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전통마을

영주 선비촌, 옛 선비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소수서원 뒷편에 있는 선비촌이다. 소수서원 뒷문 나와 죽계천을 건너면, 선비촌과 소수박물관을 볼 수 있다. 선비촌에는 영주지역에 남아있는 옛 선비들이 살았던 해우당 고택등 기와집 7동과 초가 5동 등 다양현 규모와 형태의 고택을 복원해 놓고 있다. 또한 옛 사람들의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는 정자, 누각, 방앗간, 대장간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소수서원과 함께 옛 선비들의 살았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뒷문은 나와 죽계천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는 영주지역 고택들을 재현해 놓은 선비촌이 있고, 오른쪽에는 소수박물관이다.

SANYO DIGITAL CAMERA선비촌을 들어서면 큰 길에 십이지신상을 세워 놓았으며, 선비들이 살았던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가옥들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선비촌 입구에 볼 수 있는 열녀를 기르는 정려각인 열부각.

SANYO DIGITAL CAMERA영주 부석면에 있는 중류층 양반가옥인 김상진가옥 대문채. 선비촌 입구 부근에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건물은 ‘ㄷ’자형을 본채를 중심으로 정면에 마루를 깔고 좌우측에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중류층 양반이 살았던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의 고택으로 정갈하면서 절제된 분위기를 주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의 대표적인 전통마을인 무섬마을에 있는 해우당 고택.

SANYO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은 구한말 고위관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사랑채는 지반을 기둥을 높게 세우고 툇마루에 난간을 둘러 누마루처럼 꾸몄다. 마당 한쪽에는 작은 규모의 작은사랑채를 두고 있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쓴 ‘해우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시 이산면에 있는 우금촌 두암고택 사랑채이다. 두암고택은 주선중기 해미현감 등을 역임한 두암 김우익이 건립한 가옥으로 ‘ㅁ’자형 본채, 사랑채, 문간채, 사당 등으로 구성된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이다.

SANYO DIGITAL CAMERA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김구영가옥이다. 방들이 앞뒤로 붙어 있는 양통집으로 경북지방의 대표적인 서민주택이다. 초가지붕을 하고 있지만 중류계층 양반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소수서원 강당인 강학당을 재현 놓은 건물.

SANYO DIGITAL CAMERA물레방앗간.

SANYO DIGITAL CAMERA마을 한쪽에 있는  정자인 승운정. 선비들이 경치좋은 곳에서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겼던 공간이다.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09년
  2. 대한민국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18년

봉화 닭실마을,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히는 전통마을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있는 닭실마을이다. 봉화읍에서 울진과 태백방향으로 약 1 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늑한 마을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안동 화회마을, 천전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삼남지역 4대 길지로 언급되었던 곳이다. 조선 중종때 문신 권벌이 기묘사화로 파직을 당하면서 외가가 있던 이곳으로 입향하면서 안동권씨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 앞으로는 2개의 시냇물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으며, 뒷편으로 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도로가 남쪽편 철로쪽과 연결되어 있어서 청암정(명승 60호)와 권벌종택이 제일 안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마을 앞을 지나 봉화읍으로 흘러가는 석천계곡을 통해서 마을로 들어왔기때문에 종가집이 마을 입구에 있었다. 마을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며, 대부분의 가옥들은 기왓집 형태와 구조를 하고 있는 전형전인 반촌의 형태를 하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봉화 닭실마을. 마을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며 들판이 펼쳐져 있는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 가계천이라고 부르는데 마을을 지나 또다른 명승인 석천계곡을 만들면서 봉화읍으로 흘러간다. 개천 옆에 있는 길이 닭실마을로 들어가는 옛길이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종택으로 연결되는 큰 길.

SANYO DIGITAL CAMERA권벌종택 솟을대문. 조선중기 문신 권벌이 사화로 파직을 당한 후 터를 잡고 살았던 종택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가옥이다. 사랑채가 있는 마당을 출입하는 대문채는 솟을대문을 하고 있으며, 안채 뒷편에는 사당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종택 사랑채.

SANYO DIGITAL CAMERA종택 뒷편에 있는 사당.

SANYO DIGITAL CAMERA종택 마당 한쪽편에 위치한 청암정(명승 60호). 거북모양 바위에 세워진 정자와 작은 서재를 두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거북모양 바위위에 세워진 청암정.

SANYO DIGITAL CAMERA종택 옆에 있는 작은 규모의 한옥.

SANYO DIGITAL CAMERA그 옆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고택을 볼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뒷편에 있는 안채.

SANYO DIGITAL CAMERA마을 고택 중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집이 많지 않으나 규모나 형태 등을 볼 때 전형적인 양반들의 세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

SANYO DIGITAL CAMERA멀리서 보이는 권벌 종택.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으로 반듯하게 닦아 놓은 길.

SANYO DIGITAL CAMERA마을 앞 농토. 넓지는 않으나 개천이 마을 앞을 흐르고 있어 수량이 풍부하여 농사짓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가운데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한옥.

SANYO DIGITAL CAMERA큰 사랑채가 있는 고택 마당.

SANYO DIGITAL CAMERA마을 입구쪽으로는 70년대 양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큰 주택들도 볼 수 있다.

내성 유곡 권충재 관계유적,
이 곳은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충재 권벌(1478 ~ 1548년)의 유적지이다. 이 곳은 유곡으로 ‘닭실’인데 흔히 ‘달실’로 부른다. 그는 안동출신으로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서 활동하던 중 중종 15년(1520)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이곳에 정착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경학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중종 28년(1548) 복직되었다가 을사사화로 인하여 다시 파직되었고, 명종 3년(1548) 유배지인 평안도 삭주에서 돌아갔다. 이곳에는 그가 지은 청암정과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충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석천정이 있는데 울창한 소나무숲과 아름다운 암석으로 경관이 매우 빼어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 지역을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 풍산의 하회와 함께 삼남지역의 4대 길지로 꼽고 있다. (안내문, 봉화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봉화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4. 한옥의 미, 서정호, 경인문화사, 2010년

봉화 닭실마을 권벌 종택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닭실마을에 있는 권벌 종택이다. 조선중기 문신 권벌이 사화로 파직을 당한 후 터를 잡고 살았던 종택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 평면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가옥이다. 사랑채가 있는 마당을 출입하는 대문채는 솟을대문을 하고 있으며, 안채 뒷편에는 사당이 있다. 사랑채 마당 안쪽에는 거북모양의 바위에 세워진 정자인 청암정(명승 60호)와 서재인 충재가 있다. 봉화지역을 대표하는 대저택으로 많은 손님들이 찾았던 것으로 보이며 사랑채의 규모가 큰 편이며, 중문 옆에는 작은 사랑을 두고 있다.

닭실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천전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이중환이 ‘택리지’에 4대 명당지로 꼽았던 마을이다. 조선중기 문신 충재 권벌이 중종때 기묘사화로 파직을 당하면서 외가가 있던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그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닭실마을은 봉화읍에서 10리 정도 떨어져 있는데, 마을의 명성에 비해 오래된 고택은 많지 않은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봉화 닭실마을 권벌 종택. 영남 4대 길지로 손꼽혔던 마을 종가에 해당하는 대저택이다.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종가로서 오랜 내력이 있는 곳이지만 건물은 오래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SANYO DIGITAL CAMERA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대문채. 골목을 향해 창문을 두고 있는 도시형 한옥의 특징을 하고 있다. 19세기 한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 마당에서 본 대문채.

SANYO DIGITAL CAMERA본채는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모습.

SANYO DIGITAL CAMERA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로 넓은 사랑마루와 온돌방을 두고 있다. 안채와는 건물로 연결되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대문 옆에는 작은 툇마루가 있는 2칸 규모의 작은 사랑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안채 뒷편에 있는 건물. 사당과 별채로 보이는 건물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당 한쪽편에 있는 정자인 청암정(명승 60호). 지금은 마을 끝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마을 입구였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거북모양의 바위에 세워진 정자인 청암정. 그 앞에는 냇물을 끌여들여 연못을 만들었다.

<출처>

  1. 안내문, 봉화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4. 한옥의 미, 서정호, 경인문화사, 2010년

영주 무섬마을, 물위에 떠 있는 섬처럼 생긴 아름다운 전통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전통마을인 무섬마을이다. 조선후기 반남박씨 박수가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했으며, 그의 증손사위 선성김씨 김대가 들어와 살면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나가서 마치 섬처럼 보인다고 하여 ‘무섬마을’이라고 부른다. 선비들을 많이 배출한 전형적인 양반마을로 구한말에는 주민 500여 명이 살았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로 남아 있다.

마을에는 반남박씨 종택인 만죽재와 선성김씨 종택인 무송헌,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인 해우당을 비롯하여 격식을 갖춘 ‘ㅁ’자형 가옥, 경북 북부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까치구멍집, 서민들이 살았던 작은 규모의 초가집 등 다양한 형태의 가옥들이 남아 있다. 가옥들은 대부분 마을 뒷산을 등지면서 내성천을 향해 서남향을 하고 있다. 또한 마을의 형상이 물위에 떠있는 배와 같다고 하여 마을에는 우물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 마을을 들어오는 다리인 수도교가 생긴 1979년 이전에는 좁은 외나무다리를 이용해서 마을을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 외나무다리가 마을을 대표하는 경관을 만들어 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건너는 다리인 수도교 앞에서 보이는 무섬마을.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으며 흐르고 있다. 내성천이 있는 서남쪽을 향해 배산임수의 지형을 잘 갖추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섬마을 모형. 마을에는 농토가 없으며 마을 앞 내성천을 건너는 외나무다리가 유일한 통로였다.

OLYMPUS DIGITAL CAMERA1979년에 세워진 수도교.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북쪽에는 작은 정자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아도서숙이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수도교를 건너면 첫번째로 볼 수 있는 고택인 김성규가옥이다. 독립운동가 김성규가 살았던 집으로 시인 조지훈의 처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분가하면서 지어진 집으로 홍수 피해을 입어 폐가가 되었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있는 해우당고택.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저택으로 구한말 고위관리를 지낸 김낙풍이 지은 집이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쓴 ‘해우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 뒷편 골목길 안쪽에 있는 큰규모의 고택인 주실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주실고택 맞은편에 있는 최근에 수리하여 지은 것으로 보이는 집.

OLYMPUS DIGITAL CAMERA주실고택 뒷편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해우당고택에서 마을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고택.

OLYMPUS DIGITAL CAMERA수춘재라 불리는 비교적 큰 규모의 고택. 다른 가옥과는 달리 사랑채가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툇마루를 넓게 만들어 누마루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사랑채 기둥이 원기둥 모양을 하고 있으며, 종택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수춘재 옆에 있는 섬계고택. 섬계는 무섬마을을 대표한는 인물로 손꼽히는 박제익의 호이다. 지금은 선성김씨 김동근가옥으로 되어 있는데 그와 관련된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섬계고택 안쪽에 있는 만죽재고택이다.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17세기에 마을로 이사오면서 처음 자리잡은 종택을 마을 중심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종택답게 간결하면서도 격식을 갖추고 있는 고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종택 뒷편에는 섬계 박제익이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을 교류하던 섬계초당이 있다. 그 앞쪽에는 선성김씨 종택에 있는 사당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섬계고택과 만죽재고택 뒷편에 있는 집들.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 앞에 있는 6칸 규모의 작은 까치구멍집.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 앞쪽에 있는 무송헌종택이다. 선성김씨 입향조인 김대가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세종 때 천문학자로 큰 업적을 남긴 무송헌 김담(1416~1464년)의 종손(?)이어서 무송헌종택이라 부른다. 고택 뒷편에는 김담을 비롯한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무송헌종택을 들어가는 골목길.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왼쪽에 있는 오헌고택. 큰 규모의 저택으로 병조참판을 역임한 박제연의 후손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골목길 오른쪽에 있는 농당고택.

OLYMPUS DIGITAL CAMERA만죽재고택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김덕진가옥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김덕진가옥 옆에 있는 김위진가옥. 비슷한 규모의 큰 저택이다.

OLYMPUS DIGITAL CAMERA김위진 가옥 옆쪽에 있는 작은 규모의 초가집. 안방과 사랑방이 한건물에 있는데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분가한 후손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 있는 까치구멍집인 김규진가옥.

OLYMPUS DIGITAL CAMERA앞쪽에 있는 큰 규모의 고택. ‘오당’이라 걸린 현판이 걸려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중심부 앞쪽에 있는 김정규가옥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마을에 있는 6칸 까치구멍집에 비해 규모가 확장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남쪽편으로 제방길. 아래에 무섬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남쪽편 제방에서 보이는 마을 풍경.

OLYMPUS DIGITAL CAMERA마을 앞에 있는 제방길. 내성천과 함께 한적한 시골마을 경치를 더해주는 아름다운 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제방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외나무다리이다.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 마치 섬같은 지형을 하고 있는 무섬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다리이다. 다리는 길이 약 150 m, 폭 20 ~25 cm, 높이 60 cm로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다리이다. 옛스런 고택들이 모여있는 무섬마을을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다리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다리 중간에 비껴다리를 만들어 마주 오던 사람이 비껴갈 수 있게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외나무다리에서 보이는 마을 풍경.

영주 무섬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이 마을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마을 동쪽 500 m 지점에서 합류하여 마을 전체를 태극 모양으로 한바퀴 휘감아 돌고 있어, 마을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무섬’이라 불리고 있다. 마을 입향조인 박수(반남박씨)선생께서 1666년(현종 7) 강건너 ‘머름’에서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여 터전을 이루었다. 그 후 박수 선생의 손자의 사위인 김대(선성김씨)선생께서 영주에 있는 삼판서 고택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함께 살게 되어 지금까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은 자연 지리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뒤로는 산을 배경으로 하고 앞으로는 강을 향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이다.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을 배출한 부촌으로 한때는 마을 소유의 토지가 30리 밖에까지 이르렀으나 정작 마을에는 농지가 없어 강을 건너 가서 농사를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만세운동 이후 각처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들이 일본 경찰의 탄압과 감시를 피해 이곳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동네 주민들과 함께 아도서숙을 건립하여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마을에는 해우당 고택과 만죽재 고택 등을 비롯하여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입구자형(‘ㅁ’)가옥, 까치구멍집, 겹집, 남부 지방 민가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양식을 갖춘 집들이 많이 있어 전통 주거 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영주 무섬마을 김덕진가옥.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 있는 김덕진가옥이다. 반남박씨 종택인 만죽재고택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단일 건물 형태의 ‘ㅁ’자형 본채와 작은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중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사랑채, 오른쪽에는 마구간이 배치되어 있다. 18세기에 지은 비교적 오래된 고택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영주 무섬마을은 17세기 중엽이후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마을은 삼면이 내성천에 접해 있어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의미로 무섬마을이라 불린다. 마을에는 해우당고택을 비롯하여 규모가 큰 저택을 비롯하여 까치구멍집, 겹집 등 다양한 형태의 한옥들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18세기에 지어진 비교적 오래된 고택으로 ‘ㅁ’자형 본채와 작은 방아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본채는 안채와 사랑채가 단일 건물로 지어진 ‘ㅁ’자형 건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사랑채 마루. 건물을 높게 지었으며 툇마루 앞에 난간을 설치하여 누마루처럼 지었다.

<출처>

  1. 안내문, 영주시청,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