못과 유물전시관이 있으며, 안쪽에 마을 내력을 보여주는 수백년 수령을 자랑하는 큰 은행나무가 있고, 마을 뒷편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비자나무 숲이 있다.

연동리마을 해남 윤씨는 조선후기 장자 상속 전통이 자리잡은 대표적인 집안으로 큰 부를 축적하였다.  유물전시관에는 해남윤씨 집안에서 소장한 많은 문화재들을 볼 수 있는데,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 고려시대 노비문서(보물 483호), 윤두서가 그린 그림 등 서화첩(보물481호), 종가 문적(보물 482호) 등이 있으며, 마을 뒷편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전통마을이지만 종택인 녹우당 외에는 큰 규모의 고택이 남아 있지는 않다.

SANYO DIGITAL CAMERA해남 연동리마을 입구. 이곳이 고산 윤선도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있는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연못. 대지주계층이었던 해남윤씨 집안에서 농사를 위해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해남윤씨 고택인 녹우당(사적 167호). 연동리마을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마을이지만 녹우당 외 큰 고택은 남아 있지 않고 마을 규모 또한 크지 않은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앞에 조성된 광장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사랑채. 윤선도가 효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수원에 있던 집을 옮겨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안채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뒷편 대나무숲

SANYO DIGITAL CAMERA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녹우당 내 사당.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옆 윤선도를 모시는 고산사당.

SANYO DIGITAL CAMERA고산사당 뒷편에는 입향조인 윤효정을 모시는 어초은사당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뒷편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241호). 마을 입향조인 윤효정이 처음 조성한 인공숲이라 한다.

해남 연동리의 비자나무숲, 천연기념물 241호,
해남윤씨의 중시조인 효정이 500년 전 심은 것이 자란 것이라고 하며 가장 큰 나무는 높이 20 m 내와, 가슴높이의 지름이 1 m 정도이다. 위쪽에 커다란 참식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고 아래쪽은 곰솔이 우거졌으며, 소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다. 가장 큰 곰솔은 높이가 25 m, 지름이 1 m 정도이다. 숲 속에는 사스레피, 참식, 개비자, 모새, 자금우, 동백, 마삭덩굴, 남오미자, 송악 및 보리밥나무 등의 상록활엽수종과 더불어 맥문동, 소엽맥문동 및 춘란 등이 군데군데 자라고, 주변에는 참나무류 및 서어나무류 등의 낙엽활엽수로 싸여 있다. 비자나무숲 밑에 있는 곰솔숲 앞에는 해남윤씨의 선조를 모신 사당이 세워져 있다. 1972년 7월31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뒷편 재실로 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마을 재실인 추원당.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앞에 있는 옛 유물전시관.

해남 연동리마을 22-20140418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 유물전시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해남윤씨 집안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해남 연동리마을 21-20190708 윤단학 노비허여문기 및 입안(보물 483호). 고려 공민왕 때 윤광전이 그의 아들 윤단학에게 노비를 상속한 문서이다. 송광사 노비첩과 함께 대표적인 고려시대 문서이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이 곳은 조선조의 문신이요,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일컫는 윤선도(1587~1671) 선생의 유적지이다. 선생의 자는 약이, 호는 고산 또는 해옹이다. 선생은 광해 4년(1612)에 진사되고, 4년후 성균관유생으로서 권신의 횡포를 지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벽지에 유배되었다. 광해 15년에 인조반정이 일자 석방되어 의금부도사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이곳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인조 6년(1628) 별시문과의 초시에 장원한 후 봉림과 인평을 모시는 왕자시부가 되고 한성서윤과 예조정랑을 역임하는 등 수차에 걸쳐 나라에 중용되었다. 병자호란 후에는 주로 완도의 보길도와 해남의 수정동 및 금쇄동에 은거하여 자연에 들어 원림을 경영하고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 등 불후의 명작을 이루어 조경문화 및 국문학의 발전에 큰 공을 남겼다. 그 사이 효 종의 부름으로 벼슬에도 나아갔으나 당쟁으로 다시 유배당하는 등 많은 파란을 겪다가 현종 12년에 85세로 졸하였는데 숙종 원년에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를 충헌이라 하였다. 이곳 유적지에는 선생이 시문에 열중하던 해남윤씨 종가의 고택과 녹우당(사적 제167호), 그리고 그의 선조 어초은사당 외에 고산사당 및 추원당이 있고 유물전시관에는 윤공재 자화상(국보 제240호)을 비롯하여 해남윤씨가전고화첩(보물 제481호), 윤고산수적관계문서(보물 제 482호), 지정 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2호) 등 소중한 유물이 있다. 뒷산 중로에 있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은 약 500년전 선생의 선조가 이루어 놓은 수림으로 알려져 있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 조선시대 읍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전통마을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서.남내리에 있는 낙안읍성 민속마을이다. 옛 낙안군 읍치였던 마을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곳으로 읍성과 함께 조선시대 읍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서깊은 전통마을이다. 읍성은 직사각형 형태로 둘레 1.4 km 정도이며, 동.서.남문을 두고 있다. 읍성내에는 중심부에 위치한 관아를 중심으로 동.서.남문과 연결되는 큰 도로가 있으며, 동.서를 연결하는 큰길 남쪽에 민가들이 있다.

성안에는 약 90 가구의 민가들이 있는데 대부분 초가집이다. 그 중 아전 등 향리계층들이 살았던 집들은 규모가 큰 편이며, 관아에서 일했던 서민들이 살았던 집들은 대부분 3칸 규모의 작은 초가집들이다. 그 중 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존가치가 높은 집들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나머지 집들도 대부분 원형에 가깝게 수리하여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서남쪽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조선시대 낙안군 읍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배치도. 읍치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큰 길을 기준으로 북쪽에 관아와 부속건물 등이, 남쪽에 읍치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살았던 가옥들이 배치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현재 낙안읍성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동문으로 들어가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동문 옆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읍치. 객사 앞 마을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수령이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안쪽에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민가. 관아에서 근무했던 아전 등 향리계층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바깥쪽에 있는 서민계층이 살았던 앞면 2칸 규모의 작은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동문을 들어서면 서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을 볼 수 있다. 민가들은 주로 큰 길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문 안쪽에 볼 수 있는 상점. 일제강점기 이후 상점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옛 시골마을 상점 모습을 하고 있는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관아 중심건물인 객사. 낙안군이 폐지되면서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낙안군 관아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객사 옆 낙안군수가 근무했던 동헌. 낙안읍성이 유적지로 바뀌면서 옛 모습을 추정하여 복원하였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아 앞에 남아 있는 고목

OLYMPUS DIGITAL CAMERA관아 앞에서 남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 주위에 읍치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민가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관아 앞에 조성해 놓은 장터. 낙안읍성을 찾은 관광객들이 쉴 수 있도록 조성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

OLYMPUS DIGITAL CAMERA 큰 길 옆에 있는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가옥인 마루방집. 마당이 비교적 넓은 집으로 안쪽에 ‘-’자형 안채가 자리잡고 있다. 비교적 큰 규모의 가옥으로 관아에 근무했던 아전 또는 향리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서문 바로 안쪽 큰 길에 전통가옥인 대나무 서까래집. 부엌 1칸, 방 2칸의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자형 초가집이다. 관아에 소속되어 일했던 사람이 살았던 가옥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낙안읍성 서문. 성벽 안쪽과 바깥쪽에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작은 규모의 서민들이 살았던 초가집들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문 안쪽으로 보이는 마을.

OLYMPUS DIGITAL CAMERA서문 바깥쪽에 있는 전통가옥인 서문성벽집. 건물은 ‘-’자형 안채와 헛간채, 가게로 사용되었던 작은 별채가 있다. 안채는 19세기 지어진 건물로 전형적인 읍성내 가옥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낙안읍성 서문 입구에서 있으면서 상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바깥쪽에 있는 작은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성벽 안쪽에 있는 민가들.

OLYMPUS DIGITAL CAMERA성벽 안쪽에 있는 민가들 중 비교적 큰 가옥. 초가지붕을 하고 있지만 건물의 규모나 건축자재, 넓은 마당 등으로 볼 때 향리계층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민 계층이 살았든 작은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향리 계층이 살았던 큰 규모의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상당히 큰 규모의 초가집.

OLYMPUS DIGITAL CAMERA향리 계층이 살았던 가옥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초가집. 목재기둥을 사용하고 있으며, 바깥쪽에 툇마루을 두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서민계층이 살았던 작은 초가집. 기둥이 많지 않고 흙벽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 형태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원래 낙안읍성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남문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성벽 바깥쪽에 있는 민가들.

OLYMPUS DIGITAL CAMERA남문 안쪽에 있는 전통가옥인  주막집. 성벽 안쪽 좁은 공간을 활용하여 지은 집으로 방2개, 점포, 부엌으로 구성된 ‘田’자형 평면을 하고 있다. 읍성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위해 지은 작은 점포로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남문에서 관아로 들어가는 큰 길.

OLYMPUS DIGITAL CAMERA남문에서 동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과 주변 민가들,

OLYMPUS DIGITAL CAMERA동문과 남문 사이에 있는 골목길과 민가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 성벽 안쪽에 있는 연못. 비상시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읍성내 큰 길 옆에 볼 수 있는 옛 하수도

OLYMPUS DIGITAL CAMERA하수도 물길이 읍성 바깥으로 연결되는 작은 수문.

  1. 안내문, 순천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