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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인량마을, 정담 정려비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정려비이다. 임진왜란 때 김제군수를 지내다 참전하여 전사한 정담을 공을 기리는 비석이다. 처음에는 나무로 세웠는데 후에 돌로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러 성씨들이 모여사는 인량마을을 대표하는 인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인량마을은 집성촌인 다른 전통마을과는 달리 안동권씨, 재령이씨 등 여덟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통마을이다. 나즈막한 산자락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어 학이 나래를 펼친 형국이라고 한다. 큰 하천인 송천이 마을 앞을 흐르며 그 주위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충효당, 오봉종택을 비롯하여 비교적 큰 규모의 고택들이 남아 있으며 마을의 규모도 상당히 넓고 큰 편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인량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정담 정려비.

OLYMPUS DIGITAL CAMERA비각에 모셔진 정려비

OLYMPUS DIGITAL CAMERA영덕 인량마을. 넓은 영해평야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여덟 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형적인 양반마을이다.

영덕 정담 정려비
정담은 명종 3년(1548)에 평해군 기성면 사동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야성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제군수로 웅치에서 격전을 치루며 육탄전 도중 45세로 전사하였다. 숙종 16년(1690)에 나라에서 정려가 내려 나무 비를 세우고 다시 세번 더 세운 다음, 정조 5년(1782) 마을 앞에 돌 비로 다시 세웠다.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출처>

  1.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2. 영덕군 군지, 영덕군청, 2017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4.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영월 엄흥도 정려각, 단종 시신을 거두었던 영월 호장 엄흥도에 내려진 정려

강원도 영월군 영흥리 조선 6대 단종의 장릉 능역내에 있는 엄흥도 정려각이다. 엄흥도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귀향온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은 후 버려진 시신을 거두어 묻어 주었다.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영조 때 정려가 세워졌으며 각을 세웠다. 이후  순조때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이후 공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사육신과 함께 영월 창절사에 배향되었다.

정려각은 내부 비석이 있는 비각 형태로 내부에 정려가 걸려 있다. 비석과 정려에는 「조선충신 영월군호장 증자헌대부공조판서겸지의금부사오위도총관 증충의엄흥도지문」이라 적혀 있다. 왕릉 내 충신을 기리는 정려각이 세워진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이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던 그의 행동이 높게 평가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단종의 장릉에 있는 엄흥도 정려각.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던 영월 호장 엄흥도에게 내려진 정려이다.

영월 엄흥도 정려각(嚴興道旌閭閣),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이 비각은 엄흥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영조2년(1726)에 세운 것이다. 충신 엄흥도가 영월호장으로 있을 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 24일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순조 33년(1833)에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출처: 문화재청>

OLYMPUS DIGITAL CAMERA정려비가 모셔진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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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비. 엄흥도에게 내려진 정려의 내용이 적혀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비각 내부에 걸려 있는 붉은색 정려. 비석에 적혀 있는 내용과 동일하다.

OLYMPUS DIGITAL CAMERA비각 내부 한쪽편에 걸려 있는 글자가 적힌 현판.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4. 고궁박물관
5. 위키백과